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병, 소령, 중령, 대령 출신...트럼프 군출신 파격인사 읽는 법
트럼프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선군(先軍) 인사'가 눈길을 끈다. 장성급 각료들이 주류를 이뤘던 1기 행정부에 비해 계급이 많이 내려갔다. 현재까지 발표된 이들을 계급순으로 보면 상병에서 대령까지다. 엘리트 군사학교 출신 '별'은 없지만, 동성무공훈장을 포함해 훈장을 받은 이가 많다.
우선 부통령 당선자 J. D 밴스(40)는 해병대 상병 출신이다. 4년 가까이 군복무를 하면서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다. 국방장관에 지명된 폭스뉴스 진행자 출신 피트 헤그세스(44)는 예비역 소령이고, 국가정보국장(DNI) 지명자 탈시 개버드(43, 여)가 하와이 국경경비대 예비역 중령이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된 마이클 월츠(50)가 그린베레(육군 특수부대) 출신의 예비역 대령이다. 국가안보보좌관은 상원 인준청문회를 거치지 않는다.
트럼프의 선군인사는 1기 행정부 때도 주목을 받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무역대표부 대표(로버트 라이트하우저)를 비롯해 무역과 이민정책 등 MAGA 아젠다의 책임자들은 충성파로 메웠다. 그러나 외교안보 분야에는 노련한 원로들의 이른바 '어른 그룹(Adults)'을 앉혔다. 그 안에서도 예비역 장성들이 중요한 자리를 맡았다.
해병대 출신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대장, 중부군사령관), 존 켈리 국토안보부 장관-백악관 비서실장(대장, 합참의징)이 대표적이다. 육군 출신으로는 군정보국(DIA) 국장 출신의 초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클 플린(중장)과 후임 보좌관 허버트 맥마스터(중장)가 있었다. 전역 뒤 '아스팔트 정치꾼'으로 변신해 유세장을 누볐던 플린은 논공행상 차원에서 임명됐지만, 나머지는 '정치군인'과 거리가 멀었다. 경륜이 필요했던 트럼프의 요청에 의해 등용된 경우다.
1기와 2기의 선군인사의 차이는 단순히 계급의 차이에 머물지 않는다. 트럼프가 이번에 임명, 지명한 이들은 군복무 경력을 인정해 발탁한 게 아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환호하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운동에 투신한 인물들이다. 군복무는 이들의 애국주의를 측정하는 기준의 하나일 뿐이다. 정리하면, 1기 행정부 선군인사는 기존 질서 전복의 선봉장들이다.
반면에 1기 행정부 '어른 그룹'에 속했던 예비역 장성들은 제도권 기성 엘리트들로 정통군인의 길을 걸었던 이들이다. 트럼프에 의해 등용된 뒤에도 동맹과 우방을 중시하는 미국 대외전략의 전통적인 가치에 투철했다. 2017년 한반도 전쟁 위기를 관리한 주역들이기도 했다.
특히 매티스 국방장관과 켈리 국토안보부 장관 및 당시 합참의장이던 조지프 던포드는 해병 1사단에서 함께 복무했던 '해병 3인방'이었다. 켈리는 매티스 사단장 밑에서 처음 별을 달았고, 던포드는 대령이었다. 해병 1사단은 한국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에서 싸웠던 부대로 미국은 장진호 주변에 남아 있는 미군 유해의 발굴, 송환에 여전히 관심을 두고 있다. 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과 함께 좌충우돌로 일관한 트럼프에 맞서 기존 질서의 수호자 역할을 했다.
대북 제한적 군사행동(Operation Bloody Nose)이 제기되던 와중에 트럼프의 주한미군 무용론에 어깃장을 놓았다. 매티스는 2017년 2월 장관 취임 뒤 첫 가장 먼저 전운이 짙어가던 한국을 방문했다. 2018년 트럼프의 시리아 전면 철수와 쿠르드 민병대 배신에 항의해 사표를 던진 매티스나, 맥마스터가 이번 대선 와중에 반트럼프 목소리를 높인 건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 임명, 지명된 군 출신 인사들이 트럼프를 배반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헤그세스 국방장관 지명자의 경력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폭스뉴스 진행자였다는 점에서 파격인사라고 하지만, 그 전의 애국청년의 '영웅적인 경력'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003년 명문 프린스턴대를 졸업하고 월가의 대표적인 투자금융회사 베이스턴스에 몇 개월 근무한 뒤 바로 미네소타 주방위군에 입대했다. 쿠바 관타나모 기지에 근무 뒤 이라크 전출을 자원, 바그다드와 사마라에서 민사작전 장교를 지냈다. 동성무공훈장과 육군 공로메달, 전투보병 뱃지 등을 받았다. 소령 계급장을 달고 2014년 개인동원예비군(IRR)으로 5년을 지냈고, 2019년 국경경비대에 투신해 2년 뒤 전역했다. 도합 16년간 군에 머물렀다. 출세 지향주의자였다면 생각하기 힘든 이력이다. 오로지 '애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헤그세스는 지금도 성조기 문양으로 장식한 옷을 즐겨 입는다. 그가 취임하면 미군과 펜타곤 내에서 인종차별과 성적 소수자 보호 등의 진보이슈(yoke)가 퇴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본인 스스로 성추문에 관련돼 있어 내년 1월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곤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선 '소령 출신 국방장관'이라는 점에서 군사전문가로서의 자질을 지적하지만, 한국과 달리 군인을 국방장관에 거의 임명하지 않는 미국에선 넌센스다. 한국 특유의 군사문화와, 국방부 문화가 빚어낸 착시현상이다. 미국 폴리티코는 지난 13일 '헤그세스 지명에 펜타곤 관료들이 경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소령 출신을 문제삼은 게 아니다. 경영능력과 조직 관리 경험이 적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올 회계연도 미국 국방예산은 8420억 달러(1177조 원)로 천문학적 규모다. 130만 명의 현역 군인과 70만 명의 거대한 관료 조직의 최고경영자(CEO) 자질에 의문을 제기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건국 이후 처음으로 두 개의 전쟁을 치르던 2006년, 텍사스 A&M대 총장(로버트 게이츠)을 국방장관에 앉혔다. 국방장관은 당연히 사관학교 출신 예비역 군 장성이 맡는 자리라는 희한한 전통이 굳어진 대한민국에서만 이상할 뿐이다. 헤그세스의 경영 능력이 어떨지는 미지수지만, 적어도 우리가 관심을 둘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트럼프 1기, 2기 행정부의 선군인사가 드러낸 가장 중요한 변화는 1기의 군 출신 각료들은 입각 뒤에도 기존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았지만, 2기 군 출신 각료들은 트럼프의 가치에 주파수를 맞추고, 트럼프의 일을 대행할 것이라는 점이다. 누가 되더라도 트럼프의 말에 충성할 것이기에 개개의 각료들을 살피기보다 트럼프의 의중을 읽는 게 더 중요해졌다. 트럼프의 '숙주'인 우파 민중 또는 MAGA 지지층의 성격을 살피는 작업 역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