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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전쟁을 말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 한강, NYT 기고 잔잔한 파문

한반도, 오늘

by gino's 2017. 10. 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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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작가 최초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이 지난해 5월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 카페에서 열린 신작 소설 ‘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강이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석우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군 수뇌부들과 함께 느닷없이 ‘폭풍전의 고요(the calm before the storm)’를 언급한 추석연휴. 뉴욕타임스에 실린 소설가 한강의 글이 잠시 잊던 현실로 우리를 초대한다. 지난 몇달 동안 모두가 알고, 느껴왔으면서도 접어두었던 '불편한 현실'이 작가의 손 끝에서 다시 살아난 것이다. 한강은 뉴욕타임스 8일자(현지시간)에 ‘미국이 전쟁을 이야기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추석연휴를 맞는 한국인의 일상에 깊이 패인 전쟁에 대한 우려를 담아냈다. 부제가 웅변하듯이 “승리로 귀결되는 어떠한 전쟁 시나리오도 없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졌다. 작가가 연락이 닿지 않아 일단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가 영어로 옮긴 글을 발췌, 소개한다. 지면에는 ‘트럼프는 말하고, 서울은 몸서리친다(Trump Talks, Seoul Shudders)’라고 제목을 수정했다.

한강은 최근 두개의 두꺼운 현금꾸러미를 잃어버린 한 70대 노인을 다룬 기사로 글을 열었다. 청소년기에 겪은 한국전쟁의 트라우마 때문에 다시 전쟁이 날 것을 우려, 손주의 대학교육을 위해 조금씩 모아놓았던 적금을 모두 찾은 노인의 이야기다. 귀가 중 돈 보따리를 잃었다가 경찰이 찾아주면서 알려진 소식이었다. 

한강은 전쟁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은 그 노인과 달리 자신과 같은 전후세대에 휴전선 너머의 북한은 일종의 초현실적인 존재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지도와 뉴스만 뒤져봐도 환상이나 신기루가 아니라고 전했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으며, 평양이 자동차로 두시간 거리라는 현실감을 말했다. 초현실과 현실의 중간지대에 한국인은 살고 있다. 작가는 비무장지대(DMZ)가 마치 바다처럼 보인다면서, 우리가 반도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섬에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동료 작가의 말을 전했다. 60년 동안 특이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한국인들은 무관심과 긴장이라는 모순적인 감정에 어쩔수 없이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외국인(언론)들은 종종 세계가 북한을 두렵게 보는 반면에 한국인들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는 점을 신기하다는듯이 보도한다.

그렇다. 심지어 북한이 핵무기를 실험하고 미국이 북한을 선제 타격할 수있다는 보도가 나와도 한국의 학교와 병원, 서점, 꽃집, 극장, 카페는 평상시처럼 문을 연다. 어린 꼬마들은 노란색 버스에 올라 차창 밖으로 부모에게 손을 흔들고, 더 나이든 학생들은 머리감고 나온 듯 젖은 머리에 교복을 입고 버스에 오른다. 연인들은 꽃과 케익을 들고 카페로 달려간다. 한강은 그러나 이러한 고요는 한국인들이 실제로 (상황에)무관심하고, 전쟁의 공포를 극복해서가 아니라고 전한다. 수십년 동안 축적된 긴장과 공포가 우리 안에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다가도 단조로운 대화 중에 잠깐씩, 반짝 내보여왔을 뿐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지난 몇달 간 매일 되풀이되는 뉴스를 보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겉으론 고요하지만 정작 마음 속으로 두려움이 만연해 있음을 소개한 것이다. 사람들은 조금씩 집이나 직장 주변의 가장 가까운 대피시설이 어디인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추석을 앞두고는 과일박스 대신에 비상전등과 라디오, 비상약, 비스킷 등이 담긴 생존배낭을 선물했다. 기차역이나 공항에서는 전쟁 관련 뉴스가 나오는 TV 앞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표정은 굳어 있다. 한강은 그러면서 타인의 시선에선 이상해보이는 한국인의 평상심을 벗고 말한다. “우리는 걱정된다. 우리는 바로 휴전선 너머의 북한이 또다시 핵실험을 감행, 방사선이 누츨될 것이 두렵다. 갈수록 악화되는 말의 전쟁이 실제로 전쟁이 될 것이 두렵다. 아직 (살아남아) 맞고 싶은 날들이 있기에. 우리 옆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한반도 남쪽에 5000만명이 살고 있고, 그중 70만명의 유치원생이 있다. 우리에겐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소설가 한강이 지난 10월7일자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의 온라인 버전.

 

 

 

 

한강은 자신이 광주 민주화운동을 담은 소설 <소년이 온다>를 준비하면서 특정 시점에 특정 장소가 아닌, 인류가 왜 타인에게 잔인하게 피해를 끼치는 지 알고 싶어 2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 보스니아 내전과 아메라칸 인디언 학살 등을 조사한 바 있다고 전했다. 이를 통해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인간이하(Subhuman)’로 여길 때 잔혹한 행위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소개했다. 국적과 인종, 종교,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누군가를 인간이하로 여길 때 참극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이 타인의 고통을 진정하게 받아들여야 비로소 이러한 편견들을 씻어낼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한국전을 강대국들의 대리전으로 정의한 한강은 노근리 학살을 비롯해 미군이 한국전쟁 중에 저지른 만행을 소개했다. 피란민을 인간이하로 여겼기 때문에 벌어진 참극이라고 해석했다. 70년이 지난 지금, 자신은 매일 접하는 미국 발 뉴스들이 위험스럽게도 (전쟁 중 만행을 연상시키면서) 친숙하다고 전했다. “미국은 몇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우리는 이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매일 2만명의 한국인들이 죽을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전쟁은 미국에서 나는 게 아니라 한반도에서 난다”는 등의 뉴스가 노근리 학살 당시 미군이 한국인을 인간이하로 여겼던 것을 연상시킨다는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5일 백악관 스테이트 다이닝룸에서 군 수뇌부 부부동반 만찬을 들기에 앞서 기자들 앞에서 양손 엄지 손가락을 올려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느냐”고 반문한 뒤 “폭풍전의 고요(the calm before the storm)”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내뱉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5일 백악관 스테이트 다이닝룸에서 군 수뇌부 부부동반 만찬을 들기에 앞서 기자들 앞에서 양손 엄지 손가락을 올려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느냐”고 반문한 뒤 “폭풍전의 고요(the calm before the storm)”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내뱉었다. EPA연합뉴스 

한강은 한국 정부가 심각한 대치 상황에서 대화를 통한 평화로운 해법만을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해 “그들(한국인들)은 한가지 밖에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에 주목했다. 정확한 말이라는 생각에서다. 한국인은 실제로 한가지만 이해하고 있으며 그것은 평화적이지 않은 해법과 승리는 공허하고 터무니없으며 불가능한 슬로건이라는 사실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누구도 한반도에서 또다른 대리전이 일어나는 것을 절대적으로 원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강은 작년 겨울의 ‘촛불혁명’이야기로 글을 닫았다. 한국인들은 촛불이라는 평화적인 도구로 사회를 변화하기를 바랬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었다. (바로 외국 언론이 신기하게 보는 바)카페와 찾집, 병원, 학교 문을 계속 열어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 우연히 생명체로 태어난 약하고 순수하되, 존엄을 갖고 있는 수십만의 사람들이라면서 누가 그들에게 평화가 아닌 다른 시나리오를 말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한강의 기고문에 미국인들은 물론 많은 독자들이 SNS를 통해 다양한 의견 을 내놓고 있다. 공감하는 댓글이 있는 반면에, 전쟁이건 대화이건 한국인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식의 반응도 있었다. 한국이 추석 연휴에 잠겨 있는 동안에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의 잇달 돌출 발언으로 한반도를 우려하는 시각이 많아지고 있다. 한강의 기고문은 그러한 분위기에 돌을 던졌다. 한·미 양국의 어떠한 고위당국자들이나, 이른바 전문가들의 진단 보다 피부에 와 닿는 글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0081215011&code=970100#csidx4605e0a5bccaac08a53a941118ddf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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