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반도, 오늘91

그럼에도 음악은 계속돼야 한다. 더구나 아리랑은... "무대 뒤 (철로가 놓인)이쪽이 북쪽입니다. 이 길 처럼, 세상의 어지러움을 극복하고 모든 인간을 하나로 연결하는 평화를 그리며, 행복한 음악회가 되시길 바랍니다.(PLZ페스티벌 예술감독 임미정 피아니스트)" 철로는 습기를 머금은 채 게으르게 누워 있었다. 북을 향해 곧게 뻗었건만 허우대만 멀쩡할 뿐 철륜을 받아내지 않고 있었다. 장마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7월 24일 오후 대한민국 최북단 기차역인 강원 고성 제진역. 남북이 69년 동안 중무장하고 있는 비무장지대. 그 형용모순의 현장에서 2022년 PLZ(Peace & Life Zone) 페스티벌 개막식 및 오프닝 콘서트가 열렸다.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도, 날씨도 축축했다. 바람은 가까스로 선선했다. DMZ를 평화와 생명의 땅으로 돌려놓자는 취지로 매년.. 2022. 7. 30.
남남, 남북 사이 '중간'은 불가능한 영토일까 한반도인으로 읽은 세계, 세계인으로 읽은 한반도 “앗, 선생님 어디선가 뵌 얼굴입니다.” 21세기 초, 군사분계선을 넘어 처음 북한 땅을 밟았다. 속초에서 배편으로 장전항에 도착했다. 꿈에도 그리던 금강산이었다. 현실은 감회에 젖을 여유를 주지 않았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북측 남자 안내원이 기습적으로 말을 걸어왔다. 5시간 정도 소요되는 만물상 코스의 초입이었다. 그는 그러면서 남측 방문객들이 방북 기간 내내 목에 걸어야 했던 신분증을 멋대로 들춰 인적사항을 훑었다. 사진과 함께 생년월일, 직업, 주소 등이 적혀 있었다. 한국기자협회 대표단의 한 명으로 조선기자동맹 대표단을 만나기 위해 방북한 길이었다. 인적사항을 확인한 그는 대뜸 “기자는 시대의 조산원입네다”라며 추켜올렸다. 그러더니 “하지만 잘.. 2021. 10. 22.
추석 즈음, 한인 디아스포라를 생각한다 정확히 20년 전 가을날 저녁이었다. 멀리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찾아온 기자를 맞이한 김씨 집안 사람들의 얼굴에선 도무지 ‘한국’을 찾아볼 수 없었다. 농가의 조명이 밝지 않아서인지 살갑게 손 내미는 얼굴들이 더 흐릿하게 보였다. 백인의 얼굴도 있었고, 가무잡잡한 피부도 보였다. 한국인은커녕 황인종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비포장 외길과 녹슨 철로로 간신히 세상과 연결된 쿠바 동북단의 마나티항. 아바나에서 700㎞를 달려가 한인 후손 에스민다의 가족을 만난 자리였다. 그들의 입에서 엄마의 음식 이름이 나온 것은 놀라운 반전이었다. “김치, 지지미, 콩장, 부침개….” 그 순간, 조금 더 넓은 개념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단일민족’ 중년남의 뇌리에 어렴풋하게 찾아들었다. 못난 왕과 탐욕스러운 고.. 2021. 9. 10.
남북한과 미국의 '대중(對中) 협력'이 지극히 미국적 발상인 까닭 우선 한·미가 북한에 종전선언을 제안한다. 평화협정과는 달리 국제법적 구속력이 없는 선언일지언정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다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한·미가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해 북한으로 하여금 대중 입장을 재정립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경제지원은 신뢰 구축의 또 다른 수단인 동시에 북한 비핵화의 촉진제다. 미국은 북한의 인프라를 개발하기 위해 10년 무이자 국제펀드 조성을 가능케 하는 역할을 한다. 북한은 이를 통해 대중 경제의존을 낮출 수 있다. 남북 자유무역협정(FTA)은 이러한 인프라 건설재원 마련의 보완재가 될 수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 투자 흐름을 주도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은 한국이 맡는다. 이 단계에서 한·미 동맹과 북한은 군사적 긴장을 낮춰야 한다. 군사관계의 정상화다. 서해 충돌.. 2021. 8. 13.
미사일 주권 되찾은 한국, '호랑이 등'에 올라타나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대북정책 재검토를 완료한 뒤 3주가 지난 21일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회담은 여러 ‘꼬마 동맹’을 탄생시켰다. 지역적으론 거반 전 세계를 다루었고, 분야별 현안을 총망라한 A4용지 5쪽이 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지난달 16일 미·일 정상회담 뒤 발표된 ‘새로운 시대를 위한 미·일 글로벌 파트너십 공동성명’에 비해 정확히 1쪽이 더 많다. 만기친람식 광폭 성명이었다. 한·미관계가 공간적으로 넓어지고,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이 강화되는 걸 반대할 필요는 없다. 로컬 동맹이 글로벌 동맹으로 바뀌었으며, 기왕의 군사동맹에 더해 경제동맹, 기술동맹, 기후동맹, 코로나19 백신 동맹, 우주개발 동맹, 라틴 아메리카 개발협력 동맹은 물론 메콩 지역 수자원 관리 동맹, 여성폭.. 2021. 6. 1.
영화 <미나리>와 애틀랜타 참사, 재미동포들의 신산한 이민생활 “어쩌다보니 범인과 같은 나라 출신의 저널리스트다. 애도의 뜻과 함께 미안함을 전한다.” 2007년 4월17일. 버지니아 북부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4시간 가까이 자동차를 몰고 도착한 블랙스버그의 버지니아텍 주변은 지극히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전날 재미동포 1.5세 조승희(23)의 총기난사로 32명이 숨진 참극의 현장 같지 않았다. 북적이는 것은 수백명의 취재기자들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위와 같이 말문을 열고 “사건 탓에 한국인 또는 아시아계 학생들에 대한 혐오가 번지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미국 남부 바이블벨트가 시작되는 지역이라서 그랬을까. 놀랍게도 단 한 명의 백인 학생, 교수, 교직원, 지역 주민도 기자의 우려에 동의하지 않았다. 약속이나 한 듯 “우연히 범인이 아시아.. 2021. 3. 21.
'2024 강원청소년올림픽', 우리는 왜 외면하는가 “헐링을 하지 않으면 아일랜드인이 아니다!” 스포츠가 평화의 도구이기는커녕 분쟁의 빌미가 된 곳이 북아일랜드다. 우리에게 생소한 헐링(Hurling)은 아일랜드의 켈트족 전통 스포츠다. 나무막대로 작은 공을 치는 경기로 하키를 연상시킨다. 헐링이 북아일랜드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섬뜩하게 가르는 기준이 된 까닭은 헐링이 아닌, 하키를 하는 ‘적’이 있기 때문이다. ■ 스포츠와 평화, 두 나라 이야기 북아일랜드는 1998년 굿 프라이데이 협정을 맺고 평화의 여정을 시작했지만, ‘평화로운 공존’과는 거리가 멀었다. 협정의 핵심은 인구 비례와 무관하게 권력을 분점하는 공유정신이다. 하지만 가톨릭 아일랜드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민족주의자와 신교도(성공회) 영국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통합주의자들은 여전히 분리돼 .. 2021. 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