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무인기, 백령도서 떴다면…" 주목되는 국정원 역할
"10월 8일 23시 30초, 백령도에서 이륙해 우리 공화국 영공에 침범한 한국 무인기는 황해남도 장연군과 초도 주변의 해상을 지나 남조압도 주변 해상까지 비행하다가 변침, 남포시 천리마 구역 상공을 거쳐 우리 수도(평양) 상공에 침입한 게 해명됐다. 적 무인기는 9일 1시 32분 외무성 청사와 지하철도 승리역 사이 상공에, 1시 35분 11초에는 국방성 청사 상공에 정치선동 오물(삐라)을 살포했다."
"무인기 비행기록 238개 분석"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둘러대기엔 상당히 구체적이다. 8일 조선중앙통신이 전한 대한민국 무인기 사건의 '최종조사결과'. 전날 북한 국방성 대변인이 발표한 내용이다. 이달 들어 세 차례 평양 중구역 상공을 침범했다는 한국 무인기의 비행궤적과 시간을 증거자료로 첨부했다. 국방성 대변인은 무인기 잔해의 비행 조종 모듈을 완전분해, 분석한 결과 "2023년 6월 5일부터 2024년 10월 8일 사이에 작성된 238개 비행계획 및 비행이력 중에서 10월 8일을 제외한 나머지 자료는 모두 한국 영역 내에서 비행한 자료"라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는 북한이 지난 11일 외무성 중대성명에서 10월 중 한국 무인기의 침범 일자로 공개한 '3·9·10일' 중에서 9일 북한 영공을 침범한 무인기 자료를 확보했음을 의미한다. 국방성 대변인은 특히 "비행조종 프로그램에는 비행계획과 함께 삐라 살포 이력도 기록돼 있다"라면서 살포 위치에 도달하면 살포장치가 전기 신호를 주게 돼 있다고 덧붙였다.
국방성 대변인은 "대한민국(군 당국)의 위험천만하고 무분별한 정치군사적 도발행위에 대한 최후 경고는 이미 내려졌다"면서 "주권침해 행위가 재발하는 경우 모든 화난의 근원지, 도발의 원점은 우리의 가혹한 공세적 행동에 의해 영영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합동참모본부는 28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의 일방적 주장에 대해 확인해 줄 가치도 없고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군이나 다른 단체에서 백령도에서 실제 무인기를 띄웠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확인해 줄 것이 없다"라며 답변을 피했다. 그러면서 "(북한) 무인기가 침투한다면 상응하는 대응을 할 것"이라며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다짐했다.
합참, "북 무인기 침투하면 '상응조치'"
합참이 말한 '상응 조치'는 북한이 무인기로 서울 상공을 침범, 대남 삐라를 뿌린다면 다시 무인기를 평양에 보내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바로 북한이 자위권 차원에서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무력을 동원해 공격하겠다고 공언한 '금지선(redline)'을 넘겠다는 말이다.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은 "대한민국이나 미국이 북한의 도발에 크게 부담 갖고 있지 않다는 걸 북한이 알 것"이라면서 북한의 보복 공격에 개의치 않고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13일, 한국방송 일요진단) "북한이 먼저 공격받기 전에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장담처럼 남북이 댓바람에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북한의 재래식 도발에 따른 우리 군의 대응과 또 이에 대한 북의 더 큰 도발이 확산되는 상황이 바로 국내외 전문가들이 수없이 경고해 온 '공멸의 공식'이다. 재래식 전력이 절대적 열세인 북한이 최후의 수단을 꺼내는 순간 핵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엄중한 경고에 대해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지극히 가벼운 접근이 아닐 수 없다. 백령도는 특히 연평도와 함께 북한이 헌법 영토조항을 개정한 뒤 도발이 우려되는 곳이다.
'평양 무인기'에 대한 관심이 '북한군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으로 초점 이동을 한 시점은 지난 18일이었다. 이날 자 국가정보원 보도자료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북한은 이날 무인기 잔해를 공개했지만, 북한군 러시아 이동 뉴스에 가렸다. 윤석열 정부는 이날을 기점으로 '평양 무인기' 문제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북 파병' 정보를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이날 평양 형제산 구역에서 회수했다는 무인기 잔해 사진을 공개하면서도 남측 소행임을 확언하지 못했었다.
백령도~평양 약 150㎞
북한이 이번 발표에서 무인기 이·착륙지점을 '백령도'로 적시한 것이 맞다면, 평양 무인기 송출자는 범위가 좁혀진다. 백령도에서 평양까지 도달할 무인기를 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기관 또는 단체가 한정되기 때문이다. 일단 군 당국과 탈북자 단체는 제외해야 할 것 같다.
김용현 국방장관은 지난 11일 국회 출석 중 북한 외무성이 주장한 무인기 침범 뉴스 첫 반응으로 "(군은) 그런 적이 없다"라고 댓바람에 부인했다. 1시간쯤 뒤 '확인 불가'로 정부 입장을 바꾸기 전이지만, 일단 국방장관이 인지하는 대북 무인기 침투가 없었음을 말해준다. 아니라면 국방장관이 국회에서 위증을 했다는 말이다. 가장 공격적으로 대북 삐라풍선을 보내온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백령도는 무인기 비행 등 민간 단체의 활동이 제한되는 곳이기도 하다.
합참 휘하 부대 중 무인기 작전 수단과 능력을 보유한 드론작전사령부나 정보사령부를 제외하면, 국정원을 유력한 후보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백령도는 평양과 가장 가까운 거리(약 150㎞)에 있다. 한국전쟁 때부터 다양한 대북 첩보활동의 근거지였고,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관련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젠 국방부나 합참이 아니라 국정원이 답할 시간이다. 29일 오전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정원이 의원들의 질의에 어떤 답변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국정원 대변인실에 통화를 시도했지만 응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