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북-러 무기거래" 선제적 흘리기, 한국의 포탄지원이 노림수?
북한과 러시아가 11일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발표하자 미국은 대러, 대북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아직 회담도 열리지도 않았는데 이를 계기로 우크라이나 지원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려는 미국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더불어 미국과 정확하게 보폭을 맞춰온 윤석열 정부의 '다음 선택' 역시 주목된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이날 대변인 성명을 통해 "공개적으로 경고했듯이 김정은의 방러 기간에 무기 (거래) 논의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애슈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는 이번 회담의 결과를 매우 면밀하게 주시할 것"이라면서 "북한에서 러시아로의 어떠한 무기 이전도 다수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라고 말했다.
밀러 대변인의 공격은 미국이 대리전으로 치르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상대국 러시아에 집중됐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전장에서 실패했을 뿐 아니라 국제적인 외톨이(pariah)에게 군사적인 지원을 구걸(begging)하기 위해 영토를 가로질러 여행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조롱했다. 국무부 대변인의 일상적 어휘 선택의 궤를 벗어나는 거친 표현이었다.
밀러는 대북 추가 제재와 관련해 "우리는 러시아의 전쟁을 지원하는 어떤 단체나 국가에 대해서도 공격적으로 제재를 집행해왔다"면서 "적절하게 새 제재를 부과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박 국무부 부차관보 겸 대북정책 부대표는 이날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세미나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사용할 상당량의 탄약(포탄)을 제공받는 등 늘어나는 북·러간 무기 거래를 매듭짓기 위한 대화의 최종 단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1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북·러 무기 거래 가능성에 대해 "정부는 지금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응 방안의 내용은 아직 괄호 속에 있다.
각국 언론은 주로 미국의 다음 행동과 관련해 대북 추가 제재를 언급하고 있다. '다음 행보'를 내다보기 위해선 '앞선 행보'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일관되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어려움에 봉착했다면서 특히 포탄 부족을 지적하고 있지만, 아직 러시아의 포탄 부족 사실이 입증된 적이 없다. 어느 나라로부터 포탄을 수입한 적도 없다. 이란산 드론을 전장에 투입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6월 시작된 우크라이나군의 반격 역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승인한 F-16 전투기는 내년 봄에나 전선 투입이 가능하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10일 BBC 방송 인터뷰에서 "추위가 몰려오기 전 우크라이나 군이 전투를 할 수 있는 날은 최대 45일 정도"라고 말했다. 당장 필요한 것은 여전히 포탄이다. 백악관은 북한과 러시아의 무기 거래 정보와 첩보를 선제적으로 흘린 다음 날(6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열화우라늄탄 공급을 발표했다. 국방장관을 전격 교체하는 등 전장의 교착상태를 돌파하지 못하고 있는 쪽도, 포탄 부족을 빌미로 비난을 무릅쓰고 국제적으로 금지된 집속탄을 공급하는 쪽도 러시아가 아니다. 우크라이나와 미국이다.
그런데 미국은 왜 북한의 대러시아 포탄 공급 가능성을 자주 언급하는 것일까. 이와 관련, 조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지원을 망설였던 장거리 미사일의 지원 승인이 임박했다는 로이터통신의 보도가 눈길을 끈다. 통신은 미국이 집속 포탄을 사용하는 에이태큼스(ATACMS) 또는 유도 다연장 로켓시스템(GMLRS) 중 한 가지 또는 둘 다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11일 전했다. 에이태큼스는 사거리가 300여㎞에 달한다.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 본토 공격에 사용될 수 있어 미국이 지원을 꺼렸던 무기다. 미국은 지난 7월부터 집속탄을 지원하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주로 155㎜ 포탄용이었다.
미국의 집속탄 장거리 미사일 지원이 꼭 북·러 무기 거래와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이 북·러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무기 거래 및 군사협력의 내용을 선제적으로 흘린 것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적인 무기·포탄 지원의 '명분 쌓기'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자국의 포탄 생산능력이 이미 오래전 한계에 달한 미국이 한국에 손을 벌리는 경우다.
윤석열 정부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계속 늘려왔지만, 아직 푸틴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경고한 살상무기 지원은 하지 않고 있다. 최종사용국을 미국 또는 폴란드 등으로 설정한 뒤 우회 지원해왔다. 그러나 북·러 정상회담에서 무기 거래가 아니더라도 북한의 연합훈련 참여 등 군사협력이 강화되면 이를 빌미로 살상무기를 직접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건넨다면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러시아가 경고해온 대로 '한·러 관계 완벽한 파탄'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 사안이다. 한·러 관계의 파탄은 한국이 걸머져야 할 안보상의 부담이다. 미국이 우려하는 사안이 아니다. 이미 그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수미 테리 윌슨 센터 아시아프로그램 소장은 지난 7일 한국의 대우크라이나 무기 공급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테리 소장은 CSIS 화상 세미나에서 안보리 대북 제재가 이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북 제재의 무용함을 지적한 뒤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한다면 한국은 우크라이나를 도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정보국(CIA) 분석관 출신인 테리는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미사일을 사들이면, 우크라이나도 한국으로부터 천궁 미사일 등을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의 주요 싱크탱크 연구원들은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 등의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일 뉴델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23억 달러 상당의 대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안을 공개했다. 재건사업과 함께 안보 지원도 포함됐다. 미국이 경고하는 대러 추가 제재 역시 불씨를 안고 있다. 미국은 동맹 및 우방과 함께 제재를 부과해왔다. 한국에 요구해올 대러 추가 제재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불투명하다. 러시아 외교부는 한·미·일 정상의 8·18 캠프 데이비드 합의 뒤 "한국의 대러시아 추가 제재 및 군사 지원을 비롯한 대우크라이나 추가 지원 노력에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한반도 정세를 위태롭게 할 결정이 북·러 정상회담 회의 탁자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북·러 군사협력을 촉진하는 역할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나올 수도 있다. 김정은의 방러 열차는 12일 오후 블라디보스토크를 지나 러시아 극동을 달리고 있다. 현시점에서 가정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이에 따른 한·러 관계의 파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