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읽기'에 해당되는 글 171건

  1. 2021.10.07 동아시아 군비경쟁,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연 '오커스(AUKUS)' (1)
  2. 2021.08.26 아프간은 한국에 무엇이었나
  3. 2021.08.02 도쿄 올림픽 랩소디(狂詩曲) (1)
  4. 2021.07.19 쿠바가 '미국의 품'에 안길 거라고? 아직은 아닌 것 같다...
  5. 2021.06.25 "러시아는 강대국", 미-러 관계 리셋(reset)한 바이든의 한마디 (1)
  6. 2021.06.14 네타냐후의 빛과 그림자, 얻은 것은 부강, 잃은 것은 통합, 남긴 것은 혼란 (2)
  7. 2021.05.14 '메르켈의 동방정책', 벽에 부딪히는가
  8. 2021.05.03 바이든 시대 더욱 악화된 미-러 관계, '거대한 체스판'을 누가 흔드는가 (1)
  9. 2021.04.17 '미얀마 민주화'에 보이는 우리의 관심은 지속가능한가 (2)
  10. 2021.03.17 미국 총기참극, 버지니아텍 조승희는 왜...
  11. 2021.02.26 "Hello 유럽, 미국이 돌아왔다!" 그런데 '같은 자리'가 아니었다...
  12. 2021.02.05 미얀마의 총성 없는 쿠데타, U턴하는 '규율 민주주의'
  13. 2021.01.22 '링컨의 길' 가겠다고 선언한 바이든, '예외'가 될 수있을까
  14. 2021.01.08 유럽이 '바이든의 시간'을 기다리지 않은 까닭
  15. 2020.11.29 바이든 시대에도 모든 길은 '베이징'을 향한다
  16. 2020.11.02 바이든이 꿈꾸는 미국은 어떤 나라일까
  17. 2020.06.08 트럼프가 소환한 1968년, '아메리칸 스피릿'은 되살아날까
  18. 2020.05.25 코로나 이후 3, 조 바이든은 세계의 희망인가?
  19. 2020.05.08 코로나 이후2, '중국 vs 세계' 그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20. 2020.04.25 코로나 이후1, 최상의 세월과 최악의 세월이 교차한다
  21. 2020.04.10 코로나19 이후 세계? 쓰러진 사람부터 부축하는 게 먼저다 (2)
  22. 2020.03.27 시진핑이 '구정(九鼎)'의 무게를 묻기 시작했다... 펜데믹 이후 미-중관계 (3)
  23. 2020.02.29 팬데믹 2막, 무엇이 중요한가 (1)
  24. 2020.02.01 '박쥐 바이러스'보다 치명적인 '인간 바이러스'
  25. 2019.12.16 세계의 중국 공포(China Scare), 그 실체와 '굴절' (3)
  26. 2019.12.02 홍콩 시위가 일깨운, 매우 불편한 진실
  27. 2019.11.18 세계화 2막의 시작, ‘한방울의 물’이 나라를 흔든다.
  28. 2019.10.04 그레타 툰베리의 '찌푸린 표정'에서 무엇을 읽을 것인가
  29. 2019.09.30 트럼프 '탄핵정국'에 엘리자베스 워런이 주목받는 까닭
  30. 2019.08.25 헤로니모(Jeronimo), 그 이후

역사는 반복된다. 주먹에 관한 한 자신 있는 거구의 헤비급 권투선수가 있다고 치자. 갈수록 주먹이 세지는 동급의 상대가 있지만,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왔다. 어느 순간, 상대의 주먹이 만만치 않음을 발견한다. 그렇다고 챔피언 자리를 내줄 수 없는 법. 어르고 달래보지만 당최 여의치 않으면, 모종의 결단을 해야 한다. 거인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까.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에서 미국의 선택은 ‘주먹’을 한개 더 늘리는 것이었다.

1957년 10월4일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발사기지1에서 소련이 스푸트니크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그때까지 록히드 U-2 정찰기를 소련 상공에 띄워 동태를 파악해왔던 미국은 충격에 빠진다. 소련의 인공위성이 미국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상상에 일반 국민들에까지 공포가 확산됐다. 소련은 미국이 1954년 9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취역시킨 핵추진 잠수함(핵잠)마저 4년 뒤 자체 개발에 성공했다. 미국과 영국이 냉전이 한창이던 1958년 상호방위조약을 맺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소련의 위협이었다. 조약의 핵심은 영국이 개발하려 했던 핵잠 기술을 미국이 공유한 것이었다. 향후 10년간 잠수함 연료용 농축우라늄을 영국에 제공키로도 약속했다. 미국이 ‘주먹’을 늘리려고 할 때 달려가는 나라는 주로 앵글로 색슨 국가들이었다. 

하와이 진주만에 정박중인 미국 해군의 로스앤젤레스급 공격용 핵잠함 USS 키 웨스트호. 호주가 오커스 출범에 따라 미국과 영국의 기술과 농축우라늄 연료를 제공받아 핵잠을 취역시키면, 핵무기 보유국이 아닌 첫 핵잠 보유국이 된다. 미해군

 

미·영은 핵무기 개발에서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미·영 정상은 1943년 8월 ‘퀘벡합의’를 통해 핵무기를 개발하던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와 영국의 튜브 알로이 프로젝트를 통합했고, 이후 핵기술 협력 대상으로 캐나다를 포함시켰다. 지난달 15일 미국·영국·호주가 맺은 3개국 안보협력체(AUKUS·오커스)의 핵심 역시 핵잠 기술의 공유이다. 소련의 위협이 커지던 냉전 시기 다급해진 미국이 대서양을 건넜다면, 이번엔 태평양을 건너왔다. 중국의 ‘주먹’이 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꼭 세지 않아도 된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인식’만으로도 움직이는 게 안보전략이며, 강대국 정치다. 

동아시아 분단국에서 추석 이후 종전선언을 하느니, 마느니 왈가왈부하는 사이 국제정세는 또 하나의 변곡점을 지났다. 농축우라늄을 원료로 사용하는 핵잠은 두 가지 측면에서 국가 간 힘의 균형을 일거에 흔들 수 있는 전략무기이다. 우선 연료의 종류에 따라 전략적 함의가 증폭된다. 고농축우라늄(HEU)은 핵실험이 필요 없이 곧바로 핵탄두로 만들 수 있다. 호주가 핵잠 기술과 함께 HEU를 제공받는다면, 아시아에서 중국과 인도, 북한에 이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핵잠은 전략폭격기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함께 전략핵무기 삼총사의 하나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투발수단이 될 수도 있다.

핵잠은 현재 미국과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과 인도만 보유하고 있다. 브라질은 저농축우라늄(LEW)을 연료로 하는 핵잠을 개발중이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운데)가 지난 9월15일 호주 의회 블루룸의 연단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발언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오른쪽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브리핑룸에 서 있다. 3개국 정상은 화상으로 연 공동기자회견에서 오커스(AUKUS)의 출범을 선언했다. EPA연합뉴스

 

지난달 15일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화상 공동회견에서 발표한 공동성명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의 수호 의지가 강하게 반영돼 있다. 성명은 “(핵 관련) 안전조항과 투명성, 검증, 비확산과 핵안전, 핵물질 보안 및 기술의 정확성 등에 대해 높은 기준을 준수할 것”을 다짐했다. 농축우라늄과 핵잠 기술을 공유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많은 고려와 검토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성명이 향후 18개월 동안 호·영·미 3국이 공동연구를 진행한다고 명시한 이유다. 공동연구에는 미·영이 호주에 제공할 핵잠의 유형, 핵연료 종류 결정, 핵물질 취급 및 보관 문제, 잠수함의 수리·정비·정박시설 등에 관한 숱한 논의가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이병철 경남대 교수). 모리슨 총리는 핵잠 기지로 애들레이드를 지목하면서 “호주가 획득하려는 것은 핵추진 잠수함이지 핵무기 장착 잠수함이 아니다”라고 명토 박았다. 존슨 총리와 바이든 대통령 역시 오커스가 비확산 체제에 역행하는 게 아님을 되풀이 강조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다. 3개국 정상이 “정말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하는 것이야말로 “그렇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사실이 그렇고, 현실이 그렇다. 오커스로 호주가 농축 핵연료와 핵기술을 확보하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바로 그 때문에 미국이 남중국해에 전개된 중국 해군을 견제하기 위한 ‘핵주먹’을 배치했다는 게 객관적 현실이다. 

미국이 1954년 세계 최초로 취역시킨 핵잠함 USS Nautilus호(SSN-571)

 

3개국 정상은 성명과 뒤이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중국’을 단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명과 발언에 동원된 언어는 우회적이되 또렷하게 중국의 위협을 특정하고 있다. 성명에서 ‘해양 민주주의(maritime democracies) 국가’로 지칭한 호·영·미 3국이 ‘차세대 파트너십’을 만들어야 하는 까닭은 ‘21세기의 도전’ 때문이라고 명시했다. ‘도전’ 또는 ‘위협’이라는 말로 중국을 대체했을 뿐이다. 

바이든은 “오커스가 지역의 현재 전략적 환경과 그 변화에 모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OIP)’을 강조했다. FOIP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수없이 강조해온 전략적 목표이다. 오커스는 미국이 지역 안보 문제를 지역 국가에 맡기려는 ‘역외균형 전략’에도 들어맞는다. 미국·일본·호주·인도의 쿼드(QUAD)가 느슨한 대중국 포위체라면, 오커스는 호주를 내세워 중국의 해양 진출에 보다 직접적인 쐐기를 박으려는 포석이다. 당연히 가장 강하게 반응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심각하게 해치고 군비경쟁을 심화시키는 일이자, 비확산 노력을 해치는 일”이라며 반발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16일 정례브리핑에서 “미국과 영국이 핵 수출을 지정학적 게임의 도구로 삼은 것은 이중잣대인 동시에 지극히 무책임한 처사”라고 말했다. 러시아 역시 “오커스는 국제 비확산 체제에 심대한 도전”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세르게이 리야코프 러시아 외교부 차관은 “러시아는 호주가 18개월의 협의를 거쳐 수년 내 핵잠 5대 강국이 되는 것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오커스의 출범은 남중국해에 해군력을 투사하고 있는 중국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7월1일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중국 군부 지휘관들. 하얀색 제복이 해군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오커스 출범은 인도·태평양 지역에 군비경쟁 가속화라는 후폭풍을 예고한다. 단순히 전함 몇개를 추가 배치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군비경쟁의 근본적인 구도를 바꿔놓았다. 미국은 물론 일본에 비해서도 해군력이 떨어지는 중국은 몇년 전부터 남중국해 해상 진출을 확대하면서 원시적인 ‘전함 부딪치기’ 전술로 미 해군에 맞서왔다. 이제는 바닷속 호주의 핵잠까지 대처해야 한다. 주먹은 주먹을 부른다. 중국은 기존의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을 수정, 해상 핵전력의 획기적인 강화에 나설 것임을 예고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2019년 8월 미·러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을 파기한 데 이어 바이든 행정부가 오커스를 출범시킴에 따라 중국의 방위전략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 국방부가 낡은 잠수함을 대체하려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2007년이다. 2009년 호주 국방백서는 핵잠의 개발을 배제했었다. 2016년에는 프랑스 국영 방산업체 나발그룹과 500억달러 규모의 어택 클래스 잠수함 도입계약을 체결했고, 2019년 금액은 900억달러로 늘었다. 호주는 오커스 출범으로 나발그룹과의 계약을 파기하기까지 24억달러의 예산을 이미 투입했다. 그러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정부가 오커스 출범을 두고 “등에 칼을 꽂는 행위”라고 통분한 것은 단순히 경제적 손해 때문이 아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9월 20일 엘리제궁에서 열린 행사장에서 연설하면서 무언가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로이터연합뉴스

 

오커스 출범은 프랑스가 앵글로 색슨 국가들로부터 당한 두 번째 배신이다. 프랑스는 1958년 미·영 방위조약에 트라우마를 안고 있었다. 냉전 시기, 영국이 미국의 핵기술과 핵연료를 지원받는 동안 프랑스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핵잠을 자체 개발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2017년 집권 이후 10만명 규모의 유럽신속대응군을 창설, 미국의 망토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신념을 펼쳐온 마크롱 정부다. 오커스 출범은 때마침 앙겔라 메르켈의 16년 집권을 끝내고 사민당(SPD) 주도 내각으로 전환하게 된 독일과 함께 유럽연합(EU)이 ‘제3의 길’을 걷도록 동기부여를 한 셈이다. 호주가 핵잠과 관련해 먼저 협의한 나라는 영국이었다. 영국이 EU를 떠나지 않았다면, 프랑스가 영국과 호주의 핵잠 논의를 미리 알게 됐을 터다.

영·불 경쟁관계에서 프랑스의 마이너스는 영국의 플러스다. 올 1월 공식적으로 EU를 떠나면서 존슨 정부가 영국의 세계 관여를 넓히겠다며 표방한 ‘글로벌 브리튼(Global Britain)’ 정책은 강력한 추동력을 얻게 됐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사전 브리핑에서 오커스 출범을 영국의 인·태 관여 확대를 위한 ‘선수금(down payment)’이라고 표현했다. 남중국해 해상 영유권 분쟁은 이제 아세안 국가들의 손을 떠나 ‘오커스 대 중국’의 구도로 바뀌게 된 것이다. 

한국이 독자 개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지난 9월 15일 도산안창호함(3000톤급)에서 수중 발사되고 있다. SLBM의 발사 성공으로 한국은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에 이어 7번째 국가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방과학연구소 종합시험장에서 발사 장면을 참관했다. 국방부

미·중의 긴밀한 협력이 성공조건의 하나인 한반도 평화방정식 역시 더욱 꼬이게 됐다. 남북 화해·협력은커녕 군비경쟁을 더욱 촉진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달 20일 오커스에 대해 “아·태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파괴하고 연쇄적인 핵군비경쟁을 유발시키는 매우 재미없고 위험천만한 행위”라고 지탄했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오커스 출범은 지난 5월 한·미 미사일지침 종료에 이은 미국의 잇단 대중 군사적 압박조치이다. 미국은 한국이 잠재적으로 중국 전역을 겨냥할 미사일 개발의 여지를 열어놓음으로써 대중 압박 카드를 챙겼었다. 

군사기술 측면에서 핵잠 개발은 미사일 주권 확보와 함께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양대 목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핵을 무기로 사용하지 않고 원료로 사용하는 것은 국제협정에 위반되지 않는다”면서 핵잠 개발을 희망해왔다. SLBM은 공교롭게 오커스가 출범한 지난 9월15일 독자 기술로 첫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하지만 핵잠은 핵연료의 농축을 허용하지 않는 한·미 원자력협정 탓에 개발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 동맹이라고 같은 동맹이 아니다. 미국 조야는 핵잠 기술을 내줘도 무방한 호주와 한국을 똑같은 신뢰의 잣대로 평가하지 않는다. 

국제정세는 백악관 주인이 트럼프에서 바이든으로 바뀌어도 한반도 평화와 반대방향으로만 움직인다. 갈수록 속도도 빨라진다.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dkfg 2021.10.13 1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석 이후 종전선언을 하느니, 마느니 왈가왈부 하는 사이 동아시아 국제정세는 또 하나의 변곡점을 지났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건 남과 북이 마음을 합치면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은 어떨지 몰라도 한반도와 세계를 함께 보아야 하는 입장에서 미국-영국-호주 3각 핵잠수함 동맹은 '탈냉전 이후' 또는 '신냉전 초입'에 발생한 대형사건이었다.
    한반도와 세계를 보려면 다초점 렌즈가 필요하다. 근시와 원시를 동시에 담을 수 있는 렌즈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if not, 근시 또는 원시가 될 뿐이다.
    신문 지면에 일반 독자들을 상대로 글쓰기를 하면서 부딪히는 어려움의 하나는 복잡다단한 군사적, 전략적 함의를 어떻게 쉽게 풀어 쓰는 것이냐는 점인 것 같다. 참으로 재미 없고, 복잡한 뉴스 스토리를 소개한다. 나름대로 독자들의 저작을 쉽게 만들려고 노력은 했지만...(PB intro)

지난 4월14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 2층의 트리티룸에 들어섰다. 아프가니스탄 철군 계획을 공식 발표하는 자리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뜸 그곳이 2001년 10월7일 조지 부시 대통령이 미군의 아프간 침공 사실을 발표한 자리임을 상기시켰다. 9·11테러로 2977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 사실도 되새겼다. 회견 전 부시 전 대통령과 통화했음을 공개하면서 아프간에서 복무한 미국 청년들의 노고에 감사한다는 점에서 완벽한 의견일치를 보였다고 소개했다.

바이든은 이 자리에서 올해 9·11테러 20주년 전까지 미군이 전원 아프간에서 떠날 것이라고 공표하면서 개인적 소회를 감추지 않았다. 그만큼 9·11테러와 아프간 침공이 미국민들에게 주는 감상이 유별났기 때문일 게다. 자신이 부통령이 된 이후 지금까지 12년 동안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사망한 미군 장병의 정확한 숫자를 적은 카드를 소지해왔다면서, 이날 현재 아프간에서만 2448명이 숨지고 2만722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그가 앞세운 장남 보가 이라크에 참전했던 사실도 들춰내면서 발표 뒤 아프간에서 숨진 미군 장병들이 묻힌 알링턴 국립묘지 60구역을 찾을 것이라고도 소개했다. 

'농부의 나라', 아프가니스탄이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탈레반은 예상보다 훨씬 이른 지난 15일 카불을 접수했다. 아프간 정부군의 어떠한 저항도 받지 않은, 무혈입성이었다. “책임 있고 신중하며 안전한 철수”를 다짐한 바이든의 약속은 공언이 됐다. 카불 공항은 미국인은 물론, 탈출하기 위해 몰려든 아프간인들로 아수라장이 됐다. 바이든은 지난 24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미군이 지난달 말 이후 7만5900명을 탈출시켰다면서, 이달 31일 탈출 지원이 종료될 것이라고 확인했다. 그러나 현재의 탈출 속도라면 그때까지 최소 2만5000명의 미군 조력 아프간인들이 남겨질 것(뉴욕타임스)인 만큼 미군 6000여명의 카불 공항 철수 시한은 조정될 수 있다.

 

아프간 침공의 주역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지난 23일 88세의 나이로 알링턴묘지에 안장됐다. 아프간에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겠다고 다짐했던 조지 부시 대통령(75)과 딕 체니 부통령(왼쪽부터)이 재직시절 환담을 나누고 있다. 펜타곤(DOD)

바이든이 올해 내놓은 아프간 관련 연설과 회견문을 읽으며, 이른바 ‘주요 7개국(G7)급’으로 국제적 지위가 격상됐다는 한국이 겹쳐 보였다. 한국 역시 오랜 세월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아프간에 쏟아부은 국가이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아프간 침공 이후 각각 2개의 공화당 및 민주당 행정부가 전쟁을 끌어왔다면서 5번째 행정부에 짐을 넘기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조지 부시(공화)-버락 오바마(민주)-도널드 트럼프(공화)-바이든(민주) 행정부를 언급한 것이다. 바이든은 특정 행정부를 탓하는 대신, 온전히 미국의 실패임을 인정했다. 

한국 역시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등 3개의 민주당 정부와 2개의 보수정부가 관여한 국제이슈였다. 그러나 한·미의 공통점은 딱 여기까지다. 

바이든은 취임 이후 지난 16일까지 모두 6차례에 걸쳐 국민을 상대로 아프간 정책을 밝혔다. 의회 지도부에 보낸 서한을 공개(6월8일)했고,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과의 백악관 정상회담 뒤 공동기자회견(6월25일), 철군 진행 상황 관련 25분간 언론 브리핑(7월8일)을 했다. 아프간 상황이 악화되자 지난 14일 성명을 발표하고 16일 다시 브리핑룸에 섰다. 바이든의 연설, 성명, 회견문에는 일관되게 아프간에 참전한 군인과 가족들에 대한 위로, 동맹 및 협력국가에 대한 감사, 소요 예산, 향후 계획 등이 포함됐다.

미국은 30만명에 달하는 아프간 군경 봉급 지원과 무기 지원 등에 8800억달러를, 민간 지원에 3600억달러를 각각 지출했다. 총 1조2400억달러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올 회계연도(FY 2022)에 아프간군 펀드 지원 명목으로 33억달러의 예산을 요청한 걸 보면 한국 역시 최근까지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2016년 11월 한·미 안보협의회(SCM)에서 한국의 아프간 군경 역량 강화 지원 약속(2억5500만달러)에 사의를 표한 바 있다. 

2012년 5월24일 인천 국제평화지원단에서 열린 오쉬노부대 제5진 환송식. 아프간 지방재건팀(PRT)을 방호하기 위해 파견되는 장병들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지난 18일 대의회 연설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6일 방문 중이던 브장송에서 대국민 특별연설을 내놓았다. 바이든의 회견문안에 담겼던 요소들이 포함됐다. 영국군 역시 한국군 오쉬노부대가 철수한 2014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들과 함께 전투임무를 종료했다. 존슨 총리는 9·11테러에서 영국인 67명이 숨졌음을 상기시키면서 나토조약 5조(공동방위)에 따라 참전했음을 강조했다. 최근 영국인 306명과 아프간인 2052명을 탈출시키는 데 들어간 예산을 보고하고 추가 구출 계획을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2008년 아프간 우즈빈 계곡 전투에서 프랑스군 및 현지통역 10명이 죽고, 21명이 다친 사건을 되돌아보며 “프랑스는 아프간인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참전을 결정한 자크 시라크(우파)와 니콜라 사르코지(우파), 프랑수아 올랑드(좌파) 정부의 노력을 회고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카불 함락 이후 여러 차례 기자들과 만나 “극도로 비통하고 극적이며 끔찍하다. 아프간의 인도적 비극에 독일도 책임을 공유한다”고 말했다. 아프간에서 숨진 독일군 59명의 희생을 새삼 애도하고 참전 군인 및 가족들의 고통과 함께했다. 그 역시 독일군 16만명이 참전해 세금 125억유로(148억달러)를 지출했다고 보고했다. 2015년 시리아, 이라크 난민 100만명에 국경을 열었던 것을 언급하며 아프간 난민 구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도 약속했다. 다음달 정계은퇴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거침이 없었다. 미국의 실패와 관련, “미국 국내정치도 부분적인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는 이달 중순 아프간 상황이 긴박해지면서 주로 국민과 공관원들의 철수 상황을 시시각각 보고하는 데 그쳤다. 천재지변 뒤 긴급구출 현황 발표를 방불케 했다. 청와대와 외교부, 국방부 사이트를 아무리 뒤져봐도 아프간 20년에 대한 평가와 국민 부담에 관한 입장은 찾을 수 없었다. 일본 정부 역시 ‘한국 수준’의 발표에 그쳤다. 그나마 스가 요시히데 총리와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에 직접 나와 설명하는 성의를 보였다. 

이라크 침공은 명분 없는 전쟁이었기에 한국군 파병 논의 과정에서 국민적 저항이 거셌다. 반면에 어떤 나라도 미국의 아프간 침공을 반대하지 않았다. 전투부대가 아닌 지방재건팀의 자체 방호병력으로 오쉬노 부대를 파병할 때는 저항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했다. 

탈레반의 카불 장악 이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24일)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18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16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26일·왼쪽부터)가 각각 아프간 사태와 관련해 발언하는 장면이다. 마크롱 대통령의 사진은 프랑스 엘리제궁이 공개한 대국민 연설 동영상을 캡처했다. 로이터·신화연합뉴스·엘리제궁

 

시계를 돌려 9·11테러 당시로 돌아가보면, 모두가 미국인임을 자임했다. 북한 외무성은 다음날 “매우 비극적인 사건”이었다면서 테러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두 달 뒤 ‘테러자금 조달 억제에 관한 국제협약’과 ‘인질억류 방지에 관한 국제협약’에 가입하겠다고 공언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링거를 꽂은 채 알카에다를 비난하던 장면이 새롭다. 미국의 숙적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깡패국가’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까지 나서 테러를 비난하고 미국에 지원을 제안했다. 한국의 아프간 재건 지원 역시 지극히 명분이 분명한 결정이었다는 말이다.

한국군은 2001년 12월 해군과 공군의 수송지원단이 각각 해성부대(823명)와 청마부대(446명)를 필두로 2014년 6월6일 오쉬노부대원 67명이 철수할 때까지 5210명이 참가했다(국방부 홈페이지). 가장 큰 규모는 2010년 7월부터 4년 가까이 아프간 파르완주에서 한 팀으로 활동한 지방재건팀(PRT)·오쉬노부대로 1745명이 참가했다. 다산부대 소속 윤장호 하사가 2007년 바그람기지에서 탈레반의 폭탄테러로 전사했다. 

지난 17일 ‘외교부’를 인용한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주로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한 아프간 지원액은 3000억원이 안 되는 2억7600만달러다. 파병비용을 제외한 수치다. 정부 당국자는 “군경 봉급만으로 이명박 정부 5억달러, 박근혜 정부 3억달러를 지출했고, 현 정부도 지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외교부 대변인실에 관련 질의를 던졌지만, “아프간인 후송작전으로 바쁘다”는 이유로 25일 현재 회신이 없다. 한국의 지출이 1조원을 훨씬 상회할 것이라는 추산만 가능하다. 

9·11테러와 아프간 침공은 한국에도 남의 일이 아니었다. 정도 차이가 있을 뿐 미·영·불·독 국민에만 각별한 사건도 아니었다. 수많은 국민을 동원하고,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였으면 마땅히 국가가 나서 총평과 함께 아퀴를 지어야 한다. 그 교훈을 찾아가는 작업에 착수하는 건 물론이다. 그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고, 그런 나라를 세계는 주권재민의 원칙이 살아 있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한다. 20년이다. 그새 로힝야 난민과 홍콩 및 미얀마 인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다. 예멘 난민들의 제주 상륙에 이어 이번에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의 입국에도 큰 저항이 없다. 국민은 세계시민으로 변모하고 있지만, 정부는 제자리다. 특히 기회 있을 때마다 글로벌 역할을 강조해온 외교부의 수준이 실망스럽다. 

아프간은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493달러(세계 177위·2018년 국제통화기금 추정치)로 세계 최빈국의 하나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엄청난 재원을 쏟아부어 경제, 사회 발전에 투자한 결과다. 한반도의 3배가 넘는 국토에 추정가치 1조달러의 광물자원이 있지만 노동력의 40%가 땅에 매달리는 가난한 농업국가다. 국가경제의 16%가 아편 재배 및 판매에 의존한다. 지난 세기 영국의 점령과 소련 침공(1979~1989년)으로 국가적 통합성을 상실했다. 3년 내전 뒤 탈레반이 불완전한 지배를 하고 있던 차에 2001년 다시 미국의 침공을 받아 더 복잡해졌다. 

탈레반의 전국 장악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도 미지수이다. 중국 변수를 포함한 아프간의 미래가 다각도로 조명되지만, 알카에다의 시대가 끝난 건 분명하다. 아프간은 다시 중앙아시아의 ‘잊힌 나라’로 돌아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 펜타곤 수장으로 전쟁을 설계한 도널드 럼즈펠드는 미수의 나이로 지난 23일 알링턴 묘지에 묻혔다. 조지 부시(75)와 딕 체니(80)는 절절히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애도문을 발표했다. 아프간 20년, 한 시대가 온전히 저물었다.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올림픽은 계속돼야 한다(The Games must go on)”고?
지난해 1월20일 요코하마에서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탑승한 80대 홍콩 노인이 닷새 만에 병원을 찾아갈 때만 해도 큰 주목을 받지 않았다. 배가 홍콩에 정박한 뒤 몸상태가 좋지 않았던 그는 병원을 찾았고, 2월1일 코로나19 감염 사실이 확인됐다. 불행의 전조였다. 영국 선적 크루즈선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거대한 배양접시가 됐다. 사흘 뒤 승객 10명이 확진을 받자 일본 영해에 있던 배는 요코하마항에 선상 격리됐다. 코로나19가 미증유의 대확산으로 급속하게 진행되던 시기였다.

3월16일까지 712명의 각국 승객들이 확진을 받자 일본 정부가 머뭇거리는 사이 각국 정부가 나서 자국 승객을 본국으로 실어날랐다. 확진자 중 14명이 숨졌다. 도쿄 2020 하계올림픽 개최에 우려가 높아지자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3월2일 성명을 내고 올림픽은 예정대로 열린다고 밝혔다. 아베 신조 내각의 정치적 고려가 듬뿍 담긴 강행안이었다. 하지만 캐나다와 호주가 불참을 선언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3월24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도쿄올림픽조직위는 결국 대회를 1년 연기했다. “올림픽이 (코로나19 탓에)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세계에 희망의 횃불이 될 수 있다”면서 올림픽 성화가 ‘터널의 끝’에 보이는 빛이 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지난 23일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개막한 ‘2020 하계올림픽’은 여전히 불안한 일정을 이어가고 있다. 평화 시 사상 처음 연기된 도쿄 올림픽이 사상 처음 중단될 가능성이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26일 도쿄 오다이바 해양공원에서 열린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경기) 경기를 마친 선수들이 무더위에 지쳐 쓰러지거나 구토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쿄 올림픽을 보는 세계의 시선은 복잡하다. 프린세스 다이아몬드호 사태와 올림픽 연기, 모리 요시로 도쿄올림픽조직위원장의 불명예 퇴진을 필두로 한 일련의 조직위 관계자들의 사퇴 소동, 당초 예상을 두 배, 세 배 초과한 개최비용(시사주간 타임은 200억달러 이상으로 추산했다) 등 개막 전부터 이례적인 사건이 유난히 많았다. 여성 비하 발언(모리 위원장)과 유대인 학살 희화화(개·폐회식 예술감독 고바야시 겐타로), 학창 시절 장애 친구 학대(개회식 작곡가 오야마다 게이고), 여성 연예인 외모 비하(개·폐회식 총책임자 사사키 히로시) 등 개막 전날까지 이어진 책임자들의 사퇴는 일본 사회 일각의 이면을 가감없이 노출시켰다. 평화와 화합, 연대의 올림픽 정신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준비한 꼴이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대목이 많다. 오히려 코로나19를 거둬내야 올림픽 정신이 직면한 위기를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프린세스 다이아몬드호 사태는 코로나19의 창궐 초기에 발생한 데다 도쿄 올림픽 연기와 직결되면서 관심을 끌었을 뿐이다. 비슷한 시기인 지난해 3월 호주 시드니에 정박했던 루비 프린세스호에선 852명이 감염돼 이 중 28명이 사망했다. 위키페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선내 코로나19 감염이 발생한 크루즈선만 44척이다.

어쨌든 선수들이 오랫동안 연마한 실력을 보는 기쁨이 무더위와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작은 행복인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작은 행복을 위해 일본 국민과 각국 참가 선수들은 물론 세계가 값비싼 대가를 치러왔고, 지금도 치르고 있는 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개최국 일본의 아사히신문과 차기 개최국 프랑스의 르몽드가 개회식을 전후해 각각 내놓은 진단에 힘입어 ‘올림픽 광시곡’의 실상을 정리해본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 폐막식에서 차기 올림픽 개최국 수반 자격으로 참석, 슈퍼마리오 복장으로 이벤트를 하고 있다. 위키페디아

 

아사히는 개회식 당일자 사설로 이번 올림픽을 ‘걱정과 의혹, 스트레스로 점철된 호화 스포츠 이벤트’로 정의했다. 올림픽 무대에 서는 순간을 위해 오랜 시간 동안 힘든 훈련과 경쟁을 치러온 선수들의 놀라운 경기를 바라보는 흥분의 시간이 되기는커녕 도쿄에는 어떠한 희열 또는 축제 무드가 없다고 단언했다. 많은 사람들이 또 다른 심각한 문제가 없이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짚었다. 화합과 신뢰의 자리에 분열과 불신이 들어섰다는 것. 2016년 하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했던 일본 정부가 생각해낸 홍보 아이디어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 일본의 부흥이었다. 아베 총리는 ‘부흥 올림픽’을 강조하며 후쿠시마 대지진과 쓰나미, 원전 파괴로 인한 핵재앙이 통제됐다고 선언했다. 거짓이었다. 작년 3월 올림픽 연기를 발표하면서 아베 총리는 또 다른 식언을 했다. “최상의 조건에서 완벽한 형태로 올림픽을 열겠다”는 약속은 일본의 부흥과 마찬가지로 공염불이 됐다. 아베로부터 ‘슈퍼 마리오’의 깃발을 전달받은 스가 요시히데 총리 역시 새로운 현실을 외면했다.

아사히는 특히 스가 내각과 올림픽 주최자들의 오만을 꼬집었다. 과학과 국민이 제기하는 우려를 깡그리 무시하고 올림픽을 위한 올림픽을 강행함으로써 관중 없는 올림픽으로 귀결됐기 때문이다. “일단 선수들이 경기를 시작하면 일본 국민도 덜 부정적으로 될 것으로 확신한다”는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의 낙관에도 칼질을 했다.

일본 이바라키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지난 25일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남자축구 대한민국과 루마니아의 조별리그 B조 2차전 경기를 앞두고 관중석이 텅 비어있다. 도쿄 이준헌 기자

 

아사히 사설 필자는 “시민 각자가 자기만의 관점으로 스포츠의 힘과 인간의 잠재력을 찾아내 세계의 더 나은 미래를 함께 건설해나가야 할 것”이라는 당부로 글을 매듭지었다. 역설적으로 올림픽 정신을 일깨울 주체인 주최국 정부와 IOC의 역할을 이미 포기했음을 말해준다. 아사히는 다음날자에도 1면 무기명 칼럼(千聲人語)을 통해 “도쿄 올림픽이 남길 가장 중요한 유산은 올림픽의 성격에 대한 결정적인 변화일 것”이라면서 스타디움 앞에 일반인의 접근을 막기 위해 설치된 높은 펜스를 빗대 “올림픽의 이상 중 하나인 연대는 공허한 슬로건으로 전락했다”고 통탄했다.

24일자 사설에서 도쿄 올림픽 개회식을 다룬 르몽드 역시 “올림픽의 마술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면서 어두운 분위기를 직시했다. 르몽드는 올림픽의 정치적 도구화와 도핑 및 부패를 둘러싼 반복되는 스캔들, 막대한 재정부담 탓에 올림픽 정신이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이 고안한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의 구호는 ‘더 비싸고, 더 욕먹으며, 더 정치적인(올림픽)’으로 바뀌었다”고 통렬한 풍자를 날렸다. 개최가 확정된 3개 도시(2024 파리·2028 로스앤젤레스·2032 브리즈번) 모두 단독 입후보였던 점을 들어 과거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던 올림픽 유치는 이제 부담과 근심의 대상으로 전락했다고 짚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개최비용이 늘 문제가 됐지만 도쿄 올림픽은 최고기록을 경신할 것이라고도 내다봤다. 갈수록 젊은이들의 관심이 멀어지고 있는 것도 올림픽이 사양의 길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올림픽이 상업주의에 오염됐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았지만, 이번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난 적은 없었다. 마케팅상의 이유로 2021년의 절반이 지난 시점임에도 대회 명칭에 ‘2020년’을 못 박은 것은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막 일정을 후덥지근한 한여름에 잡은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최대 수입원인 TV중계수입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 프로야구와 미식축구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좌판'을 깔아놓아야 한다는 타산이 아니었다면 설명할 길이 없다. 마라톤 경기를 개최지에서 멀리 떨어진 삿포로로 옮겨놓았지만, 지난 26일 도쿄 오다이바 해상공원에서 벌어진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을 마친 선수들이 경기 뒤 쓰러지고 일부 구토까지 하는 사태는 막지 못했다. 이틀 뒤 스페인의 여자 테니스 선수는 열사병에 8강전을 기권하고 휠체어를 탄 채 실려나갔다. 러시아 남자 테니스 선수는 경기 중 두 차례 메디컬 타임아웃을 요청한 뒤 “내가 죽으면 책임질 것인가”라고 항의했다.

올림픽 정신을 강조한 바흐 위원장은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IOC 홈페이지는 29일 현재까지 “도쿄 2020 ‘부흥 올림픽’은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에 희망을 주고 있다”는 메시지를 올려놓고 있다. 동아시아의 여름은 무덥다. 1964년 도쿄 올림픽(10월10~24일)과 1988년 서울 올림픽(9월17일~10월2일)이 가을에 대회를 시작한 까닭이다. 

글머리에 소개한 “올림픽은 계속돼야 한다”는 말은 팔레스타인인들의 테러가 자행된 1972년 뮌헨 올림픽 당시 에이버리 브런디지 IOC 위원장이 남긴 말이다. 그는 테러 다음날 올림픽 스타디움 추도식에서 “일단의 테러리스트들이 올림픽 정신을 파괴하도록 방관할 수 없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하루만 애도하고 다음날부터 경기를 치르자는 그의 제안에 경기장을 메운 8만명은 일제히 박수를 쳤다. 바흐 위원장도 개회식 연설에서 어려움 속에서 올림픽을 준비한 일본 정부와 국민에 감사를 표하면서 “올림픽 취소는 선택지가 아니다”라며 그 이유로 “한 세대의 선수들을 전부 잃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느 올림픽에도 반대하는 주민들이 있었다. 하지만 IOC를 직접 겨냥한 반대는 흔치 않다. 그가 개막연설을 하는 순간 스타디움 밖에서 올림픽 반대 시위를 벌이던 군중들 사이에선 ‘IOC, 지옥에나 가라’는 푯말이 있었다.

지난 3월 압도적인 지지로 바흐의 재선을 결의한 IOC 회의에선 향후 4년간 시행할 ‘2020+5’ 전략이 채택됐다. 연대와 디지털화, 지속성, 신뢰성 및 경제적·재정적 회복력 등 5가지 부문으로 구성됐다. 공교롭게도 디지털화를 제외한 4가지 부문의 목표 모두가 도쿄 올림픽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어떠한 역경에도 계속돼야 하는 게 올림픽인가, ‘값비싼 쇼 비즈니스’인가. 바흐의 IOC가 답할 차례다.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dkfg 2021.08.02 14: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류는 이제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심상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도쿄 올림픽에만 내려진 저주가 아니라 향후 올림픽에서도 계속될 위협일 수 있다는 말이다. 도쿄 올림픽은 어쩌면 코로나가 야기한 ‘새로운 현실’에서 치러진 첫번째 올림픽이 될지도 모른다. Think the Unthinkable. '관중없는 올림픽'이 바이러스의 상시적 위험에 노출된 인류가 앞으로도 보게될 뉴노멀이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시작한 글이다. 코로나 비상사태 속에 IOC와 일본정부의 금전적 유인에서 강행된 점, 아베 신조-스가 요시히테로 이어지는 자민당 정권 가버넌스의 실종 등에 비판은 이미 차고도 넘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을 준비하면서 아무리 이해하려해도 이해할 수없는 일본 정부와 IOC의 민낯이 너무 크게 보였다.

“폭풍우가 사과를 나무에서 떨구면 사과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북미동맹에 올 수밖에 없다.” 존 퀸시 애덤스 제6대 미국 대통령(1825~1829)에게 쿠바는 ‘사과’와 같은 존재였다. 국무장관 시절 애덤스는 스페인 외교장관에게 이런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아이작 뉴턴이 중력을 설명하면서 예를 들었던 사과에 비유한 것이다.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50년 내 쿠바는 미국에 병합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미국은 그러나 사과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지 않았다. 

제임스 녹스 포크 제11대 대통령(1845~1849)은 스페인으로부터 1억달러에 쿠바를 매입하겠다고 공식 제안했다. 스페인의 답은 “미국에 파느니 바다에 빠뜨리겠다”는 것이었다. 50만명 정도의 흑인노예를 확보할 수 있는 쿠바는 미국에도, 스페인에도 돈이 되는 섬이었다. 1897년 쿠바 독립전쟁이 발발한 뒤 윌리엄 매킨리 미국 대통령은 그 가격을 3배 높여 제안했다. 스페인은 이번에도 거절했다. 아바나에 정박 중이던 미 해군 전함 메인호가 의문의 폭침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미·서전쟁으로 번졌다. 스페인의 아메리카 제국이 붕괴하고, 미국이 카리브해의 패권국가로 등장하는 전환점이었다. 이듬해 미군은 점령군으로 아바나에 입성했고, 3년 뒤 쿠바 독립을 허용했다.(미군이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 뒤 한국에서 군정을 펼친 기간과 공교롭게 같다.) 미군이 물러난 자리에 미국 자본이 진출했다.  미국은 미-서 전쟁으로 쿠바에 더해 푸에르토리코와 서태평양의 괌 및 필리핀을 획득했다. 

지난 7월11일 세계를 놀라게 한 쿠바의 반정부시위는 이후 당국의 통제로 조용해졌지만, 멕시코만 건너 미국 본토에선 계속 이어지고 있다. 17일 워싱턴의 백악관 밖에서 쿠바의 자유를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쿠바 국기에 '조국(Patria)'이라고 쓴 펼침막이 보인다. AP연합뉴스 

 

아바나가 시끄러워지면 곧바로 마이애미가 시끄러워진다. 지난 주말 쿠바 전역에서 약 30년 만에 발생한 반정부 시위를 들여다보기 전 쿠바·미국 관계사부터 찾아본 연유는 쿠바 국내 문제가 미국과 필연적으로 엮여 있기 때문이다. 

현대사 공간에서 대미관계가 결정적인 변수가 된 사회주의권 국가는 북한과 쿠바, 베트남이다. 전쟁에서 북한은 중국의 절대적인 도움으로 미국과 비겼지만, 쿠바와 베트남은 자력으로 이겼다. 그러나 승패와 무관하게 이후 대미관계 정상화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베트남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독자적인 생존공간을 확대하고 있지만, 북한과 쿠바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여정이다. 베트남이 1995년 국교정상화 이후 ‘새로운 관계’를 굳혀가는 종말 단계라면, 북한은 여전히 관계정상화의 탐색 또는 적대 단계에 머물고 있다. 그 중간쯤에 해당하는 나라가 쿠바다. 미국이 한 발을 내딛고도, 다른 한 발은 좀체로 움직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각각 미국이라는 장벽을 마주하고 있는 북한과 쿠바는 '특수한 동지적 관계(김정은 국무위원장)'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제한적 관계정상화를 시작한 2014년 12월 이후 양국 관계는 냉온탕을 오갔다. 오바마 당시의 해빙은 쿠바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 취소, 미국민의 쿠바 여행 및 송금 제한 완화, 대사관계 복원으로 요약된다. 항공·해운·우편·금융거래도 재개했다. 상업적, 경제적, 금융적 제재의 골간을 유지했지만 화해로의 분명한 신호였다. 

지난 12일 쿠바 수도 아바나 거리에 걸린 피델 카스트로의 초상과 어록 앞을 자전거를 탄 주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쿠바정책 전환은 부분적인 U턴이었다. 쿠바 경제의 40% 정도를 점유하는 군부기업 가에사(GAESA)를 정조준했다. 개인여행을 금하고 가에사 소속 상점·호텔·레스토랑 출입을 금지했다. 단체여행 및 가족방문 등은 유지했다. 이후 크루즈와 개인 요트나 항공기 여행도 금지했다.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플로리다주 마이매미에서 열린 1961년 피그만 침공 노병들의 모임에서 추가 제재안을 발표했다. 쿠바 이민자들의 본국 송금을 제한한 데 이어 지난 1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기 며칠 전 쿠바를 다시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렸다. 바이든 대통령의  쿠바정책은 취임 반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검토 중”이다. 

지난 11일 아바나 남서부 외곽 산 안토니오 데 로스 바노스에서는 주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반정부 구호를 외쳤다. 이날 전국으로 확산된 시위의 시작이었다. 1시간 가까이 진행된 시위는 처음부터 페이스북으로 실황중계됐다. 잠시 뒤 쿠바 남동부 팔마 소리아노에서 시위 현황이 SNS로 중계됐다. 남서부 아르테미사 시위에서는 “국민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간다”는 한 여성의 절규가 소개됐다. “우리 아이들이 배고파 죽어간다”는 말도 나왔다. 시위대는 경찰차를 뒤엎고, 국영상점을 약탈하기도 했다. 쿠바 정부는 강경 진압에 나섰지만, 쉬 사그라들지 않을 기세다. 쿠바 당국은 12일 ‘작은 소란’ 과정에서 (시위 주민) 1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는 쿠바 주민과 함께한다는 성명을 내놓은 것 외에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마이애미의 보수강경 쿠바 이민자들이 동조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공화당 보수강경 정치인들은 미국의 군사개입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14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리틀 아바나에서 열린 동조시위에 참가한 여성이 뺨에 ‘SOS 쿠바’라고 쓴 채 쿠바에서 30년 만에 발생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마이애미 AP연합뉴스

 

서방언론이 전하는 시위의 원인은 트럼프 행정부가 강화한 제재로 인한 생필품난과 코로나19로 인한 관광객 감소, 지난 1월 쿠바 정부의 화폐개혁으로 더욱 어려워진 민생 등 3가지 악재가 겹친 경제난에 집중된다. 특히 식량은 3분의 2 정도를 수입에 의존해 제재를 비롯한 외생변수에 취약하다. 쿠바 정부가 코로나19 대확산 이전인 2019년 5월부터 닭고기 및 달걀·콩·비누를 비롯한 생필품에 대해 배급제를 실시한 것으로 미루어보면 제재가 더 큰 원인인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쿠바 정부가 지난 1월 단행한 이중통화제도 철폐가 민생고에 불을 붙였다. 쿠바는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태환페소(CUC)와 일반페소(CUP) 등 두 가지 화폐가 있었는데 이 중 CUC를 폐지한 것이다. CUC는 국영수입업체와 외국인들이 사용했던 화폐로 1달러를 1CUC로 고정시켜 외환통제에 이용됐다. 쿠바 정부로선 외국인 투자의 장애물로 지목되던 CUC를 폐지함으로써 긍극적으로 경제활력을 불어넣으려 했겠지만 제재와 코로나19로 생활고가 가중된 상태에서 단행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패착이 됐다. CUC 폐지로 생필품 및 전기·교통요금 등의 단기적인 물가상승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폐지 당시 쿠바 정부가 예측한 물가상승률은 160%에 달했지만 실제론 상승률이 더 올라가 물품 사재기 현상까지 보였다. 정부는 새해부터 최저임금을 5배 넘게 인상했지만, 일자리를 잃은 민간부문 종사자들의 생활고는 가중됐다. 올해 초부터 “쿠바가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광범위하게 제기돼온 까닭이다. 

쿠바 혁명정부는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면 친정부 시위로 맞불을 놓는다. 7월17일 카리브해를 끼고 있는 해안도로 수도 아바나의 말레콘에서 군복 차림의 라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의장(가운데)과 미겔 디아스카넬 현 의장(마스크를 쓴 푸른 상의)이 쿠바 혁명을 지지하는 친정부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디아스카넬 의장은 12일 대국민연설에서 혁명을 지지하는 군중들에게 거리를 점령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AP연합뉴스 

 

코로나19 백신 부족과 의약품 및 보건의료 인력 부족이라는 분석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무엇보다 쿠바는 의료 및 제약부문에서 선진국이기 때문이다. 월드오미터 집계에 따르면 세계표준시(GMT)로 15일 오전 3시(한국시간 15일 정오) 현재 인구 1100만명인 쿠바의 코로나19 확진자는 25만6607명(사망 1659명)으로 한국의 17만3500명(사망 2050명)보다 많다. 하지만 코로나보드가 집계한 백신 2차 접종률은 15일 현재 15%로 한국(11.93%)보다 높다. 쿠바가 자체 개발, 시험 중인 소베라나2와 아브달라 등 2개 백신이 개발 완료 단계이기도 하다. 아브달라는 3회 접종 시 92.28%의 예방효과를 보였다. 하지만 전반적인 물가상승 압박은 코로나 이전에서 어려웠던 주민들의 일반 의약품 구매에도 악재가 된 것으로 보인다. 

시위 배경에 정치적 요소가 있기는 하다. 2018년 9월 출범한 ‘모비미엔토 산 이시드로(성 이시드로 운동·MSI)’가 그 핵심이다. 예술작품의 공개 전 검열을 의무화한 ‘법령 349’에 반대하며 표현의 자유를 외쳐왔다. 작년 11월에는 아바나 산 이시드로 구역에서 스스로를 감금한 채 동료 예술인 구금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당시 SNS에 유포한 랩송 ‘조국과 삶(Patria y Vida)’이 최근 시위에서 새삼 각광을 받고 있다.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혁명을 하면서 외친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Patria o muerte)’ 구호를 빗댔다. 이번 시위에 ‘빵’과 함께 ‘자유’가 등장한 까닭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요구가 정치적 자유까지 연결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7월17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프리덤 타워 앞에서 열린 시위에 참가한 쿠바인 이민자들. EPA연합뉴스

 

코로나19가 야기한 경제난과 이로 인한 사회불안은 쿠바만의 현상이 아니다. 브라질과 남아공, 레바논, 이라크 등지에서 비슷한 이유로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문제는 쿠바 시위가 플로리다반도를 통해 미국에 상륙하면서 신속하게 정치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쿠바 시위의 경제적 배경을 미국의 제재와 글로벌 코로나19 대확산, CUC 폐지로 인한 물가상승 등 3중 파고로 본다면, 미국 행정부 및 쿠바 정부가 책임의 3분의 1을 나눠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쿠바와 미국 당국은 스스로의 책임을 외면한 채 정치적 비방만을 주고받고 있다.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주석은 지난 12일 대국민연설에서 시위의 원인을 쿠바의 경제적 질식을 획책한 미국의 제재 탓으로 돌렸다. 플로리다주에 밀집해 사는 보수 쿠바인 공동체가 SNS에 ‘#SOS Cuba’ 해시태그를 달며 불안을 조성했다는 비난도 빼놓지 않았다. 절반은 맞되, 쿠바 정부의 책임을 외면한 주장이다. 같은 날 바이든 대통령의 짤막한 성명도 다르지 않았다. 바이든은 “(코로나19) 대유행과 수십년의 압제 및 경제난 속에 권위주의 정부에 포획된 쿠바인들이 자유를 요구한 분명한 신호”라면서 쿠바 정부를 향해 “국민의 평화적 시위권을 존중하고 민성에 귀 기울이라”고 촉구했다. 역시 절반은 맞되 미국의 책임을 생략한 주장이다. 주로 플로리다에 몰려 사는 보수 쿠바인 이민사회는 본국의 모든 문제를 “폭정 타도” “체제 전환”의 기회로 삼는다. 세대가 바뀌고 있지만, ‘피그만의 패잔병 정서’가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미국 해안경비대 소속 순시선과 항공기가 7월17일 플로리다 해협을 감시하고 있다. 쿠바 시위 사태로 쿠바 정부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는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지만, 쿠바 난민의 대규모 유입 가능성에 전전긍긍하는 미국 해안 경비대 당국이 위기에 처한 건 분명해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옛 소련 붕괴 이후 경제난 속에 발생했던 1994년 시위 당시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의 해법은 기발했다. 뗏목난민 수만명의 플로리다행을 방관함으로써 위기탈출을 하는 동시에 미국의 의표를 찔렀다. 디아스카넬 주석이 유사한 해법을 쓸지는 모를 일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내놓은 유일하고 구체적인 대응은 국토안보부를 중심으로 한 쿠바 난민의 미국 접근 차단이다. 피델은 가고 라울은 올해 90세다. 쿠바 정치연령으로 보아 여전히 적응 단계인 디아스카넬(61) 정부가 위기를 어떻게 탈출할지, 바이든은 어느 시점에 문제해결에 나설지 주목된다. 하필 카리브해는 이달 초부터 허리케인과 열대폭풍의 계절에 돌입했다.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서로 이견이 있음을 인정하기(agree to disagree).’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이뤄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지난 16일 제네바 미·러 정상회담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상대를 인정하며 공존할 것인가, 계속 갈등할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일단 ‘공존’ 쪽으로 선회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정치도, 외교도 결국은 중간쯤에서 접점을 찾는 노력일 터. 당장 점을 찾기 어려우면, 선(red line)을 긋고 각각의 DNA를 인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야 비로소 긍정의 영역을 더불어 탐사할 조건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취임한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과 관련해 내놓은 공식 입장은 ‘경쟁’과 협력의 병행이었지만, 지난 5개월 동안 외교행보는 중국 포위에 굵은 방점이 놓였었다. 바이든이 그동안 만났던 상대는 대부분 ‘비슷한 생각의 나라(like-minded country)’의 지도자였다. 미·일 및 한·미 정상회담은 물론 주요 7개국(G7)+3(한국·호주·남아프리카공화국) 정상회의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때마다 중국에 대한 공동전선을 다지는 계기였다. 푸틴은 그가 처음 대면한 경쟁자 또는 적국의 지도자였기에 회담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더구나 지난 3월 푸틴을 두고 ‘살인자(killer)’라고 공언했던 바이든이 아닌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6일 스위스 제네바의 빌라 라 그랑주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분홍색 와이셔츠가 보이는 오른쪽이 바이든의 손이다. AP연합뉴스

 

미·러 간에는 난제가 많다. 러시아에 구금된 야당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 문제와 벨라루스 인권 상황,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및 우크라이나 동부 사태, 미국 선거에 대한 러시아의 온라인 개입 혐의 등. 하나같이 녹록지 않은 난제들이다. 바이든은 회담에서 푸틴이 껄끄러워하는 모든 문제를 당차게 따지고, “필요하면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런데도 회담 뒤 모스크바에는 때아닌 봄기운이 완연하다. 미·러관계에 긍정적 시각도 팽배해졌다. 대체 제네바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바이든의 외교 마술은 ‘(미국과 러시아) 두 개의 강대국(two great powers)’이라는 한마디에서 비롯됐다. 경륜의 바이든은 이 말을 각국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푸틴과의 정상회담 모두발언으로 내놓았다. 바이든은 “우리는 (회담에서) 서로 동의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예측가능하고, 합리적인 길을 찾으려 노력할 것”이라는 말끝에 “두 개의 강대국”을 배치했다. 푸틴의 머리에서 ‘꼬마전구’가 반짝 켜진 순간이었을 거다. 바이든의 미국이 러시아를 “기껏해야 지역강국(regional power)”이라며 업신여겼던 오바마의 미국과 작별했음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국제정치의 주무대에 러시아가 돌아왔다. 바이든이 초청했다. 바이든은 유럽에서 열렸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등에서 (취임 이후) 자신이 만난 동맹국 또는 우방국 지도자들 중에 푸틴과의 정상회담을 환영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중국과의 대립구도를 펼치면서 러시아를 제외하는 것이 실수라는 공감대가 이미 형성돼 있음을 시사한다. 사진은 푸틴이 지난 16일 미·러 정상회담이 열린 스위스 제네바의 빌라 라 그랑주의 회담장에서 러시아 국기를 배경으로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북한은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는 한, 풀을 뜯어먹더라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푸틴의 말을 변용하면, 풀을 뜯어먹을지언정 자존심 상하는 건 참지 못하는 게 러시아다. 바이든 말대로 미국이건, 러시아건 지도자는 유권자들의 정서를 무시할 수 없다. 슈퍼파워 향수를 갖고 있는 러시아 유권자들은 푸틴이 보이는 강대국 행보 만큼은 90% 가까이 지지한다. 

바이든이 회담 뒤 단독기자회견에서 소개한 푸틴과의 대화 내용 역시 지극히 완곡했다. 바이든은 “어떤 미국 대통령도 민주주의 가치들과 보편적 인권 및 기본적 자유를 말하지 않고 미국민들에게 믿음을 유지할 수 없다”면서 “그러한 가치들은 우리 DNA의 일부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나발니와 러시아 인권에 대한 미국 입장을 밝히면서도, “인권침해를 언급하지 않고 어떻게 내가 미국 대통령일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강조하고, 이와 다른 러시아를 비난하되 그러한 비난은 미국민을 향한 ‘대내용 메시지’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나발니와 관련한 기본적 인권 문제를 계속 제기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도 “그게 미국이기 때문”이라며 이해를 구했다. 러시아가 억류한 2명의 미국인 문제도 지적했다. 집권 뒤 5번째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경륜의 푸틴이 이 말을 못 알아들었을 리 없을 터.

바이든은 인권뿐 아니라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을 지적하면서 송유관을 비롯한 에너지·용수 등 필수적인 인프라 16개 분야에 대해 어떠한 사이버 공격도 서로 하지 말자며 리스트를 건넸다. 회담에선 이해가 일치하는 대목이 더 강조됐다. 북극 개발과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적 통합을 지지한다면서도 민스크협정에 토대를 둘 것임을 분명히 했다. 푸틴 역시 별도 회견에서 민스크협정 준수 수준에서 더 이상 이견이 없었음을 밝혔다. 민스크협정은 2014년 9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중재하에 러시아와 러시아계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 루간스크 인민공화국(LPR)이 즉각적인 교전 중단에 합의한 협정이다. 국민투표를 통해 러시아에 통합된 크림반도 문제는 담지 않고 있다. 벨라루스의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서로 이견이 있었다고만 전했다.

정상회담을 시작하기 전 서로 마주앉아 다른 쪽을 보고 있는 바이든과 푸틴. 바이든이 회견에서 수차례 강조했듯이 두 사람은 친구 사이도, 서로 신뢰하지도 않는다. 다만, 서로의 속내를 알고 있고 각각 국가 지도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다. AP연합뉴스

 

바이든과 푸틴이 전한 회담 분위기는 1970년대 미·중 간 데탕트를 열었던 상하이 코뮈니케처럼 같음을 구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를 연상케 했다. 러시아 제안으로 정상회담 뒤 각각 별도 회견을 가졌지만 양 정상은 회담이 좋았고, 긍정적이었으며, 생산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푸틴의 회견 내용 역시 구동존이를 벗어나지 않았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동부 문제와 관련해 민스크협정이 토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관해선 “그 문제를 다루었지만, 토론할 게 없는 문제”라며 러시아의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사이버 공격은 미국과 캐나다가 가장 많이 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까지 미국은 러시아에 러시아 발 사이버 공격과 관련해 12번 문의를 해왔지만, 러시아는 미국 발 사이버 공격과 관련 80번 문의했음을 지적했다. ‘살인자’라는 대목에선 이라크에서 민간인을 살상하는 미국의 드론을 거론하고, 인권에 대해선 여전히 테러용의자들을 불법 구금하고 있는 관타나모 수용소를 상기시켰다. 그러나 쟁점에 대한 러시아 입장을 밝히면서도 직접적 비난을 삼갔다. 푸틴은 “단언컨대, 바이든 대통령은 경륜 있는 사람(an experienced person)”이라며 “모든 지도자와 2시간여 동안 얼굴을 맞대고 구체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투는 군더더기 없이 짧고 간결했다.

회담이 남긴 공식 합의문은 단 세 단락으로 된 ‘전략적 안정에 관한 미·러 대통령 공동성명’ 한 장이었다. 지난 2월 합의한 신전략무기감축협정(STARTII) 연장을 확인하고, 핵전쟁 위협을 감소할 것을 다짐하는 데 그쳤다. 중요한 것은 미·러 정상이 양국 국방·외교 장관 등이 참여하는 ‘통합된 양자 간 전략적 안정 대화’의 회의체 구성 및 가동에 합의했다는 점이다.

바이든과 푸틴이 18세기에 지어진 고택인 제네바의 빌라 라 그랑주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TASS연합뉴스

 

바이든과 푸틴은 공히 “중요한 것은 다음 단계(What’s next)”라고 강조했다. 바이든은 “3개월이나 6개월 뒤쯤” 러시아와의 협력 정도를 점검, 더 나아갈 것인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푸딩 맛을 알려면, 먹어보는 수밖에 없다’는 미국 속담을 인용하며 “곧 알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바이든이 회견에서 털어놓은 말들은 그러나 양국이 핵무기 감축만 논의할 게 아님을 분명히 했다.

미·러 정상이 관계를 재정립(reset)하는 데 합의한 것은 공동의 적 또는 공동의 경쟁국이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중국이다. 바이든이 쏟아낸 말을 직설화법으로 갈무리하면 이렇다.
“역으로 묻자, 러시아와 수천 마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이 세계 최강의 경제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의 경제는 지극히 어렵다. 당신이 푸틴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푸틴의 행동이 변할 것이라고 믿느냐고? 상대방의 관심(self-interest)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푸틴과 나는 서로를 알 뿐이다. 굳이 누군가를 신뢰할 필요가 없다.”

러시아의 경제적 어려움은 상당 부분 국제유가 하락과 관련돼 있다. 하지만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미국 및 서방의 경제 제재가 목줄을 위협하고 있다. 러시아가 최근 몇년간 중국으로 달려간 까닭 역시 서방의 제재로 어려워진 경제 때문이다. 바이든은 러시아에 대한 미국 기업들의 활동 재개 가능성을 말하면서 푸틴에게 “미국 기업들의 투자를 바란다면, 생각을 바꾸라(Change the dynamic)”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도합 43분 동안 바이든이 쏟아낸 회견문(A4용지 19쪽)에는 비유가 많다. 사실 확인에 마음이 급했을 저널리스트들은 답답한 상황이었을 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6일 정상회담장인 스위스 제네바의 빌라 라 그랑주 현관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바이든은 푸틴이 러시아 지도자가 된 뒤 만난 5번째 미국 대통령이고, 푸틴은 바이든이 4번째 만난 러시아 지도자다. 7순의 노련한 지도자들은 드디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상대를 만난 듯 이번 회담을 통해 7년 째 정체상태인 미-러관계를 리셋했다.   AP연합뉴스

바이든은 회견에서 질문을 받기 전 “이번 회담은 우리(미국과 러시아)가 여기(현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에 대한 회담”이었다며 오해가 없기를 당부했다. 그러나 ‘푸틴의 행동이 변할 것이라고 보는가’ ‘최후통첩을 던졌나’ ‘어떻게 확신하는가’ ‘푸틴을 신뢰하나’ 등 의심조의 질문이 끊이지 않자 바이든은 결국 역정을 냈다. 마지막 질문을 한 기자에게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직업을 잘못 택했다”고 쏘아붙였다. "푸틴이 행동을 바꿀 것이라고 확신하지 않는다. 제기랄 당신은 그동안(내가 회견하는 동안) 대체 어디에 있었나"라고도 말했다.  너무 심한 말이 아니었을까. 바이든은 제네바를 떠나는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오르기 전 약식 회견을 자청하면서 이를 사과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앞으로도 인권과 우크라이나 문제 등에서 이견을 노출할 게 분명하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정상회담 나흘 뒤인 지난 20일 “러시아의 나발니 처우에 대해 더 많은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제네바 회담을 시작으로 미·러관계가 리셋될 것은 분명하다. 바이든의 ‘살인자’ 발언 무렵 각각 본국으로 돌아갔던 이바노프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 대사와 존 설리번 주러 미국 대사가 임지로 복귀한 게 더 중요한 움직임이다.

바이든이 지난 16일 미-러 정상회담을 마치고 제네바를 떠나는 에어포스 원에 탑승하기 전 수행기자들을 상대로 약식 회견을 하고 있다. 무언가 설명을 하는 표정이 흥미롭다. 바이든은 회담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 외교 관례를 좇으면서도 미-러 간의 '다음 단계(next step)'를 수행기자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회견 자리에 있던 기자들의 태반이 바이든의 진의를 이해하지 못한 분위기였다.  로이터연합뉴스 

 

바이든이 회견 내내 외교교섭의 구체적 내용을 밝히지 못해 답답해 하며 전하려던 변화의 조짐은 베를린에서 일단이 나왔다. 24일자 파이낸셜타임스는 1면 헤드라인으로 ‘독일과 프랑스가 유럽연합(EU)-러시아 관계의 리셋을 제안했다’고 전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함께 푸틴을 초청, EU와의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다.

오는 7월16일은 러·중 우호조약 체결 20주년이다. 푸틴이 러·중관계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관측하기 좋은 계기다. 중국은 푸틴의 베이징 방문을 희망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러관계 리셋에 이은 EU·러관계 리셋.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굳어졌던 국제정치의 구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국만 돌아온 게 아니다. 러시아도 돌아오고 있다. 서방의 대러 제재에 움찔해 있던 한·러 경협도 기지개를 켜지 않을 이유가 없다.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dkfg 2021.06.25 1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회견에서 말한 걸 이해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직업을 잘못 택했다." 저널리스트에겐 심한 모욕이다. 하지만 이런 야단을 맞더라도 직선적이고, 솔직하며, 풍부한 비유를 곁들인 국가 정상의 고품격 브리핑 자리에 앉아보고 싶다.

    6월16일 제네바에서 있었던 미-러 정상회담 뒤 양국 정상이 각각 가진 기자회견문은 모두 A4로 36쪽이었다. 수많은 연설문과 회견문을 접했지만, 읽으면서 배우는 즐거움과 흥분을 느껴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미국 대통령을 5명째 만난 푸틴과, 미국 대통령 자격은 처음이되 푸틴과 4번째 만난 바이든. 경륜의 지도자들 간의 일합은 그만큼 흥미진진했다. 러시아를 경멸했던 버락 오바마의 오만과 잘못된 사랑고백을 했던 도널드 트럼프의 촌극에 이어 드디어 선수들끼리 만난 듯했다.

    제네바 미러회담을 계기로 국제정치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는 판단이다. 세상이 바뀌는 데 한국은 무엇을 해야할까. 흐름을 포착하고, 몸을 던지는 데 그다지 민첩하지도, 현명하지도 않은 한국외교지만 이번엔 좀 달랐으면 한다...(페북 인트로)

네타냐후의 마지막 순간

명색이 국제전문기자이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현장이 너무 많다. 현장의 공기를 마시지 못하고 쓰는 글은 생명력이 없다. 지극히 사적인 여행일지언정 한번이라도 밟았던 땅의 이야기에는 숨결이 들어간다. 대안은 ‘서울로 찾아온 현장’을 만나는 것. 남산 자락의 어느 호텔이었던가. 내외신 기자회견을 자청한 40대 이스라엘 총리를 만난 건 1997년 8월 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70세를 넘어 권좌에 더 있기 위해 온갖 무리수를 두는 노회한 정치인이 될지는 몰랐다. 방한 한 달 전 예루살렘에서 폭탄테러가 발생, 그 수습에 경황이 없었을 그는 외교 일정을 늦추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분노의 돌멩이와 이스라엘 병사들의 총탄이 오가는, 지극히 비대칭적인 대치 속에서 막 빠져나온 그는 생뚱맞게 세일즈맨을 자처했다. 베냐민 네타냐후(71, 별명 비비).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이 총리 관저 인근에서 열린 '반 네타냐후' 시위에 정의의 여신 복장으로 참가한 한 여성이 6월12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포스터 앞에서 저울모형을 들어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은 한국이 확보하려는 모든 분야의 첨단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구매하고 싶은 첨단 기술의 쇼핑리스트를 받아가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세계가 1980년대 한국 하면 격렬한 시위현장만 떠올렸던 것처럼, 이스라엘 하면 분쟁부터 연상됐던 상식이 깨진 순간이었다. 그가 후일 ‘Mr. 시큐리티(안보)’로 불리며 아랍국가들과 이란의 위협을 확성기로 떠들기 전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국민총생산(GNP)이 지금은 아랍권 22개국 GNP의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10년 내 그 70%가 될 것”이라며 아랍권과의 관계를 숫자로 치환했다.

회견에서 그가 한반도와 관련해 내놓았던 또 다른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북한 미사일 문제였다. 중동의 화약냄새가 한반도와 결코 무관치 않음을 새삼 깨우치는 계기였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3월4일 이스라엘 남부의 한 군 장교 훈련소를 방문, M16소총으로 조준 자세를 취해보이고 있다. 그는 이날 수행기자단에 동예루살렘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정착촌 신규 건설을 강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 자료사진 연합뉴스

 

일요일인 내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71)의 운명이 갈린다. 크네세트(의회)에서 지난 3월 총선 결과로 구성된 제36대 연립정부에 대한 신임 표결이 있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이데올로기와 민족적 구성, 정치적 지향점을 가진 8개 정당이 구성한 ‘무지개 내각’에 네타냐후의 리쿠드당(단합-민족해방운동)은 없다. 

현직을 벗자마자 그를 기다리는 것은 수사와 단죄다. 그가 직접 책임자를 임명한 이스라엘 사법당국은 이미 2019년 뇌물수수와 불법거래를 비롯한 3가지 부패 혐의로 기소 방침을 공표한 바 있다. 표결 결과에 따라 햇수로 15년 총리직에 머문 그의 시대가 끝난다. 물론 오뚝이 같은 그의 이력으로 보아 크네세트 신임투표가 끝나기 전까지 단언할 수는 없다. 

네타냐후는 이스라엘과 미국을 오가면서 성장기를 보냈다. 텔아비브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뼈가 굵고 필라델피아에서 귀향한 것은 18세 때였던 1967년이다. 5년 동안 군복무를 하면서 두 번의 중동전에 참전했다. 특전사 대위로 제대한 그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MIT공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졸업 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취업했다. 1978년 다시 모국에 돌아간 까닭은 ‘반테러 연구원’을 설립하기 위해서였다. ‘Mr. 안보’의 경력은 공직으로 가는 티켓이었다. 1984년 미국에 건너갔지만 이번엔 이스라엘의 유엔 대표부 대표 역할을 하기 위해서였다. 4년을 뉴욕에서 보냈다. 1993년 현재의 리쿠드당 의장으로 선출된 지 3년 만에 총선에서 승리, 최연소 총리(47세)가 됐다. 독립 뒤 이스라엘 태생의 첫 총리이기도 했다.

마스크를 쓴 네타냐후 총리(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지난 6월6일 예루살렘에서 코로나19 방역에 힘쓴 보건의료 종사자들을 위한 축하 모임에서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네타냐후는 1999년 총선에서 참패하자 미련 없이 정치판을 떠났다. 통신장비 업체 자문역으로 2년 동안 봉급을 받았다. 비즈니스와 정치는 밥벌이의 양대 축이었다. 종종 그 두 가지가 섞였다. 1997년 부패 혐의로 고발됐고, 1999년에는 다른 뇌물수수 혐의를 받았지만 기소를 모면했다. 2002년 아리엘 샤론 정부의 외교부 장관으로 정계에 복귀했다. 2009년과 2013년, 2015년 총선에서 연립정부 구성에 성공, 총리직을 유지했다. 리쿠드당의 30% 안팎 득표율에도 네타냐후가 총리 자리를 지켜온 비결은 두 가지다. 탁월한 정치력과 유대교 원리주의 소수정파들과의 연합으로 가능했다. 2000년 3월 총선에선 중도 청백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면서 총리직을 올해 11월까지만 하는 조건으로 살아남았다. 이번 총선은 그 연정이 깨지면서 최근 2년 새 4번째 치러진 선거다.

네타냐후가 퇴임에 몰리게 된 것은 국정운영을 잘못해서가 아니다. 우파 리쿠드당보다 더 오른쪽에 있는 야미나당에서부터 중도좌파 노동당 및 팔레스타인 정당까지 아우른 연합정부는 ‘반네타냐후 거국내각’이다. 정치적, 사회적, 인종적 컨센서스는 없다. 국내외 언론이 지적하듯 각기 다른 이유로 네타냐후가 싫어서 뭉친 이종(異種)결합 정부다. 

네타냐후 총리의 운명이 걸린 새 연정 신임투표 이틀 전인 지난 6월12일 예루살렘 시내에서 열린 반 네타냐후 시위에 참석한 한 여성이 무언가를 외치면서 두 손을 번쩍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네타냐후 집권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군사적, 경제적, 외교적으로 주변의 아랍권은 물론 이란을 포함한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넘보기 힘든 지역강국으로 굴기했다. 지난 세기말 40대 총리가 꿈꿨을 부강한 ‘유대인의 나라(Jewish State)’가 됐다.

미국 국제문제 전문가 파리드 자카리아가 인용한 텔아비브 바르일란대학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추산치 4만336달러의 이스라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이집트의 14배, 이란의 6배, 사우디아라비아의 2배에 가깝다. 인공지능과 컴퓨터디자인, 항공, 생물공학을 비롯해 고도로 정밀한 정보화 시대 경제를 갖췄다. GDP의 5%를 연구개발에 투자하며 18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다.

인구 935만명의 이스라엘 국방예산은 네타냐후가 최대 위협으로 꼽는 이란(8300만명)의 국방예산을 능가한다. 핵탄두 100개(추정치)의 핵무력을 제외하고도 질적, 양적으로 압도적인 무력을 갖췄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발사하는 로켓은 아이언돔에 막혀 실질적 위협이 되지 않은 지 오래다. 이스라엘에 대한 경제제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교역과 과학기술에서 모두 강하고, 다변화됐으며, 첨단 기술을 탑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외교적으로 견제해온 러시아와 인도 같은 나라들이 경제협력 강화를 구애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바레인이 최근 이스라엘과 관계정상화를 선택한 것 역시 상당 부분 경제적 동기에서였다.

네타냐후 총리가 1998년 10월22일 빌 클린턴 행정부가 미국 메릴랜드주 와이강에서 연 중동평화회담에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악수를 하고 있다. 비비는 이날 와이정상회담 합의를 준수할 뜻을 밝혔지만, 2018년 이스라엘이 '유대인 국가'임을 천명하는 '유대민족국가법'을 통과시켰다.  RTW/MR/HB/SB자료사진연합뉴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4년 동안 네타냐후는 오랜 숙원을 몇 가지 풀었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또 골란고원을 ‘이스라엘의 영토’로 미국의 공인을 받았다. 내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별다른 항의조차 못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역시 트럼프가 이스라엘에 건넨 ‘선물’을 환수하지 않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뒤 예루살렘에 대한 트럼프의 결정을 계승하겠다고 천명했고, 골란고원도 사실상 승인했다. 동예루살렘에 미국의 ‘팔레스타인 영사관’을 다시 연다는 조건이었다. 골란고원 문제는 “아사드 정권이 집권하는 한 논란의 여지가 있다”(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는 애매한 입장을 내놓았을 뿐이다. 다만, 바이든은 트럼프의 정책만 승계한 게 아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기조 역시 버리지 않고 있다. 최소한 이스라엘 점령지에서 유대인 정착촌 건설은 주춤할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네타냐후의 팔레스타인 정책이 충분치 않았다는 이유로 지지를 철회했다. 그중에는 새 연립내각 나프탈리 베네트 전반기 총리 내정자(49)의 야미나당 지지자들도 포함된다.

작전명 오차드(과수원). 이스라엘 공군기가 2007년 9월6일 공습으로 파괴한 시리아의 원전시설의 폭격전과 폭격후 모습. 이스라엘과 미국은 공습 뒤 건물 안에 북한 기술이 활용된 원자로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이후 2008년 2월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출범을 며칠 앞둔 이명박 정부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 내정자들에게 관련 동영상을 제공했다. 미국 정부가 공개한 사진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네타냐후의 운명을 속단하기 어려운 것은 야미나당 소속 의원들의 결정에 따라 반네타냐후 연합정부 구성이 불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8개 정당이 확보한 의원은 크네세트 정원 120명의 정확한 과반수(61명)이다. 단 1명의 의원만 돌아서도 연정은 깨진다. 네타냐후는 “선거 사기”를 주장하며 새 정부를 테러 지지자들이 뒷받침하는 ‘위험한 좌익정부’라고 매도하고 있다. 이란 핵위협을 새삼 부각시키며 집권기간 내내 동원했던 ‘공포의 정치’를 다시 가동하고 있다. 그의 지지자들은 의원들에 대한 개인적 보복을 위협하고 있다. 

각국 언론은 네타냐후의 선거불복 및 공포정치가 지난 1월 연방의사당 폭동을 사실상 유도했던 트럼프와 닮은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순서가 뒤바뀌었다. 트럼프 이전에, 또 트럼프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포퓰리즘의 실험실’(모로코 태생의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극우파와 마찬가지로 종교와 인종을 시민정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이스라엘의 정치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유의미한 변화의 맹아는 총선에서 4명의 의석을 확보한 팔레스타인 정당(라암)의 사상 첫 연정 참여다. 팔레스타인 시민권 정립의 기나긴 여정의 출발점일 수 있어서다. 

1997년 8월 27일 김영삼 대통령(오른쪽)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청와대 국빈만찬에서 양국 간 우의증진을 다짐하며 건배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4년 전 총리 자격으로 처음 방한했던 네타냐후는 “북한 미사일은 한국과 이스라엘 양국에 직접적 위협을 가한다”면서 “양국이 공동 대처해야 할 사안”이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필요시 단독행동을 주저하지 않았다. 2004년 북한 평안북도 룡천군 룡천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발사고로 시리아와 북한의 핵·미사일 커넥션 의혹이 생겼다. 열차에 타고 있던 시리아 핵과학자 12명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이후 북한발 시리아행 화물수송선을 집요하게 감시한 끝에 2007년 9월6일 시리아의 알 키바르 원자로 건설단지를 기어코 폭격했다.(고든 토마스 <기드온의 스파이들)>

북한·시리아 및 북한·이란 커넥션은 미국 의회 대북 강경파가 북핵 6자회동에 제동을 걸어온 빌미였다. 멀리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임기 말 평양 방문 계획을 급거 변경했던 것 역시 이스라엘이 결정적 변수였다. 오바마의 ‘아시아 회귀’ 선언에 이어 한국이 포함된 인도·태평양을 아시아 전략의 골간으로 삼은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스라엘 변수가 어떻게 작용할지 두고 볼 일이다. ‘네타냐후의 이스라엘’이 변화의 기로에 선 지금, 새삼 한반도가 겹쳐 보이는 까닭이다.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 6월6일 보건의료 종사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행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dkfg 2021.06.14 16: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77년 이스라엘 총선에서 건국 이후 처음을 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세력이 정권을 내놓았다. 이전과 이후 확연하게 달라진 전환점이었다. 당시의 승자는 메나햄 베긴 총리가 중도우파 세력을 모아 창당한 리쿠드당이었다. 하지만 '베긴의 당'은 '네타냐후의 당'으로 넘어오면서 극우 유대민족주의와 결탁해 중동평화의 진전을 막아왔다.
    20세기 말에 3년, 21세기에 12년, 도합 15년 동안 총리직에 머물렀던 베나민 네타냐후가 지난 13일 마침내 권좌에서 내려왔다. 흥미로운 것은 유대인 우파 입장에서 그는 성공한 지도자였다. 부강한 국가를 만들었으며 국내외 적으로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했다. 올해 총선에서 '반 네타냐후' 전선이 형성된 것은 '능력'와 '업적' 만으론 곤란하다는 컨센서스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는 국민 5명의 1명인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내침으로써 권좌를 유지해왔다.
    그가 남긴 혼란의 씨앗으로 중동이 흔들리면 그 화약냄새가 한반도까지 날아든다. 수많은 포인트를 지닌 중동문제를 네타냐후의 빛과 그림자와 한반도와의 관련성을 떼어내 정리해보았다.
    네타냐후의 운명이 갈린 크네세트 선거 며칠전에 작성한 글이다. facebook intro

  2. dkfg 2021.06.21 1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This Is Still Benjamin Netanyahu’s Israel
    June 20, 2021, 11:00 a.m. ET By Anshel Pfeffer

    Mr. Pfeffer is a senior writer at Ha’aretz and the Israel correspondent for The Economist. He is the author of “Bibi: The Turbulent Life and Times of Benjamin Netanyahu.”
    The days after Israel’s longest-serving prime minister was finally forced out of office have been anticlimactic.

    Naftali Bennett has been sworn in as prime minister, ending the 12-year rule of his predecessor, Benjamin Netanyahu, but this is still very much Mr. Netanyahu’s Israel. Even physically, Mr. Netanyahu is still living in the prime minister’s official residence on Balfour Street in Jerusalem. The day after his premiership ended, he was still receiving guests from abroad, including the former U.S. ambassador to the United Nations Nikki Haley and the televangelist John Hagee.

    Mr. Netanyahu’s political camp of far-right and ultrareligious parties may be in the opposition now, but they’re still his coalition, rallying around his promise to topple “this evil and dangerous leftist government,” and to do so much sooner than anyone expects.

    Meanwhile, there is the intractable conflict with the Palestinians and the same divisions within Israeli society. For the new government to have any realistic chance of survival, it can’t completely dismantle Mr. Netanyahu’s legacy, lest it unravel its fragile coalition. The clock cannot be turned back on the 12 years of his long rule. And though Mr. Bennett and his colleagues will not admit so openly, in some aspects they don’t want it to be.

    Three of the eight party leaders of the new coalition, including Mr. Bennett, are, if anything, even more nationalist than Mr. Netanyahu, and they ideologically oppose any territorial compromise with the Palestinians. The leaders of the five other parties that, in principle, favor various forms of “separation” or a two-state solution are content to put any such notions on hold for the time being. Any attempt in that direction will rip the new government apart and open the door to Mr. Netanyahu’s return.

    Mr. Netanyahu proved that Israel does not need to make any meaningful concessions to the Palestinians and can abandon any semblance of making progress in a nonexistent “diplomatic process” with them and still prosper. The so-called Palestinian problem, once such a cause célèbre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 has been relegated to the bottom of the global diplomatic agenda. The eyes of the world may have been on Gaza last month during the 11 days of warfare, but once a cease-fire was reached, they were soon averted. After 12 years of Mr. Netanyahu, there is no real pressure on Israel to end the blockade of Gaza or the military occupation of the West Bank.

    For some supporters of Mr. Netanyahu’s ouster, the idea that this government will remain stable by maintaining Mr. Netanyahu’s legacy of a never-ending occupation and inequality for millions of Palestinians will be unbearable. For another segment of society that championed this change, the dismantling of other Netanyahu legacies is progress enough. For both, the only answer is to begin healing divisions and strengthening democratic institutions.

    That the new government was sworn in on June 13 on the back of a 60-59 confidence vote is testament to just how divided Mr. Netanyahu’s Israel is. It was these divisions between Jews and Arabs, religious and secular, Ashkenazim and Mizrahim, that Mr. Netanyahu long exploited to win elections and build coalitions of resentment. He branded all his political rivals, even those to his right, with the dreaded label of “left-wing.” Now, in defeat, Mr. Netanyahu and his remaining allies are trying to portray the new government, headed by a religious nationalist prime minister, as a bunch of Judaism-hating, secular Ashkenazi elitists, a “leftist government.”

    In fact, the new government is the most diverse coalition Israel has ever known, ranging from the nationalist right to the Zionist left, along with a conservative Islamist party, a first in any Israeli government. As such, it has an opportunity to go some way toward reversing Mr. Netanyahu’s toxic endowment, just by proving to Israeli citizens that its members can work together for a decent length of time. A notable number of women and non-Jewish ministers are also in this government. It is, of course, no more Ashkenazi or secular in its makeup than Mr. Netanyahu’s previous governments were.

    Simply having a cabinet that can work together collegially, each member taking care of his own ministry’s policies and basic functions, will make a huge impression on Israelis who have been used to their politics being dominated by the battle for survival of just one man. But for the new government to survive, each of its disparate elements will have to be invested in the success of the rest. In other words, the nationalist leaders of the government will now have to rethink their rhetoric and detoxify their tone about the left. They must convince their supporters that everyone benefits from partnership and equality with Israel’s Arab citizens. If they do so, they will begin the long process of reversing decades of Mr. Netanyahu’s work. It won’t be easy.

    A government made up of small parties — none of which can dominate but all of which can bring the government down — will also be much more reliant for stability on the Knesset overall and on the judiciary, both of which Mr. Netanyahu tried to weaken and marginalize.

    But the very precarity of the government means the ongoing conflict with the Palestinians will be sidelined by necessity. A lack of meaningful progress on peace may likely be Mr. Netanyahu’s most lasting legacy. Even the historic inclusion of Raam, a party representing Arab Israeli citizens, in the coalition will not contribute to solving the Palestinian conflict. The agreement specifically bypasses any nationalistic or identity issues and focuses wholly on material concerns of the Arab Israeli community.

    The Netanyahu era is not yet over, though it may be in its twilight. Don’t expect this government to start tackling the core questions of Israel’s future. It has a hard enough task as it is.

    Anshel Pfeffer is a senior writer at Ha’aretz and the Israel correspondent for The Economist. He is the author of “Bibi: The Turbulent Life and Times of Benjamin Netanyahu.”

“소련과의 냉전은 베를린에서 싸워 이겼다. 다가오는 중국과의 냉전 역시 베를린에서 싸워 이기게 될 것이다.” 토머스 프리드먼이 지난해 여름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내놓은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가 불분명하던 그즈음 다소 생뚱맞게 읽혔다. 독일, 특히 올가을 총선에서 16년째 유지해온 총리직을 내놓겠다고 선언한 앙겔라 메르켈(67)의 독일은 조 바이든 행정부 취임을 전후해 국제정세의 변화를 가늠하는 이정표가 된 것 같다. ‘메르켈 이후’ 독일을 중심으로 한 세계의 변화는 물론, 덤으로 독일 국내 정치의 변화 방향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지난 5월8일 베를린의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독일은 어쩌면 ‘큰 스위스’를 꿈꾸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면 금기를 깨고 ‘존더베크(Sonderweg·특별한 길)’를 선택, 러시아 및 중국과의 관계를 확대하려는지 모른다.” 티에리 몽브리알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ifri) 소장이 지난달 15일자 르몽드 기고문에서 내놓은 말이다. 글의 요지는 프리드먼의 글과 비슷하다. “중국에 맞서려는 미국의 의지에 직면, 독일은 진정한 선택을 해야 한다”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국 전선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몽브리알 소장이 존더베크를 언급한 것 자체가 금기를 깬 것이다. 19~20세기 독일 역사를 돌아볼 때 등장하는 존더베크는 나치즘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차르식 전제주의와 영·불의 민주주의 체제 사이에서 독일만의 독자적인 ‘제3의 길’이 필요했으며 나치즘은 그 지정학적 특수성에서 나온 결과물이라는 역사적 해석이다.

몽브리알이 그럼에도 존더베크를 언급한 것은 ‘메르켈의 독일’이 서유럽 다른 나라들과 달리 자국의 국익만을 좇고 있음을 꼬집는 동시에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대러시아 포석에서 예외가 되고 있음을 지탄하기 위해서다. 독일이 러·중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고 있는 서유럽 국가들의 ‘정상적인 길’에서 이탈해 러시아와는 노르트 스트림2 가스관 건설사업을 진행하고, 최대 수출국 중국을 두둔하려는 노력을 두고 칼질을 했다. 프리드먼은 트럼프가 중국과 독일을 동시에 때리는 것을 지탄하며 1970년대 리처드 닉슨 행정부가 중국과의 데탕트로 소련을 제압했듯이, 중국을 제압하려면 ‘미·독 (경제)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이 군사적으론 지역 중견국이지만 경제, 특히 제조업의 글로벌 강대국(super power)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몽브리알도 독일을 ‘유럽 제1의 강대국’이라고 추켜세우면서 “독일의 선택에 향후 30년간 유럽은 물론 국제질서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지적했다. 프리드먼과 몽브리알 모두 지경학을 말하고 있다.

독일의 국가문장. 독수리의 머리는 오른쪽(서구)를 향하고 있지만, 두 날개는 동쪽과 서쪽을 향해 같이 뻗어 있다. 구미 민주주의 국가들과 보조를 맞추는 동시에 동쪽의 러시아 및 중국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메르켈의 '제3의 길'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취임 이후 벽에 부딪히고 있다. 위키페디아

동아시아 분단국에서 화두가 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은 독일이 처한 딜레마에도 적용된다. 중국은 유럽에 동아시아와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정치적·군사적 위협이 주로 대륙을 나눠쓰고 있는 러시아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중국은 안보 위협이라기보다 지식재산권 침탈과 불공정 무역관행으로 대표되는 경제적 위협이다. 물론 차이나 머니를 동원해 중·동유럽 국가들을 EU에서 떼어내고 있는 중국이 유럽통합에 위협요소이지만, 존재론적 위협에는 못 미친다. 미국은 안보를 제공하되, 파이가 줄어드는 경제적 기회다. 메르켈의 독일은 그 사이에서 어찌보면 가장 성공적으로 국익을 챙겨왔다. 몽브리알의 지적처럼 러·중과 미국 사이에서 영세중립국 스위스를 연상시키는, 일종의 ‘제3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독일 정치학자이자 저널리스트로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있는 콘스탄체 슈텔첸뮐러에 따르면 독일 통상정책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로비단체는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기업가들 모임인 오스트 아우스슈츠(Ost-Ausschuss)이다. 거의 매년 이뤄진 메르켈의 방중 때마다 중국에서의 사업 기회 확장을 노리는 독일 기업인들이 줄을 선다. 종종 3대의 여객기를 동원해야 할 정도다. 메르켈은 계기가 있을 때마다 러시아를 규탄해왔다. 러시아의 2014년 크림반도 병합과 우크라이나 동부 대리전쟁, 독일 소셜미디어에서의 가짜뉴스 살포, 2015년 독일 연방의회 서버 해킹, 2019년 베를린에서의 체첸 정치난민 피살 사건 등이 잇달아 발생하자 독일 의회는 러시아에 대한 재평가에 착수했다. 

러시아에서 발틱해를 거쳐 독일로 연결된 가스관 노르트 스트림1과 노르트 스트림2. 주황색 노르트 스트림1은 이미 사용되고 있고, 녹색의 노르트 스트림2는 94%가 완성된 채 미국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완공이 늦어지고 있다. 두 개의 가스관 사업의 러시아측 파트너인 가즈프롬이 홈페이지에 소개한 그림이다. 노르트 스트림2가 완공되면, 한해 1100억 큐빅미터의 가스를 공급될 수 있다. 

메르켈은 지난해 러시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에 대한 독극물 테러 기도를 비난하고, 나발니에게 독일 병원 치료를 제안했다. EU가 나발니 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러시아 고위 관료들에 대해 내린 추가 제재를 지지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와 미국 연방의회의 계속되는 중단 압력에도 불구하고 노르트 스트림2 가스관 사업을 접지 않고 있다. 기존 가스관이 경유하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는 물론 셰일가스의 유럽 공급을 노리는 미국의 이익을 공히 저해하는 프로젝트다.

메르켈은 중국에 대해서도 신장 위구르 및 홍콩의 인권탄압과 대만해협의 위기 고조와 관련, 날선 비판을 해왔다. 독일 정부는 통신규제를 강화해 중국 5G 장비업체인 화웨이의 독일 진출을 막을 계획이다. 중국의 안하무인 격 ‘전랑(戰狼)외교’ 관행에 대한 날선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헤이코 마스 독일 외교장관은 작년 9월 베를린을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면전에 대고 “우리는 국제적 파트너들을 존중한다. 그렇기에 똑같은 존중을 그들로부터 기대한다”고 쏘아붙였다. 독일 연방의회에서도 반중 정서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메르켈은 독일의 EU 의장국 6개월 임기가 끝나기 하루 전인 작년 12월30일, EU·중국 포괄적 투자협정(CAI)을 타결지었다. EU는 중국에 진출하려는 유럽 기업들을 상대로 한 불공정 관행의 개선을 요구해왔다. 민감한 조항이 많았기에 7년을 끌어온 협상이지만, 바이든 행정부 취임 20일 전에 황급히 아퀴를 지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지난 4월27일 독일의 14개 문화단체 단체장들과 함께 온라인 대화를 하고 있다. 독일 총리실 홈페이지

체결을 늦추고 ‘조기 논의’하자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의 제안은 간단하게 무시됐다. 미국에선 “독일이 돌아온 바이든과 유럽 간 사랑의 축제에 찬물을 끼얹었다”(포린폴리시)는 반응이 나왔다.

바이든이 취임 뒤 첫 다자 외교행사였던 지난 2월 온라인 뮌헨안보회의에서 “미국이 돌아왔다”고 강조했지만, 메르켈은 “우리(미국과 독일) 이해가 늘 수렴하는 건 아니다”라면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공정 94% 상태에서 2019년 2월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 탓에 완공이 늦어지는 노르트 스트림2 가스관 사업에 대한 불만이었다. 독일의 두줄 타기 외교 또는 ‘독일 퍼스트’ 선택은 국내외 압력에도 건재할 수 있었던 메르켈의 걸출한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중국의 굴기 이후 몇 차례 정권교체도 불구하고 미·중 사이에서 뚜렷한 전략적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는 동아시아 분단국의 거주민 입장에선 부럽기까지 한 리더십이었다. CAI 타결과 노르트 스트림2는 메르켈 집권 후반기 최대의 치적 또는 업적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메르켈의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바이든의 시간’이 시시각각 새로운 현실로 다가오는 것일까. 지난 4일 AFP통신이 브뤼셀발로 날린 소식은 지각이 변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유럽 각료이사회(the Council of Europe)에서 연설하고 있다. 독일 총리실 홈페이지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EU 부집행위원장(통상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유럽의회에서 CAI 비준을 받기 위한 집행위원회 차원의 정치적 노력을 잠정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직접적 원인은 지난 3월 중국의 위구르족 주민 탄압을 빌미로 EU와 중국이 주고받은 제재 탓이다. EU가 인권탄압에 관련된 중국 공직자 4명에 대한 인적제재를 발표하자, 중국은 비판적인 유럽의회 의원들에 대해 보복제재를 가했다. 돔브로우스키스는 “EU의 대중 제재에 대한 중국의 보복제재에 유럽의회 의원이 포함된 현 상황이 상서롭지 않기 때문”이라고 비준 노력 중단 이유를 밝혔다.

작년 말 황급하게 체결된 CAI의 세부 내용이 속속 밝혀지면서 협정안 자체에 대한 회의도 짙어지고 있다. 실비 카우프만 르몽드 논설위원은 13일자 칼럼에서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비영리재단의 지도자를 중국인으로만 임명하게 하는 등 여전히 불공정이 남아 있다”면서 제재 문제와 무관하게 유럽의회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 7일 베를린의 총리 관저에서 청소년 정책과 관련한 온라인 토론에 참여하면서 미소를 짓고 있다. EPA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메르켈이 함께 밀어붙인 CAI 비준 전망은 물론, EU·중국 관계의 풍향 자체가 이미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8일 시작한 EU·인도 투자협정 협상을 예로 들면서 유럽이 국제관계에서 중국이 아닌 인도·태평양을 바라보는 ‘새로운 노멀’이 시작됐다는 관측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6일 ‘유럽이 중국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기 시작했다’는 사설로 유럽의 변화를 환영했다. “메르켈의 ‘교역을 통한 변화’ 철학은 이미 시효가 끝났다”며 지난해 말 CAI 타결을 최대 지정학적 승리로 받아들였을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재고하라고 충고했다. 러·중과 양갈래로 접근했던 ‘메르켈 모델’은 독일 국내에서도 벽에 부딪힐 조짐을 보이고 있다. 

9월 총선에서 메르켈의 기민련(CDU)이 승리할 경우 총리 후보로 기대했던 아르민 라셰트 당대표가 갈수록 인기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 반유대주의자라는 악재까지 터진 상태다. 총선 전초전으로 최근 치러진 바덴뷔르템베르크주와 라인란트팔츠주 의회 선거에선 녹색당과 사민련(SPD)이 각각 승리했다. 특히 여성 당대표 안나레나 배어복(40)이 이끄는 녹색당의 약진이 주목을 받고 있다. 메르켈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실패 및 백신 공급 지체 탓에 CDU의 인기가 곤두박질하는 가운데 녹색당은 독일 내 각종 여론조사에서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 주정부 16개 중 11개에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2018년 주요 7개국 정상회의 첫날이었던 6월8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탁자에 두 손을 짚은 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면. 마크롱(메르켈 왼쪽) 프랑스 대통령, 메이 영국 총리 등 서방 지도자들이 트럼프를 따지듯 내려다보면서 항의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으로 트럼프 시대 G7의 실패를 상징하는 동시에 자유세계의 지도자로 떠오른 메르켈의 위상을 반영하는 사진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월스트리트저널이 유럽의 대표적인 비지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 보수 정당인 CDU가 아닌, 진보 성향 녹색당의 약진을 반기는 것 자체가 변화의 방증이다. 

재정적자를 허용하지 않는 블랙 제로(Black Zero) 정책에 충실해온 메르켈과 달리 중도 리버럴 정당으로 변신한 녹색당이 미국식 재정확대 정책을 펼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메르켈과 달리 중국과 러시아에 강경한 배어복의 외교노선 역시 월가가 환영하는 이유다. ‘무티(엄마) 메르켈’은 명실공히 ‘유럽의 총리’였다. ‘자유세계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바이든 취임 뒤 국제정세는 아주 천천히 바뀌고 있다. 가장 큰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독일인 것 같다.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나발니는 러시아의 진정한 지도자다.’ 지난 28일자 뉴욕타임스 1면에 게재된 기고문 제목이다. 필자는 저명한 러시아 저널리스트로 런던에 체류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하고 있는 올레그 카신(40)이다. 카신은 칼럼에서 “러시아에는 두 명의 지도자가 있다. 한 명은 크렘린궁에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고, 다른 한 명은 감옥에 갇힌 알렉세이 나발니”라고 썼다. 민주주의를 촉구하며 투쟁을 한 여느 야당 정치인들과 달리 나발니는 반부패운동을 벌임으로써 수백명에 불과하던 반푸틴 시위군중을 수천명으로 늘렸다는 상찬도 늘어놓았다. 그런데 나발니는 과연 러시아의 진정한 지도자일까.

서방 언론은 러시아를 중국과 터키, 헝가리 등과 함께 대표적인 ‘권위주의(authoritarian) 국가’로 분류한다. 보통사람들에게 권위주의 국가와 독재국가는 어슷비슷할 것이라는 짐작을 갖게 한다. 실제로 러시아에선 크렘린궁과 대적하는 야당 정치인이나 비판적 언론인들이 정체불명의 괴한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사건들이 있었다. 거물급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 전 제1부총리는 2015년 2월 총격을 받고 피살됐다. 하지만 중국이나 북한과 같이 당과 국가가 하나인 당국가 체제와는 유전자가 다르다. 어쨌든 민간 언론과 야당이 존재하며, 민주적 선거가 치러진다. 집권 뒤에도 유권자의 지지에 연연한다. 중국에는 없는 제도들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거리에 붙은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포스터 앞에서 한 경찰관이 통화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푸틴 정부의 광범위한 부패를 고발해온 나발니(44)는 작년 8월 시베리아 톰스크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오는 기내에서 생화학무기로 사용되는 신경제(노비촉)에 중독돼 목숨이 위태로웠다. 독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퇴원 뒤 지난 1월 귀국을 강행했지만, 2013년 다른 사건의 집행유예 기간 중 보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시 2년의 형을 받고 감금됐다. 러시아 정치가 여전히 흑막에 가려져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나발니는 구금 이후에도 주요 고비마다 자신의 입장을 성명을 통해 밝혀왔다. 정치문화가 불투명하지만 한편으로 공산당 1당 독재국가인 중국과 달리 야당과 야당 정치인의 활동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

나발니는 3월31일부터 해온 단식을 지난 23일 중단했다. 단식을 중단한 이유에 대해 주치의의 권고가 있었고, 자신이 단식에 돌입하며 내놓은 ‘일부 요구’가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고 역시 성명에서 밝혔다. 나발니가 밝히지 않았지만, 단식투쟁 덕에 국내외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다. 러시아는 오는 9월 총선을 앞두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나발니가 사망하게 되면 푸틴 정부가 그 결과에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미국 대통령은 실제로 국내법 ‘글로벌 마그니츠키 법’에 따라 인권탄압 책임자에 대한 비자 발급 중단을 비롯한 인적 제재를 할 수 있다. 러시아 정부의 부패를 고발한 뒤 피살당한 러시아 회계사의 이름을 딴 법이다. 하지만 백악관이 타국 야당 지도자의 단식과 최악의 경우 책임을 묻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미국 외교의 주요 목표 중 하나인 ‘민주주의 진작’과 인권의 보편적인 가치를 위해서일까.

지난 4월 28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푸시카르스키 정원의 한 건물 벽면에 그려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초상화를 한 직원이 페인트로 지우고 있다. 초상화에는 ‘새 시대의 영웅’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발니 벽그림은 이날 이른 아침에 발견됐지만 오전 10시30분쯤 페인트로 덮였다.(왼쪽 사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7일 상트페테르부르크 타브리체스키 궁전에서 연방의회 의원들과 만나고 있다. 타스·EPA연합뉴스

 

나발니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단순히 러시아 국내 정치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푸틴은 지난해 7월 헌법 개정을 통해 이론적으로 최장 2036년까지 집권이 가능해졌다. 미국은 혹시 푸틴 체제를 흔들 호재로 나발니를 보는 것이 아닐까. 러시아 민심은 사뭇 다르니 하는 말이다. 

러시아 민간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의 16일 조사에 따르면, 절반에 가까운 응답자(48%)가 나발니 재판이 공정했다고 평가했다. 불공정했다는 답변은 29%였으며, 23%는 평가를 보류했다. 올 1월 발표된 러시아공공여론조사센터(VTSIOM)의 국가기관 직무수행 조사에서 대통령은 61.6%의 지지(불만 28.8%)를 받았다. 지지율이 44.3%에 그친 러시아 정부(불만 28.4%)보다 높았다. 푸틴은 정치인들 중 66.5%(불신 29.4%)로 가장 높은 신뢰를 받았다. 무엇보다 푸틴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한 헌법 개정 국민투표는 78%의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됐다. 

취임 100일을 넘긴 바이든 행정부는 코로나19 대책과 경제부양 등 국내 정책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미·러 관계는 도널드 트럼프 시대에 비해 후퇴했다. 바이든은 지난 15일 러시아의 지난해 미국 대선 개입 정황이 담긴 정보당국 보고서를 근거로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안을 발표했다. 백악관은 “미국을 해하는 러시아 정부의 행동들에 대해 비용을 물게 하겠다”고 단언했다.

지난 4월21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수감중인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를 지지하는 군중이 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러시아 전역에서 1500여명이 시위와 관련돼 연행됐다. AP연합뉴스

미국이 위협으로 인식하는 양대 전략적 경쟁국가는 중국과 러시아다. 하지만 두 나라가 제기하는 위협의 성격과 강도 및 위협을 대하는 미국의 태세는 확연히 다르다. 중국은 사실상의 글로벌 강대국으로, 러시아는 지역 강대국으로 구분한다. 미국 국가정보국장실(ODNI)이 13일 공개한 연례 위협평가 보고서는 최대 위협으로 중국을 꼽았다. 보고서는 “중국은 경제·군사·기술 분야에서 사실상 (미국과) 동급의 경쟁자(near-peer competitior)이며 국제규범을 바꾸려고 한다”고 적시했다. 미국과 동맹국 간의 관계를 떨어뜨려놓으려는 공세적인 측면도 강조했다. 반면 러시아가 제기하는 지정학적 위협은 다분히 수세적이다. 미국이 독립국가연합(CIS) 국가들이 몰려 있는 유라시아에 간섭하는 것을 경계한다. 공세적인 것은 되레 미국이다. 

연례 위협평가 보고서 이틀 뒤에 공개된 미국 정보협의회(NIC)의 ‘글로벌 트렌드 2040’ 보고서 역시 중국과 러시아가 서구의 대안으로 내놓는 모델이 극명하게 갈린다는 점을 강조했다. 보고서는 “중국은 공산당의 권력독점과 사회통제 및 사회주의 시장경제, 특혜 무역 등 현 시스템을 글로벌 차원에서 확대하려고 하는 반면, 러시아는 전통적인 강대국 지위를 확대하고 유라시아를 러시아의 망토 안에 두려는 의도가 강하다”고 구분했다. ODNI의 자문기구인 NIC가 4년마다 발행하는 글로벌 트렌드는 향후 20년의 세계를 내다보는 전략 보고서이다. 두 개의 보고서는 공히 미국과 러시아의 이해가 충돌하는 지역으로 유라시아를 지목하고 있다. 그 핵심에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확대 문제가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월 21일 모스크바의 마네슈 중앙전시장에서 올해 연방의회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크렘린궁 홈페이지

냉전시대 소련으로부터 서유럽을 방어하기 위해 결성한 나토는 당초 12개 회원국을 현재 30개국으로 늘렸다. 러시아는 통독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나토를 확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점을 들어 나토 회원국이 늘어날 때마다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미국은 옛 바르샤바 조약국이나 CIS 국가들을 러시아로부터 떼어내 나토에 가입시키거나, 친러 정권을 친서방 정권으로 돌려놓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많은 경우 민주주의 지원을 명분으로 시작, 이른바 ‘피플 파워’를 거치는 수순이었다. 2003년 조지아의 장미혁명과 2년 뒤 키르기스스탄의 튤립혁명 등 각국의 민주화 시위를 꽃에 비유했지만, 내막은 러시아를 옥죄려는 중앙정보국(CIA)의 공작 혐의가 짙다.

현재 서구와 러시아 사이에 완충국가는 사실상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밖에 없다. 그 와중에 발생한 것이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분리였다. 러시아는 나토의 동진과 유라시아의 친서방화에 무력 사용으로 맞서왔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 입장에서 유라시아는 전략적으로 필수적인 ‘가까운 외국(近外·Near Abroad)’이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최근 10만여명의 육군과 흑해함대를 동원해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17일 벨라루스 민족주의자들을 동원해 ‘색깔혁명’ 시나리오에 따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을 제거하려는 쿠데타 기도를 사전에 적발, 모스크바에서 그 주모자들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탈냉전 뒤 끊임없이 확장을 해왔다. 2017년 몬테네그로가, 2020년엔 북마케도니아가 가입했다. 러시아 서쪽의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 러시아 남쪽의 흑해변 국가 조지아를 가입시키면, 러시아 포위가 사실상 완성된다. 밝은 녹색으로 표시된 국가가 현 가입국이다. 나토 홈페이지 

 

미·러 관계가 지금과 같은 추세로 악화일로를 걷는다면 바이든 행정부 앞에 놓인 숱한 지정학적 갈등은 해결이 더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미국 지도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러시아에 대해 모욕적인 공개발언을 하고 있다.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은 위협평가 보고서 공개 뒤 “러시아는 죽어가는 강대국이기 때문에 위험하다. 상처를 입은 채 구석에 몰려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바이든은 3월 ABC방송 인터뷰에서 질문 끝에 한 말이기는 하지만, 푸틴을 “살인자(killer)”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러시아가 과연 미국 안보에 위협이긴 한 건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직후인 2014년 5월 서방의 군사개입 가능성을 배제했다. 러시아는 미국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가할 우려가 없는 ‘지역 강국(regional power)’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적어도 미·러 관계에서는 러시아의 언어가 더 점잖다. 푸틴은 21일 연방의회 국정연설에서 “오늘 연설은 대부분 국내 문제에 할애하고, 안보 문제는 말 그대로 몇 마디만 하겠다”면서 “누구도 (러시아가 그어놓은) 레드라인을 넘을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러시아의 대응은 대칭적일 것이며 신속하고 단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푸틴은 연설 다음 날 우크라이나 접경의 러시아군을 철수시켰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오른쪽)과 데니스 슈미갈 우크라이나 총리가 지난 2월9일 브뤼셀의 나토 본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나토는 이날 우크라이나와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벨로루시와 함께 러시아와 나토권 사이에 있는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나토 홈페이지

올해 미국의 위협평가 보고서가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한껏 강조했지만, 기실 군사적으로 미국과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는 러시아뿐이다. 바이든이 취임 한 달도 안 된 2월 초 러시아와 서둘러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의 5년 연장에 합의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협력이 아쉬운 분야는 뉴스타트 연장뿐이 아니다. 이란과 시리아는 물론 한반도 평화 역시 더 멀어진다.

소련이 미국에 치명적인 위협이던 1970년대, 미국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중국과의 데탕트로 전략적 삼각관계를 완성했다. 뒤늦게 후회하고 있지만, 어쨌든 냉전에서 승리케 한 신의 한 수였다. 중국이 진정 미국에 존재론적 위협이라면, 미국이 모욕하는 대신 껴안아야 할 국가는 정해져 있다. 중국이 실제로 위협을 느낄 국가는 인도, 호주, 일본이 아니다. 푸틴은 중국이 아닌, 미국과의 밀월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gino's gino's 2021.05.04 11: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페북 인트로;

    “러시아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한 짓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이런 방식으로 개입한 건 전적으로 잘못됐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이 사용한 방식은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국과 러시아가 모두 사용해온 방식이다. 정당의 본부를 뚫고 들어가거나, (첩자용)비서들을 뽑게하고, 당내 정보원을 두며, 정보 또는 거짓정보를 신문에 흘렸다.”
    Dov H. Levin 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 교수의 말(뉴욕타임스)이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러시아(소련)는 1946년부터 2000년까지 타국의 선거 36개에 비밀리에 개입했다. 미국은 같은 기간 81개의 선거에 개입해 친미성향의 정치인을 돕고, 비우호적인 정치인의 낙선을 공작했다.
    맞다.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다. 예산 배정 절차가 투명하다. 하지만 자국의 이익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게 현실 국제정치다. CIA에 쥐어주는 공작자금은 '민주주의 진흥법'을 비롯한 법에 따라 의회에서 배정한다. 그 자금으로 현찰을 보따리로 전달하거나, 외국 정치인의 스캔들을 현지 신문에 흘린다. 세르비아에서는 수백만개의 팸프릿과 포스터, 스티커를 살포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인권'의 이름으로, 대북전단을 날리는 분들이 다른 생업이 없이 활동할 수 있게 도와준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달 2020 대선 개입을 빌미로 러시아를 다시 추가 제재했다. NATO를 러시아 국경선까지 끊임없이 확대하는 한편, 친미·친서방 러시아 정치인이 세력을 확장하도록 지원한다. 기회 있을 때마다 러시아를 '상처받은 강대국' '글로벌 강대국은커녕 기껏해야 지역강국'이라고 멸시한다. 미국-러시아만 놓고 본다면 어느 쪽이 더 위협을 느낄까.
    바이든 행정부는 취임과 동시에 “중국이 최대 위협”이라며 한껏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이 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의 일치율이 100%다. 그런데 중국이 진정으로 최대 위협이라면, 미국이 달려가야할 나라는 러시아다. 러시아-미국 협력이 성사되면 중국은 그야말로 존재론적 위협에 빠질 수밖에 없다. Quad(미국-인도·호주·일본)로는 족탈불급이다. 각각 미·중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으려 눈치를 보고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요상한 중국위협론이자, 요상한 지정학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United_States_involvement_in_regime_change

미국은 명분을 좇고 있고, 중국은 사태를 관망하고 있으며,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은 공허한 대화 타령만 늘어놓고 있다. 동남아시아 전략공간에서 그다지 존재감이 없었던 러시아의 속내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과 함께 미얀마의 주요 이웃 국가인 인도는 뒤늦게 군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그야말로 목소리만 높이는 상황이다. 고립무원. 민주화를 갈망하는처한 현주소다.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지 70여일이 지난 13일 현재 군경에 714명이 살해됐고, 3054명이 구금 또는 판결을 받았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717명은 도피 중이며 그중 일부는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다. 미얀마 군부의 시민 학살을 기록하는 정치범지원협회(AAPP)의 집계 결과다.

미얀마 최대 축제인 띤잔의 마지막 날인 지난 16일, 양곤 시내에서 한 여인 장미꽃 옆에 촛불을 밝히고 있다. 둘러선 사람들은 저항의 상징인 세손가락 경례 또는 다짐을 하고 있다. 현지 주민들은 군부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쿠데타 반대 시위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해 허용한 축제기간을 오히려 민주화 시위의 기회로 삼아 다시 거리로 나섰다. AP연합뉴스 

 

일부 외신은 미얀마가 내란으로 가고 있다면서 소수민족 반군과 시민들이 무기를 들고 있다고 진단하지만, 50만 병력의 땃마도(군부)에는 족탈불급이다. 리비아나 시리아처럼 혼란의 도가니로 흘러갈 가능성도 크지 않다. 현재로선 개연성이 높지 않은 가정이다. 그러는 사이 미얀마 군부의 무자비한 진압과 원천봉쇄로 거리에 나서는 시위는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게 외신의 전언이다.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민주화 시위와 마찬가지로 폭압과 언론통제 탓에 시나브로 잊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한국 사회의 ‘미얀마 현상’

외국의 민주화 시위와 군부 또는 권위주의 정부의 유혈진압에 대한 국내의 관심은 좀체로 오래 지속되지 못해왔다. 한동안 관심을 끌다가 희미해지거나 다른 이슈로 관심이 옮겨가는 패턴을 보여왔다. 그런데 2월1일 군부 쿠데타 이후 미얀마 민주화 시위에 보이는 높은 관심은 예외적인 현상이다. 언론과 정부, 불교·개신교·가톨릭 등 범종교계 및 시민사회가 모두 예의 주시하며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 언론에서는 온·오프라인을 통해 거의 매일 미얀마 소식이 전해진다. 어느 나라의 언론매체보다 높은 관심이다. 대학가와 시민사회 일각의 관심을 끌었던 재작년 홍콩 민주화 시위 때는 물론, 개신교 일각에서 ‘이슬람 특혜 반대’ ‘할랄단지 조성 반대’ 목소리를 높였던 3년 전 예멘 난민들의 제주 상륙 때와도 확연히 구분되는 반응이다. 지난해 태국에서 번졌던 민주화 시위 당시의 반응과도 폭이 다르다.

띤잔 첫날인 지난 13일 만달레이 시내에서 열린 띤잔 퍼레이드 중 장미꽃을 든 여성이 저항의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지난 10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오월어머니집’ 회원들이 미얀마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만달레이·광주 EPA·연합뉴스

 

한국에서 일고 있는 ‘미얀마 현상’은 그 자체가 뉴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얀마는 과연 어떤 경로를 거쳐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일까. 많은 이들이 언론매체는 물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 전해지는 유혈진압 장면을 보고 광주를 연상한다고 전한다. 기억은 기억을 되비친다. 한국에 거주하는 웨이 누에(35)는 고향인 미얀마 중부 낫먹(Natmouk)에서 비디오테이프로 본 영화 <화려한 휴가>(김지훈 감독)를 잊지 못한다. 1988년 8월8일부터 시작된 미얀마 민주화 시위를 보기엔 어렸기에 유혈사태를 경험하지 못한 그가 본 영화 속 광주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위대에 밥해주던 아주머니가 기억난다. 죽어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서로 도와가며 싸우던 모습들이 생생하다”고 전했다. 한국인과 결혼한 그는 이제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 연대’의 활동가로 ‘광주의 후예들’에게 관심과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적지 않은 미얀마 청년들에게 한국은 동경의 대상인 듯하다. 민주주의 선도국이자 경제발전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K팝의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남한이 되고 싶었는데, 쿠데타 탓에 북한(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이 되고 있다”는 한탄이 미얀마 청년들 사이에 나돈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지역이 아닌 아시아 국가를 볼 때는 많은 경우 한반도의 어제와 오늘과 겹쳐 보인다. 그 익숙함이 자칫 굴절된 시선을 갖게 한다.

한국 사회가 광주를 회고하는 시각에는 필연적으로 ‘단절’에서 오는 안도감이 포함된다. 한국은 더 이상 군부독재 국가가 아니라는 안도감, 거리에 나가 구호를 외치더라도 유혈진압 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깔려 있다. 단절은 결코 연대로 이어질 수없다. 기왕 미얀마를 통해 한국을 돌아보려면 역으로 볼 것을 권한다. 그래야 미얀마도, 한국도 제대로 바라볼 시야가 확보되며, ‘한국적 오리엔탈리즘’의 우를 피해갈 수 있다. 민주화는 ‘각성한 시민’이 쟁취하는 것이라는 전제에서 그렇다. 

한국에 거주하는 미얀마 청년이 지난 11일 서울 성동구 옥수동 주한 미얀마대사관 무관부에서 열린 군부쿠데타 규탄 시위 도중 현지 군경이 민주화 시위에 참가한 주민을 무릎꿇이는 사진을 들고 있다. 김영민 기자

 

■ 미얀마에 비친 한국, 한국에 비친 미얀마

한국은 선거에서 드러난 민도(民度)에서 미얀마를 앞선 적이 많지 않다. 되레 그 반대다. 미얀마 쿠데타의 가장 큰 원인은 작년 11월 총선에서 배태됐다.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상·하원에서 476석을 얻었지만, 군부가 뒷배를 봐주는 통합연대발전당(USDP)은 56석에 그쳤다. NLD의 압승이 권력을 분점해온 군부를 움직였다는 해석이 지배적인 까닭이다. 미얀마가 군부의 위협 속에 치른 선거에서 단호하게 민주정당을 지지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군사정부가 선거 결과를 무효화했지만, 1988년 민주화 시위 2년 뒤 치른 총선에서 수지의 NLD에 75%의 표를 몰아주었다.

한국 유권자들은 5·18민주화운동 뒤 처음 직선으로 치러진 1987년 대선에서 ‘한국의 USDP’ 격이던 민주정의당 후보에게 가장 많은 득표율(36.64%)을 선사했다. ‘한국판 USDP’의 원조 격인 공화당 역시 직선으로 치른 대선에서 여당 지위를 빼앗기지 않았다. 선거 결과를 놓고 보았을 때 미얀마의 시민의식이 한국보다 더 각성돼 있었고, 이번 쿠데타 이후 시위를 이어온 과정에서 보듯 여전히 각성돼 있다. 미얀마 군경 중에는 벌써부터 진압명령에 불복하고 시위대에 가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5·18 유혈진압에 참가했던 진압군의 고백 또는 폭로가 나타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쿠데타 발발 직후 세계는 물론 땃마도조차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강력한 변수는 미얀마 민중이 보이고 있는 저항의 강도다. 결코 군부독재의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민중의 결기만이 도드라져 보인다. 미얀마의 유일한 희망은 ‘각성된 시민들’ 뿐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미얀마 인들이 지난 달 28일 주한 미얀마 무관부 인근인 서울 성동구 옥수동에서 민주화 시위대에 총격을 가한 진압 군경을 비난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세손가락 인사를 하고 있다. 비닐장갑과 마스크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서다. 이준헌 기자

 

영국 자선인권재단(CAF)이 전 세계 140개국에서 갤럽 여론조사를 통해 발표하는 ‘세계기부지수’에서 미얀마는 최근 10년 평균 2위다. 낯선 사람 돕기, 금전적 기부 경험, 봉사 시간 등 3가지 항목을 종합한 지수다. 미얀마가 다시 2위를 한 2021년 지수에서 한국은 32위에 불과했다. 최대 도시 양곤을 중심으로 군부의 잔인한 진압에 거리시위가 줄어들고 있지만, 쓰러지더라도 서로 부축하며 민주화 열망을 지속 가능하게 해줄 자질이자 동력이다. 기부와 봉사가 ‘함께 풍성해지는 행위’라면, 미얀마 민중에 대한 연대 역시 한국과 미얀마 시민사회가 함께 강해지는 행위여야 한다. 미얀마 시위를 계기로 한국의 글로벌 인지성이 높아진다면 더할 나위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5·18의 과거를 회고하며 자선을 베풀듯이 관심을 갖는다면, 한계가 분명할 수밖에 없다.

미얀마 군사정부는 2008년 헌법에 근거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입법·사법·행정권을 거머쥐었다. ‘1년 내 총선’을 공약했지만, 계엄령은 1년 단위로 얼마든지 연장이 가능하다. 사태는 장기화할 수밖에 없으며, 오랜 투쟁을 가능케 하는 연대는 일시적, 선언적 지원이 아니라 금전적 지원을 포함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게 바람직하다. ‘우리의 과거’가 아닌, ‘그들의 미래’에 지속 가능한 연대의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이다. 

■ 냉혹한 국제사회, 아직은 관망 중

국제사회는 주로 미얀마 군부의 돈줄을 차단하는 제재에 착수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직접적인 개입은 언감생심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미얀마 중앙은행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로부터 인출하려던 10억달러를 동결하는 한편 미얀마 국영보석회사를 제재했다. 미얀마의 민정 복귀를 계기로 2013년 맺었던 교역 및 투자협정에 따른 모든 무역거래를 중단시켰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늘 강조하는 ‘비슷한 뜻을 가진 나라들(Like-Minded Nations)’은 아직 머뭇거리고 있다. 지난달 27일 미얀마 국군의날에 자국 무관을 참석시킨 8개국에는 중국과 러시아, 파키스탄 외에도 인도와 태국, 베트남 등 미국이 연합전선을 펴려는 국가들이 포함됐다. 특히 미얀마 3대 투자국인 일본은 본격 제재를 미루고 있다. 미국·호주·일본·인도 등 쿼드(Quad) 참여 국가들 사이에도 대응이 다른 셈이다.

지난 13일 미얀마 최대도시 양곤 시내에서 주민들이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국 정부는 지난달 12일 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먼저 미얀마 군사정부에 대한 제재 방침을 발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정권 차원에서 미얀마 민주화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외교부·국방부·기획재정부 등 7개 부처가 공동으로 국방·치안 및 전략물자 수출·개발협력 등 3개 분야의 대응 조치를 발표했다. 이 중 2000년대 초부터 국내 일각에서 비판을 받았던 공적개발원조(ODA)와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등 공적자금의 미얀마 유입에 관심을 기울인 것 자체가 큰 변화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을 필두로 한국가스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 롯데그룹 등 대부분이 미얀마 군부기업과 합작 형태로 진출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발표는 대부분 검토 단계일 뿐, 아직 실현되지 않은 방침들이다.

4월13~16일은 원래 미얀마인들에게 1년 중 가장 행복한 물축제(띤잔) 기간이다. 하지만 지난해 띤잔이 코로나19로 취소된 데 이어 올해는 유혈이 낭자하는 가운데 최악의 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달 말에 만났을 때만 해도 생기가 넘치던 웨이 누에는 이제 암울함을 토로한다.

“어두운 밤을 걷는 것 같다. 지난주 바고에서만 하루 100명 넘게 죽었다고 한다. 양곤에선 시위가 줄어가고….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다. 제발 학살만이라도 중단됐으면 한다.” 

한국 외국어대학과 한국 예술종합대학 총학생회가 지난 24일 서울 한남동 주한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군부 독재 청산을 위해 투쟁하는 미얀마 시민들과 연대하기 위해 벌인 공동시위에서 세손가락 인사가 그려진 펼침막을 들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국내에 거주하는 미얀마인들도 함께 참가했다. 이준헌기자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df 2021.04.17 17: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 공지영의 공개강연에서 알게된 '푸른눈의 수녀님'이 있다. 이탈리아 산 안토니오 수녀원에서 44년 동안 '봉인 생활'을 하시고 선종하신 분이다. 작은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자발적으로 갇힌 채 평생을 기도하셨다고 한다. 기도의 주제는 코리아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그 참상을 전해듣고 코리아의 평화를 일평생 기원하셨다고 한다. “누군가의 기도로 우리가 이정도로 살게 됐다”는 작가의 말이 천둥처럼 다가왔다.
    수유리 크리스천 아카데미. 한국이 군사독재의 야만 밑에서 신음하던 시절 수십년 동안 민주 인사들의 피난처이자 진지가 됐던 단체다. 이원 강원룡 목사님이 1960년대 초 서독 교계의 지원을 받아 설립한 단체이다. 이후 수십년 동안 독일 교계의 정신적, 물질적 지원 덕에 활동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여해의 자서전 '역사의 언덕에서'를 읽고 알게 됐다.
    글로벌 인지성이 그다지 높지 않은 한국 사회의 '미얀마 현상'을 보고 떠오른 두가지 사실이다. 민주화는 우리 만의 힘으로 이룬 게 아니다. 바다 건너 누군가의 지속적인 염원과 지속적인 지원이 기적을 만들었다. 미얀마에 대한 한국의 관심이 반가우면서도 '광주'를 회고하는 시선에 매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에서 이 글을 썼다. '우리의 과거'가 아닌, '그들의 미래'를 위해 지속적인 지원을 해야 비로소 세계시민에 한발짝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야 한국 시민사회도 함께 강해진다.

  2. dkfg 2021.06.26 15: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Confident in Its Impunity, the Myanmar Junta Ignores Diplomacy
    The generals who seized power five months ago have shown no inclination to heed international pleas to reverse themselves, even as Myanmar slides into a failed state.

    June 24, 2021. NYT
    By Richard C. Paddock and Rick Gladstone

    Western powers have imposed sanctions. Neighboring countries have implored the military to restore democracy. More than 200 human rights groups have called for an arms embargo. And last week, the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adopted a blunt rebuke aimed at isolating the generals.

    The diplomatic pressure has done little to change the situation in Myanmar.

    The military dictatorship now ruling the Southeast Asian nation has brushed aside the entreaties and threats, even as the country of 54 million people hurtles toward paralysis and possibly civil war that could destabilize the region. Confident in its impunity after a Feb. 1 coup, the putschists have stretched diplomacy to its limit.

    Was this the outcome that had always been foreseen?

    Not initially. Many people in Myanmar had hoped for intervention by the United Nations or perhaps the United States in the period immediately following the coup, which upended a November election victory by the civilian leadership and escalated into a brutal repression. Pro-democracy protesters carried signs that read “R2P,” or “Responsibility to Protect,” referring to a 2005 United Nations doctrine affirming the responsibility of nations to protect populations from such egregious crimes.

    But diplomatic efforts at the United Nations and the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the 10-nation regional body known as ASEAN, have largely fizzled.

    Why does Myanmar’s coup leadership appear so confident?

    The country, formerly known as Burma, was run by the military for decades after a coup in 1962, and the generals in charge never really embraced the idea of democracy. The Constitution they adopted in 2008 paved the way for the election of civilian leaders but ensured the military’s complete autonomy and veto-power over major constitutional amendments.

    Thant Myint-U, an American-born Burmese historian and grandson of U Thant, the former United Nations secretary general, wrote in a recent edition of Foreign Affairs that the Myanmar army’s need for total power is ingrained.

    “It is led by an officer corps that cannot imagine a Myanmar in which the military is not ultimately in control,” he wrote.

    The coup leader, Senior Gen. Min Aung Hlaing, appears to have secured vitally important allies — China and Russia — insulating Myanmar from any interventionist steps. The general also oversees a powerful patronage network built around two military-owned conglomerates and his family’s businesses. A democratic system could imperil them.

    The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the 15-member body that is empowered to take coercive action, has issued only mildly worded criticisms since the coup, at least partly reflecting resistance to anything stronger by China and Russia. Chinese diplomats have recently referred to Gen. Min Aung Hlaing as Myanmar’s leader. He also was treated well in a visit to Russia this week.

    Human rights activists have expressed exasperation at what they view as the Security Council’s failure on Myanmar.

    “The council’s occasional statements of concern in the face of the military’s violent repression of largely peaceful protesters is the diplomatic equivalent of shrugging their shoulders and walking away,” Louis Charbonneau, the U.N. director at Human Rights Watch, said last month in joining more than 200 other groups in demanding the council impose an arms embargo.

    Was the junta damaged by the General Assembly’s rebuke?

    The General Assembly adopted a resolution denouncing the coup on Friday, an exceedingly rare gesture that grew partly out of the Security Council’s inaction, and it was deemed a success by Western diplomats who said Myanmar’s military had now been ostracized.

    But the resolution’s language was weakened to ensure more yes votes — and even then, 36 countries abstained. Analysts said the vote was unlikely to persuade the junta to negotiate with its domestic adversaries.

    Nonetheless, said Richard Gowan, the U.N. director at the International Crisis Group, the resolution was “at least a clear signal of international disapproval for the coup and will make it harder for the junta to normalize its relations with the outside world.”

    What have other Southeast Asian nations done about the coup?

    ASEAN, which includes Myanmar, has tried to mediate. But its efforts have done more to help Gen. Min Aung Hlaing consolidate his authority than to restore democracy.

    The military’s takeover compelled ASEAN to convene a meeting in April, to which they invited Gen. Min Aung Hlaing.

    ASEAN practices noninterference in the internal affairs of members and did not formally recognize the general as Myanmar’s new leader. But his red-carpet arrival for the meeting, held in Jakarta, the Indonesian capital, was repeatedly trumpeted by Myanmar’s state-run media as recognition of his leadership.

    ASEAN conspicuously did not invite anyone to represent the deposed leadership, which now calls itself the National Unity Government, or anyone else from the pro-democracy movement.

    The leaders agreed on what they called a “Five-Point Consensus,” including the immediate cessation of violence, constructive dialogue to find a peaceful solution and ASEAN’s appointment of a special envoy to facilitate mediation.

    While member nations Indonesia, Malaysia and Singapore pushed for ASEAN to take firm action, strong measures were resisted by Thailand, said Aaron Connelly, a research fellow at the 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 in Singapore. (Thailand’s government is headed by a former general who took power in a 2014 coup.)

    The consensus made no mention of freeing political prisoners, who now number more than 5,000 and include the country’s elected civilian leader, Daw Aung San Suu Kyi. Ms. Aung San Suu Kyi would normally have attended such a meeting.

    ASEAN has yet to name the special envoy. So far, the main outcome of ASEAN’s diplomatic effort has been to damage its own credibility. Myanmar protesters have been burning the ASEAN flag at demonstrations.

    What is the National Unity Government and what does it do?

    Image
    U Kyaw Moe Tun, Myanmar’s ambassador to the United Nations. He has refused to cooperate with the junta.
    U Kyaw Moe Tun, Myanmar’s ambassador to the United Nations. He has refused to cooperate with the junta.Credit...Celeste Sloman for The New York Times
    The winners of the November election were scheduled to be sworn into office on Feb. 1. But that morning, soldiers swept through the capital city, Naypyidaw, and arrested many of the elected officials. Some who escaped have since formed the National Unity Government, which has declared itself Myanmar’s legitimate government.

    Myanmar’s ambassador to the United Nations, U Kyaw Moe Tun, who refused to cooperate with the junta, now represents the National Unity Government. While the world body continues to regard him as Myanmar’s ambassador, no country has formally recognized the National Unity Government.

    In a departure from the stance of Ms. Aung San Suu Kyi, the National Unity Government has formed alliances with ethnic armed groups that have long battled the Myanmar military. And in a move that could win support from Western countries, the National Unity Government has called for ending discrimination in the country, and for the Rohingya to receive full citizenship. The persecuted Muslim minority was targeted by the military in a ruthless campaign of ethnic cleansing that forced more than 700,000 people to flee to Bangladesh.

    Seeing futility in diplomacy, the National Unity Government also has formed an army that has made small-scale attacks against pro-military targets, raising the prospect that Myanmar could face a protracted civil war.

    Christine Schraner Burgener, the U.N. special envoy for Myanmar, who has repeatedly been blocked from visiting the country, warned of increased violence in remarks to the General Assembly after its recent vote. “Time is of the essence,” she said. “When we look back in 10 years, we should not regret having missed an opportunity to put this country back on the path of democracy.”

[美 총기참극] 美학생들 “개인 범죄일뿐” 되레 한국인 위로

2007-04-18 18:24 입력 2007-04-18 18:24 수정

‘참극의 현장’은 언제 끔찍한 일이 벌어졌나 싶을 정도로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17일(현지시간) 찾은 버지니아공대 본관 건물에 걸린 검은 조기가 비극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악몽을 털어내려는 학생과 교직원들의 차분한 노력이 엿보였다. 넘어서야 할 비극은 되레 모두를 하나로 묶어준 것 같았다. 친구들을 비명에 보내야 했던 전날 강풍에 진눈깨비까지 날렸던 하늘은 맑았고,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17일 버지니아공대 워샴 스타디움에서 열린 총격사건 희생자 추모제가 열리는 동안 두 여학생이 손을 맞잡고 슬품을 함께 하고 있다.

한국과 페루, 인도, 인도네시아, 이집트, 독일,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광기의 총격을 퍼부은 조승희씨를 포함해 숨진 사람들의 출신국만 7개국 이었다고 수사관계자는 전했다. 그래서인지 남은 사람들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국적에 개의치 않았다. 교직원 수잔 트루러브(여)는 “범인이 어디에서 왔는지가 무엇이 중요하겠는가”라면서 “대학과 블랙스버그 공동체의 마음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말했다.

30명이 친구들이 곁을 떠난 노리스홀 건물은 주 경찰당국에 의해 봉쇄돼 있었다. 노란색 테이프 밑에는 학생들이 갖다놓은 추모의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슬픔은 곳곳에 널려 있었다. 오후 2시 열린 추도식에서는 자식을 잃은 학부모들이 학생들을 부둥켜 않고 우는 모습이 보였다.

조지 부시 대통령 내외는 “오늘은 온 나라가 슬픔에 잠긴 날”이라며 슬픔을 나눴다.

추모객들은 행사장인 캐슬 콜롯세움을 메웠다. 인근 미식축구장에도 수천명의 추모객들이 모였다. 한인 학생들도 삼삼오오 모여들어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전날 팔에 관통상을 입고 치료를 받았던 박창민씨(토목공학·석사과정)도 친구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많은 한인 학생들은 ‘죄인 아닌 죄인’이라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학생은 “범인이 중국계라고 해도 미국인이 보기엔 같은 아시아인이기에 위축될 텐데 한국인이라니…”라면서 “미안할 뿐”이라고 말했다.

버지니아공대 총격 사건으로 부상을 입은 박창민씨가 17일 대학내에서 진행된 희생자 추모행사에 참석했다.

노리스홀에서 10여m 떨어진 잔디광장 드릴필드의 나무들에는 희상자 수대로 32개의 검은 리본이 둘러쳐 있었다. 다른 나무들에는 학교의 상징색인 주황색과 자주색 리본이 매달렸다. 저녁 8시부터 열릴 촛불집회에 앞서 이 학교 건축학과 학생들이 꾸며놓은 것이다. 기 탈라리코 (건축학과2·23)는 “검은 리본을 32개로 할지 아니면 범인을 포함해 33개로 할지 잠시 토론이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오늘 행사가 추모를 위한 것인 만큼 범인을 제외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는 설명이다. “범인에 대해서는 주변에서 고립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한손엔 촛불을 들고 다른 손엔 친구의 손을 잡았다. 저마다 크고 작은 원을 그리며 둘러 서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기도를 올렸다. 눈시울이 붉어져 있기도 했다. 기도어에는 추모의 마음과 함께 ‘회복’ ‘치유’라는 단어가 많이 들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만나는 미국 학생들마다 "한국 학생은 물론 아시아계 학생들에까지 피해가 미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얼추 20명 가까이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단 한명도 예외없이 되레 이를 걱정하는 기자를 안심시키느라고 애를 썼다. 블랙스버그 주민 브랜디 오웬스(21·여·상점 점원)는 “(범인은) 누구라도 될 수 있다. 아무도 알 수 없다. 성과 인종, 출신국은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태생 일본인 2세 아키라 카네사카(20)는 “백인학생들의 반발이 걱정됐지만 그리 심각한 것 같지는 않다”고 전했다.

촛불행사가 채 끝나기 전 운동장에 배포된 대학신문 컬리지에이트 타임스에는 ‘가슴통(Heartache)’이라는 굵은 헤드라인이 박혔다. “여전히 수많은 의문을 남긴 어제의 사건은 어쩌면 영원히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라고 슬픔을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순간적인 광란에 산산히 깨졌던 세계를 그 이전 상태로 되돌려 놓기 위한 재건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하나의 공동체로서”라며 다짐으로 끝을 맺었다. 밤 11시가 임박한 시간. 잔디광장을 굽어보는 보러스홀 건물 앞 화단에서는 며칠째 계속된 추운 강풍으로 누워버린 붉은 튤립이 일어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광장에는 여전히 수천 개의 촛불이 밝혀져 있었다.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앙겔라(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하게 돼 기쁘다. 2년 전 내가 이 자리에서 말하지 않았나. 우리가 돌아올 것이라고. 미국이 돌아왔다. 대서양동맹 역시 돌아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일 온라인으로 열린 뮌헨 안보회의 연설 앞부분에 강조한 말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상원의원으로, 부통령으로, 또 민간인 자격으로 참석해온 바이든 대통령에게 뮌헨 안보회의는 그가 대서양주의자를 자처하는 근거이자 활동 공간이다. 취임 이후 한 달이 넘도록 ‘트럼프 이후’의 국내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고, 코로나19 방역에 분주했던 그에겐 첫 번째 의미 있는 외교적 행보였다. 화상으로나마 동맹국 지도자들과 회의를 한 것 역시 처음이다. 그는 이날 주요 7개국(G7) 지도자들과 비공개 화상 회의를 한 뒤 뮌헨 안보회의에 참가했다.

안보 분야의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는 뮌헨안보회의(MSC) 특별세션 스튜디오. 지난 2월19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외교무대였지만, 화상으로 열렸다. 코로나19 탓에 올해는 비디오방송으로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의 지도자 연설과 질의응답 만으로 특별세션을 꾸몄다. 제57회 MSC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상황을 보아 올해중 개최될 예정이다. EPA연합뉴스

 

대통령 취임 이후 바이든의 연설은 미국과 미국의 동맹이 직면한 2개의 지정학적 위협과 인류가 직면한 보건·기후변화·핵확산 등 3개의 위협에 대한 공동대응을 강조하는 구조로 돼 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이든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공동번영을 가능케 해온 집단안보의 전통을 상기시키며 공동의 위협에 함께 대처하자고 강조했다. 2개의 지정학적 위협은 중국과 러시아가 각각 제기하는 것이다. 지난 4일 취임 후 처음 국무부를 방문, 해리 트루먼 빌딩에서 한 연설에선 야당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를 구금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위협을 먼저 언급했지만, 이날은 ‘장기적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의 위협을 먼저 짚었다.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목전의 화두는 미·중 갈등이지만, 유럽은 미·중 갈등과 함께 미·러 갈등이 부딪히는 곳이다. 핵무기 및 군사대국인 러시아가 제기하는 전통적 위협과 유로 포퓰리즘의 배후기지로 제기하는 ‘하이브리드 위협’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4차 산업혁명부터 글로벌 팬데믹까지 새로운 위기에 직면한 세계가 권위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변곡점에 처해 있다면서 동맹 복원을 거듭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흔들었던 나토 조약 5항(집단방위)의 이행을 확약하고 파리기후변화협약 복귀, 러시아와의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 연장,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백신 공동 구매·배분 프로젝트인 코백스에 40억달러 지원 등 취임 이후 취한 조치들을 나열했다. 이란 핵합의를 재개할 용의가 있음도 강조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19일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실시간 비디오 방송으로 뮌헨안보회의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의 사진기자는 방송중(On Air) 표시등의 'O'자 안에 바이든의 얼글을 담았다. 로이터연합뉴스

 

하나같이 트럼프 4년 동안 미국의 신발털개(doormat)로 전락했다는 자조감이 팽배했던 유럽이 환호할 조치들이다. 하지만 환영 일색의 반응은 아니었다. 미국이 트럼프 4년을 지내면서 냉·온탕을 오가는 극심한 변화를 겪었다면, 유럽 역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한 나라에 대한 공격은 모두에 대한 공격”이라며 나토의 집단안보 공약을 강조하는 바이든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새삼 강조했다. 나토는 “뇌사 상태”라며 유럽이 대미 의존을 줄이고 독자방위력을 키워야 한다는 게 그의 오랜 지론이다. 마크롱은 “유럽의 자율성이 나토를 전보다 더 강하게 만들 것”이라며 미국이 의사결정을 도맡아온 관행에 어깃장을 놓았다. 마크롱의 주장은 국방예산 추가 부담을 꺼리며 여전히 미국에 의존하려는 다른 나토 회원국들과 궤를 달리한다. 하지만 미국이 결정하고, 유럽은 따르기만 해온 종래 방식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좌인 것은 분명하다.

바이든이 사이버공간·인공지능·바이오기술을 중국 및 러시아와의 전략적 경쟁에 나설 집단안보의 새로운 분야이자 미·유럽이 협력할 분야라고 강조한 반면, 마크롱은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유럽이 자체 기술을 발전시켜 미국 주도 공급사슬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연합군 창설은 마크롱이 2017년 취임 이후 강조해온 것이지만, 논의가 겉돌고 있다. 러시아와 대치만 할 게 아니라 대화도 해야 한다는 마크롱의 주장 역시 현실 외교에서는 실현되지 않고 있다. 이상과 현실, 그 사이 어딘가에 어정쩡하게 존재하는 유럽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 2월19일 베를린의 총리공관에서 화상으로 진행된 G7 정상회의를 마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청취하고 있다.  '메르켈의 독일'은 사실상 유럽의 지도국의 위상을 갖고 있지만, 한편으로 '바이든의 미국'이 견제하고 있는 중국 및 러시아와 경제관계를 유지하는 이중의 관계를 갖고 있다. 중국과는 유럽연합 국가 중 가장 높은 무역수지를 올리고 있고, 러시아와는 노트스트림1 가스관을 통해 천연가스를 공급받고 있으며, 노트스트림2의 완공을 추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메르켈 총리는 트럼프가 으름장을 놓았던 주독미군 1만2000명 철수를 백지화하겠다는 바이든의 말을 환영하면서도, “우리(미국과 독일)의 이해가 늘 수렴하는 건 아니다”라며 여지를 남겼다. 바이든 행정부와 미국 의회가 공개 반대하고 있는 러시아·독일 간 노트스트림2 가스관 연결사업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2018년 9월 착공한 이 사업은 2019년 2월 미국의 제재로 중단됐지만 94%의 가스관이 이미 설치된 상태다. 러시아 국영기업 가즈프롬이 주도한다. 미국은 가스관 사업이 푸틴 정부에 자금줄이 되는 동시에 현 가스관 경유국인 우크라이나의 피해를 늘리고, 러시아가 향후 유럽에 대한 에너지 공급을 자의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반대하고 있다. 독일은 오히려 새 가스관이 러·독 간 의존도를 높여 러시아의 위협을 줄일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미국 의회의 반대는 2014년 크림반도를 병합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 의미도 있지만, 미국산 셰일가스의 판로를 염두에 둔 포석이기도 하다.

미국·일본·호주·인도의 쿼드(Quad)를 중심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동시에 대서양동맹 복원을 통해 러시아의 위협에 대처하려는 것이 바이든이 구상하는 세계지도다. 메르켈의 말처럼 동맹 간에도 국익에 따라 이해가 엇갈리는 이슈는 있다. 나토의 핵심 동맹국인 독일의 반발을 방치한 채 미국 입장에서 더 큰 국익이라고 할 바이든의 세계전략을 완성하기는 쉽지 않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의 손실을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노트스트림2 가스관 사업의 타협책을 모색(워싱턴포스트)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월26일 모스크바에서 안보협의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주요 7개국(G7) 정상들과 함께 열었던 G8회의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러시아는 많은 유럽인들에게 영원히 제외하기엔 너무 큰 나라다. AP연합뉴스 

 

중국을 대하는 미국의 입장은 스타일은 바뀌더라도 본질은 트럼프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의 차이가 크게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극명하게 대비되는 지점은 바로 러시아다. 트럼프는 공개적으로 '푸틴의 러시아'를 애정했지만, 바이든은 단호하게 선을 긋고 있다. 2016년, 2020년 미국 대선은 물론 유럽 주요국 선거에 해킹과 가짜뉴스로 개입한 러시아의 행위에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및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입장도 강경하다. 어떤 형식으로든 러시아와의 대화를 재개하려는 유럽연합(EU)가 부담스러워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 러시아 입장이다. 러시아 역시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가 모스크바를 방문한 지난 5일 푸틴 정부는 구금된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를 지지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독일, 폴란드, 스웨덴 외교관 3명을 추방했다. 보렐 고위대표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공동기자회견에서 나발니의 석방을 촉구한 지 몇시간 만에 단행된 추방조치로 유럽 국가들은 "외교적으로 뺨을 맞았다"며 분개하고 있다. 르몽드는 'EU 외교가 러시아의 덫에 빠졌다'고 짚었다. 보렐의 러시아 방문은 대러제재와 대화 사이에서 전략적 관계를 모색하려는 유럽의 투트랙 접근에 찬물을 끼얹었다.

각국 언론은 바이든의 G7 정상회의 및 뮌헨 안보회의 연설을 ‘홈커밍 행사’로 본다. ‘미국 퍼스트’를 내세우며 동맹국에 수모를 안겨주었던 트럼프 시대의 종언인 동시에 바이든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바이든의 첫 외교무대는 나토의 결속 필요성을 확인시켰다. 하지만 불안한 미래를 보여주는 계기이기도 했다. 많은 유럽인들은 ‘바이든의 미국’을 환영한다. 하지만 바이든을 좋아하는 것과, 미국을 신뢰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인 것 같다.

미국을 바라보는 유럽의 시각은 싱크탱크 유럽외교관계협회(ECFR)가 지난 1월1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바이든은 환영하지만, 미국 유권자들은 믿지 못하겠다. 향후 10년 내 중국이 미국보다 강대국이 될 것이다. 유럽 스스로 힘을 키워야 한다”는 3가지로 요약되는 조사였다. 데이터프락시스·유고브가 작년 11~12월 유럽 11개국 1만5000명을 상대로 조사했다. 여론조사의 주제는 '아메리칸 파워의 위기 : 유럽은 바이든의 미국을 어떻게 보는가' 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2월19일 파리의 엘리제궁에서 뮌헨안보회의 연설을 하기에 앞서 마스크를 쓰고 있다. '마크롱의 프랑스'는 유럽 독자방위와 미국으로부터 군사적, 경제적 독립을 강조해왔지만, 현실외교에서 구현하지 못한채 구호에 머물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사 결과 응답자의 57%는 바이든의 당선을 반겼다. 지난 4년간 트럼프와 밀월관계를 유지했던 헝가리, 폴란드 응답자들도 환영했다. 하지만 트럼프를 당선시킨 2016년 대선 이후 더 이상 미국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응답이 32%에 달했다. 특히 독일에선 53%나 됐다. 미국 정치 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평균 61%나 된다. 미국과 ‘특별한 관계’를 맺어온 영국에서는 81%가 불신을 표했다. 바이든은 좋지만, 미국은 믿을 수 없다는 모순적인 입장은 바이든이 82세가 되는 다음 대선에서 트럼프의 ‘미국 퍼스트’ 정책이 되돌아올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10년 뒤 중국이 미국보다 강대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에는 평균 59%가 동의했다. 상대적으로 유럽 정치 시스템이 미국 정치 시스템보다 낫다는 응답은 2년 전 조사에 비해 2%포인트 늘어 48%에 달했다. ECFR은 2003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 당시만 해도 낡은 유럽과 새로운 유럽의 구분이 있었다면, 이번 조사에서는 4개의 지정학적 부족이 드러났다고 짚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2003년 서유럽을 중심으로 민주주의 블록을 Old Europe로, 냉전 당시 사회주의 블록에서 빠져나온 중-동부 유럽국가들을 New Europe으로 구분했다. '유럽을 신뢰한다'는 응답(35%)과 '서방세계를 신뢰한다'는 응답(20%)이 과반을 차지했지만, '미국을 믿는다'는 답은 9%에 그쳤다. '유럽의 몰락을 믿는다'는 29%와 함께 4개의 부족을 구성한다.

지정학적으로 본 유럽의 4개의 부족. ECFR의 유럽 11개국 여론조사에서 국가별로 가장 많은 응답자가 나온 지역을 표시했다. '유럽을 믿는다(In Europe, We Trust)'는 응답(35%)이 많이 나온 나라는 파란색으로 포르투갈과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이고, '서구를 믿는다(In West, We Trust)'는 응답(20%)은 주황색으로 폴란드와 슬로바키아이다. '유럽의 쇠락을 믿는다(In Decline, We Trust)'는 응답(29%)이 두번째로 많았고,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서유럽에 집중됐다. '미국을 신뢰한다(In America, We Trust)'는 응답은 9%에 불과했고, 국가별로는 이탈리아(22%), 프랑스-폴란드(12%), 스페인-헝가리(10%)에서 많은 응답자가 나왔다. 영국과 덴마크에선 3%, 독일과 포르투갈에선 4%에 불과했다. 반면에 '유럽을 믿는다'는 응답이 50%이상 나온 나라는 덴마크(60%), 독일(53%), 스웨덴(51%), 네덜란드(50%)로 북유럽에 집중됐다. ECFR홈페이지

ECFR은 유럽이 미국에 방위를 의존하는 것을 줄이고, 자체 방위력을 키워야 한다는 응답이 평균 67%에 달한 것을 이번 조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결과라고 평가했다. 역시 미국의 최대 동맹국인 영국에서의 응답이 74%로 가장 높았다. 마크롱의 유럽 강병론이 비록 유럽 정치 무대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일반인들 마음속에서는 이미 미국이 떠나가고 있음을 입증한다. ECFR은 “글로벌 팬데믹의 시대는 감정의 시대이기도 하다. 대중의 정서가 (언젠가) 정책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은 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 중국과의 데탕트를 통해 소련을 견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전략적 삼각관계다. 푸틴의 러시아는 시진핑의 중국과는 다른 위협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러시아는 구소련 붕괴 뒤 각각 리버럴한 국제사회 질서에 편입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중·러는 정치 시스템이 다른 것은 물론 이데올로기적으로 같은 배를 타기 어려운 나라라는 인식이 미국과 서방에서 굳어지고 있다. 트럼프가 푸틴의 러시아를 동경했던 건 우연이 아니다. 기독교(정교회) 가치를 내세우며 탈냉전 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를 온·오프라인에서 흔들려는 푸틴은 이미 미국과 유럽 극우 포퓰리스트들 사이에서 ‘족장’으로 대우받고 있다. 바이든이 되살리려는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맞서는 비자유주의 세계질서의 지휘자가 된 지 오래다.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중국과 인접한 국가라서 그럴까. 미얀마에서 손님을 맞을 때는 ㄷ자 대형을 갖췄다. 주석단에 양측 대표가 나란히 앉고 양 날개에 다른 사람들이 각각 1인용 다탁을 앞에 두고 앉는 방식이었다. 북한도 그렇다. 미얀마 측 주석단에는 대령이 앉았다. 미얀마 외교부 아주국장과 국영 TV방송 사장 등 환영단의 면면은 화려했다. 하지만 대령 앞에선 고양이 앞의 쥐처럼 굽실거렸다. 허리조차 꼿꼿이 펴지 못하고 대령 쪽을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십수년 전 한·아세안 언론인 교류 일환으로 미얀마를 방문했을 때 목도한 장면이다. 

 

“달리 필요한 게 없느냐”는 대령의 의례적인 인사 끝에 아웅산 영묘 방문을 희망했다. 공휴일이어서 방문이 어렵다는 미얀마 외교부의 사전통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대령은 좌중의 외교부 아주국장을 불러 세워놓고 방문 허용을 지시했다. 다음날 아침 휴일이었음에도 문화부 국장이 영묘 앞에 나와 있었고, 우리 대표단만을 위해 문을 열었다. ‘군복’의 위력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11.11 군사 쿠테타 뒤 일개 보안사 상사 앞에서 언론사 대표들이 쩔쩔맸던 동아시아 분단국의 과거를 상기시켰다. 

미얀마 쿠데타 소식이 전해진 지난 2월1일 일본 도쿄의 유엔대학 앞 보도에 일본 거주 미얀마 사람들이 항의의 표시로 붙여놓은 민 아웅 흘라잉 군총사령관의 사진 위로 행인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다른 지역이 아닌, 아시아 국가들을 볼 때는 많은 경우 한반도의 어제와 오늘이 겹쳐 보인다. 그 차이는 자칫 굴절된 시각을 갖게 한다. 

 

지난 2월1일 미얀마에서 다시 쿠데타가 벌어졌다.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75)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정부가 실각하고 지도자들이 연금됐다. 이상한 쿠데타다. 총성 한번 울리지 않고, 삼엄한 경계도 없다고 한다. 서방은 ‘쿠데타’로 규정하지만, 미얀마 입장에선 헌법 417조에 명시된 군부의 비상사태 선포권 발동이다. ‘선포 범위는 전국, 기간은 1년. 연장 가능’ 역시 헌법에 적혀 있다. 입법·사법·행정권이 군부의 국방안보협의회(NDSC)에 넘어간다.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고문이 2017년 9월19일 라카인주와 로힝야 사태와 관련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퇴장하고 있다. 네피도/로이터연합뉴스

 

세계가 수지의 진면목을 확인한 건 2016년 로힝야 난민 사태에서였다. 그전까지 노벨평화상(1991) 수상자이자, 미얀마 민주주의의 꽃이었던 수지가 “로힝야는 미얀마 국민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무슬림 학살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넬슨 만델라와 바츨라프 하벨, 아시아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비유되던 수지의 노벨평화상을 회수해야 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수지에 대한 인상이 워낙 좋았기에 처음엔 ‘스톡홀름 증후군’을 떠올렸다. 군부에 의해 도합 15년 동안 가택연금됐던 그가 오랜 인질생활 탓에 인질범을 두둔하는 건 아닐까. 그러나 2019년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출석한 수지는 군부와 마찬가지로 학살을 두둔하는 확신범임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지도자 자질과 국정능력은 도마에 오른 지 오래다. 만델라와 하벨, DJ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지점이다. 

 

수지의 NLD 정부는 그럼에도 작년 11월 총선에서 83%의 지지를 받았다. 군부가 코로나19 상황 등을 빌미로 총선을 1월로 연기할 것을 주장했지만 NLD는 시종 묵살했다. 선거부정 의혹 제기도 무시했다. “작년 10월부터 쿠데타 조짐이 있었다”(박장식 부산외대 교수)는 분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총선에서 받은 높은 지지의 이면도 보아야 한다. “경제 실패를 비롯한 NLD의 무능에 실망이 컸지만, 군부의 재집권 우려 탓에 표가 몰린 측면이 있기 때문”(이백순 전 미얀마 대사)이다.

쿠데타의 주역인 민 아웅 흘라잉 군총사령관과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오른쪽)이 2015년 12월2일 미얀마 수도 네피도의 군총사령관 사무실에서 회의를 갖기 전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얀마 민주주의는 박정희의 '한국적 민주주의'와 비슷하다. 흘라잉 장군은 이번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국민을 부모로 섬기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미얀마 민주주의를 공식적으로 ‘규율을 잘 지키는 민주주의('Discipline-flourishing Democracy)’라고 규정했다. 1962년 네윈의 쿠데타로 시작한 군벌 지배는 2008년 개헌 이후 잇달아 민주화 조치를 취하면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수지는 가택연금에서 풀려나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군부는 2011년 과도정부를 출범시켰다. 군복을 양복으로 갈아만 입었을 뿐이지만, 테인 셰인 대통령 정부는 2015년 총선에서 수지의 NLD에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했다. 헌법상 군부가 상·하원의원 25%를 할당받고, 국방장관과 군, 경찰의 수뇌부를 도맡지만 ‘기회의 창’이 열린 것이다. 이후 5년이 수지가 국가지도자로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성공은 대외관계, 특히 대미관계에서 나왔다.

 

그때도 미국의 관심은 중국이었다. 미얀마 군부가 수백명에 달하는 정치범을 전격 석방하자 ‘아시아 회귀’를 선언한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조지 부시 2기 행정부의 대북 직접상대(engagement) 정책을 이어받을 것으로 기대됐던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외교력이 미얀마에 집중되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다. 크리스 힐 후임인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현 인도·태평양 조정관)가 2009년 미얀마에 급히 파견됐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2011년 말 양곤을 방문했다. 이듬해엔 워싱턴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북한 문제를 주로 연구하던 데렉 미첼을 미얀마 대사로 임명했다. 미국뿐 아니라 각국 지도자들은 앞다퉈 수지와 사진을 함께 찍었다. 역시 ‘장군의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도 미얀마 방문을 추진했었다.

미얀마 비상사태가 선포된 지난 1일 수도 네피도의 대통령궁에서 열린 국방안보협의회(NDSC) 회의 장면. 민 아웅 흘라잉 군총사령관이 대통령 대리로 회의를 진행한 민 스웨 전 부통령(중앙)에게 선채로 보고하고 있다. 헌법은 NDSC 의장을 '대통령'으로 못박아두었지만, 군부는 '수지의 사람'인 윈 민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대선 유세과정에서 코로나19방역 지침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씌워 가택 연금하고 군 출신인 민 스웨 부통령을 대통령 대리로 만들어 회의를 진행했다. 미얀마 군언론이 외신에 제공한 사진이다. AP연합뉴스

 

미국이 관계정상화 조건의 하나로 내세운 것이, 유엔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으로부터 미사일과 재래식 무기를 수입하던 군사교류를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테인 셰인 대통령은 이를 확약했다. 오바마는 2012년 7월 미얀마 투자 제한 철폐 및 금융활동 허용을 지시하면서 생뚱맞게 북한의 외교 용어인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언급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미얀마 투자 붐이 일기 시작했다. 당연히 한국도 달려갔다. 국제통화기금 통계에 따르면 각국의 미얀마 직접투자(FDI)는 2015년 40억8400만달러로 최고 기록을 세웠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됐던 수십년 동안 미얀마의 최대 우방국은 중국이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 견제와 대북제재 강화라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보았다. 수지는 국가고문 자격으로 2016년 백악관을 방문, 투자를 호소했고, 오바마는 미얀마에 최혜국관세(GSP)를 선물했다. 수지 정부 대외정책 성공의 절정이었다. 이듬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했고, 미국은 로힝야 사태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군부 인사들에 대한 인적 제재에 그쳤다. ‘인종청소’ 규정을 한사코 미뤄왔다.

코로나19 방역 마스크를 착용한 미얀마 여승들이 지난 2월 3일 양곤 시내에서 탁발을 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양곤/AP연합뉴스

그러나 수지 정부하에서 경제는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상태가 계속됐다. 해외 투자자들은 몰려왔지만 정부 관료들은 무능했다. 박장식 교수는 “군사정부 시절에는 그나마 뒷돈이라도 주고 문제 해결을 했지만 그마저 안 돌아갔다”고 지적한다. 수지는 그 대신 16개 소수민족 무장집단과의 평화과정(Peace Process)에 몰두했다. 소수민족 문제가 1948년 미얀마 독립 이후 오랜 숙원인 것은 맞다. 아버지 아웅산 장군의 유업이기도 했다. 문제는 거기에 매달려 정치적·경제적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것이다. 그마저 로힝야 학살로 빛이 바랬다. 수지 정부의 대외 이미지는 추락했고 2018년 FDI는 12억9100만달러로 떨어졌다.

 

수지의 정치적 역량은 더욱 문제였다. 군부와 타협하든지, 자체 역량을 키워야 했다. 하지만 NLD 내 후계구도는 물론 제대로 된 정치세력조차 키우지 않았다. 이백순 전 대사는 “NLD는 공당(公黨)이 아닌, 수지의 사당(私黨)”이라고 단언한다. 철저하게 자신의 심복들로만 정부를 꾸려왔기 때문이다. 수지를 평범한 주부에서 일약 영웅으로 만든 1988년 8888민주화 투쟁의 주역들도 키우지 않았다. 수지는 군부에 대해서도 곁을 주지 않았다. 미국의 미얀마 전문가 데이비드 스콧 매치슨은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수지는 지난 5년 동안 민 아웅 흘라잉 군총사령관과 어쩔 수 없는 공식 행사 외에 거의 만나지 않았다”면서 쿠데타 배경의 하나로 감정적 갈등을 꼽았다. 확대하면, 서로 자신들만이 천부적으로 통치권한을 가졌다고 믿는 “버마족 불교도 엘리트와 군부 엘리트 집단 간의 충돌”이라는 분석이다. 군총사령관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늘렸던 흘라잉 장군이 올 7월 정년이 됨에 따라 권력 연장을 위해 거사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일본 거주 미얀마 사람들이 지난 3일 도쿄의 일본 외교성 청사 앞에서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 석방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시대 미·중은 경쟁과 협력, 대치의 3중관계를 예고한다. 이번 사태로 미얀마는 미·중 갈등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국가로 떠올랐다. 공교롭게 오바마 시대 미얀마 관계정상화를 주도했던 캠벨이 인도·태평양 조정관인 것도 관심을 모은다. 그러나 미국도 중국도 적극적 개입을 주저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미얀마의 전략적 가치 때문이다. 중국은 고립상태였던 미얀마 군부에 수십년 동안 각종 무기를 제공한 것은 물론 최근엔 일대일로(BRI)에 따라 막대한 건설 재원을 빌려주고 있다.

 

벵골만에 면해 있는 항구도시 시트웨에 미얀마의 해군기지 건설을 지원하는 등 인도를 겨냥한 전초기지를 끊임없이 추구해왔다. 인도의 안다만 및 닉코바르 제도에서 불과 18km 떨어진 미얀마 그레이트 코코 섬에 해군 시설 및 정찰, 전파 감청시설을 설치해놓았지만 거기까지였다. 미얀마는 결코 중국이 원하는 인도양 해군기지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미얀마가 친중으로 갈 것이라는 분석은 미얀마가 원조 비동맹 국가임을 잊고 하는 판단이다. 2004년 친중으로 가려던 화교 출신 킨뉸 총리는 14개월 만에 실각했다. 관영 언론 글로벌 뉴라이트 오브 미안마에 따르면 흘라잉 장군은 지난 2일 임시정부의 대외 정책과 관련, ‘비동맹 외교’와 중국과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 5대 원칙’을 강조했다. 미얀마는 강대국 간 등거리 외교의 명수이기도 하다. 

가슴에 붉은 리본을 단 미얀마 양곤종합병원 의료진이 지난 2월 3일 쿠데타에 항의하며 영화 ‘헝거 게임’에 나오는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얀마는 중국 자본을 받아들이면서도 보란듯이 인도와 국방협력을 강화해왔다. 일본과도 관계를 넓혀왔다. 미얀마 북부의 탕민족해방군을 비롯해 반군을 지원해온 중국에 대한 미얀마 군부의 반중 감정 역시 녹록지 않다. 중국은 곧바로 쿠데타 현상을 인정했다. 왕원민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쿠데타 당일 “미얀마 각측이 헌법과 법률의 틀에서 갈등을 적절히 처리할 것”을 당부하며 안정을 촉구했다.

 

미국에도 미얀마의 지정학적 위치는 막중하다. 멀리 태평양 전쟁 당시에도 미얀마는 미국이 장제스 국민당군에 보급품을 수송했던 통로였다. 중국이 벵골만에 진출하면, 바이든 행정부가 강조하는 인도·태평양의 핵심축이 흔들린다. 바이든 백악관이 발생 며칠 뒤인 4일 국가안보회의(NSC) 성명에서나 ‘쿠데타(coup)’로 규정한 까닭일 게다. 그러나 인권과 민주주의를 표방한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정부 처럼 공개적으로 현상을 인정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미 미얀마 제재 복원 검토에 착수했다. 

2015년 11월5일 양곤 시내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아웅산 수지. 그는 늘 꽃으로 자신과 행사장을 치장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얀마 군부도 기자가 방문했던 2000년대 초에 비하면 많이 진화했다. 그사이 2007년 갑작스러운 유류 값 인상에 승려들이 들고 일어났던 샤프론(Shaffron) 혁명이 있었고, 개헌이 있었으며, '규율 민주주의'일지언정 유사 민주화 과정이 진행돼왔다. 군부가 며칠 새 내보이는 신호는 엇갈린다. 국가고문인 수지에게 외제 무전기 10여대를 불법수입한 혐의를, 윈 민 대통령에겐 코로나19 방역지침 위반 혐의를 각각 죄목으로 댄 걸 보면 구시대 작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11개 부처 각료 인선을 보면 ‘군복’을 배제하고 능력 위주의 테크노크라트를 배치했다는 평가다. 유능한 정부를 꾸려갈 경우 국민적 저항이 무딜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시민의 자체적인 민주화 역량은 아직 미지수다. 뉴욕타임스의 현지 발 보도에 따르면 집안에서 냄비를 두들기는 소극적 저항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집 앞에 내걸었던 NLD 지지 푯말을 없애며 군사정부에 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8888봉기와 2007년 샤프론 혁명 때와 달리 극심한 경제난도, 유혈 사태도 없다. 혹여 미얀마가 민주화 도정에서 U턴한다면,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수지가 걸머져야 한다. 

아웅산 수지가 1996년 12월5일 당시 미얀마 수도였던 양곤 시내에서 열린 민주주의민족동맹(NLD)집회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는 모습.  '미얀마 민주주의의 꽃'은 거대한 착각이자, 왜곡된 이미지였다. 수지는 지난 5년 동안 숱한 언론인들을 구금, 언론자유를 짓밟아왔다. 로힝야 학살을 보도한 미얀마인 로이터통신 기자 2명을 구금, 6년형을 받게 하면서 '배반자'라고 공개 비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나라마다 위기에 처하면, 돌아보는 역사가 있다. 미국 정치에서 역사는 늘 휴대하는 손전화와 비슷한 것 같다. 워싱턴의 연방의사당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토론과정에서도 수시로 튀어나온다. 한쪽이 “조지 워싱턴은 단 한 번도 후퇴한 적이 없다”면서 법안 통과를 주장하면, 다른 쪽은 “무슨 소리냐. 워싱턴은 델라웨어강 전투에서는 물론, 필요하다면 늘 후퇴했다”고 반박하는 식이다. 역사 지식이 달리면 토론에서 말발이 밀릴 수밖에 없다.

현직 대통령이 대선 결과에 불복한 이례적인 상황에 미국 사회는 ‘새삼’ 충격에 빠졌다. 게다가 미국 민주주의 본당에 폭도가 난입하다니. 지난 1월6일 ‘의사당 폭동’은 대선 이후 가열됐던 역사 회고 성향을 심화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취임으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하겠지만 여진은 끝나지 않았다. 상원의 트럼프 탄핵재판과 트럼프가 아직 폐쇄되지 않은 소셜미디어 계정으로 내보낼 메시지가 불쏘시개가 될 게 분명하다. 트럼프는 백악관을 떠나며 지지자들에게 “우리는 돌아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 저녁 워싱턴의 링컨 기념관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 축하 행사에서 취재진을 앞에 두고 통합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에는 성경 다음으로 조지 워싱턴과 에이브러햄 링컨 관련 책들이 많이 출판된다는 통설이 있다. 워싱턴과 링컨의 역사를 자주 여는 것은 ‘예외적인 국가’를 만들고 지켜온 자랑스러운 기억 때문일 게다. 링컨은 남북전쟁에도 불구하고 국가통합을 이룬 지도자로 끊임없이 칭송받는다. 불황과 경제적 불평등이 문제가 될 때 소환되는 지도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FDR)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 취임한 버락 오바마를 두고 ‘검은 루스벨트’라고 명명했던 것처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코로나19 경제난 와중에 제2의 FDR이 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곳곳에 드러난다. 그러나 요즈음 미국 언론이 자주 환기하는 역사는 워싱턴과 링컨, FDR의 자랑스러운 기억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해 11월 대선 이후 유독 많이 소환된 역사의 장면들은 미국이 직면한 위기의 본질은 물론, 국가적 정체성을 드러낸다.

우선 공화당의 러더포드 헤이스 후보가 19대 대통령으로 ‘인정’된 1876년 대선이 주목받고 있다. 헤이스는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 아니라, 타협의 산물이었다. 남북전쟁 이후 북부군이 남부 각주에 주둔하던 재건과정(Reconstruction)의 막바지 혼란 속에 치러진 선거였기에 결과가 명확하지 않았다. 새뮤얼 틸던 민주당 후보가 20만표 정도 더 많이 받았지만, 남부 지역에서 극심한 혼란이 계속됐다. 일부 주에서는 투표결과 보고가 복수로 올라왔다. 결국 연방 상·하원은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승자를 헤이스로 정하기로 합의했다. “대선을 도둑맞았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녹음기처럼 따라 하면서 1876년식 대통령 선출위원회를 구성하자는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공화·텍사스)의 제안으로 소환된 역사다. 공화당 상원의원 10명이 크루즈에 동조했지만 역사적 팩트를 무시한 주장이었다.

‘의사당 폭동’이 벌어진 지난 6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가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의 전투깃발을 든 채 워싱턴의 연방의사당 경내를 걷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당시 남북전쟁에서 남부에 속했던 7개 주(Dixie Land·딕시랜드)에서는 광범위한 유혈 테러와 흑인들에 대해 선거 불참을 협박하는 일이 벌어졌다. 흑인들 아성이었던 사우스캐롤라이나 햄버그에서는 사우스캐롤라이나와 인근 조지아주에서 넘어온 백인 폭도들이 총으로 무장, 흑인들을 살해 또는 처형하고 흑인들의 집과 상점을 초토화했다. 또 의회는 비록 타협으로 헤이스를 선출했지만, 10년 뒤 대통령 선출위원회 구성의 법적 근거를 없앴다. 이번 대선은 총격과 방화, 폭행으로 얼룩진 선거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의회는 더 이상 대통령 선출권을 행사할 수도 없기에 크루즈의 주장은 어떠한 정치적 명분이나 법적 근거가 없었다. 다만 선거결과를 백지로 돌리는 인종 갈등의 폭력사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다.

1876년 대선이 미국 사회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 것은 당시 공화당과 민주당 간 타협의 내용 때문이다. 남부는 대권을 양보했지만, 얻은 게 더 컸다. 공화당의 연방정부가 남부 각주에 주둔했던 연방군을 모두 철수키로 합의한 것이다. 재건과정은 미완으로 종결됐고, 남부는 1964년 민권법 제정까지 1세기 가까이 합법적으로 흑인차별을 할 수 있게 됐다. 링컨이 남북전쟁으로 이룩한 흑인 노예해방의 성과를 되돌린 꼴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조직한 지난 6일 ‘미국을 지키는 행진(Save America March)’ 집회 참석자들이 워싱턴 모뉴먼트 근처에 운집해 있다. 나무 위에 올라간 사람들이 펼쳐 보인 깃발은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맹의 국기(왼쪽)와 백인 우월주의를 상징하는 남부군 전투깃발이다. 시위대 일부는 이날 연방의사당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켰다. AP연합뉴스

두 번째 역사적 사건은 1898년 노스캐롤라이나주 윌밍턴에서 벌어졌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성공한 유혈 쿠데타’였다. 1876년 타협의 연장선상에서 놓여 있다. ‘윌밍턴 학살’ 또는 ‘윌밍턴 반란’이라고도 불린다. 이번 의사당 폭동은 “시위가 아닌 반란”이라는 바이든의 말과 함께 미국 언론에서 집중 조명을 받았다.

노스캐롤라이나 역시 딕시랜드이지만, 번성했던 윌밍턴에는 성공한 흑인들이 유독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미국 내에서 유일하게 흑인 신문 데일리 레코드가 발행됐다. 흑인들은 가난한 백인들과 함께 퓨전당을 창당해 1890년대 주정부의 주요 공직을 차지했다. 인종 분리를 고집했던 민주당은 1898년 주의회 선거를 앞두고 폭동을 조직했다.

2000여명의 백인 자경단 ‘레드 셔츠’는 흑인들에게 테러를 가함으로써 투표권 행사를 방해했다. 윌밍턴 시내에서만 수백명의 흑인을 학살하고, 흑인들의 집과 상점, 기업을 닥치는 대로 파괴했다. 데일리 레코드 사옥은 불탔고 발행인은 다른 주로 피했다. 선거에서 압승한 민주당은 문자해독 능력과 재산으로 투표권을 제한, 흑인 및 가난한 백인의 참정권을 사실상 박탈했다. 그 결과 1896년 12만5000명에 달했던 흑인 유권자는 4년 뒤 6000명으로 줄었다. 퓨전당은 해체됐고 노스캐롤라이나는 다른 딕시랜드 처럼 이후 오랫동안 백인 민주당의 세상이 됐다.

윌밍턴 폭동 당시 백인 자경단 '레드 셔츠'가 불에 타 골격만 남은 흑인 신문 '데일리 레코드' 앞에서 총을 든채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위키페디아

 

백인들은 당시 사건을 흑인들이 주도한 폭동이라고 교묘하게 왜곡했다. 레드 셔츠 주동자들은 되레 영웅으로 둔갑해 대학과 학교, 공공건물에 이름을 남겼다. 1901년 주지사에 당선된 찰스 아이콕도 그중 한명이다. 트럼프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이 휘젓고 다닌 연방의사당 스태추어리홀에는 그의 동상이 있다. 윌밍턴 사건은 1990년대 들어서야 백인들의 인종반란이자 쿠데타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의사당 폭동을 두고 “어떻게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는 개탄이 이어지는 가운데 뉴욕타임스 논설위원 브렌트 스테이플이 영광의 역사만 골라서 기억하는 미국민의 역사관이 “미국은 결백하다는 신화를 만들어 놓았다”고 질타한 까닭이다.

1876년 타협과 윌밍턴 학살이 각별한 조명을 받는 것은 의사당 폭동 바탕에 미국적 전통의 일부인 인종차별의 흑역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의 결과가 뒤집힌 선거구들이 대부분 흑인 밀집 도시지역이었던 게 화근이었다. 도널드 트럼프는 흑인 거주 지역이 선거사기의 ‘열점’이라는 가짜뉴스를 집요하게 퍼뜨렸다. 그 결과 ‘남부군’이 의사당을 점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의사당 폭동’ 하루 뒤인 지난 7일 워싱턴 연방의사당의 스테츄어리 홀에서 한 환경미화원이 동상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있다. 

연방 상·하원이 바이든 당선을 공식 선언하는 날을 잡아 트럼프가 백악관 뒤뜰에서 시작한 ‘미국을 구원하는 행진(Save America March)’은 민주적 선거결과의 불복과 백인우월주의의 증오가 뒤섞인 기획이었다. 의사당에 난입한 폭도들이 성조기와 함께 남부동맹군의 전투 깃발을 들고 있었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취임 첫해 버지니아 샬롯츠빌에서 난동을 벌인 백인우월주의자들을 ‘좋은 사람들(fine people)’이라며 두둔했던 트럼프다. 

연방의사당에 있는 찰스 아이콕의 동상. 노스캐롤라이나 주정부가 1932년 기증했다. 미의회 홈페이지

바이든 역시 지난 20일 취임연설에서 링컨을 환기시켰다. 추상적인 단어들을 나열하는 방식의 밋밋한 내용이었지만 현실 속 역사는 정확히 담았다. 인종갈등의 흑역사와 이를 뛰어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바이든은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1월1일 링컨이 노예해방법에 서명하면서 했던 말을 소개하며 ‘인종 간 정의’를 이뤄내겠다고 다짐했다. “만약 내 이름이 역사에 남는다면, 바로 이 일과 내 전 영혼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라는 링컨의 말에 더해 “오늘, 나의 전 영혼이 그 안에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은 모든 미국 지도자들이 중요 연설에 반드시 포함시키는 ‘아메리칸 드림’조차 생략했다. 미국을 규정하는 몇 개의 공동목표 가운데 ‘기회’를 맨 앞에 위치시켰을 뿐이다. 여느 때였으면 생뚱맞았을 ‘평화적 정권교체’가 대신 들어갔다. 미국이 비상시국임을 고스란히 드러낸 연설이었다.

지난 13일 주방위군 병사들이 폭동진압 장비를 갖춘채 워싱턴의 연방의사당 건물을 지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에 의한 의사당 난동 사건 뒤 2만5000여명의 병력이 동원돼 워싱턴 중심부를 철통같이 방위했다. EPA연합뉴스

 

미국 민주주의 시스템에 근본적 위기가 닥친 뒤 취임한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바이든은 워터게이트 사건 뒤 백악관에 입성한 지미 카터와 비슷한 면이 있다. 부통령이었던 제럴드 포드가 리처드 닉슨의 잔여임기를 수행한 뒤였기에 충격은 덜했겠지만, 카터는 취임연설 첫마디에 “치유”를 담았다. 카터는 도덕주의를 선포했고, 바이든은 국민적 통합과, 민주주의의 복원을 되풀이 다짐했다. 치유의 언어가 복잡하면 안 된다. 두 사람의 연설이 추상적인 단어의 나열에 그친 이유인지도 모른다.

어느 나라에서건 역사는 끊어지지 않는다. 이어진다. 겹치기도 한다. 바이든은 트럼프의 족적 위에 자신의 발을 디디기 시작했다. 3박자로 흥한 트럼프는 3박자로 망했다.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가둬라(Lock Her Up)” 구호로 대권을 쥐었다가 “선거 도둑질을 멈춰라(Stop The Steal)”는 구호 속에 백악관을 떠났다. 

'의사당 폭동' 하루뒤인 지난 1월7일 미국 연방의사당 앞 리플렉팅 풀 연못에 'Trump 2020'이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버려져 있다. 의사당에 난입했던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가 버리고 간 것으로 보인다. 연못 위쪽에 의사당 돔이 비친다. 워싱턴은 정치적 의도를 담아 설계된 도시다. 일직선상에 배치된 연방의사당과 워싱턴 모뉴먼트 및 링컨기념관 사이는 비치는 연못이라는 뜻의 리플렉팅 풀(Reflecting Pools)이 각각 조성돼 있다. 워싱턴과 링컨이 지켜보는 미국 민주주의를 상징한다. 이지역을 통칭하는 내셔널 몰(National Mall)에는 2011년 마틴 루터킹 주니어 목사의 기념시설이 세워졌다. EPA연합뉴스

트럼프 시대를 보내면서 정치는 결국 연기라는 생각이 굳어진다. 가난을 모르고 자란 트럼프가 중국산 제품에 일자리를 빼앗긴 가난한 중서부 백인들의 우상이 된 것은 그만큼 스스로 설정한 배역을 잘 소화했음을 말해준다. 딕시랜드의 좌절을 겪어보지 못한 뉴요커가 ‘남부군 총사령관’이 된 것 역시 마찬가지다.

바통을 넘겨받은 바이든은 ‘통합(unity)’을 외쳤다. 하지만 어딘가 허전한 느낌을 준다. 사심이 있었을지언정 트럼프가 뜨겁게 껴안고 달랬던 ‘잊힌 그들’을 바이든이 그만큼 포옹할 수 있을까. 버락 오바마의 통합 노력은 보건의료 개혁에서부터 좌절됐다. 보수주의 풀뿌리 저항이 티파티로 번지더니, 트럼프 집권으로 절정을 이뤘다. 오바마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이었던 월스트리트만 날씬하게 복원시켰다. 리버럴 정당의 한계였다. 민주당은 FDR 이후 근본적인 개혁을 이룬 적이 거의 없다. 트럼프는 흑역사의 연장(延長)이자, 시대의 소산이었다.

흑백차별의 근본적인 해법은 퓨전당 처럼 흑인의 정치세력화가 이뤄질 때나 가능하다. 하지만 '사상 첫 흑인 대통령'도 흑인의 정치세력화는 꿈도 꾸지 않았다. 바이든은 과연, 역사의 새 장(章)을 열 것인가. 

미국 워싱턴의 내셔널 몰에 2011년 세워진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기념시설. '희망의 돌(The Stone of Hope)'로 명명됐다. 미국의 인종간 평화는 여전히 희망에 머문다. 미국 국립공원(NPS) 웹사이트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영국은 제국을 잃었다. 그리고 아직 (국제사회에서) 역할을 찾지 못했다.” 1962년 12월 딘 애치슨 전 미국 국무장관이 내놓은 말이다. 영국은 발끈했다. 데일리 익스프레스는 “등에 칼을 꽂았다”면서 영국 국민의 분노를 대변했다. 해럴드 맥밀런 총리는 “애치슨은 지난 400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범했던 실수를 했다. 필리페 스페인 국왕과 루이 14세, 나폴레옹, 카이저 독일 황제, 히틀러 등이 범했던 것과 같은 실수다”라며 격앙된 반응을 내보였다. 로렌스 프리드먼 런던 킹스칼리지 교수가 지난해 포린어페어스 5·6월호 기고문 ‘방황하는 영국’에서 소개한 일화다. 돌이켜보면 맥밀런의 공개서한은 공허하기 짝이 없는 메시지였다. 

애치슨의 말은 영국이 글로벌 패권국의 지위를 상실했으면서도 아무 역할을 찾지 못하는 데 대한 조롱 섞인 권유였다. 영국은 이후 미국의 ‘주니어 파트너’로 역할을 찾았기에 결국 그 권유를 받아들인 셈이다. 지난달 24일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을 타결지음으로써 이번에는 ‘유럽’을 잃었다. 47년 만에 유럽 단일시장 및 관세동맹과 결별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정부의 성명을 인용하면 “정치적, 경제적으로 독립했다”. 하지만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국제적 역할을 찾는 작업은 이제 시작됐을 뿐이다.

지난 4일 주민들이 영국령 지브롤터에서 스페인 라리네아로 걸어가고 있다. 국경에 세관 검문소가 보인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확정된 뒤 첫 근무일인 이날 큰 혼란이 예상됐지만, 양쪽 모두 코로나19 방역과 관련된 통제로 대체됐다. 이베리아반도 남단에 위치한 지브롤터는 영국과 유럽연합 사이의 유일한 육상 국경이다. AP연합뉴스

 

존슨 총리가 브렉시트 뒤의 국가적 비전으로 제시한 ‘글로벌 브리튼(Global Britain)’은 아직 백지상태다. ‘세계의 선한 세력’이자 ‘자유무역의 슈퍼히어로 챔피언’이라는 존슨의 희미한 스케치만 그려져 있을 뿐이다. 통합의 반대는 분리다. 글로벌 브리튼은커녕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EU) 잔류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스코틀랜드의 분리운동과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간 켈트족 국가 건국의 꿈에 동력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신년 벽두부터 세계가 맞게 된 변화의 굵은 흐름은 기실, 작년 말 시작됐다. 서구 중심으로 보면 2016년 세계를 잇달아 충격에 빠뜨리며 ‘탈진실(Post Truth) 시대’를 연, 두 개의 사건이 완결 또는 정리됐다. 적어도 표면적으론 그렇다. 우선 11월3일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했고, 영국이 EU와의 지난한 탈퇴 협상을 마무리 지음으로써 탈퇴론자들이 그토록 원했던 ‘주권’을 되찾았다. 미국 포퓰리즘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함으로써 재야의 시끄러운 목소리 또는 난동꾼으로 전락한 데 반해 영국에선 EU와의 결별이 제도적으로 완성됐다. ‘EU로부터의 독립’은 프랑스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을 비롯해 유럽 포퓰리스트들 공통의 열망이다. ‘탈진실’은 옥스퍼드 사전이 2016년 세계의 단어로 선정한 신조어다.

지난 4년여 동안 세계는 곳곳에서 반기성권력 및 반엘리트, 반자유무역, 인종주의의 물결을 싸잡아 ‘포퓰리즘’이라고 명명했다. 그 정점을 찍은 게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트럼프의 당선이었다. 두 개의 충격이 어떤 형식이건 일단락이 지어진 지금,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는 각국 매체에서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더이상 새롭지 않은 일상이 됐다고 볼 수도 있지만, 대세가 종래의 모습으로 복귀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2차대전 이후 자유주의 세계질서는 권위주의 세계질서와 병립해왔을 뿐 단 한차례도 압도한적이 없다. 중국과 러시아는 서방언론이 권위주의 체제라고 집중 비난하기 이전부터 권위주의였으며,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그럴 것이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협상이 지난 12월 24일 타결됨에 따라 유럽연합 잔류를 강하게 요구했던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 운동이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작년 1월 20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주민들이 깃발을 들고 행진하면서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묻는 국민투표를 요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체제와 제도의 복원력은 만만치 않다. 트럼프가 강렬한 족적을 남겼으되, 미국은 20일 대통령 취임식을 기점으로 ‘더 나은 복원(Build Back Better)’ 노력을 통해 앙시앙레짐으로 돌아가는 수순을 밟는다. 지난 6일 워싱턴의 연방의사당을 전쟁터로 만든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이 유독 요란하게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지만, 조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 확정 절차를 불과 몇시간 늦췄을 뿐이다.

영국은 원래 EU에 절반만 발을 담근, 사실상의 ‘준회원국’이었다. 핵무기를 포함한 군사력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 경제력에서 프랑스·독일과 함께 유럽의 주요 3국이지만 국가적 정체성은 지리적 위치와 늘 같았다. 유럽대륙과 대서양 건너 미국과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해왔다. EU 회원국과 비회원국을 포함한 28개국이 국경을 철폐한 솅겐협정(1995년 발효)에서 발을 뺐을 뿐 아니라 경제통합의 화룡점정이었던 유로화(2002년 통용)를 거부했다. 브렉시트를 기획하고, 국민투표에 붙인 것도 ‘영국의 트럼프’가 아니었다. 보수당 출신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2015년 총선 공약이었다.

국제관계에는 전쟁과 평화의 선명한 흑백 공간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각국은 적대적 공생이건, 평화적 공세존이건 ‘중간지대(middle ground)’에서 활로를 모색한다. 영국의 국가 정체성도 경천동지할 일은 없어 보인다. 유럽을 떠났지만 그렇다고 미국에 더 가까이 가기도 쉽지 않다. 2000년대 초부터 미국이 벌인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침공, 리비아, 이란 핵협상에 적극 참여했던 영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갈수록 국제사회 개입을 피하는 고립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다. 또 유럽과 영원히 결별한 것도 아니다. 존슨은 브렉시트 협상 종료 성명에서 “영국은 EU를 떠났지만 문화적, 정서적, 역사적, 전략적, 지리적으로 유럽에 붙어 있다”고 강조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샤를 미셸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줄라 폰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가 12월 30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화상회의에 참석해 유럽연합과 중국 간 포괄적 투자협정 체결을 환영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영국의 미래를 내다보는 전망을 읽다 보면 지리적·전략적으로 각기 다른 환경에 처해 있되, 각국이 중간지대에서 벌어는 고민의 구조가 붕어빵처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EU는 어차피 영국이 아닌, 독일·프랑스의 마당이었다. 독·불 정상은 엘리제조약을 맺은 1963년부터 80차례 정상회담을 가진 뒤 2003년부터 양국 장관협의체로 기능을 이관했다. 양국 정상은 유럽통합의 중요한 고비였던 1999년과 2000년엔 한해 4차례 만났고, 2001년에는 6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다. 영국이 절반쯤 회원국이었던 것은, 독·불이 영국을 절반쯤 밀쳐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국이 빠진 EU는 또 다른 중간지대를 모색하고 있다. 오랜만에 돈이 되는 협상이었다. 브렉시트 1주일이 채 안 된 지난달 30일, 중국과 포괄적투자협정(CAI)을 마침내 체결했다. 7년 넘게 끌어온 협정의 종결은 유럽의 선택이라기보다 중국의 결정이라는 논평이 압도적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 1월5일 베를린의 총리관저에서 주지사들과 회의 뒤 기자회견을 시작하면서 마스크를 쓰고 있다. 사실상 유럽의 지도자 역할을 했던 메르켈 총리는 오는 10월 총선 이후 은퇴할 예정이다. 독일이 EU 의장국을 맡았던 지난해 중국과의 오랜 투자협정을 체결했다. 로이터연합뉴스 

EU가 중국을 ‘총체적 경쟁자(systemic rival)’로 규정한 것은 2019년 3월이다. 공식문건 ‘중국 전략 전망’에서 “중국은 기술의 리더십을 추구하는 경제적 경쟁자이자, 대안적 정부 모델을 확산하는 총체적 경쟁자”라고 규정했다. 안보적 위협을 추가하면 트럼프 행정부 취임 첫해 중국을 ‘수정주의 세력’이자 ‘전략적 경쟁자’라고 못 박은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SS)을 빼닮았다.

EU의 전략전망은 중국 기업과의 합작을 빌미로 한 첨단기술의 강제이전, 지적재산권 침해, 중국 시장 접근 제한 등 경제적 위협만 제기한 게 아니었다. 유럽이 지향하는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위협하는 권위주의 정부 모델을 정치적 위협으로 지목했다. 신장의 위구르 주민들의 강제노동 의혹과 인권탄압도 공동대응할 갈등으로 지목했다. 유럽 각국을 떼어 내 각각 상대하는 중국의 외교관행과 차이나 머니의 위력에 한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EU가 내놓은 기념비적 선언이었다.

지난해 초 시작된 코로나19의 대유행과 중국의 안하무인식 ‘전랑(戰狼)외교’는 유럽의 대중 감정에 불을 질렀다. 중국이 일국양제(一國兩制) 합의와 달리 홍콩 보안법을 제정함으로써 정점을 찍었다. 몇달 전까지만 해도 CAI 타결 가능성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관측됐던 까닭이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근본적인 차이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러한 차이를 결코 미봉책으로 메우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CAI 타결로 EU는 경제적 실리를, 중국은 외교적 성과를 나눠가졌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2019년 내놓은 중국 전략전망의 표지. 중국을 경제적, 정치적 위협으로 규정하고 단호한 대처를 다짐했지만 지난 연말 중국과 포괄적투자협정을 체결하면서 경제적 위협만 처리하고, 정치적 위협은 선언적인 다짐에 그쳤다. 

강제 기술이전 요구가 금지되고 중국 기업과의 합작 시 EU 기업의 투자한도를 없앴다. 유럽 기업들은 자동차와 텔레콤, 클라우드 컴퓨팅, 항공 분야에서 보다 ‘평평한 운동장’을 확보했다. 금융서비스 분야도 딱 ‘미국 수준’의 접근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적 위협을 일부 해결했을 뿐, 가치의 문제는 미셸 의장의 공언과 달리 얼렁뚱땅 넘어갔다. 중국은 강제 노동을 금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을 위해 “계속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는 외교적 수사만 담았다.

유럽과 중국의 CAI 타결을 바라보는 바이든 측 심사는 편치 않다. 동맹 및 우방국들과 함께 중국의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위협에 맞설 것을 다짐한 바이든 행정부와의 협의를 기다리지 않은 게 불만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는 트위터를 통해 바이든 행정부 출범까지 “기다려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가 머쓱해졌다. EU 입장에서 CAI 타결은 ‘트럼프의 유산’을 정리한 데 불과하기에 굳이 바이든의 시간을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CAI 타결 내용은 트럼프 행정부가 작년 1월 미·중 무역협상 1단계 합의로 챙긴 것과 같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기다려 달라"는 설리번의 요구를 과도한 개입으로 지목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CAI 타결 소식을 헤드라인으로 전하면서 우정 ‘바이든과의 갈등 우려’를 부각한 것은 주목도를 높이려는 의도에 불과해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아예 중국이 미국 대선 2주 뒤 아시아 14개국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체결한 데 이어 연말에 CAI를 타결한 것을 두고 ‘중국이 양보와 타협으로 바이든(의 계획)을 덮었다’는 헤드라인을 달았지만 역시 서구 중심의 해석이다.
 

유럽연합 홈페이지에 새로 게재된 지역 사진, 영국이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 등 일부 북유럽국가들과 함께 비회원국으로 표시돼 있다.  

 

중국은 자신들의 시간에 충실하고 있을 뿐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올해 신년사에서 대외관계를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서두에 인사치레로라도 나열했던 홍콩과 대만, 마카오도 등장하지 않았다. “중국이 잘하는 경제, 통상 분야는 계속 끌고 가고, 부딪히는 정치 분야는 회피하거나 우회하려는 전략”이라는 해석(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에 귀가 기울여진다.

시 주석은 다만, 올해가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임을 상기시키며 “백년의 역정은 파란만장했으며, 백년의 초심은 오랫동안 점점 더 굳건해졌다”고 강조했다. ‘백년의 초심’에 서구식 민주주의와 인권의 개념은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변하기 전에는.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은 최근 소수민족 동화정책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영국 및 중국과 각각 새로운 공존을 시작한 게 올해를 여는 유럽의 선택이었다.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바야흐로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 예측의 순간이 돌아왔다. 도처에 ‘~할 듯’ ‘~할 것’ ‘~해야’라는 말이 넘쳐난다. ‘바이든의 미국’이 대통령직 인수 절차에 돌입하면서 빚어지는 글로벌 현상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미국이 돌아왔다’라는 메시지를 날리고 있다. 그런데 대체 바이든이 꿈꾸는 세계는 어떤 것일까. 우리에겐 갈 길을 잃은 한반도 평화의 미래가 무엇보다 궁금하지만,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최대 이슈는 ‘신냉전까지 한걸음 남은’(주펑 중국 난징대 국제관계연구원장) 미·중관계의 향방이다. 담론이 넘쳐날 때는 가장 최근에 나온 ‘텍스트’부터 챙겨 읽는 게 도움이 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7년 11월9일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시 지석의 파트너는 내년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로 바뀐다. 로이터통신은 이 사진을 지난 11월 18일 새삼 전송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바이든 당선에도 침묵을 지켜온 중국은 지난 25일 시진핑 주석이 축하전화를 걸면서 생각의 일단을 드러냈다. 바이든 당선자가 대선 승리를 선언한 지 18일 만이다. 시 주석은 “양측 간 불충돌, 불대항, 상호존중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어 협력에 집중하고, 차이를 관리하자는 의미로 “협력공영의 정신으로 협력집중 및 이견조정(갈등관리)”을 제안했다. 같은 날인 24일자(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실린 푸잉 칭화대 국제전략안보중심 주임의 글은 단순한 기고문이 아니다. 중국 정부가 처음 내놓은 ‘공식 입장문’(캐슬린 클링스버리 뉴욕타임스 오피니언면 에디터)이다. 푸잉의 글을 살펴보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4년간 양국관계는 심각하게 훼손됐다. 미국은 중국이 세계 헤게모니를 추구한다고 믿고, 자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중국 정부의 노력을 막아왔다. 일례로 중국이 경제적 의도에서 추진하는 일대일로(BRI)를 미국은 지정학 전략으로 간주한다. 화웨이와 틱톡 등 중국 첨단기술 기업들과 중국 유학생들을 국가안보 위협으로 간주해 차단하려 했다. 관계를 일신하려면, 양측은 그동안 오인해온 상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중국은 미국의 세계 지배구도를 바꿀 의도가 없으니, 미국은 중국 시스템을 바꾸려 하지 마라. 경쟁이 불가피하다면, ‘협력’과 ‘경쟁’을 합해 상대방의 우려를 감안한 ‘협력적 경쟁(coopetition)’을 하자.

중국 견제 준비하는 바이든
동맹들과 연합전선 구축 피력
이·태 및 대서양 등 전열정비
시진핑, 메르켈에 ‘협력’ 강조
왕이, 한·일·동남아국가 순방
바야흐로 치열한 외교의 계절

 

시진핑(왼쪽)과 바이든

외교적 수사는 세부 현안으로 들어갈수록 미소와 발톱을 동시에 내보인다. 푸잉은 경제·기술 분야에선 중국 역시 규칙과 법률을 존중한다면서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의 지적재산권 및 사이버안전,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최근 중국 저작권법을 개정해 위반 기업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미국 역시 미국에 진출한 중국 기업들에 ‘평평한 운동장’을 제공해달라며 국가안보를 빌미로 중국 기업들을 규제하는 건 위선이라고 못 박았다.

정치 분야에선 중국도 자국의 의도를 보다 적극적으로 외부에 제공하겠다면서도 미국은 다른 나라의 내정에 ‘습관적 간섭’을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푸잉이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홍콩 및 신장위구르지역의 인권탄압은 중국 입장에서 주권 문제다.

 

가장 날선 입장은 지역안보 분야에 집중됐다. 국가통합에 대한 중국의 관심을 존중, 대만과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에 개입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중국 해군력 증가에 따라 미 해군의 바다였던 서태평양에 긴장이 높아진 만큼 양국 군 간 대화를 전략적 차원으로 격상해 잠재적 위기를 관리하자는 제안을 덧붙였다. 경제·기술, 정치, 안보 분야에서 양국 간 갈등 또는 차이가 분명하다면, 코로나19 방역 및 백신의 원활한 공급, 기후변화, 디지털안보, 인공지능의 거버넌스 등 글로벌 현안들은 양국 협력이 당장이라도 가능한 분야로 거론됐다.

 

푸잉의 글은 새로운 입장이 아니다. 현 단계 미·중관계 현주소와 중국의 입장을 정리함으로써 양국이 앞으로 협의해 나가야 할 의제를 제시한 데 의미를 둬야 할 것이다. 문제는 바이든이 구상하는 세계와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상원 외교관계위원장과 부통령으로서 외교를 다뤄온 바이든은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복원을 약속하고 있다. 민주당의 정통 외교노선은 동맹과 국제제도를 통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수호한다는 것이다. 물론 저변에는 미국 우선주의가 흐른다. 현 단계 가장 큰 걸림돌은 비자유주의 또는 권위주의 세계질서를 도모하는 중국이다.

 

지난 11월19일 화상으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CEO 대화'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발언하고 있다. 주최국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캡처된 화상이다. AP연합뉴스

 

바이든은 지난봄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중국을 ‘각별한 도전’으로 규정했다. 세계 장악력 기도, 자국 정치모델 강요, 미래 기술 투자 등 세가지를 중국이 벌여온 오래된 술수로 이해했다. “중국이 앞으로도 미국 및 미국 기업의 기술과 지적재산권을 도둑질할 경우 거칠게 대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기후변화와 핵무기 비확산, 글로벌 보건위기 등 중국과 협력할 분야가 있지만, 미국과 동맹국의 이해를 침해하는 중국의 행동과 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다짐했다. 문제는 어떻게, 어떤 대가를 치르며 할 것인가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정책과 가장 구분되는 점은 트럼프가 ‘미국 대 중국’의 양자 구도로 접근했다면 바이든은 동맹 및 우호국들과 대중(對中) 연합전선을 펴겠다고 한다. 취임 첫해 ‘민주주의 정상회담’을 열겠다는 연유이다. 바이든은 24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부, 국토안보부 장관 등 외교안보팀 인선을 발표하면서 “미국은 동맹과 함께할 때 최강”이라고 밝혔다. 가장 먼저 달려갈 동맹으로는 유럽+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의 ‘확대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또는 ‘확대된 G7(주요 7개국) 회의체’가 예상된다. 이 중 트럼프가 돈 문제를 빌미로 ‘신발털개(doormat)’쯤으로 취급해온 나토와의 관계 복원을 최우선시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회귀’ 정책에 빗대어 ‘유럽 회귀’(제임스 트라우브 포린폴리시 칼럼니스트)라는 말이 나오는 연유다. 바이든 보좌진의 한 명인 줄리 스미스는 최근 워싱턴 먼슬리에 “바이든이 취임 100일 내 독일을 방문, 대서양 어젠다를 재규정하는 기념비적 연설을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오바마가 2009년 6월 이집트 카이로 연설에서 이슬람권과의 ‘새로운 시작’을 선언한 것과 유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27일 델라웨어주 윌밍턴에 마련된 당선자 사무실에서 추수감사절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바이든이 ‘나토+α’ 연합전선을 펴려는 가장 큰 이유의 하나 역시 중국 견제다. 트럼프는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역대 미국 행정부가 유지해온 대중 포용(engagement)정책을 공식 폐기한 첫 대통령이었다. 바이든 역시 방식은 다를지언정 목적은 같다. 미·중의 외교전은 이미 시작됐다.

 

미국 대선 이후 중국 역시 독일을 가장 먼저 호출했다. 시 주석은 24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통화를 갖고 협력 강화를 거듭 다짐했다. 메르켈은 22일 주요 20개국(G20) 화상 정상회의 뒤 시 주석이 가장 먼저 통화한 지도자다. 이번주 서울을 다녀간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11일부터 캄보디아·말레이시아·라오스·태국·싱가포르 등 동남아 국가들을 돌고 일본을 거쳐 한국을 찾았다.

 

하지만 국가 간에도 한번 무너진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트럼프라는 ‘솔직한 대통령’을 통해 미국의 민낯을 본 세계가 바이든이 내밀 손을 덥석 잡을지 미지수다. ‘중국식 완력’에 대한 실망지수도 역대급이다.

지난달 퓨리서치 조사에서 14개 주요국의 대중국 비호감률은 일본(86%), 스웨덴(85%), 호주(81%), 한국(75%), 영국(74%), 네덜란드(73%) 등 바닥을 쳤다. 갤럽조사에서 중국의 글로벌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은 130개 조사국 평균 32%에 불과했다. 코로나19가 휘발유를 부었다. 미국인의 대중 비호감은 73%에 달해 지난해 같은 조사의 최악 기록(60%)을 경신했다. 상당 부분 중국의 자업자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요청에 부응해 가장 먼저 중국 기업 화웨이의 장비 사용을 중단하고, 코로나19의 발생국가에 대한 국제적인 조사를 요구해온 호주가 중국의 무역보복을 당하고 있다. 자오리지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지난 17일 화상 언론브리핑에서 "호주는 양국 간 상호 신뢰와 협력을 진작시키기 위해 무언가 (먼저)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하고 있다. 시몬 버밍햄 호주 무역장관이 양국 간 긴장완화를 위해 내놓은 대화 제안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공식 답변이었다. AP연합뉴스 

 

홍콩과 신장위구르 인권 탄압, 양안, 남중국해 분쟁은 물론 접경국인 인도와의 국경 교전 등으로 반중정서를 악화시켰다. 호주 정부가 코로나19 발생국에 대한 국제적 조사를 주장하자 호주산 소맥에 80%의 관세를 매겼다. 지난달 피지에서 열린 대만 국경절 행사장에 난입한 중국 외교관들은 대만 당직자들을 폭행했다.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최고 수준의 정보를 공유하는 5개국(Five Eyes)이 지난주 홍콩 입법원 탄압을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내자 중국 외교부 대변인(자오리지안)은 “눈이 찔려 장님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라며 ‘트럼프식’ 저주를 퍼부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지난봄 광저우에서는 아프리카인들이 집과 호텔에서 쫓겨났다. 차이나 머니의 높은 이자와 중국 노동자들의 일자리 독점 탓에 BRI를 비롯한 해외 인프라 건설 역시 곳곳에서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시 주석의 ‘신형 국제관계’를 구축하는 강대국·주변국·개도국 외교의 3대 축이 모두 흔들리는 형국이다.

 

미·중 갈등이 깊어질수록 자칫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선지자들이 있다. 헨리 키신저와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의 저자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 등이다. 중국의 위협을 인정하면서도 중국을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을 설파한다. 키신저는 16일 블룸버그의 신경제포럼 개막 연설에서 “미국과 중국은 점점 대결구도로 가고 있다”면서 “(양국 간) 위험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 군사 충돌로 이어질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2018년 5월2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악수를 하고 있다. 독일은 바이든의 미국 대선 승리 이후 중국 외교가 가장 공을 들이는 나라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반세기 동안 반복된 키신저의 논리는 다름을 접어두고 같음을 추구하자는, 구동존이(求同存異)를 넘어서지 않는다. 시 주석과 푸잉이 축전과 기고문에서 강조한 핵심과 일치율이 100%에 가깝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애저녁에 유통기한이 지난 것 같다. 개혁개방과 천안문 사태 등을 거치면서 한편으로 중국을 이해하고, 한편으로 긴장을 완화해온 결과를 이미 미국민은 물론 세계가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간 ‘신냉전’은 지난 세기 미·소 간 냉전과 달리 주전선이 군사부문이 아니라 경제부문이기도 하다.

 

여전히 바이든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트럼프는 아직 이삿짐을 싸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가 백악관에서 어떤 ‘잡음’을 내건, 세계는 이미 외교의 계절에 돌입했다.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아버지가 자동차 세일즈 매니저로 일했던 거래점의 사장은 직원이나 고객에게 1달러 동전을 나눠주는 걸 즐겼다. (1950년대 미국에서 1달러는 적은 돈이 아니었다.) 사건은 일터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일어났다. 사장은 바닥에 동전을 흩뿌려놓고, 직원들이 이를 줍는 광경을 보고 즐거워했다. 아버지는 그 직장을 떠났다.”

 

조지프 로비넷 바이든 주니어(조 바이든·77)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가 자서전에서 소개한 아버지의 일화다. 아버지가 깊은 인상을 남겼는지,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아버지의 기억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이야기한다고 한다. 바이든은 “일하는 사람에게 봉급이 전부는 아니다. 존엄과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으로 취임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월스트리트의 ‘살찐 고양이’들을 감옥에라도 보내고 싶다고 통탄했던 것과 맥락이 이어진다. 그의 말에는 노동자 중심의 세계관이 묻어난다.

 

조 바이든 미국 대선 민주당 후보가 지난 12일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박물관 센터 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트럼프의 대선유세가 역동적이라면, 바이든의 유세는 다소 정적이다. 종종 높아지는 그의 음성만이 활기를 더한다. 신시내티/로이터연합뉴스

 

건강·경제·인종의 3중 위기에
야심찬 어젠다를 들고 나왔지만
오바마가 ‘검은 루스벨트’
근처에도 가지 못했듯이
바이든이 제2의 루스벨트가
될지는 낙관하기 어렵다

 

‘노동자 코스프레’는 선거판에서 잘 먹히기도 한다. “미국 경제의 힘을 포천지 500대 기업의 이익이 아닌, 팁으로 먹고사는 웨이트리스가 해고 걱정 없이 아픈 아이를 돌보기 위해 휴가를 낼 수 있는지로 계량하겠다”는 오바마의 대선후보 수락연설처럼 서민들의 마음에 다가간다. 바이든의 다짐은 민주당이 지난 7월 발표한 정강에 여실히 반영돼 있다. ‘코로나19 대확산으로부터 미국민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앞세웠지만, 주요 공약은 ‘더 강하고 공정한 경제 만들기’였다. 노동자와 일하는 가정 보호 및 ‘그린 뉴딜’을 통한 수백만개의 일자리 창출이 핵심이다. 임금 인상 및 노동자 권리 증진, 탄탄한 일-가정 양립, 강력한 ‘일하는 가정 정책’ 등 보통사람들의 삶을 부축하겠다고 약속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반자유무역협정(FTA) 입장과는 결이 다르지만, 미국 노동자를 위해 더 공정한 무역질서를 구축하겠다고도 약속했다.

 

미국 정당의 정강은 조변석개하지 않는다. 4년 전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선택했던 민주당 정강 역시 ‘중산층을 위한 임금 인상 및 경제 안정 복원’이 최우선 공약이었다. 기록적인 기업 이익의 많은 부분을 노동자에게 돌아가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는 오바마를 후보로 지명한 2008년 전당대회 정강이, 그 4년 전 낙선한 존 케리 후보 당시 정강의 유사품인 것과 마찬가지다. 일하는 가정의 부양과 보건의료 개혁, 인권 개선,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강화 등 비슷한 목록이다. 선거에선 정강이라는 상품도 중요하지만 후보, 즉 세일즈맨의 전달력이 더 중요하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선 더욱 그렇다. 오바마는 케리와 비슷한 상품을 들었지만, 독특한 가족 배경과 감성적 접근으로 사상 첫 흑인 대통령의 역사를 썼다. 그렇다면 클린턴이 세일즈에 실패한 지점에서 바이든은 성공할 수 있을까. 이번 선거가 바이든과 트럼프 대통령 중 선택이라기보다 친·반 트럼프의 싸움이라고 가정한다면, 바이든의 정치적 DNA를 정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성싶다.

 

바이든이 2017년 출간한 자서전의 표지. '나에게 약속해줘요, 아빠(Promise me, Dad)'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이 자서전은 2015년 뇌종양으로 앞세운 큰아들 보 바이든 전 델라웨어주 법무장관을 잃은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바이든 스스로 '미래의 대통령 후보'로 생각했던 아들이었다.

 

2016년 민주당 정강에서 노동자 또는 ‘일하는 가정’의 부축에 우선순위를 둔 것은 다분히 민주당 내 비주류이자 좌파 격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후보 경선과정에서 일으켰던 돌풍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올해는 샌더스에 더해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의 바람몰이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학생 운동권’ 출신의 날카롭고 비범한 이미지의 클린턴과 노동자 친화적인 소탈한 이미지를 보여준 바이든의 성향은 확연히 다르다. 시대적 상황도 다르다.

 

코로나19의 대유행은 기왕의 양극화를 극단의 상황으로 내몰았다. 바이러스가 급속히 확산됐던 지난 3월부터 10월 중순까지 미국 억만장자들의 재산은 얼추 3분의 1(9310억달러)이 늘었다. 22만5000여명이 숨지고, 수천만명이 실업자가 되는 사이 부자들의 곡간은 더욱 불어난 것이다. “세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경제를 건설했다. 내년엔 더 위대할 것이다”라는 트럼프의 장광설은 그다운 거짓말일 뿐이다. 진보성향 매체인 더 네이션의 편집장 출신인 카트리나 밴더 허벨이 최근 워싱턴포스트 칼럼에서 소개한 수치다.

 

지역마다 경제활동을 봉쇄했던 시기, 온라인 판매와 제약산업, 원격의료, 비디오 콘퍼런스 산업은 번성했다. 화이트칼라 직업은 정상화되고 있으며, 주식시장은 다시 꿈틀대고 있다. 반대편의 상황은 말이 아니다. 10월 현재 2300만명이 실업급여를 받고 있고, 8월 말까지 1200만명이 기업주 부담 의료보험을 잃었으며, 9만8000여개의 소규모 사업장이 문을 닫았다. 허벨이 “진정한 (경제) 회복은 강한 타격을 입은 노동자들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역설한 까닭이다. 바이든과 민주당은 코로나19 이전으로의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더 나은 복원을 약속하고 있다.

 

바이든 미국 대선 민주당 후보가 지난 10월 27일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생전에 요양을 위해 자주 찾았던 조지아주 웜스프링스를 찾아 유세를 하고 있다. 바이든 후보는 루즈벨트를 본받아 상처받은 미국의 영혼을 치유하겠다고 다짐했다. 웜스프링스/로이터연합뉴스

 

올해 민주당 정강은 서문에서 ‘국가의 영혼’을 수선하겠다고 다짐했다. 최상의 부유층과 최대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가정과 소규모 기업들을 내팽개친 트럼프 시대를 종식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수백만개의 일자리 창출, 번영의 공유, 인종에 따른 소득 격차 해소, 노동조합권 존중, 노동자 임금 인상 등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경제적 계약’을 미국민과 맺겠다고 강조했다. 대선후보가 누구라도 민주당이 내놓을 만한 약속들이다. 바이든은 여기에 자신의 지문을 묻히고 있다.

 

후보 경선에서 겨뤘던 샌더스 상원의원과 보건의료, 사법적 정의, 기후 변화, 경제, 교육 및 이민정책별로 6개의 공동위원회를 만들었다. 지난 7월 초 바이든-샌더스 태스크포스가 내놓은 첫 보고서는 샌더스가 대표한 당내 진보진영과 바이든의 중도진영 간 타협의 산물이었다. 정부 주도 의료보험을 확대하되, 샌더스가 주장했던 전 국민 의료보험에는 못 미쳤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 교육정책과 트럼프 이민정책의 철폐 등에 합의했다. 민주당 진보진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정책적 교두보를 설치했다는 데 만족하는 분위기다. 이 정도 변화도 새로운 것이었는지, “바이든이 (글로벌 공급망의 재건 시도 등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매장할 준비를 하고 있다”(제임스 트라우브, 포린폴리시)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나온다. 오바마는 지원 유세에서 바이든의 공약에 대해 “역사상 어떤 주요 정당 대선 후보보다 진보적”이라고 치켜세웠다.

 

미국 민주당이 어려울 때마다 되돌아보는 마음의 고향은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FDR) 시대의 뉴딜이다. 오바마를 두고 ‘검은 루스벨트’라며 기대를 드러냈던 이유다. 바이든 역시 선거를 불과 1주일 앞두고 루스벨트를 소환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승리가 예견돼서인지, 트럼프가 박빙의 판세를 보이는 경합주를 오가는 동안 바이든은 투표를 닷새 앞둔 지난 27일 공화당 텃밭으로 남행을 했다. 루스벨트가 요양차 자주 들렀던 조지아주 웜스프링스의 ‘작은 백악관’으로 달려가 루스벨트의 향수를 한껏 상기시켰다.

 

조 바이든 후보의 대선 캠페인 홈페이지. 

 

바이든은 FDR이 사망한 장소이기도 한 작은 백악관 앞 유세에서 꺼진 뉴딜의 불길을 상징적으로 되살렸다. “FDR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카고의 한 언론인은 동료를 향해 ‘모든 걸 치우고 움직이자’고 말했다. 오늘 여러분 앞에서 말하건대, 여러분의 대통령으로 봉사할 영광스러운 기회를 준다면 모든 것을 치우고 행동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몇 주 전 국가의 통합을 강조하기 위해 게티즈버그를 찾아갔듯이, 오늘은 어떻게 우리 나라를 치유할 것인지를 말하기 위해 이곳, 웜스프링스에 왔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공약은 민주당 정강에 나온 목록의 반복이었다.

 

“루스벨트는 말만 번지르르한 여느 정치인과 다름이 없었지만, 세계 대전이라는 위기에서 위대한 대통령으로 거듭났다. 바이든 역시 (무색무취한) 중도 성향(moderate) 민주당원이다. 하지만 미국을 뒤덮고 있는 건강·경제·인종의 3중 위기 속에서 가장 담대하고 야심찬 어젠다를 들고나왔다. 그가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대선후보가 된 까닭이다.” 진보적 언론인 데이나 밀뱅크가 워싱턴포스트 칼럼에서 내놓은 희망 섞인 평가다. 트럼프 행정부 4년 동안 미국은 극심하게 양분돼왔다. 선거를 앞둔 지금은 더 그렇다. 서로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상대 목소리에 귀를 닫는 확증편향 현상이 뚜렷하다. 바이든에게 쏟아지는 한쪽 진영의 숱한 기대와 찬사에만 귀 기울이고 결과를 예상하기가 불안한 이유다.

 

미국 민주당 선거운동원들이 11월1일, 바이든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의 고향마을에서 주민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바이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펜시레이니아는 대표적인 경합주로 트럼프와 바이든이 막바지 선거운동을 집중하는 곳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바이든이 거침없이 발산하고 있는 수많은 메시지들 역시 말만 듣고 반기기에는 많은 학습효과가 있다. 오바마가 ‘검은 루스벨트’ 근처에도 가지 못했듯이 바이든이 제2의 루스벨트가 될지는 낙관하기 어렵다. 그가 꿈꾸는 미국에 노동의 가치가 다소 자리를 넓힐지 모르지만, 그 역시 미국 특유의 자본 논리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시대에도 미국 정치에는 상도의가 살아 있다. 밀어준 만큼 보상하는, 후원자와 후보자 간의 공정거래가 작동한다. 반응 정치센터(CRP)가 최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바이든은 지난해부터 이달 중순까지 월가 금융산업 종사자들로부터 7400만달러의 후원금을 받았다.

 

지난 대선 클린턴의 후원금(8700만달러)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오바마와 트럼프가 거둬들인 금액을 훨씬 초과한다. 4년 전 취임 축하금을 포함해 2000만달러를 월가에서 받았던 트럼프는 이번 대선에서 1800여만달러를 받았다. 바이든이 받은 정치후원금에는 그가 “감옥에 보내고 싶다”고 했던 월가 자본가들이 포함됐다. 소액 후원금만으로 충분히 경선을 치러냈던 샌더스나 워런과 다른 점이다.

 

바이든의 아버지 일화에 대해선 다른 말도 있다. 그의 여동생은 마리클레르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중고차 매니저를 그만둔 건 바이든이 상원의원에 당선된 뒤 “상원의원의 아버지가 중고차 세일즈를 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고 전했다. 자서전, 특히 정치인의 자서전은 윤색되기 마련이다.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 백악관 인근의 세인트존스 교회 앞에서 성경책을 오른손에 든 채 포즈를 잡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로즈가든 회견에서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일부 시위대의 폭력행위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면 연방 정규군을 동원하겠다고 다짐한 뒤 교회로 이동했다. 이 사진촬영을 위해 인근에서 평화적 시위를 벌이던 사람들은 취루탄 세례를 받아야 했다. 역사에 길이 남을 한 장면이다. 워싱턴/로이터연합뉴스

 

“이 위치에 이렇게 싼 집이 있었나.” 한여름이었다. 옮겨갈 집을 찾는 과정에 백악관에서 북쪽으로 고작 대여섯 블록 정도 떨어진 위치였던가. 주차공간이 딸린 염가의 타운하우스를 발견했다. 한 채도 아니었다. 워싱턴 시내 웬만한 주거지에는 주차공간이 없었다. 도보 또는 자전거로 시내 주요기관과 대학, 연구소들을 돌아보기에 안성맞춤의 위치였다. 기대에 부풀어 현장을 찾아갔다가 초현실적인 광경을 목도했다. 20세기 초에 조성된 듯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선 것까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널찍한 도로 양편 건물 20여채 중에서 유리창이 제대로 달린 집이 거의 없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유리창이 깨져 있거나, 비닐로 대충 막은 집이 대부분이었다. 무더운 날씨임에도 모퉁이에 놓인 드럼통 주변에는 흑인과 히스패닉 남자들이 몇명 둘러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흡사 갱영화 촬영장을 방불케 했다. 10여년 전 워싱턴 근무 당시의 경험이다. ‘트럼프의 미국’이 1968년을 소환하고 있다.

미국 내 주요 도심에서 흑인과 섞여 살던 백인들이 대규모로 이주한 것은 1960년대 말이다. 도시 외곽의 교외(suburban)에 새집을 짓고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문화가 막 생겨나던 시점이다. 단순한 문화의 변화가 아니었다. 탈출이었다. 이른바 ‘백인 대탈출(White flight)’. 흑백차별과 베트남전을 둘러싼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도심은 시위무대가 됐다. 특히 1968년 마틴 루서 킹 목사가 피살된 뒤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흑인들의 시위와 방화, 약탈이 집단이주에 불을 붙였다. 대도시 중심에는 유색인종이 살고 백인 중산층이 교외에 거주하는, 지극히 미국적 풍경이 조성되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다.

전쟁터를 연상시키는 뉴욕 사우스브롱스의 황폐한 도심. 1968년 마틴 루서 킹 목사의 피살 뒤 미국 전역을 휩쓴 흑인들이 시위와 방화, 약탈 사태로 미국 대도시 도심에서는 백인들의 대탈출이 이어졌다. 지자체 정부는 흑인과 유색인종만 남은 도심 개발을 오랫동안 방치했다. 왼쪽의 스페인어, 오른쪽의 영어로 쓰인 구호는 '깨진 약속'이다.   위키페디아

1960년대 미국은 인종차별과 베트남전을 둘러싸고 양 진영으로 갈려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반전시위와 애국시위가 동시에 열렸고, 흑인과 백인이 거리에서 맞붙었다. 최상의 세월과 최악의 세월이 교차했다. 린든 존슨 행정부와 의회 민주당은 기념비적인 업적들을 남겼다. 민권법(1964)을 통과시켜 인종차별을 막기 위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고, 이듬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던 남부 11개 주 흑인 수백만명을 유권자로 만들었다. 초·중등학교에 대한 연방 예산 지원을 이뤄냈고, ‘빈곤과의 전쟁’을 벌이면서 건강보험제도를 개혁했다. 미국의 열악한 건보제도에도 보석처럼 빛나는 두 개의 프로그램이 있다. 메디케어(65세 이상 노인 대상)와 메디케이드(저소득층 대상)이다. 이를 탄생시킨 것도 존슨 행정부였다.

킹 목사 역시 베트남전 반전시위에 나섰지만, ‘위대한 사회’를 건설하려 애썼던 존슨 행정부의 업적을 평가했다. 1968년은 암살의 해이기도 했다. 킹 목사는 4월에, 베트남전에 반대하며 대권 도전에 나섰던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은 6월에 각각 피살됐다. 그해 11월에도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진 존슨은 결국 재선을 포기했다. 최악의 순간은 유난히 ‘법과 질서’를 강조했던 리처드 닉슨 행정부에서 발생했다. 1970년 오하이오주 켄트주립대 학생들의 평화로운 시위에 주방위군(내셔널 가드)이 발포해 4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 

백인 경찰에 의해 숨진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지난 3일 뉴욕 시내에서 행진을 하고 있다. 자욱한 연기 탓에 안갯속을 행군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사진이다. 왼족 한 사람이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는 구호를 들어 보이고 있다. 1968년과 달리 많은 백인들이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뉴욕/EPA연합뉴스 

 

미국에서 퇴역군인들 특히, 참전용사들은 각별한 대우를 받는다. 더구나 무공훈장을 받은 참전용사들은 말 그대로 미국 사회의 ‘영웅’들이다. 1971년 4월23일 반전 구호를 외치며 연방의사당으로 향하던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을 경찰이 원천봉쇄했다. 길이 막히자 참전용사들은 저마다 베트남전에서 받은 무공훈장을 내던졌다. 의사당 서쪽 현관 앞에 버려진 훈장은 무려 700여개였다. TV 카메라를 포함해 세계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진 광경은 미국 사회에 강력한 충격을 주었다. 국가가 부여한 최고의 영예를 의회민주주의 본산에 내버림으로써 ‘미국 정신(American Sprit)’에 사망선고를 내린 사건이었다.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은 기실, 이 순간에 끝났다.

미국은 넓게 펼쳐진 지리적 특성에 낮은 인구밀도로 인해 전국 규모의 시위가 벌어지기 어려운 사회구조를 갖고 있다. 1960년대 반전시위 및 민권운동 이후 대규모 시위가 없었던 이유다. 2004년 대선 당시 이라크전 반전시위 역시 찻잔 속 돌풍으로 끝났다. 그런 미국 대도시들이 다시 시위와 방화, 약탈로 얼룩지고 있다. 지난달 2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의 무릎에 눌려 사망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46)의 죽음이 촉발시킨 분노의 물결이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연대시위가 옮겨붙고 있다.

'5월4일의 학살'로 불리는 미국 오하이오주 켄트 주립대 학생들을 향한 주방위군의 발포. 1970년 5월4일 평화적인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 중 4명이 숨졌다. 당시 사망한 학생 옆에서 경악하는 학생들. 존 필로가 찍은 이 사진은 그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위키페디아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드물게 공감력이 떨어지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우악스러운 대처다. 플로이드의 사망에 “충격적이며 동영상을 보고 불쾌했다”고 짤막한 유감을 표명한 트럼프는 시위가 격화되자 곧바로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이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지난 1일 백악관 로즈가든 회견에서는 시위대를 ‘인간쓰레기’이자 “미국이 직업적 무정부주의자와 폭력적인 군중, 방화범, 약탈범, 범죄자, 폭도, 안티파(Antifa·반파시즘 극좌 연대)에 붙잡혔다”고 말했다. 그 끝에 주방위군뿐 아니라 연방 정규군을 투입할 수도 있다고 공언했다. 자국민을 적으로 간주하는 대통령은 이번에도 군의 반발을 사고 있다. 퇴역 군인 중에서는 군 수뇌부 출신인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과 마이클 멀린 전 합참의장이 나섰다.

2018년 트럼프의 시리아 철군 방침에 반발해 물러난 뒤 침묵을 지켜온 매티스 전 국방장관은 3일 애틀랜틱에 발표한 성명에서 나치독일을 언급하며 트럼프를 독하게 비난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앞두고 미군 지휘부가 병사들에게 전달했던 메시지를 상기시켰다. 성명은 “우리를 파괴하려는 나치의 슬로건은 ‘분리해, 정복하라(Divide and Conquer)’였다. 우리 미국의 답은 ‘뭉쳐야 힘이 된다(In Union There is Strength)’였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를 나치에 비유한 것은 동원할 수 있는 가장 강한 표현이다.

지난 3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거리에서 폭동진압 장비를 갖춘 경찰과 주방위군이 백인 경찰에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고 경찰의 폭력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행진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시애틀/로이터연합뉴스

 

‘영원한 해병’ 매티스 전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는 내 평생 미국민을 뭉치게 하려고 하지 않고, 하는 시늉도 하지 않는 첫번째 대통령”이라며 “그 대신 우리를 갈라놓고 있다”고 성토했다. ‘뭉쳐야 힘이 된다’는 그가 발표한 성명 제목이기도 하다. 멀린 전 합참의장 역시 같은 날 ‘나는 침묵할 수 없다’는 제목의 애틀랜틱 기고문에서 “우리의 동료 시민들은 적이 아니다. 결코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그는 “너무 많은 국내외 정책의 선택들이 군사화되고 있고, 너무 많은 군사적 임무들이 정치화되고 있다”고 개탄하면서 “묘기(를 부릴) 시기가 아니라, 리더십(을 발휘할) 시기”라고 단언했다.

매티스의 뒤를 이은 마크 에스퍼 현 국방장관도 보조를 맞췄다. 에스퍼 장관은 3일 브리핑에서 “법 집행에 병력을 동원하는 선택은 최후의 수단으로, 가장 다급하고 심각한 상황에만 동원돼야 한다”면서 ‘군 통수권자’의 정규군 동원 방침에 선을 그었다. 트럼프의 방침에 순종한다는 평을 들어온 그로서는 이례적인 입장 표명이었다.

5년제 군사기숙학교 출신이라 그럴까. 트럼프는 '군사놀이'를 좋아한다. 취임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군과 국방력을 강조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되자 '전시 대통령'을 자임했다. 지난해 독립기념일에는 지난 세기의 유물인 군사퍼레이드의 부활을 추진했다가, 여론이 반발하자 퍼레이드 성격을 완화해 열었다. 중국과 러시아를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해 냉전 당시의 군비경쟁에 착수한 트럼프다. 매티스나 멀린, 에스퍼처럼 전·현직 군 수뇌부만 들고일어난 게 아니다. 시위대와 진압군의 대치 영상은 미국인들에게 ‘훈장 투척사건’ 못지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에서 시위는 애국이다(In America, Protest Is Patriotic)’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미국 사회가 1968년과 다른 점은 많은 백인들이 탈출하는 대신, 흑인들과 연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백인 경찰의 폭력에 희생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연대시위가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4일 케냐 나이로비의 한 빈민가에서 플로이드를 그린 벽그림 앞에서 한 남자가 앉아 있다. 나이로비/로이터연합뉴스

 

매티스의 지적이 정확하다. 미국은 국명부터가 ‘각 주의 연합(United States)’이다. 역대 모든 대통령은 실제로 구현하지는 못했을지언정 미국민의 단합을 강조해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유세과정에서 “백인의 미국, 흑인의 미국이 아닌, 유나이티드 스테이트”를 강조했다. 트럼프는 그러나 2016년 유세 때부터 남성과 여성, 남부와 북부, 백인과 흑인 등 가능한 한 모든 가치를 분리하면서 득세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들과 한·미동맹을 군사분담금 납부 실적을 기준으로 분리했다. 2017년 가을에 버지니아주 샬럿츠빌의 로버트 리 장군 동상 앞에서 벌어진 극우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시위를 두둔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군을 이용한 것은 자신의 남성다움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었다”(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1968년이 그랬듯이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다. 대통령에 취임한 2017년 1월20일자로 연방선거위원회(FEC)에 재선 운동본부를 등록한 트럼프다. 선거와 무관한 짓을 할 리가 없다. 트럼프의 모든 결정은 오는 11월3일 대선 투표일을 겨냥한다.

플로이드 사건은 그의 셈법에선 위기이자, 기회였을 게다. 일단 이번 선거의 최대 승부수로 지난달 20일 발표했던 ‘중국 카드’의 빛이 바랜 반면에 2016년 대선에서 톡톡히 재미를 본 ‘법과 질서’의 수호자로서의 이미지가 눈에 들어왔을 법하다. 그가 지난 1일 백악관 뒤편 라파예트 사각정원을 지나 우정 세인트 존스 교회 앞까지 걸어간 것도 그 때문이다. 트럼프는 성경책을 들고 국가의 수호자를 자처했다. 공화당 내에서조차 ‘사진촬영쇼’나 ‘묘기(stunt)’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까닭이다.

이 와중에 중국은 홍콩보안법 제정을 강행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혐중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올리려는 트럼프에게 좋은 빌미를 주고 있다. 주요 2개국(G2)이 G0가 됐다는 한탄도 낡았다. 뉴노멀은커녕 여전히 어정쩡한 ‘세미 노멀(semi normal)’의 시기다. 세계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분리된 채 코로나19의 뿌연 안갯속을 행군하고 있다. 트럼프가 잇달아 터뜨리는 연막탄의 연기가 가라앉고 난 뒤 미국은, 또 세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오전 8시 전 잠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자택 2층 운동방으로 향한다. 실내 자전거를 타고 약간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 뒤 러닝머신에 오른다. 종종 아침식사 대신 단백질 셰이크를 마시고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집에서 양복 정장 또는 콤비를 입는다. 저녁에는 아내와 함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한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까지만 해도 매일 숨 가쁘게 진행되던 선거유세 동안에는 꿈꾸지 못했던 호사다. 아침부터 저녁 사이가 그가 미합중국 대통령이 되기 위해 재택 선거운동을 하는 시간이다.  뉴욕타임스가 소개한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의 하루 일과다. 바이든은 지난달 NBC 방송 인터뷰에서 “나는 밖에 나가지 않으며, (집에서도) 방문자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2월22일 라스베이거스 당원대회(코커스)에서 발언하면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 고립된 바이든

통상 대선이 있는 해의 3~5월은 민주, 공화당이 각각 후보를 사실상 확정하고 여름 전당대회 전까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는 시기다. 민의를 수렴하는 한편 당의 주요 공약을 모아 정강(Platform)을 작성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코로나19는 대선 후보의 일상도 바꿔놓았다. 델라웨어주는 봉쇄를 일부 완화하면서도 긴요한 일을 위해서만 집 밖을 오갈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모임은 10명 이하만 허용되며, 주 밖에서 온 사람은 14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어쩌다가 바이든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안전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미국 대선은 투표일을 기준으로 대략 2년 전부터 선거운동을 시작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대통령 취임식 한 달 뒤인 2017년 2월부터 착수했다. 연초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각각 4위, 5위에 그쳤던 바이든에게는 특히 어려웠던 예비선거였다. 그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대선행 티켓을 움켜쥐면 통상 ‘승리 유세’로 세를 과시하고, 사퇴한 후보들과 함께 ‘단합 유세’를 할 만도 하지만 올해는 모두 불가능했다. 백악관에서 매일 열리는 코로나19 대국민 브리핑장을 유세장으로 활용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대국민 접촉도에서 불리하기 짝이 없는 구도다.

지난 2월7일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의 앤설럼대학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토론 중 엘리자베스 워런 후보가 조 바이든 후보의 발언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사회자에게 발언기회를 요청하는 듯 왼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미국 진보진영은 바이든의 부통령 후보로 워런을 추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살갑게 다가가 악수를 나누고 등을 두드리는 성향의 바이든은 ‘강요된 격리’ 속에서 꾸준히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미국 언론과 수십건의 인터뷰, 팟캐스트 방송 등의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자신을 지지하는 다양한 분야의 지도자들과는 장거리전화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21일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가 미국 내 여론조사를 종합한 결과 바이든과 트럼프 지지율은 48.7% 대 43.1%로 바이든이 5.6%포인트 앞섰지만 결코 우세라고 볼 수 없는 성적이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4년 전 바이든의 지지율과 비슷한 득표율(48.2%)을 얻었지만, 46.1% 득표에 그친 트럼프에 패했다. 

5개월여 남은 투표일까지 코로나19 확산세 및 이에 따른 실업자와 개인사업자, 기업의 회복 정도 등 대선의 향방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지난 14일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실업자는 미국 전체 노동자의 20%를 웃도는 3620만명으로 집계됐다.

 

■ 정적들과의 연합(Team of Rivals)?

바이든은 지난 3월12일 ‘코로나19 대응 및 미래 글로벌 보건 위협 대비에 관한 계획(The Plan)’을 발표한 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책을 비판하는 한편, ‘코로나 이후’ 재건에 관한 생각을 내보이고 있다. 코로나19 대책은 투명한 정보 공개에 따른 신뢰 회복, 진단 능력 확보 및 무상 진단, 방역 최일선 보건의료 인력의 안전 및 피해 최소화를 위한 연방정부 차원의 효율적인 비상조치 등을 촉구하고 있다.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한 글로벌 협력과 공중보건을 위협하는 기후변화 대책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2008년 대선을 앞두고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 유세에서 조 바이든을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처음 소개한 오바마와 바이든이 청중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바이든 캠프는 이후 8년 동안 백악관을 이끌었던 오바마-바이든 관계는 가족처럼 좋은 친구가 됐다고 소개하고 있다. 바이든 캠페인 홈페이지

지난 3일에는 민주당 경선에서 자웅을 겨뤘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과 공동명의 언론 기고문을 통해 코로나19 지원예산의 투명한 집행 및 엄격한 회계감사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국 의회와 백악관은 3월27일 코로나 바이러스 지원·구호·경제보호(CARE)법에 따라 2조달러의 예산을 편성한 이후 추가 지원안을 발표하고 있다. 바이든과 워런은 그러나 연방정부 예산이 대부분 트럼프 행정부 및 공화당에 우호적인 대기업에 집중되고 있다면서 이해상충 및 대기업의 로비, 회계감사 등에 대한 3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2021년 1월 취임할 ‘바이든 행정부’는 취임과 동시에 의심스러운 거래에 관한 수사와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적 처리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의 정치적 후원자들인 대기업들에만 5000억달러가 별다른 조건 없이 뿌려졌으며, 기왕의 부자감세에 더해 1조달러가 부자와 대기업에 집중됐다는 게 바이든-워런의 주장이다. 물론 트럼프는 이러한 문제제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미국 주류언론에서는 바이든이 여성 정치인 중 선택하겠다고 공언한 부통령 후보에 워런을 임명할 것을 촉구하는 견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바이든의 최대 약점은 옳은 말을 내놓지만, 어딘가 밋밋해 보인다는 점이다. 워런의 논리정연하면서도 단호한 어조 및 워런이 내세운 ‘책임지는 자본주의(Accountable Capitalism)’ 슬로건이 코로나 이후 미국의 경제사회 회복에 가장 적격이라는 생각에서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작금의 위기가 남북전쟁이나 글로벌 금융위기 못지않은 만큼 정적들과 연합하는 거국정부의 구성을 제안했다. ‘코로나19 지원예산의 감독부처’를 새로 만들어 워런을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재무장관 마이클 블룸버그, 보건부 장관 빌 게이츠, 국무장관 공화당의 미트 롬니 등이 프리드먼이 꿈꾸어 본 ‘정적연합팀(Team of Rivals)’ 면면이다.

2017년 10월 31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미셸 오바마 부부가 시카고의 오바마 재단에서 열린 행사에서 함께 인사를 하고 있다. 오바마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격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조 바이든 후보를 우회 지원하고 있다. 바이든은 여전히 대중 인기가 높은 미셸을 부통령 후보로 영입하기를 공개적으로 희망하고 있지만, 미셸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AP연합뉴스

■ 트럼프가 주도하는 ‘더러운 싸움’

트럼프의 선거전략은 이번에도 상대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겨냥했던 여성혐오 발언들은 이제 바이든의 나이(77)와 중얼거리는 말버릇을 빌미로 저속함을 더하고 있다. 워싱턴이그재미너 인터뷰에서 “바이든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런 생각이 없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고 말한 것은 그나마 점잖은 표현이었다. 대놓고 바이든을 ‘정신이상자’로 몰고 있다.  폭스뉴스 진행자 브릿 흄은 “바이든이 노망들고 있다”고 말했는가 하면,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바이든은 치매의 분명한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거들었다.

여기에 코로나19 발생 초기 중국 당국의 은폐 의혹이 사태를 키웠다면서 ‘중국 때리기’를 더하고 있다. 기실 미·중 무역분쟁 1단계 합의안을 도출했던 지난 1월부터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처음 발생했을 때만 해도 시진핑 주석의 대응을 칭찬하던 트럼프는 3월 말을 기준으로 중국 비난으로 돌아섰다. 트럼프는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1~2월 “미국민을 대신해서 시 주석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들(중국인들)은 코로나19에 매우 전문가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면서 15번이나 시 주석을 공개 칭찬했다. 이 숫자를 센 사람은 수전 라이스 전 유엔대사다. 라이스 전 대사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 이를 소개하면서 트럼프가 취임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시 주석이 사실상 종신주석이 된 것을 축하하며 자신과 시 주석의 존경과 우정의 관계를 강조해온 것을 상기시켰다.

'코로나19가 여성에게 미친 영향' 을 주제로 지난 4월28일 조 바이든 후보의 델라웨어주 윌밍턴 자택에서 송출된 온라인 타운홀미팅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바이든 후보의 친밀함을 강조하는 장면이 소개되고 있다. 2016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클린턴은 바이든 후보 지지를 공식 표명했다. 바이든의 선거운동에는 클린턴과 오바마 부부 등 전 대통령 부부가 자주 등장한다. 바이든의 어딘가 밋밋한 리더십에 후광효과를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4년 전 대선에서도 중국이 미국의 부를 빼앗아가고 있다는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는 호응을 얻었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사태 대책에 실기한 자신의 과실을 덮는 동시에 유권자들의 중국 견제 심리를 노리면서 갈수록 표현이 거칠어지고 있다. 4월 말 미국 언론이 공개한 57쪽의 공화당 선거전략은 트럼프의 좌충우돌식 저속한 공격이 주도면밀하게 계산된 전략의 밑그림에서 나오고 있음을 입증했다. 공화당의 선거전략가 브렛 오도넬이 작성해 상원전국위원회(NRSC)에 전달한 선거전략은 민주당 후보 비난 포인트와 코로나19의 중국 책임론에서부터 인종주의 논란 대처법 등이 포함됐다. 

특히 트럼프의 중국 여행금지 조치를 제외하곤 일체의 코로나19 책임을 온통 중국에 돌릴 것을 권고하고 있다. 친트럼프 슈퍼 정치행동위원회(PAC)는 중국과 바이든을 묶어서 비난하는 TV선전물을 내놓고 있다. 바이든이 중국에 너무 고분고분하다는 주장과 함께 ‘BB(베이징 바이든)’라는 말도 등장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가 법무장관으로 지명했던 조 베어드 변호사와 1993년 1월6일 포즈를 취하고 있는 조 바이든 당시 상원 법사위 의장. 지난 5월 초 미국 SNS에서 바이든으로부터 연방 상원 인턴 근무중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태라 리드의 사진으로 잘못 유통된 사진이다. 바이든은 리드를 비롯해 7명의 다른 여성들로부터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당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 안갯속의 미국 대선 향방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의 인신공격에 맞대응했다가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는 민주당은 같은 수준의 말싸움을 피하고 있다. 클린턴 후보는 트럼프의 품성을 집중 비난했지만, 정작 주요 현안에서 많은 유권자들이 트럼프의 표현 방식은 싫어해도 트럼프의 주장에 공감하고 있음을 간과한 것이 중요한 패인으로 꼽힌다. ‘중국 때리기’가 대표적이었다.

바이든 캠프는 트럼프의 계속되는 공격에 코로나19 확산 이후 트럼프가 저지른 4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4C’로 요약해 반격 포인트로 삼았다. 라이스의 지적처럼 중국 정부와 지도자를 칭찬만 하면서 사실관계를 챙기지 못한 점 및 위협을 부인하거나 경시한 사실의 은폐, 뒤죽박죽 대처로 인한 혼란, 기업과의 결탁 등을 의미하는 ‘C’로 시작하는 4가지 단어를 강조하라는 지침이다. 직접적으로 트럼프의 품성을 비난하는 것은 자제하고 있다. 어차피 트럼프의 막말 스타일은 4년째 전 세계가 반복학습하고 있는 기정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겉으로는 트럼프를 꺼리면서도 정작 그에게 표를 던졌던 ‘샤이 트럼프’ 지지자들이 지난 대선의 승패를 좌우했던 것은 유권자들 감수성에 다가가는 데 트럼프가 앞섰음을 말해준다. “그들이 저속하게 가면, 우리는 고상하게 가자”(미셸 오바마)는 말은 멋지지만, 실제 투표현장에서 파괴력은 제한적이다.

바이든의 선거캠프 홈페이지(ttps://joebiden.com/)에 수록된 젊은 시절의 사진. 고령(77세)의 이미지를 순화시키기 위해 '젊은 바이든'을 강조하는 이미지는 주로 젊은 시절의 사진으로 대체한다. 

앞을 내다보기 힘든 코로나19의 확산세는 그렇지 않아도 예측이 어려운 미국 대선 전망을 더욱 어렵게 한다. 트럼프가 확인시킨 탈진실(Post-Truth) 시대에 합리적인 분석과 전망을 내놓는 미국 주류언론 보도만 들여다보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진실보도보다는 가짜뉴스가, 사실보다는 소문이 효과를 보는 게 탈진실 시대의 아이러니다.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미국은 1918년 스페인 독감 이후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미국 역시 67만여명의 적지 않은 인명피해를 입었지만, 이후 복귀 속도와 내용에서 타국을 앞서면서 슈퍼파워로 부상할 발판을 마련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은 외부의 방해 또는 반감이 적었다는 점이다. 당시 패권국인 영국이 정치적·경제적으로 집중 견제했다면 미국의 비상은 타격을 입었을 것이 분명하다. 영국뿐 아니라 당시 세계의 대미 정서는 코로나19 이후 대중국 정서처럼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덩샤오핑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은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발전을 모색하기에 이상적인 외부 환경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 10월1일 중국 건국 70주년을 맞아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경축행사 참석자들이 시진핑 주석의 초상화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의 자료사진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주요 2개국(G2)으로 불리는 중국의 사정은 녹록지 않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중국몽(中國夢)’은 강한 외부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자국 내 코로나19 피해를 중국 탓으로 돌리는 선전전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각국의 대중국 인식도 급속하게 악화하고 있다. 세계의 중국 견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중국의 인식은 어떠한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세계의 대중국 위협 인식, "잔랑"

세계의 혐중 정서는 일견 중국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각국이 코로나19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소방수’를 자처함으로써 반감을 부채질한 것은 물론, 트위터를 비롯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맹활약을 해온 중국 외교관들의 ‘잔랑(戰狼·늑대 전사) 외교’가 화를 키우고 있다. 프랑스 외교부는 지난 4월 중국 대사를 초치, 서구의 바이러스 대책을 비난한 프랑스 주재 중국 대사관 홈페이지의 글에 공식 항의했다. 카자흐스탄 외교부는 같은 달 14일 역시 중국 대사를 초치해 “카자흐는 역사적으로 중국 영토의 일부”라는 주장을 내놓은 중국 포털 소후닷컴의 기사에 항의했다. 민주주의체제에서 언론 보도에 항의하는 것은 이례적이지만, 중국 당국이 온·오프라인 언론을 통제하고 있는 점을 감안한 조치로 보인다. 

지난 5월 6일 스웨덴 스톡홀름 거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희화한 스텐실 초상화 옆을 한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박쥐’라는 한자가 적혀 있는 초상화의 눈 부위가 훼손돼 있어 스웨덴 사람들의 혐중 정서를 대변한다. ‘아이언’이라는 가명의 스웨덴 화가가 그린 초상화는 스톡홀름 10여 곳에 나붙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스웨덴에서는 5월 7일 현재 2만3918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 이중 2941명이 사망했다. AP연합뉴스

르몽드는 최근 ‘중국의 잔랑 외교’ 특집에서 “중국은 강대국이 아니며 결코 강대국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덩샤오핑의 1974년 유엔 연설문을 거론하며 세계의 대중국 인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집중 조명했다. 세계의 코로나19 책임론에도 불구하고, ‘마스크 외교’와 중국 모델 선전전을 동시에 벌이는 중국의 투 트랙 접근을 꼬짚은 것이다.

중국이 상당한 재원을 투자해온 아프리카에서의 반중 정서는 뼈아픈 실책일 것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철도와 도로, 항만, 공항, 발전소 등 인프라를 중심으로 아프리카에 그동안 1430억달러를 투자해놓았다. 하지만 광저우에서 아프리카인들이 집과 호텔에서 쫓겨나 노숙을 하는 사태가 벌어진 뒤 아프리카 각국의 강한 외교적 반발에 직면해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공세는 5월 들어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 종래 코로나19가 아닌 ‘중국 바이러스’ ‘우한 바이러스’라고 부르던 명칭 문제와 글로벌 대유행으로 번지기 전 중국의 초기 책임론에 집중됐었다면, 이제는 내놓고 대중국 보복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포스트 트루스(진실 이후) 시대’에 사실관계는 중요치 않다. 일단 말을 내뱉고 파장이 크면 슬그머니 수습하는 게 포퓰리스트의 전형적인 공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중국에 대한 (추가)관세 부과나 채권 상각 등을 고려하고 있다”면서 대중 보복의 운을 떼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3일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의 국립바이러스연구소에서 발원했다는 ‘거대한(enormous) 증거’가 있다고 공개 발언했다가 사흘 뒤 ‘상당한(significant) 증거’라며 한발 물러섰다. 트럼프는 지난달 30일 “바이러스가 우한 연구소에서 시작됐다고 확신한다. 증거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입증할 조사를 하고 있다면서 “중국의 책임이 확인된다면, (그에 따른) 후과가 있을 것”이라는 경고를 날렸다. 트럼프의 중국 공격은 일관되지만, 그 와중에 백악관의 코로나19 태스크포스 해체를 시사했다가 번복하는 등 바이러스 대책은 여전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아직까지 미국이 말의 전쟁을 넘어 정밀한 대중국 정책을 내놓을 계제가 아닌 것이다. 트럼프는 중국의 '역린'인 대만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오션비치에서 지난 5월 6일 웃통을 벗은 두 사람이 이야기를 하며 걷고 있다. 희미하게 보이는 푯말에는 ‘멈추지도, 앉지도 마시오’라고 적혀 있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주와 뉴욕주에 코로나19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의 대외 위협 인식,  "만리장성 너머"

중국 지도부가 악화되는 반중 정서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는 4일 로이터통신 보도로 그 일단이 공개됐다. 로이터는 1989년 6월4일 톈안먼(天安門) 사태 때 못지않은 반중 감정이 전 세계로 확산될 수 있다는 중국 내부 보고서 내용을 발굴, 보도했다. 중국 국가안전부 산하 관영 싱크탱크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CICIR)이 작성, 지난달 초 시진핑 주석을 비롯한 지도부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톈안먼 사태 당시 중국 당국의 유혈진압 이후 미국과 서방은 대중국 무기 및 기술이전을 제한하는 제재를 부과했었다. CICIR은 이와 관련한 로이터의 확인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고, 중국 외교부는 “관련된 정보가 없다”고 밝혔다. 평소와 달리 보도 자체를 부인하지 않음으로써 보고서의 존재를 간접 시인한 셈이다. 시 주석이 지난달 말 “전례 없는 외부의 역경과 장기적인 도전에 맞설 준비를 해야 한다”(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고 말한 것은 이 같은 위협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공산당이 중시하는 관점은 이념이다. 시 주석은 당 정치국 회의에서 외부 세계의 변화에 맞설 ‘이데올로기적 대비’를 주문했다.

보고서는 중국의 육·해상 실크로드(BRI) 차질 가능성을 지적하며 최악의 시나리오로 ‘미·중 무력대립’을 꼽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군사적 갈등은 정면충돌이라기보다 기왕에 긴장이 조성돼온 남중국해에서의 국지적 충돌 가능성을 상기시킨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24일 홍콩의 한 쇼핑센터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행하면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하는 시진핑 주석의 대내 방침은 최근 산시성 시안 시찰 길에 발표한 ‘여섯 가지 안정’(六穩)과 ‘여섯 가지 보호’(六保)로 요약된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내놓은 여섯 가지 안정은 취업·금융·대외무역·외자·투자·기대시기 안정이며,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 주민취업·기본민생·시장주체·식량과 에너지 안전·산업(가치)사슬 및 공급사슬 안정·기층가동 등 여섯 가지를 보호해야 한다는 정책이다. 기층가동은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정책이 기층(동사무소 등 일선 행정기관)에서 잘 가동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시 주석은 지난 3월 우한과 이후 저장성, 산시성 방문 등을 통해 코로나19 방역과 경제사회 발전의 두 가지를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섯 가지 보호책 중 단기적으로 중국 고용시장에 가장 큰 위협은 각국의 가치사슬 및 공급사슬 조정 움직임이다. 코로나19 이후 각국이 보건의료 관련 장비·물품을 중심으로 중국에 의존했던 공급체계에 변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을 포함한 4대 교역주체 중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이 제조업 공장의 탈중국 방침을 발표 또는 검토하고 있다.

일본은 22억달러를 투입해 중국 내 일본 기업의 본국 또는 동남아시아 등 다른 나라 이전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일본의 방침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어느 정도 인이 박혀가던 중국 지도부의 허를 찔렀다. 필 호건 EU 교역 담당 집행위원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교역 의존도를 낮출 것”이라고 다짐했다. 미국은 자국 기업의 탈중국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단계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미국 기업들이 중국으로부터 철수하는 비용을 정부가 지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커들로 위원장은 폭스뉴스에 “공장, 장비, 지적재산권, 구조물, 혁신안 등 (중국으로부터 철수하는 데 필요한) 즉각적인 경비의 100%를 말한다”고 강조했다. 미 의회는 공급사슬의 대중국 의존도 축소를 의무화한 법안을 지난달 통과시켰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공화·플로리다)이 발의했지만 3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합류해 초당적 결의를 내보였다. 하지만 시급하게 미국 내로 생산기지를 옮겨야 할 항목으로는 22개의 방호복과 30개 정도의 약들로 국한된다고 SCMP는 전했다. 세계 1위 제조업 기지에 세계 1위의 소비자를 갖고 있는 중국 시장을 포기할 업체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뉴욕 브루클린의 한 지하철 종점에서 한 남자가 운행이 종료된 열차의 내부를 소독하고 있다. 차량에 성조기가 부착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대 서방, 헐뜯기 경쟁

로이터가 보도한 CICIR의 내부 보고서 내용은 그다지 새롭지 않다. 오히려 현 시기 각국의 대중 인식을 톈안먼 사태와 비교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톈안먼 사태가 일어난 1989년 6월4일은 중국 지도부 내에서 미국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온건파가 사라지고 강경파 일색으로 바뀐 날이다. 마이크 필스버리 허드슨연구소 중국전략센터장의 <백년의 마라톤>에 따르면 당시 중국은 교과서 등에 미국을 중국 지배를 획책해온 ‘사탄’으로 지목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코로나19로 촉발된 혐중 의식을 받아들이는 방식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SCMP가 ‘포퓰리스트 이론’이라고 소개한 만주족의 만리장성 돌파론이 흥미롭다. 중국 SNS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이 글은 명나라를 멸망시킨 만주족이 명의 방식과 제도를 따른 게 아니라 만주족의 방식으로 만리장성을 돌파했음을 강조한다. 명이 장성 너머의 만주족을 오랑캐로 보았듯이 미국과 서방이 중국을 그리 보고 있다면서 “우리가 무엇을 하건 틀렸다고 볼 것”이라고 단언했다. 톈안먼 이후 중국은 세계경제에 적극 뛰어들면서도, 서방과 이념적 벽을 허물지 않았다. 코로나19 이후에도 경제적으론 개방을 유지하면서도 서방과 감정의 골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올림픽에서 각국의 경쟁이 벌어졌을 올여름, 중국과 서방은 서로 헐뜯기 경쟁을 벌일 것 같다.” 갈 러프트 워싱턴 글로벌안보분석연구원(IAGS) 국장의 말이다. 중국 책임을 둘러싼 국제적인 소송전도 예상되는 싸움의 일환이다. 

이탈리아를 울린 한 장의 사진. 지난 3월 16일 코로나19 피해가 집중된 이탈리아 북부 베르가모의 한 병원의 벽면에 바이러스와 싸우는 보건 의료인이 이탈리아 반도를 아기처럼 껴안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림 위에는 "당신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적혀 있다. 베네치아의 화가 프란코 리볼리의 그림이다. 이탈리아에서는 5월7일 현재 21만 4457 4457명의 확진자가 발생해 이중 2만9684명이 숨졌다. AP연합뉴스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버락 오바마 정권을 창출했지만, 미국 보수의 티파티 운동도 낳았다. 1930년대 대공황도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아돌프 히틀러를 함께 낳았다.” ‘코로나19 이후’를 전망하는 미국 원로 저널리스트 토머스 에드샐(78)의 촌철살인이다.

 

위기(危機)는 쌍둥이를 낳는다. 위험과 기회, 절망과 희망을 따로 떼어내지 않는다. 팬데믹이 가져올 변화는 극과 극을 오간다. 그 중간 어딘가에서 접점을 찾는 게 각국 지도자들의 책무이자 각국 정치의 선택이다. 코로나19의 파급효과를 전망하면서 양극단의 한쪽만 바라보는 건 위험하다. 동시에 바라보면서 현실적인 방안을 내놓는 게 내구성이 있을 것이다.

 

 

오는 5월 만 99세가 되는 레지스탕스 출신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 2019년 1월. 르몽드 홈페이지.

 

100세를 바라보는 프랑스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98)은 “예상 못할 상황을 예상하라”면서 팬데믹 이후에 대한 성급한 전망을 내놓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최악과 최상, 그 두 가지의 혼합을 (모두) 예상해야 하는, 새로운 불확실성 속으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모랭은 이미 2012년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위협은 핵무기가 아니라 강한 전파력을 갖고 있는 바이러스라고 경고했던 빌 게이츠를 시대의 예언자로 꼽으면서 세계가 게이츠의 충고를 외면한 것은 세계화가 야기한 채산성에의 집착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모랭에 따르면 위기에 처한 사회는 두 가지 상충하는 흐름이 겹치는 과정을 거친다. 새로운 위기에 새로운 해법을 찾기 위해 창조적 상상력을 동원하는가 하면, 익숙한 과거로 회귀하려고 애쓰거나 하늘의 구원에 집착한다. 레지스탕스 출신으로 기술과 경제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만도 하지만 그는 관찰자의 시선을 유지했다.

 

국가주권 및 복지국가 복원과 민영화에 맞서는 공공서비스의 보호, 탈세계화(demondialisation), 반신자유주의를 위한 새로운 정치의 필요성 등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일상의 상실이 이웃 간의 연대와 지역 생산 등 창조적 아이디어로 연결되고 있는 한쪽의 흐름을 지적했다. 프랑스에서 마스크 부족사태는 패션기업이나 자동차기업이 마스크를 만드는 대안생산과 지역 생산자들의 규합, 무상 배달, 무료 급식의 연대와 독창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모랭은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불확실성과 비극이 공존하는 곳으로 자유경쟁과 경제성장이 만병통치약이라는 확신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전으로 복귀하려는 사람들이 공공 의료서비스의 태만을 인정하기는커녕 책임을 전가할 희생양을 찾고 있는 현실을 상기시켰다. ‘코로나 이후’를 묻는 질문에 양극단 현상을 모두 제시하며 끝내 물음표(?)로 답을 대신한 까닭이다.

 

지난 3월 영국의 풍자 인형쇼에서 선보인 각국 지도자들의 인형. 가운데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고 맨 오른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3월 영국의 풍자 인형쇼에서 선보인 각국 지도자들의 인형. 가운데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고 맨 오른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로이터 통신이 같은 달 전송한 사진이다. 로이터연합뉴스

 

그의 언어에서 불확실성은 그러나 절망만을 담고 있지 않다. 각자 내부로의 ‘놀라운 모험’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는 “이번 위기는 우리가 생활방식과 진짜로 필요한 것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주고 있다”면서 일단 내부로 시선을 돌릴 것을 권했다. 이상과 현실을 다 인정하고 선택을 하라는 충고인 동시에 개인이건, 사회건 그 선택에 따라 최악과 최선의 접점이 갈린다는 말로 해석된다.

 

에드샐은 지난 1일자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코로나19 위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산을 규정할 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단임 대통령이 될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짚었다. 미국 내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초기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가는 와중에도 그에 대한 신뢰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한 점을 들어 양쪽 가능성을 동등 배치했다. 주인공은 상황이다. 트럼프가 취한 조치나 취하지 않은 조치의 경계를 뛰어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미국 국내정치를 주로 다루는 에드샐이 말한 두 개의 시나리오는 결국 트럼프 있는 미국과 트럼프 없는 미국의 두 가지로 요약된다.

 

지난 21일 도시 봉쇄가 계속되는 영국 런던 피카딜리 써클에서 한 자전거 배달원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피카딜리 써클은 평소 가장 붐비는 거리이지만 저녁이면 인적이 끊긴 사막처럼 변한다.  로이터연합뉴스

 

저명도만큼이나 국내외에서 많이 소비된 전망의 하나는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은 세계질서를 영원히 바꿔놓을 것”이라는 헨리 키신저(96)의 말이다. 현실 정치학자답게 그의 관심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권을 행사해온 ‘국제질서’다. 새로운 위기에 새로운 해법을 찾기보다 익숙한 과거로의 회귀를 촉구하는 목소리로 들린다. 

 

키신저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한 즉각적인 재앙을 피하는 데 훌륭하게 대처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궁극적인 문제는 바이러스 확산세를 거꾸로 돌려놓음으로써 미국민에게 미국이 ‘스스로 통치할 수 있는 나라’라는 신뢰와 확신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평화와 안정을 위한 국제협력의 중요성도 잊지 않았다. 그는 핵무기를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와 전후 유럽을 재건한 마셜플랜에서 교훈을 끌어와 보건의료와 경제 회복, 자유주의 세계질서 회복 등 세 가지 부문에서 글로벌 협력 비전 및 프로그램을 갖춰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통성 있는 균형유지세력으로부터 세계가 뒤로 물러선다면 국내적·국제적 사회계약이 해체될 것이라는 주장에 방점을 놓았다. ‘정통성 있는 균형유지세력’은 물론 미국이다.

 

코로나19 위기가 확산되면서 드러난 사실은 가장 극적인 표현으로 위협을 강조하는 사람들일수록 기실, 기존 질서로의 귀환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소 같으면 관광객들로 붐볐을 체코 프라하의 찰스다리의 지난 4월2일 야경. 가로등만 켜 있는채 유령의 거리를 방불케 한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 중국에 헤게모니를 빼앗길 수도 있는 ‘수에즈 순간’이라고 강조했던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나, 유럽과 미국의 부실한 대처 탓에 서방 브랜드의 ‘아우라’가 퇴색됐다고 한탄한 미국 정치학자 스티븐 월트도 마찬가지다. 월트는 1918~1919년 스페인 독감 이후에서처럼 어떠한 대역병도 강대국 간의 경쟁관계를 끝내거나, 글로벌 협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각국의 민족주의가 강화돼 세계가 덜 개방되고 덜 번영하며 덜 자유롭게 되겠지만, 미국의 패권은 여전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키신저나 캠벨, 월트는 모두 미국 주도 국제질서 속에서 미국의 리더십 복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의 경고와 제언이 먹히려면 올 11월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 ‘트럼프의 미국’이 정확하게 거꾸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취임 직후부터 무슬림 이민자를 배척하고 멕시코와의 장벽을 쌓는 데 열중했던 트럼프는 분노와 증오에 뿌리를 둔 포퓰리스트의 본색을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19의 초기 확산을 막지 못한 중국 책임론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가 하면, 오랜 숙적 이란에 대한 증오도 부추기고 있다. 걸프해역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함정을 “모조리 쏴버리라”는 트럼프 지시로 끝없이 추락하던 국제유가가 반등세로 돌아섰다. 23일 자정(한국시간 24일 오후 1시)부터 60일 동안 미국으로의 이민을 중단시키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미국 경제가 다시 열릴 때 일자리의 맨 앞줄에 실직당한 미국인 실업자가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코로나19 대책에 관한 유권자들의 실망이 확인되면서 핵심 지지층을 다시 끌어모으기 위한, ‘정치적 도발’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 백악관 제임스 브래들리 브리핑룸에서 코로나19 일일 브리핑을 한 직후 브리핑 내용을 전하는 TV방송 내용을 확인하고 있다. 여론의 동향에 이리 민감한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리얼리티쇼 처럼 진행하는 백악관 코로나19 일일 브리핑에서 숱한 실언으로 대중의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 EPA연합뉴스

 

통상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지도자에 대한 지지는 높아진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트럼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주요 국가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트럼프도 초기엔 지지율이 올랐다. 하지만 4월 중순을 전후해 트럼프는 예외임이 입증되고 있다. 대선가도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갤럽 조사에서 지지율은 43%에 그쳤다. 지난 3월 중순에 비해 6%포인트가 추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NBC방송의 19일 조사에선 트럼프의 코로나 대책에 36%만 신뢰를 보였다. 3월 말 ABC방송 조사의 비슷한 질문에 55%가 지지했던 것에 비하면 급전직하다. 키신저가 거듭 강조한 ‘대중의 신뢰’가 희망사항임을 입증하는 자료다. 트럼프는 줄곧 중국의 초기 대응을 비난하고 있지만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 65%가 트럼프의 초기 대응이 너무 늦었다고 답했다.

 

초기 바이러스 방역 실패를 만회라도 하려는 듯 전 세계를 대상으로 펼쳐지고 있는 중국의 ‘마스크 외교’ 역시 기존 질서를 뒤집기엔 턱없이 부족한 것 같다.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 포퓰리즘 권위주의 국가들에서나 환영을 받고 있다.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서방의 외면 속에 제공되는 중국의 지원에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중국의 국제적 리더십을 결정적으로 높이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생전의 마오쩌둥과 헨리 키신저. 가운데는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다.  한국 사회가 키신저를 소비하는 방식은 이상하다. 그는 언제나 미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또 계속 주도해야하는 국제질서의 수호자로서 말하는데 국내에선 이를 가리지 않고 새겨듣는 경향이 있다.  위키페디아

 

서방의 중국 책임론에 되레 바이러스 방역에서 서방 모델은 실패했고, 중국 모델이 성공했다고 맞받아치는 탓에 각국의 ‘중국 거리 두기’ 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21일 발표된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결과 미국인의 대중국 비호감도가 66%에 달해 15년 만에 최악을 기록했다. 퓨리서치센터의 13일 국제비교 여론조사에서 대중국 호감도가 높은 대륙은 아프리카(59%)와 중동(53%), 남미(51%)였다. 아시아에선 베트남(10%), 일본(13%), 인도(26%), 한국(34%) 순으로 호감도가 낮았다.

존스홉킨스대 코로나19센터에 따르면 24일 오전 현재 전 세계에서 271만여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19만800여명이 사망했다. 세계적으로 보면, 증감 곡선은 12일 신규 확진자 9만9100여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약간 내려가는 추세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7만명을 웃돈다. 각국은 기존 방역 대책에 집중하는 한편, 경기부양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단순한 경제 회복을 넘어 실업자와 빈곤층 등의 생활지원 예산이 대폭 포함됐다.

 

미국(24일까지 2조600억달러), 일본(1조달러) 및 유럽 각국은 지난달 중순부터 경쟁적으로 경기부양예산을 내놓고 있다. 중국은 다음 달 양회에서 경기부양책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8년 말 금융위기 당시에는 4조위안(5750억달러)의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 경제 회복에 가장 앞장섰다. 이번엔 고속철과 지하철, 공항 등 사회기간시설 건설에 주로 투입했던 금융위기 때와 달리 인공지능을 비롯한 첨단기술 개발 및 청정에너지 개발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국가채무 부담에 경기부양예산의 규모 역시 지방정부 부채 탓에 경기부양예산의 규모를 축소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두 달 보름 동안의 봉쇄령이 풀리자 도시 곳곳에 약간의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하루 동안 268편의 항공기와 276편의 열차가 오고 갔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마다 수백대의 차량이 줄을 지었다. 그새 신록이 돋아나고, 나무마다 살림을 불렸지만, 사람들의 표정에는 긴장이 가시지 않았다고 외신은 전한다. 지난 8일 0시를 기해 76일 동안의 봉쇄령이 풀린 중국 후베이성 우한 이야기다.

 

떠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꼬리표’를 달아야 했다. 중앙정부가 개발한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했다. 집 주소와 최근 여행지 및 의료기록 등에 근거해 코로나19 감염 위협 여부를 알려주는 앱이다. 절망의 끝에서 희망은 더디게 온다. 그런데 미래가 희망일까.

 

봉쇄령이 풀린 지난 4월8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열차역 광장에서 행인들이 오가고 있다. 항공사진을 촬영한 사진은 건물의 유리벽에 비친 모습이다. 신화사연합뉴스

 

세상이 뒤집힌 날은 지난해 12월8일. 세계보건기구(WHO)가 공식적으로 기록한 첫 확진자 발생일이다. 밀도살된 야생동물이 거래되던 화난 수산물시장에서 확진자가 나온 뒤 인구 1100여만명의 우한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1월23일 전격적인 봉쇄령이 내려지자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비아냥이 서구 언론에서 제기됐지만, 밀라노와 베네치아, 파리, 마드리드, 뉴욕 등 서구 중심도시들이 우한의 뒤를 좇았다. 우한의 세계화, 세계의 우한화였다. 세계의 이목이 다시 우한에 쏠린 것은 ‘팬데믹 이후’가 궁금한 다른 도시, 다른 국가의 미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주 간 우한의 코로나19 확진자는 3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학교는 여전히 문을 닫았고, 1급 감시체계는 계속됐다. 5만여명의 확진자와 2571명의 사망자는 가족, 친지, 동료를 잃은 시민들에게 정신적 상흔을 남겼다. 아직도 515명이 치료를 받고 있다. 제조업 중심지이자, 중국 내 9개 성과 연결된 교통의 십자로였던 우한이 ‘코로나 이전’ 모습을 되찾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최근 상점들이 문을 열었지만, 점포 앞 매대에 야채와 술, 담배 등 물건을 꺼내놓았다. 고객들이 상점 안에 들어오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운행을 재개한 버스와 지하철에도 이용객은 적었다.

 

아파트 단지마다 배송받은 상품을 포장했던 종이박스들이 쌓여 있다. 온라인 배송업체 제이디닷컴(JD.com)은 주문량이 2월에 비해 3배가 늘었다. 이전엔 의류와 화장품, 여행 액세서리 등을 많이 찾았지만, 이후엔 일용품과 가정용 운동기구 주문이 늘었다. 우한 내 산업 가동률은 94%에 달했지만, 제조업 회사들은 직원의 60%만 투입하면서 작년 같은 기간 대비 20%의 전력만 쓰고 있다. 바이러스가 정점에 달했던 2월 한 달 동안 단 한 건의 주택거래도 없었던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 봉쇄령이 풀린 지난 8일 공합 대합실에서 고향으로 떠나는 지린대학 보건의료팀원들이 그동안 노고를 함께 했던 우한 동료와 포옹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차이나데일리는 이날 시진핑 국가주석의 ‘인민 퍼스트(people first)’ 방침을 상기시켰다. “내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면, 사람의 생존에 관심을 기울이며 또 그것을 성공적으로 하고 있는 중국에서 치료받을 것”이라는 캐나다 감염병 전문가의 말을 전하며 ‘중국 모델’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우한 봉쇄령 해제가 코로나19에 대한 ‘인민의 전쟁’에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면서 “우한이 이기면 후베이가 이기고, 후베이가 이기면 중국이 이긴다”는 시 주석 말도 전했다. 글로벌타임스는 밀라노와 뉴욕을 비롯한 각국 대도시들에서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한창인 것을 지적하면서 우한의 봉쇄 해제는 코로나19가 위험하고 거칠지만 제압될 수 있음을 웅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용품 부족에 시달리면서, 우한이 거쳐온 ‘초현실적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전 세계 수억명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고도 했다. 외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중국 공산당의 나르시즘은 머지않아 세계의 '중국 거리두기( China distancing)'로 이어질 것을 예고한다. 

 

우한은 거대한 바이러스 배양 접시였다. 확진자 5만여명과 사망자 2571명. 중국 전체 확진자(8만1740명)의 61%, 사망자(3331명)의 77%가 우한에서 나왔다. 숫자에 가려진 것은 개인의 삶이었다. 뉴욕타임스가 인터뷰한 GE의 현지인 판매이사는 확진자였다. 당국이 열흘 만에 급조한 레이선산 병원에서 15일 동안 치료를 받고 나온 그는 삶의 최우선 순위를 건강과 가족으로 바꾸었다고 단언했다. 우한 봉쇄 해제는 다분히 정치적, 경제적 필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우한 주민들이 스마트폰에 깔아놓은 방역 앱. 중국 정부가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한 앱에는 체온과 코로나19 확진 여부 등 신체정보가 담겨 있으며, 당국에 보고된다. 뉴욕타임스 캡처

후베이성 코로나19 방역 지휘부는 “봉쇄 해제가 방역 해제는 아니다”라면서 방역체계 1급을 유지했다. “꼭 필요하지 않다면 주택 단지 밖으로, 도시 밖으로, 성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게 당국의 엄명이다. 갇힌 공간에 약간의 환기구를 열어놓았을 뿐 우한 주민들은 여전히 ‘진지전’에서 이탈할 수 없다.

중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 통합되지 않았다면 봉쇄령은 훨씬 더 오래갔을 것이다. 우한 시당국은 3월 말 현재 방역 관련 제품 및 생필품 제조업체-금융·무역 업체-일반 산업·건설업 업체-기타 업체 등의 단계별로 업무 복귀를 완료했다.

 

코로나19는 우한에서 출발, 중국 전역과 홍콩, 한국, 일본, 이란,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지로 퍼져나갔다. 바이러스가 먼저 발흥한 지역과 주민에 대한 공포와 증오, 견제심리가 발동했지만, 선발 발흥지에서 확진자가 감소세로 돌아설 무렵 후발 발흥지에서는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순서가 달랐을 뿐 한배에 타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기존 관념이 전복되고, 각국의 기존 이미지는 전도됐다. 중국식 사회주의는 그 단점과 장점을 함께 보여주었다.

지난 2일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는 미국 워싱턴의 상징인 워싱턴기념탑 인근에서 한가로이 걷고 있는 새 너머로 성조기가 흐릿하게 보인다.  중국 신화통신 사진기자가 잡은 앵글이다. 워싱턴/신화연합뉴스

언론통제와 정보차단 탓에 작년 12월30일 처음으로 코로나19의 존재를 알린 우한의 의사 리원량이 숨진 시점은 중국 내 상황이 최악이던 때였다. 서구는 소련 공산당의 몰락을 야기한 “‘체르노빌 순간’이 시진핑에 왔다”(자밀 안데리니 파이낸셜타임스 아시아 에디터 등)면서 관찰자연했다. 하지만 곧 당사자가 됐다. 슬라보이 지제크가 르몽드 디폴로마티크 기고문에서 지적했듯이 “공산당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비롯된 전염병을 막기 위해 공산주의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 역설”을 경험하고 있다. 

 

지금까지 확진자가 ‘0명’이라는 북한의 강변과 마찬가지로 중국 내 확진자 및 사망자 통계에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구 주요국에서 심각하게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체르노빌 순간’은 미·영 간 헤게모니가 바뀐 것처럼 미·중 간 헤게모니가 바뀔 ‘제2의 수에즈 순간’(커트 캠벨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 차관보 등)으로 전도됐다.

지난 1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띠 모양의 적·백색 등이 켜져 있다. 뉴욕에서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보건의료 인력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의미로 장식된 띠다. 뉴욕/AFP연합뉴스

지난 2월26일 백악관 특별 회견에서 미국의 전염병 대처능력이 세계 1위라고 떠벌이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제 마스크·진단키트·인공호흡기 등 방역 3종 세트 공급 상황을 매일매일 성실하게 보고하고 있다. 미국은 프랑스와 독일 등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으로 향하던 중국산 마스크를 채가는 ‘해적국가’가 됐다. 변종 신자유주의자인 트럼프가 2조2000억달러의 부양책을 내놓았다.

 

서구 주요국들이 잇달아 바이러스의 숙주국가가 됐고, 국가 내 지역의 위치도 전도되고 있다. 이탈리아 국부가 집중된 북부 롬바르디아주와 베네토주가 가난한 남부보다 더 홍역을 앓고 있다. 미국에선 중서부가 아닌, 세계 경제의 수도 뉴욕이 더 큰 ‘우한’이 됐다. 9일 저녁(현지시간) 현재 미국 전체 확진자 46만1437명 중 15만9937명이, 사망자 1만6478명 중 7067명이 뉴욕시를 포함한 뉴욕주에서 나왔다. 세계화의 본산이 직격탄을 맞고 있는 현실은 필연적으로 세계화의 미래에 관한 담론을 낳는다.

지난 2일 체코 프라하의 찰스다리에 행인은 없이 가로등만 켜 있다. 평소 관광객들로 붐비던 이곳은 코로나19의 확산에 따라 인적이 끊겼다. 로이터연합뉴스

각국이 코로나19에 휩싸인 순서는 다르지만, 미구에 닥칠 세계 경제의 붕괴는 함께 겪을 수밖에 없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는 1일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경제성장 전망률(2.5%)을 1%포인트 정도 낮춰잡았다. 각국이 내놓는 천문학적 규모의 경기부양 예산이 민간부문의 소비·투자·수출 감소분을 상쇄할 것이라는 최상의 시나리오에서 주요 7개국(G7) 및 중국 경제의 성장률을 평균 1.2%로 잡았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중국, 일본, 한국, 미국 및 유럽연합(EU)에서 공급부문의 충격 및 유가 50% 하락 등 악재들이 성장률을 0.9%포인트 잠식할 경우다. 이 정도면 2009년 금융위기 당시의 1.7%포인트 감소에 비해 충격이 적다.

 

하지만 이는 미국과 EU를 비롯한 주요 경제국의 경제활동 제한이 2분기 중반까지 갈 것을 전제로 잡은 예상치다. 활동 제한이 3분기로 넘어간다면 전망치는 더 내려갈 수밖에 없다. 세계무역기구(WTO)가 8일 발표한 세계무역 감소치가 13~32%로 신축적인 것도 그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분기 전 세계 노동시간이 7%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정규직 노동자 33억명의 5분의 2에 달하는 12억5000만명이 실직하는 것과 마찬가지 재앙이다. 특히 고객과 대면해야 하는 서비스 산업의 붕괴가 우려된다. 회사에 고용되지 않고 일하는 임시직 긱 노동자(Gig worker)들은 각국의 부양책에서 대부분 제외됐다.

졸고 있는 '중국몽'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한 정부 선전광고판 앞 벤치에서 지난 8일 한 주민이 졸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1월 말 우한에 내렸던 봉쇄령을 76일 만인 이날 0시를 기해 해제했다. 선전판에는 ‘중국몽’ 구호와 함께 ‘국가부강’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AP 사진기자의 앵글이다. 우한/AP연합뉴스

‘팬데믹 이후’를 둘러싸고 각국 언론과 지식인들은 저마다 총천연색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연구시간이 부쩍 많아졌을 정치학자들이 신조어 제조에 앞장서고 있다. 코로나 이전 유행어였던 ‘뉴노멀’에 빗대 ‘세미 노멀(Semi-normal, 로스 도댓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이라는 말도 나왔다. 최악을 지났지만 정상이 아닌, 방역-추적-검진-치료-방역의 쳇바퀴를 계속 돌려야 하는 상태를 말한다. 헤게모니를 구성하는 가장 큰 요소는 군사력과 경제력이다. 바이러스는 총과 대포를 녹일 수도, 금융자본을 없앨 수도 없다. 세계화의 복원력도 만만치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2009년 신종플루 탓에 ‘4F(식량·연료·독감·금융)의 위기’가 닥쳤을 때 세계는 주요 20개국(G20) 회의체를 만들어 헤쳐나갔다. 갈수록 무정부 상태 양상을 보이는 세계가 같은 방식으로 대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세계는 금세 바뀌지 않는다. 모든 ‘순간(momnet)’은 지나고 본 뒤 규정하는 사후적 개념의 성격이 짙다. 흐릿한 변화의 추상화를 그리는 것보다 확보 가능한 데이터를 놓고, 구체적 대책을 마련하는 게 안전하다. 일단 쓰러진 사람부터 부축해야 한다.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gino's gino's 2020.04.15 12: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 외교관 선배의 촌평

    그동안 서방 국가들 사이에 중국의 위험성에 대해서 입장 차이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나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그런 의견 차이가 해소되고 중국의 진출에 대해 경계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런 판단에 동의합니다.

    유럽에서 이탈리아가 첫 희생이 된 것은 북부 롬바르디아 지방에 중국 봉제업체의 중국인 들이 수만 명이나 거주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음. 무증상 보균자들이 감염사태를 일으킨 것임

    1986년 체르노빌 사고가 소련 공산당의 몰락의 단초가 되었다는 FT 평가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이고, 실제로 미국 관리가 이번 사태가 미중간 헤게모니가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는지 모르겠으나 과연 그럴까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중국은 약점이 많고 특히 중국의 그 많은 이웃나라들은 하나하나 같이 중국에 대해 그리 우호적이 않다. 러시아? 러시아는 결코 중국의 우방이 될 수 없다. 몽골? 몽골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미국이 몽골에 공을 들인다.

    시진핑에게 말하고 싶다. “왜 당신은 자신의 장기 집권을 위해 조국의 운명을 희생하려 하는가? 덩샤오핑의 충고를 이제라도 들어라. 아직은 중국이 고개를 들 때가 아니다. 당신의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 동포와 조국의 미래를 망치려 하는가?”

    중국 공산당의 사고는 아직도 전근대에 머물러 있어 보인다.
    카자흐스탄도 중국의 일부?
    https://news.v.daum.net/v/20200414210302434

  2. gino's gino's 2020.04.15 1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페북 인트로


    '코로나19 이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나라마다 '바이러스 확진자 발생-급속 확산-사망자 속출-증가세 주춤'의 사이클은 순서가 달랐지만, 미구에 세계경제에 닥쳐올 '펜데믹 쓰나미'로 인한 피해는 모든 나라가 함께 걺어져야 할 숙명이기 때문이다. 국제정치에서는 세계경제 쓰나미와 맞물려 미-중 헤게모니의 변화 및 세계화의 종말이 예고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할 것이다'는 추측과 '~해야 한다'는 당위에 머무르고 있다. 성급한 단정 탓에 되레 펜데믹 이후를 읽는 데 걸림돌이 되는 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지난 몇주 동안 '팬데믹 이후'를 다룬 견해를 뒤져보았지만, 세계는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된다. 적어도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처해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희미한 예상보다는 눈 앞에 바이러스로 쓰러졌거나, 경제난으로 쓰러진 사람들을 먼저 일으켜 세우는 게 지금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된다. 이 글은 '코로나19 이후'를 조리있게 읽어낼 자신이 없음을 고백하는 글인 동시에, 가까운 장래를 예견한 많은 견해들 중 설득력을 갖춘 견해가 희박함을 털어놓는 글이다...

“천자(天子)의 구정(九鼎)의 무게를 물어서는 안된다.” 구정은 천자의 권력을 상징하는 아홉개의 솥이다.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왕은 주나라 사신과 자신의 군대를 둘러보던 중 주나라 황궁에 있는 구정의 크기와 무게를 넌지시 물었다. 주나라 사신은 “비록 주나라의 덕이 쇠했지만, 아직 천명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구정의 무게를 묻기에는 이르다고 사료됩니다”라며 점잖게 꾸짖었다. 초나라 왕이 주나라에 충성을 맹세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지만, 얼떨결에 구정을 탐하는 본심을 내보인 것이다.

천자의 구정을 둘러싼 고사는 때가 무르익기 전까지 상대가 당신을 적으로 생각하도록 빈틈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천자의 권력을 국제정치학으로 풀이하면 패권국(hegemon)이 된다. 강력한 힘을 가질 때까지 야망을 철저하게 숨김으로써 패권국이 현실에 안주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6일 베이징에서 코로나19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주요 20개국(G20) 특별 화상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각국 정상들은 세계경제에 미치는 펜데믹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5조달러를 투입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EPA연합뉴스

 

마이클 필스버리 미국 허드슨연구소 중국전략연구센터장(75)이 저서 <백년의 마라톤>에서 미국을 상대하는 중국의 전략을 설명하며 든 일화다. 흔히 덩샤오핑 이후 중국의 외교전략으로 장점을 감추고 스스로의 단점을 보완한다는 뜻의 도광양회(韜光養晦)를 꼽는다면, 필스버리는 멀리 전국시대에서 사고의 뿌리를 찾는다. 기만술과 이간책, 세(勢)의 중요성 등의 개념으로 중국의 의도를 분석하고 미국의 대응 전략을 논한다. 구정의 고사를 뒤집어보면, 도전자가 내놓고 구정을 논하는 것이 바로 스스로 때가 됐다고 판단하는 증좌일 터.

코로나19(COVID19) 이후의 세계가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명확한 그림을 내놓지 못한다. 하지만 그 중심에 미·중관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필스버리가 떠오른 것은 바이러스 확산의 원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중 간의 ‘공식 논란’ 때문이다. 외교적 관례나 비난의 도를 넘어선 정도가 아니라, 하나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마저 갖게 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불거진 음모론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중국 원죄론. 바이러스 발원지로 추정되는 우한 화난시장에서 불과 15㎞ 떨어진 중국 국립과학원 바이러스학연구소에서 생물무기가 실수로 유출됐다는 주장이다. 미국 원죄론은 이달 초까지만 해도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만 오가던 주장이다. 지난해 10월18일부터 27일까지 우한에서 열렸던 제7회 세계군인체육대회에 참가한 미군이 화난 수산시장에 의도적으로 바이러스를 유포했다는 주장이다.

중국 정부가 우한을 제외한 후베이성 봉쇄를 두 달만에 해제한 지난 25일 중국 베이징 역 앞에서 택시들이 줄지어 서 있다. AP연합뉴스

생물무기 관련 음모론은 2002~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도 나왔다. 사스 바이러스가 홍역과 이하선염의 혼합물로 실험실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러시아에서 나오자 중국 SNS에서는 사스가 미국의 생물무기라는 주장이 퍼졌다. 글로벌 사건 뒤에는 늘 음모론이 나온다. 문제는 양국 지도부까지 논쟁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이후’ 미·중관계는 물론 국제정치의 지형이 바뀔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미국 정치인 중 중국 원죄론을 포착해 확성기에 대고 수차례 떠든 사람은 톰 코튼 상원의원(공화·아칸소)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규정한 ‘COVID19’가 아닌, ‘중국 바이러스’ 또는 ‘우한 바이러스’라며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9일 언론브리핑에서 폼페이오 장관의 ‘우한 바이러스’ 지칭을 “비열한 행위”라면서 비난했다. 12일엔 자오리젠 외교부 대변인이 SNS 계정에 “코로나19를 우한에 가져온 것은 미군일지도 모른다”며 음모론에 가담했다. 미국 국무부가 추이톈카이 주미 중국대사를 초치해 항의하자, 중국 외교부는 미국 고위관료 및 정치인의 중국 음해에 관한 맞교섭 제안으로 대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원죄론과 관련한 언론 질의에 “(코로나)바이러스는 중국에서 온 것”이라고 못 박으며 중국 책임론을 강조했다. 폼페이오 장관도 중국이 초기 두 달 동안 정보공개와 방역에 실패했음을 집요하게 제기하고 있다.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폼페이오와의 통화에서 “중국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는 행동은 중국의 강한 반격에 부딪힐 것”이라고 경고한 까닭이다. “바이러스19의 근원과 전파 경로를 연구해야 한다”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지시는 바이러스 진원지가 중국이 아님을 규명하라는 말로 해석되고 있다.

중국 당국의 봉쇄령이 해제된 후베이성 시아닝에서 지난 26일 어린이를 데리고 나온 주민들이 거리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중 지도부의 설전은 국내정치적 수요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2016년 대선 후보 시절 미국 저소득층의 생활고가 온통 값싼 중국산 제품 탓이라는 ‘중국 때리기’로 득세한 트럼프다. 올 11월 대선을 앞두고 새로운 형태의 중국 때리기로 착실하게 포인트를 쌓아가고 있다. 최근 ABC방송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코로나19 대책에 관한 지지율이 55%에 달한 게 이를 말해준다. 트럼프의 지난 대선 득표율(46.09%)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로 상당수 민주당 지지자들을 포함한다. 올해는 중국이 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게 한다는 ‘전면적 샤오캉(小康)사회’ 건설 목표연도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가장 심각한 사회정치적 위기’(포린어페어스)를 맞아 대미 태세를 공세적으로 전환함으로써 민심을 다스릴 필요가 있었을 법하다.

그 저변에는 이념 갈등이 깔려 있다. 중국 공산당은 1980년대 국내에 퍼진 에이즈 바이러스를 사회주의 체제의 위협으로 간주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이념전쟁 동기로 활용해왔다. 중국은 1984년 4월 WHO 대표에게 제출한 에이즈 보고서에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면서 에이즈 통제를 자신했다. 혈액 감염 사태를 비롯한 공산당 지도부의 거듭된 실책은 심각한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링성리 중국 외교학원 국제관계연구소 부소장 역시 코로나19와 관련한 미·중 상호 비방전을 ‘이념 경쟁’으로 규정했다. 

링 부소장은 19일 글로벌타임스 기고문에서 “중국은 과거 미국의 이념적 때리기에 소극적으로 대해왔지만, 최근 몇 년 전부터 미국의 강화된 공세에 ‘덜 방어적’이 됐다”고 지적했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중국이 공세적으로 전환하면서 미국 없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한 에어컨 제조 공장에서 지난 25일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두 달여 된 우한 봉쇄령을 오는 4월8일 해제할 계획이지만, 단계적으로 공장 가동을 이미 재개하고 있다. 봉쇄령 하에서도 일부 공장을 가동하는 것은 중국 사회주의 체제에서나 가능한 일로 보인다. 코로나19에서 벗어나는 데 있어 미국 체제 보다는 중국 체제가 유리한 점이다. AFP연합뉴스

줄리안 거위츠 하버드대 교수는 3월4일자 옥스퍼드 아카데믹 논문에서 중국의 에이즈 경험은 과거 역사가 아닌, 코로나19가 확산되는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구의 중국 비난은 아편전쟁 이후의 굴욕과 모멸을 상기시킴으로써, 방어적 민족주의를 자극한다. 코로나19 국면에 드러난 것은 방어적 민족주의에서 공세적 민족주의로의 태세 전환이다. 글로벌 팬데믹과 같은 대사건은 국내정치와 대외정치에 각각 다른 함의를 던진다. 선거를 앞둔 국내정치에선 트럼프의 지지율 상승에서 보듯 ‘현직 프리미엄’이 커지지만, 대외정치에선 패권국보다 도전국이 입지를 넓히는 경우가 많다.

중국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지도력을 인정받은 데 이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꾸준하게 포인트를 쌓아왔다. 양차 세계대전 뒤 헤게모니 국가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대체된 것이 좋은 본보기다. 다만 미국은 지난 세기 영국이 갖지 못했던 달러화 발권국의 특수지위를 갖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중국이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을 제안한 건 달러화 패권을 겨냥한 담대한 포석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중국은 보다 큰 판을 짜고 있다.

트럼프의 자유무역협정과 파리기후협약 파기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은 미국이 떠난 공간에 어김없이 파고든다. 국제규범의 공백이 중국의 공세적 접근을 열어주었다.(이희옥 성균관대 교수) 커트 캠벨 미국 아시아그룹 대표와 러시 도시 브루킹스연구소 중국전략이니셔티브국장은 18일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중국이 코로나19 방역장비를 대량으로 제공하고, 국제협력을 주선하는 등 글로벌 리더의 역할을 이미 해내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세계 질서는 처음엔 조금씩 바뀌지만 어느 순간 한꺼번에 뒤집힌다. 캠벨과 도시는 영국이 헤게모니를 상실한 1956년 수에즈 운하 사건을 상기시키면서 코로나19 팬데믹이 제2의 ‘수에즈 순간(Suez moment)’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 백악관에서 코로나19 특별대책팀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우한의 의사들이 새로운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경고한 뒤 WHO 보고까지 최소 5주 동안 사태를 키웠다는 비난은 적어도 중국 지도부에는 부차적인 요소다. 세계의 중국 책임론에 개의치 않는 게 중국식 사고다.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되레 “중국은 이미 코로나19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으며, 중국의 노력은 각국의 방역을 위한 시간을 확보해주었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이 팬데믹 대책 마련에 리더 역할을 할 능력이 안되거나, 할 용의가 없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만으로도 중국 리더십을 부각할 수 있다. 그 빈틈을 물량으로 채운다. 중국은 유럽연합(EU)이 외면 또는 방치하고 있는 이탈리아에 마스크 200만개, 호흡기 10만개, 구호복 2만벌, 진단키트 5만개 등을 공수했다. 이란과 세르비아는 물론 아프리카 54개국에도 긴급 방역장비를 투하하고 있다. ‘세계의 공장’은 방역장비 생산기지이기도 하다. N95 마스크의 절반 정도는 중국이 만들고,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소비한다. 중국은 공여국, 미국은 수혜국이 된 셈이다.

중국인은 미국인과 다른 방식으로 전략적 사고를 한다. 단극 체제가 아닌 다극 체제를 선호한다. 코로나19 이후 세계는 미국과 중국이 각각 다른 가치를 표방하는 다극화로의 첫걸음을 뗄 것인가. 링 부소장은 중국의 중·미 간 ‘신냉전’의 도래를 우려했다. 이근 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은 “트럼프가 할지 (미국 대선 뒤) 바이든이 할지 모르지만, 미국은 자유와 혁신을 강조하는 미국 모델로 맞설 것”이라며 “미·중 간 모델 경쟁이 미래산업의 가치사슬 재구조화로 연결될 것인지가 가장 궁금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모든 정황과 증거는 중국이 이미 미국이 갖고 있는 ‘구정’의 무게를 묻고 있음을 말해준다.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gino's gino's 2020.03.27 15: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페북 인트로
    한반도가 포함된 국제문제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제문제를 그 자체로 보는 것도 유용하다고 본다. 언제부터인가 글에 '중국'이 포함되면, 포탈 댓글이 사나워진다. 관온민랭(官溫民冷), 정부 간 관계는 부드럽지만, 민간 간 관계는 냉담한 것이 한중관계의 양면이다. 나는 중국 공산당을 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옆의 현실임을 외면하지도 않는다.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주관적 의지도 중요하지만, 객관적 시선 역시 유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중국인은 미국인과 다른 방식으로 전략적 사고를 한다. 중국은 놀랍게도 코로나19로 빚어진 미국과의 갈등을 '이데올로기 경쟁'으로 보고 있었다. 초기 대응 실패로 전세계가 홍역을 앓고 있다는 비난을 간단하게 무시한다.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가 되레 코로나19 방역 및 이후 대응에 더 유리하다는 체제 선전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자유무역과 기후변화 대응에 이어 코로나19는 중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 같다.

  2. gino's gino's 2020.05.19 20: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정인 특보 인터뷰②] “중국 위상, 팬데믹 아니라 내부 모순·한계가 좌우할 것”
    by 피렌체의 식탁 | 2020년 5월 8일 | 국제, 한반도



    코로나19 위기는 지구촌을 강타한 우리 시대의 전환기적 사건이다. 인류 문명과 세계 질서, 국가 흥망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피렌체의 식탁>은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통일 특보를 5개월 만에 만난 자리에서 코로나19를 화두 삼아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을 짚어봤다.
    문 특보는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의 위상 변화, 서구식 민주주의의 한계, 동아시아 전염병 방역체계 등을 설파했다. 그중 미중 패권경쟁과 차이나 리스크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지금 단계에서 미중 패권경쟁이란 여러모로 말이 안 된다”며 “다만 두 나라 사이에 전략적 경쟁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팬데믹이 아니라 중국 내부의 모순과 한계가 더 큰 변수라는 것이다. <피렌체의 식탁>은 인터뷰 내용 가운데 ‘코로나19 이후 세계질서’를 떼내서 별도로 싣는다. [편집자]


    #스마트 파워 과시, 국제 표준 수립
    한국, 코로나19 위기 winner 됐다
    #서구식 공리주의·자유방임 대응 실패
    ‘선진 민주주의’ 일방적 기준 무너져
    군사안보→경제안보에서 생태안보로
    #미중, 패권경쟁 아닌 전략적 경쟁일 뿐
    美 대통령 누가 돼도 대중 강경론 채택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인류는 혼돈의 시대를 다시 겪고 있습니다. 인류의 3대 재앙이라는 기아, 전염병, 전쟁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실감케 됩니다. 인류 역사상 3대 재앙은 순서를 달리해 개인 생존을 위협하고 공동체를 해체시켜 왔습니다. 코로나19 이전, 이후 세상에 대해 특보님께서는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유발 하라리가 <호모 사피엔스>를 출간하기 훨씬 전에, 아놀드 토인비가 썼던 <역사의 연구>가 생각난다. 토인비는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가 자연환경 변수, 인간환경 변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는데, 인류 문명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 중 하나가 전염병이라는 것이다.
    시카고대학의 윌리엄 맥닐 역시 1976년에 출간한 <전염병과 인류(Plagues and People: Disease, Power and Imperialism)>를 통해 전염병이 인류역사와 문명변천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 한(漢)나라가 망한 건 전염병 때문이다. 당시 6000만 인구가 전염병이 창궐하자 200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로마제국이 망한 것도 비슷하다. AD 160년~260년 100년 사이를 보면 인구가 500만쯤 감소했고, 260년대엔 하루 5000명씩 줄어들었다.
    14세기 중반엔 페스트가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페스트로 수많은 사람들이 비극을 겪었지만, 역사의 변화를 낳기도 했다. 농업자본주의가 생겨났고, 르네상스를 촉발한 측면이 있다. 20세기 초 스페인독감 같은 경우에도 전 세계에서 5000만 명이 죽었지만 그 결과로 공공보건 개념이 생기고, 전염병 퇴치 방식이 정착되고, 천연두‧홍역 등 각종 감염병을 퇴치할 백신 개발이 시작되었다. 아즈텍과 잉카 문명도 스페인이 전파시킨 천연두, 성병 때문에 멸망했다. 아즈텍 제국에선 100년 새 끔찍하게도 2000만 인구가 160만으로 줄어들었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를 두고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마스 프리드만은 BC(before corona), AC(After corona)라는 표현을 통해 코로나19를 인류역사의 전환기적 분기점으로 삼았다.
    그러나 내 견해는 좀 다르다. 코로나19 이후엔 세상이 다 바뀔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성공적으로 코로나19 위기를 막아내고, 백신과 치료제를 만든다면 코로나19 이전 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거꾸로 위기 확산을 막는데 실패해 경제 대공황이 오고, 1930년대처럼 대공황이 전쟁으로 이어진다면 그 이후 세계 역사는 또 한 번 크게 바뀔 수 있다.
    역사를 볼 때 BC/AC란 시각도 있지만 결국은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인류가 단합을 하고 국제적 노력을 통해 위기상황을 돌파해 나간다면 기존 국제질서가 복원, 유지되고 오히려 국제협력이 증대될 수 있다.
    실패할 경우엔 ‘신(新) 중세’가 생겨날 가능성이 높다. 헨리 키신저가 말한 대로 시대에 뒤떨어진 ‘성곽도시(walled city)’ 같은 게 부활되어 민족주의, 포퓰리즘이 강해지고 세계화를 거부하며 일국 중심으로 흐르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인류에겐 최악의 시나리오다.

    동서양 대척구도로 동양 우습게 봤지만
    공동체적 접근이 공리주의적 접근 눌렀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한국의 위상과 국제사회 평가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한국이 발전시켜온 보건의료, 정보화, 시민의식, 행정서비스 등이 전 세계에서 주목 받습니다. 외교안보 측면에서 이런 호기를 어떻게 잘 활용해야 할까요?

    ▲하버드대학의 조지프 나이 교수는 한 나라의 국력이 하드 파워, 소프트 파워, 스마트 파워로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하드 파워란 군사력, 경제력, 과학기술력이다. 소프트 파워는 국제적 공헌과 관련이 있다. 한 국가가 국제사회에 공헌을 많이 해서 다른 나라들의 존경을 받고 매력 있는 국가로 떠오를 수 있는 힘이다.
    하지만 나이 교수는 스마트 파워에 주목한다. 이것은 외부로부터 위협이나 위험이 다가왔을 때 어떻게 효과적으로 관리하느냐, 정책 결정을 얼마나 빨리 능률적으로 일관성 있게 해내느냐, 이미 만든 정책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행하느냐, 이런 종합적 능력을 스마트 파워라 일컬는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한국은 사실상 위너(winner)가 됐다. 우리는 코로나19 검역부터 방역, 동선 추적, 격리, 확진자 증상 분류, 입원 치료 등 이 모든 과정들을 성공적으로 보여줘 국제 사회의 롤 모델이 되고 새로운 표준이 되었다. 한 마디로 한국 정부의 ‘스마트 파워’를 보여줬다. 정부만 잘한 게 아니라 의료진,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협력과 실천에 힘입어 새로운 형태의 스마트 파워를 과시한 것이다. 보통 스마트 파워는 정부 역할만 강조되는데, 한국은 정부, 의료보건 분야, 시민사회 3자 간 협력으로 스마트 파워를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한국의 위상이 크게 격상됐다. 소프트 파워가 올라가면서 ‘코리아 스탠더드’란 말이 생겨났다. 코로나19 사태에 대해서 우리가 유니버셜 스탠더드, 보편적 기준을 세운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제사회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성공적인 리더가 되었다.
    이런 사례는 대한민국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 2002년 월드컵, 1998년 IMF 위기 극복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모든 국가의 선망 대상이 됐다. 해외 교민들도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가. 한국이 소프트 파워를 창출하고, 그것이 한국의 대응방식을 국제 표준으로 만들어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나라가 됐다. 단군 이래 이런 쾌거는 없었다.

    혐중론·황화론은 외부 희생양 찾기
    서양문명, 미국식 민주주의 민낯 드러내

    -이번 코로나19 때문에 서방선진 G7 가운데 5개국이나 큰 낭패를 겪었습니다. 미국을 비롯해 이탈리아, 영국, 독일, 프랑스가 방역·치료 측면에서 실패한 이유는 뭘까요?

    ▲불름버그 통신의 편집장 존 아서(John Arthur)는 자신의 칼럼 말미에 ‘코로나 사태의 대응방식엔 나라마다 패턴이 있다’고 말한다. 영국은 공리주의적 접근을 했다. 초기에 젊은 사람부터 살리고 80세 넘는 사람은 죽게 놔두자는 식으로 대응했다가 크게 실패를 하고서야 바꾸었다. 스웨덴도 집단 면역(Herd Immunity)이라는 공리주의적 접근을 취했다. 이탈리아, 미국은 거의 자유방임주의 태도를 취하며 정부 차원에서 확실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서구 사회에서 자유방임과 공리주의 접근이 주(主)를 이루었던 반면, 한국은 존 롤스의 <정의론>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행동했다. “가장 이상적인 자유주의적 민주정부는 가장 어려운 사람부터 도와준다”라는 자세였다.
    존 롤스는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을 가정한다. 공동체 구성원의 성(性), 소득, 학력 등을 전혀 모르는 원초적 상태에서 헌법을 만든다면 누구든지 가장 큰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먼저 돕자고 하는 게 인간의 기본 심성이라는 것이다. 역지사지와 측은지심 정신이다. 누구든지 자신이 어려웠을 때 도와주는 정부를 최고의 정부라고 생각할 것이다. 한국은 그 원칙을 지켰다. 게다가 시민사회 협력과 공동체 정신까지 함께 발휘됐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마이클 샌델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극복하기 위해선 공동체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구식 자유방임주의에 대한 비판에 다름 아니다. 헌법에 보장된 개인 자유도 공동체 이익, 장 자크 루소가 말한 ‘일반의지’에 선행할 수 없다. 공동체 이익이 우선될 때 코로나19 확산은 억제되고 시민들의 이동 제한도 정당화될 수 있다.
    한국과 대만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존 롤스의 주장대로 ‘어려운 사람부터 도와주자’란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살아날 사람부터가 아니라 어려운 사람부터 도와준 것이다. 공동체적 접근을 하는데 정부도 적절한 지침을 잘 내렸고, 시민사회도 적극 협력했다. 비상상황일 수록 공동체 이익이 개인 자유에 우선할 수 있다는 인식 덕택이다. 우리 헌법엔 개인 자유 보장과 함께 공동체 우선주의 정신도 담겨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몇 가지 현상이 눈에 띄었다.
    먼저, ‘선진 민주주의’에 대한 일방적 기준이 사라졌다. 서구 민주주의의 우월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본격화됐다. 코로나19 초기에 유럽에 간 적이 있는데, 바이러스 발원지인 우한(武漢)과 중국에 대한 ‘bashing’, 즉 혐중론이 엄청났다. 한국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에 Korea bashing이 벌어졌다. 심지어 “황인종에게 문제 있다”는 황화론까지 퍼졌다. 그렇게 사태 초기엔 ‘서구↔동양’이란 대척 구도에서 동양을 우습게 여겼던 유럽 사회가 요즘 할 말을 잃었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서구 민주주의 우월론의 한계를 본 것이다. 서양 사람들도 처음엔 외부에서 희생양을 찾았다. 황화론이 그 예다. 위기상황에서 민주주의도, 서양문명도 근본적 한계를 보여줬다.
    유럽에서 눈을 돌려 미국을 보자. 트럼프 대통령은 올 11월 대선 승리가 급하니까 하루빨리 봉쇄를 풀고 경제를 살리려 했다. 그러나 50개 주(州) 주지사들은 대부분 11월에 선거를 치르지 않는다. 다음번 선거가 있을 몇 년 후를 봐야 하는 상황에서 코로나19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조금 더 봉쇄, 폐쇄를 연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놓고 트럼프 대통령과 쿠오모 뉴욕 주지사가 급기야 공개석상에서 설전을 벌였다. 공화당 출신 주지사들은 단계적인 완화조치를 선언한 반면, 민주당 출신 주지사들은 그에 반대한다.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미국식 민주주의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코로나19 계기로 역내 대응체제 논의
    동아시아, 남북한 차원을 병행해야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남북한 협력뿐만 아니라 좀 더 폭넓게 동아시아의 전염병 대응체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것을 발판으로 역내의 경제·환경·보건의료 협력 체제를 강화하자는 취지인 것 같습니다. 특보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남북 협력을 안 할 수는 없다. 남북 협력을 미뤄놓고 동아시아 협력 체제로 가자는데 동의할 수 없다. 두 가지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상승효과를 낼 수 있다. 한·중·일에다 북한, 몽골, 러시아 극동지역을 껴서 협력 체제를 만드는 것도 좋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남북 교류협력을 해야 한다. 남북 간 판문점선언, 평양선언은 두 정상이 만나서 이뤄낸 것인데 거기에 진전이 없다면 말이 안 된다.

    -북한과의 교류에만 집착하다 동북아 차원에서 더 큰 것을 놓치지는 않을까요?

    ▲아니다. 대한민국은 충분히 두 가지를 다 해낼 수 있다. 병행하면서 서로 상승효과를 내는 게 필요하다.

    미중, 위기 극복 협력 땐 현상유지
    실패하면 新중세, 성곽도시로 퇴행

    -미국과 유럽에선 요즘 들어 ‘중국 책임론’을 다시 꺼내듭니다. 심지어 배상 책임까지 거론합니다. 이번 사태로 서구 사회의 대중국 압박·견제가 하나의 전선(戰線)으로 구축되는 느낌입니다. 동서양 문명충돌이란 시각도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장차 세계질서 변화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아무튼 미국은 글로벌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고 말았습니다. 혹자는 미국의 쇠락 조짐이라고 주장합니다.

    ▲미중 경쟁 패턴이 재밌게 전개될 것이다. 바이러스 발원지는 중국이지만, 중국은 전 세계 86개 국가에 방역 물자를 지원하며 소프트 파워를 올리고 있다. 미국은 현재 최대 감염 국가란 오명과 함께 피해국들을 돕기는 커녕 세계보건기구(WHO) 분담금조차 내지 않겠다며 극도의 자국 중심주의를 보여줬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중국이 패권국까지는 아니어도 지도국가로 부상할 수 있다.
    국제정치 차원에서 가장 큰 걱정은 코로나19 자체가 아니라 경제적 대공황이다. 대공황이 발생하면 미국 없이 해결하기 힘들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무렵 패권국가가 됐다. 그런데 2차 대전이 왜 발발했는가? 보호무역주의, 경제정책 실패, 인플레이션 때문에 그런 것이다.
    당시엔 세계경제를 살리려면 무엇보다 자유무역을 해야 한다는 컨센서스가 이뤄졌다. 그러기 위해 관세·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를 체결했다. 여기에다 국제통화기금(IMF)을 만들고 미국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채택했다. 미국이 전후 복구자금을 지원하려고 세계은행, IBRD등을 만들었는데 이를 브래튼우즈 체제라 한다. 이 모든 것들을 미국이 앞장서서 주도했기에 자애롭고 존경받는 패권국가가 될 수 있었다. 이것을 다시 재현할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미국에 달려있다. 중국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미국이 다시 뜰 수도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보며 느낀 것은 기존의 안보 개념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 안보란 외부의 물리적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자연히 군사 안보가 주축이었다. 더 나아가면 경제 안보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생태 안보, 생물학적 위협에 대한 안보가 중요해졌다. 처음 있는 일이다. 안보라고 말할 때 과거처럼 군사 안보만 생각할 수 없다. 팬데믹이 확산돼 나라마다 국가부채가 많아지면 정부예산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삭감할 부분은 국방예산밖에 없다. 한국도 3차 추경예산을 편성하며 국방예산 중 6000억 정도를 줄였다.
    과거에 국가 안보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지구촌 안보’가 중요해졌다. 그러려면 국제 협력이 꼭 필요하다. 트럼프 정부의 미국에선 아마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반면에 중국은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과시한다.
    앞에서 전염병의 역사부터 세계 질서 변화를 훑어봤다. 결국 코로나19 사태에 미중 양국이 공조해 대응을 잘하면 현상유지를 할 것이고, 어느 한 쪽이 못할 경우엔 신(新)중세, 성곽도시로 돌아간다. 유럽연합(EU)의 행보를 보면 그야말로 ‘신 중세’를 연상케 한다. EU가 이제서야 이탈리아, 스페인처럼 어려운 국가들을 향해 협력하자고 하는데 협력은 가장 힘들 때 해야 하는 거다.

    자본 안전성 위해 코로나19보다
    中이 가진 내재적 위험에 주목해야

    -세계 각국은 코로나19 경제위기를 1930년대 대공황에 버금가는 사태로 간주하고 재정·통화정책을 총동원해 엄청난 돈을 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서구 사회에서는 ‘중국 혐오론’과 인종주의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가치사슬(GVC)에서 차지하는 중국경제의 위상과 비중은 과연 위축될까요?

    ▲글로벌 가치사슬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때문에 확산됐다. 토마스 프리드먼이 <The world is flat>이란 책에서 세계화,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에 대해 설명했다. further(더 멀리), faster(더 빨리), deeper(더 깊이), cheaper(더 싸게) 네 가지다.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생산자,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세계화가 만들어놓은 이 논리를 절대 거부할 수 없다.

    -거기에 safer(더 안전하게)란 요소가 추가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좋은 포인트다. 기본적으로 자본의 논리를 따지다 보면 safer, 안전성의 논리가 나온다. 이는 곧 위험 분산을 위한 헤징(hedging)의 변수다. 자본의 안전성을 위해 중국 현지에서 머무느냐 떠나느냐 생각해볼 수 있는데, 그건 사실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 다만 안전성 논리가 아니라 시장 논리에 따른 것이다.
    중국에서도 민주화 요구와 함께 환경규제가 강력해지고, 임금 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쟁의가 늘고 있다. 그로 인해 삼성도, LG도 떠나게 만들었다.
    헤징 변수를 생각할 때 중국의 내재적 위험에 주목해야 한다. 임금 상승, 강력한 규제, 중국식 시장경제의 구조적 문제, 국유기업에 대한 과다한 부실 금융, 중국 금융체계의 붕괴 같은 리스크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즉 팬데믹이 아니라 중국 내부의 모순과 한계에 의해 그 위상이 변화할 수 있다. 팬데믹 이전부터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 시장의 위험도를 인식하고 다변화를 모색해왔다. 다만, 중국은 세계의 공장인 동시에 세계의 소비시장이어서 어느 누구든 중국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중 패권전쟁 시나리오는
    진짜 위협 아닌 인위적 위협일 뿐

    -2018년 12월 화웨이 사태로 촉발된 미중 무역전쟁, 지난해 격화된 홍콩 반중 시위, 코로나19 발생 초기의 은폐 의혹 등으로 인해 시진핑 주석과 공산당 지배체제는 상당한 내상을 입었습니다. 중국 정부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인지 코로나19 위기 국가에 대해 ‘방역지원 외교’를 펼칩니다. 미중 패권 싸움은 향후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까요?

    ▲사실 미중 패권 싸움이라는 용어 자체에 어폐가 있다. 패권은 지금도 미국이 확실히 갖고 있다. 우리는 미국이 만들어놓은 질서 속에서 살고 있다.
    군사비만 보더라도 미국은 해마다 약 1조 달러를 쓴다. 중국은 많이 써봐야 3000억 달러다. 비교가 안 된다. 미국은 전 세계에 7개 함대를 배치하고 있는데, 1~3함대는 미국 본토, 4함대는 캐리비안, 5함대는 바레인에서 중동-인도양, 6함대는 지중해-대서양, 7함대는 일본 요코스카부터 서태평양-인도양까지 커버한다. 미국의 항공모함은 F18 같은 전투기를 적게는 70대, 많으면 90대까지 탑재 가능하다. 중국은 항공모함 세 척을 건조했지만 더 이상 늘리기는 쉽지 않을 거다. 게다가 중국 항공모함은 탑재기를 30대밖에 실을 수 없다. 어떻게 비교가 되겠는가.
    경제력을 보더라도 미국의 GDP는 약 20조 달러, 중국은 13조 달러 정도다. 구매력 평가지수로 따지면 중국이 앞선다고 하나 지금 단계에서 패권 경쟁은 여러모로 말이 안 된다. 다만 두 나라 사이에 전략적 경쟁은 가능하다고 본다.
    미중 관계는 결국 두 나라가 어떤 정책을 펴느냐에 달렸다. 미국이 패권적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강경책을 펼치고, 시진핑도 미국과 경쟁하는 패권적 국가로 부상하겠다며 강대강(强對强)으로 맞붙게 된다면 상당히 상황이 어려워진다. 양국이 지금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와 달리 미국이 온건정책, 중국이 강경정책을 펼 수 있고, 거꾸로 중국이 온건하게, 미국이 강경하게 나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혹은 헨리 키신저가 얘기했듯 미중이 공진화(共進化)를 추구하고 서로 협력하는 시나리오도 있다. 이처럼 강대강, 강대약, 약대강 대응 패턴이 있겠지만. 이건 두 나라의 국내 변수와도 얽힌 문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미국은 누가 대통령이 돼든 중국에 대해선 강경한 태도를 취할 것이다.
    중국 시진핑은 강경하게 나가겠지만 속으로 고민이 많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중국은 경제적 위기에 빠졌다. 이 위기는 중국을 중진국 함정에서 못 벗어나게 할 수 있다. 지난 1분기에 마이너스 6.8% 성장을 하지 않았는가. 중국이 미국과의 패권 다툼에 나섰다가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면 국내외 여건이 더 힘들어진다는 제약도 있다. 또한 타키투스의 함정(Tacitus Trap)에 빠질 우려도 있다. 타키투스는 로마 제정시대의 역사가인데, 어느 나라 정부나 조직이 신뢰를 잃는 원인으로 지도층의 부패, 관리체계의 경직성, 집권세력의 무책임성을 지적했다. 요즘 중국을 보면서 이런 위험을 거론하는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서방화의 함정도 있다. 중국에서 민주화, 서방화를 하자는 요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소수민족 분리주의 운동이란 함정까지 있다.
    중국의 급부상을 놓고 외부에선 ‘신흥 강대국’이니 패권 도전이니 이야기하지만, 막상 중국 입장에선 ‘(국제사회가) 우리를 인정해 달라’는 욕구가 크다. 중국은 내부 도전 요인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미국 측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에 도전하는, 패권적인 수정주의 세력이 있다는 의견에 동의하기 어렵다. 미중 패권 경쟁과 그에 따른 전쟁 발발 가능성은 인위적으로 만든 위협일 뿐 진짜 위협이 아니라고 본다. 미중 사이에 얼마든지 협력이 가능하다.

    대담=이양수 편집주간
    정리=한은지 기자

팬데믹(Pandemic).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COVID-19)를 지구적 대유행을 뜻하는 팬데믹으로 선언하건 안 하건 중요치 않다.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까지 번져 이미 지구촌 차원의 재앙이 됐다. 각국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아직 ‘최악의 순간’은 오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2월 26일자 WHO 상황보고서 37호에 따르면 지난해 12월8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첫번째 확진환자가 발생한 이후 이날까지 8만1109명의 감염환자가 확인돼 2761명이 사망했다.

이날자 상황보고서는 하루 동안 중국 밖에서 확진자가 459명 늘어 중국 내 확진자(412명) 수를 처음 넘어선 점을 특이사항으로 꼽았다. 바이러스 방역 대상이 ‘숙주 국가’ 중국에서 세계 각국으로 바뀌는 변곡점이 된 날인 것이다.

지난 2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에서 쿵후 스타 이소룡이 그려진 벽화 옆에 한 남자가 서 있다. 런던 브리드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전날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미국 내에서는 이날까지 60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샌프란시스코 EPA연합뉴스

 

26일은 주요 2개국(G2) 지도자들이 시차를 두고 각각 코로나19에 대한 입장을 내놓은 날이기도 하다. 바이러스 발원국인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여유를 보였고, 일관되게 사태를 낙관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처음으로 방역 대책에 국가적 역량을 쏟아부을 것을 선언했다. 시 주석은 이날 중국 최고지도부 회의인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를 열어 “현재 전국의 코로나19 방역 상황이 호전되고 있고, 경제 사회 발전도 회복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샤오캉(小康) 사회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애써 평상을 유지했다.

코로나19 10% 수준 확진 나온
사스 경우 진정까지 8개월 걸려
방역시스템이 팬데믹 2막 좌우
글로벌 보건안전지수 1위 미국
완벽 시스템도 재앙엔 역부족
특정국가·한 지역 봉쇄한다면
다른 질병 대응 실탄 확보 난관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특별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민에 대한 코로나19의 위험은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낙관했다. 하지만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총괄 책임자로 지명하며 총력 대응 선언을 했다. 미국은 그나마 이달 초부터 자국민의 중국 여행 및 중국 체류 외국인의 입국을 모두 금지했기에 대응시간을 벌 수 있었다.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는 것은 바람을 막는 것처럼 가능하지 않다. 다만 전파를 지연시키는 데는 초기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 본격적인 방역전쟁에 앞서 대응 시스템을 완비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발 팬데믹이 입증한 것은 권위주의 국가의 스트롱맨들일수록 초기 대응이 단호했다는 점이다. 각국의 대응에는 중국 영향력과 자국민의 안전 사이에서 중간지점을 찾으려는 고민이 엿보인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자타가 공인하는 ‘필리핀의 트럼프’이다. 하지만 통치스타일이 트럼프와 닮았을 뿐 외교적으로는 중국에 밀착해왔다. 미국의 군사동맹국이면서도 2016년 취임 이후 ‘차이나 머니’의 실익을 좇았다.

코로나19가 발생한 뒤 필리핀 보건의료계가 중국 본토 방문객들의 입국을 제한해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지난달 말까지 묵살했던 이유다. 프란시스코 두케 보건장관은 중국 관광객의 입국금지는 “정치적, 외교적 보복을 당할 수 있다”면서 거부 이유를 밝혔다. 두테르테 정부는 마지못해 1월31일자로 중국 내 코로나19 감염지역 출신 중국인 여행자들에 한해 입국금지령을 내렸다.

2월 27일 일본 도쿄의 증권가에서 마스크를 쓴 남자가 니케이지수가 2.13%(477.96포인트) 하락을 알리는 전광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하지만 지난 2일 우한 출신의 중국인 여행객이 중국 밖에서 처음 바이러스 사망자가 되자 입국금지령을 모든 중국인 여행객으로 즉각 확대했다. 중국인 입국금지령을 촉구해온 현지의 보건의료 전문가는 “각국은 자국민을 구하기 위해 외교적 프로토콜을 깨야 한다”면서 “필리핀은 제1세계의 (선진)국가들처럼 (바이러스 방역에) 준비가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26일 현재까지 필리핀 확진자는 3명에 그쳤다.

훈센 캄보디아 총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동남아의 대표적인 친중 지도자다. 일관되게 중국발 팬데믹의 위험을 평가절하하고 있다. 중국 방문을 앞둔 이달 초 훈센은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한 자리에서 “총리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데, 당신들은 왜 하고 있느냐”면서 대범함 또는 무모함을 내보였다. 캄보디아는 이달 초부터 WHO에 확진자를 계속 1명으로 보고하고 있다. 캄보디아 보건부의 설명처럼 고온에 약한 바이러스의 특성상 기후가 최선의 방패 역할을 하고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캄보디아 민간항공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코로나19가 발생한 뒤 우한에서 귀국한 캄보디아 국민만 3000명에 달한다. 촘촘한 방역 시스템으로 국민의 안전을 도모하고 있는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그보다는 자국민의 해당국 입국금지령을 내리는 것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해온 중국의 압력을 고려한 조치로 의심된다.

중국 영향력·자국민 안전 사이
각국, 국경 폐쇄·균형 찾기 고민
11월 미국 대선 향방에도 영향
러 소셜미디어들 가짜뉴스 유포
미국 사회 흔든다는 의혹 제기
백신 개발 시간 걸려 ‘연대’ 필요
대유행 뒤 세상 아직은 안갯속

 

앤 슈차트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의 수석 부국장이 지난 26일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관련 특별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슈차트 수석 부국장은 같은 자리에서 코로나19 방역에 지극히 낙관적인 입장을 피력한 트럼프 대통령을 세워놓고 “지난 몇주 동안 (코로나19의)경로로 보아 향후 몇주, 몇달 동안 상황이 매우 불확실하다”면서 경계론을 펼쳤다. 트럼프 시대에도 바뀌지 않은 미국 관료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AP연합뉴스

 

중국 외교부는 미국이 중국인 출입금지령을 내리자 WHO의 권고사항을 들먹이며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양국 간) 우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반발했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조심스러운 대응을 하는 것은 일견 수긍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자국민의 안전에서조차 중국 눈치를 보는 현실의 냉혹함을 새삼 일깨운다. 각각 1000㎞가 넘는 육상국경을 중국과 맞대고 있는 북한과 베트남은 각각 국경을 폐쇄하고 엄격한 대중국 방역을 하고 있다. 북한은 아직 확진자 발생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베트남은 19명의 확진자가 전원 완치됐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역시 지난 5일부터 14일 내 중국 본토 방문자 입국을 제한하고, 중국 본토를 오가는 모든 여객기 운항을 중단했다. 인도네시아 주재 중국대사가 강하게 경고했지만, 2억7000만 국민의 안전을 우선했다. 여기까지가 중국발 팬데믹의 Ⅰ막이다.

초기 대응이 단호했다고 마지막까지 성공적인 방역을 할 수 있을런지는 미지수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장기전이기 때문이다. 26일 현재 코로나19 확진자의 10% 수준인 8273명에 불과했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은 2003년 7월 가라앉기까지 8개월이 걸렸다. 2009년 4월 발생한 신종플루는 163만여명의 확진자가 확인되고 1만9633명이 사망하기까지 13개월이 걸렸다. 아직 각국의 방역 성적을 매기기엔 성급하다는 말이다. 팬데믹의 Ⅱ막은 각국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방역 시스템의 수준이 좌우한다. 이 점에서 한국의 보건의료 인프라는 나쁘지 않다.

미국 존스홉킨스 보건안전센터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글로벌 보건안전지수(GHI)에 따르면 한국은 ‘팬데믹에 가장 잘 준비된 10개국’에 포함된다. 전염병 예방 및 탐지, 대응 능력 등을 종합, 1~100점으로 표시한 GHI는 미국(83.5)을 1위로 꼽았다. 트럼프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최고라고 자랑한 근거다. 이어 영국(77.9), 네덜란드(75.6), 호주(75.5), 캐나다(75.3) 순이었다. 아시아에선 태국(73.2)이 가장 높았으며 한국은 스웨덴과 덴마크에 이어 70.2점으로 9위를 차지했다. 10위는 핀란드(68.7)이다. 안타깝게도 북한(17.5)은 기니(16.2)와 소말리아(16.6)에 이어 조사 대상 195개국 가운데 밑에서 3위였다. 하지만 아무리 완비된 보건의료 시스템일지라도 급속히 퍼져나가는 팬데믹을 따라잡기는 역부족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 백악관에서 코로나19 특별기자회견을 하던중 전세계에서 팬데믹에 가장 잘 준비된 국가로 미국을 꼽은 글로벌 보건안전지수(GHI) 보고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잘 준비된 10개국 중 아시아에선 태국(6위)과 한국(9위) 만이 꼽혔다.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미네소타대 마이클 오스터홈 감염질병연구센터 국장과 다큐멘터리 작가 마크 올셰이커에 따르면 코로나19 감염자 1명은 평균 2.6명에게 전염시킨다. 10번 정도 감염이 진행되면 며칠 내로 대부분 경증이거나 무증상이지만 3500명의 인체에 바이러스를 옮긴다. 일본 요코하마 앞에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를 방치한 아베 신조 내각의 ‘잔인한 실험’으로 확인된 것은 놀라운 전파 속도뿐이었다. 바이러스와의 싸움도 전쟁이라면, 그 대비책은 자명하다. ‘실탄’을 비축하고, ‘병사’를 보호하는 수밖에 없다. 백신 개발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에 필요한 게 국제협력이다.

지구의 북반구는 이미 계절독감이 유행하고 있다. N95 마스크와 장갑, 눈 보호장비, 1회용 방역복은 이미 각국에서 공급이 달려간다. 제한된 물품과 장비는 보건의료 인력에 우선적으로 공급돼야 한다. 병원 응급실에서조차 바이러스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사회 전체가 패닉에 휩싸이게 되기 때문이다. 싸워야 할 주적은 환자마다 다르다. 오스터홈과 올셰이커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우한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이 세계 곳곳에서 재연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코로나19 환자가 밀려들면서 병원은 결국 중증환자만 받게 되고, 그 때문에 심장발작이나 치명적인 부상 또는 암 환자들의 입원이 어려워지면서 또 다른 인명피해가 우려된다는 말이다.

팬데믹 Ⅱ막에서조차 특정국을 격리하면, 스스로 격리된다. 우한을 비롯한 바이러스 창궐지역을 봉쇄한 중국의 조치는 일단 확산 속도를 지연시켰지만, 한 지역을 봉쇄하면 결국 각각 고립돼 바이러스 및 온갖 질병과 싸울 실탄을 확보하기 어렵게 된다. 글로벌 공급체인은 질병과의 전쟁에도 해당되기 대문이다. 세계 복제약 제조사가 몰린 중국과 인도와 단절한다면, 코로나19에 살아남는다고 해도 다른 질병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산 마스크의 원자재 40% 정도는 중국산이다.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의 텅 빈 두오모 광장에서 지난 27일 행인이 걸어가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빠른 코로나19 확산이 이뤄지고 있는 이탈리아에서는 이날 현재 400명이 확진을 받았고 12명이 숨졌다. 밀라노 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19는 올 11월 미국 대선의 향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재선에 나선 트럼프가 늘 내세우는 ‘경제 실적’이 월스트리트 주가 폭락으로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26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준비된 의료체계를 자랑했다. 하지만 올 회계연도에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예산을 16%나 삭감한 장본인도 그다. 복지부 예산은 10% 깎았다. 애시당초 그의 안중엔 보건의료나 환경,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국제협력이 없었다. 이 와중에 러시아에 기반을 둔 소셜미디어들이 코로나19와 관련한 가짜뉴스를 유포해 미국 제도와 사회를 흔들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향방뿐 아니라 한바탕 코로나19가 휩쓸고 지나간 뒤 세계가 어떻게 바뀔지 역시 안갯속에 잠겨 있다.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gino's gino's 2020.02.29 15: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게 12월8일, 중국이 WHO중국 사무소에 처음 보고한 게 12월31일이다.

    중국이 초기에 정보공개를 불투명하게 한 것을 감안하면 이미 11월달부터 시작됐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각국의 공식 대응이 시작된 건 2월 초. 이미 초기 통제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2월26일을 기점으로 중국은 진정세를 보이고 중국 밖 확진자가 더 많이 집계되기 시작했다. 팬데믹 2막에 돌입한거다. 지금은 각국이 보유한 보건의료 시스템의 '내공'이 성패를 좌우한다.

    확진자 수에서 코로나19의 10%도 안됐던 사스가 8개월갔다.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매일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다.

중국 허베이성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급속히 확산되는 가운데 지난 29일 중국 남부 광시좡족자치주 난닝의 한 의료기구 제조업체 앞에서 마스크를 구입하려는 시민들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다. 일부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장시간 이렇게 줄을 서 있는 것이 자칫 바이러스 감염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난닝/AP연합뉴스

 

하필 대학생 선생님들이 마련한 중학생 공부방은 보신탕집 이층이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에 기대어 놓은 야구방망이에 종종 피가 묻어 있었다. ‘개를 어떻게 도살할까’라는 의문이 치밀어 올랐다. 1970년대 중반 서울 아현시장 인근 한 이층 건물에서 목도한 장면이다. 그즈음만 해도 보신탕은 많은 한국인들이 즐기던 전통음식이었다. 반려견을 키우는 가정이 늘어나면서 식문화가 급속하게 바뀌고 있지만 우리가 지나온 내력이다. 갈수록 보신탕 전문점이 줄고 있다. 바뀐 식문화 때문만은 아니다. 잔인한 도살 방식과 비위생적 처리 탓에 외면을 받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위생의식이 낮은 것은 당시 음식점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 초까지 서울의 선술집에서는 의자에 앉은 채 식당 바닥에 가래침을 뱉는 술꾼들을 어쩌다 보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설 연휴 뒤 지나간 외국 신문들을 뒤적이다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한 영국 신문은 중국 우한(武漢)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속보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외국인들의 원정출산 제한 정책을 시행한다는 기사를 같은 면에 배치했다. 왜일까. 의문은 기사 말미에서 풀렸다. 한 해 3만여명으로 추산되는 외국인 출산관광객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중국인이라는 설명이 나왔다. ‘대한민국’도 있었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중국과 터키, 레바논, 러시아, 멕시코, 한국, 서인도제도 순으로 신생아의 시민권 취득을 위해 미국에 많이 온다는 뉴스였다.

새삼 논란된 ‘박쥐 수프’ 영상 등
중국 식습관에 대한 일방적 비난은
아시아에 대한 오랜 편견의 산물

신종플루도 돼지를 매개로 하지만
돼지 먹는 문화가 문제는 아니었다.

 

이 사태가 개선의 출발점 되려면
위생 혁명·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세상이 온통 중국 우한발 신종 코로나 뉴스와 가짜뉴스, 정보와 추측으로 넘실댄다. 아직 정체가 파악되지 않은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 못지않게 가짜뉴스의 고속철에 올라탄 ‘중국 공포’ 또는 ‘중국 혐오’가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미국 상원에서 진행 중인 트럼프 대통령 탄핵재판과 같은 굵직한 뉴스를 밀어낸다. 급속도로 늘어나는 감염 의심자와 사망자 숫자에 촉각이 곤두서는 게 인지상정이다. 미세먼지가 나쁘지 않아도 마스크에 손이 간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 뉴스를 온종일 접하면서 불현듯 우리 식문화와 인종 문제와 관련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기억들이 떠오르는 건, 신종 코로나의 매개체로 추정되는 박쥐와 중국 식문화에 쏟아지는 ‘쇼킹 아시아(Shocking Asia)’류의 혐오 때문이다.

 

지난주 중국의 여행 분야 파워블로거 왕멍윈이 5년 전 게시한 ‘박쥐 수프’ 시식 동영상이 새삼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영국 데일리메일과 러시아투데이 등 일부 매체들과 각국 파워블로거들이 이를 소개했다. 그가 박쥐 날개를 두 손에 쥐고 먹는 장면을 담고 있다.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사진이다. 때마침 신종 코로나 발원지로 야생동물 식재료를 판매하는 우한 화난(華南) 수산물도매시장이 추정되고 특히 박쥐가 매개체일 가능성이 전해진 시점이었다. 초기 조사 결과와 맞물려 중국인들의 박쥐 시식이 신종 코로나의 원인인 양 유포됐다. 전 세계 수백만명이 문제의 동영상을 보았다고 한다.

 

소동은 왕멍윈이 블로그에 장문의 사과문을 게시함으로써 일단락되는 듯했다. 사진은 우한이 아니라 2016년 5월 남태평양 팔라우제도에서 현지 음식을 소개하며 찍은 것인데 누군가 자막을 고쳐서 유포했다는 것이다. 그는 “촬영 당시엔 박쥐에 바이러스가 있는지 몰랐다”고 적었다. 하지만 박쥐 수프 사건 이후에도 야생동물을 식용 또는 약용으로 섭취하는 중국 식습관에 대한 비난은 끊이지 않고 있다. 화난 시장에선 박쥐뿐 아니라 오소리와 흰코사향고양이, 대나무쥐, 코알라 등이 도축된다고 한다. “탁자 빼고 다리 네 개 달린 건 다 먹는다” “비행기 빼고 날아다니는 것은 모두 먹는다”는 중국인들 식습관이 호사가들의 사치에서만 비롯된 문화는 아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숱한 기근을 겪으면서 생겨난 풍습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초미세 구조형태학 모델. 애틀랜타 로이터연합뉴스

‘쇼킹 아시아’ 관점에서 보면 한국이나 중국이나 도긴개긴이다. 개고기는 물론 뱀과 산낙지도 국제적으로 혐오식품에 올라 있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지난 28일 페이스북에 한국인 역시 한때 박쥐를 먹었음을 입증하는 1979년 경향신문 기사를 게시했다. 기사는 경남대 생태조사 결과를 통해 “희귀종인 황금박쥐가 신경통과 정력에 좋다는 소문에 남획돼 멸종위기에 처했다”고 전했다. 황씨는 페북에 “시대에 따라 인간의 먹을거리가 바뀐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건으로 적어도 중국에서는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요즘 유행어로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고 단정할 일이 아니다. 중국 식문화를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 격이다. 원정출산을 한다고 한국인이 백인이 될 수 없듯이, 오래된 식문화를 군사작전이나 마녀사냥으로 없앨 수는 없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준비했던 독재정권은 사대문 안 보신탕집을 없앴지만 눈가림 미봉책이었을 뿐이다. 한 문화의 단점만 들여다보고 다른 문화의 장점만 강조하는 게 바로 인종주의 아니던가.

 

포린폴리시 선임에디터 제임스 팔머는 “중국인들은 문명화되지 않았고, 깨끗하지 않으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더럽다”고 규정한 1854년 뉴욕데일리트리뷴 기사를 꺼내왔다. 그는 왕멍윈의 동영상이 곤충이나 뱀, 생쥐를 먹는 중국인 또는 다른 아시아인에 대한 서구의 오랜 편견을 일깨웠다고 지적했다. 스스로 보신탕과 곤충 등을 시식해보았다고 고백한 팔머는 야생동물 음식을 먹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요리사 및 식당 종업원들의 위생의식과 시장 좌판의 칸막이 부족, 보건감독관의 부재 또는 뇌물수수 등 주변적 요소들이 전염병의 원인이라고 짚었다.

그의 말대로 신종플루(H1N1)는 돼지를 매개체로 하지만 돼지고기를 먹는 식문화가 문제는 아니었다. 화난 시장이 진원지라는 전문가들의 초기 판단도 흔들리고 있다.

 

일본 정부가 중국 우한에서 자국민들을 소개시키기 시작한 지난 30일 마스크를 쓴 기모노 차림의 관광객들이 도쿄 시내 한 사찰을 둘러보고 있다. 도쿄/AP연합뉴스

 

새로운 바이러스의 70% 정도가 동물에서 전파되는 만큼 중국 야생동물 거래시장의 위생 수준 개선과 관련 제도 정비는 중요하다. 야생동물의 포획·도살·거래 과정이 모두 전염병 발생의 위험 소지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내에서 야생동물 거래를 영원히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차이나데일리의 28일자 내부필진 칼럼은 “똑같은 일을 거듭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며 “(야생동물 거래금지를 하지 않는다면) 다음에는 더 심각한 전염병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2002년 전 세계에서 800명 가까운 사망자를 낳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마찬가지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박쥐를 숙주로 하는 코로나바이러스다. 박쥐는 여러 가지 바이러스의 숙주다. 2013년 사스의 숙주가 박쥐(chrysanthemum head bat)라는 사실을 처음 밝혀낸 국립과학원 바이러스학 연구소는 공교롭게 우한 화난 시장과 불과 15㎞ 정도 떨어져 있다. 차이나데일리는 이 연구소 한 연구원이 2018년 “자연에는 사스와 유사한 바이러스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면서 대책을 촉구했었다고 소개했다. 그 연구원은 “우리가 그러한 잠재적 위협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다음번 바이러스가 머지않아 인간을 감염시킬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그의 우려는 정확한 경로를 거쳐 전달되지 않았다.

 

사스는 박쥐의 코로나바이러스가 사향고양이를 중간숙주로 인간에게 전염됐지만 신종 코로나의 중간숙주 동물은 물론, 인간 대 인간 전염 원인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지레짐작하고 초기 조사 결과를 부풀리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되는 것은 물론, 문화적 이해를 왜곡하는 또 다른 바이러스일 뿐이다. 중국발 전염병의 원인은 식문화의 문제라기보다 정치적·경제적 문제다. 중국 당국은 사스 발병 이후 한동안 박쥐 거래를 금지했지만 다시 허용했다. 중국 정부는 전통 한약을 장려해왔으며, 일부 지방에선 식용 야생동물을 농촌 소득 증대원으로 평가해왔다. 뉴욕타임스는 광시좡족자치주에서 대나무쥐가 농민들의 빈곤 탈출을 돕고 있다는 신화통신의 최근 보도를 인용했다.

중국 우한에서 비롯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아시아 각국에서 예방용 마스크를 사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지난 30일 홍콩의 한 약국에서 주민들이 마스크를 고르고 있다. 홍콩 AFP연합뉴스

인구 1000만명이 넘는 도시가 봉쇄된 지 열흘이 돼간다. 1949년 신중국 건국 이래 처음인 것은 물론, 현대사에 유례가 없는 사건이다. 우한은 9개의 다른 성으로 연결된 중국 중부지방의 최대 교통 중심지이다. 중국 정부의 봉쇄령이 내려진 지난 22일 오전 10시 이전에 우한을 빠져나간 사람만 500만명이다. 당분간 지구촌 차원의 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신종 코로나 사태가 어떤 개선의 출발점이 되려면 중국의 위생 혁명과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과거 발생했던 수많은 천재지변과 전염병 확산 때와 마찬가지로 변화를 추구하는 시간은 짧고 경제적·정치적 의도가 압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어떤 결말을 보건 우한과 중국인들에 대한 지지와 격려가 인종주의나 식습관 비판보다 더 건설적인 역할을 한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꾸준히 살아남아 언젠가 인간들에게 교훈을 알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 어떤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을지 모른다.” 알베르 카뮈가 소설 <페스트>에서 의사 리외의 입을 빌려 내놓은 경고다. ‘페스트균’을 ‘바이러스’나 ‘문화적 편견’으로 대체해도 뜻이 통하는 것 같다.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무기와 쟁기가 섞여 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올해 세밑에도 세계의 ‘중국 고민’은 깊어간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창설 70주년을 맞아 마침내 새로운 ‘주적’을 지목했다. 소련과 바르샤바조약기구를 상대하기 위해 결성된 대서양 동맹은 지난 4일 런던 선언에서 중국의 부상을 ‘기회’와 ‘도전’으로 규정하고 29개 회원국들이 함께 대처할 것을 다짐했다.

 

소련처럼 명백한 적으로 규정한 것은 아니다. 중국의 군비증강에 주목하면서 중거리핵전력(INF) 협정을 비롯한 군축체제에 들어올 것을 매우 완곡하게 권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중국의 부상은 1차원적인 문제가 아니다”라며 경제적 공생의 필요성을 먼저 인정했다. 그러면서 나토가 향후 중국을 어떻게 합당한 군축체제에 포함시킬 수 있을지를 탐색하는 작업을 시작한 데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에 대한 경고는커녕 제스처에 가깝다.

 

미국 성조기(왼쪽)와 중국 오성홍기가 베이징의 한 호텔 입구에 나란히 걸려 있다. AFP통신은 지난 5월14일 촬영한 자료 사진을 최근 다시 내보내면서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협상 타결 여부와 상관없이 가장 중요한 교역국이자 최대 위협인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베이징AFP연합뉴스

 

중국에 미국 스스로 파기한 INF에 들어오라고 권유하는 것은 앞뒤가 바뀐 도널드 트럼프 시대의 모순이기도 하다. 회원국 중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 동맹 분담금을 내는 8개국 정상과만 밥을 먹은 트럼프의 유치한 행동은 나토 70주년이 남긴, 그나마 기억에 남을 장면이었다.

 

전 세계에서 중국을 상대로 어르고 달랠 수 있는 국가는 미국만 남았다. 구글과 아마존과 같은 거대 IT기업을 비롯한 산업계와 학계 등 미국 민간부문은 이미 중국식 요구에 적응하고 있다. 백악관과 행정부, 연방의회만 중국에 맞서 종래의 아메리칸 파워를 휘두르고 있을 뿐이다. 중국 국방백서가 발표된 지난 7월24일부터 이틀 동안 미 해군 7함대 군함들은 보란 듯이 대만해협에서 ‘일상적인 항행’을 했다. 미국 국방부는 6월1일자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서 중국을 겨냥해 관계를 강화해야 할 이 지역의 민주주의 국가로 싱가포르·뉴질랜드·몽골과 함께 대만을 포함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지난해 1월22일 중국산 세탁기에 관세를 부과한 것을 시작으로 2년 가까이 끌고 있는 미·중 무역협상은 1단계 합의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끝나더라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 11월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공화당 예비주자들이 중국에 관한 한 한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민주)은 트럼프보다 더 공격적인 대중 정책을 촉구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 전략은 중국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계에 심대한 의미를 갖는다. 올 한해 미국 내에서 제기돼온 중국 담론을 들여다봐야 하는 까닭이다.

 

역사학자 니알 퍼거슨은 2019년을 중국과의 신냉전(New Cold War)이 시작된 원년이라고 단호하게 지적했다. 올해를 기점으로 트럼프라는 이단아의 중국관이 통념이 됐다는 판단에서다. 미국 내에서 회자되는 근거는 8월 발표된 퓨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 결과다. 중국에 대한 비호감 응답자가 60%로 2005년 같은 조사를 시작한 이후 가장 높게 나타났다. 트럼프가 취임한 2017년 조사에서 호감(47%)과 비호감(44%)이 근접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다. 하지만 중국 경제발전이 미국에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는 50%가 ‘좋은 일’이라고 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6월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나 정상회담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국은 작년 1월부터 시작된 무역분쟁을 종식하고 ‘1단계 합의안’ 서명을 앞두고 있다. 오사카 AP연합뉴스

 

퍼거슨은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트럼프가 미·중 무역합의에서 해빙을 시도한다고 해도 냉전은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대통령이 신냉전의 촉매는 될 수 있을지언정 이를 중단할 능력은 없기 때문이다. 올해 3대 미·중 갈등으로 화웨이의 5G 네트워크를 둘러싼 기술 경쟁과 신장 위구르 인권과 이념 갈등, 위안화 환율을 둘러싼 통화전쟁을 꼽았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말하는 냉전의 성격이다. 그는 “이번 냉전은 더 추울 것”이라면서도 냉전시대 쿠바 미사일위기처럼 종말론적인 무력대치 가능성은 없다고 짚었다. 미·중 신냉전의 주전장은 경제적·기술적 경쟁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냉전이 '무기경쟁'이었다면, 신냉전은 '쟁기경쟁'이라는 말이다. 중국의 위협을 과장하는 대신 중국과의 경쟁이 오히려 엄청난 혜택을 미국에 줄 것이라고 짚은 데서 퍼거슨의 혜안이 엿보인다. 그는 1950년대와 1960년대 미국 경제의 눈부신 발전은 바로 냉전 초기, 냉전과 관련해 집중했던 기술개발 덕이었음을 상기시키면서 신냉전이 비용보다는 이득이 많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을 짚었다.

 

국제문제 전문가 파리드 자카리아 역시 미국이 중국이라는 도전자의 실체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냉전이라는 말 대신 ‘신중국공포(New China Scare)’란 용어를 사용했을 뿐이다. 자카리아는 이달 초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미국 내 중국경계론이 냉전시대의 ‘적색공포(Red Scare)’에 버금가는 수준이 됐다고 진단했다. 적색공포가 매카시즘과 같이 정치적으로 활용되거나, 과도한 군사비 지출로 이어졌던 것처럼 중국 공포를 제대로 규명하지 않는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내 광범위한 중국경계론은 우선 미국의 대중 관여(engagement)가 중국의 내적 발전과 외적 행동을 변환시키지 못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다. 중국의 대외정책이 규칙(rule)에 토대를 둔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위협하며, 그렇기에 공세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3단계 논리다. 자카리아의 팩트체크에는 주목할 대목이 많다.

 

우선 미국은 미·중 데탕트 이후 단 한번도 대중 억지를 하지 않은 적이 없다. 관여와 억지를 조합하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를 계속하는 방식으로 중국의 잠재적 위협을 분산(헤징)해오기도 했다. 탈냉전 뒤 국방예산 및 병력 감축과 해외기지 폐쇄를 하면서도 1995년 펜타곤의 아시아·태평양전략(나이 이니셔티브)에 따라 아시아 지역 군비만은 줄이지 않았다. 지금도 아시아에 10만명의 미군이 주둔하게된 배경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중국을 겨냥해 인도를 핵보유국으로 인정했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호주 및 일본과 군사적 관계를 강화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전략적 목적 역시 중국 견제였다. 

 

올해 6월1일자로 발간된 미국 국방부의 인도태평양전략보고서의 표지다. 보고서는 1979년 미중 관계 정상화 이후 처음으로 대만을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관계를 확대해야 할 '국가'로 명시했다. 

 

 

 

중국이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위협한다는 가정은 동전의 한면일 뿐이다. 중국 외교정책은 주권존중·영토통합·비(非)개입을 원칙으로 한다. 2500여명의 유엔 평화유지군을 파병하고 있다. 2000년부터 2018년까지 국제법과 규범을 위반, 세계질서를 위협한 국가들에 대한 안보리 제재 결의안 190개 중 182개를 지지했다. 중국이 국제질서의 수호자가 된 것은 바로 그 국제질서가 유지돼야만 국가적 명운을 걸고 있는 경제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기술 절도 및 불공정 교역·비즈니스 관행도 톺아봐야 한다는 게 자카리아의 주장이다. 그는 중국 경제의 성공은 시장기반 접근·높은 저축률·생산성 제고 등 3가지 요인 덕분이었지 이러한 ‘반칙’ 때문이 아니라면서 그 근거를 제시했다.

 

자카리아는 “중국의 무역관행이 매년 미국 경제성장률의 0.1%를 갉아먹는다”는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상무장관 주장을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기술이전 강요, 불공정 교역관행, 외국기업의 시장접근 제한, 불공평한 규제 등 미국이 근래 중국에 제기하는 모든 불만이 정확하게 1980~1990년대 일본에 제기했던 문제들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과거 일본 공포론은 일본 경제가 침체에 빠지고 난 뒤에야 잦아들었다. 자카리아는 최근 몇년간 중국이 국영기업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경제관행으로 퇴행하고 있지만 동시에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고 소개했다. 2015년 금융기업 크레딧 스위스의 보고서를 보면 통념과 다른 결과가 나온다.

 

1990~2013년 주요국의 외국 상품에 대한 비관세장벽 숫자에서 450개로 1위를 차지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중국은 인도·러시아 등에 이어 5위였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은 대중교역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재산권 절도를 꼽았다. 하지만 미·중 비즈니스협의회가 최근 소속 기업들을 상대로 조사한 ‘심각한 우려’ 순위에서 지재권 문제는 2014년 2위에서 6위로 내려갔다. 기업들은 경쟁기업에 대한 국가펀딩과 제품에 대한 승인 허가 지연을 가장 중요한 장애로 꼽았다. 중국이 베이징에 설립한 지재권 특별재판소는 2015년 외국기업들이 제기한 63개 소송에서 100%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자카리아는 시진핑 주석 이후 중국이 남중국해 섬의 군사기지화와 일대일로(BRI) 프로젝트 등 공세적으로 나선 것 역시 문제시만 할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덩샤오핑이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당부하던 시절 세계경제의 1%에 불과했던 중국 경제는 이제 15%로 커졌다. 역사상 미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가 경제규모가 커짐에 따라 군사력을 증강해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중국이 자국 방위에 필요한 규모 이상의 군비지출을 하고 있다면서 “‘제자리’를 지켜라”고 다소 경멸적인 발언도 내놓았다. 하지만 강대국의 다른 정의는 ‘자국 방위 이상을 염려하는 나라’이다. 경제적 강대국이 된 만큼 군사력의 확대는 어느정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의 모든 외교적·군사적 움직임을 위협이라고 규정하기 전에 서방이 인정할 수 있는 편차(톨레랑스)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설정하라고 권고했다.

 

미국 인디애나주 브라운스버그에서 수확한 콩이 콤바인에서 내려지고 있다. AP통신이 미-중 무역협상 타결의 관련사진으로 최근 다시 전송한 자료사진이다. 중국은 지난 12월 6일 미국산 콩과 돼지고기에 대한 관세인상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AP/연합뉴스

 

자카리아의 주장은 미국 민주당의 전통적인 대중 '포용(engagement)전략'과 맥이 닿아 있다. 미·중 상호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중국을 제어할 수단을 갖게 된다는 논리다. 이를 위해선 교역을 줄일 게 아니라 오히려 늘려야 한다. 매파들이 주장하는 중국 '고립(containment)전략'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데다가 성공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에 토대를 둔다. 화웨이의 5G 기술을 제한하려는 트럼프 정책이 대표적이다. 61개국에 화웨이 금지를 요청했지만, 현재까지 58개국이 외면하고 있다. 2차대전 이후 급성장한 독일과 일본, 한국은 모두 미국의 동맹국들이다. 멀리 황화론(黃禍論)까지 갈 것도 없다. 중국은 미국의 망토 밖에서 지역 강대국으로 성장한 첫번째 국가이며, 그렇기에 미국과 서방의 중국 위협론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게 자카리아 분석이다. 더구나 덩샤오핑이 꿈꾼 부(富)에 강(强)을 더한 시진핑 시대 들어 더 악화되는 서방의 대중국관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전략은 중국이 1949년 건국 이후 100년 동안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망을 끊임없이 키워왔다는 중국 위협론에 근거한다. 중앙정보국(CIA) 요원으로 냉전시절 미·중 비밀작전에 참가했던 마이클 필스버리 허드슨연구소 중국전략센터장의 저서 <백년의 마라톤>이 지침이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작년 10월 허드슨연구소 연설에서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의 위협을 한껏 강조했다. 자카리아는 그러나 협상 탁자에 중국이 앉을 자리를 제공하고 중국이 적응할 여지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카리아의 제언이 트럼프 행정부에 먹힐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균형 잡힌 중국 담론에 도움이 되는 생각들이다.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gino's gino's 2020.04.01 15: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애로운 미국, 악의에 찬 중국?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호수 651 승인 2020.03.15 16:21프린트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강조하는 중국위협론은 1920년대 ‘황화론’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 스스로 초래한 ‘서구의 실종 상태’에 대한 해법을 황화론에서 찾으려 한다면 문명충돌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주최 측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구축된 자유주의 세계질서와 다자주의 전통의 쇠락에 더해 미국의 국제 리더십 결여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다고 설명한다. 정작 미국의 시각은 달랐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유럽의 지도자들에게 ‘세계를 지배하려는 중국’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하는 한편, “서구는 승리하고 있다. 우리는 집단적으로 승리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함께 이뤄내고 있다”라고 선언하며 ‘서구 실종론’을 일축했다. 물론 그가 말한 승리는 중국에 대한 승리였을 것이다.

    미국이 말하는 네 가지 중국의 위협
    이들이 말한 중국의 위협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군사적 위협이다. 중국은 2035년까지 인민해방군 현대화를 완료하고 2049년에는 세계 최강의 군사력으로 아시아 전역을 지배해 주변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군사적 위협을 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두 번째는 경제적 위협이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으로 세계 각국에 침투함으로써 이들의 대(對)중국 경제 의존을 정치·군사적으로 악용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세 번째는 과학기술 위협론이다. 화웨이의 5G 장비 수출을 통해 서방국가들에게 사이버 안보 불안을 야기하는 한편, 인공지능(AI) 분야에서의 수월성을 활용해 서방을 향한 위협 수위를 높여갈 것이라는 우려다. 마지막은 문명적 위협이다. 정치적 자유의 제한과 억압, 소수민족 탄압, 다른 권위주의 국가들에 대한 지원으로 요약되는 중국공산당의 행태가 커다란 위협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러한 시각의 저변에는 ‘자애로운(benevolent) 미국’과 ‘악의에 찬(malevolent) 중국’이라는 이분법이 깔려 있지만, 꼼꼼히 따져보면 상당 부분 과장이 섞여 있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중국의 군사력이 조만간 미국을 능가해 아시아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까. 현재 중국 군사비는 미국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의 군사비가 대폭 증액되면서 두 나라의 군사력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어느 나라와도 군사동맹을 맺지 않고 있는 반면, 미국은 100여 개 국가와 군사동맹 혹은 그에 준하는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경제는 다를까. 막강한 경제력을 이용해 국익을 극대화하려는 중국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5G나 AI 분야에서의 괄목할 만한 진보 역시 우려되는 바 크다. 그러나 중국이 당면하고 있는 내부적 위협과 모순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중국 경제가 순항할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 굳이 ‘중진국 함정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중국 경제는 이미 성장잠재력 둔화와 극심한 부실채권 등으로 흔들리고 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중국 경제는 올해 5% 성장률 달성도 어려워 보인다.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가치 기준에 비추어볼 때 ‘중국 특색’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인권 탄압과 소수민족 문제는 정당화될 수 없다. 다만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선 것은 이제 겨우 40년, 본격적인 부상은 20년밖에 되지 않았다. 제아무리 빠른 압축성장 모델도 서구가 200년에 걸쳐 이룬 민주주의와 인권 가치를 따라잡기는 어려운 시간이다.

    염려스러운 사실은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강조하는 중국위협론이 1920년대 서구에서 풍미하던 ‘황화론(黃禍論:황색인종 억압론)’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다. 1920년대 황화론의 본질적인 한계는 인종주의적 편견을 문명의 잣대로 치환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일 것이다. 그 귀결은 태평양전쟁이라는 파국이었다. 미국 스스로가 초래한 ‘Westlessness’에 대한 해법을 중국위협론, 더 나아가서는 황화론에서 찾으려 한다면 21세기 세계질서는 문명충돌이라는 대립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미국도 ‘중국의 부상’이라는 현실을 현명하고 신중하게 다루어나가야 할 것이다.

  2. dkfg 2021.07.28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INTERVIEW/ John Mearsheimer: U.S.-China rift runs real risk of escalating into a nuclear war
    By KENJI MINEMURA/ Senior Staff Writer

    August 17, 2020 at 07:00 JST
    Share
    Tweet
    list
    Print
    Photo/Illutration
    John Mearsheimer (Provided by John Mearsheimer)
    Is an escalation of the intensified conflict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inevitable?

    Renowned U.S. political scientist John Mearsheimer, one of the leading theorists of “offensive realism,” thinks so.

    Mearsheimer, a professor of political science at the University of Chicago, first predicted the current conflict between the two superpowers more than two decades ago.

    In a recent videophone interview with The Asahi Shimbun, Mearsheimer offered his analysis of the rationale behind the conflict and the next likely move by the United States.

    Born in 1947, Mearsheimer graduated from West Point and then served five years as an officer in the U.S. Air Force.

    Excerpts of the interview follow:

    ***

    Question: Confrontation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has intensified, especially since the COVID-19 pandemic flared. Chinese state-run media has proclaimed that the pandemic signals the end of the American century. Meanwhile, a new U.S. government report noted that Beijing clearly sees itself as engaging in ideological competition with the West. Do you think the two countries have already begun a real Cold War? If so, why?

    Answer: The real Cold War started before the coronavirus, and the coronavirus doesn't matter much. And ideology doesn't matter much. What matters is the balance of power. And the fact is, China has become so powerful over the past 20 years.

    There is a serious chance that (China) could become a regional hegemon in Asia. And the United States does not tolerate peer competitors. The idea that China is going to become a regional hegemon is unacceptable to the United States.

    So, it's this clash of interests that are generated by this fundamental change that's taking place in the balance of power. It is driving the competition. And I would note that you'll hear a lot of talk about the fact that the United States is a liberal democracy, and that China is a communist state. And, therefore, this is an ideological clash.

    Q: In “The 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 the book you published in 2001, you said there would never be a peaceful emerging of China and predicted the U.S.-China conflict. When do you think the critical turning point was for their bilateral relationship?

    A: That's a difficult question to answer, because it really started in the early 1990s when China began to grow. That's when it started.

    It was China's rise in the unipolar moment that is driving the train in this process. And there were a number of events along the way that mattered greatly. Most importantly, it was China's admission to the WTO in 2001, which really allowed the Chinese economy to accelerate, to the extent that you can pinpoint a date where the United States recognized that the rise of China was a problem and that China would have to be contained.

    Q: Some analysts in the United States and Japan have argued that since U.S.-China bilateral economic ties and political relations have grown over 14 years under the so-called engagement policy, it is not feasible for either country to instigate an open war. Do you agree?

    A: Well, there were many experts who said the same thing before World War I. They said there was a tremendous amount of economic interdependence in Europe. And nobody would dare start a war because you would end up killing the goose that lays the golden egg. But nevertheless, we had World War I. And what this tells you is that you can have economic cooperation, and at the same time, you have security competition.

    And what sometimes happens is that the security competition becomes so intense that it overwhelms the economic cooperation and you have a conflict. But I would take this a step further and say that if you look at what's happening in the world today, that economic cooperation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is slowly beginning to disappear, and you're getting an economic competition as well as security competition.

    As you well know, the United States has its gun sights on Huawei. The United States would like to destroy Huawei.

    The United States would like to control 5G. The United States would like to remain on the cutting edge of all the modern sophisticated technologies of the day and they view the Chinese as a threat in that regard. And that tells you that not only are you getting military competition, but you are also getting economic competition.

    Q: Unlike in the Cold War era, no one knows exactly how many nuclear weapons China possesses. You have said that since Eastern Asia has no central front like Europe, the possibility that a war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could occur over East Asia is high. Many countries surrounding China, particularly Japan, as well as other countries that do not possess a nuclear weapon, would be vulnerable to an attack from China. Do you think that we may see a war breaking out in East Asia in the future?

    A: Let me start by talking a little bit about the Cold War and then comparing the situation in East Asia and with the situation in Europe during the Cold War. During the Cold War, the competition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was centered on central Europe. We used to talk about the central front, where you had the Warsaw Pact on one side, and NATO on the other side.

    And when we talked about U.S.-Soviet war, it involved the central front. Now, the central front was populated by two giant sets of armies, that were armed to the teeth with nuclear weapons. That meant if we had World War III in central Europe, you would have two huge sets of armies crashing into each other, with thousands of nuclear weapons.

    Not surprisingly, when we ran war games during the Cold War, it was very difficult, if not impossible, to get a war started in central Europe, because nobody in his or her right mind, would start a war given the possibility of nuclear Armageddon.

    Now, contrast that with the situation in East Asia, which is the central flash point between United States and China, the three places where you could possibly have a war involve the South China Sea, Taiwan and the East China Sea.

    Those areas are not the equivalent of the central front. And it's possible to imagine a limited conventional war breaking out in one of those three areas. It's much easier to imagine that happening, than a war on the central front during the Cold War.

    This is not to say that a war in East Asia is axiomatically going to happen. I'm not arguing that, but it is plausible that the United States and the Chinese and some allies of the United States like Japan may end up in a shooting match with the Chinese in say, the East China Sea.

    Now, if China is losing, or if the United States is losing that military engagement, there will be a serious temptation to use nuclear weapons as the United States is committed to use nuclear weapons to defend Japan if Japan is losing a conventional war. And one might say, it's unimaginable that the United States or China would use nuclear weapons.

    But I don't think that's true, because you would be using those nuclear weapons at sea. You would not be hitting the Chinese mainland in all likelihood. And, therefore, it's possible to think in terms of a "limited nuclear war," with limited nuclear use.

    So, I worry greatly that not only will we have a war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but also that there's a serious possibility nuclear weapons would be used. And I think in a very important way, it was much less likely that would happen during the Cold War.

    Q: High-ranking Chinese officials once suggested to the United States that the two superpowers should split the Pacific and each enjoy a sphere of influence. Do you think the United States would ever accept such an idea?

    A: No, the United States will not accept sharing power. Sharing power as you described it, means allowing China to become a regional hegemon in Asia, and the United States will not tolerate that. The United States will go to enormous lengths to prevent China from becoming a peer competitor.

    You want to remember the United States in the 20th century put four potential peer competitors on the scrap heap of history: Imperial Germany, Imperial Japan, Nazi Germany, and the Soviet Union.

    If China becomes a regional hegemon in Asia, it will have no threats in Asia to worry about, and it will be free to roll into the Western Hemisphere and form military alliances with countries like Cuba and Venezuela. This is why the United States goes to great lengths to prevent China from dominating Asia.

    Q: Your 2014 essay titled “Say Goodbye to Taiwan” stirred debate. Do you think the United States would abandon Taiwan if China intervenes?

    A: I believe the United States will fight to defend Taiwan if China invades Taiwan. In my opinion, it's unthinkable that the United States would stand by and allow China to conquer Taiwan. If we didn't defend Taiwan, it would have devastating consequences for our relationship with Japan, South Korea and our other allies in East Asia.

    I would say however, and this was why the editors at The National Interest had used the title “Goodbye Taiwan,” you can imagine a possible situation in 30 or 40 years where China has grown so powerful that the United States simply cannot defend Taiwan because of the geographical location.

    Q: China has strengthened its strategy to effectively deter U.S. aircraft carriers from approaching the Taiwan Strait. Could the United States deploy its military forces in Asia in a crisis?

    A: I don't think aircraft carriers are going to be very helpful. I think we're rapidly reaching the point where aircraft carriers are sitting ducks. I think we're going to have to rely instead on other kinds of military force. Tactical aircraft coming off land-based airfields, ballistic missiles, submarines, and so on.

    Q: How do you evaluate the Trump administration's China policy?

    A: I think that Trump has wisely understood that it's important for the United States to contain China, not only militarily, but economically.

    Q: But the administration has failed to get a result.

    A: I think the problem with the Trump administration is that it has done a bad job dealing with allies like Japan and South Korea and the Philippines and Australia and Vietnam and so forth and so on. What we need here is American leadership to put together a cohesive Alliance structure that can contain China. And the Trump administration has treated America's allies with contempt.

    Q: If President Trump fails to be re-elected and Joe Biden, the Democratic Party’s presumptive nominee, becomes president, do you think the United States can restore its relationship with its key allies like Japan, South Korea and Germany? What do you think is the most effective way for the Biden administration to contain China?

    A: I think that if Joe Biden gets elected president, the Democrats come to power, and the Democrats will go back to treating our allies in Europe and East Asia much the same way we treated them up until Trump took office.

    Trump is an anomaly. Trump is hostile in very important ways. Trump is hostile to America's allies because he thinks that America's allies have taken advantage of the United States. He thinks this is especially true for Germany. These countries in his mind are free riders. They're free riding on the United States. And he's very angry about that. And this has led him to treat virtually all of America's allies quite badly.

    I don't believe that will be the case if Biden is president and the Democrats come back. I think we'll have much better relations between Japan and the United States. And Japan won't have to spend endless hours trying to figure out exactly what Trump's policies are and what he's doing from minute to minute. We'll have more regularity in our foreign policy.

    And I think that will all be for the good. But I would say that I believe that the Democrats will be as committed to containment as Trump has been. I don't think that there'll be any lessening of America's containment policy if the Democrats beat Trump in November.

    I was in China for 17 days in October 2019. And I talked to all sorts of Chinese foreign policy leaders. Almost everybody I talked to believes that it doesn't matter whether Trump wins or loses in 2020 for U.S.-China relations. The Chinese believe that the Americans have their gun sight on China, and nothing is going to change that. I think they are correct.

    Q: What approach do you think Japan should take against China’s recent strengthening of its military forces?

    A: I think there is no question that the Chinese have been building up their military capabilities vis-a-vis Japan. It is especially clear that the 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INF) threat has been growing. Of course, some of those missiles are not nuclear. They are conventional, but intermediate-range missiles aimed at Japan have grown in large numbers.

    I think a number of things have to happen here. First of all, the Japanese are going to have to spend much more money on defense. Secondly, they're going to have to work much more closely with the United States. It's actually very important that the two sides work together. And I think the Japanese are going to have to deploy INF or intermediate-range missiles of their own, not nuclear. I think at this point in time, the Japanese can rely on the United States for nuclear deterrence.

    Q: The Senkaku Islands are one of the most dangerous flash points between China and Japan. Would the United States deploy its military forces against China to protect the uninhabited islands?

    A: The United States has made it somewhat clear they would help Japan defend the Senkaku Islands. I think what needs to be done here is the United States needs to make it perfectly clear that it will help Japan defend the Senkaku Islands, and both the United States and Japan have to develop the military capabilities to defend the Senkaku Islands. And they have to work together to create a formidable deterrent force that will keep the Chinese from invading those small islands.

    ***

    Kenji Minemura, Senior Diplomatic Correspondent, worked as the Chief Foreign Affairs Correspondent in Washington, D.C., and was previously a correspondent in Beijing. He is also a researcher at Hokkaido University Public Policy School.

  3. dkfg 2021.07.28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INTERVIEW/ John Mearsheimer: U.S.-China rift runs real risk of escalating into a nuclear war
    By KENJI MINEMURA/ Senior Staff Writer

    August 17, 2020 at 07:00 JST
    Share
    Tweet
    list
    Print
    Photo/Illutration
    John Mearsheimer (Provided by John Mearsheimer)
    Is an escalation of the intensified conflict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inevitable?

    Renowned U.S. political scientist John Mearsheimer, one of the leading theorists of “offensive realism,” thinks so.

    Mearsheimer, a professor of political science at the University of Chicago, first predicted the current conflict between the two superpowers more than two decades ago.

    In a recent videophone interview with The Asahi Shimbun, Mearsheimer offered his analysis of the rationale behind the conflict and the next likely move by the United States.

    Born in 1947, Mearsheimer graduated from West Point and then served five years as an officer in the U.S. Air Force.

    Excerpts of the interview follow:

    ***

    Question: Confrontation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has intensified, especially since the COVID-19 pandemic flared. Chinese state-run media has proclaimed that the pandemic signals the end of the American century. Meanwhile, a new U.S. government report noted that Beijing clearly sees itself as engaging in ideological competition with the West. Do you think the two countries have already begun a real Cold War? If so, why?

    Answer: The real Cold War started before the coronavirus, and the coronavirus doesn't matter much. And ideology doesn't matter much. What matters is the balance of power. And the fact is, China has become so powerful over the past 20 years.

    There is a serious chance that (China) could become a regional hegemon in Asia. And the United States does not tolerate peer competitors. The idea that China is going to become a regional hegemon is unacceptable to the United States.

    So, it's this clash of interests that are generated by this fundamental change that's taking place in the balance of power. It is driving the competition. And I would note that you'll hear a lot of talk about the fact that the United States is a liberal democracy, and that China is a communist state. And, therefore, this is an ideological clash.

    Q: In “The 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 the book you published in 2001, you said there would never be a peaceful emerging of China and predicted the U.S.-China conflict. When do you think the critical turning point was for their bilateral relationship?

    A: That's a difficult question to answer, because it really started in the early 1990s when China began to grow. That's when it started.

    It was China's rise in the unipolar moment that is driving the train in this process. And there were a number of events along the way that mattered greatly. Most importantly, it was China's admission to the WTO in 2001, which really allowed the Chinese economy to accelerate, to the extent that you can pinpoint a date where the United States recognized that the rise of China was a problem and that China would have to be contained.

    Q: Some analysts in the United States and Japan have argued that since U.S.-China bilateral economic ties and political relations have grown over 14 years under the so-called engagement policy, it is not feasible for either country to instigate an open war. Do you agree?

    A: Well, there were many experts who said the same thing before World War I. They said there was a tremendous amount of economic interdependence in Europe. And nobody would dare start a war because you would end up killing the goose that lays the golden egg. But nevertheless, we had World War I. And what this tells you is that you can have economic cooperation, and at the same time, you have security competition.

    And what sometimes happens is that the security competition becomes so intense that it overwhelms the economic cooperation and you have a conflict. But I would take this a step further and say that if you look at what's happening in the world today, that economic cooperation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is slowly beginning to disappear, and you're getting an economic competition as well as security competition.

    As you well know, the United States has its gun sights on Huawei. The United States would like to destroy Huawei.

    The United States would like to control 5G. The United States would like to remain on the cutting edge of all the modern sophisticated technologies of the day and they view the Chinese as a threat in that regard. And that tells you that not only are you getting military competition, but you are also getting economic competition.

    Q: Unlike in the Cold War era, no one knows exactly how many nuclear weapons China possesses. You have said that since Eastern Asia has no central front like Europe, the possibility that a war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could occur over East Asia is high. Many countries surrounding China, particularly Japan, as well as other countries that do not possess a nuclear weapon, would be vulnerable to an attack from China. Do you think that we may see a war breaking out in East Asia in the future?

    A: Let me start by talking a little bit about the Cold War and then comparing the situation in East Asia and with the situation in Europe during the Cold War. During the Cold War, the competition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was centered on central Europe. We used to talk about the central front, where you had the Warsaw Pact on one side, and NATO on the other side.

    And when we talked about U.S.-Soviet war, it involved the central front. Now, the central front was populated by two giant sets of armies, that were armed to the teeth with nuclear weapons. That meant if we had World War III in central Europe, you would have two huge sets of armies crashing into each other, with thousands of nuclear weapons.

    Not surprisingly, when we ran war games during the Cold War, it was very difficult, if not impossible, to get a war started in central Europe, because nobody in his or her right mind, would start a war given the possibility of nuclear Armageddon.

    Now, contrast that with the situation in East Asia, which is the central flash point between United States and China, the three places where you could possibly have a war involve the South China Sea, Taiwan and the East China Sea.

    Those areas are not the equivalent of the central front. And it's possible to imagine a limited conventional war breaking out in one of those three areas. It's much easier to imagine that happening, than a war on the central front during the Cold War.

    This is not to say that a war in East Asia is axiomatically going to happen. I'm not arguing that, but it is plausible that the United States and the Chinese and some allies of the United States like Japan may end up in a shooting match with the Chinese in say, the East China Sea.

    Now, if China is losing, or if the United States is losing that military engagement, there will be a serious temptation to use nuclear weapons as the United States is committed to use nuclear weapons to defend Japan if Japan is losing a conventional war. And one might say, it's unimaginable that the United States or China would use nuclear weapons.

    But I don't think that's true, because you would be using those nuclear weapons at sea. You would not be hitting the Chinese mainland in all likelihood. And, therefore, it's possible to think in terms of a "limited nuclear war," with limited nuclear use.

    So, I worry greatly that not only will we have a war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but also that there's a serious possibility nuclear weapons would be used. And I think in a very important way, it was much less likely that would happen during the Cold War.

    Q: High-ranking Chinese officials once suggested to the United States that the two superpowers should split the Pacific and each enjoy a sphere of influence. Do you think the United States would ever accept such an idea?

    A: No, the United States will not accept sharing power. Sharing power as you described it, means allowing China to become a regional hegemon in Asia, and the United States will not tolerate that. The United States will go to enormous lengths to prevent China from becoming a peer competitor.

    You want to remember the United States in the 20th century put four potential peer competitors on the scrap heap of history: Imperial Germany, Imperial Japan, Nazi Germany, and the Soviet Union.

    If China becomes a regional hegemon in Asia, it will have no threats in Asia to worry about, and it will be free to roll into the Western Hemisphere and form military alliances with countries like Cuba and Venezuela. This is why the United States goes to great lengths to prevent China from dominating Asia.

    Q: Your 2014 essay titled “Say Goodbye to Taiwan” stirred debate. Do you think the United States would abandon Taiwan if China intervenes?

    A: I believe the United States will fight to defend Taiwan if China invades Taiwan. In my opinion, it's unthinkable that the United States would stand by and allow China to conquer Taiwan. If we didn't defend Taiwan, it would have devastating consequences for our relationship with Japan, South Korea and our other allies in East Asia.

    I would say however, and this was why the editors at The National Interest had used the title “Goodbye Taiwan,” you can imagine a possible situation in 30 or 40 years where China has grown so powerful that the United States simply cannot defend Taiwan because of the geographical location.

    Q: China has strengthened its strategy to effectively deter U.S. aircraft carriers from approaching the Taiwan Strait. Could the United States deploy its military forces in Asia in a crisis?

    A: I don't think aircraft carriers are going to be very helpful. I think we're rapidly reaching the point where aircraft carriers are sitting ducks. I think we're going to have to rely instead on other kinds of military force. Tactical aircraft coming off land-based airfields, ballistic missiles, submarines, and so on.

    Q: How do you evaluate the Trump administration's China policy?

    A: I think that Trump has wisely understood that it's important for the United States to contain China, not only militarily, but economically.

    Q: But the administration has failed to get a result.

    A: I think the problem with the Trump administration is that it has done a bad job dealing with allies like Japan and South Korea and the Philippines and Australia and Vietnam and so forth and so on. What we need here is American leadership to put together a cohesive Alliance structure that can contain China. And the Trump administration has treated America's allies with contempt.

    Q: If President Trump fails to be re-elected and Joe Biden, the Democratic Party’s presumptive nominee, becomes president, do you think the United States can restore its relationship with its key allies like Japan, South Korea and Germany? What do you think is the most effective way for the Biden administration to contain China?

    A: I think that if Joe Biden gets elected president, the Democrats come to power, and the Democrats will go back to treating our allies in Europe and East Asia much the same way we treated them up until Trump took office.

    Trump is an anomaly. Trump is hostile in very important ways. Trump is hostile to America's allies because he thinks that America's allies have taken advantage of the United States. He thinks this is especially true for Germany. These countries in his mind are free riders. They're free riding on the United States. And he's very angry about that. And this has led him to treat virtually all of America's allies quite badly.

    I don't believe that will be the case if Biden is president and the Democrats come back. I think we'll have much better relations between Japan and the United States. And Japan won't have to spend endless hours trying to figure out exactly what Trump's policies are and what he's doing from minute to minute. We'll have more regularity in our foreign policy.

    And I think that will all be for the good. But I would say that I believe that the Democrats will be as committed to containment as Trump has been. I don't think that there'll be any lessening of America's containment policy if the Democrats beat Trump in November.

    I was in China for 17 days in October 2019. And I talked to all sorts of Chinese foreign policy leaders. Almost everybody I talked to believes that it doesn't matter whether Trump wins or loses in 2020 for U.S.-China relations. The Chinese believe that the Americans have their gun sight on China, and nothing is going to change that. I think they are correct.

    Q: What approach do you think Japan should take against China’s recent strengthening of its military forces?

    A: I think there is no question that the Chinese have been building up their military capabilities vis-a-vis Japan. It is especially clear that the 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INF) threat has been growing. Of course, some of those missiles are not nuclear. They are conventional, but intermediate-range missiles aimed at Japan have grown in large numbers.

    I think a number of things have to happen here. First of all, the Japanese are going to have to spend much more money on defense. Secondly, they're going to have to work much more closely with the United States. It's actually very important that the two sides work together. And I think the Japanese are going to have to deploy INF or intermediate-range missiles of their own, not nuclear. I think at this point in time, the Japanese can rely on the United States for nuclear deterrence.

    Q: The Senkaku Islands are one of the most dangerous flash points between China and Japan. Would the United States deploy its military forces against China to protect the uninhabited islands?

    A: The United States has made it somewhat clear they would help Japan defend the Senkaku Islands. I think what needs to be done here is the United States needs to make it perfectly clear that it will help Japan defend the Senkaku Islands, and both the United States and Japan have to develop the military capabilities to defend the Senkaku Islands. And they have to work together to create a formidable deterrent force that will keep the Chinese from invading those small islands.

    ***

    Kenji Minemura, Senior Diplomatic Correspondent, worked as the Chief Foreign Affairs Correspondent in Washington, D.C., and was previously a correspondent in Beijing. He is also a researcher at Hokkaido University Public Policy School.

1842년 청은 1년여에 걸친 아편전쟁 끝에 난징조약을 맺고 홍콩을 영국에 공식 할양했다. 마약교역을 둘러싼 영국과의 갈등 탓에 2차 아편전쟁이 벌어졌지만 청은 다시 패했다. 구룡반도와 스톤커터스 섬을 추가로 내줘야했다. 영국은 1898년 홍콩과 주변의 새영토(新界)를 중국으로부터 99년 동안 조차했다. 홍콩대학이 설립되고, 항만시설과 카이탁 공항 등 인프라가 들어섰다. 

 

홍콩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광둥어와 함께 영어를 배웠다. 금융과 무역항만을 중심으로 홍콩은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번영을 누렸다. 약속한 99년이 끝난 1997년 7월1일 홍콩은 중국에 귀속됐다. 중국은 그러나 영국과 영국이 대표하는 서구에 대항할 힘이 없었다. 영국과 합의하에 또다른 50년을 기한으로 홍콩기본법을 제정했다. 홍콩인에 의한 통치(港人治港)와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양대 원칙으로 삼아 홍콩 주민들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인정키로 했다. 

 

지난 11월28일 홍콩 시내 민주화 시위대가 어나니머스 가면을 쓴채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홍콩인권법을 비롯해 홍콩관련법 2개에 서명한 이날 홍콩 도심 곳곳에 성조기가 나부꼈다.  AP연합뉴스

 

■ 귀속 22년, 다가오는 중국
영국 통치시대 태어난 홍콩 주민들은 종래의 생활로의 복귀를 갈구했다. 본토에서 이주해온 중국인들을 2등 시민으로 무시하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중국과 중국인들은 홍콩 할양 시점을, 이후 100년 동안 치욕의 역사가 시작된 원점으로 본다. 중국의 내정 간섭은 은밀하게 진행됐다. 홍콩 정부가 범죄인인도법 개정을 시도, 홍콩인이 중국에 인도될 길을 열려고 하자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홍콩 문제가 역사적으로 티벳이나 신장·위구르 문제와 결이 다른 배경이다.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이 직면한 많은 문제들도 연원을 따지려면 제국주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홍콩 시위를 먼나라 이야기로만 바라보기에는 지리적·역사적·문화적 체감지수가 다르다. 어쨌든 중국이 아편전쟁 패배 끝에 영국에 빼앗긴 땅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악화를 우려하는 서구의 개탄에 중국이 ‘네 눈의 들보’라며 되받는 연유다.

 

홍콩 시위대는 이번에 분명 작은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중국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비난하고 인권과 민주주의의 승리를 축하하기에는 어딘가 께끄름한 측면이 있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적어도 홍콩 문제에 관한 한 중국과 서구의 입장을 일도양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벌어진 민주화 시위의 궁극적인 목표는 직접·비밀·보통선거로 완전한 자치를 확보하는 것이다. 하지만 행정수반 직선제를 허용치 않은 것은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런던에서 파견된 총독이 다스렸다. 둘째는 추세 때문이다. 홍콩 민주화 시위는 이전에도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후 중국의 입김은 조금씩 은밀하게 더 강화됐다.

 

 

로이터연합뉴스

 

■ 홍콩 시위대의 작은 승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7일 홍콩 민주주의 관련 법안 2건에 서명했다. 홍콩 시위대가 지난 3월15일부터 세계에 호소해온 숙원의 일부가 이뤄졌다. 중국 외교부는 다음날 “노골적인 패권행위”라면서 강한 반박성명을 내놓았지만, 미국 입법·행정부의 결정을 뒤집을 묘안은 없어 보인다. 홍콩 주민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태평양 건너로부터 든든한 후원을 받음에 따라 8개월째 계속되는 홍콩 시위는 중요한 고비를 넘긴 것이다.

 

트럼프가 서명한 ‘홍콩 인권 및 민주주의 법안(홍콩인권법)’은 범민주진영이 압승을 거둔 24일의 구의원 선거에 이어 또 하나의 승리였다. 범민주진영은 452석 중 347석(76.8%)을 얻었다. 올봄 시위를 촉발시켰던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은 이미 지난 7월 홍콩 정부가 백지화함에 따라 항복선언을 받아낸 바 있다. 둥젠화 행정수반의 정부가 추진했던 ‘보안법’ 제정을 저지했던 2003년 대규모 시위에 이은 개가다. 그러나 과연 지속가능한 승리일까. ‘우산혁명’으로 불린 2014년 ‘도심점령(Occupy Central)’ 시위는 당국의 의미 있는 양보를 끌어내지 못했다.

 

홍콩인권법은 인권탄압에 가담하거나, 책임이 있는 홍콩 당국자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했다. 미국 국무부는 홍콩 주민들의 자유와 자치가 후퇴할 경우 이를 의회에 보고해야 한다. 다른 한 가지 법은 최루가스와 고무탄환 등 시위진압 장비의 홍콩 수출을 금지한 법이다.

 

외교안보 사안을 철저하게 거래주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트럼프에게 홍콩 관련법안은 마뜩잖은 돌출 악재였다. ‘역사적 I단계’에 도달한 미·중 무역협정의 최종 서명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트럼프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상·하원이 각각 3분의 2 이상의 압도적인 표결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봉쇄했기 때문이다. 인권과 민주주의에 별 관심이 없는 트럼프는 법안에 서명하면서도 “시진핑 주석과 홍콩 주민들을 존중한다”면서 본의가 아님을 애써 내비쳤다.

 

중국 외교부는 28일 성명에서 “홍콩인권법은 노골적인 패권 행위로 중국 정부와 인민은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중국은 반드시 단호하게 반격에 나설 것이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후과는 미국이 책임져야 한다”고 못박았다. 홍콩 정부 역시 ‘극도의 유감’을 표하면서 “이들 법안은 홍콩 내부 문제에 간섭하는 것으로서, 아무 필요도, 근거도 없다”고 비난했다. 자본시장은 트럼프와 셈법이 비슷했다. 중국의 강한 반발로 미·중 무역협상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이날 전 세계 증시는 하락세를 보였다.

 

지난 11월28일 홍콩 도심 에딘버러 광장에서 열린 민주화 시위 참가자가 'SOS'라고 쓰인 네온 글자판을 두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 ‘제2의 톈안먼’은 아직 없다
지난 11일 시위 희생자 추모집회에서 홍콩 경찰은 처음으로 실탄을 발사했다. 사격 장면이 페이스북에서 생중계되면서 충격을 던졌다. 하지만 이번 시위에선 특이하게 진압경찰의 폭력으로 희생된 사람보다 자살자가 많았다. 지난달 22일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시위대가 시위와 직접 관련된 것으로 파악한 자살자가 9명이었다. 한 자살자는 “홍콩이 필요한 건 혁명”이라면서 당국의 폭압에 항거하는 메모를 남겼다. 폭력적인 진압으로 최루가스가 난무하고, 진압 방망이에 머리를 맞아 피흘리는 청년들이 적지 않았다. 

 

4일 홍콩이공대 2층에서 의식불명인 상태로 발견돼 결국 사망한 대학생(22)은 건물 3층에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14일에는 시위대와 주민들 간의 충돌과정에서 70대 청소부가 벽돌에 머리를 맞아 사망했다. 8월부터 홍콩과 마주한 선전의 종합경기장에는 장갑차와 군용트럭을 앞세운 중국 무장경찰 수천명이 시위 진압 훈련을 했다. 제2의 톈안먼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근거다. 다행히 중국 무장경찰의 개입은 없었다. 하지만 홍콩 경찰의 공격적인 시위 진압 양태와 중국 무경의 등장은 전례없는 장면들이었다. 캐리 람 행정수반의 홍콩 정부는 지난달 4일 비상정황규제조례를 발동해 시위대에 복면(마스크) 착용 금지령을 내렸다. 안면인식 폐쇄회로(CC)TV로 시위자들의 신상을 파악, 평생 추적할 수단을 마련했다. 중국은 분명 이번 홍콩 시위에 어느 때보다 강한 대처 의지를 내보였지만 톈안먼으로 되돌아가는 ‘선’은 넘지 않았다.

 

홍콩 시위에선 이달 중순 현재 2명이 죽고 수천명이 다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발생한 볼리비아 시위에선 군·경의 발포로 23명이 죽고 700명이 다쳤으며, ‘신자유주의 우등생’ 칠레에선 17명이 죽고 2500여명이 다쳤다. 그럼에도 서구 언론은 볼리비아나 칠레에 비해 강한 어조로 진압 당국을 비판했고, 각국에서 연대 집회가 열렸으며, 미국 의회는 유독 민주주의의 수호천사를 자처했다.

 

홍콩 경찰의 폭력적인 시위진압을 고발하는 트위터 계정(#HongKongPoliceTerrorists)에 지난 11월 23일 게시된 사진. 게시자는 "죄없는 소녀가 머리를 몽둥이로 맞았다. 누군가 테러리스트들을 중단시켜달라!"고 호소했다.

 

■ 중국 불편한 세계, 세계가 불편한 중국
미국 연방의회를 제외한 각국이 홍콩 사태에 대해 내놓은 공식입장이나 성명은 대부분 영혼이 없는 외교적 수사에 불과했다. ‘우산혁명’ 당시에 비해 눈에 띄게 달라진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식민지배의 원죄를 안고 있는 보리스 존슨 내각의 영국은 시위대와 진압당국의 폭력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양측의 진정과 자제를 당부했다. 프랑스 외교부는 평화적 해법을 찾기 위한 대화를 주문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지난 8월 진압당국의 ‘고강도 폭력’을 우려하면서도 “(시위대가) 마스크를 쓰고 폭력을 선동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4일 “홍콩 상황이 조속하게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홍콩 시위와 그 너머 중국을 대하는 세계의 현주소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모두가 불편해하지만, 아무도 진지하게 토론하기를 꺼리는 상황을 뜻하는 ‘방안의 코끼리(the elephant in the room)’라는 말이 정확하게 들어맞는 경우다. 한국은 학생들이 대학 구내 곳곳에 붙인 홍콩시위 지지 대자보가 중국 유학생들에 의해 훼손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경험했다.

 

외부에서 보기엔 불편한 사실들이지만, 진압경찰의 폭력 앞에 놓인 홍콩 주민들에게는 절박한 문제다. 수십년 동안 군사독재의 탄압과 압제에 맞서 투쟁한 끝에 민주주의를 쟁취한 동아시아 분단국의 입장에선 남의 일이 아니기도 하다. 홍콩 시위대가 한국의 과거 민주화 시위에 강한 연대를 갖는 것도 자연스럽다.

 

홍콩 주민은 기본법에 따라 자치와 민주주의를 누릴 권리가 있다. 중국은 마땅히 이를 보장해야 한다. 중국 반환 22년이 지나면서 각국 정부는 ‘방안의 코끼리’를 불편해하면서 목소리를 낮추는 모습을 보였다. 기본법의 시한은 오는 2047년 6월 말이다. 행정수반 직선제와 진정한 민주주의를 희구하는 홍콩 주민들은 여전히 거리로 나서고 있다. 언젠가 더 큰 규모의 시위가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끝이 정해진 험로’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칠레 산티아고에서 홍콩까지... 전세계 10여개국 동시다발 시위를 어떻게 읽어야 하나

 

LA타임스에 따르면 칠레 시위는 한 중학생이 시작했다. 정부가 지난달 6일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 요금을 30페소(50원) 인상한다고 발표하자 이 학생은 소셜미디어(SNS)에 “티켓을 내지 않고 지하철 회전문을 뛰어오르자”는 제안을 했다. 지하철 공짜탑승 운동은 전국으로 번져 국가를 흔들었다. 100만명이 넘는 성난 주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최소 17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다쳤으며 7000여명이 체포됐다. 수도 산티아고에서 11월·12월에 각각 예정됐던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제25차 유엔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 25)가 취소됐다. 경제 피해는 14억달러.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고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던 야간 통행금지령이 발동됐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정부는 결국 지난 10일 상·하원 지도부와 회의를 갖고 시위대가 요구한 개헌 작업에 돌입했다.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에 화난 중학생의 SNS 제안이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독재 시절에 만들어진 신자유주의 헌법 개정의 50년 한을 풀게 한 셈이다.

 

진압경찰의 물대포에도 무지개는 뜬다.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지난 11일 시위대와 진압경찰이 충돌하고 있다. 칠레 정부는 지난 10일 개헌작업에 착수했다고 발표했지만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의 뒤늦은 대국민 사과와 사회보장 강화 조치도, 국가비상사태 선포도 사태를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다.  산티아고AP연합뉴스

 

칠레뿐이 아니다. 홍콩, 파키스탄, 알제리와 볼리비아, 스페인, 에콰도르, 프랑스 기니아, 아이티, 이라크, 카자흐스탄, 레바논에서도 성난 민중이 거리로 나오고 있다. 올해 초 인도에서는 양파값 파동이, 지난해 말 프랑스에선 유류세 인상안이 노란 조끼(Gilets jaunes) 시위를 불렀다. 호주머니 물가인상에서 분리독립, 반정부 등 시위대의 구호는 제각각이지만, 시위 자체가 전염병처럼 번지는 범지구촌 현상이다. ‘작은 저항’이 SNS라는 도구에 실려 나비효과를 일으키면서 시위에 처음 불을 댕긴 사람조차 상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포퓰리즘이라는 단어가 국제뉴스에 범람했지만, 이제는 전혀 낯선 뉴스가 아니다. 일상적인 뉴스의 일부분이 됐다. 나라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엘리트주의, 기성제도에 대한 반발이라는 큰 구조는 별반 차이가 없다. 서구의 경우 반이민이, 동구의 경우 반서구가 뒤틀린 증오의 주동력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포퓰리즘의 백화점이다. 반이민·반이슬람·반중국·백인우월주의 감정이 뒤엉켜 있다. 하지만 저변을 흐르는 심리는 내편과 네편을 일도양단하는 섬뜩한 민족주의 또는 인종주의이다. 그렇다고 포퓰리즘이 지속가능한 것 같지는 않다. 미국 하원에서 진행 중인 대통령 탄핵 움직임이 말해주듯 기성제도의 반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 참가자들이 눈동자를 그려넣은 펼침막을 내걸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눈동자는 지난 달 중순부터 시작된 시위 과정에서 경찰의 산탄총알을 눈에 맞은 200여명의 시민들을 상징한다. 진압경찰이 고의로 시위군중의 눈을 겨냥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산티아고 AP연합뉴스

 

2019년 가을,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상한 시위’들의 정체는 포착하기 쉽지 않다. 세계가 전에 보지 못한, 작은 분노와 작은 연대에서 촉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은 증오의 연대를 먹고 자란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포퓰리즘과 마찬가지로 각양각색의 지구촌 시위도 조만간 전혀 새롭지 않은 뉴스의 일부분이 될 수 있을까.

 

언론매체도 유전자(DNA)가 있다. 월가의 자본논리를 충실하게 대변하는 월스트리트저널은 칠레의 시위군중을 좌파 극단주의자로 규정하고, 라틴 아메리카의 꿈이 영글지 않은 것은 경제적 실패 탓이라기보다 사회적 사건 때문이라고 질타했다. 피녜라 정부는 신자유주의 헌법 개정 요구에 절대 굴복하면 안된다면서, 시위자들을 상대로 ‘칠레의 퓨마’를 살해하지 말라고 당부했다(메어리 아나스타시아 오그래디 칼럼). 퓨마는 아시아 4개국 경제를 호랑이로 부르는 것에 빗대어 만든 신조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2일자 사설에서 ‘칠레 지도자들이 경제적 불평등의 대가를 배우고 있다’면서 경제적 해법을 제시했다. 부를 보다 평등하게 나누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논평이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시위 경향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 같다고 관측하면서도 글로벌 혁명의 전조라기보다는 단지 ‘새로운 현재(status quo)’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역사적인 평가를 내린 것은 르몽드였다. 지난 8일자 사설에 지구촌의 요구는 “민주주의를 다시 정복하라”는 정언이라고 썼다. 시위는 권위주의 국가는 물론 신자유주의 국가에서도 벌어진다. 프랑스처럼 낡은 공화국도 노란 조끼의 도전을 받고 있다. 카이로에선 군부가 훔쳐간 정부의 귀환을, 홍콩에서는 중국의 압제가 빼앗은 자유를 외치고 있다. 산티아고에선 정치권력과 하나의 계급, 하나의 카스트, 하나의 마피아가 독점한 자본세력의 결탁이 부정됐다. 칠레에선 특히 사소하지만 견딜 수 없는 경제적 결정이 방아쇠가 됐다. 프랑스와 에콰도르의 유류세와 레바논의 왓스앱(WhtsAPP) 세금, 사우디아라비아의 레스토랑 물담배 세금이 이에 해당된다. 각국의 정치·경제 엘리트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원인들이었다. 사설은 이를 찰랑찰랑 차있는 물병의 물을 넘치게 한 ‘한 방울의 물’로 표현했다.

 

정치적 민주화를 요구하거나, 장바구니 물가 인상에 항의하거나 최근 시위에는 국기가 많이 등장한다. 학자들은 국기의 등장이 좁게는 빼앗긴 광장의 회복이며, 넓게는 빼앗긴 국가의 회복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11월19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한 교사가 칠레 국기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특정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지도자 없이 벌어지는 이러한 시위들은 존엄과 평등의 요구이면서 사회 시스템의 변화를 지향한다는 해석이다. 세계화로 인한 불평등에 항의하면서도 국경 없는 상품과 서비스의 이동과 교환이라는 세계화 논리에 따라 전염성을 갖는 것은 패러독스다. 르몽드는 최근 시위는 시장의 승리로 귀결된 베를린 장벽 붕괴 30년을 맞아 각국의 민중이 몽둥이를 다시 든 반역의 바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민생의 불만이 터진 시위와 이집트·홍콩 등 정치적 압제에 저항하는 시위들의 공통점은 SNS 시대의 전염성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민중이 몽둥이를 든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어딘가 아쉬운 해석이다.

 

2008년 월가의 살찐 고양이들의 탐욕이 부른 글로벌 금융위기 뒤 각국의 긴축재정이 초래한 시위사태도 글로벌 현상이었다. 유럽에선 ‘분노하라 시위’가,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선 ‘아랍의 봄’ 시위가 잇달았다. 뉴욕에선 ‘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 시위’가 추운 겨울 성난 민심을 대표했다. 아랍의 봄을 촉발시킨 주역 역시 과일행상을 하던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다행히 튀니지의 민주화는 진척됐지만, 보통사람들의 생활고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기에 언제든 다시 거리로 뛰쳐나올 수 있다. ‘작은 저항’도 뭉치면 기성제도를 흔들 수 있다는 경험이 살아 있고, 그럼에도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 대한 불만이 언제든지 ‘한 방울의 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옌데 정권을 무력으로 붕괴하고 권좌에 오른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칠레 대통령이 헨리 키신저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미국 보수우파는 칠레 쿠데타 초기부터 신자유주의를 주입했으며, 칠레는 대처의 영국, 레이건의 미국에 앞서 신자유주의가 이식된 국가이다. 사진/위키페디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시위현상과 최근의 시위현상을 한 묶음으로 의미를 부여한 사람은 프랑스의 국제정치학자 베르트랑 바디 교수였다. 그 역시 마술 같은 해법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최근 접한 견해 중 가장 웅숭깊은 분석을 제시했다. 그는 지구촌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지는 현상에 ‘세계화 II막 시대의 개막’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파리 정치대학 명예교수인 그는 지난 8일 르몽드 대담에서 각국의 시위는 각기 다른 배경에서 비롯됐지만, ‘인민의 귀환’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면서 이같이 규정했다. 세계화는 만능열쇠처럼 모든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이 경우엔 너무도 자명하다는 말이다. 바디 교수는 시위의 전염성을 세계화의 3대 징후로 풀었다. 3대 징후의 첫 번째는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외면하고 사는 사람들이 드물 정도로 서로 엮인 사회라는 점에서 ‘포함(inclusion)’을 들었다. 두 번째는 한 나라에서의 집단의사 표출이 다른 나라로 전파돼 영향을 미치는 상호의존성이고, 마지막이 각국 사회를 연결하는 SNS의 유동성이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순교자 광장'에서 지난 11월17일 수많은 주민들이 사드 하리리 총리의 사임 이후에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정치개혁에 불만을 품고 시위에 나서고 있다. 중앙의 웅켜쥔 주먹에는 '혁명'이라는 말이 써 있다. EPA연합뉴스 

 

그가 주목한 것은 한 나라의 사회운동과 다른 나라의 사회운동이 역동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글로벌 현상이었다. 국가 간 경쟁 또는 협력만 보이던 국제관계 지평을 각국 사회의 수렴이라는 전혀 새로운 상황으로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 대 사회 관계의 역전이다. 과거에 정치가 강하고 견고했고 사회는 부드럽고 물렀다면, 이제 정치는 갈수록 불확실하고 불안정해지는 반면 사회는 더 강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바디는 미국의 반이란 외교가 아니라, 이라크 민중 시위가 이란의 지역 영향력을 위협하고 있는 현상을 극명한 예로 들었다.

 

바디는 새로운 사회운동의 씨앗을 2011년 ‘아랍의 봄’에서 찾았다. 유럽인들의 DNA에 각인된 사회주의나 프랑스 대혁명, 자코뱅주의와 동떨어진 가치에서 촉발됐다. 시위는 이데올로기도, 특정 정당이나 특정 지도자도 없이 보통사람들의 작은 전략들과 사회적 행동이 뭉쳐지면서 커졌다. 정치적 질서는 대응하지 못했을뿐더러 시리아에서처럼 극렬한 폭력 속에 스스로를 지키지도 못했다. 그는 지금 바그다드에서 베이루트까지, 홍콩에서 산티아고까지 이어지고 있는 시위들은 아랍의 봄과 특징을 공유한다고 본다. 종래의 고전적인 사회적·경제적 요구들을 부차적인 요소로 밀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 그 자체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국의 기성정치가 문제해결을 못하거나, 프랑스나 칠레에서처럼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로 사태를 봉합하고 있는 현상을 꿰뚫은 통찰이다.

 

이라크 바그다드 알라시드 거리에서 지난 11월17일 열린 반정부 시위 도중 진압경찰이 발사한 취루가스에 거리가 자욱하다. AP연합뉴스

 

프랑스와 칠레의 집권당이 모두 중도우파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겉으로 사과하고, 속도를 늦출지언정 신자유주의 개혁을 계속 추진하는 게 중도우파의 공통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어디쯤 위치할까. 뒤늦게 독일의 슈뢰더식 개혁의 걸음마를 떼고 있는 프랑스보다는 완숙한 신자유주의 사회인 칠레에 가까운 것 같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빌미로 뇌수를 장악한 자본의 지배질서가 이미 일상이 됐기 때문이다. 극우 포퓰리즘이 거리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만 프랑스에 가깝다. 분단이 배태한 뒤틀린 증오와 순진한 열정이 뒤섞여 다소 흐릿하지만, 한국 사회는 어쩌면 ‘한 방울의 물’이 떨어지기 직전인지도 모른다. 르몽드가 인용한, 물병을 넘치게 할 ‘한 방울의 물’은 바디 교수의 표현이다. 그 물병의 이름은 경제적·사회적 질병이다. 

 

프랑스 국제정치학자 베르트랑 바디의 근간 <도전받는 헤게모니, 새로운 형태의 국제적 지배> 표지. 바디는 고대 그리스의 델로스동맹부터 아메리칸 헤게모니까지 '메시아적인 동맹'은 없다고 단언한다.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태양광 요트로 대서양을 건넌 16세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지난 9월17일 워싱턴의 미국 연방상원의 ‘기후변화 태스크포스’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햇볕 아래 가는 게 두렵다. 오존 구멍들 때문이다. 공기를 마시는 것도 두렵다. 어떤 화학물질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빠와 함께 밴쿠버에서 낚시를 나가곤 했다. 몇 년 전 온통 암에 걸린 물고기들을 발견하기 전까지 이야기다. 동물과 식물이 매일매일 멸종되고 있다. 여러분도 내 나이에 이런 걸 걱정했었나요.”

 

■ 스즈키와 툰베리, 같은 주장·다른 표정 

 

1992년 6월3일. 리우 지구정상회의장에서 12세 캐나다 소녀가 연단에 섰다. 이미 아홉 살 때 어린이환경기구(ECO)를 창립해 활동해온 세번 컬리스-스즈키였다. 또래 친구 3명과 함께 모금운동으로 경비를 마련해 리우까지 날아왔다. 회의장에 당당하게 ECO 부스를 마련했다. ‘어린 환경운동가’는 5분여 차분하고도 야무지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10대 관점에서 본 지구온난화 문제의 심각성은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나는 미래를 위해 싸운다. 미래를 잃는다는 것은 선거에 지거나 증시에서의 몇 포인트와 다르다. 나는 다가올 모든 세대들을 위해, 또 굶주림에 죽어가는 아이들과 멸종되는 동식물을 위해 여기 왔다.” ‘5분간 세계를 침묵케 한 소녀’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서 유포되는 그의 연설 동영상이다.

 

세계가 지구온난화의 위험을 알리는 소녀의 외침에 다시 귀를 기울이고 있다. 아니, 그런 것으로 보인다. 이번엔 국제적인 환경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스웨덴의 16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다. 그는 여느 어린 운동가로 언론에 소비되는 것을 거부한다.

 

툰베리는 지난 9월23일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 연단에 섰다. 어린 환경운동가는 더 이상 어리지 않았으며, 더 이상 어른들에게 호소하지도 않았다. 분노와 절규를 거리낌없이 쏟아냈다. 지구온난화의 문제를 알고 있다면서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어른들, 공허한 말로 자신의 꿈과 어린 시절을 훔쳐간 어른들을 정조준했다. 대량 멸종의 초입에 들어왔음에도 여전히 돈과 영원한 경제성장이라는 동화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고 거칠게 몰아붙였다. 시종 심각하고 화난 표정이 역력했다. 특히 유엔 회의장에 잠깐 들른 트럼프 대통령을 쏘아보는 툰베리의 강렬한 시선이 사진에 포착돼 화제가 됐다. 그를 가장 분노케 한 지도자의 하나는 화석연료 경제를 찬미하면서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일 터이다. 그에겐 트럼프가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보였을 법하다.

 

비슷한 메시지를 전혀 다른 톤으로 표출한 컬리스-스즈키와 툰베리는 27년의 세월을 두고 축적돼온 세계의 변화를 상징한다. 컬리스-스즈키가 작가인 엄마와 유전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아빠의 영향으로 집안에서 환경교육을 받았다면, 툰베리는 스스로 온몸으로 예시(豫示)를 깨쳤다. 여덟 살 때인 2011년 기후변화 문제를 처음 접하고 왜 별다른 해결 노력이 진행되지 않았는지 의아해했다. 3년 뒤 8개월 동안 심한 무기력증에 빠졌다. 첫 두 달 동안 먹는 것도, 말하는 것도 중단했다. 10㎏이 줄었다. 의학적으론 선택적 자폐와 아스퍼거 증후군을 진단받았다. 고독에 잠겨 있던 어린 영혼은 기후문제에 눈을 떴다. 툰베리는 2년 동안 집에서 ‘탄소 발자국(CO2 배출량)’을 줄일 것을 부모에게 요구했다. 완전채식주의자(vegan)가 되어 고기를 먹지 않았고 비행기 탑승도 포기했다. 딸아이의 채근에 오페라 가수인 엄마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 해외공연을 포기했다.

 

 1992년 리우 지구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는 12세 캐나다 소녀 컬리스-스즈키. 그는 지금도 환경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집 밖에서 환경운동가가 된 것은 불과 2년도 되지 않는다. 기후변화 에세이가 작년 5월 스웨덴 신문 스벤스카 다그블라데트의 공모에서 선정되면서부터다. 지난해 여름 스웨덴을 강타한 200여년 만의 폭염과 기근은 툰베리를 활동가로 만들었다. 스웨덴에서만 7월 한 달 동안 60곳에서 산불이 일어났다. 결국 스웨덴 총선을 20일 앞둔 8월20일, 툰베리는 홀로 스톡홀름 의사당 앞 시위를 시작했다. 2주 동안 매일 의사당 자갈마당에 조용히 앉아 행인들에게 “내가 이러고 있는 것은 어른들이 나의 미래에 똥을 싸고 있기 때문”이라고 적힌 팸플릿을 건넸다. 동맹휴학도 제안했다.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페이스북에 사진과 소식을 전했다. 11월 말 스톡홀름에서 테드(TED) 강연을 했고, 다음달엔 제24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4)에서 연설을 했다. 12월 유럽 270개 도시와 마을에서 2만명의 학생들이 시위에 나섰다. 툰베리는 매주 금요일 등교하는 대신 기후변화 시위를 벌이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 단체를 만들었다. 올해는 아예 1년간 휴학계를 냈다.

 

툰베리는 파리 협약이 목표로 설정한 ‘섭씨 1.5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늦어도 2020년부터 온실가스 방출을 급진적으로 줄이기 시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역시 파리 협약이 설정한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40% 감축 목표도 80%로 늘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올해 유엔 회의 참석을 위해 15일 동안 태양광 요트로 대서양을 건넜다. 뉴욕 일정을 마치고 캐나다 몬트리올로 여행할 때는 아널드 슈워제네거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전기자동차를 제공했다. 툰베리의 외침은 반향이 컸다. 지난해 말부터 툰베리는 각국의 시위를 촉구하고, 독려한다. 행동지침도 내린다. 지난 4월 런던 시내 한복판에서 열흘 동안 기후행동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인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 단체 지도부에는 시민 불복종 운동을 제안했다. 멸종저항은 옥스퍼드 서커스와 워털루 다리, 마블아치, 자연사박물관 등에서 점거농성을 벌여 1100여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 '툰베리 현상' vs ‘증오의 녹색화’

 

그레타 툰베리가 지난 9월23일 뉴욕 유엔본부에서열린 유엔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작금 포퓰리즘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좌파건, 우파건 기성 엘리트 정치인들이 세계화에 신음하는 보통 사람들의 호소에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반이민 민족주의 정서가 넘치면서 정당한 분노와 부당한 증오가 뒤섞였다. 같은 현상이 지구온난화 관련  찬반 양진영에서도 나타난다. 기성 엘리트들이 긴급한 기후행동을 촉구하는 절박한 요구에 응답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 진영 모두 과격해지고 있다. 기후행동을 요구하는 운동가들은 굼뜨기만 한 민주주의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잠시 민주주의를 접자는 주장까지 제기한다(워싱턴포스트).

 

기온과 해수면이 올라가고 가뭄과 홍수가 많아졌다. 산불도 자주 발생한다. 깨끗한 물이 줄어들고 식량위기가 발생한다. 모두 지구온난화의 결과들이다. 극단적인 환경에 몰리면 사람이건, 동물이건 과격해진다. 지구온난화가 극단주의로 흐를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부쩍 높아진 것도 그 때문이다. 셰리 굿맨 우드로 윌슨센터 선임연구원은 예일대 기후커넥션 인터뷰에서 “많은 나라에서 기후변화가 사람들 생명에 악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면서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려는 투쟁은 사람들을 절박하게 만듦으로써 종교적, 정치적 극단주의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후행동의 또 다른 이점은 극단주의 예방이라는 지적이다. 2017년 독일 외교부 산하 연구소가 내놓은 ‘더워지는 세계에서의 반란과 테러리즘, 조직범죄’ 보고서에서 극단적인 기후변화가 보코하람과 같은 극단주의 테러단체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아프리카 사헬 지역의 가뭄만이 극단주의를 양산하는 건 아니다.

 

EPA연합뉴스

 

지난 3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와 8월 미국 엘패소의 쇼핑센터에서는 각각 51명과 22명이 살해됐다. 크라이스트처치 총격 사건의 범인은 아예 ‘환경 파시스트(eco-fascist)’를 자칭했다. 무슬림 이민자들에 대한 증오와 함께 인구 과잉과 환경 악화를 범행 동기로 꼽았다. 엘패소 범인은 “수질오염과 플라스틱 과소비, 미국의 소비문화가 미래 세대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에코 파시즘의 극단적 예들이다. 햄프셔 대학의 베스티 하트만 명예교수는 이를 ‘증오의 녹색화(the greening of hate)’로 명명했다. 증오의 에너지를 분출할 출구를 찾지 못한 인종주의자들에게 지구온난화와 늘어나는 이민자는 좋은 구실이 된다. 이러한 불만과 증오가 언제든지 에코 파시즘이라는 ‘죽음의 칵테일’을 제조할 수 있는 것이다.

 

어린이의 깜찍한 경고 정도로 받아들여졌던 컬리스-스즈키의 연설과 달리 섬뜩하리만큼 거칠어진 툰베리의 표정과 말에서 작금의 변화가 읽힌다. “우리가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다. 이게 나의 메시지다”라는 말로 시작한 툰베리의 유엔 연설은 “당신이 어떻게 감히!(How dare you!)”라는 말을 몇 차례 반복하며 어른들을 질타했다. 기후행동 반대론자들은 이마저도 용납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트럼프는 툰베리와 조우한 뒤 트위터에 “밝고 멋진 미래를 기대하는 아주 행복한 소녀 같다. 보기 좋다!”고 비꼬는 데 그쳤지만, 비난자들(haters)의 표현은 더 원색적이었다. 컬리스-스즈키와 툰베리를 함께 묶어 아이들을 이용하는 좌파들의 고질적인 수법이라는 비난과 툰베리의 아스퍼거 증후군을 문제 삼는 댓글이 주종을 이룬다.

 

툰베리가 글로벌 '기후 파업(Climate Strike)'이 벌어진 캐나다 몬트리얼에서 거리행진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 8월말 대서양을 건너온 툰베리는 한달 동안 뉴욕과 몬트리얼 등을 돌며 지구온난화 대책 마련을 위한 시위와 행사, 강연에 참가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 ‘지구 전쟁’의 해방구, 대~한민국

 

툰베리의 답은 이렇다. “증오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다른 외양을 들춰낸다면 그들에게 달리 할 말이 없음을 의미한다. 또 당신이 이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스퍼거 장애를 갖고 있는 나는 가끔 표준과 다소 다르지만, 조건이 충족되면 그 다름이 슈퍼파워가 된다”(8월1일 툰베리 트위터). 실제로 아스퍼거 증후군의 세계적 권위자 토니 애트우드는 “이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말하며, 정직하고 단호하다. 강한 사회 정의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툰베리는 자신의 증상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말하는 증상”이라고도 설명했다. 각국 지도자들은 27년 전 컬리스-스즈키의 주장을 듣기만 했다. 이번에도 듣기만 할 것인지는 그들의 판단이지만 툰베리의 말대로 “변화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오고 있다”.

 

유엔 기후주간의 마지막 날이었던 9월27일 전세계에서 동시에 열린 기후파업(Climate Strike) 시위에 수백만명이 참가했다. “또다른 행성은 없다(No Planet B)”고 외쳤다. 서울 세종로에도 500여명이 모였다. 뉴욕(32만)과 베를린(27만), 런던(15만)에 비해 다소 조촐했다. 진영 싸움에 코가 빠진 어른들은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난 9월27일 서울 세종로에서 글로벌 기후파업(Climate Strike) 시위의 일환으로 열린 청소년기후행동 결석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이 지구온난화 대책을 서둘러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강윤중기자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조 바이든(76). 미국 민주당 주류가 내년 대선 후보로 점찍어 놓은 거물급 정치인이다. 나이 서른에 처음 연방상원에 진출했고, 마흔 중반이던 1988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데뷔했다. 2008년 대선에선 후보로 나섰다가 일찌감치 포기하고, 버락 오바마의 러닝메이트로서 8년 동안 부통령직을 수행했다. 바이든은 인간성이 묻어나는 배경과 털털한 성격으로 대중에게 편안함을 주는 정치인이다.

 

갓 낳은 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시절의 엘리자베스 워런 미국 상원의원. 내년 대선의 민주당 후보경선에 뛰어든 그의 선거홈페이지에 소개된 사진이다. 미국 보통사람들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바이든은 노동자 가정 출신이다. 선친은 바이든이 태어날 무렵 사업 실패로 처가살이를 해야 했다. 바이든이 어린 시절엔 안정적인 직업이 없었다.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자동차 세일즈맨으로 자리 잡으면서 간신히 중산층에 복귀한 보통사람이었다. 바이든이 유독 노동자 친화적인 데에는 성장배경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보통사람들의 삶이 파괴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부통령에 취임한 그는 ‘사이다 발언’을 종종 내놓았다. “2000~2007년 노동생산성은 20% 올라갔는데 노동자 가정의 수입은 매년 2000달러씩 줄었다”고 통탄했다. 수백억달러의 보너스 잔치를 벌인 월가 금융공학자들을 “교도소에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라고 격분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실업이 미국의 정신을 고갈시키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던 그는 부통령이 아닌, 노동조합 간부로 보였다. 자본주의 국가들이 친기업적인 환경 조성에 나서던 무렵이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보통사람들의 삶을 부축하기 위해 갖가지 비상경제대책을 내놓았으며 그 한 축이 바로 ‘흙수저 정치인’ 바이든이었다.

 

트럼프, 녹취록 공개 ‘승부수’
논란 들출수록 스캔들 부각
‘도덕성’ 내세운 바이든에 ‘타격’

 

미국 연방하원이 지난 24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에 돌입했다. 특별검사까지 등장했지만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났던 2년 전 탄핵 움직임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의 지난 7월 통화 녹취록이 결정적인 증거(smoking gun)로 떠오르고 있다. 트럼프가 원조 공여를 조건으로 바이든 부자가 관련된 부패 혐의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는 게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필두로 민주당이 내세우는 탄핵 사유다. 하지만 결말이 뻔한 드라마는 흥미를 주지 못한다. 트럼프 탄핵 논의가 어떤 극적인 장면들을 연출하더라도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이 지난 21일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열린 민주당 행사에서 어린 지지자와 다정스레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디모인/AP연합뉴스

 

탄핵안이 하원을 통과한들 상원의원 3분의 2의 찬성이라는 턱을 넘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하원은 235석 대 198석(무소속 1, 공석 1석)으로 민주당이 우세하지만 상원은 53석 대 45석(무소속 2석)으로 공화당이 앞선다.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끌어내려면 공화당 의원 20명 정도가 탄핵에 찬성해야 한다. 초현실적인 시나리오다. 봇물처럼 쏟아지는 탄핵 관련 기사들이 많은 경우 “○○할 수도 있다”는 맥없는 예상으로 끝나는 이유다.

 

대통령 탄핵은 미국 의회가 행정부를 상대로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을 할 수 있는 고유권한이다. 미국 헌법 2조는 탄핵 사유로 ‘반역과 뇌물수수 또는 중죄와 비행(misdemeanor)’ 등 4가지를 들고 있다. 이 중 ‘비행’은 해석 여지가 가장 넓은 항목이다. 의회는 굳이 대통령의 특정 행동에 씌운 혐의를 입증할 필요가 없다. ‘비행’으로 묶어 표결하면 그만이다. 민주당으로선 상원에서 부결될지언정 하원 표결 과정에서 대외원조를 미끼로 내년 대선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높은 바이든에게 타격을 입히려 했다는 트럼프의 흉계를 최대한 홍보할 수 있는 기회다. 문제는 탄핵이 양날의 칼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미국 여론은 대체로 탄핵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로이터·입소스의 24일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에 대한 탄핵 찬성 응답은 37%에 불과했다.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얻었던 지지(48.2%)에조차 미치지 못한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특검 수사가 시작된 1994년부터 5년 가까이 탄핵 절차가 진행됐는데도 지지율이 65~73%에 달했다. 여론의 대다수가 트럼프 탄핵을 지지하지 않는 한, 트럼프 탄핵은 정치적 소란으로 끝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민주당 대선 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지난 21일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열린 ‘당원 돼지고기 프라이’ 행사 도중 웃고 있다.                 디모인 로이터연합뉴스

 

 

1995년 당시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공화당)은 ‘공화주의 혁명’으로 하원을 장악한 기세로 빌 클린턴 대통령 탄핵을 집요하게 밀어붙였지만 부메랑을 맞았다. 화이트워터 부동산 개발 의혹에서 시작해 백악관 직원 무단해고, 연방수사국(FBI) 수사파일 부당 사용, 파울라 존스 스캔들 및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까지 온갖 죄목을 들이댔지만 여론이 클린턴 편이었기 때문이다. 깅그리치는 1998년 하원에서 탄핵안을 가결했지만,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둔 그해 중간선거 뒤 하원의장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깅그리치는 24일 뉴욕타임스에 펠로시 의장이 정확하게 1998년 자신이 걸었던 행로를 되밟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엘리자베스 워런 미국 상원의원이 지난 21일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열린 ‘민주당원 돼지고기 프라이’행사에서 뛰어나오며 등장하고 있다. 워런 의원은 최근 언론 일각에서 70세인 연령을 문제삼자 조깅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소개한 바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후보경선에 뛰어든 워런의 인기는 올해들어 꾸준하게 오르고 있다.  디모인/AP연합뉴스

 

또 다른 위험은 유력한 대선 후보 바이든이 입게 될 외상이다. 바이든 부자의 우크라이나 의혹이 들춰질수록 대권주자로서 그의 자질과 덕목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지난 4월 ABC방송 인터뷰 도중 대선운동의 슬로건이 있느냐는 질문에 ‘미국을 다시 도덕적으로!(Make America Moral Again!)’라고 답했다. 트럼프의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패러디한 말이었다. 바이든은 이어 자신이 대선 출사표를 던진 가장 큰 목적은 ‘미국 영혼의 복원’이라면서 트럼프가 떨어뜨린 국가적 존엄과 명예를 되찾겠다고 다짐했다. 미국 척추인 노동자 계급과 중산층을 복원하겠다고도 했다. 이런 그에게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정치적 자산으로 꼽은 ‘도덕’의 무덤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1991년 클레어런스 토머스 대법관 지명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애니타 힐 변호사의 주장을 묵살했고, 여러 여성들과 불필요하게 신체 접촉을 했다는 비난과는 성격이 다른 문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에서 포퓰리즘이 창궐하는 가장 큰 이유의 한 가지는 바로 기성제도(establishment)의 엘리트 정치에 대한 반감이다. ‘워싱턴 밖’의 천박한 장사꾼 트럼프가 ‘워싱턴 안’의 똑똑하고 잘난 엘리트들을 제치고 백악관에 입성했던 비결이다. 민주당이건 공화당이건 엘리트 정치인들은 기득권을 대물림할 뿐 보통사람들의 분노에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자 가정에서 자랐지만 6선의 상원의원에 부통령 출신인 바이든은 엘리트 계층의 대표주자이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왼쪽)이 지난 22일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GM 노동자 파업 현장을 방문해 지지자와 사진을 찍고 있다.                        햄트램크 로이터연합뉴스

 

 

탄핵 절차 돌입이 펠로시의 승부수라면, 젤렌스키와의 통화 녹취록 공개는 트럼프의 승부수다. 트럼프 탄핵이 민주당의 자충수가 될 것이라는 깅그리치의 저주 섞인 전망을 무시하더라도 트럼프가 녹취록을 공개한 셈법은 따져볼 필요가 있다. 25일 공개된 녹취록에 트럼프가 바이든 관련 부패사건 수사를 권유하는 대목은 분명히 적시됐지만, 미국의 원조를 그 대가로 한다는 부분은 명확하지 않다. 여론의 관심이 미지근한 상태에서 진실을 둘러싼 민주당과 공화당의 논란이 오갈수록 바이든의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부각될 수밖에 없다.

 

미 언론, 민주 대선 후보 워런에
“이번 사태 최고 수혜자 될 것”
각종 여론조사 6위 그쳤던 워런
최근 일부 조사선 바이든 제쳐

 

월스트리트저널(WSJ) 논설위원인 홀맨 젠킨스는 바로 이 점을 짚었다. 젠킨스의 24일자 칼럼 ‘우크라이나는 엘리자베스 워런에게 간다’는 제목부터 민주당 워런 상원의원(70)이 이번 사태의 최고 수혜자가 될 것임을 말하고 있다. 젠킨스의 지적대로 바이든이 부통령 재직 당시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의 교체를 요구한 것은 문제가 안된다. 우크라이나 가스회사가 바이든의 아들을 이사로 선임한 것 역시 탓할 수 없다. 유력 정치인 자식들이 부모의 후광을 입어 부유한 삶으로 가는 지름길을 택하는 게 미국 정치풍토에서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의 자식들은 꿈도 꾸지 못할 ‘내부자 거래’인 것은 분명하다.

 

가족이 각종 이권사업에 깊숙이 개입한 것은 트럼프가 훨씬 더하다. 하지만 수없이 드러난 트럼프의 비행은 당연시되는 반면에 도덕을 표방한 바이든의 비행은 지탄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트럼프 시대의 모순이다. 더구나 ‘미국의 영혼’을 복원하겠다는 도덕의 수호자, 바이든이 아니던가. 젠킨스는 “유권자들은 우크라이나(스캔들)에 대해 자세히 알려 하지 않겠지만, 선출된 권력자의 가족이 미국의 우크라이나 정책에서 금전적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알아챌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27일 '히스패닉 유산의 달'을 맞아 백악관에서 개최한 리셉션에서 한 참석자와 셀피 사진을 찍고 있다.        워싱턴/EPA연합뉴스 

 

엘리트 계층의 내부자 거래에 대한 보통사람들의 불만은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캠페인의 공략 대상이었고, 2020년 선거에서 바로 워런이 공략하고 있는 대상이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트럼프를 넘어 바이든을 공격하고, 다시 바이든을 넘어 워런에게 기회가 된다는 해석이다. 워런의 인디언 혈통을 문제 삼아 ‘포카혼타스’라고 조롱하며 만만한 상대로 여겨온 트럼프다. 트럼프가 여기까지 수를 읽고 녹취록을 공개했다면 동물적인 본능으로 자신의 살길을 모색하는 동시에 상대의 무덤을 준비하는 무서운 현실정치인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2월 각종 여론조사에서 바이든(33%)은 물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11.8%)을 비롯한 다른 후보들에게 뒤져 민주당 후보들 중 6위(4.3%)에 머물렀던 워런은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3일부터 24일까지 실시된 8개 여론조사를 평균한 리얼클리어폴리틱스 집계에서 21.4%의 지지율로 바이든(29.0%)을 뒤쫓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유고브, 퀴니피액 조사에선 각각 1, 2%포인트 차로 바이든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샌더스 의원의 ‘민주 사회주의’는 워런의 ‘책임지는 자본주의(Accountable Capitalism)’에 밀린 지 오래다. 선거는 바람이자 열기다. 워런은 16~23일 WSJ·ABC방송 여론조사 결과 유권자들의 후보에 대한 열성도에서 35%로 샌더스(25%)와 바이든(23%)을 멀리 제쳤다. 하지만 같은 조사에서 유권자들에게 편안한(comfortable) 후보 항목에선 35%로 바이든(41%), 샌더스(37%)에 다소 뒤졌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워런의 특징으로 '맥주 한잔을 함께 마시기는 다소 불편하지만, 셀피 사진을 함께 찍고 싶은 정치인'이라고 표현했다. 트럼프와 워런 중 과연 누가 민심의 향방을 정확히 포착할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1월부터 미국 대선에서 러시아와의 연루 혐의를 들어 온라인에서 트럼프 탄핵 여론을 모아온 '지금 트럼프를 탄핵하자(impeachdonaldtrumpnow.org)' 홈페이지는 미국 동부시간 9월30일 오전 4시28분 현재 146만 4763명이 서명했음을 게시해놓고 있다. 민주당 장악 의회와 트럼프에 반대해온 미국 주류 언론매체들이 탄핵을 쟁점으로 삼고 있는 것과 달리 민심은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음을 웅변한다.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난 17일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된 증조부 임천택의 묘소를 찾은 증손자들. 왼쪽부터 카를라, 가브리엘라, 펜한. 카를라는 교육 소감문에 “한국에 처음 온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쿠바에 돌아가서도 할아버지가 가르쳐주신 대로 전통과 자부심을 지키고 싶습니다”라고 적었다.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뉴스도, 역사도 결국은 이야기이다. 한번 풀어낸 뒤 흩어진다. 하지만 사라지는 게 아니다. 가슴 속 어딘가 쟁여 있다가 불쑥 튀어나온다. 사람에 대한 기억 역시 세월이 지나면 흩어진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18년 전, 쿠바에서 처음 만났던 헤로니모(Jeronimo) 임 김 선생(1926년 생·2006년 작고)에 대한 기억이 그렇다. 오감 중에서도 냄새가 특히 기억 복원에 좋다고 하던가.

“시가를 피우려면 3가지가 있어야 해. 우선 안락한 소파가 있어야 하고, 전축에는 이탈리아 오페라를 걸어놓아야지. 또 한가지, 좋은 친구가 함께 있어야 비로소 준비가 되는 거야.” 2001년 말 아바나 외곽 귀테라스의 자택에 초대받아 한국식 저녁 식사를 하고 난 뒤였다. 거실로 자리를 옮겨 선생이 건넨 게 피델 카스트로가 생전에 즐겨 물었던 코히바(Cohiba)였다. 다탁 위에는 럼주와 에스프레소를 절반씩 섞은 음료가 놓여 있었다. 멀리 조국에서 온 기자를 앉혀 놓고 선생이 꺼내놓은 것은 ‘아버지’였다.

광복절 이틀 뒤인 지난 17일 공주대 옥룡캠퍼스에서 두달째 재외동포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던 선생의 손녀들을 만났다. 가브리엘라(23)와 카를라(18). 그들이 선물로 가져온 것이 코히바였다. 쿠바 한인들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아온 재미교포 조셉 전(전후석)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를 찾아서>의 일부가 지난 광복절에 KBS 전파를 탔다. 코히바와 선생의 기억이 한목에 떠올랐다. ‘아베의 도발’ 탓에 어수선하게 보낸 광복절이 차분하게 정리되는 듯했다.

'아바나의 택시운전사'  헤로니모 선생이 2001년 말 아바나 시내에서 손자 넬슨과 함께 포즈를 취해주었다. 선생은 은퇴 뒤 자신의 라다 승용차로 개인(파르티쿨라르)택시 영업을 하셨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선생은 책장 자물통을 열어 10여개의 훈장들을 주섬주섬 꺼냈다. 쿠바 혁명 주역이었던 그는 쿠바 정부의 최고 훈장만 두 번 받았다. 선생은 그러나 자신이 받은 훈장들을 옆으로 밀어냈다. 훈장 더미에서 찾아 보여준 것은 아버지(임천택·1985년 작고)의 훈장이었다. 1997년 대한민국 정부가 추서한 건국훈장 애국장이었다.

마탄사스의 한 야산에서 처음 본 에네켄(Henequen·용설란)은 얼핏 큰 화초 같아 보였다. 하지만 쿠바 한인들에게 에네켄은 눈물이었고, 땀이었으며, 밥이었다. 선생은 13세 때부터 부친을 도와 에네켄 농장에서 일했다. “생각도 하기 싫은 지옥이었다. 매일 새벽 3, 4시에 일어나 아침식사 준비를 하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었다. 키 낮은 유년생 에네켄 가지를 자르려면 온종일 허리를 굽히고 일해야 했다. 에네켄은 돌밭에도 뿌리를 내린다. 억센 줄기를 다듬으려면 푹푹 찌는 열대의 날씨에도 두꺼운 옷을 입어야 했다. 그럼에도 날카로운 가시는 살을 파고들었다.” 쿠바의 최하층민들도 꺼렸던 에네켄 농장의 노동. 한인들은 그 속에서도 조국 독립을 열망했다.

끼니 때마다 식구 수대로 한 숟가락의 성미(誠米)를 거뒀다. 천도교 방식이었다. 목돈이 되면 아바나의 중국은행 또는 샌프란시스코 국민회를 통해 상하이와 충칭의 임시정부에 보냈다. 아버지는 모금운동을 주도했던 쿠바 이민 1세대의 한명이었다. 김구 선생이 백범일지에 기록을 남긴 덕에 뒤늦게나마 한국 정부의 훈장을 받았다. 아버지의 훈장은 과연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2001년 말 쿠바 아바나 인근의 자택에서 아버지 임천택의 훈장을 꺼내 보이고 있는 헤로니모 선생.          경향신문 자료사진

아버지는 3세 때 어머니 손을 잡고 멕시코로 옮겨왔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제물포에서 배에 오른 1031명 중 한 명이었다. 1905년부터 유카탄반도의 에네켄 농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4년 계약기간이 끝날 무렵 조국은 일제 치하가 됐다. 멕시코에 눌러앉았다. 세계 1차대전이 끝나자 국제 설탕값이 급등했다. 사탕수수밭에서 더 나은 생활을 꿈꾼 한인 288명이 쿠바 동북단 마나티항에 도착한 것은 1921년 3월이었다. 이번에도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은 깨졌다. 설탕값이 폭락하면서 일자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마나티에는 모기가 들끓고 마실 물도 충분치 않았다. 한인들은 결국 에네켄 농장으로 돌아갔다. 아바나와 인근 마탄사스, 중서부 카르데나스 등지로 흩어졌다. 쿠바인들은 눈이 찢어진 동양인들을 통칭해서 “치노(Chino·중국인)”라고 불렀다. 한인들은 그때마다 “코레아노(Coreano·한국인)”라고 정정케 했다. 마나티에 도착한 지 3달 만에 북미 국민회 쿠바 지방회를 설립했다. 1922년 마탄사스에 민성(民成)학교를, 이듬해 카르데나스에 진성(進成)학교를 세워 한글 교육에 나섰다. 김세원, 박창운, 호근덕, 이승준, 이세창 등 많은 분들이 한인사회 지도자로 활약했다.

 

아버지는 교사이자 농부였다. 그 역시 고된 노동의 한쪽에서 한인회 활동에 뛰어들었다. 태평양전쟁 당시인 1942년 쿠바의 보수 신문 델라 마리나가 “코레아노는 하포네(Japones·일본인)와 마찬가지”라고 왜곡보도했다. 한인들은 “우리는 하포네가 아니다”라고 외쳐야 했다. 그러나 한국은 아버지의 조국이었을 뿐 ‘청년 헤로니모’의 조국은 쿠바였다.

아바나 법대에 입학하면서 사회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에네켄 농장과 아바나 차이나타운에서 일하면서 공부를 하던 그는 ‘운동권 학생’이 됐다.

지난 8월17일 대전 국립묘지를 찾은 임천택 선생의 증손자들이 방명록에 소감을 남기고 있다.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헤로니모의 손녀 가브리엘라.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졸업을 1년 앞둔 1949년 학업을 접고 오르토독소(ortodoxos)당에 입당, 직업혁명가로 이후 10년을 지냈다. 법대 동기인 피델이 졸업 뒤 풀헨시오 바티스타 독재정권에 저항해 씨에라 네바다 지역에서 무장 게릴라 활동을 할 때 헤로니모는 점조직으로 운영되던 마탄사스의 지하조직에서 활동했다. 헤로니모는 “총은 갖고 있었지만 사용한 적은 없다. 대중 선전전에 주력했다”고 회고했다. 맏아들의 성공을 기대했던 아버지에겐 늘 죄송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무슨 일인가 벌이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셨겠지만, 1959년 혁명이 성공하기까지 아무 말씀도 드릴 수 없었다.

혁명 뒤 아바나 경찰청에서 복무한 뒤 공기업을 거쳐 1963년부터 산업부 에스페시알리스타(스페셜리스트)로 3년 일했다. 장 폴 사르트르가 ‘우리 시대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고 평했던 체 게바라가 장관이었다. 유엔총회 연설차 뉴욕으로 떠나는 게바라의 출장 가방에 담긴 양말들은 구멍이 나 있었다. 선생은 피델보다 게바라에 얽힌 이야기를 많이 했다. 식량농업부 구매국장(대외 직함 차관)을 끝으로 1988년 은퇴했다.

1967년 북한 정부 초청으로 조국을 처음 방문했다. 금강산은 ‘아찔한 아름다움’으로 새겨졌다. 아버지는 1985년 끝내 조국 땅을 밟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헤로니모는 아바나 귀테라스의 민선시장에 당선돼 1995년까지 3년 임기를 채운 뒤 공직생활을 정리했다. ‘아버지의 조국’은 그 끝에 찾아왔다.

쿠바 혁명정부는 소수민족 차별을 없앴지만, 동시에 민족색도 없앴다. 교민회가 사라진 것이다. 광복 50주년을 맞아 서울에서 열렸던 한민족제전에 초대받고 아버지의 조국과 다시 해후했다. 아버지의 공훈을 인정해준 것은 남쪽이었다. 그때서야 생전에 “한글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아버지 말씀을 안 들은 것이 후회됐다. 한인회도 다시 만들고 싶었다. 아버지가 남긴 32쪽의 ‘쿠바 이민사’는 미완성이었다. 마탄사스 종합대 교수였던 여동생 마르타 임(81)이 부군 라울 R. 루이스와 함께 12년 동안 현지조사와 자료정리를 거쳐 2000년 <쿠바의 한국인들(Coreanos en Cuba)>로 출간했다. 그해 선생과 함께 쿠바를 횡단했다. 왕복 1,500㎞를 달려 마나티의 ‘쿠바 한인 이주 80년 기념비’를 찾았다. 하지만 한인회는 북한과의 관계를 우려한 쿠바 정부의 반대로 만들지 못했다. 헤로니모 사후 ‘쿠바한인후손회’가 발족돼 활동하고 있다.

지금은 항구 기능을 잃어버린 폐항. 쿠바 동북단 마나티에 2001년 3월25일 쿠바 한인 이민 80주년을 맞아 세운 기념비. 두개의 기둥은 한지붕 아래 쿠바와 한국을 의미한다. 조국이 있는 서쪽을 향해 세웠다.  헤로니모 선생이 기념비 컨셉을 잡으셨다.  

 

2009년 아바나를 다시 찾았을 때 헤로니모는 이미 가고 없었다. 2006년 심장수술을 받던 중 갑자기 돌아가셨다. 건장한 체구에 타고난 건강을 잘 관리했던 분이다. 가족들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일종의 의료사고였다. 부인 크리스티나 장(91)은 쿠바 혁명의 주역답지 않게 너무도 소박한 묘지에 모셨다며 안타까워했다.

2001년 현지에서 처음 만난 헤로니모 선생은 당시 부친을 대전 국립묘지 독립유공자 묘역에 모시자는 한국 정부 제안을 놓고 고민하고 계셨다. 한국에 모시면 아무래도 자주 찾아뵙지 못할 것이라는 염려가 앞섰다. 그러나 자신의 뜻보다 부친의 유지를 앞세워 2004년 이장했다. 아버지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하셨던 땅이지 않나. 임천택은 헤로니모를 비롯해 모두 9명의 자녀를 남겼다. 자손들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대전으로 향한다. 재작년엔 헤로니모의 손자 넬슨 임 로살레스(32)가, 올해는 손녀들과 손자 펜한 엔 임(23)가 함께 성묘했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가브리엘라는 백신 개발 연구소에서 올가을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카를라(18)는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예술품 복원을 전공할 예정이다. 펜한은 인공지능(AI)에 관심이 많은 컴퓨터공학과 졸업반이다.

임천택 선생의 약력 및 가족. 장남이 헤로니모(임은조)이다. 

‘헤로니모’는 한 사람이 아니다. 임천택 부자 이야기는 좀 더 일찍 발굴됐을 뿐이다. 에네켄 이민 세대 중 훈장이 추서된 서훈자는 쿠바 26분, 멕시코 46분이다. 하지만 후손들에게 전달된 훈장은 쿠바 10분, 멕시코 3분에 불과하다.

디아스포라 정치학을 연구하고 있는 전남대 김재기 교수는 “당사자들은 오래전 돌아가시고 2세들도 많이 안 계시다. 하루빨리 후손을 찾아내 귀중한 서훈을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은 누군가에게 지독한 그리움의 원천이다. 마음의 탯줄을 매어놓은 ‘말뚝’이기도 하다. 쿠바에는 이제 100% 한국인(puro)이 줄어들고 있다. 50%, 25%, 12.5% 한국인이 더 많다. 외모만 보면 영락없는 쿠바인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 조국의 말뚝에 매인 채 코스모폴리탄으로 녹아든 한국인들이다. 매년 8월15일에서 보름은 광복절에서 국치일(29일)까지 되짚어 기억하는 여정이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다. 나라가 나라 구실을 못할 때 분재(盆栽)된 한인 후손들은 많다. 조국은 이들에게 충분히 보훈하고 있는가.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