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이 북한에 강한 압력을 넣지 않는다면 미국이 혼자서라도 북한 문제를 풀겠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모임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는 장면이다. 워싱턴/AP연합뉴스
북핵 문제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장고(長考)가 끝났다. 국내 일각에서 한껏 호들갑을 떨었던 대북 선제공격론은 일단 제외된 것으로 관측된다. 여전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불가능성을 풍기는 트럼프이지만 일단 북한문제를 둘러싼 중국과의 ‘큰 거래(grand bargain)’를 강조했다. 유세과정에서 밝힌 ‘햄버거 정상회담’을 가질 수있지만, 그 상대는 김정은이 아닌, 오는 6~7일 첫 대면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트럼프는 3일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 독점인터뷰를 갖고 중국의 도움이 있건, 없건 북한과 거래(deal)을 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트럼프는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대가로 중국이 북한에 압력을 넣는 ‘큰 거래’를 할 의향이 있느냐는 FT의 질문에 “중국이 북한 문제를 풀지 않는다면, 우리(미국)가 할 것이다. 내가 (북한에 대해)말하는 모든 게 바로 이것”이라고 단언했다.
트럼프의 인터뷰는 오는 6~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격 이뤄진 것으로 트럼프 행정부 취임 이후 시작한 대북정책 재검토 작업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캐슬린 맥파런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이와 관련, “트럼프 임기 말 쯤 북한이 핵탄두를 적재한 미사일로 미국을 공격할 수 있게 될 가능성이 진짜 있다”고 FT와의 별도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맥파런드 부보좌관은 트럼프 취임 직후 대통령의 명을 받아 ‘본류에서 벗어난(outside of mainstream) 아이디어를 포함해’ 대북정책 재검토를 지시한 인물이다.
FT는 복수의 백악관 NSC 관계자에 따르면 대북정책 재검토 작업은 끝났다면서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마무리 작업에 속도를 내왔다고 전했다. FT는 그 내용과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가 “탁자 위에 모든 옵션이 있다”는 말을 계속하겠지만, 대북 선제공격안을 제외했을 때 북한에 대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중국의 도움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에 북한 문제를 아웃소싱하는 것은 역대 미국 행정부가 취해왔던 입장이다. 트럼프의 발언 가운데 새로운 것은 중국이 충분히 돕지 않는다면, ‘다른 대안’을 고려할 수있다는 메시지를 준 대목이다.
■로이터 통신도 “덜 위험한(less-risky) 조치들에 우선순위, 군사행동 강조안해 (de-emphasize)”
로이터 통신도 이날 복수의 백악관 NSC 고위당국자들의 말을 인용해 대북정책 검토가 끝났다고 전하면서 검토안이 트럼프에게 넘어갔다고 확인했다. 로이터는 정책안이 트럼프의 집무실 책상위에 놓였는지, 또 트럼프가 얼마나 빨리 특정안을 실행에 옮길지는 분명치 않다면서 여전히 공석으로 남아 있는 안보분야 고위당국자들의 자리가 메워지는 것에 따라 다소 늦어질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로이터가 인용한 고위당국자는 검토안이 북한을 국제금융시스템에서 추방하는 제재안과 함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비롯해 한국의 일본의 미사일방어(MD)시스템을 강화하는 등의 군사적 옵션을 포함하고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또 한 당국자의 말을 빌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옵션이 탁자 위에서 제외된 것은 아니지만 대북정책검토안은 덜 위험한(less-risky) 조치들에 우선순위가 부여됐다면서 “직접적인 군사적 행동을 강조하지 않고 있다(de-emphasize)”고 전했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 1월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 매티스 장관 역시 북핵문제의 해법으로 유엔과 동맹국 및 다른 나라들과의 협력에 방점을 두었다. 워싱턴/AP연합뉴스
■여전히 여운 남기는 ‘다른 대안’ 또는 ‘본류에서 벗어난 아이디어’
역대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명확한 지향점을 갖고 있다. 북핵문제의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다. 하지만 방법론에선 다소 갈렸다. 조지 부시 1기 행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압박을 가하다가 2기 행정부에서는 타협을 시도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취임 초기 “우리가 손을 내밀테니 주먹을 펴라”면서 대화 제스처를 보였다가 8년 내내 ‘전략적 인내’로 일관했다. 트럼프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궁금증을 증폭시켜온 것은 과연 미국이 대북 선제공격을 비롯해 무력을 동원할 것인지 여부였다. 맥파런드의 ‘본류에서 벗어난 아이디어’는 그점에서 다양한 추측을 내놓았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 주류언론들은 그동안 선제공격안은 검토 초반에 제외됐다는 분석을 내놓았지만, 유독 뉴욕타임스만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지난달 중순 서울방문 소식을 전하면서 ‘선제공격론’을 명시적으로 강조했었다. 트럼프의 발언은 그러나 군사적 수단을 배제한 협상에 무게를 실었다는 점에서 역대 행정부의 노선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 달 31일 영국 런던에서 미·영 국방장관 회담 뒤 공동기자회견 자리에서 북핵문제를 이슬람 국가(IS)나 이란 문제에 앞선 가장 중요한 안보현안으로 꼽았다. 매티스 장관은 그 해결방안으로 “유엔을 통해 협력하고, 동맹과 협력하며, 북한을 통제 아래 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에 협조하는 국가들과 함께 외교적으로도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보다 구체적 윤곽은 7일 오후 미·중 정상회담 뒤 공동기자회견까지 기다려야
그럼에도 모든 문제를 거래로 풀되 여의치 않으면 ‘다른 대안’을 강구하겠다는 트럼프의 견해는 여전히 예측불가능성을 남긴다. 틸러슨 국무장관을 비롯해 미국 고위당국자들은 본격적인 군사작전까지는 아니더라도 모종의 행동을 취할 것임을 반복적으로 시사해왔기 때문이다. 백악관 NSC 관계자들을 접촉한 FT는 대안과 관련, 보다 효율적인 제재에서부터 말썽의 소지가 있는 ‘은밀한 행동(covert action)’까지 예시했다. ‘은밀한 행동’의 내용이 여전히 괄호 안에 놓여 있는 것이다. 데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아시아 보좌관은 FT에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것은 중국이 미국을 돕지 않거나, 이 문제(북핵)를 다루는데 미국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를 경고하면서 북한을 압박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북한과 1대1로 대응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느냐’는 추가 질문에 “중국이 없이 북한을 다루는 것은 전적으로 가능하다”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다른 모든 국제 현안을 제쳐놓고라도 북핵문제를 먼저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최우선적인 북핵 해결이라는 방향성과 협상을 통한 해결이라는 방법론은 또렷히 드러났다. 결국 보다 구체적인 윤곽은 7일 오후(현지시간)에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플로리다 휴양지 마라라고에서 이틀 동안의 미·중 정상회담 끝에 나올 공동기자회견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다. 중국은 미국과 북한이 공히 긴장완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미·중 정상간의 담판에서 어떤 결론을 도출할지는 미지수다. FT 인터뷰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