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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여적

‘악마의 개’

by gino's 2012. 1. 13.

[여적]‘악마의 개’
김진호 논설위원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첨병역할을 하는 미 해병대 병사들의 만행이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다. 미 해병대원 4명이 탈레반 시신 3구 위에 소변을 누는 39초의 동영상이 일으킨 파문이다. 탈레반 시신 한 구는 피로 범벅이 된 상태다. 그 위에 소변을 갈기면서 해병대 병사 한 명은 “좋은 하루를 보내라, 친구여”라는 농담까지 던졌다.

굳이 전쟁 중에 피살된 시신의 명예를 존중할 것을 규정한 제네바협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잔인한 행위다. 동영상이 촬영된 아프가니스탄 헬만드주는 2001년 11월 작전명 ‘지속적인 자유’로 미군의 침공이 시작된 곳이다. 최근 7개월 동안 미 해병대의 전사자가 많았던 격전지이기도 하다. 극도의 불안감이 극소수 해병 병사들을 일탈하게 했다고 봐야 할 것인가. 그보다는 전쟁 자체가 잘못된 명분, 그릇된 가치에서 시작한 탓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조지 부시 행정부가 시작한 2개의 테러와의 전쟁을 끝내고 있다. 이라크에선 미군 철수를 완료했고, 아프간에서도 2014년까지 완전 철수한다. 오바마 행정부는 그러나 부시가 심어놓은 일그러진 편견까지 벗지는 못했다. 지난 11일로 설치한 지 10년이 된 관타나모 해군기지의 테러 용의자 수용시설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잘못된 전쟁은 끝나가지만 잘못된 가치는 버리지 않고 있는 꼴이다.

관타나모에서건, 헬만드주의 전장에서건 무슬림 전사나 테러 용의자는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한다. 제네바협약을 비롯한 국제조약은 물론 미국 국내법의 지배도 통하지 않는다. 관타나모에는 지금도 171명이 기약없이 갇혀 있다. 9·11테러 이후 굳어진 미국의 국가폭력이 여전히 관행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미국에서 해병대는 갤럽의 2001~2002년 여론조사에서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해안경비대 등 미군의 5개 군대 가운데 가장 국민적 신망을 받는 군대로 잇달아 꼽혔다. 미 해병대는 명예·용기·책임을 모토로 한다. 한국 해병대가 빌려온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Once a Marine, Always a Marine)’이란 구호의 원조이기도 하다. 하지만 잘못된 전쟁에 동원돼 짐승같은 모습으로 변한 그들은 별명 그대로 ‘악마의 개(Devil Dog)’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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