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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여적

미국 총기학살과 이상한 자유

by gino's 2012. 7. 24.

김진호 논설위원


 


1999년 미국 콜로라도주 콜롬바인 고교, 2007년 블랙스버그의 버지니아 공대, 2011년 애리조나주 투산의 한 쇼핑센터, 2012년 콜로라도주 오로라. 대규모 총기 학살극이 일어나면 미국은 하나가 된다.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위로하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한다. 총기 구매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주장은 잠시 반짝한다. 하지만 비극의 기억이 가물거릴 무렵, 총기는 미국 전역에서 다시 날개돋친 듯 팔려나간다. 지난주 오로라의 한 영화관에서 12명이 숨지고 60명 가까이 다친 참극 이후 미국 사회가 되돌리는 필름이다.


미국 공군 병사가 콜로라도주 총기난사 사건으로 숨진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있다. (경향신문DB)


올 11월 대선을 앞두고 네거티브 유세전에 몰입하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의 미트 롬니 후보는 오로라 참극 이후 유세일정을 일부 조정하면서 국가적인 슬픔에 동참했다. 오바마는 2008년 대선 당시 공격용 소총 판매금지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정작 당선 뒤에는 방관했다. 되레 430만 회원을 거느린 전미총기협회(NRA)의 정치자금줄이 떨어질까봐 “수정헌법 2조 보호”를 외치고 있다. 


매사추세츠 주지사 시절 공격용 소총 판매금지와 총기소유 면허세 4배 인상의 조치를 취했던 롬니 역시 “수정헌법 2조가 올바른 길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머지않아 또 다른 총기 학살극 뉴스가 태평양을 건너올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비극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총기 판매를 규제해야 한다. 미국 내에서는 정신병력이 있거나 폭력 전과가 있는 총기 구입자에게 판매를 금지하거나 최소한 10발 이상이 들어가는 탄창에 대해서만이라도 온라인 판매를 하지 말자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번번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있다. 오로라 사건의 용의자 제임스 홈스는 온라인으로 6000발의 자동소총 총알을 구입했다. 총기 규제를 가로막는 명분이 헌법이 보장한 ‘자유’라는 데 지극히 미국적인 패러독스가 존재한다. 1791년 수정헌법 2조에 명시된 ‘잘 통제된 민병대는 자유주(州)의 방위에 필요하기 때문에 무기를 소지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는 구절이 21세기에도 살아남은 탓이다. 


“자유의 나무는 애국자와 압제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토머스 제퍼슨)고 하지만, 선량한 시민의 피를 먹고 자란 자유는 '괴물'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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