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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코로나19 위기가 ‘기회의 창’이라는 단견들

한반도, 오늘

by gino's 2020. 3. 1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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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것은 바람을 막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불가능하다. 국경을 봉쇄하고 하늘길, 바닷길을 막는다고 해도 어느새 틈입한다. 사람들이 그 존재를 확인하고 서둘러 국경을 봉쇄한 시점에 바이러스는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인류는 아직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을 방도를 찾지 못했다.

코로나19 확산 속에 마스크 착용은 북한에서도 필수가 됐다. 북한 노동신문은 국가차원에서 초특급 방역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야외나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것은 ‘나라 앞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지난 2월26일 평양 시내 광복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채 이야기를 하고 있는 두 행인. AP연합뉴스

북한 당국이 ‘신형코로나비루스’(코로나19)를 처음 언급한 것은 지난 1월21일이다. 강철진 보건성 국가위생검열원 처장은 이날 조선중앙TV 인터뷰에서 ‘새로운 악성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세계보건기구(WHO)와 긴밀한 연계 밑에 국가적인 방역사업을 벌여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 당국은 이후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12일 현재 WHO에 보고한 확진 사례 역시 ‘0’이다. 하지만 중국과 1420㎞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한에는 이미 코로나19가 발생했다고 가정하는 게 합리적이다. 중국과 1281㎞의 국경을 접하고 있는 베트남도 언론통제를 하는 당국가체제이지만, 12일 현재 39명의 확진자를 WHO에 보고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북한을 바라보는 국내외 시각에는 ‘우려’와 ‘기대’가 넘친다.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조건에서 북한의 현 상황을 짚고, 향후 파장을 내다보기는 쉽지 않다. 이 시점에는 부족할지언정 사실과 정보를 토대로 현황을 정리하는 작업이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온갖 소문과 가짜뉴스, 음모론은 두려움과 불확실성을 연료로 지펴지기 때문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월28일 한 군부대에서 훈련과정을 참관하고 있다. 김 위원장을 제외한 군 지휘부는 전원 검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AP연합뉴스

WHO에 따르면 중국 허베이성 우한에서 새로운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나온 것은 지난해 12월8일이다. 12월부터 3월 초까지는 ‘북·중 국경 밀수의 절정기’(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이다. WHO가 일일 상황보고에서 중국의 지방별로 코로나19 확진자를 표시하기 시작한 2월1일자(12호)에 따르면 북한과 접경한 랴오닝성과 지린성에서만 각각 60명과 17명의 확진자가 보고됐다. 정보의 신뢰도를 생각하면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1월30일을 기점으로 외국과 연결하는 육·해·공 통로를 전면 폐쇄했지만 중국과의 밀수 또는 국경무역은 그때까지 진행됐다. 북한은 같은 날 오후 11시쯤 남북 개성공동연락사무소도 닫았다. 랴오닝성과 지린성의 코로나19 확진자는 2월 중 3배가 늘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에 따라 12월22일을 전후해 본국에 강제송환된 북한 해외노동자들만 수만명에 달한다.

3월 초까지 북한 내에서 격리조치된 ‘의학적 감시 대상자’는 평안북도 3000여명, 평안남도 2420명, 강원도 1500여명으로 7000명에 육박한다. 평북과 함께 북·중 접경지역인 자강도, 양강도, 함경북도를 포함하고, 강원도 사례를 토대로 비국경 지역의 격리인원을 감안하면 1만명을 크게 상회할 것이다. 물론 의학적 감시 대상자라고 모두 코로나19 의심환자는 아니다. 박명수 북한 보건성 국가위생검열원 원장은 노동신문 기고문(1월26일자)에서 철저히 입원 격리시켜야 할 대상으로 ‘열이 있는 환자’나 ‘기존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는 폐렴 환자’ 등 두 부류를 꼽았다. 단순히 열이 있는 사람도 격리 대상이 된 것은 바이러스를 확진할 진단키트 및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2월22일 북한 평양의 무궤도 버스에 탄 승객들이 코로나19를 예방하기 위해 마스크를 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예방의학 전문가인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는 “북한이 중국이나 러시아 등 해외에서 간단한 항체 검사키트를 수입한 것 같다”면서 “아쉬운 대로 사용할 수 있지만 정확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사용하는 분자진단법(RT-PCR)이 정확하지만, 진단키트는 물론 기계장비와 실험실이 완비돼야 사용이 가능하다. 그 때문인지 아직까지 북한 매체의 관련 보도는 코로나19의 정확한 식별보다 “3만여명을 동원해 초특급 방역을 벌이고 있다”는 식의 ‘차단’과 ‘격리’에 쏠려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지난해 식량지원 요청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지원 제안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국제 적십자와 적신월,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국경없는의사들(MSF)과 WHO 등은 코로나19 대응에 필요한 의료용품 및 장비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국제적십자연맹(IFRC)은 유엔 대북제재위에 이러한 물품의 제재 제외를 공식 요청해 놓았다.

북한의 피해가 얼마나 될지 역시 미지의 영역이다. 분명한 사실은 코로나19와 무관하게 북한은 이미 각종 감염에 취약한 위험국가라는 점이다. 황나미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2011년 발표한 논문 ‘통일 대비 북한 전염병 관리를 위한 접근전략’에 따르면 북한 주민의 사망 원인에서 감염·기생충, 호흡기 감염·질환이 32%에 달한다. 다른 원인으로는 심혈관(35%), 암(11%), 비감염성 질환(10%)이 꼽힌다. 단일 감염 질환으로는 결핵이 가장 심하다. WHO의 연례 결핵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북한의 결핵 환자는 13만1000명, 이로 인한 사망자는 2만여명으로 추산된다. 2017년 사망자 1만6000여명에서 25%가량 증가한 수치다. 코로나19의 세계 평균 치사율인 3%보다 훨씬 치명적이다. 주민 1100만명(43%) 정도가 영양실조를 겪고 있어 감염에 더 취약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된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강조한 대로 그 후과는 심각할 수밖에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인 지난 2월16일 북한 주민들이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평양 만수대 김일성·김정일 동상 앞에서 꽃을 들고 추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각국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대목은 북한이 입게 될 경제적 피해와 그에 따라 달라질 한반도 안보기상도이다. 곳곳에서 북한이 제재를 견뎌내기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상 또는 기대 심리가 엿보인다.

코로나19는 결핵이나 다른 전염병보다 경제적 피해가 더 클 것으로 전망된다. 빠른 확산속도 탓에 외부와의 단절과 차단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제 문제는 유엔 제재와도 연결된다. 2016년 이후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개발과 관련해 내놓은 일련의 제재는 북한 교역량의 90%를 차단하고 있다. 2018년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마이너스 4.1%로 1997년 ‘고난의 행군’ 이후 가장 큰 폭의 내리막을 보인 이유다.

북한 경제는 작년을 기점으로 살아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최근 북한 경제가 지난해 풍작과 제재 우회 거래에 힘입어 1.8%의 성장률을 보였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올해 1월1일 조선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보도문에서도 “인민경제 거의 모든 부문이 현저한 장성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북한 경제는 2018년도 하락분을 일부 보전하기 시작한 시점에 다시 어려움을 맞은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2018년 20만명, 2019년 30만명으로 늘어 제재 속에서 숨통이 됐지만 올 상반기 중 관광 재개는 난망이다. 보따리상 또는 밀수를 통한 중국산 상품 공급이 원활치 못하게 되면 북한 경제의 혈맥 역할을 해온 장마당마저 흔들릴 수 있다.

북한 당국은 쌀과 콩, 경유, 가스 등 기본 생필품 가격이 올라가자 가격통제 정책을 펴는 한편, 콩의 재고를 방출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2009년 화폐개혁이 실패로 돌아갔듯이 공권력을 동원한 가격 통제에는 한계가 있으며, 북한 당국 역시 이를 알고 있을 터이다.

북한은 2월29일 보도된 당 중앙위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두 가지 결정을 내렸다. 당 간부들의 특세·특권·관료주의·부정부패 행위를 성토하고, 전염병이 들어올 수 있는 모든 통로와 틈을 완전봉쇄하는 것과 함께 검병, 검사, 검역 사업을 강화토록 했다. 북한이 섣불리 외부 지원에 손을 내미는 대신 자력 해결에 나선 것은 그만큼 올해 성장목표 달성이 절실하기 때문일 게다. 북한은 올 1월1일자로 공표한 노동당 중앙위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보도문에서 조선노동당 창당 75주년을 맞아 정치외교적, 군사적 공세로 정면돌파전의 승리를 강조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겠지만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부강, 자력번영하여 나라의 존엄을 지키겠다”는 다짐을 밀고 나갈 가능성이 더 높다.  

김재룡 북한 내각총리가 지난 2월 12일 평양의 한 건물에서 비상방역 회의를 주관하고 있다. 서 있는 김 총리는 물론 회의 참석자 전원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북한 분석관 출신인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지난 3일자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 두 가지 가능성을 제기했다. 우선 북한이 해상에서 원유 및 화물선을 통째로 교환하는 방식의 불법 거래도 쉽지 않아질 것인 만큼 유일한 경화 획득 수단인 사이버절도를 강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방식은 긴박한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북·미 핵협상에서 유연한 태도를 보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코로나19의 대표적인 파급 영향으로 북한 체제의 ‘제재 내구력의 약화’ 또는 ‘제재 효과의 증폭’을 들었다. 그는 11일 온라인 보고서에서 북한이 특히 중국과의 일시적 절연 조치를 내린 만큼 타격이 더 커질 것이라며, 코로나19 사태를 북한의 대남·대외정책 변화를 유도해나갈 기회의 창으로 짚었다. 

‘개성공단 마스크 공장 가동’과 같은 비현실적 제안 역시 코로나19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기회의 창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같은 맥락이다. 북한을 덮친 또는 덮치고 있을지 모르는 ‘인간안보’의 재앙이 결국 북한의 입지를 약화 또는 완화시킬 거라는 기대가 깔린 전망들이다. 

하지만 북·미 협상이 틀어진 것은 선(先)비핵화를 당연시하는 미국과 제재 완화부터 요구하는 북한 셈법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미·중 갈등도 여전하다. 남북관계 역시 미국의 최대압력(maximum pressure) 장벽에 막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본질이 아닌, 주변적 사안으로 접근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닌 것이다.  더구나 대역병은 함께 견디는 것이지 지정학적 타산으로 다룰 사안이 아니다. 코로나19는 묘안이 아닐 뿐더러, 묘안으로 활용해서도 안된다.

북한의 코로나19를 기회로만 보기 어려운 게 현 상황이다. 오히려 북한 인간안보의 재앙이 경제파탄으로 이어져 안보적 재앙으로 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이 이달 초 코로나19가 북한이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서 대북 제재의 완화를 거듭 강조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경제난이 초래할 대량탈북사태를 막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단기적 유·불리를 셈하기보다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인간안보와 경제난 및 동아시아 안보 위기를 통으로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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