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라도 과거를 무시할 수 없다. 역사를 왜곡, 부인하고 희생자들을 탓하는 장난을 일삼는 일본 내 일부의 기도는 역겨운(nauseating) 부정이다.”
10여년 세월을 거슬러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HR121)을 놓고 미국 하원에서 벌어졌던 열띤 논의 과정을 들여다보았다. 미국 의회와 행정부는 역할이 확연히 다르다. 의회가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행정부는 가치보다 현실정치의 국익을 놓지 않는다.
2007년 여름, 톰 랜토스 하원 외교위원장(민주·캘리포니아)의 말에는 강도 높은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즈음 위안부들의 자발적인 매춘행위였다고 주장한 일본 국회의원들의 워싱턴포스트 의견광고에 대해 “‘성폭행(rape)’이라는 단어의 뜻조차 모르는 사람들”이라며 “세계는 일본 정부가 전면적인 책임을 질 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질타했다. 현장에서 목도한 랜토스 위원장의 분노였다.
미국 하원 외교위 아·태소위원회 위원장으로 함께 위안부 결의안을 주도했던 에니 팔레오마배가는 2년 전 타계했다. 그의 비서실장이었던 리사 윌리엄스는 경향신문에 보내온 HR121 채택 10주년 기념 기고문에서 “랜토스 의원의 도움이 없었다면 HR121 통과가 불가능했다”고 회고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랜토스는 미국 상·하원에서 유일한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다. 의회 내 인권의 수호자였다. 공화당 의원들과 1983년 초당파 인권옹호 의원그룹(코커스)을 만들어 쿠웨이트와 이라크, 미얀마에서 벌어졌던 인권탄압을 고발하고, 규탄했다. 그가 암투병 끝에 2008년 사망하자 의회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법안 발의로 랜토스 코커스를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TLHRC)’로 제도화했다.
랜토스가 다시 소환되고 있다. 국회가 최근 통과시킨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이 계기다. 랜토스 위원회가 ‘표현의 자유’를 들어 이 법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진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13년 전 한국민의 울화를 잠시나마 풀어주었던 랜토스의 이름이 이번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한국 정부와 미국 의회 간 불협화음을 내는 데 쓰일지도 모른다. 일부 한국 언론은 ‘그럴 것’이라고 단정한다. “큰일 날지도 모른다”는 가정 위에 서 있다.
그러나 117대 연방의회는 아직 개원도 하지 않았다. 위원회가 논의한다고 위안부 결의안처럼 의회 차원의 행동이 잇따르는 것도 아니다. 설령 의회가 나선다고 해도 현실정치(Realpolik)를 다루는 행정부가 덩달아 나설 가능성은 더 적다. 위안부 결의안 통과 뒤에도 조지 부시 행정부와 아베 신조 일본 내각이 서로 얼굴을 붉히기는커녕 밀월관계를 유지한 것과 같은 이치다. 더구나 다음달 취임하는 미국 행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저잣거리의 흥정으로 전락시킨 동맹관계의 복원을 거듭 다짐해온 조 바이든 행정부다. 몇단계를 뛰어넘는 상상력으로 가정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한반도 현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정치’로 오인받기 십상이다.
랜토스 위원회는 세계인권선언의 대의를 바탕으로 한다. 이달만 해도 나이지리아 중부의 분쟁 및 학살, 남북 아메리카 원주민의 인권, 중국의 종교 자유, 아이티 인권, 러시아 인권 등을 놓고 청문회를 벌였다. 북한 인권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탈북민들이 북한을 탈출한 뒤 겪는 곤경과 북한 장마당에서 벌어지는 인신매매, 종교박해 등의 주제를 놓고 청문회를 벌여왔다. 2018년 6·12 싱가포르 북·미 회담 뒤에는 양국 간 협상에 인권이 포함돼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의회의 전통적 입장이다.
하지만 의회와 행정부가 구성하는 미국이 늘 숭고한 것은 아니다. 그 반대 경우가 더 많다. 가치와 국익이 부딪치면 선택지는 대부분 국익이었다.
미국이 1970년대 마오쩌둥의 중국과 데탕트를 한 것은 중국의 인권 수준이 흡족해서가 아니다. 미·중·소의 전략적 삼각관계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현실정치의 산물이었다. 박정희 군사정부를 비롯해 1970~1990년대 세계 곳곳의 독재정권을 지지했던 것은 지나간 냉전의 연대기로 치자. 미국은 여전히 봉건적 왕정체제하에서 인권탄압이 일상화된 사우디아라비아와 우방이다. 2년 전 자국 언론인을 잔인하게 살해했지만, 미국이 사우디와 관계를 단절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영국 런던에 8년째 갇혀 있는 줄리언 어산지는 어떤가. 미국 정치인, 외교관들의 e메일과 비밀전문을 공개한 그는 ‘표현의 자유’의 영웅으로 칭송받기는커녕 2010년부터 미국 사법당국의 추적을 받고 있다. 지난달 말 테헤란 거리에서 발생한 이란 핵과학자 암살의 배후로 지목되는 이스라엘은 ‘중동 민주주의의 횃불’(힐러리 클린턴)이다.
한반도 북쪽의 인권 역시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온갖 추잡한 방식으로 북한 ‘최고 존엄’을 희화한 대북전단과 인권은 생뚱맞은 조합이다. 집에 불이 나도 최고 존엄의 모습이 담긴 ‘1호 사진’부터 챙기는 북한의 관행은 보편적이지 않다. 미국이 겉과 달리 속으론 끊임없이 북한 체제를 전복하려 한다는 의혹도, 적어도 행정부 차원에선 개연성이 적어 보인다. 하지만 북한이 그러한 가치체계를 갖고 있고, 그렇게 의심하고 있는 건 바뀌지 않는다. 전단 살포가 생업이 된 듯한 일부의 일탈이 접경지역 주민들 안전을 위협하는 것 역시 현실이다.
물론, 아무리 현실적 필요를 들이대더라도 이번 개정안에 석연찮은 대목들이 녹아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2017년 4·27 판문점선언 2조 2항에서 서로 없애기로 합의한 것은 ‘군사분계선 일대’의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다. 공간 및 ‘전단’의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았다. 일각의 지적처럼 굳이 법이 없이도 전단 살포를 막을 방안도 있었다. 추진 일정도 의혹을 일으킨다. 청와대가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 뒤 입장문을 내놓은 것은 대북전단이 살포된 지 열흘이 지나서다. 지난 6월11일 입장문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고 우발적 군사충돌을 방지하기 위하여 남북 간 모든 합의를 계속 준수할 것”을 다짐하며 대북전단 살포 중단을 다짐했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의 담화(6월4일)와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6월5일) 등 북한의 집중비난에 쫓기듯 나왔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북측은 16일 개성공단 내 남북연락사무소를 끝내 폭파했다.
여당은 왜 연말에 이러한 법을 굳이 만들어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것일까. 한반도가 걸어온 한 해를 돌아보면 실마리가 잡힐지도 모른다. 2020년은 남북 모두 한반도 긴장 완화에 실패한 한 해였다. 올해 신년사를 대체한 조선노동당 중앙위 제7기 5차 전원회의(5중전회) 결정문에서 ‘정면돌파전’을 강조했던 북한은 ‘인민사수전’으로 날을 지새웠다. 인민사수전은 북한의 화보잡지 ‘조선’ 12월호가 한 해를 돌아보며 규정한 말이다. 코로나19와 잇단 자연재해 탓에 수세에 몰린 한 해였다.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부강, 자력번영하겠다”는 다짐은 지난여름 수해 복구를 위한 80일 전투로 대체됐다. 10월10일 당 창건 75돌 경축 열병식에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선보였지만, 연초부터 경고했던 ‘충격적인 실제 행동’은 없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당 창건 기념연설에서 기왕의 대북제재에 코로나19 방역, 대규모 수해 복구의 3중고에 시달린 한 해를 돌아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완성 연도였던 올해 경제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시인했다. 지난해 이맘때쯤만 해도 북한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운운하며 으름장을 놓았었다.
올해 신년사에서 “한반도 문제의 국제적 해결에 앞서 남과 북 사이의 협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진지하게 함께 논의하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은 공염불이 됐다. 상반기까지 남북의 간접 접촉은 남측 민간의 대북전단 살포와 북측 당국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가 유일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반전은 9월에 왔다. 서해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 사건이 발생했지만, 그전에 남북 정상이 교환한 친서에서 공감이 오갔다.
문 대통령은 9월8일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수차례 태풍피해로 인한 북녘의 어려움 극복을 기원했고, 김 위원장은 ‘끔찍한 올해의 이 시간들이 속히 흘러가고 좋은 일들이 차례로 기다릴 그런 날들’을 기약했다. 11월3일 남북이 모두 주목했던 미국 대선이 끝났다. 미·중 갈등은 바이든 행정부에도 방식을 달리할 뿐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새해 한반도 정세에 새로 닥쳐올 변화의 앞날을 예측하기 힘든 시간이다. 정부·여당이 연내 밀어붙인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은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결정으로 읽힌다.
다시 랜토스로 돌아가보면,
그는 교과서적인 인권의 가치만 좇은 정치인이 아니었다. 2005년 1월 평양을 방문해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지지했다. “오랫동안 북한에 관심을 가져왔다. 미·북관계 정상화를 강력하게 희망한다”(2007년 7월 VOA 인터뷰)고도 했다. 첫 방북길에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등을 만나 ‘리비아 모델(선핵포기, 대미수교)’을 권했다가 북한의 강한 거부감을 확인했다. 의회 직원으로 방북을 수행했던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전 랜토스 의원과 김 부상의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리비아식 해법을 공개 반박했다.
랜토스 청문회가 다음달 열린다고 해도 같은 달 예정된 다른 두 행사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1월20일 바이든 행정부의 취임식이 있고, 북한의 8차 당대회는 그 전에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은 북한이 당대회에서 대남·대미 기조를 내놓기 전 선제적으로 건넨 선물 또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할 수 있다. 논란을 줄일 여지가 있었지만, 이제 와 되물릴 수도 없다. 법을 고쳐 쓰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게 유일한 선택지다. 자충수가 될 수도, 마중물이 될 수도 있다. 그 책임은 온전히 정부·여당이 걸머져야 한다. 과연 남북관계의 물꼬를 열고, 그리하여 위협 감소 역할을 했는지, 일정 시점 뒤 결산할 일이다. 맞다. 랜토스는 나치와 싸운 투사였다. 하지만 평화공존은 고민해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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