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여적

영등포교도소의 딥스로트 

by gino's 2012. 1. 16.
김진호 논설위원

 

2005년 워터게이트 사건의 내부고발자(딥스로트)인 마크 펠트 전 미국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이 33년 만에 얼굴을 드러냈을 때 세상은 깜짝 놀랐다. 펠트는 1972년 워싱턴포스트의 젊은 기자 밥 우드워드에게 사건의 진상을 흘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불명예 퇴진토록 했다. 

국가안보를 빌미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게 펠트가 당시 닉슨 대통령이 지시한 민주당 전국위원회 도청 사건의 전모를 흘린 명분이었다. 하지만 다분히 개인적인 절망과 분노의 표현이기도 했다. 에드거 후버 FBI 국장의 후임을 노리다가 좌절하자 천기를 누설한 것이다. 펠트는 FBI가 자행한 9건의 불법 침입을 지시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결과는 창대했지만 ‘일그러진 영웅’인 셈이다. 

지난 14일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경찰청 인권센터) 앞에서 열린 고 박종철씨 25주기 기념식에서 처음 대중 앞에 모습을 보인 안유 전 영등포교도소 보안계장과 한재동 전 교도관은 조용한 민주화의 영웅들이다. 안씨는 1987년 1월 사건의 진상을 당시 영등포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이부영 민통련 사무처장에게 알렸고, 한씨는 이를 기록한 이씨의 서신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전달했다. 이씨의 설득으로 세상에 나온 안씨와 한씨는 당시 경찰 수뇌부들이 구속된 경찰관들을 찾아와 사건을 덮으려는 것을 보고 “대공수사부서가 국가에 왜곡된 충성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봉직하는 정부의 비리를 내부에서 고발하는 것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들의 행동은 우리에게 워터게이트 사건보다 큰 의미를 선사했다. 그해 6월 항쟁으로 이어지면서 역사의 물줄기를 돌렸다. 그럼에도 안씨는 한사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까닭을 “저 역시 군사독재정권의 주구, 하수인, 사냥개 소리를 듣던 가해집단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씨는 “군사독재의 잔재는 아직 청산되지 않았다”고 했다고 한다.

6월항쟁 도화선 한재동씨(경향신문 DB)

 

안씨와 한씨의 등장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지도, 언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도 않았다. 미국은 펠트의 행동에 그다지 감동하지 않지만 그 결과에는 감사한다. 미국식 영웅 만들기를 본받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우리 안의 영웅들에게 감사와 감동을 전하는 데 인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칼럼 > 여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빈세의 향방  (0) 2012.01.31
트윗은 계속돼야 한다  (0) 2012.01.29
“일본 외교부입니까”  (0) 2012.01.26
‘악마의 개’  (0) 2012.01.13
남영동의 조화(弔花)  (0) 2012.01.0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