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재건 특수, 대한민국이 요란한 이유
지난해 국내총생산이 전년보다 29.1% 줄었고,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26.6%까지 치솟았다. 주요 수출품은 철강과 농산물이지만, 철강생산은 69.2%가, 금속광석 채굴은 61.7%가 각각 줄었다. 25%나 줄어든 농축산물 생산량은 2040년 이후에나 정상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업은 -64.8%를 기록했고, 전체 산업 생산 증가율이 전년 대비 -36.7%였다. 실업률은 최고 21.1%. 게다가 이 나라는 17개월 째 전쟁 중인데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자, 당신이 기업인이라면 이 나라에 투자할 것인가.
순방의 주제가 재건 특수?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 극한 호우 피해로 수십 명이 죽어 나가는데도 귀국을 2박 3일 미루고,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핵심 목적의 하나는 재건사업 참여였다. 국토부 장관까지 달려갔다. 적어도 대통령이 국가적 재난을 뒤로 하고 '영업'을 하려면 비전과 전략은 물론 명분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은 15~16일 키이우 방문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표명하고 안보 및 인도적 지원과 더불어 재건 지원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5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기본협정 가서명을 상기시키면서 인프라 건설을 비롯한 협력사업 추진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침공을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침공에 비유하며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뤘듯이 우크라이나가 '드니프로강의 기적'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가 승전과 안보를 확보하는 게 지금 중요하다면서 올해 군수지원을 늘릴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앞서 우크라이나를 다녀간 각국 정상들의 행보와 비교할 때 지극히 예외적인 움직임이었다.
전쟁 발발 1년에 즈음해 지난 2월 20일 키이우를 찾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무기 지원과 전범 특별재판소 설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백악관이 게시한 바이든-젤렌스키 대담록 어디에도 비즈니스로서의 '재건'은 보이지 않았다. 3월 21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을 비롯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과 달리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 만큼 인도적, 경제적 지원을 강조했다. 섣불리 우크라이나의 승전을 기원하지도 않았다. "일본은 우크라이나의 아름다운 영토에 평화가 돌아올 때까지 계속 지원하겠다"는 외교적인 수사에 그쳤다. 젤렌스키는 "일본의 지원이 70억 달러에 달했다"면서 "수소장비 생산과 의료시설 복원에 지원을 집중해달라"고 제안했다.
키이우 방문 지도자 중 독보적인 비즈니스 마인드
올해 들어 키이우를 찾은 외국 지도자는 많다.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 외에도 아프리카 연맹(AU) 7개국 지도자(6월 16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6월 10일), 우르줄라 폰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5월 9일) 등이 다녀갔다. 이들 중 누구도 재건사업을 강조하지 않았다. 포탄이 날아다니고, 군인은 물론 민간인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사업 구상을 밝힐 때가 아니라는 판단에서였을 게다.
대통령의 비즈니스 마인드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정점에 달했다. 13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체결한 인프라 협력과 우크라이나 재건 협력 양해각서를 거론하면서 "양국 정상은 한국과 폴란드가 우크라이나 재건에 있어 최적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점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14일 한-폴 비즈니스 포럼 축사에서도 "폴란드가 우크라이나 전후 복구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재건이 한-폴 협력의 새로운 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날 바르샤바 '우크라이나 재건 협력 기업 간담회'에선 현지의 우리 기업인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코오롱글로벌, 한국토지주택(LH)공사, 한국수자원공사, 수출입은행, 해외건설협회 등 11개 기업 및 기관이 참석했다. 기업인들은 우크라이나 소형모듈원전(SMR), 교통체계를 비롯한 첨단시스템, 상하수도 복구사업, 카호우카댐 재건사업 등 추진 또는 구상하는 사업을 꺼내면서 정부의 금융, 행정 지원을 당부했다.
투자 계획을 미리 세워 나쁠 건 없다. 잘하면 시장 선점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대통령과 국토부가 치어리더 역할을 하는 우크라이나 재건 특수는 유독 대한민국에서 활활 타오르는 양상이다. 재건 특수의 규모도 대폭 늘었다. 대통령 순방에 동행했던 기자들은 ‘대통령실’을 인용해 재건 공사를 포함한 전체 사업 규모가 당초 거론되던 액수(약 1200조 원)보다 훨씬 많은 2000조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우크라 "무상원조와 차관으로 재원 3분의 2 확보"
금액 산정의 기준을 따지기 전에 우선 국제사회와 우크라이나가 발표한 예상 액수를 크게 뛰어넘는다. 세계은행·EU 집행위·유엔이 지난 3월 공동 발표한 총복구비용은 4110억 달러(518조원). 이론적으로 2024년부터 2033년까지 향후 10년 동안 복구에 필요할 것으로 추산한 비용이다. 지난달 발생한 카호우카댐 폭파로 야기되는 광범위한 민생 및 환경피해는 포함되지 않았다. 대통령실이 '2000조원 설'을 띄우기 전까지 가장 높은 추산액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발표한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해 7월 4~5일 스위스 루가노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복구회의(URC) 1차 회의에서 발표한 국가복구계획(NRP)에서 예상비용을 최소 7500억 달러(952조)로 제시했다. 세계은행 추산액보다 1.8배가 많지만, 대통령실이 추산한 금액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2023~2032년까지 피해복구에 그치지 않고 우크라이나 경제기반을 단번에 유럽 주요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복구 계획 마지막 해인 2032년 경제성장률 목표치가 최소 7%이다.
재건에 필요한 것은 자유와 민주주의 또는 지지와 연대가 아니다. 돈이다. '강한 유럽국, 우크라이나:매력적인 외국인 투자처'를 기치로 내건 NRP는 국제사회의 무상원조를 '마중물'로 초기 긴급 재건에 착수하고 차관과 각국 민간 부문의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무상원조와 차관으로 조성하려는 재원이 전체의 3분의 2에 달한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이전에도 탄탄하게 번영의 기반을 쌓은 나라가 아니었다. 설령 막대한 자금이 유입된다고 해도 효율적으로 재건을 추진할 정치적, 인적, 제도적 기반이 됐는지 회의적이다. 1991년 독립 이후 중·동유럽 국가들에 비해 경제성적이 바닥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지도층과 올리가르히(재벌)의 정경유착, 만연한 부정부패가 주원인으로 지목된다. (대외경제연구원)
게다가 지난 5월 기준 국내 실향민이 510만명, 국경을 넘은 난민이 890만명이다. 전쟁 전 4116만명 인구 네 명 중 한 명 꼴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정부 예상은 2000조원의 3.3%
대통령실이 나서니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도 나섰다. 지난 17∼18일 폴란드 경제사절단에 참가한 기업 89곳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국내 기업의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참여 기회 확대'(36.3%)를 가장 큰 성과로 꼽혔다고 23일 발표했다. 그런데 천문학적인 재건 특수에서 정부가 기대하는 것은 소박한 것 같다. 대한민국 민간·공공 부문 재건 참여 규모를 최소 520억 달러(약 66조원)로 보고 있다. 대통령실이 흘린 2000조원의 3.3%이다. 그나마 아직은 '사상누각'이다. 정부가 연일 홍보하고, 주식시장이 들썩일 상황은 아니라는 말이다.
'위험이 클수록 수익이 높다(high risk, high return)'는 원칙이 재건 특수에도 적용될 수는 있다. 다만 기업과 그 투자자가 결정할 일이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언제 끝날 것이라는 전망조차 없는 상태에서 정부가 앞장서 바람몰이를 하는 기현상.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보면,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