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난'이 싫지 않은 '얼치기 보수'의 뿌리
"같은 문제에 직면했을 때 자신이 가장 증오하던 기득권 세력이 돼서 뉴라이트라는 매국 우파의 앞잡이가 된 이가 있고, 여전히 완성하지 못한 민주주의를 위해 오늘도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드는 이가 있다. 자세의 문제일까, 시각의 문제일까. 아니면 선택의 문제일까?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어쩌다 이토록 기괴한 상황에 놓였는지 정면으로 맞서 냉철하게 맥락을 짚어보고자 했다. 과거의 도움으로 현재를 구하기 위해…."
인문 연구가 이병권이 오랫동안 품어 온 화두다. 12.3 비상계엄의 여파가 한 달 가까이 진행되면서 전대미문의 사건이 잇달아 벌어진다. 서울 한남동 관저 앞에선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과 체포를 촉구하는 민주시민들이 언 땅을 떠나지 않고 있다. 반면에 탄핵 취소를 요구하는 해괴한 시위도 있다. 그 질긴 뿌리의 하나가 바로 뉴라이트다. 이병권은 과거와 현재에 모두 물음을 던진다. 아니 현재의 연원을 추적해 과거를 관찰하고, 그 관찰의 결과로 현재를 도우려 한다. 뉴라이트를 극복한 뒤에나 과거 청산과 민주주의 완성을 도모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부터 집필 마무리 작업과 시위 참가를 병행했다. 연구의 일단이 을사년 벽두에 책으로 출간됐다. 『대한민국 보수는 왜 매국 우파가 되었나?』(황소걸음, 2025) 일독을 권한다.
뉴라이트는 자존(自尊)의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하는 대신 외세에 의존하려던 무리다. 망해버린 명나라를 추앙하며 현실을 외면하는 한편, 가문과 개인의 특권을 대물림한 노론의 후예이자, 일제 식민지 통치를 긍정적으로 보는 친일파의 후예이며, 신자유주의 세례를 받는 변이과정을 겪었다. 게다짝 밑에 놓였던 조선을 기꺼워하던 관성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며 '대한미국'을 부르짖는다. 우리의 문제를 외부의 도움에 기대어 해법을 모색하는 '자비(自卑)'의 무리다.
책은 '대한민국 보수는 왜 자유에 집착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고전 경제학의 창시자 애덤 스미스가 설파한 '보이지 않는 손'을 선별적으로 해석한, 얼치기 자유론자의 본질을 통찰한다. '식민지근대화론'의 안병직과 반일 종족주의'의 이영훈 등 뉴라이트의 이론적 하부구조를 만든 이들이 경제학자들이라는 점에 착안해 경제학사의 진실을 먼저 제시한 것.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과 적자생존론은 뉴라이트가 이론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해 채택한 또 다른 도구였다. 환경에 적응,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형질의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자연의 현상을 뒤틀어 '(이기적인) 강자만 살아남는다'는 논리를 생산했다. 강자만 살아남는 질서는 필연적으로 일제 식민지배와 지배계급의 우월성을 강변하며, 소수자를 혐오하는 사회진화론과 만나 전체주의로 빠진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단식하는 세월호 유가족의 농성장을 찾아가 배달 음식을 폭식하는 일간베스트(일베)의 인간 말종 유전자를 지적하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지금도 한국 민주주의의 한 귀퉁이를 맹렬히 오염하고 있는 무리의 유전자다. 뉴라이트를 이끈 이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잘난 사람'이라는 1등 주의에 물든 엘리트주의자들이다. 그 엘리트주의가 기회주의로 연명하다가 출세주의자로 몸집을 불리다가 사대주의자로 귀결된 것이 뉴라이트의 변이과정이라는 것.
한쪽에는 김영환을 비롯해 1980년대 민족해방(NL) 주사파에서 뉴라이트로 변신한 이들이, 다른 한쪽에는 운동권 이론가인 양 활동하다가 한일 수교 뒤 일본재단이 뿌린 엔화의 세례를 받은 이들이 있다. 본질은 그대로였다. '교언'과 '영색'을 걷어내면 이기적 유전자의 선택이었을 뿐이다. 이병권은 두 갈래 무리의 뿌리를 네 개의 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NL 주사파에서 매국 우파로 전락한 1등 주의자 (2부 1장)'에서는 비판의 입을 막고, 닥치고 충성을 요구하는 북한 주체사상을 들고 나와 자신들이 사회변혁의 주체라고 주장한 이들이 역으로 '이른바 보수'와 북한 체제 전복 세력으로 변해 온 과정을 살폈다.
주체를 떠들었지만, 비주체적 이론으로 학생운동권 안에서 헤게모니를 틀어쥐다가 1999년 '자본주의 만세'를 외치며 전향한 20년의 세월이었다. 1990년을 전후한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몰락은 하나의 계기였다. 승자의 논리에 영혼을 팔았다. 영적인 이들이었다기보다 '1등 자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엘리트주의자들이었기에 가능했던 '전향'이었다. 변칙적 인민민주주의를 숭상하던 그 입으로 승자 독식과 경쟁 만능, 복지 축소, 시장 자유 등 신자유주의 논리를 외쳤다. 변함없이 자신들이 변화를 주도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안병직 등의 식민지근대화론은 이들에게 양 날개가 됐다.
'모든 지원금엔 꼬리표가 있다(2부 2장)'에서는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대학 운동권 이론가였던 안병직이 1980년대 중반 도쿄대 교환교수 시절 접한 '중진자본주의론'을 식민지근대화론으로 발전시킨 과정을 담았다. 1987년 안병직이 설립한 낙성대경제연구소는 21세기 들어 박근혜-이명박-윤석열 정부에서 일제 식민지배 정당화와 역사 왜곡의 전위대가 됐다. 소위 '실증'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근대 경제를 연구한다고 표방했다. 실증한답시고 조선총독부 자료만 기준으로 삼았다. 조선노동당의 자료만으로 김일성-김정일 주의를 합리화하는 꼴이다.
2차, 3차 교차 검증이나 다른 관점을 배제한 채 자신들의 자료와 숫자로 만든 것을 '실증'이라고 우겼다. 이승만의 반민특위 해체 덕에 살아나 강단사학을 장악한 이병도, 신석호 등 식민사학자들의 논리를 경제학으로 옮겨온 것. 연구 지원금 명목으로 뒷배가 된 것은 토요타 재단이나 일제 A급 전범 사사카와 료이치의 일본재단 등이었다. "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파시스트"라고 자임한 사사카와가 자금 경로의 하나는 1995년 100억 원을 건넨 연세대 '아시아연구기금'이었다. 기금 초대 이사장이 류석춘 교수이고, 전달 창구가 윤석열의 선친, 윤기중 교수였다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이병권은 "이제 정체를 온전히 알았으니 '밀정들'을 역사의 재판정에 어떻게 세울지 고민할 때"라고 외친다.
'무엇을 위한 선택이었을까? (2부 3장)'에서는 나란히 수구 우파의 품으로 파고든 김영환과 안병직의 변신이 모두 기회주의에서 비롯됐음을 살핀다. 애국의 열정에서 출발했지만, 애국이든, 매국이든 가리지 않고 자본과 물신에 안주했다는 것. '자존의 길 vs. 자비의 길(2부 4장)'에서는 역사학도 출신인 이병권의 숙성된 내공이 돋보인다. 병자호란 뒤 개혁사상가 윤휴와 노론의 영수 송시열의 선택을 대비하면서 식민사학과 김영환, 안병직 변질의 계보를 정리했다. 2024년 대한민국이 앓고 있는 뉴라이트의 정체를 '신종 사대주의'로 규정하고, 그들이 주장하는 '전쟁이라는 진부한 생존 협박'의 허실을 파헤친다. 이병권의 손끝에서 미·중의 필연적인 전쟁론과 중국 몰락론, 북한 몰락론을 떠들면서 한미일 동맹을 원한 속내가 드러난다. 재임 중 '종북세력'을 지탄하며 한미 동맹, 한미일 군사협력을 집요하게 추진한 윤석열 대외전략의 골간이다. 그렇다면 과연, 자존의 길은 어려울까?
이병권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할 것을 주문한다. NL 주사파 전향자들이 우리 안에서 변혁의 동력을 찾지 않고, 주체사상에서 미래를 보려고 했던 것이나, 안병직과 이영훈이 일제의 도움에서 조국 근대화의 뿌리를 찾으려던 게 죄다 사대주의 또는 '자비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국가와 민족을 비하하는 한편으로 자신들의 영달을 추구하는 면모를 드러냈다. 사회는 보수와 진보의 양 날개로 비상한다. 대한민국에는 언필칭 '보수세력'은 있되, 진정한 '보수'가 없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되 여차하면 12.3 비상계엄처럼 시민적 자유를 박탈하는 쿠데타를 불사하고, 사익 추구를 위해 반민족행위를 일삼았으며, 일제에 빌붙었듯이 강대국에 붙어 사익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이병권은 보수의 감별 기준으로 △헌법 전문에 적시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가치와 정신을 계승할 의지와 자세가 있는가 △역대 보수세력이 내버린 자존의 자세를 갖출 수 있는가 △임시정부의 정신이자, 보수주의의 한국적 전통을 이어갈 척도로서 삼균주의의 일부라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수용할 수 있느냐는 세 가지를 제시한다. 매국 우파, 뉴라이트를 솎아내는 기준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그가 제시한 여섯 가지 대안은 '윤석열의 난'을 진압한 뒤 새로운 대한민국을 꿈꾸는 이들이 참고할 대목이다. 이병권의 뉴라이트 분석은 지난해 하반기 <시민언론 민들레>의 '민들레 들판' 란에 일부 내용이 소개돼 폭넓은 반향을 얻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