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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없는 곳에 다리는 필요없다"

칼럼/워싱턴리포트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2. 1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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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리포트 김진호 특파원

옛소련 지도자 흐루시초프의 말을 빌리면 정치인은 어느 나라, 어느 체제에서건 똑같다. “그들은 강이 없는 곳에 다리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한다. 정치와 사기가 본질적으로 이란성 쌍둥이임을 꿰뚫어 본 명언이다. 사기의 궁극적인 목적과 수준이 다를 뿐이다. 사기도 종종 수요를 창출한다. ‘다리’가 건설된다는 기대감에 모여든 사람들을 상대로 먹거리를 파는 좌판이 깔릴 수도 있고, 숙박시설이 들어설 수도 있다. ‘다리’만 완공되면 살림살이가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감이 일시적인 활기를 가져올 수도 있다. 민심은 천심이라지만, 갈대처럼 흔들리기도 한다. 어느 순간 ‘강’의 존재 여부는 잊어버릴 수도 있다. 요즘처럼 먹고살기 바쁠 때는 더욱 그렇다.

더 오래 일해도 실질소득은 줄어간다. 학비가 올라 중산층 출신 대학생들도 학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다. 노임이 싼 외국으로 공장을 옮긴 기업들은 재미를 봤는지 모르지만 서민들의 삶은 팍팍해졌다. 강력사건이 빈발하고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이 밥그릇을 빼앗아가는 것만 같다.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08년 대선을 앞둔 미국 유권자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서민층의 허리가 더 휘고, 중산층이 흔들리는 세계화 시대, 각국 유권자들의 고민은 국화빵처럼 닮아간다. 나라별 사정에 따라 ‘앙꼬’가 달라질 뿐이다. 미국에선 국민 15%가 무보험자인 만큼 의료보험 개혁이 최대 이슈의 하나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에 대한 존경심이 흔들린다”든지,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적절히 섞은 ‘스마트 파워’를 구사해야 한다”든지 하는 따위의 똑똑한 주장은 워싱턴의 먹물들에게나 먹힐 이야기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동이 커지면서 지난해 중간선거의 최대 이슈였던 이라크 전쟁에 대한 관심조차 많이 식었다.

별다른 돈벌이 재주가 없는 사람들은 집 한칸의 가치에 올인했다. 한국에서는 ‘미친 집값’으로 잃은 자나, 번 자나 또 한판의 베팅을 기대하며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오르는 집값에 편승해보려던 미국인들의 ‘부자 아빠’ 꿈은 금이 가고 있다. 보통사람들의 정치열기가 뜨거웠던 한국사회도 변했다. 민주주의니, 통일이니, 부패청산이니, 사회정의니 하는 거대담론들이 유권자들의 관심을 더 이상 끌지 못한다. 안정된 일자리의 꿈이 엷어진 ‘외환위기 이후’ 세월을 보내면서 내력이 붙은 정치 불감증, 도덕 불감증 탓이다.

세계화 시대 비슷한 풍경 안에서 멍이 든 두 나라 국민이 1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보통사람들의 고민은 비슷해도 상황인식은 정반대인 것 같다. 자유무역의 신화와 닷컴 열풍, 부동산 거품 등을 통해 세계화의 양적 성장에 중독됐던 미국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자리와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지도자의 수준과 신뢰성에 대한 잣대도 까다로워졌다.

정치를 사기와 구분짓는 가장 굵직한 선은 선거가 아닌가 싶다. 특히 대통령중심제에서 정해진 임기 안에 결정을 번복하기는 어렵다. 번복은 5년 뒤에나 가능하다. 눈썰미가 날카롭지 않으면 집단사기를 당한다. ‘강’이 어디 있는지 말하지 않고 ‘다리’만 보라 하는 헛된 공약의 미망(迷妄)은 깨트려야 한다. 강이 없는 곳에 다리는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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