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무인기' 외면하고, '북 파병' 부풀리는 윤석열 '짝눈 안보'
"0시 30분, 평양은 적막했다. 어떠한 소음도 없었다. 우리는 대사관에 있었고, 몇 명은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웠다. 갑자기 바로 우리 머리 위에서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인기였다. 최소 3차례 선회했다. 다음 날, 대사관 주변에서 경찰관들이 수거한 남한 삐라를 내 눈으로 보았다. 대사관 경내에는 떨어지지 않았다."
알렉산데르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 대사가 16일 로씨리스카야 가제타 인터뷰에서 밝힌 목격담이다. '잘못 봤을 가능성이 있지 않나'라는 질문에 "(그 시간) 평양이 너무 조용했기 때문에 틀림없다"라고 단언했다. '직접 무인기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냐'는 물음에는 "매우 놀랐다. 무인기는 삐라가 아니라 다른 것도 떨어뜨릴 수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마체고라 대사가 목격한 시점은 9일이다. 북한 외무성이 11일 "한국 무인기가 평양 중구역 상공을 침범했다"고 밝히면서 지목한 날(10월 3·9·10일) 중 두 번째 날. 마체고라는 당시 목격 상황을 본국에 보고했을 터. 14일 대한민국에 "대북 도발 중단하라"는 성명(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과 러·북 포괄적 전략 동반자조약 상 상호방위의무를 강조한 15일 안드레이 루덴코 외교차관의 말은 통상적인 외교적 표현의 범위를 벗어났다.
북한 발표를 인용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러시아 스스로 '한국 소행'이라는 확신에 차 있음을 내비쳤다. 러시아가 평양 무인기 사건의 실체를 모호하게 봤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단호한 입장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가 입장을 정하기 전 대사의 '현장 보고'만 보았을 리 만무하다. 자체 정보력을 가동해 실체적 진실에 접근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한민국에 "대북 도발 중단하라"고 경고했겠나.
"한국 무인기의 평양 침범이 재발되면 즉각 자위권을 행사하겠다"라는 북한 외무성의 중대성명(11일)을 계기로 초미의 관심을 끌었던 무인기 문제가 뉴스 뒤편으로 밀려났다. 북한군 러시아 파병 소식을 전한 국가정보원의 보도자료(18일) 이후 국내 언론은 파병 문제에 코를 박고 있다. 우리 국방부와 국가안보실은 "확인해 줄 필요가 없다"라면서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남측 정부가 덮으려 해도 덮어질 문제가 아니다. 북한 역시 작년 12월 말 서울 상공을 침범했지만, 단순 정찰과 북한 체제에 타격을 줄 '종이폭탄(삐라)' 살포는 비슷한 수준의 도발이 아니다. 북한이 정치모략 선동 삐라를 체제 안전의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위협'의 정도는 가하는 측의 인식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측의 '인식'에 따라 '행동'으로 이어진다.
평양 중구역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를 비롯한 주요 권력기관 및 외국 대사관이 밀집한 데다 북한 지도부의 '살림 공간'이다. '정권의 심장'이 뚫린 걸 상당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여기서 남북 간 위협 인식의 심각한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합동참모본부와 국가안보실은 북한의 중대경고 뒤 △"확인해 줄 필요 없다"며 북한 주장을 깡그리 무시하고 △모든 책임은 쓰레기 풍선을 부양한 북한에 있으며 △우리 국민 안전에 위해가 되면 강력하고, 처절하게 응징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평양 무인기가 우리에게 주는 직접적인 위협은 없다. 그러나 사건이 재발하고, 북한이 자위권을 발동한다면 한반도는 심각한 전란의 위기를 맞는다. 그 연결고리는 '무인기 북파' 및 '대북삐라 살포'다.
북한은 15일 예고한 대로 경의선, 동해선 철도·도로 북측 구간을 각 60m씩 폭파한 뒤 별다른 동향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일부 탈북자단체는 계속 대북 삐라풍선을 올려보내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윤석열 정부의 태세다. '전쟁위기설'이 세간에 급속히 퍼지고 있음에도 삐라풍선을 막지 않고 있다. 북한 사회안전성은 18일 삐라풍선이 강원도 평강군, 철원군 일원에서 발견됐다면서 또다시 쓰레기 풍선을 내려보냈다. 정부의 방관은 대놓고 북한을 자극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동시에 북한군 파병을 확인했다는 국정원 발표 뒤 여론의 관심을 무인기에서 떼놓고 있다. 그러나 안보상의 위협은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다.
평양 무인기의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일단 북한이 공개한 삐라가 '최고 존엄(김정은 일가)'을 비난한 만큼 북한이 자체 제작하는 건 불가능하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대장) 출신인 민주당 김병주 의원은 "무인기가 왕복 400㎞를 비행하려면 활주로를 쓰거나 사출기가 있어야 한다"라면서 탈북자단체의 무인기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바 있다.
북한 당국은 무인기의 정체 및 보낸 주체, 침투 경로 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 국방성이 평양을 침범한 건 한국군 드론작전사령부 소속 '원거리 정찰용 소형 드론'이라면서 밝힌 사진은 신빙성이 의심받고 있다. 지난 1일 국군의 날 시가행진에 공개됐던 사진 속의 무인기와 유사하지만, 모조품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 군사전문가는 "일각에서 정보사령부 무인기일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정보사는 군용이 아닌, 상용만 사용한다"라면서 "모조품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북한 국방성조차 우리 군이 보냈다고 주장하면서도 "그에 대한 결론은 아직 미정"이라며 최종 판단을 유보했다. 결국 전모를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우리 군 당국이지만,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계속된 대북 '삐라 도발'은 남북 간 긴장을 높은 수준에서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도무지 그 뒷갈망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22일 오전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이 주재한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회는 북한군 러시아 파병만을 한국과 국제사회에 '중대한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강력히 규탄했다. 한 눈은 감고, 다른 눈만 크게 뜨는 격이다. 무인기 삐라엔 눈을 감고, 북한군 파병에만 큰 눈을 뜨고 있다. 우리 안보에 중대한 위협인 삐라전쟁은 뒷전에 두고 국제적 위협에만 관심을 두는 희한한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주역인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각각 정치적인 이유로 되도록 흐리려는 북한군 파병을 한국이 앞장서 확성기에 대고 떠들고 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전략적 모호성은커녕 '비전략성 무시'이거나 무책임한 태세다. 북한군 파병 문제에만 관심을 집중시키는 '짝눈 안보'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