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무인기' vs 국정원 발 '북한군 파병'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한반도
18일을 기점으로, 한반도가 '남 무인기'와 '북 파병설'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전략적으로 대단히 불안한 상태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하수상한 시점, 남북이 내놓은 두 개의 발표
남북은 이날 각각 공식 발표를 내놓았다. 국가정보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북한군 특수부대원 1500여 명이 우크라이나 파병을 전제로 러시아 군부대에서 적응 훈련을 받고 있음이 8일 확인됐다고 밝혔다. 러시아 해군 수송함이 8~13일 북한 특수부대원들을 러시아 지역으로 수송하는 것을 포착, 참전 개시를 확인했다는 설명이다. 이는 최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의 주장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것으로 비상한 관심을 끈다.
국정원의 발표는 지난 11일 남한 무인기의 평양 상공 침범 및 삐라 살포를 주장한 북한 외무성 '중대성명' 발표 이후 이의 진위를 둘러싼 의혹이 확산되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국면 전환의 신호탄이 됐다. 국내 언론은 기밀 정보를 독점한 국정원의 발표를 대서특필하고 있다.
국정원에 따르면 러시아 해군의 북한 해역 한-소(러)가 수교한 1990년 이후 처음으로 태평양함대 소속 상륙함 4척과 호위함 3척이 청진, 함흥, 무수단 인근 지역에서 북한군 1500여 명을 블라디보스토크로 1차 이송했고, 조만간 2차 수송 작전이 진행될 예정이다. 또 지난 8월 초 김정식 북한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이 수십 명의 북한군 장교와 함께 러시아-우크라 전선 인근의 KN-23 미사일 발사장을 방문해 현지 지도하고 있는 정황을 포착했다. 군수공업부는 북한의 미사일 개발 핵심 부처다.
국정원은 북한군 선발대가 러시아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 하바롭스크, 블라고베셴스크 등의 러시아 군기지에 머물고 있으며, 적응 훈련을 마치는 대로 전선에 투입될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외 관심이 일거에 북한군 파병 문제로 '중심 이동'을 한 상황에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국방성 대변인의 발표를 전하며 한국군 드론작전사령부 소속 무인기 잔해를 공개했다.
사회안전성 평양시 안전국이 지난 13일 평양 형제산구역 서포1동 76인민반 지역에서 회수한 무인기 잔해를 발견했다면서 기술 감정 및 조사를 통해 대한민국발 무인기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는 것. 우리 드론작전사령부의 '원거리정찰용 소형드론'으로 국군의 날 행사 당시 차량에 탑재돼 공개된 무인기와 동일 기종으로 판단된다고 전했다. 보도는 무인기 기체 외형이나 비행 추정시기(5~7일), 기체 아래 삐라살포통이 부착돼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평양 중심부 삐라 살포에 이용된 무인기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결론은 아직 미정"이라고 적시, 최종 판단을 보류했다.
통신은 "무인기 도발의 주체와 행위자가 한국군이건, 탈북자 단체이건 전혀 관심이 없다"라면서 이와 무관하게 대한민국의 적대적 주권 침해 도발 행위가 명백히 시행됐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 '모든 수단' 동원한 대응 예고
국내외 관심을 북한군 파병에서 한국의 평양 무인기 침투로 다시 돌린 보도였다. 두 가지 사안의 실체적 진실이 베일에 쌓은 채 한반도 정세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우리 군은 여전히 북한의 주장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언론에 "북한의 일방적 주장에 대해 확인해 줄 가치도 없고,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밝혔다. 국정원 관계자는 19일 북한군 파병과 관련해 우크라 측 발표와 연관성 및 북한 국방성이 발표한 무인기 정체 등에 관한 <시민언론 민들레>의 전화 문의에 "담당 부서와 확인, 협의할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문자 질의를 당부했다. 그러나 "답변은 빨라야 월요일(20)일 중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민들레>는 국정원에 서면질의를 해놓은 상태다.
정부는 '평양 무인기 침범'에 관한 북한의 주장을 무시한 반면에 북한군 우크라 파병에 대해서는 신속한 움직임을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18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북한 전투병의 러시아 파병에 따른 긴급 안보회의'를 주재하고 우리 안보에 대한 영향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국가안보실과 국방부, 국정원 핵심 관계자가 참석한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러-북 군사 밀착이 군사무기 이동을 넘어 실질적 파병까지 이어진 현 상황이 우리나라는 물론, 국제사회를 향한 중대한 안보 위협이라는 점에서 인식을 같이 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이어 "이 같은 상황을 좌시하지 않고 국제사회와 공동으로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 중 각별히 주목되는 대목은 '가용한 모든 수단'에 집중된다. 정부는 2022년 2월 우크라 전쟁 발발 뒤 우크라에 인도적, 경제적 지원과 지뢰탐지기 등을 제공해 오고 있지만, 배제해 온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우크라 전장에서 가장 긴요한 155㎜ 포탄 등으로 미국과 폴란드에 수출해 우크라에 전달하는 간접 지원을 해 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정부는 그동안 여러 차례 "한국이 살상무기 지원하면 한-러 관계의 완전한 파탄이 올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지난 6월 평양에서 '북-러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한 뒤 서방이 우크라에 제공한 무기로 러시아를 공격하게 허용한다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할 것이라고 경고, 북-러 군사협력의 조건을 제시했다. 한반도 평화가 우크라 소용돌이에 들어갈 수 있음을 공개 경고한 것이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4일 무인기 평양 침범과 관련, 북한 측 발표 내용을 전제로 "한국은 북한의 경고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 무모하고 도발적인 군사작전 등 추가 상황 악화를 중단해야 한다"면서 "실제 군사적 대치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하로바 대변인의 발표는 통상적인 외교적 표현의 수준을 넘어 한국의 무인기 침투를 확신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한·러 관계 파탄, 러시아가 경고한 분기점
국정원이 보도자료 내용 중 수천 명의 북한군 병사들을 수송할 규모의 러시아 해군 상륙함과 호위함 등이 북한 청진, 함흥 항 등에 기항했다면 한미 양국의 정보자산으로 파악이 가능한 대목이다. <민들레>가 국정원에 전달한 질의 중에는 "국정원 보도자료에 담긴 정보를 한미 정보당국이 공유하는 것이냐"는 항목도 포함됐다.
미국과 러시아는 아직 국정원 발표와 북한 국방성 발표에 대해 어떠한 공식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남 무인기'에 관한 북한의 발표와 '북한군 우크라 파병'에 대한 국정원 발표는 모두 한반도 상황을 일거에 뒤흔들 심각한 사안이다. 전략적이건, 비전략적이건 더 이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은 상황을 덧들일 뿐이다. 두 사안을 아울러 정점으로 치닫는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획기적인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