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오늘'에 해당되는 글 90건

  1. 2021.10.22 남남, 남북 사이 '중간'은 불가능한 영토일까
  2. 2021.09.10 추석 즈음, 한인 디아스포라를 생각한다
  3. 2021.08.13 남북한과 미국의 '대중(對中) 협력'이 지극히 미국적 발상인 까닭
  4. 2021.06.01 미사일 주권 되찾은 한국, '호랑이 등'에 올라타나 (5)
  5. 2021.03.21 영화 <미나리>와 애틀랜타 참사, 재미동포들의 신산한 이민생활 (1)
  6. 2021.02.19 '2024 강원청소년올림픽', 우리는 왜 외면하는가
  7. 2020.12.28 '랜토스 인권 청문회'보다 중요한 게 있다 (1)
  8. 2020.12.11 바이든의 한반도정책? 먼저 확인해야할 게 있다
  9. 2020.03.13 북한의 코로나19 위기가 ‘기회의 창’이라는 단견들 (1)
  10. 2020.02.16 '평화'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각
  11. 2020.02.12 "모두가 평화를 말하지만, 아무도 행동하지 않는다" 짐 로저스 (1)
  12. 2020.01.20 고함과 비명 섞인 '북'의 메시지, '남'은 충분히 담대한가
  13. 2019.12.20 'Again 2017'로 치닫는 한반도 정세, 희망의 근거는 무엇일까 (1)
  14. 2019.11.04 미국의 동맹정치, 그 오랜 흑역사 (1)
  15. 2019.10.18 김일성경기장 텅빈 관중석...남북관계의 '새로운 시작'인가
  16. 2019.09.07 미사일이 위협하는 한반도 평화
  17. 2019.08.10 아베의 도발, ‘민족공조’는 가능할까
  18. 2019.07.22 '아베의 일격', 약이 될 수도 있다
  19. 2019.06.28 '트럼프의 판문점'은 역대 미국 대통령들과 무엇이 다를까
  20. 2019.06.14 북·러 접경 하산을 가다 2, 러시아는 왜 집요하게 한반도를 열망하나.
  21. 2019.06.13 북-러 접경 하산을 가다1. 한국 기다리는 러시아, 북한 기다리는 한국
  22. 2019.05.31 대북 식량지원? 배고픈 아이들 놓고 정치하는 어른들 (3)
  23. 2019.04.26 베이징, 블라디보스토크는 정거장일 뿐, '평화'의 종착역은 워싱턴이다
  24. 2019.03.15 볼턴이 하노이에서 건넨 노란봉투는 과연 항복문서일까 (5)
  25. 2019.03.01 베트남, 김일성의 길 김정은의 길 (4)
  26. 2019.02.27 북한의 미래, 베트남에서 온 편지
  27. 2019.02.15 북한은 '제2의 베트남'이 될 수 있을까
  28. 2019.01.11 4차 북중정상회담이 '세계사적 사건'? 기로에 선 북한에 중국은 무엇일까
  29. 2018.10.19 트럼프와-김정은의 '이상한 로맨스', 사랑한다면서 왜 '곁'을 내주지 않나
  30. 2018.10.05 아베 신조에게 북한은 과연 무엇일까 (1)

한반도인으로 읽은 세계, 세계인으로 읽은 한반도

“앗, 선생님 어디선가 뵌 얼굴입니다.” 
21세기 초, 군사분계선을 넘어 처음 북한 땅을 밟았다. 속초에서 배편으로 장전항에 도착했다. 꿈에도 그리던 금강산이었다. 현실은 감회에 젖을 여유를 주지 않았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북측 남자 안내원이 기습적으로 말을 걸어왔다. 5시간 정도 소요되는 만물상 코스의 초입이었다. 그는 그러면서 남측 방문객들이 방북 기간 내내 목에 걸어야 했던 신분증을 멋대로 들춰 인적사항을 훑었다. 사진과 함께 생년월일, 직업, 주소 등이 적혀 있었다. 한국기자협회 대표단의 한 명으로 조선기자동맹 대표단을 만나기 위해 방북한 길이었다.

평양에서 열린 제24회 국제유소년축구대회 참가를 위해 방북한 남측 일행의 버스들이 2018년 8월 10일 개성~평양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인적사항을 확인한 그는 대뜸 “기자는 시대의 조산원입네다”라며 추켜올렸다. 그러더니 “하지만 잘못하면 시대의 쓰레기장이 됩네다”라고 덧붙였다. 제멋대로 대구였지만,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말이다. 문제는 이어진 그의 장광설이었다. 그즈음 경기도 양주에서 훈련 중이던 미군 장갑차에 여중생 효순·미선양이 압살당한 사건을 끄집어 냈다. “제 나라에서 그런 일을 당했으면서 왜 (미군에) 꼼짝 못합네까” “남측은 지나치게 외세의존적이다 말입니다”라며 몰아세웠다. 화해·협력을 하자면서 기어코 쓰린 상처를 헤집고야 마는 심사가 참으로 고약했다. 당시 진행 중이던 경수로 건설의 정확한 일정까지 언급하는 걸 듣고서야 그가 단단히 학습받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전 방북교육에서 “북측 사람들과 정치적 내용의 대화를 절대 하지 말라”는 주의를 거듭 받았기에 맞대응이 어려웠다. 순간, 그가 기껏해야 외운 내용을 뇌까리는 거라면 ‘학습 범위’를 넘어서자는 꾀가 발동했다. 

베트남과 쿠바, 중국, 구 유고슬라비아 등 북측 입장에서의 ‘사회주의 형제국’ 방문 경험을 풀어놓으며, 슬그머니 대화의 방향을 틀었다. 올가미에 포획된 사냥감을 노려보듯 초롱초롱하던 그의 눈빛이 먹먹해졌다. ‘범위 밖’의 화제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교육받았을 리 만무했을 터. 그 끝에 “서로 교류하자면서 조선기자동맹은 왜 오지 않았습니까”라며 따지자 마침내 꼬리를 내렸다. “안내원이나 하고 있는 제가 어떻게 알겠습네까….” 

평양 중구역의 한 소학교에서 지난 10월 13일 어린 학생들이 손을 씻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조치가 강화되면서 위생 교육이 더 철저하게 시행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후 산행을 하면서 말을 걸어와도 건성으로 대꾸하며, 시선은 가급적 풍경에 꽂았다. 북한의 농축우라늄 의혹 탓에 북핵 위기가 재발하기 몇 달 전이었다. 방북 횟수가 늘어가며, 북측 보장성원들이 ‘학습받은 대로’ 말을 걸어오면, 적당히 응수하며 능청을 떨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남과 북이 만나는 접점에는 ‘지뢰’가 묻혀 있는 경우가 많다.

냉전 시기 남과 북은 옥류관 냉면을 두고도 신경전을 벌였다. 북측 매체는 남측 방문자가 냉면 가닥을 한입 가득 물고 있는 사진을 우정 보도했고, 남측 방문자는 맛있게 먹고도 서울에 돌아와선 “맛있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를 꺼렸던 시절이다. 6·15공동선언 5주년을 맞아 방북했을 때 옥류관 냉면이 ‘동티’를 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깜짝 회동이 이뤄지고 민간과 당국의 모든 행사가 무난하게 치러진 끝이었다. 옥류관 냉면 오찬을 앞두고 다탁에 앉았던 남북 고위 관계자들은 그즈음 문을 연 옥류관 금강산 분점을 화제로 ‘냉면 냉전’의 추억을 소환하며, 정담을 나눴다. 기사감이었다!

형형한 눈빛이 인상적이었던 당시 79세의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림동옥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 남측의 정 장관, 임동원 세종재단 이사장, 박재규 경남대 총장 등이 모인 자리였다.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공동행사준비위’ 백낙청 상임대표도 자리했다. 허물없는 대화 자리에 ‘불청객’이 있음을 발견한 북측 과장급은 “어른들 말씀하신 걸 쓰면 안 된다”는 해괴한 주의를 주었다. 내색은 하지 않았으되, 무시했다. 6·15공동선언에서도 서로 다름을 인정키로 하지 않았나. 굳이 이의를 제기할 사안이 아니라고 봤다. 그 대신 ‘옥류관 냉면 맛으로 본 남북관계사’라는 제목의 풀기사를 송고했다. 

지난 10월 13일 평양 중구역의 한 소학교에서 한 교사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학생들의 체온을 재고 있다. AP연합뉴스

 

다음날, 서울로 출발하기 앞서 백화원 초대소에서 남북 주요 인사들 간 송별 다과모임이 있었다. 예의 과장급은 행사 도입부를 취재하던 기자 옆으로 다가오더니 신묘한 기술을 부렸다. “이제 기자 선생들은 나가야 할 시간”이라고 점잖게 퇴장을 요청하는가 싶더니 몸을 바싹 붙여 걸으며 팔 어딘가를 압박했다. 아픔이 전해질 정도였지만, 다탁에 앉은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은밀했다. 그러더니 “아니, 쓰지 말라고 했는데…”라고 질책하며, 대뜸 “당신 신문은 이제 북측과 어떤 일도 함께 못할 줄 알라”고 쐐기를 박았다. 중인환시리의 공식 행사장이었기에 대놓고 항의도 못하고, 쫓기듯 버스에 오르자 뒤늦게 분통이 터졌다. 

남측 기자들과 한담을 나누던 북측 보장성원들이 궁금해했다. 전후 사정을 들은 뒤 그중 나이 지긋한 분이 입을 열었다. 온기가 묻어났다. “사람은 여러 가지가 있지 않나. 고만, 화 풀라.” 그해는 해방 60돌이기도 했다.

횟수로 11번 방북 취재를 했다. 서독의 누군가가 말한 ‘접촉을 통한 변화’는 만능열쇠가 아닐지언정, 틀린 말이 아니었다. 화성과 목성 간에도 상호 방문이 잦아지면서 작은 공감대가 형성됐다. 기회만 있으면 남측의 아픈 곳을 찔러대던 북측 보장성원들은 어느 순간 “지난번 남측이 지원한 비료 덕분에 올해 농사가 잘될 것 같다”면서 사의를 표해왔다. 한 해 각각 두 차례 장관급 회담과 경제협력추진위 회의가 열리고, 이산가족 상봉행사 및 대북 쌀·비료 지원이 이뤄지던 시절이다. 북측은 남측 여론이 중요함을 깨달은 게 분명했다. 엘리트 여성 보장성원들도 많아졌다. 차관급(부상급) 회담이 열리던 개성 자남산 여관이었던가. 

북한 개풍군의 군초소에서 지난 10월 5일 한 인민군 병사가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군사분계선을 따라 초목을 제거한 나지가 보인다. 경기 김포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에서 바라본 장면이다. AP연합뉴스

 

“그래도 뭐 들은 게 있으니까 그런 기사를 쓰지 않았을까요….” 북측 보장성원들은 남측 언론보도의 배경에 대해 세련된 탐문을 해왔다. ‘금강산의 교훈’을 떠올렸다. 화제 전환이 필요한 지점이었다. “진달래와 철쭉의 차이를 아시는가.” 생뚱맞은 질문을 던졌다. 의아해하는 그들에게 “진달래는 마른 가지에서 꽃부터 피우지만, 철쭉은 한해살이의 자양이 될 잎을 모두 만들어놓고 차분하게 꽃을 피운다”고 설명하곤 너스레를 풀었다. 

대책없이 꽃부터 피우는 진달래의 삶은 녹록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만, 안정적인 상황에서 꽃을 피우는 철쭉의 신세도 처량하다. 앙상한 가지에서 요사스럽게 피워내는 진달래의 ‘화양연화’를 끝내 누려보지 못하고 질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 대목쯤이었다. 만혼(晩婚)의 처지를 살짝 보태 살림과 사랑, 인생을 사는 두 가지 순서에 대해 말을 잇다가 흠칫, 놀라고 말았다. 서너 명의 북측 동료들이 당장이라도 눈물을 떨굴 듯이 울먹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일성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이도 있었다. 치밀한 논리와 정교한 이론, 수없는 토론에 능수였을 그들이 사소한 이야기에 이리 깊이 몰입하다니…. 서울에서 결코 만나기 어려운 순수, 그 자체였다. 이념과 정치를 떠나 깊은 교감이 가능함을 체득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2003년 9월 말 북한 삼지연 베개봉 호텔에서 열린 남북 학술대회 참가자들이 고무보트에 올라 백두산 천지의 북한 수역을 돌아보고 있다. 김진호 국제전문기

 

분단국 저널리스트는 세계 어디를 가도 한반도를 겹쳐 본다. 분단과 전쟁, 70여년 반목이 남과 북만의 역사가 아니기에 민족과 국제, 한반도와 세계가 중첩되는 그 어느 지점에 해결의 단서가 있을 것 아닌가. 방북이 어려우면 주변을 맴돌았다. 단둥과 장백현 등 중국 동북지방과 러시아 하산, 블라디보스토크를 대체 왜 갔겠는가. 신의주와 저 멀리 룡천, 압록강 건너 너무 가까운 혜산, 두만강 유역을 건너다보기 위해서였다. 멀리 워싱턴에 가서도 ‘한반도의 말뚝’에 매여 산다.

음악이 협화음을 지향하며 불협화음을 경계한다면, 한반도와 세계를 습자지에 겹쳐놓듯 한목에 읽는 것은 숱한 불협화음 속에서 협화음의 단서를 포착하는 작업이다. 안경에 비유하면 다초점 렌즈가 필요하다. 자칫 가까운 것을 못 보거나, 먼 것을 놓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난독증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다초점 렌즈에 익숙해지는 것은 늘 어려웠다.

읽어야 할 텍스트는 널려 있었고, 현실은 어려운 원소기호까지 익히게 했다. 미국의 4년 주기 국방정책 검토보고서(QDR), 연례 국가위협평가보고서, 북한 외무성의 핵비망록, 조선노동당 당대회 발표문 및 남과 북, 미국 지도자의 수많은 연설문을 읽었다. 중국과 러시아, 일본 정부의 영문 홈페이지도 뒤적여야 할 대상이다. 우라늄(U)235의 함량으로 구분하는 고농축 우라늄(HEU)과 저농축 우라늄(LEU),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 생소한 분야를 피상적으로나마 알아야 했다. 전쟁이건, 평화건 한반도 현안을 논하려면 그 모든 것의 디테일이 포함돼야 하기 때문이다. 한반도 안팎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소동과 사건에 꽤 굳은살이 박였다고 생각했지만, ‘첫경험’이 되풀이됐다.

 

2017년의 전쟁 위기엔 여느 독자와 마찬가지로, 어쩌면 더 걱정했다. 극적으로 국면이 전환되자 누구보다 환호했다. 한바탕 극과 극을 오간 한반도 상황이 원래 자리로 돌아오자 어느 때보다 독한 피로가 몰려왔다.

한반도 남쪽에는 당위와 담론이 천지다. 해방공간에서 벌어진 좌우 격돌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통일과 민족’ ‘인권과 동맹’이라는 당위가 각각 사자후를 토하다가도 ‘어떻게’라는 질문을 만나면, 슬그머니 말을 흐린다. 예나 지금이나 ‘중간’이 없다. 당위와 당위가 부딪쳐 서로 얼굴을 붉히고 언성을 높이다가 각각 섬처럼 동떨어진 채 헤어지는 게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곤 또 정권을 바꾸고, 세월을 보낸다. 그 번다한 난장(亂場)에서 밥을 벌고, 지위를 얻거나, 사적 이해를 도모하는 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표방하는 게 진보인지, 보수인지는 덜 중요하다. 당위와 담론을 팔아 눈앞의 이익을 노리는 이들을 싸잡아 ‘통일 떨거지’라고 칭하게 됐다. 대놓고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회고담이 길어졌다. 이 글로 ‘세계읽기 시즌1’을 마친다. 지면을 빌려 혹여 기억하고 있을 북녘 동료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읽기’는 계속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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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20년 전 가을날 저녁이었다. 멀리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찾아온 기자를 맞이한 김씨 집안 사람들의 얼굴에선 도무지 ‘한국’을 찾아볼 수 없었다. 농가의 조명이 밝지 않아서인지 살갑게 손 내미는 얼굴들이 더 흐릿하게 보였다. 백인의 얼굴도 있었고, 가무잡잡한 피부도 보였다. 한국인은커녕 황인종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비포장 외길과 녹슨 철로로 간신히 세상과 연결된 쿠바 동북단의 마나티항. 아바나에서 700㎞를 달려가 한인 후손 에스민다의 가족을 만난 자리였다. 그들의 입에서 엄마의 음식 이름이 나온 것은 놀라운 반전이었다. “김치, 지지미, 콩장, 부침개….” 그 순간, 조금 더 넓은 개념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단일민족’ 중년남의 뇌리에 어렴풋하게 찾아들었다.

못난 왕과 탐욕스러운 고관대작들이 그야말로 쥐새끼처럼 나라를 갉아먹던 구한말, 고향을 등지고 이역만리로 떠났던 한인들은 많다.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 간도가 첫 귀착점이었고, 한 번 떠난 길은 제2, 제3의 고달픈 여정으로 이어졌다. 연해주로 갔다가 중앙아시아로 옮겨졌고, 사할린으로, 하와이로 흩어졌다. 1033명이 멕시코로, 거기서 288명이 다시 쿠바로 흘러들어갔다. 경향신문이 광복절 특집으로 그들을 찾아 나섰고, ‘역사 속의 마지막 한인’ 특집 중 쿠바 부분을 맡은 것은 축복이었다. 지금까지 온·오프라인에서 그들과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쿠바 한인 후손 에스민다 아마도 김 가족의 2001년 모습이다. 에스민다와 딸 렉시스, 아들 젠드리가 마나티의 집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에스민다는 7순을 바라보는 나이(68세)가 됐고, 렉시스와 젠드리도 이제 중년이다. 당시 국립 예술학교에 재학중이던 렉시스는 졸업 뒤 뮤지컬 가수로 성공해 국내외 공연을 다녔다.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200여명의 한인들이 그다지 넓지 않은 섬나라에서 겪은 100년 동안의 오디세이를 되짚어 보면, 한국과 쿠바 현대사의 굵직한 굴곡이 빠짐없이 들어 있다. 750만명에 달하는 재외동포들의 역사를 톺아볼 수 있는 표본집단이자 창(窓)이다. 다른 지역과 달리 한날한시에 낯선 땅에 도착한 극소수의 한인들이 살아온 궤적을 통해 그 시절 떠난 재외동포들이 겪었을 디아스포라의 삶을 깊숙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100년이 된 쿠바 한인 이민사는 바로 그 점에서 각별하다.

멕시코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소설 <검은 꽃>으로 엮어낸 작가는 김영하다. 작가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2004년 알라딘 인터뷰에 나온 그의 말을 빌리자면, 검은 꽃의 상징성이 예사롭지 않다. 처음 원고를 집필할 때부터 검은 꽃의 이미지가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는 ‘세상의 모든 꽃을 섞어야 나오는 검은 꽃’을 떠올리며, 에네켄(어저귀) 이민자들이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생각에 검은 꽃을 제목으로 했다고 한다. ‘정체성’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꽂혔다. 많은 한국인의 집착과 착시, 편견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그걸 해체하려 한다.

 

쿠바 한인 100년의 오딧세이, 그러나 그들은 '검은 꽃'이 아니다

이민 초기 에네켄밭에서 일했던 멕시코와 쿠바 한인들의 역사 역시 구한말 다른 한인 이주자들이 걸어온 길과 다르지 않다. 다만 1905년 제물포항에서 증기선 일포드호에 올랐던 사람들과 1921년 멕시코 유카탄에서 증기선 타마울리파스호에 오른 사람들의 역정은 다소 결이 다르다. 1회성 집단 이주였고, 한 번 간 뒤에 거의 돌아오지 못한 외방향이었다.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도 독한 노동을 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카탄의 에네켄밭에서처럼 채찍을 맞으며 가축처럼 일한 것은 아니었다. 지옥 같은 계약기간 4년이 끝나고, 다시 ‘더 나은 삶’을 찾아 낯선 섬을 찾아가는 일도 없었다. 쿠바 이민은 극소 단위의 이주였다. 남한에 정착한 많은 탈북민들이 처음부터 남한행을 생각하지 않았듯이, 그들 역시 멕시코와 쿠바에서 살려고 떠난 게 아니었다.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증조부의 나라’를 방문한 쿠바 한인 후손 청년들이 2017년 3월 어느 날 서울의 한 재래시장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가운데 앉은 이가 헤로니모 임 김의 손자 넬슨 임 로살레스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히스패닉 문화권에선 한국 못지않게 혈통은 중요한 것 같다. 사람이 무슨 가축인 양 백분율로 표현한다. 에스민다의 할아버지는 8세 때 부모를 따라 유카탄에 갔다가 20대 청년으로 쿠바로 넘어갔다. 이주자 중 한국인 여성이 적었기에 자연스레 현지인과 인연을 섞었고, 혼혈은 대물림됐다. 그 흔적이 부모의 성을 모두 적는 스페인식 이름에 담겨 있다. 이름, 부친의 성, 모친의 성 순으로 쓴다. 쿠바 한인의 또 다른 특성은 이름에 한국 ‘성(姓)’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에스민다의 풀네임이 ‘에스민다 아마도 김’인 것은 그의 외가가 김씨였음을 말해준다. 그들 식으로 굳이 따지자면 에스민다는 25%, 그의 딸 렉시스는 12.5% 한국인이다. 조국(祖國)은 말 그대로 ‘할아버지의 나라’일 뿐이다. 그들에게 한국은 무엇이고, 한국에 그들은 무엇일까. 대체 그들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디아스포라의 사유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김영하의 사고에는 정체성이 ‘사라지는 존재’라는 편견이 깔려 있다. 하지만 정체성은 장구 모양 모래시계와 비슷하다. 한쪽에서 사라진 분홍빛 모래는 소멸되는 게 아니다. 다른 쪽으로 옮겨갈 뿐이다. 한쪽에서 사라지고, 다른 쪽에서 채워지면서 변모한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죄다 옮겨갈 것이다. 그래도 흔적은 남는다. 어디서건 분홍빛 본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주민은 한 개가 아닌, 여러 개의 모래시계에 담겨 살아간다. 모든 색을 섞으면 검은색이 되는 건 물감의 세계에서나 상식이다.

디아스포라(dispora)는 그리스어 어원으로 ‘씨를 널리 뿌린다(dia speiro)’는 뜻이라고 한다. 지중해 연안 곳곳에 흩어져 살았던 고대 그리스인들과 애굽 땅에 쫓겨가 살았던 유대인들에게서 비롯된 말이다. 어디에 뿌려졌건, 씨의 본질은 소멸되지 않는다. 

2001년 10월 헤로니모 임 김이 아바나 시내에서 택시로 운영하던 자신의 라다 승용차에서 손자 넬슨과 함께 한 모습. 헤로니모는 운전을 하는 동안 노사연의 <만남>을 흥얼거렸다.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핏줄을 따지는 것은 한국이 좁은 국토에 갇혀 살 때 굳어진 사고다. 주요 7개국(G7)급 선진국이 됐다고 호들갑을 떠는 지금도 한국은 아기 수출에서 세계 정상급이다. 내친 아기들 중 극소수가 미국에서건 프랑스에서건 장관이 되거나 저명인사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가 핏줄을 확인한다. 언론은 본인이 평생 사용하지 않았을 ‘한국 이름’을 우정 확인하고, 적는다. 그 괄호 속의 이름이 본인에게 어떤 슬픔과 좌절, 배신의 흔적인지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

조셉 전 감독의 다큐영화 <헤로니모>로 널리 알려진 쿠바 한인 2세 헤로니모 임 김(2006년 작고)의 다른 이름은 임은조다. 쿠바 혁명에 뛰어들었던 헤로니모는 고희가 다 되어 아버지의 조국을 방문한 뒤 ‘임은조’로 거듭났다. 하지만 이후에도 헤로니모로 살았으며, 헤로니모로 묻혔다. 핏줄에 대한 강박심리가 정부 차원으로 가면, 엉뚱하게 경제적 의미로 환산된다. 재외동포들을 해외 경제영토 확장의 교두보 또는 역군으로 간주한다. 역시 핏줄에 갇힌 셈법이다.

쿠바 한인들은 에네켄밭의 불볕 지옥 속에서도 조국을 열망했다. 태평양전쟁 시기 전후해 빈사의 위기에 처한 중경 임시정부에 적지 않은 성금을 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다. 바라만 보아도 안타까운 조국, 그 조국의 광복을 염원했기 때문이다. 매끼 식구 수대로 한 숟가락의 성미(誠米)를 모아 달러를 만들었다. 반세기가 넘어 한국 사회에 찾아온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건 당연한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그들을 ‘애국자의 후손’으로만 보려는 민족 중심 사고 역시 편협하기는 마찬가지다. 증조부, 조부 때의 애국이다. 또다시 그들의 어깨에 버거운 ‘애국’을 얹지 말 일이다. 쿠바에 더 깊이 발 담그고 사는 그들의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동포로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가슴과 가슴을 맞댈 형제애의 지평이 넓어진다.

코로나 19의 확산 탓에 지난 8일 아바나의 레이디 코브레 성당에서 주민들이 마스크를 쓴 채 미사를 보고 있다. 레이디 코브레(Our Lady Cobre)는 쿠바의 수호성인이다.  AP연합뉴스

 

추석이 임박한 계절, 새삼 쿠바 한인을 소환한 것은 현지 사정이 어렵다는 소식이 계속 전해지기 때문이다. 화폐개혁이 부른 물가상승과 식량난, 코로나19가 겹쳤다. 도널드 트럼프가 복원해놓은 제재만 200여개다. 쿠바의 ‘인종 샐러드’에 담긴 한인 후손들의 삶도 어려울 터. 쿠바를 관할하는 서정인 주멕시코 대사에게 문의하니 “식량과 구호물자를 아바나 공항에 보내도 시내까지 싣고 갈 차량과 휘발유를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전한다. (이점, 평양 사정을 연상케 한다.)

김영하는 틀렸다. 꽃 색깔로 사람의 정체성을 말한다면, 그 색은 사람 수만큼 많을 것이다. 결코 고정되지 않는 색이며, 끝나지 않는 서사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배합의 빛깔로 저마다 발현된다. 쿠바 한인의 경우 한국과 멕시코, 쿠바가 섞였다. 떠날 때는 조선의 백성이었고, 카리브해의 무국적자였으며, 잠시 임시정부의 국민이었다가 마침내 쿠바 국민이 됐다. ‘수출된’ 아기들뿐이 아니다. 내쳐진 기민(棄民)들은 저마다 가슴속에 흉터처럼 조국을 부여안고 코스모폴리탄으로 녹아든 사람들이다. 조선족, 고려인, 자이니치, 코리안, 코레아노, 카레이스키 등으로 불리며 새로운 조국에 뿌리를 내리고 산다. 그럼에도 충분히 한국인이다. 김치를 먹고, 돌잡이를 하며, 아리랑의 선율에 어깨가 들썩이기에. 그리하여 에스민다는 외친다.

“모든 한인들이 형제자매로 더 가까워지길 바란다. 피가 1% 더 섞였건, 덜 섞였건 우리 모두에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영화 <헤로니모> 속 인터뷰) 

 

https://www.khan.co.kr/world/america/article/20210910162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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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한·미가 북한에 종전선언을 제안한다. 평화협정과는 달리 국제법적 구속력이 없는 선언일지언정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다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한·미가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해 북한으로 하여금 대중 입장을 재정립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경제지원은 신뢰 구축의 또 다른 수단인 동시에 북한 비핵화의 촉진제다. 미국은 북한의 인프라를 개발하기 위해 10년 무이자 국제펀드 조성을 가능케 하는 역할을 한다. 북한은 이를 통해 대중 경제의존을 낮출 수 있다. 남북 자유무역협정(FTA)은 이러한 인프라 건설재원 마련의 보완재가 될 수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 투자 흐름을 주도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은 한국이 맡는다.

이 단계에서 한·미 동맹과 북한은 군사적 긴장을 낮춰야 한다. 군사관계의 정상화다. 서해 충돌 및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 비무장지대(DMZ)의 안정화 체제를 구축한다. 유엔사의 역할은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다. 종전선언-외교관계 정상화-대북 경제협력-군사관계 정상화의 단계가 진행되는 동안 북한은 비핵화를 진행해야 한다. 한·미가 북한에 제공하는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혜택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연동한다. 북한이 어기면 뒤로 물리는 ‘전략적 신중(strategic deliberateness)’이 전 과정의 나침반이다. 

몇개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동안 비핵화가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완료된다면 비로소 평화협정을 체결한다. 세번째 단계다. 그 순간까지 한·미 동맹은 강력한 방위태세를 풀지 말아야 한다. 군사훈련은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선결조건이다. 마지막 단계는 북한을 한·미 동맹이 주도하는 질서에 통합시키는 것이다. 북한 입장에선 한·미 동맹의 안보 위협과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돌파할 묘안이 될 수 있다. 한국은 북한의 최대 교역 및 직접투자 국가로, 미국은 북한의 두번째 교역 파트너이자 국제 재원의 북한 유입을 가능케 하는 국가가 돼야 한다. 

지난 5월25일 평양 낙랑구역의 남사 협동농장에서 한 농부가 벼를 심고 있다. 북한은 최근 식량난을 완화하고 쌀과 옥수수 가격 상승에 대처하기 위해 군 비축 식량을 방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P연합뉴스

 

지난 7월29일 미국 포린어페어스에 게재한 빈센트 브룩스 전 한·미연합사 사령관과 임호영 부사령관 명의 공동기고문의 요지다. 글의 제목은 ‘북한과의 대타협(A Grand Bargain With North Korea)’.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고 북한의 경제발전 및 동북아 질서의 재편을 도모하자는 전략적 구상이다. 국내에선 원문에 없는 한·미와 북한의 ‘대중 동맹’으로 표현하거나, 군사훈련을 중시한 글의 일부분만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선별 소비됐다. 단계적 합의를 통한 긴 호흡의 전략 구상을 ‘일괄타결’이라고 과감하게 오역하기도 했다. 미국 주도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속한다고 모두가 동맹의 형태인 건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 미국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브룩스·임의 구상은 조 바이든 행정부 취임 이후 미국 내에서 제기되는 새로운 대북 접근 방안의 하나다. 새로운 접근의 흐름은 두 가지 현실인식에 토대를 두고 있다. 하나는 북한의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는 좌절 또는 인정이다. 대북 군사적 압력이나 경제제재, 중국에 아웃소싱을 하는 방식이 죄다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번째 흐름은 갈수록 불편한 현실로 자리 잡아가는 미·중 갈등이다. 미국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현실주의자들일수록 세력균형의 공식을 바꿈으로써 중국의 동아시아 영향력을 차단하는 방안에 눈을 돌리고 있다. 

월터 러셀 미드 아메리칸인터리스트(AI) 편집장은 지난 4월5일자 월스트리트저널 칼럼에서 ‘북한과의 데탕트’가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 역시 북한의 핵무기를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미국 대통령이 포기할 수 없는 목표인 동시에 실제적으로 달성하기 불가능한 목표라면서 브룩스·임과 비슷한 제안을 내놓았다. 현실인식 역시 유사하다. 미국의 단극체제로 여겨졌던 1990년대만 해도 미국이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향한 흔들림 없는 책임을 구현할 방안을 모색할 수 있었지만, 떠오르는 중국이 미국의 필수적인 국익을 위협하는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김덕훈 북한 내각총리가 함경남도 영광군과 신흥군, 홍원군, 단천시 등 최근 수해피해를 입은 지역을 돌아보며 무언가 지시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한 사진이다. 북한은 올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수해 등 3중고를 겪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중국이 강해질수록 중국과 거리를 두려는 북한은 냉정한 마키아벨리식 논리를 수용하게 된다고 짚었다. 대북 제재를 강화해봤자 중·러가 대미관계 악화 뒤 제재망을 느슨하게 하고 있어 효력이 감퇴된다는 점도 감안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이 기존 방식으로 ‘불가능한 임무’에 연연하는 대신 북한이 중국의 궤도로부터 이탈하도록 도와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전략적 이득에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흥미로운 것은 새로운 접근의 입구로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제시한 점이다. 한반도 안팎의 긴장을 완화하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 및 신무기 개발 유예를 협상함으로써 북·미가 모두 전략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논지다. 

리드는 비핵화를 잠시 미뤄둠으로써 되레 동맹국들과 더 연합하고, 중국을 겨냥해 동아시아에서 우호적인 힘의 균형을 공고히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하는 미국 의회를 의식한 듯 미국이 이미 2차 세계대전 당시 스탈린은 물론 1970년대 마오쩌둥과 연합했던 전례를 들어 중국과의 전면적 투쟁이 수반할 추악한 도덕적 선택에 비하면 낫지 않으냐고 설파했다. 그러곤 한반도를 뛰어넘는 전략적 가치에 주목했다. 북한이 어렵고 위협적일 수 있지만,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전략적 이해라는 가장 큰 위협은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바이든 행정부가 조용히 다른 선택지를 탐사할 것을 촉구했다. 북한 내 절대권력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손바닥 뒤집듯’ 대외전략을 수정할 수 있을 거라는 가정 위에 서 있다. 파시스트를 그토록 공격하던 스탈린이 히틀러와 독·소 밀약을 체결한 것을 역사적 사례로 들었다. 

AI는 닉슨센터의 기관지였던 내셔널인터리스트(TNI)의 자매 잡지 격이다. 대중 데탕트를 주도했던 헨리 키신저식 세력균형을 중시하는 현실주의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 리드가 글에서 강조하듯 가치보다 국익을 우선한다. 이 점에서 가치를 중시하는 민주당, 바이든 행정부와는 결이 다르다. 하지만 미국 엘리트들 사이에서 가치와 국익은 결코 따로 놀지 않는다. 미·중 데탕트는 리처드 닉슨의 공화당 행정부가 이뤘지만, 1995년 베트남 수교를 성사시킨 것은 빌 클린턴의 민주당 정권이었다.

 

말레이시아 콸라룸프르의 북한 대사관 담벼락의 철조망 옆에 인공기가 휘날리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 이례적으로 한·미 합훈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자 로이터 통신은 지난 3월 9일 촬영해놓은 이 사진을 지난 8월7일 전송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브룩스·임의 설계도는 북한의 경제적 상황을 더 중시했다. 올해 초 제8차 당대회에서 ‘인민대중 제일주의’를 내세운 북한의 최우선 현안을 경제안보라고 가정했다. 북한이 경제안보를 개선토록 도와주는 동시에 또 다른 잠재적 우려인 과도한 대중 의존을 한목에 풀어낼 방안으로 북한 인프라 국제 재원 조성과 남북 FTA를 제시한 점이 창의적이다. 지난해 초 ‘중국은 아시아의 진짜 병자(Sick Man)’라는 칼럼으로 중국 외교부의 강한 비난을 받았던 리드는 북한과의 데탕트가 미국에 선사할 전략적 이익에 집중했다. 브룩스·임이 곳곳에 한국의 역할을 배치한 반면에 리드는 냉혹한 현실주의자답게 굳이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았다.

얼핏 보면 국내 대북 포용론자들이 반길 이러한 주장들은 지독히 미국적인 발상에서 나왔다. 한국이 간과해선 안 될 지점이다. 한국의 입장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다. 미국이 결정하면, 따르는 국가라는 인식이 내비친다. 

북한은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 이후 미국에 ‘새로운 셈법’을 들고나올 것을 집요하게 요구해왔다. 그렇다면 북한의 셈법에서 중국 요소는 얼마나 있을까. 당 대 당 간에 동지적으로 맺어진 북·중관계는 생각보다 뿌리가 깊다. 물론 불신도 있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또 다른 장점은 가까운 중국의 자장으로부터 주체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대미 수교 뒤에도 핵을 가져야 할 동기의 하나다. 그럼에도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미국 쪽으로 선회했다고 치자. 그랬다가 한국과 미국이 배신하면 어떻게 될까. 애증이 뒤섞인 중국과 달리 한·미에 대한 북한의 불신은 매우 견고하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소식통은 “2018년 북한이 우리의 중재로 북·미 정상회담을 받아들였을 당시 우리가 ‘중국을 벗어나서 한번 해보자’고 제안했지만 김정은은 곧바로 시진핑에게 달려가더라”는 말을 전한다. 북·중은 2018년 이후 다섯 차례나 정상회담을 하면서 ‘전략적 소통’을 강조했다.

미국에 ‘중국 요소’는 미·중 데탕트 당시에 비해 지금 더 중요해졌다. 역사상 가장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동아시아 국가들에 중국 요소는 태평양 건너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녹록지 않다. 미국에 북한의 개혁·개방은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베트남의 경우가 이를 입증한다. 베트남은 1986년 도이머이를 선언했지만 미국과 수교하기까지 거의 10년이 걸렸다. 워싱턴의 전략가들이 굴기하는 중국을 견제할 베트남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하는 데 들어간 시간이다. 그런데 미·베 수교 뒤 베트남이 반중으로 돌아섰을까. 아니다. 베트남 동해(남중국해)에서 상시적으로 물리적 충돌을 하고 있지만, 베트남이 대외전략에서 가장 중시하는 국가는 여전히 중국이다. 

포린어페어스 7월29일자에 소개된 브룩스-임의 기고문

 

어떠한 매력적인 전략이론보다 강한 것이 지리적 위치다. 북·중 국경(1352㎞)은 베·중 국경(1297㎞)보다 더 길다. ‘당 대 당’으로 맺은 이념적 유대 역시 견고하다. 1979년 중국의 침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베트남 지도부의 태반이 친중파인 까닭이다. 베트남에 비해 중국과 훨씬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온 북한이 리드의 가정처럼 ‘손바닥 뒤집듯’ 할지도 의문이다. 

더욱 중요한 건 바이든 행정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4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정교하고 실용적인 접근’을 하겠다고 선언한 뒤 별다른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성김 대북특별대표가 북한의 비핵화 조치 진전에 연동한 부분적인 제재 완화를 제안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 국내)법적 제한 탓에 의회의 동의를 얻기 쉽지 않은 상태다. 미국 관리들은 조건 없는 대화 제안에도 북의 응답이 없다면서 ‘공이 북한 편에 있다’고 말하지만, 일부 분석가들은 미국의 접근이 지나치게 수동적이라고 지적한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지난달 30일 상황보고에서 평가한 현주소다. 

8월도 중반으로 치닫는다. 축소된 한·미 연합훈련이 진행되면서 북한 노동당 중앙위의 김여정 부부장과 김영철 부장이 지난 10일, 11일 예정된 비난 담화를 내놓았다. 어조는 갈수록 강해지는 크레셴도다. 광복절부터 국치일까지 반일의 계절도 돌아온다. 한반도 문제는 여전히 섬처럼 표류하고 있다. 한국의 셈법 역시 오리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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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대북정책 재검토를 완료한 뒤 3주가 지난 21일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회담은 여러 ‘꼬마 동맹’을 탄생시켰다. 지역적으론 거반 전 세계를 다루었고, 분야별 현안을 총망라한 A4용지 5쪽이 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지난달 16일 미·일 정상회담 뒤 발표된 ‘새로운 시대를 위한 미·일 글로벌 파트너십 공동성명’에 비해 정확히 1쪽이 더 많다. 만기친람식 광폭 성명이었다.

한·미관계가 공간적으로 넓어지고,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이 강화되는 걸 반대할 필요는 없다. 로컬 동맹이 글로벌 동맹으로 바뀌었으며, 기왕의 군사동맹에 더해 경제동맹, 기술동맹, 기후동맹, 코로나19 백신 동맹, 우주개발 동맹, 라틴 아메리카 개발협력 동맹은 물론 메콩 지역 수자원 관리 동맹, 여성폭력 반대 및 여권 신장 동맹이 시작된 원점이 될 수도 있다.

기실, 탄도미사일을 개발해 핵탄두를 실으려는 시도는 한반도 남측에서 먼저 시작됐다. 청와대 특명으로 시작된 국방과학연구소의 백곰미사일 개발과 프랑스의 핵재처리 기술을 들여와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박정희의 꿈'은 미완으로 끝났지만, 북으로 넘어가 김일성의 꿈이 됐다가 김정일-김정은의 현실이 됐다. 1979년 탄생한 한미 미사일 지침은 이러한 배경에서 시작돼 한편으로 미국의 미사일 기술을 전수받으면서 사거리, 탄두 중량, 고체연료, 고정 발사체, 민용-군용 기술이전 금지 등의 족쇄가 됐다. 사진은 1973년 국군의 날 행사에서 관중석에 박정희의 얼굴을 표현한 카드섹션이 벌어지는 가운데 군사퍼레이드에 등장한 미사일.  위키페디아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에 대한 방책이 괄호 속에 놓인 대신, ‘중국으로부터의 가상 위협’에 대한 백화제방식 논리가 나오고 있다. 임기 말에 이르러 문재인 정부의 대중정책이 U턴했다는 지적이 이어지지만, 정상회담 뒤 외교안보팀이 말을 주워담는 걸 보면 그것도 분명치 않다. 일단 ‘중국’을 입구로 드넓은 성명서 안으로 들어가본다. 

문재인 정부의 대중정책이 U턴했다는 논평은 과거에 없던 내용이 담긴 데서 비롯된다. 대만해협이 적시되고 한·미 미사일지침의 종료를 선언한 것이 그것이다. 대만해협 문제는 “두 대통령은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한 문장이다. ‘통합적이고, 자유로우며 개방된 인도·태평양’과 평화와 안정, 합법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상업 및 항행, 상공 비행의 자유를 포함한 국제법이 존중되는 ‘남중국해 및 여타 지역’과 함께 한 단락을 구성한다. 대만해협 부분엔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주체가 없다. 분쟁지역이라는 표현도 없이 평화·안정을 바란다는 기대만 담았다. 하지만 중국은 이 대목을 놓치지 않았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4일 브리핑에서 “대만해협 문제는 순전히 중국 내정이고, 중국의 주권과 영토보전에 관해서는 어떤 외세의 간섭도 허용할 수 없는 사안인 만큼 관련국이 대만해협 문제에 대한 불장난을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표현이 거칠기로 정평이 난 그로선 완곡하게 원칙을 확인한 셈이다. “남중국해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없다”고도 말했다. 인·태 전략은 ‘타국을 겨낭한 4자(4국)체제이자 작은 틀’이라는 말로 거부감을 표현하는 데 그쳤다. 정작 중국의 안보를 직접 위협할 수 있는 미사일지침 종료는 언급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 워싱턴의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공동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연단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AP연합뉴스

미사일지침 종료에 대한 백악관 성명을 직역하면 “미국과의 협의에 뒤이어, 한국은 개정 미사일지침의 종료를 발표하고, 양 대통령은 그 결정을 인정했다”이다. 순서상 ‘협의’가 먼저이기에 해석에 따라 지침 종료를 누가 주도했는지 분명치 않다. 한·미는 2012년 미사일 사거리 300㎞에서 800㎞로 확장, 2017년 탄도중량 제한 전면 폐기에 이어 지난해 7월 고체연료 사용 제한을 풀었다. 이번 지침 종료로 이론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중장거리미사일(IRBM)은 물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도 가능해졌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국 정부는 미사일지침 종료 의미를 민간부문에 제한하고 있다. 청와대 국정브리핑에 기고문 형식으로 ‘미사일 주권 회복’을 띄우면서도 민간 우주개발의 전환점이 됐다는 점에 집중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외교부는 27일 한국이 미국 주도 유인달탐사 프로그램인 ‘아르테미스 약정’의 10번째 가입국이 됐다고 당일 발표했다.

문제는 우주개발 기술과 미사일 기술이 비슷하다는 데 있다. 북한이 미사일 개발 초기에 ‘우주공간의 평화적 이용권’을 강조하며, 한사코 ‘미사일’이 아닌 ‘로켓’을 발사했다고 강변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지침 종료는 단순히 사거리 제한만 없앤 게 아니다. 민수용 로켓 기술의 군용 적용 제한 및 발사장 제약도 풀었다. 우주개발 로켓을 개발하면서 획득한 기술을 미사일에 적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고정 발사체에 국한됐던 발사장 역시 차량을 이용한 이동 발사체 또는 해상 발사체로 선택지가 늘었다. 이론적으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도 가능해졌다.

미국을 실무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21일 백악관 아이젠하워 행정동에서 캐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이야기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국은 지침 철회 전부터 “우리 안보에 필요한 사거리 범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고위력 탄도미사일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국방과학연구소). 그렇다면 이번에 ‘우리 안보에 필요한 범주’를 넘어선 까닭은 무엇일까. 한국의 미사일 주권 회복이 동북아 군사균형에 제기하는 파급력은 상황에 따라 심대하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하는 각국 국방전략가들의 머리가 복잡해질 것은 분명하다. 북핵보다 더 큰 범주에서 동북아 안보의 뇌관이 미사일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으로부터의 위협’에 가장 먼저 놓일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여전히 군사력에선 미국에 맞설 상대가 못 된다. 그 약점을 알기에 ‘반접근/지역거부(A2/AD)’를 방위전략 골간으로 삼는다. 미 해군의 해상 접근 차단 및 한·일·괌 미군기지에 대항할 무기는 DF(東風) 계열 미사일들이다. 주한미군의 사드(THAAD) 미사일은 그나마 방어용이지만, 한국 내 IRBM은 미군의 것이건, 한국군의 것이건 공격용이다. 미국 군사전문매체 디펜스뉴스는 “한국이 미국의 대중 전략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관측통들의 의견을 소개하며 한국이 최대 사거리 1000~1500㎞의 중거리 미사일과 장거리 SLBM 및 초음속 무기 개발에 착수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2019년 9월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파기를 선언하자마자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몇달 내 아시아 지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기 희망한다”고 속내를 드러내자 중·러·북한은 거세게 반발한 바 있다.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한국과 일본 내 중거리 미사일 배치는 해당 지역 주둔 미군과 동맹국 방어를 위한 것”이라며 배치 예정지를 아예 한·일로 구체화했다. 푸충 중국 외교부 군비통제국장과 세르게이 라브코프 러시아 군비통제 담당 차관은 각각 회견을 열고 대응조치를 강력하게 경고했다. 북한은 한국에 ‘스스로 총알받이 노릇을 하는 자멸행위’(조선중앙통신)라고 거들었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홈페이지에 소개한 현무미사일. 연구소는 현무 미사일을 소개하며 "우리 안보에 필요한 사거리 범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고위력 탄도미사일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국내에서 ‘미사일 주권 회복’의 명분에 동의하면서도 위협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는 그만큼 미사일 전력의 변화가 주는 함의가 크기 때문이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미국의 생각은 대중국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한국에 아웃소싱하려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은 “한국이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고 평가했다. 반면에 긍정론도 제기된다. “한국의 자주국방과 안보에 도움이 되는 큰 진전”(김진호 단국대교수)이라는 평가에서부터 “중국 및 러시아와 군사적 긴장이 없는 현 상태에서 한국이 IRBM을 개발할 명분도, 이유도, 용기도 없지 않은가”(익명의 관측통 A)라는 불필요론도 제기됐다. “한국 정부가 보수이건, 진보이건 한반도를 넘어선 군비경쟁에 들어가면 감당이 안 된다. 국토 방위에 충분한 정도의 군사력만 가져야 하지 않나”라는 현실론(익명의 관측통 B)도 나왔다.

중요한 사실은 분단과 동맹에 묶인 특성상 중요한 선택이 우리 손을 떠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정상회담 이전부터 미국 내에서는 한국 미사일 능력의 활용을 눈여겨보는 시각이 있었다. 워싱턴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미사일 위협’ 연구에서 “남북한의 패러다임을 떠나 한국의 미사일 프로그램은 중국의 A2/AD 전략에 대항적 접근을 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드 배치 뒤 한국 기업에 대한 중국의 보복조치, 중국의 북한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지원 등의 전례를 소개하면서, 한국 관료들의 낙관적인 대중관은 바뀔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으로부터의 미래 위협에 한국의 정교한 미사일 능력은 중요한 ‘쐐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단순히 연구자들의 관심으로 돌릴 사안은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취임과 거의 동시에 러시아와의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을 연장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폐기한 INF 조약을 되살릴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중국의 참가 또는 중국 중거리 핵전력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맹국의 반발을 야기할 미군 IRBM의 한반도 배치보다 한국군의 IRBM 개발은 미국 입장에서 외교적 리스크가 없는 대중 방책이 될 수 있다. 탈냉전 뒤 지역 방위를 지역 국가들에 위탁해온 미국의 장기전략과도 부합한다. 물론 가까운 시일 내 미국이 한국의 중거리 미사일 개발을 압박할 가능성은 적다. 현재로선 한국은 ‘주권’을 회복하고 미국은 유사시 대중 압박 카드를 챙긴 정도 의미를 갖는다.

나로호 발사 성공을 기념해 한국조폐공사가 2013년 10월 2일 서울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에서 '나로호 발사 성공' 기념주화를 선보이고 있다. 기념주화는 지구를 배경으로 나로호의 페이링 분리 장면을 앞면에 천상열차분야지도 일부 문양과 첨성대를 뒷면에 새겨 넣었다. 민간우주 개발과 군용 미사일 개발은 동전의 양면처럼 유사하다. 한국은 미사일 지침 종료 이전까지 민용 기술과 군용 기술 간 전용이 불가능했었다.  /강윤중 기자

중국 정부가 침묵하는 가운데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24일자 한·미 정상회담 보도에서 미사일지침 종료의 의미를 짚었다.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북한의 분노를 야기하고 한반도 및 동아시아 긴장을 강화할 것”이라고 에둘러 표현했다. 중국 내 인지도가 상당한 펑파이뉴스(澎湃新聞)는 27일 ‘한국 미사일 우리를 향해서? 중국 도시 사정권에’라는 심층기사에서 “한국이 (당장 미사일) 연구개발은 하지 않더라도 미래에 대비해 관련 기술을 축적하는 걸 고려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의 의도는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포기, 미국 편을 더 들도록 유도하는 동시에 “한국의 미사일 능력을 향상시켜 미국의 대항 비용을 낮추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중국이 이미 중거리,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한국의 미사일지침 종료만을 갖고 비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대응논리를 개발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은 장기간 이 문제를 고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작년 11월 미국 대선 이후 한반도 거주민들이 목을 빼고 기다려온 평화의 밑그림은 희미하기 짝이 없다. 미국의 한국군 55만명 코로나19 백신 지원으로 올해 중 전시작전권 환수를 위한 한·미 연합훈련이 재개될 가능성이 생겼지만, 미지수다. 북핵 문제 해결 및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희망고문’은 상당 기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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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df 2021.06.01 2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엇을 노린 《미싸일지침》종료인가
    (평양 5월 31일발 조선중앙통신)

    얼마전 미국을 행각한 남조선당국자가 현지에서 진행된 공동기자회견이라는데서 미국남조선《미싸일지침》이 종료된 사실을 공표하였다.

    이는 남조선이 최대 800㎞로 한정된 사거리제한에서 벗어나 우리 공화국전역은 물론 주변국들까지 사정권안에 넣을수 있는 미싸일을 개발할수 있게 되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벌써부터 국제사회와 남조선내에서는 미싸일사거리제한해제에 따라 남조선이 가장 빠른 시일내에 대륙간탄도미싸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싸일은 물론 극초음속미싸일까지 개발할수 있다는 심상치 않은 여론이 나돌고있다.

    이미 수차에 걸쳐 《미싸일지침》의 개정을 승인하여 탄두중량제한을 해제한것도 모자라 사거리제한문턱까지 없애도록 한 미국의 처사는 고의적인 적대행위라고밖에 달리 말할수 없다.

    《미싸일지침》의 종료는 조선반도에서 정세격화를 몰아오는 장본인이 과연 누구인가를 다시금 보여주고있다.

    우리의 자위적조치들을 한사코 유엔《결의》위반으로 몰아붙이면서도 추종자들에게는 무제한한 미싸일개발권리를 허용하고 입으로는 대화를 운운하면서도 행동은 대결로 이어가는것이 바로 미국이다.

    이것은 미국이 매달리고있는 대조선적대시정책의 집중적인 표현인 동시에 파렴치한 이중적인 행태를 스스로 드러내는 산 증거로 된다.

    지금 많은 나라들은 바이든행정부가 고안해낸 《실용적접근법》이니,《최대유연성》이니 하는 대조선정책기조들이 한갖 권모술수에 불과하다는것을 느끼고있다.

    미국이 남조선의 미싸일《족쇄》를 풀어준 목적은 조선반도와 주변지역에서 군비경쟁을 더욱 조장하여 우리의 발전을 저해하려는데 있다.

    이와 함께 남조선을 군사적으로 더욱 바싹 그러쥐고 미싸일사거리를 늘여주는 대가로 우리 주변나라들을 겨냥한 중거리미싸일배비를 합법적으로 실현해보려는것이 미국의 속심이다.

    미국은 오산하고있다.

    미국이 조선반도와 주변지역에서 비대칭적인 불균형을 조성하여 우리에게 압력을 가하려고 하는것은 정전상태에 있는 조선반도의 첨예하고 불안정한 상태를 더욱 야기시키는 심중한 실책으로 된다.

    우리의 과녁은 남조선군이 아니라 대양너머에 있는 미국이다.

    남조선을 내세워 패권주의적목적을 실현해보려는 미국의 타산은 제손으로 제눈을 찌르는 어리석은 행위로 될뿐이다.

    속담에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란 말이 있다.

    미국과 남조선당국이 저들이 추구하는 침략야망을 명백히 드러낸 이상 우리의 자위적인 국가방위력강화에 대해 입이 열개라도 할 소리가 없게 되였다.

    우리는 강대강,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것이며 조선반도의 정세격화는 우리를 위협하는 세력들의 안보불안정으로 이어지게 될것이다.

    이 기회에 《기쁜 마음으로 미싸일지침종료사실을 전한다.》고 설레발을 치면서 지역나라들의 조준경안에 스스로 머리를 들이민 남조선당국자의 행동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지 않을수 없다.

    일을 저질러놓고는 죄의식에 싸여 이쪽저쪽의 반응이 어떠한지 촉각을 세우고 엿보고있는 그 비루한 꼴이 실로 역겹다.

    국제사회는 미국이 떠드는 유엔《결의》위반소리에 귀를 기울일것이 아니라 우리의 코앞에서 벌어지는 엄중한 도발행위들에 응당한 주목을 돌려야 할것이다.

    국제문제평론가 김명철(끝)

  2. 보석 2021.06.02 1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익명의 관측통 A.B?
    그러면 미사일 주권 회복이 미국의 전략적인 측면에 부합한다고 해서 다시 반납이라도 하자는 말인가!
    그 어떤 이유에서건 미사일 지침 폐기는 한국의 국격 향상에 절대적 플러스 요인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고.....

    익명의 관측통이 대체 누군지나 밝혀라.
    익명성에 기대어 근거도 없는 말의 근거를 삼으려 하지 말고....


    • 김진호 2021.06.02 14: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두 분 모두 최고 원로급 전문가들입니다. 고위 공직을 거친 분도 계시구요. 한 분은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바, 의견만 전하겠다'고 하시면서 익명을 요청하셨고, 다른 분은 '책임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각각 익명을 요구하신 분들입니다. 댓글에 의견을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십시다...

  3. dkfg 2021.06.04 17: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사일지침 해제]③북중에 미일까지…'동북아 화약고' 되나
    기사승인 2021.06.04 07:59:54

    http://m.ukore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494

    [편집자주]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기쁜 마음으로 미사일지침 종료 사실을 전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탄도미사일 개발을 규제하기 위해 1979년 설정된 한미미사일지침이 42년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이에 뉴스1은 한미미사일지침 해제가 우리나라의 외교·안보 분야 및 관련 산업계 등에 미칠 영향을 살펴본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미 미사일지침 종료 사실을 밝혔다. 한미미사일지침은 우리나라와 미국 정부가 지난 1979년 처음 체결했다. 당시 미국은 탄도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기술은 이전하되 우리 탄도미사일의 사거리와 탄두 중량을 각각 180㎞와 500㎏으로 제한했었다. 한미미사일지침 완전 해제에 따라 우리나라도 사거리 1000㎞ 이상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독자적으로 개발·배치할 수 있게 됐다. 사진은 23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미사일. 2021.5.23/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미사일지침이 완전히 종료됨에 따라 우리나라의 탄도미사일 개발의 '족쇄'가 완전히 풀렸다.
    중국과 북한은 비대칭 전력은 핵무기는 물론이고 중·단거리 미사일까지 대거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당장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미사일 전력 강화의 토대가 마련된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다만 일각에서는 주변국인 중국, 북한, 러시아, 일본의 군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동북아시아가 화약고가 될 가능성에 주목하는 모양새다.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동북아 군비경쟁 이미 '현재 진행형'…미사일 지침 해제 촉발 요소 아냐"
    한미미사일지침은 1979년 처음 제정됐다. 미국의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전 받는 조건으로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와 탄두중량을 제한했다. 이후 지침은 2001년부터 4차례 개정되면서 '사거리 800㎞ 제한' 조항만 남아있던 상황이었다. 이 내용마저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완전히 사라지면서 우리는 42년 만에 미사일 주권을 완전히 회복했다.
    단 한미 정상 간 미사일지침 해제 합의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동북아의 군비경쟁을 촉발할지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지속되는 모양새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동북아의 군비경쟁은 이미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이번 미사일 지침이 촉발 요소라고 볼 수 없다"며 "이미 우리와 중국, 일본, 러시아의 국방비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것이 방증"이라고 말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도 "중국, 러시아뿐만 아니라 북한도 우리의 사거리를 뛰어넘는 미사일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며 "일본은 헌법상 '전수방위'(상대방으로부터 무력 공격을 받았을 때 비로소 방위력 행사) 때문에 공격용 미사일을 보유할 수 없다"라고 했다.

    실제 지난해 한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의 국방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국면임을 감안하더라도 전 세계 군사비 랭킹 10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롬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지난 4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군사비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3%로 실제 비용으로는 2520억달러(약 280조7000억원)에 달했다. 특히 26년 연속 중국은 국방비를 늘려왔다. 아울러 러시아는 617억달러, 일본이 491억달러, 한국은 457억달러였다.

    ◇"韓 핵심 참여자로 '변모'…군비경쟁 더욱 가속화 될 것"
    반면 한국이 이번 미사일지침 해제에 따라 사실상 군비경쟁의 '핵심 참여자'로 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는 북·중·러 3국이 이미 중·단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새롭게 등장하고, 일본이 최근 들어 '방어 목적'이라는 미명하에 중장거리 공대지미사일 개발 또는 도입을 추진하는 등의 상황이 확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특히 북한과 중국은 '자위권' 목적으로 기존의 미사일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고, 러시아는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탈퇴한 미국을 의식하며 군비경쟁을 벌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INF 조약은 1987년 미국과 소련간 체결한 핵탄두 장착용의 중거리와 단거리미사일 폐기에 관한 조약이다. 이는 사거리 500~5500㎞인 중·단거리 탄도과 순항미사일의 생산과 실험,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조약은 중국이 미국의 참여 요청을 끝내 거부함에 따라 지난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주도하에 폐지됐다.
    아울러 미국이 중국의 중거리 미사일에 대한 대응책으로 오키나와와 필리핀을 연결하는 '제1도련선'(쿠릴열도~일본~대만~필리핀~말라카 해협)에 대중 미사일망을 구축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도 되짚어봐야 한다는 관측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중국은 미국과 소련처럼 INF이 없었기 때문에 이미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며 "러시아는 INF 때문에 제약이 있었지만 이스칸데르급 미사일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지금은 INF가 깨졌고 미국도 중·단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한국도 동참할 수 있다. 군비경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에 관련국간 미사일 통제 체제를 만드는 노력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며 "단 중국과 북한, 러시아가 참여할 가능성은 사실상 낮은데 현실성은 별개로 그러한 방향으로 가려는 노력은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4. ㅇㅇ 2021.06.09 0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방비 지출을 또 늘리는 문. 국방비 지출은 늘릴대로 늘리고 (획득 비용)

“어쩌다보니 범인과 같은 나라 출신의 저널리스트다. 애도의 뜻과 함께 미안함을 전한다.” 2007년 4월17일. 버지니아 북부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4시간 가까이 자동차를 몰고 도착한 블랙스버그의 버지니아텍 주변은 지극히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전날 재미동포 1.5세 조승희(23)의 총기난사로 32명이 숨진 참극의 현장 같지 않았다. 북적이는 것은 수백명의 취재기자들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위와 같이 말문을 열고 “사건 탓에 한국인 또는 아시아계 학생들에 대한 혐오가 번지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미국 남부 바이블벨트가 시작되는 지역이라서 그랬을까. 놀랍게도 단 한 명의 백인 학생, 교수, 교직원, 지역 주민도 기자의 우려에 동의하지 않았다. 약속이나 한 듯 “우연히 범인이 아시아계였을 뿐이지 인종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는 답이 돌아왔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발생한 총기참사 사건을 계기로 아시아계 주민들에 대한 혐오범죄의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가 지난 20일 서부 워싱턴주 벨뷰의 벨뷰 다운타운 공원에서 열리고 있다. 참가자들은 촛불을 들고 "아시아계 혐오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승희는 전날 오전 6시47분, 웨스트 앰블러 존스턴홀의 한 기숙사방에 들어가 다짜고짜 신입생 에밀리를 쏘았다. 총소리를 듣고 달려온 4학년생 라이언도 사살했다. 두 시간쯤 뒤 수업 중이던 강의동 노리스홀에 들어간 그는 강의실 4곳을 돌며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그사이 자신의 기숙사 방에 들어가 피묻은 옷을 갈아입고 자신의 주장을 담은 비디오 녹화 테이프와 글을 NBC방송에 송달한 뒤 배낭을 총기와 400발의 탄알로 채웠다. 총격사건이 수시로 벌어지는 미국이지만, 버지니아텍 사건은 지금까지도 학교 총기참사 중 가장 희생자가 많은 사건으로 기록됐다. 단일범에 의한 최대 인명피해를 낸 총기사건이라는 기록은 9년 뒤 올랜도 나이트클럽 사건으로 바뀌었다.

미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총격사건은 각각 다른 배경과 성격을 갖고 있다. 미국 사회의 총기문화에서 비롯되지만, 극단적인 참극의 원인은 사건마다 차이가 있다. 8세 때 가족과 함께 이민한 조승희는 불안장애, 선택적 함묵증,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겪고 있었다. 언어장애와 과묵한 성격 탓에 미국 학생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그가 남긴 비디오 메시지와 글에 “당한 만큼 총알로 되갚아주겠다” “너희들이 나한테 한 짓을 생각해봐” 등의 말이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성장기에 겪은 좌절이 정신질환의 원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중국으로 돌아가라”는 인종차별적 모멸감도 겪었던 것으로 고교 동창의 증언으로 확인된다.

백인 남성에 의한 총기극이 벌어진 지난 16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한 스파 앞에 경찰이 쳐놓은 노란색 출입금지 테이프가 보인다. EPA연합뉴스

무차별 총격을 하는 범인들은 자신을 우월한 위치에 놓고 희생자들을 ‘인간 이하(subhuman)의 존재’로 본다는 공통점이 있다. 스스로 도덕성 우월성이 있다고 간주한다.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았던 좌절이 타인을 인간 이하로 보는 도덕적 우월성으로 도치된다. 조승희는 NBC방송에 보낸 비디오에서 금목걸이와 코냑, 메르세데스(벤츠)로 상징한 탐욕과 쾌락에 대한 경멸감을 드러냈다. 적어도 버지니아텍 사건에 ‘정치 바이러스’는 끼어들지 않았다.

지난 16일 오후 5시(현지시간)부터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시티 안팎에서 벌어진 연쇄 총격사건에는 “코로나19는 중국 바이러스”라는 ‘트럼프 바이러스’가 원인의 일부였던 것으로 의심할 근거가 충분하다. 18일 현재 범행 동기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인 당국은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범죄(hate crime)를 공식화하지 않고 있다. 겉으로는 혐오범죄나 인종 문제를 한사코 부인하지만, 내심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미국 사회 인종차별의 단면이다. 17일 범행 동기가 밝혀지지 않았음을 강조하면서 “동기가 무엇이었든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매우 걱정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말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말이 정확하게 그 단면을 보여준다. 원인을 직시하기보다 현상을 중시한다. 버지니아텍 사건 당시 직접 말을 건네보았던 백인과 흑인 등 비동양권 주민들은 인종 문제를 배제했지만, 아시아계 학생들은 일부 “전혀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다”라는 말로 우려를 드러냈었다.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 짐짓 부인하는 게 인종 문제다.

주로 아시아계 여성들을 상대로 한 총기극의 현장 중 하나인 미국 애틀랜타 골드 스파 앞에서 지난 17일 두 아시아계 여성들이 조화를 놓고 있다. 옆에는 추모의 촛불이 켜 있다. AFP연합뉴스

 

애틀랜타 사건 피해자 8명 중 한인 동포 4명을 포함한 아시아계가 6명인 데다가 해당 마사지숍과 스파가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경영하는 곳이었다는 점에서 인종을 떼놓고 볼 사안이 아니다. 여기에 피해자 중 7명이 여성인 점은 용의자인 백인 청년 로버트 에런 롱(21)의 뇌리에 인종과 여성, 뒤틀린 도덕적 우월성이 뒤섞여 피해자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보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현지 경찰이 밝힌 한인 여성 피해자들은 60대, 70대에도 생업을 이어가기 위해 일을 해온 생활인들이었다. 

용의자 롱이 범행 당시 “아시아계를 다 죽이겠다”고 말했다는 현지 동포언론의 보도는 확인된 게 아니다. 직접인용 부호 없이 보도됐을 뿐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계를 겨냥한 혐오범죄가 확산된 배경을 보면 적어도 범행 동기의 일부였을 개연성이 높다. 미국에서 ‘혐오범죄’ 여부는 법무부 산하 연방수사국(FBI)이 판단한다. 혐오범죄를 “인종과 종교, 장애, 성적 지향, 민족, 젠더 또는 젠더 정체성 등이 전체 또는 부분적인 동기가 돼 사람 또는 재산을 상대로 저지른 범죄”라고 규정하는 FBI 정의에 비추어보아도 몇 가지가 겹친다. FBI는 홈페이지에 위와 같은 동기에서 비롯된 “혐오 자체는 범죄가 아니다”라면서 “FBI는 미국 헌법이 규정한 표현의 자유도 보호받아야 할 권리라는 점을 유념하고 있다”는 설명을 우정 덧붙여놓았다.

애틀랜타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지 이틀이 지난 3월18일 워싱턴의 백악관에 조기가 걸려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애틀란타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조기 게양을 지시했다. 애틀랜타 참사가 미국 곳곳에서 반 아시아계 혐오범죄 시위로 번지자 워싱턴의 연방의사당도 조기를 게양했다. EPA연합뉴스

 

‘아시아·태평양계 주민 혐오 반대(Stop AAPI Hate·이하 AAPI)’가 공교롭게 애틀랜타 사건 당일 발표한 연례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3월19일부터 올 2월 말까지 미국 내에서 각종 아시아계 대상 혐오 사례가 3795건 발생했다. 모두 범죄로 이어진 숫자는 아니다. 욕설과 비방, 위협, 신체 공격 등의 사례들이다. 올해 초 샌프란시스코 거리에서 84세 태국계 노인이 폭행을 당해 결국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미국 사회 일각에서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AAPI 보고서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남성보다 여성이 2.3배 많은 피해를 입었고, 중국계(42.2%)에 이어 한국계(14.8%) 피해 사례가 두 번째로 많다는 점이다.

인종과 젠더는 총구 앞에서도 차별받는다. 무차별 난사이건, 사적 원한에 의한 살인사건이건 피해는 여성과 유색인종에 더 집중된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2003~2014년 미국에서 발생한 1만18건의 여성 살해사건을 분석한 결과 특히 아프리카계 여성은 다른 인종보다 두 배 많이 총기사건의 희생자가 됐다. 전 연령층에서 평균 10만명당 2명이 살해당했다. 인종별로 아프리카계 여성이 4.4명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고 아메리칸 인디언(4.3명), 히스패닉(1.8명) 순이었다. 아시아계 여성은 1.2명으로 비히스패닉 백인 여성(1.5명)보다 적었다. 아시아계 주민에 대한 혐오 또는 혐오범죄가 늘어난 것은 불행히도 코로나19 이후의 일이다.

3월20일 미국 워싱턴주 벨빌의 벨빌 다운타운 공원에서 열린 '아시아계 혐오 중단(Stop Asian Hate)' 시위 참가자들이 비가오는 와중에도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범죄의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로이턴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이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를 대확산(팬데믹)으로 규정한 지 1년을 맞아 한 지난 11일 백악관 연설에서 강조한 것도 그 점이다. 바이러스가 야기한 사회현상의 하나로 아시아계에 대한 공격과 괴롭힘, 비난 및 희생양화 등 ‘사악한’ 혐오범죄의 증가를 들었다. “그것은 잘못됐고, 미국적인 게 아니며, 반드시 중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상은 지극히 ‘미국적 현실’이다. 

버지니아텍 사건과 애틀랜타 사건은 우리에게 수많은 사건 중 하나가 아니다. 숫자나 통계로 설명할 주제도 아니다. 재미동포와 연관됐기 때문이다. 버지니아텍에선 가해자였고, 애틀랜타에서는 피해자였던 점이 다를 뿐이다. 

애틀랜타는 미국에서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 중 하나지만, 로스앤젤레스나 뉴욕, 시카고 등지와 다른 특징이 있다. 상대적으로 물가가 싼 이점 때문에 이민생활에 실패하거나, 어려움을 겪은 한인 이민가족들이 제2의 도전을 하는 곳이다.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지 않고 애틀랜타 시티 안팎에 집중 거주하는 것도 특징이다. 주 인구 1617만명(2019년) 중 공식 한인 인구는 6만9230명이지만, 10만명을 웃돈다는 게 애틀랜타 총영사관의 추정이다. 1970년대 이후 한인 이민자들의 직업은 초기 청과물 거래, 세탁소, 슈퍼마켓 및 주유소 등으로 시작해 전문직 종사자가 늘고 있다. 일부는 마사지숍이나 스파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영화 <미나리> 포스터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계 여성들이 마사지숍을 비롯한 성인업소지역(레드존)에서 인기가 있는 것은 아시아계 여성들을 성적 일용품으로 여기는 인종차별적 선입관이 있어서다. 사건을 수사 중인 체로키 카운티 경찰은 용의자 롱이 인종적 편견이 범행 동기가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성 중독증이 있으며 이러한 유혹에서 벗어나려는 동기가 있었던 것 같다”는 희한한 논리를 내놓았다. 생업은 다를지언정 많은 한인 이민가정은 자녀교육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다. 아칸소주 한 귀퉁이에 씨앗을 뿌렸던 영화 <미나리(Minari)>(리 아이작 정 감독)의 이민가족과 크게 다르지 않다. 때마침 <미나리>의 아카데미상 수상이 관심을 끌고 있는 시점, 애틀랜타 사건은 동포들의 신산한 이민생활이 1980년대 일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고난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대확산한 지난 1년여 동안 인종주의는 또 다른 ‘인간 전염병’으로 번지고 있다. 인종차별 앞에서는 누구나 자유롭지 않다. 동전의 양면처럼 누구나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확산돼온 중국인 혐오 역시 임계치에 접근한 지 오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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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xx 2021.04.21 2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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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링을 하지 않으면 아일랜드인이 아니다!” 스포츠가 평화의 도구이기는커녕 분쟁의 빌미가 된 곳이 북아일랜드다. 우리에게 생소한 헐링(Hurling)은 아일랜드의 켈트족 전통 스포츠다. 나무막대로 작은 공을 치는 경기로 하키를 연상시킨다. 헐링이 북아일랜드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섬뜩하게 가르는 기준이 된 까닭은 헐링이 아닌, 하키를 하는 ‘적’이 있기 때문이다.

■ 스포츠와 평화, 두 나라 이야기
북아일랜드는 1998년 굿 프라이데이 협정을 맺고 평화의 여정을 시작했지만, ‘평화로운 공존’과는 거리가 멀었다. 협정의 핵심은 인구 비례와 무관하게 권력을 분점하는 공유정신이다. 하지만 가톨릭 아일랜드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민족주의자와 신교도(성공회) 영국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통합주의자들은 여전히 분리돼 있다. 뼛속 깊이 분열돼 있기 때문이다. 한마을에서도 다른 동네에 살고, 다른 학교에 다니며, 다른 스포츠를 한다. 아일랜드인 입장에서 헐링과 겔릭 풋볼을 하면 우리편, 하키·럭비·크리켓을 하면 너희편이 된다. 축구는 양측에서 모두 인기가 높은 종목이지만, 서로 응원하는 팀이 달랐다. 겔릭 풋볼은 럭비와 유사하지만, 둥근 공을 사용한다. 정치적 타협을 이뤘다고 해도 주민들 간의 평화는 영원히 불가능해 보이는 공동체다. 

2018년 2월4일 여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 평가전이 열린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단일팀을 응원하는 관중석. 대회 처음에는 관중석에도 분계선이 그어진 듯 남북이 따로 응원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응원단도 하나가 됐다. 사진공동취재단

설 전 평창평화포럼에 다녀왔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2월 열리는 글로벌 포럼이다. 2017년 말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던 한반도 상황에서 북한의 선수단·응원단·예술공연단 파견으로 성사된 평화올림픽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게 포럼의 기본 목적이다. ‘스포츠를 통한 평화 증진’을 주제로 지난 8일 열린 세션에서 데이비드 미첼 더블린 트리니티대 벨파스트 캠퍼스 교수가 소개한 ‘북아일랜드 평화 과정에서 스포츠의 역할’이 인상적이었다.

굿 프라이데이 협정 이후 작은 변화는 ‘아이들의 스포츠’에서 시작됐다. 풀뿌리 운동단체인 피스 플레이어가 판을 깔았다. 중립적 종목인 농구에 양측 청소년들을 끌어들였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이후 종목을 늘려 나가면서 축구 공동응원까지 발전했다. 이제는 양측 정당 간 관계보다 양측의 종목별 체육협회 간의 사이가 더 돈독해졌다. 화상으로 발제한 미첼 교수는 “스포츠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하지만 어떤 평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남영호 신한대 교수는 북아일랜드에서 스포츠의 의미를 ‘평화의 일상적 재생산’으로 요약했다.

2018년 2월4일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에서 열린 여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스웨덴팀과 맞붙은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단일팀 선수들이 경기 전 작전을 짜면서 머리를 맞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종종 다른 나라 사례를 들여다보게 된다. 역사적 맥락과 갈등의 구조는 다를지언정 영감과 아이디어를 주기 때문이다. 이종수 연세대 교수가 소개한 동·서독의 스포츠 교류 사례는 자괴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올림픽과 몇차례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서독이 단일팀으로 출전한 경험은 횟수의 차이는 있지만, 그리 새로운 게 아니었다. 남북한이 각각의 국가 대신 ‘아리랑’을 불렀다면, 동·서독은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불렀다. 국기가 문제 됐을 때는 오륜기로 대체했다. 단일팀을 결성하지 못하고 국제대회에서 동·서독 팀이 맞붙을 때면 “우리는 우리와 싸운다(wir gegen uns)”며 자조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와 달리 동족상잔의 경험이 없는 동·서독은 분단 직후인 1946년 ‘작은 스포츠 국경교류’에 합의하고 체육교류를 시작했다. 1961년 베를린장벽 건설 이후 한동안 중단됐다가 4년 뒤 재개됐다. 동·서독 체육회 회장 간에 ‘스포츠 교류 의정서(1972년)’를 체결해 민간이 교류의 주역이 됐지만, 분단정치의 입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단일팀 구성 역시 일회적 이벤트로 흐르기 십상이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동·서독 청소년 간 스포츠 교류였다. 1981년 양독 정상회담에서 청소년 교류 활성화에 합의하면서 특히 스포츠 교류에 중심을 두었다. 그 결과 1987년 서독 학생 2만2000여명이, 다음해엔 2만2681명이 동독을 방문했다.

지난 2월9일 강원 평창 알펜시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평창평화포럼 마지막 토크콘서트 참석자들이 2018년 8월 평양에서 열렸던 국제유소년축구대회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 대형 화면에는 당시 대회를 조직했던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이 말하고 있는 장면. 김진호  

■ “우리는 우리와 싸운다”
분쟁과 갈등의 양 당사자가 마음과 마음을 나눌 공간을 마련하지 못할 때 스포츠는 그 플랫폼이 된다. 성인보다는 청소년 스포츠 교류의 문이 더 쉽게 열릴 수 있으며, 더 지속적이다. 평창평화포럼을 준비한 평창기념재단 측이 스포츠를 통한 평화 증진 세션을 마련한 까닭은 이번 포럼의 가장 큰 주제가 2024 강원 동계 청소년올림픽(YOG)이기 때문이다. 같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주최하지만, 성인 올림픽의 성공 여부가 투자와 경제 개념으로 환산된다면, 15~18세 선수들이 참가하는 YOG의 기본원칙은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과 함께하는, 청소년에 의한(For, With, and By Youth)’ 대회이다. 경쟁과 배움 및 경험의 공유가 중요하다. 유럽 지역대회는 이름 자체가 ‘축제(유럽청소년올림픽축제)’이다.

IOC가 조직한 하계 YOG는 2010년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4년마다 열려왔다. 난징(2014), 부에노스아이레스(2018)로 이어졌으며 2026년 세네갈 다카르에서 열린다. 강원 동계대회는 인스브루크(2012), 릴레함메르(2016), 로잔(2020)에 이어 4번째 대회가 된다. 아시아에서 처음 열린다. 평창포럼에 화상으로 실시간 참가한 비르지니 파이브르 로잔 대회 조직위원장은 “YOG를 혁신을 위한 연구소로 여겼다. 청소년들의 역량을 증진시키는 것이 대회(유치)의 큰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최문순 강원지사가 지난 2월9일 평창 알펜시아 컨벤션센터에서 2021평창평화포럼 마지막 날 행사를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진호

강원도가 2024 동계 YOG를 유치한 것은 작년 1월이지만 한 해가 넘도록 국내에서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평창포럼에선 대회조직위의 홍보 부족을 탓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게 나왔다. 하지만 사교육 부문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이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함을 남긴다. 세계 아이들이 교류할 기회를 마련해놓고도, 정작 주최국이 ‘글로벌 공교육 축제’의 기회를 못 보는 근시안임을 확인시켜 주는 증좌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강원 2024’의 의미는 통상적인 YOG에 그치지 않는다. IOC와 강원도는 유치 단계에서부터 ‘평화’를 함께 기획했다.

■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과 함께하는, 청소년에 의한 올림픽’
우선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공식 대회 이름에 개최 도시가 아닌, ‘지방(道)’을 넣었다. 포럼 개막식에 온라인 축사를 보낸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성취한 평화정신의 계승을 강조했다. 대회 명칭에 ‘강원’을 넣음으로써 자연스레 남북 강원도가 모두 참가하는 대회로 이끌자는 의도였다. 북측이 공동개최에 응한다면, 남측 강원도 한 도시(강릉·정선·평창 중 1곳)와 북측 강원도 원산이 개막식과 폐막식을 나눠 열 수도 있다는 게 IOC와 강원도의 입장이다.

2018년 8월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국제 유소년(U-15) 축구대회에서 맞붙은 남북 청소년 축구팀의 경기 장면. 관중석은 단체관람을 나온 학생들로 빼곡하게 찼다. 2019년 10월 같은 장소의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남북한전은 무관중으로 치러졌다. 김진호

최문순 강원지사(사진)는 포럼 마지막 날인 9일 “대회장부터 남의 강원지사와 북의 강원도당 위원장이 맡아 IOC와 대회 공동계약자가 되자”면서 ‘2024 강원’의 남북 공동개최를 공개 제안했다. 북은 물론, 남에서조차 별다른 반향을 받지 못한 제안이다. 지역 언론에서 반짝 주목을 받았을 뿐이다. 남북관계는 2019년 2월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동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국 간 회담은 물론 민간 교류도 단절됐다. 작년 초 코로나19의 대확산이 재개를 더욱 어렵게 해왔다.

YOG의 공동개최는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2020 로잔 대회의 경우 79개국에서 선수만 1788명이 참가했다. 관계자들까지 포함하면 그 몇배의 손님들이 찾는다. 2024년 대회까지 남은 시간은 3년. 그사이 온갖 대회 준비 과정을 함께하자는 게 강원도의 염원이다. 이를 계기로 남북 강원도가 운동장에서나마 통일을 경험하고 싶은 것이며, 지속 가능한 청소년 체육교류로 살려 나가고 싶은 것이다.

2021평창평화포럼 행사장인 강원 평창 알펜시아 컨벤션센터 복도에 전시된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북단일팀 유니폼. 김진호

■ ‘2024 강원’을 어떻게 치를 것인가
분단정치의 장벽을 넘어 청소년들이 같은 그라운드에서 같은 공을 다퉜던 경험은 남북 간에도 있다. 2018년 10월 춘천 대회까지 5차례 열렸던 아리스포츠컵 국제유소년축구대회가 그것이다. 1회 대회(2014)는 북측 선수단이 포격전이 벌어졌던 연천을 찾았고, 2회 평양 대회(2015)는 목함지뢰 사건으로 북측이 선언한 ‘준전시상태’에서 치러졌다. 중국 쿤밍에서 3회 대회를 치른 뒤 2018년엔 평양(4회)과 춘천(5회)을 오가며 열렸다. 특히 2015년 8월 평양 대회는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과 겹쳤다. 대회를 이끌어온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은 “경기 개막 당일 새벽까지 개최 여부가 불투명했지만, 극적으로 열린 개막식에 김일성경기장을 꽉 메운 관중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회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4월5일 ‘평화경제 비전전략 보고회’에서 “국제유소년축구대회는 남북관계가 단절된 시기에도 중단되지 않고 이어온 대표적인 평화교류사업”이라고 평가한 까닭이다.

이번엔 성인 스포츠도 아니고 아이들 스포츠다. 아이들이 함께 공 좀 차겠다는데, 얼음 좀 지치겠다는데 언제까지 막을 것인가. 체육사를 뒤지다가 발견한 오래전 연설문의 한 단락을 당시 표기 그대로 전한다. 독립투사이자 체육인이었던 몽양 여운형 선생이 1936년 9월10일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하는 조선인 선수들을 환송하며 한 말(월간 삼천리)이다.

“이 청년선수들에게 천하를 맛겨봅시다. 받다시 하놀 공중 놉히 공을 차 던지듯 천하를 잘 운전하여갈 것입니다.”

평창평화포럼장에는 한반도 분단을 상징하는 철책 상징 모형이 전시됐다. 사슴이 뛰놀고 새가 날아오르는 모습이 담겼다. 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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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라도 과거를 무시할 수 없다. 역사를 왜곡, 부인하고 희생자들을 탓하는 장난을 일삼는 일본 내 일부의 기도는 역겨운(nauseating) 부정이다.”

 

10여년 세월을 거슬러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HR121)을 놓고 미국 하원에서 벌어졌던 열띤 논의 과정을 들여다보았다. 미국 의회와 행정부는 역할이 확연히 다르다. 의회가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행정부는 가치보다 현실정치의 국익을 놓지 않는다. 

 

2007년 여름, 톰 랜토스 하원 외교위원장(민주·캘리포니아)의 말에는 강도 높은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즈음 위안부들의 자발적인 매춘행위였다고 주장한 일본 국회의원들의 워싱턴포스트 의견광고에 대해 “‘성폭행(rape)’이라는 단어의 뜻조차 모르는 사람들”이라며 “세계는 일본 정부가 전면적인 책임을 질 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질타했다. 현장에서 목도한 랜토스 위원장의 분노였다.

 

지난 12월 10일 북한 평양의 한 옥수수 가공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옥수수 국수의 면발을 주의깊에 바라보고 있다. AP통신이 북한의 세밑 표정으로 보낸 사진 중 하나다. AP연합뉴스

 

미국 하원 외교위 아·태소위원회 위원장으로 함께 위안부 결의안을 주도했던 에니 팔레오마배가는 2년 전 타계했다. 그의 비서실장이었던 리사 윌리엄스는 경향신문에 보내온 HR121 채택 10주년 기념 기고문에서 “랜토스 의원의 도움이 없었다면 HR121 통과가 불가능했다”고 회고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랜토스는 미국 상·하원에서 유일한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다. 의회 내 인권의 수호자였다. 공화당 의원들과 1983년 초당파 인권옹호 의원그룹(코커스)을 만들어 쿠웨이트와 이라크, 미얀마에서 벌어졌던 인권탄압을 고발하고, 규탄했다. 그가 암투병 끝에 2008년 사망하자 의회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법안 발의로 랜토스 코커스를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TLHRC)’로 제도화했다.

 

랜토스가 다시 소환되고 있다. 국회가 최근 통과시킨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이 계기다. 랜토스 위원회가 ‘표현의 자유’를 들어 이 법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진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13년 전 한국민의 울화를 잠시나마 풀어주었던 랜토스의 이름이 이번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한국 정부와 미국 의회 간 불협화음을 내는 데 쓰일지도 모른다. 일부 한국 언론은 ‘그럴 것’이라고 단정한다. “큰일 날지도 모른다”는 가정 위에 서 있다.

 

북한 평양의 령용 김치공장에서 근로자들이 김치를 담그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러나 117대 연방의회는 아직 개원도 하지 않았다. 위원회가 논의한다고 위안부 결의안처럼 의회 차원의 행동이 잇따르는 것도 아니다. 설령 의회가 나선다고 해도 현실정치(Realpolik)를 다루는 행정부가 덩달아 나설 가능성은 더 적다. 위안부 결의안 통과 뒤에도 조지 부시 행정부와 아베 신조 일본 내각이 서로 얼굴을 붉히기는커녕 밀월관계를 유지한 것과 같은 이치다. 더구나 다음달 취임하는 미국 행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저잣거리의 흥정으로 전락시킨 동맹관계의 복원을 거듭 다짐해온 조 바이든 행정부다. 몇단계를 뛰어넘는 상상력으로 가정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한반도 현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정치’로 오인받기 십상이다. 

 

랜토스 위원회는 세계인권선언의 대의를 바탕으로 한다. 이달만 해도 나이지리아 중부의 분쟁 및 학살, 남북 아메리카 원주민의 인권, 중국의 종교 자유, 아이티 인권, 러시아 인권 등을 놓고 청문회를 벌였다. 북한 인권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탈북민들이 북한을 탈출한 뒤 겪는 곤경과 북한 장마당에서 벌어지는 인신매매, 종교박해 등의 주제를 놓고 청문회를 벌여왔다. 2018년 6·12 싱가포르 북·미 회담 뒤에는 양국 간 협상에 인권이 포함돼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의회의 전통적 입장이다. 

 

하지만 의회와 행정부가 구성하는 미국이 늘 숭고한 것은 아니다. 그 반대 경우가 더 많다. 가치와 국익이 부딪치면 선택지는 대부분 국익이었다.

 

북한이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다음날인 지난 6월17일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황해도 개풍군의 농촌 모습. 북한군 초소 너머로 소달구지를 끌고 걸어가는 주민들이 보인다. 이상훈 선임기자

 

미국이 1970년대 마오쩌둥의 중국과 데탕트를 한 것은 중국의 인권 수준이 흡족해서가 아니다. 미·중·소의 전략적 삼각관계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현실정치의 산물이었다. 박정희 군사정부를 비롯해 1970~1990년대 세계 곳곳의 독재정권을 지지했던 것은 지나간 냉전의 연대기로 치자. 미국은 여전히 봉건적 왕정체제하에서 인권탄압이 일상화된 사우디아라비아와 우방이다. 2년 전 자국 언론인을 잔인하게 살해했지만, 미국이 사우디와 관계를 단절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영국 런던에 8년째 갇혀 있는 줄리언 어산지는 어떤가. 미국 정치인, 외교관들의 e메일과 비밀전문을 공개한 그는 ‘표현의 자유’의 영웅으로 칭송받기는커녕 2010년부터 미국 사법당국의 추적을 받고 있다. 지난달 말 테헤란 거리에서 발생한 이란 핵과학자 암살의 배후로 지목되는 이스라엘은 ‘중동 민주주의의 횃불’(힐러리 클린턴)이다.

 

한반도 북쪽의 인권 역시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온갖 추잡한 방식으로 북한 ‘최고 존엄’을 희화한 대북전단과 인권은 생뚱맞은 조합이다. 집에 불이 나도 최고 존엄의 모습이 담긴 ‘1호 사진’부터 챙기는 북한의 관행은 보편적이지 않다. 미국이 겉과 달리 속으론 끊임없이 북한 체제를 전복하려 한다는 의혹도, 적어도 행정부 차원에선 개연성이 적어 보인다. 하지만 북한이 그러한 가치체계를 갖고 있고, 그렇게 의심하고 있는 건 바뀌지 않는다. 전단 살포가 생업이 된 듯한 일부의 일탈이 접경지역 주민들 안전을 위협하는 것 역시 현실이다.

 

북한 잡지 <조선> 12월호 1쪽에 소개된 사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당 중앙위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인민사수전으로 이어온 2020년'이 상단에 보인다. 인터넷 캡처

 

물론, 아무리 현실적 필요를 들이대더라도 이번 개정안에 석연찮은 대목들이 녹아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2017년 4·27 판문점선언 2조 2항에서 서로 없애기로 합의한 것은 ‘군사분계선 일대’의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다. 공간 및 ‘전단’의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았다. 일각의 지적처럼 굳이 법이 없이도 전단 살포를 막을 방안도 있었다. 추진 일정도 의혹을 일으킨다. 청와대가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 뒤 입장문을 내놓은 것은 대북전단이 살포된 지 열흘이 지나서다. 지난 6월11일 입장문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고 우발적 군사충돌을 방지하기 위하여 남북 간 모든 합의를 계속 준수할 것”을 다짐하며 대북전단 살포 중단을 다짐했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의 담화(6월4일)와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6월5일) 등 북한의 집중비난에 쫓기듯 나왔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북측은 16일 개성공단 내 남북연락사무소를 끝내 폭파했다.

 

여당은 왜 연말에 이러한 법을 굳이 만들어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것일까. 한반도가 걸어온 한 해를 돌아보면 실마리가 잡힐지도 모른다. 2020년은 남북 모두 한반도 긴장 완화에 실패한 한 해였다. 올해 신년사를 대체한 조선노동당 중앙위 제7기 5차 전원회의(5중전회) 결정문에서 ‘정면돌파전’을 강조했던 북한은 ‘인민사수전’으로 날을 지새웠다. 인민사수전은 북한의 화보잡지 ‘조선’ 12월호가 한 해를 돌아보며 규정한 말이다. 코로나19와 잇단 자연재해 탓에 수세에 몰린 한 해였다.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부강, 자력번영하겠다”는 다짐은 지난여름 수해 복구를 위한 80일 전투로 대체됐다. 10월10일 당 창건 75돌 경축 열병식에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선보였지만, 연초부터 경고했던 ‘충격적인 실제 행동’은 없었다.

 

지난 16일 북한 평양의 정보기술사무소 직원들이 건물 내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당 창건 기념연설에서 기왕의 대북제재에 코로나19 방역, 대규모 수해 복구의 3중고에 시달린 한 해를 돌아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완성 연도였던 올해 경제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시인했다. 지난해 이맘때쯤만 해도 북한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운운하며 으름장을 놓았었다.

 

올해 신년사에서 “한반도 문제의 국제적 해결에 앞서 남과 북 사이의 협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진지하게 함께 논의하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은 공염불이 됐다. 상반기까지 남북의 간접 접촉은 남측 민간의 대북전단 살포와 북측 당국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가 유일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반전은 9월에 왔다. 서해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 사건이 발생했지만, 그전에 남북 정상이 교환한 친서에서 공감이 오갔다.

 

부부로 보이는 북한 주민들이 2018년 10월23일 금강산을 산책하고 있는 모습. 김덕훈 북한 내각 총리가 금강산관광지구 개발사업 현장을 시찰했다는 20일 조선중앙통신 보도 뒤 AP통신이 전송한 자료사진이다. 김 총리는 금강산 독자개발 의지를 거듭 피력하며 “온 세상이 부러워하는 문화휴양지로 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 사진과 함께 금강산을 가볼만한 관광지로 소개했다. AP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9월8일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수차례 태풍피해로 인한 북녘의 어려움 극복을 기원했고, 김 위원장은 ‘끔찍한 올해의 이 시간들이 속히 흘러가고 좋은 일들이 차례로 기다릴 그런 날들’을 기약했다. 11월3일 남북이 모두 주목했던 미국 대선이 끝났다. 미·중 갈등은 바이든 행정부에도 방식을 달리할 뿐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새해 한반도 정세에 새로 닥쳐올 변화의 앞날을 예측하기 힘든 시간이다. 정부·여당이 연내 밀어붙인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은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결정으로 읽힌다.

 

다시 랜토스로 돌아가보면,

그는 교과서적인 인권의 가치만 좇은 정치인이 아니었다. 2005년 1월 평양을 방문해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지지했다. “오랫동안 북한에 관심을 가져왔다. 미·북관계 정상화를 강력하게 희망한다”(2007년 7월 VOA 인터뷰)고도 했다. 첫 방북길에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등을 만나 ‘리비아 모델(선핵포기, 대미수교)’을 권했다가 북한의 강한 거부감을 확인했다. 의회 직원으로 방북을 수행했던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전 랜토스 의원과 김 부상의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리비아식 해법을 공개 반박했다.

 

생전의 톰 랜토스. 부다페스트 태생의 유대인으로 16세에 나치 치하의 헝가리에서 강제노동수용소에 갇혔다가 두번째 탈출에 성공, 부다페스트 내 안전가옥에서 2차대전 종전때까지 피신했다. 가족은 나치에 몰살됐다. 1950년 유학왔던 미국에 영구정착했다.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경제학 교수를 거쳐 1981년부터 암투병 끝에 작고한 2008년 초까지 하원의원을 지냈다. 그는 평생을 투사로 지냈다. 처음엔 파시즘과 싸웠고, 나중엔 인권과 환경을 위해 싸웠다. 위키페디아

 

랜토스 청문회가 다음달 열린다고 해도 같은 달 예정된 다른 두 행사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1월20일 바이든 행정부의 취임식이 있고, 북한의 8차 당대회는 그 전에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은 북한이 당대회에서 대남·대미 기조를 내놓기 전 선제적으로 건넨 선물 또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할 수 있다. 논란을 줄일 여지가 있었지만, 이제 와 되물릴 수도 없다. 법을 고쳐 쓰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게 유일한 선택지다. 자충수가 될 수도, 마중물이 될 수도 있다. 그 책임은 온전히 정부·여당이 걸머져야 한다. 과연 남북관계의 물꼬를 열고, 그리하여 위협 감소 역할을 했는지, 일정 시점 뒤 결산할 일이다. 맞다. 랜토스는 나치와 싸운 투사였다. 하지만 평화공존은 고민해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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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ino's gino's 2021.01.15 13: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화일보 : 2020년 12월 17일

    <특별 기고>
    대북전단금지법 ‘재개정’ 권고한다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보편적 가치인 표현 자유 침해
    세계인권선언 19조 위반 여지
    징역형까지 부과한 것은 과도

    접경지 위협 감소 필요하지만
    제3국 국경 활동을 규제하거나
    정보 전달 포괄적 금지가 문제

    최근 대한민국 국회에서 통과된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이른바 대북전단금지법안)은 북한 주민들의 삶을 향상시키려는 목적에서 이뤄지고 있는 탈북자들 및 시민단체의 다양한 활동에 엄격한 제한을 가하고 있다. 이 같은 활동은 세계인권선언 제19조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 보장 차원에서 보호되는 것들이다. 이런 관점에서 남북한 사람들이 국경에 상관없이 정보와 사상을 주고받을 권리는 보장돼 있다. 한국이 준수해야 할 국제인권법에 따르면, 표현의 자유 제한은 반드시 법에 의해 규정돼야 하며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선 구체적 필요성이 적시돼야 한다. 그 제한은 동기와 행동에 대한 엄격한 규정 속에서 이뤄져야 하고, 그에 따른 비례적 억지력도 수반돼야 한다.

    이 개정안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전단 등을 살포하는 행위를 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형을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은, 행동이나 활동을 제한하기 위해선 반드시 최소한의 저지 수단을 써야 한다는 점에서 비례성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 또한, 민주주의 사회의 주춧돌(cornerstone)인 표현의 자유에 기초한 활동을 제어하기 위해 징역형을 부과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선 과도한 조치다. 법안은 법률의 다른 방법으로 제재하는 대신 징역형으로 처벌해야 하는 정당한 이유를 제시하지도 않았다.

    특히, 개정안은 금지되는 구체적 행위를 특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명확성을 결여하고 있다. 단지 “전단 등이라 함은 전단, 물품(광고선전물·인쇄물·보조기억장치 포함), 금전 또는 그 밖의 재산상 이익”이라고 일반적으로 열거하고 이것을 살포하는 여러 행위(제4조 5·6항으로 ‘살포’라 함은 선전·증여 등을 목적으로 전단 등을 승인 없이 북한의 불특정 다수인에게 배부하거나 북한으로 이동시키는 행위를 말한다고 적시하고 있음)를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이 같은 불확실하고 모호한 조항은 국제 인권 기준에 배치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판단의 재량(margin of appreciation)을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겨선 안 되는 것이다.

    나아가 보편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필요성이 요구된다. 표현과 위협 사이에서 제기되는 즉각적이고 절박한 연관성이 입증돼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접경지 일대에서 국민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협이 되는 행동의 방지 필요성은 정당한 목적이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접경지 활동과 그러한 위협 간의 직접적이고 긴급한 관련성은 입증되지 않았다. 몇 년 전 전단 관련 사건이 있었을 뿐이다.

    더 나아가 인명이나 신체에 가해질 위해나 심각한 손해의 방지 필요성은 제3국에서의 그 같은 활동을 방지하는 것으로까지 적용돼선 안 된다. 이 법에 명시된 그 같은 제한은 시민단체가 제3국 접경지에서 진행하는 북한 주민 보호 활동까지 제한하고 있다. 당초 이 법안은 군사분계선(MDL) 지역 주민들을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에 근거해 제안됐음에도 그렇게 확대된 것이다.

    법안에는 국경지대에서 영향을 주는 탈북자의 활동을 제한할 필요성까지 명시돼 있다. 탈북자들이 남북합의를 위협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남북합의는 몇몇 조항에서 국가안보적 필요성 차원에서 해석될 수 있고, 그것은 국제인권법 차원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합의에서 중지가 언급된 탈북자들의 활동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 및 전단살포 금지뿐이다.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일체의 적대행위를 중단한다는 판문점선언 제2조 1항 참조) 이 같은 이유에서 제3국을 포함한 다른 모든 접경지에서 시민단체들의 활동은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보호돼야 한다.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채 그저 적대행위로 간주된다는 이유로 법에 의해 금지돼선 안 된다.

    개정안은 국제 인권 기준에 근거해 대한민국 국회에서 민주적 토론에 따라 마련된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언급한대로 법안에는 결점이 너무 많다. 따라서 이런 판단에 따라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으로서 이 법이 시행되기 전에 민주적 기관(democratic institution)이 적법 절차에 따른 검토를 거쳐 보완할 것을 권고한다.

윌리엄 페리 미국 대북정책조정관이 1999년 9월22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만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당신 친구 김대중은 (나를 만났을 때) 왜 그렇게 화가 났나요.”(조지 W 부시 대통령)
“노벨평화상을 받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이끈 그 사람 말입니까? 그는 나의 친구가 아니라 내가 존경하는 사람입니다.”(조 바이든 상원 외교관계위원회 위원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2007년 자서전 <지켜야 할 약속들(Promises to Keep)>에서 소개한 이야기다. 김대중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첫 회동은 서로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부시 대통령이 내뱉은 ‘이 사람(this man)’이라는 말이 언론에 회자됐지만 기실, 공산주의를 불신하는 부시가 햇볕정책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동시대 민주당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열렬한 지지자였다. DJ와의 인연은 그가 군사정권의 탄압을 받아 미국에 체류하던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의 장신기 박사가 지적하듯 “역대 어떤 미국 대통령보다 한국과 한반도 문제에 이해가 깊은 미국 대통령”이 탄생하게된 것은 맞다.

미국 대선 이후 내년 1월20일 들어설 바이든 행정부의 대한반도 정책에 국내에선 벌써부터 기대와 우려가 넘실댄다. 우려는 ‘오바마 3기 행정부’가 될 것이라는 예상과, 기대는 ‘클린턴 3기 행정부’가 될 것이라는 예상과 각각 연결돼 있다. ‘전략적 인내’라는 미명하에 임기 8년 동안 한반도 문제 해결 노력조차 하지 못했던 버락 오바마의 전철을 밟을지, 아니면 빌 클린턴 행정부가 임기 말 끝내 이루지 못했던 평양방문과 북·미 관계정상화의 수순을 밟을지는 현 단계에서 미지수다. 문제는 한국 사회의 ‘이른바 진보’ ‘이른바 보수’ 모두, 구미에 맞는 기억만 편식한다는 점이다. 바이든과 DJ의 인연만 새삼 부각되는 게 아니다.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92)도 소환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12월 8일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당선자 사무실에서 보건부 및 코로나 대응팀 인선을 발표한 뒤 대화를 나누던 중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지난달 18일 페리와 3자 화상 간담회를 가졌다. 통일부가 짤막하게 내놓은 보도자료는 페리의 발언내용을 인용부호 없이 소개했다. ‘북한의 핵 능력 진전 등 당시와 상황은 변했지만,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해법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한·미 공동으로 한층 진화된 비핵화-평화 프로세스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는 것이다.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페리는 최근 몇년 동안 일관되게 외교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해결할 기회는 이미 놓쳤다는 입장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과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가 지난 2일 공동 주최한 화상 국제 콘퍼런스에 참가한 페리의 발언내용을 보고 더욱 짙어진 통일부의 편집 의혹이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페리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협상대표가) 북한의 핵무기 포기를 원한다면,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임무’이다. 그 전제에서 출발하는 어떤 시도도 실패할 것이라고 본다”고 단언했다. 페리는 북한의 핵보유 목적은 궁극적으로 체제 안전보장이기에 다른 무엇보다 북한의 ‘정상국가화(normalization)’를 유도해야 한다는 지론을 거듭 펼쳤다. 페리가 낙관한 것은 남북한이 협력해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이끌어낼 가능성 뿐이다.

페리가 ‘북·미 관계의 정상화’가 아닌,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강조하는 것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보다 장기적인 구도가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는 북한의 오랜 숙원이다. 2018년 6월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4가지 합의 중 제1항으로 ‘새로운 북·미관계의 수립’을 앞세웠다. 페리 역시 클린턴 행정부에 내놓았던 ‘대북정책 재검토 보고서(페리보고서)’에서만 해도 “북한이 핵과 장거리 미사일 위협을 없애려고 움직인다면, 미국은 대북 관계 정상화를 하고, 교역을 막아온 제재를 완화할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기밀해제된 페리 보고서의 표지

미국은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와 관계정상화를 하면서 해당국가의 정상국가화를 전제로 하지 않았다. 중국과 베트남이 궁극적으로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들어올 것이라는 예상 또는 기대만 갖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과 베트남의 경우 수교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없었다. 북한이 핵무력을 보유하고 있는 한, 조약체결권을 쥔 상원을 설득해 대북 관계 정상화를 시도할 미국 대통령은 없다.

페리의 한반도 내비게이션은 그 자신이 페리보고서에 쓴 대로 “우리가 바라는 대로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북한과 상대해야 한다”에서 출발한다. ‘있는 그대로의 북한’은 페리 프로세스가 만들어지던 1990년대 말의 북한이 아니다. 북한이 폐연료봉을 재처리,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하려던 단계에서 나온 게 페리 프로세스이다. 북한은 이제 핵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유국이다. 페리는 “북한은 이제 미국이 무엇을 제공하고 무엇을 제안하든 ICBM을 실전에 배치할 때까지 시험발사를 멈추지 않을 것이며, 몇년 내 수소폭탄을 포함한 핵무기를 미국은 물론 전 세계로 실어나를 능력을 갖게 될 것”(2017년 5월 미국군축협회 언론설명회)이라고 본다.

페리가 가장 방점을 두는 대목은 비핵화 외교가 아니다. 핵전쟁의 방지 또는 위협 감소다. 한반도에서 서로를 비난하는 말의 전쟁이 재래식 전력 충돌을 야기함으로써 핵전쟁 위협을 높이는 것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본다. “창조적이고 진지한 외교는 여전히 필요하지만 그 목표는 북한의 핵포기가 아닌, 핵전쟁의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다. 국내 일각에선 바이든 정부를 설득해 북·미 협상을 진작해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페리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미국이 가장 먼저 착수해야 할 외교 상대국으로 꼽은 나라는 북한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27 판문점 정상회담 당시 ‘도보다리’ 산책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동맹국들이 미국의 확장억지력에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인식이다. 바이든이 포린어페어스 올해 3/4월호 기고문에서 북한 문제와 관련 “미국의 동맹국들과 중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와 함께 지속적이고 조율된 캠페인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힌 것과 중첩된다. 바이든은 비확산·핵안보 정책으로 “트럼프는 이란에서 북한,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새로운 핵무기 경쟁은 물론,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높여놓았다”면서 그 해법으로 ‘새로운 시대의 군비통제(arms control for a new era)’를 제시했다. 

미국이 지금까지 성공한 비핵화의 사례는 1990년대 구소련 국가들의 핵무기를 제거한 협력적위협감소(CTR)와 오바마 행정부가 타결지은 이란핵합의(JCPOA)의 두개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 비핵화 해법으로 두 가지 방식의 성공적 요소를 담으려는 노력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토니 블링큰 국무부 장관 지명자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 등이 JCPOA 협상에 참여했었다는 점에서 북핵에 적용 여부가 새삼 주목받는 해법이다.

토니 블링큰 미국 국무부 장관 내정자가 국무부 부장관 시절인 2015년 10월6일 한국을 방문, 서울 도렴동 청사에서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PA연합뉴스

CTR과 JCPOA에 모두 참여했던 어니스트 모니즈 전 에너지부 장관은 2년 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비핵화 협상을 “복잡하지만 단계별로 협상에 착수해 매 단계 검증의 기준(bar)을 높여가면서 실질적인 합의서를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비핵화의 골격은 핵실험시설-핵물질-핵무기를 순서대로 제거하는 3단계이며, 각 단계마다 다시 몇개의 작은 단계로 나누어 협상하는 것이다. 핵물질은 생산중단-불가역적 전환-제거의 작은 3단계를 다시 거치는 식이다. 끊임없는 협상과 그에 따른 합의를 쌓아가면서 각각의 합의를 토대로 완성도를 높여간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핵협상에 착수한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현란한 리얼리티 쇼 대신 우리가 보게 될 상향식 협상의 지루한 게임이다. 한국·일본·중국·러시아의 역할은 북·미 협상의 마지막 단계에서 다국적 합의에 포함된다.

바이든이 해야 할 일이자,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다. 남북관계 개선을 도울 길은 묘연하다. 바이든은 대선을 앞두고 연합뉴스에 보낸 10월29일자 기고문에서 ‘원칙에 입각한 외교’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방안으로 내놓았다. 그 ‘원칙’엔 동맹우선만 있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법과 규범이 앞세워져 있다. 북한과 관련한 미국의 법과 규범에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독자제재가 필연적으로 포함된다.

바이든은 지난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조건부 제재완화 요구를 거부했던 트럼프와 달리 북한이 핵능력을 감소시킬 경우 제재완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인도적 지원은 정치와 무관하다는 입장도 바이든이 돌아갈 전통이다. 하지만 이 역시 다음달 초 치러질 조지아주 상원의원 2명 재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을 장악해야 쉬워진다. 미국의 수많은 대북제재법 중에서 ‘대북 제재·정책 강화법(2016년)’을 예로 들면, 대통령에게 대북제재를 보류 또는 해제할 권한을 주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제재를 풀려면 모든 대량살상무기 및 운반수단 폐기의 진전, 정치범 전원 석방, 평화적 활동 검열 중단, 개방·투명·민주적 사회 구축 등의 조건이 충족됐음을 의회에 입증해야 한다. 미국 대통령이 아니라 북한 최고 영도가 결단해야 할 대목이다.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부 장관과 이인영 통일부 장관,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지난 11월18일 화상 대화를 나누고 있다.   통일부 제공

더 궁금한 건 바이든의 대북정책이 아니라,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확인해야할 것은 희망이 아니라 정치적 용기다. 지난 4년 동안 숱한 ‘서정적 무대장치’ 위에서 내놓았던 약속들이 현재 어떤 지점에 있는지, ‘있는 그대로의 한국’을 재검토하는 게 우선이라는 말이다. 미국의 제재 완화를 걸기대하기 보다 우리의 대북 제재를 움직이는 게 더 현실적이기도 하다.

막연히 희망을 지피는 남북관계의 치어리더 역할은 민간단체와 운동가들에게 맡겨도 무방하다. DJ를 존경하고 햇볕정책을 지지했던 ‘상원의원 바이든’이 아니라 ‘대통령 바이든’이다. 북한 역시 20여년 전의 북한이 아니다. 이 점에서, 미국 상원 외교관계위원회 국장으로 바이든 위원장을 보좌했던 프랭크 재누지 맨스필드 재단 대표의 조언(11월17일 여시재 대담)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 적합하지 않은 역할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남북 협력을 촉진하는 도구가 될 수 없다. 다만 안보 딜레마 해소를 돕고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파트너는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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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것은 바람을 막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불가능하다. 국경을 봉쇄하고 하늘길, 바닷길을 막는다고 해도 어느새 틈입한다. 사람들이 그 존재를 확인하고 서둘러 국경을 봉쇄한 시점에 바이러스는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인류는 아직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을 방도를 찾지 못했다.

코로나19 확산 속에 마스크 착용은 북한에서도 필수가 됐다. 북한 노동신문은 국가차원에서 초특급 방역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야외나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것은 ‘나라 앞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지난 2월26일 평양 시내 광복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채 이야기를 하고 있는 두 행인. AP연합뉴스

북한 당국이 ‘신형코로나비루스’(코로나19)를 처음 언급한 것은 지난 1월21일이다. 강철진 보건성 국가위생검열원 처장은 이날 조선중앙TV 인터뷰에서 ‘새로운 악성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세계보건기구(WHO)와 긴밀한 연계 밑에 국가적인 방역사업을 벌여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 당국은 이후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12일 현재 WHO에 보고한 확진 사례 역시 ‘0’이다. 하지만 중국과 1420㎞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한에는 이미 코로나19가 발생했다고 가정하는 게 합리적이다. 중국과 1281㎞의 국경을 접하고 있는 베트남도 언론통제를 하는 당국가체제이지만, 12일 현재 39명의 확진자를 WHO에 보고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북한을 바라보는 국내외 시각에는 ‘우려’와 ‘기대’가 넘친다.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조건에서 북한의 현 상황을 짚고, 향후 파장을 내다보기는 쉽지 않다. 이 시점에는 부족할지언정 사실과 정보를 토대로 현황을 정리하는 작업이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온갖 소문과 가짜뉴스, 음모론은 두려움과 불확실성을 연료로 지펴지기 때문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월28일 한 군부대에서 훈련과정을 참관하고 있다. 김 위원장을 제외한 군 지휘부는 전원 검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AP연합뉴스

WHO에 따르면 중국 허베이성 우한에서 새로운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나온 것은 지난해 12월8일이다. 12월부터 3월 초까지는 ‘북·중 국경 밀수의 절정기’(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이다. WHO가 일일 상황보고에서 중국의 지방별로 코로나19 확진자를 표시하기 시작한 2월1일자(12호)에 따르면 북한과 접경한 랴오닝성과 지린성에서만 각각 60명과 17명의 확진자가 보고됐다. 정보의 신뢰도를 생각하면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1월30일을 기점으로 외국과 연결하는 육·해·공 통로를 전면 폐쇄했지만 중국과의 밀수 또는 국경무역은 그때까지 진행됐다. 북한은 같은 날 오후 11시쯤 남북 개성공동연락사무소도 닫았다. 랴오닝성과 지린성의 코로나19 확진자는 2월 중 3배가 늘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에 따라 12월22일을 전후해 본국에 강제송환된 북한 해외노동자들만 수만명에 달한다.

3월 초까지 북한 내에서 격리조치된 ‘의학적 감시 대상자’는 평안북도 3000여명, 평안남도 2420명, 강원도 1500여명으로 7000명에 육박한다. 평북과 함께 북·중 접경지역인 자강도, 양강도, 함경북도를 포함하고, 강원도 사례를 토대로 비국경 지역의 격리인원을 감안하면 1만명을 크게 상회할 것이다. 물론 의학적 감시 대상자라고 모두 코로나19 의심환자는 아니다. 박명수 북한 보건성 국가위생검열원 원장은 노동신문 기고문(1월26일자)에서 철저히 입원 격리시켜야 할 대상으로 ‘열이 있는 환자’나 ‘기존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는 폐렴 환자’ 등 두 부류를 꼽았다. 단순히 열이 있는 사람도 격리 대상이 된 것은 바이러스를 확진할 진단키트 및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2월22일 북한 평양의 무궤도 버스에 탄 승객들이 코로나19를 예방하기 위해 마스크를 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예방의학 전문가인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는 “북한이 중국이나 러시아 등 해외에서 간단한 항체 검사키트를 수입한 것 같다”면서 “아쉬운 대로 사용할 수 있지만 정확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사용하는 분자진단법(RT-PCR)이 정확하지만, 진단키트는 물론 기계장비와 실험실이 완비돼야 사용이 가능하다. 그 때문인지 아직까지 북한 매체의 관련 보도는 코로나19의 정확한 식별보다 “3만여명을 동원해 초특급 방역을 벌이고 있다”는 식의 ‘차단’과 ‘격리’에 쏠려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지난해 식량지원 요청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지원 제안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국제 적십자와 적신월,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국경없는의사들(MSF)과 WHO 등은 코로나19 대응에 필요한 의료용품 및 장비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국제적십자연맹(IFRC)은 유엔 대북제재위에 이러한 물품의 제재 제외를 공식 요청해 놓았다.

북한의 피해가 얼마나 될지 역시 미지의 영역이다. 분명한 사실은 코로나19와 무관하게 북한은 이미 각종 감염에 취약한 위험국가라는 점이다. 황나미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2011년 발표한 논문 ‘통일 대비 북한 전염병 관리를 위한 접근전략’에 따르면 북한 주민의 사망 원인에서 감염·기생충, 호흡기 감염·질환이 32%에 달한다. 다른 원인으로는 심혈관(35%), 암(11%), 비감염성 질환(10%)이 꼽힌다. 단일 감염 질환으로는 결핵이 가장 심하다. WHO의 연례 결핵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북한의 결핵 환자는 13만1000명, 이로 인한 사망자는 2만여명으로 추산된다. 2017년 사망자 1만6000여명에서 25%가량 증가한 수치다. 코로나19의 세계 평균 치사율인 3%보다 훨씬 치명적이다. 주민 1100만명(43%) 정도가 영양실조를 겪고 있어 감염에 더 취약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된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강조한 대로 그 후과는 심각할 수밖에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인 지난 2월16일 북한 주민들이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평양 만수대 김일성·김정일 동상 앞에서 꽃을 들고 추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각국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대목은 북한이 입게 될 경제적 피해와 그에 따라 달라질 한반도 안보기상도이다. 곳곳에서 북한이 제재를 견뎌내기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상 또는 기대 심리가 엿보인다.

코로나19는 결핵이나 다른 전염병보다 경제적 피해가 더 클 것으로 전망된다. 빠른 확산속도 탓에 외부와의 단절과 차단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제 문제는 유엔 제재와도 연결된다. 2016년 이후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개발과 관련해 내놓은 일련의 제재는 북한 교역량의 90%를 차단하고 있다. 2018년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마이너스 4.1%로 1997년 ‘고난의 행군’ 이후 가장 큰 폭의 내리막을 보인 이유다.

북한 경제는 작년을 기점으로 살아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최근 북한 경제가 지난해 풍작과 제재 우회 거래에 힘입어 1.8%의 성장률을 보였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올해 1월1일 조선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보도문에서도 “인민경제 거의 모든 부문이 현저한 장성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북한 경제는 2018년도 하락분을 일부 보전하기 시작한 시점에 다시 어려움을 맞은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2018년 20만명, 2019년 30만명으로 늘어 제재 속에서 숨통이 됐지만 올 상반기 중 관광 재개는 난망이다. 보따리상 또는 밀수를 통한 중국산 상품 공급이 원활치 못하게 되면 북한 경제의 혈맥 역할을 해온 장마당마저 흔들릴 수 있다.

북한 당국은 쌀과 콩, 경유, 가스 등 기본 생필품 가격이 올라가자 가격통제 정책을 펴는 한편, 콩의 재고를 방출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2009년 화폐개혁이 실패로 돌아갔듯이 공권력을 동원한 가격 통제에는 한계가 있으며, 북한 당국 역시 이를 알고 있을 터이다.

북한은 2월29일 보도된 당 중앙위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두 가지 결정을 내렸다. 당 간부들의 특세·특권·관료주의·부정부패 행위를 성토하고, 전염병이 들어올 수 있는 모든 통로와 틈을 완전봉쇄하는 것과 함께 검병, 검사, 검역 사업을 강화토록 했다. 북한이 섣불리 외부 지원에 손을 내미는 대신 자력 해결에 나선 것은 그만큼 올해 성장목표 달성이 절실하기 때문일 게다. 북한은 올 1월1일자로 공표한 노동당 중앙위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보도문에서 조선노동당 창당 75주년을 맞아 정치외교적, 군사적 공세로 정면돌파전의 승리를 강조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겠지만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부강, 자력번영하여 나라의 존엄을 지키겠다”는 다짐을 밀고 나갈 가능성이 더 높다.  

김재룡 북한 내각총리가 지난 2월 12일 평양의 한 건물에서 비상방역 회의를 주관하고 있다. 서 있는 김 총리는 물론 회의 참석자 전원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북한 분석관 출신인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지난 3일자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 두 가지 가능성을 제기했다. 우선 북한이 해상에서 원유 및 화물선을 통째로 교환하는 방식의 불법 거래도 쉽지 않아질 것인 만큼 유일한 경화 획득 수단인 사이버절도를 강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방식은 긴박한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북·미 핵협상에서 유연한 태도를 보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코로나19의 대표적인 파급 영향으로 북한 체제의 ‘제재 내구력의 약화’ 또는 ‘제재 효과의 증폭’을 들었다. 그는 11일 온라인 보고서에서 북한이 특히 중국과의 일시적 절연 조치를 내린 만큼 타격이 더 커질 것이라며, 코로나19 사태를 북한의 대남·대외정책 변화를 유도해나갈 기회의 창으로 짚었다. 

‘개성공단 마스크 공장 가동’과 같은 비현실적 제안 역시 코로나19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기회의 창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같은 맥락이다. 북한을 덮친 또는 덮치고 있을지 모르는 ‘인간안보’의 재앙이 결국 북한의 입지를 약화 또는 완화시킬 거라는 기대가 깔린 전망들이다. 

하지만 북·미 협상이 틀어진 것은 선(先)비핵화를 당연시하는 미국과 제재 완화부터 요구하는 북한 셈법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미·중 갈등도 여전하다. 남북관계 역시 미국의 최대압력(maximum pressure) 장벽에 막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본질이 아닌, 주변적 사안으로 접근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닌 것이다.  더구나 대역병은 함께 견디는 것이지 지정학적 타산으로 다룰 사안이 아니다. 코로나19는 묘안이 아닐 뿐더러, 묘안으로 활용해서도 안된다.

북한의 코로나19를 기회로만 보기 어려운 게 현 상황이다. 오히려 북한 인간안보의 재앙이 경제파탄으로 이어져 안보적 재앙으로 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이 이달 초 코로나19가 북한이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서 대북 제재의 완화를 거듭 강조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경제난이 초래할 대량탈북사태를 막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단기적 유·불리를 셈하기보다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인간안보와 경제난 및 동아시아 안보 위기를 통으로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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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ino's gino's 2020.03.14 23: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북한 코로나19 발병 꽤 확신"..김정은도 평양 비워
    김학휘 기자 입력 2020.03.14. 21:03 수정 2020.03.14.

    <앵커>

    북한은 코로나19 환자가 한 명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현재 2주가 넘게 평양이 아닌 동해안에 머물고 있는데요, 주한미군사령관도 북한에 코로나 확진자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학휘 기자입니다.

    <기자>

    미국 언론과 화상 인터뷰를 하던 주한미군사령관, 북한 내 코로나19 발병을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주한미군사령관 : 북한은 폐쇄된 국가라서 코로나19 발병 사례가 있다고 단호히 말할 수 없지만 우리는 발병 사례가 있다고 꽤 확신합니다.]

    30일 정도 북한군 움직임이 없었던 것이 코로나19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정부 관계자는 중국의 코로나19 확산 시기와 맞물려 북한군 동계 훈련이 이례적으로 2월 한 달간 중단됐던 것을 지적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2주 넘게 평양을 비우고 있는 것도 발병설을 키우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8일 이후 최근까지 동해안에 머물며 포 사격 훈련을 현지 지도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공식적으로 밝힌 코로나19 확진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 매체들이 밝힌 격리자 수만 1만 명에 육박합니다.

    평양 주재 외교관 등 외국인 380여 명도 격리 조치됐고, 이 중 100명 정도가 지난 9일 특별기편으로 러시아로 이송되기도 했습니다.

    북한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대북 매체들을 통해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조혜실/통일부 부대변인 (어제) : 확진자가 발생하면 WHO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는 점, 이런 것들을 고려해서 발표되는 (북한의) 상황을 계속 지켜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러시아 외교부가 북한에 코로나19 진단 키트를 전달했다고 밝힌 만큼, 조만간 북한에서 확진자가 공식 집계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평화를 주제로 하는 콘퍼런스에 평생 여러 번 참석해봤다. 여기 걸린 슬로건이 말해주듯 이번 포럼의 주제는 ‘평화! 지금 이곳에서(Peace! Here and Now)’이다. 오늘, 참석자들에게 왜 평화가 이뤄지지 않느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복잡한 문제라고 답했다. 물론 복잡한 문제다. 하지만 이뤄질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말로만 평화를 이야기한다. 무언가 행동을 하려는 사람은 없다.”

지난 2월 10일 강원 평창 알펜시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0 평창평화포럼 '동해선 철도와 유라시아 철도 연결' 세션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2018 평창기념재단 제공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타고난 투자가다. 그에게 평화는 돈이다. 평생 돈 되는 곳을 먼저 찾아내 거만금을 얻었다. 그런 그가 몇년 전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한반도가 향후 20년 동안(또는 10년, 15년 내)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투자 대상) 지역이 될 것”이라면서 평화 전도사를 자청하고 있다. 주한미군 철수와 ‘38선’ 철폐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는 군사분계선을 ‘38선’으로 표현했다. 남북한 모두 막대한 국방예산을 줄여 한반도를 젖과 꿀이 흐르는 번영의 땅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난 9일부터 사흘 동안 강원 평창 알펜시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0 평창평화포럼 안팎에서 로저스 회장을 처음 접했다. 77세라고 보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열정과 활기가 넘쳤다.

재작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성사된 남북 화해와 평화의 의미를 확대발전시키기 위한 포럼에서 그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종횡무진 활약했다. 9일 기자회견장에서는 “어제 비무장지대(DMZ)를 둘러보고 슬픈 생각이 들었다. 왜 아직도 많은 젊은이들이 죽을 걱정을 하면서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는지…”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대신 K팝 공연이나 예술 공연을 해야 하지 않겠나. 그런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하며, 일어날 것”이라고도 했다. 로저스가 전에도 몇 번 한 말이지만, 현장에서 듣는 감동은 달랐다. 언제 들어도 평화에 굶주린 한반도 거주민의 심금을 울리는 말이 아니겠는가.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지난 2월9일 강원 평창 알펜시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0 평창평화포럼 한국전쟁 발발 70주년 기념 세션에서 연설을 한 뒤 토론자(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평창평화포럼 참석한 짐 로저스
가장 많은 일정 열정적으로 소화
한반도에 대한 긍정적 비전 제시
2014년 방북 때 변화를 목도하고
북한을 유망 투자국으로 거론해와

크리스토퍼 힐 전 주한 미 대사는
북핵을 북·미 문제로 국한시키는
트럼프 행정부의 접근에 절망 표해
미국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로
한국·중국과의 ‘대화 확대’ 꼽기도

같은 일 반복되는 절망의 공간에서
희망의 한반도로 단번에 갈 순 없어
담론이 풍성하되 의지가 가난했던
‘평화의 잔치’ 다소 공허하게 느껴

 

그는 ‘남한’과 ‘북한’은 영어로 말했지만, ‘한반도’만은 시종 한국어로 정확하게 발음했다. 9일 저녁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만난 그는 북한의 청소년 여자축구팀을 지원했었다는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의 소개에 “남남북녀!”라며 한글 단어로 소감을 내놓았다.

포럼 공동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한 로저스는 가장 많은 공식·비공식 일정을 소화해냈다. 첫날은 기자회견과 개막식 및 좌담회에 참가했다. 둘째 날 오전에는 전체 세션 ‘동해선 철도와 유라시아 철도 연결: 한반도 신경제 구상’에 연사로 참석한 뒤, ‘원산-갈마, 금강산의 남북 공동 관광 개발’ 세션 토론자로 활약했다. 다른 어떤 참석자보다 많은 질문을 받고, 그때마다 초긍정의 비전을 제시했다.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이 지난 2월9일 2020평창평화포럼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통일은 남과 북의 국내 정치와 지정학, 비핵화가 포함된 고차방정식이다. 로저스는 지난해 11월 한국에서 출판한 저서 <앞으로 5년 한반도 투자 시나리오>에서 ‘정치’를 제거했다. 그는 “분명히 밝히건대 나는 통일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남북한 간의 ‘개방(opening)’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전제했다. 로저스는 자신이 모르는 주식은 사지 않는 것을 투자의 제1 원칙으로 삼는다. 오토바이와 개조한 차량으로 168개국 35만㎞를 밟았던 그다. 마찬가지로 직접 방문해보지 않은 나라의 미래를 확신하지 않는다. 로저스는 2007년과 2014년 두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저평가된 시장(국가), 재난 상태에 가까운 위기의 국가를 찾겠다는 생각에서 나선 길이었다.

로저스는 두 번의 방북에서 ‘김정일의 북한’과 ‘김정은의 북한’의 차이를 발견했다. 낙관의 근거다. 첫 방문에선 북한이 폐쇄적이고 제한적이라는 감상평을 확인했을 뿐이다. 경험을 풀어낼 에피소드조차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방문에서 북한에 ‘역동적인 기운’이 넘쳐 흐르는 것을 발견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선대에 볼 수 없었던, 급진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는 현장을 목도했다. 북한 관리들의 개방적인 태도도 확인했다. 나선경제특구의 장마당을 방문해 수백명의 사람들이 사고파는 현장을 볼 수 있었다. 북한 관리들은 “북한에 투자하라”면서 매력적인 인센티브와 투자자 이익 보장까지 장담했다. 그가 북한 투자가 유망하다는 말을 달고 다니기 시작한 계기다.

로저스는 2015년 5월 CNN머니 인터뷰에서 “김정은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있었다면 꿈도 꾸지 않겠지만, 지금의 북한은 매우 흥미롭다. 할 수만 있다면, 내 돈 전부를 쏟아붓고 싶다”고 말했다. “그 친구(The kid, 김정은)가 엄청난 변화를 일궈내고 있다”고 전했다. 로저스는 방북 뒤 투자자 강연에서 북한을 유망 투자국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실제 홍콩 소재 대북 투자기업인 우나포르테의 주주가 됐다고 2017년 3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밝혔다. 북한의 잇단 핵실험으로 미국민의 북한 투자를 금지하는 제재가 내려지자 2016년 2월 취득한 수 미상의 주식을 같은 해 9월30일자로 처분했다.

2009년 2월15일 당시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왼쪽)가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김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함께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편집기자는 지면용 사진으로 현재 힐의 모습보다 과거 비핵화 협상을 위해 활동하던 당시 사진을 선호했다.  서성일 기자

로저스는 저서에서 밝혔듯이 이후 “미국 시민의 북한 투자는 불법이라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그의 대북 투자 포지션은 ‘대기’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개방한다면’이라는 조건절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로저스는 그러나 ‘말하는 비즈니스(talking business)’를 이어나가고 있다. 강연만으로 돈이되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코리아타임스 인터뷰에선 “북한은 세계 관광지도에 등장한 적이 없기에 북한이 개방을 한다면, 관광은 분명 투자 기회”라고 강조했다. 남북의 국방예산 규모를 상기시키면서 “문재인은 트럼프에게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라고 말할 정도로 거칠지(tough) 않은 것 같다”고도 했다.

조지 소로스와 함께 1973년 퀀텀펀드를 설립한 로저스의 신화는 8년 동안 4200%에 가까운 투자수익률을 올린 데서 시작한다. 같은 기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지수는 47% 올랐다. 로저스는 37세이던 1980년 퀀텀펀드를 떠나 투자와 여행, 강연을 해왔다. 대학에서 역사와 철학을 공부한 그의 학력을 보면, 단순히 숫자만 좇는 투자자는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만의 특별한 낙관과 비전이 있을 것이다. 그의 한반도 비전은 꽤 오래됐다.

1999년 1월부터 2년 동안 자동차 세계일주를 하던 중 서울을 찾았을 때는 ‘북한군의 공격 위협 탓에’ 값이 싼 한강 이북 부동산 매매도 잠깐 생각해봤다. “북한 측에서 한강 이북지역의 값이 싼 부동산을 가능한 한 많이 매입한 다음 ‘평화!’를 외치면 엄청난 부당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다소 엉뚱한 발상도 했다. 여행기 <어드벤처 캐피털리스트>에 소개한 일화다. 부산에서 ‘맛난 개고기’를 시식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받은 인상이다. 그는 그때 이미 “궁극적으로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이 자리 잡을 것”을 확신했다.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지난 2월9일 평창 인터콘티넨탈 호텔 라운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크리스토퍼 힐 미국 덴버대 교수(67)는 타고난 협상가다. 그에게 평화는 비핵화다. 남북 철도 연결과 경제협력, 스포츠 교류 등에 대한 희망이 소환됐던 포럼에 어울리지 않는 경력의 소유자이다. 6자회담 수석대표와 주한 미국대사,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를 거치면서 북핵협상에 나섰다. 김계관 현 북한 외무성 고문과 40여차례 마주 앉아 피말리는 협상을 벌였다. 로저스가 미래의 꿈과 희망을 말했다면, 힐은 냉혹한 현실과 절망을 토로했다.

10일 오전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만난 그에게 북한은 댓바람에 신뢰하고 꿈을 나눌 사이가 아니다. 한치 오차 없이 의도를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할 협상의 상대방일 뿐이다. 힐은 한반도 비핵화의 해결 수순을 담은 2005년 9·19공동선언 뒤 북한의 비핵화 행동에 상응해 주한미군 감축을 비롯한 신뢰구축 조치들을 준비했었음을 전하면서 “미국은 과거 너무 순진하게 북한을 생각했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힐은 미국 외교관 중 드물게 한반도 거주민의 아무런 잘못 없이 시작된 분단과 한국 현대사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는 지한파다. 주한 대사 재임 중 미국대사로는 처음으로 광주 망월동 묘지를 공식 방문했다. 그는 남북 철도 연결이나 대북 개별관광과 같은 한국 정부 정책 방향에 대해 “미국은 한국인의 역사와 정서, 분단이 야기한 끔찍한 비극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 간에 충분히 협의해야 할 문제”라면서 “남과 북의 차이를 또 안보 문제를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월10일 강원 평창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크리스토퍼 힐 전 차관보와 인터뷰가 끝난 뒤 찍은 사진. 
같은 장소에서 2월9일 저녁 짐 로저스 회장과 함께.

“비핵화 협상에 관한 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최대 압력 정책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조심스레 밝혔다. 한국이건, 미국이건 “북한으로 하여금 제재를 비롯해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하는 핵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 안보를 추구하도록 설득해야 한다”는 근본적 접근에서 벗어나는 아이디어를 경계했다. 북핵 문제를 북·미 간의 문제로만 국한시키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접근에 절망감을 표했다. 올해 11월 대선에서 새로 등장할 미국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로 “한국 및 중국과 대화를 확대하는 것”을 꼽은 이유다.

개인적으로 힐을 처음 만난 것은 6자회담이 진행되던 2004년이다. 비핵화 협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불현듯 똑같은 이야기의 반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을 던지자 힐은 “<그라운드호그 데이(Groundhog Day·한국에선 ‘사랑의 블랙홀’로 개봉)>라는 영화를 보았느냐”고 물어왔다. 기상 캐스터가 매일 똑같은 일상을 겪는 것을 다룬 1993년 영화다.

로저스의 투자 더듬이가 중국과 보츠와나, 러시아 등지를 거쳐 한반도로 향하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다. 평창평화포럼장에서 확인한 것은 로저스에게 쏟아지는 뜨거운 관심이 돈벼락 기대심리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가 뿜어대는 평화·번영 에너지의 기운을 받고 싶은 기대 역시 넘실댔다.

2020 평창 평화포럼의 주요 참석자들이 9일 강원 평창 알펜시아 컨벤션 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문순 강원 지사(왼쪽 두 번째)가 ‘손하트’를 소개하자 활짝 웃으며 따라 하고 있다. 오른쪽 두번째 나비넥타이 차림이 '한반도 평화 전도사'로 맹활약하고 있는 짐 로저스다.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로저스에게 한반도는 매우 흥미로운(exiting) 희망의 장소이고, 힐에게는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희망이 잘 안 보이는 곳이다. 분명한 것은 절망에서 희망으로 단번에 가는 길이 없다는 점이다. 희망과 절망, 그사이 어딘가에 있는 중간지대(middle ground)를 찾는 노력과 행동이 아쉬운 시점이다. 로저스가 남긴 가장 아픈 지적 역시 “왜 모두 평화를 말하면서도 아무 행동을 하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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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비무장지대(DMZ)를 둘러보고 슬픈 생각이 들었다. 왜 아직도 많은 젊은이들이 아직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그곳에 근무해야 하는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대신 남과 북의 젊은이들이 K-pop 공연이라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국제적인 투자전문가 짐 로저스가 9일 강원 평창 알펜시아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9일 개막한 2020 평창평화포럼에 주요 연사로 참석한 국제적인 투자전문가 짐 로저스(77)는 이날 강원 평창 알펜시아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로저스는 특히 “남과 북의 젊은이들이 스포츠를 한다면 서로를 죽이기 위해 하는 게 아닐 것”이라면서 “남과 북이 엄청난 국방비를 줄이고, 그 돈으로 38선 근처에서 (남과 북의 젊은이들이)K-pop 공연이나 예술 공연을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남북을 철도로 잇는 사업에 대해 오랫동안 들어왔다”면서 “그날이 오면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런던까지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북한을 두 차례 방문했었다고 소개한 로저스는 “(남북 간)철로가 연결되면 북한의 자원과 고학력 노동력, 남한의 자본 및 노하우 간의 교류가 이뤄져 한반도가 향후 2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흥미 있는 지역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은 1970년대까지만해도 남한 보다 경제 상황이 좋았지만, 공산주의 때문에 낙후됐다”라면서 “(철로 연결로) 새로운 지평이 열리면 사회적 동요도 많이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도 강조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의 말이 한국과 미국에서 많이 걸러지지만, 그가 하고 싶어하는 것은 덩샤오핑 처럼 문호개방과 경제개발”이라고 단언했다. 

2020 평창 평화포럼의 주요 참석자들이 9일 강원 평창 알펜시아 컨벤션 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문순 강원 지사(왼쪽 두 번째)가 ‘손하트’를 소개하자 활짝 웃으며 따라 하고 있다. 오른쪽 두번째 나비넥타이 차림이 '한반도 평화 전도사'로 맹활약하고 있는 짐 로저스다.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평창을 처음 찾았다는 로저스는 “오늘 아침 가족들(부인과 두 딸)과 통화를 하면서, 언젠가 이곳에 스키를 타러 같이 오자고 제안했다”고 덧붙였다. 

구닐라 린드버그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조정위원회 위원장은 “스포츠는 평화의 언어”라면서 “강원도에서 열리는 2024년 동계 청소년 올림픽을 비롯한 다른 스포츠 행사를 통해 평화 과정이 더 멀리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문순 강원 지사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동계 청소년 올림픽을 강원도에 준 것은 남북 공동 개최 또는 분산개최를 해보라는 의미”라면서 “이번 포럼에서 (남북 스포츠 교류와 관련한)구체적 내용들이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 지금 이곳에서(Peace! Here and Now)를 슬로건으로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 동안 열리는 올해 평창평화포럼은 ‘원산-갈마, 금강산의 남북공동 관광 개발’과 ‘올림픽 휴전과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 개최 등 평창동계올림픽 유산 확산’ ‘고성 유엔 평화도시 모색과 통합적 미래로의 전환’등을 주제로 열린다. 행사에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그로 할렘 브룬틀란 전 노르웨이 총리를 비롯한 저명인사와 전세계 시민운동단체 1000여명이 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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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ino's gino's 2020.02.12 18: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 평생 평화를 주제로 하는 컨퍼런스에 여러번 참석해봤다. 모두가 평화를 말하지만, 아무도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무언가 일을 하려고는 않는다. 어렵다는 말만 한다. 말만 하지 말고 뭔가 해보라!"

    짐 로저스, 세계 3대 투자자로 꼽히는 그의 한국행이 잦다. 언론 인터뷰는 더 많이 한다. 이번엔 2020 평창평화포럼의 공동위원장 자격으로 왔다.

 

“새해를 축하합시다.”

국제관계를 분석하는 작업에서 말은 중요한 단서다. 특히 국가 또는 국가 지도자의 말은 분석의 출발점이다. 한반도 정세를 짚어보는 데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분단 이후 두 번째 경자년(庚子年)이다. 새해 벽두부터 북에서 날아온 메시지는 참으로 고약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로맨스에 한국이 끼어든다고 멋대로 규정하고, 이를 ‘설레발’이자 ‘호들갑’이라고 폄하했다. 지난 11일자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의 담화 형식으로 내보낸 메시지에서다. 남조선 당국이 자임한 ‘중재자’ 역할을 두고 “중뿔나게 끼어드는 것은 좀 주제넘은 일”이라고 비꼬았다. 담화의 시작과 끝은 ‘한 집안 족속도 아닌 남조선’이었지만, 15개 문장 중 7개는 미국이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지난해 11월18일자 김계관 고문의 짧은 대미 담화문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1일 공개된 조선노동당 제7기 중앙위 5차 전원회의(5중전회) 발표문과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 관련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북한 조선관광(DPR Korea Tour)이 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해 홍보하고 있는 홈페이지의 간판 사진. "새해를 축하합니다"라는 덕담이 쓰여있다. 

북한 외무성 김계관 발표 담화문
대남 비방 내용 크게 보기 쉽지만
뒤집어보면 북·미 정상 친분 강조

북한발 메시지엔 비명·고함 섞여
“허리띠 졸라맬 것” 강조하면서도
“미국 태도 따라 핵 억제” 여지 남겨

대중 무역전쟁 1단계 끝낸 트럼프
탄핵 재판·대선에 눈코 뜰 새 없어
한반도 문제에 팔걷긴 어려울 듯

변할 것이라고 공언한 대한민국
남북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협력’
북·미 모두 설득해 결과 도출해야

‘미국과의 대화는 무익했기에 더 이상 흥미가 없다. 2018년 6·12 싱가포르 합의 이후 1년 반 동안 세 차례 북·미 수뇌 상봉·회담이 있었지만 미국이 대화 놀음만 했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선 속히우고(속고) 잃은 시간이다. 대화 재개의 전제는 적대시정책의 철회(김계관 11월 담화)이며, 북한이 제시한 요구사항들의 전적인 수긍(김계관 1월 담화)일 뿐이다. 5중전회 발표문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으로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정책을 끝까지 추구한다면 조선반도 비핵화는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어 적대정책이 철회되고, 항구적이고 공고한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까지 전략무기(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 포함) 개발을 줄기차게 진행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대외 메시지에만 있는 것은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친분을 강조한 대목이다.

지난 1일 북한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불꽃놀이 축제에 많은 주민들이 참가해 새해를 경축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김계관 담화는 ‘세상이 다 인정하는 우리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친분관계’를 강조했다. 하지만 개인적 친분만으로 국사를 논하기 어렵기에 적대시정책 철회라는 ‘+α’가 있어야만 대화를 다시 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돌아갔다. 지도자 간 ‘개인적 친분’은 긴장 고조의 첫 단계인 ‘말의 전쟁’을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다. 지난해 말 북한의 ‘성탄절 선물’을 둘러싼 긴장 국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로켓맨(rocketman)’과 대북 무력 사용 가능성을 다시 소환하자 북측은 딱 그만큼의 대칭적 메시지를 내보냈다.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미국의 계산된 도발이라면, 정말로 늙다리의 망령이라 진단해야 할 것”이라며 선을 지켰다. 조건문이다. 김계관 1월 담화에선 대남 비방을 크게 보기 십상이지만, 기실 뒤집어보면 담화 테마는 작년 말의 긴장 국면을 지나 개인적 친분의 복원이었다고 본다. 작년 말 최 제1부상, 김영철 조선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 리수용 당 중앙위 부위원장,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는 ‘친분’이 괄호 속에 놓였었다.

북한발 메시지에는 ‘비명’과 ‘고함’이 섞여 있다. 우리는 종종 비명을 고함으로 듣는다. 5중전회 발표문 주제는 단연코 ‘정면돌파’였다. 무려 23번이나 등장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단어는 ‘허리띠’였다. 김 위원장은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부강, 자력번영하여 나라의 존엄을 지키고 제국주의를 타승하겠다는 것이 우리의 억센 혁명신념”이라고 강조했다. 2012년 4월 첫 공개연설에서 “인민이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고 번영을 누리게 하겠다”고 다짐했던 김 위원장이다. 이번 발표문은 그 약속을 당분간 지킬 수 없게 됐음을 공개시인한 것에 다름 아니다. 고함 속에 비명이 담겨 있다. “이제껏 우리 인민이 당한 고통과 ‘억제된 발전’의 대가를 깨끗이 다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실제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고함’을 지르다가도, “우리의 (핵)억제력 강화의 폭과 심도는 미국의 금후 대조선 입장에 따라 상향조정될 것”이라는 여지를 남겼다. 사랑한다면서 서로 ‘곁’을 주지 않아온 트럼프-김정은 로맨스에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또는 장거리 로켓 발사 가능성에 대해 ‘2017년 (위기 국면에서) 검토했던 옵션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찰스 브라운 태평양 공군사령관)고 엄포를 놓았던 미국도 친분으로 선회하고 있다. 북·미관계가 멀어지거나, 가까워질 때 중간 정거장은 중국이다. 김 위원장이 ‘새로운 길’을 밝힌 작년 1월, 제4차 북·중 정상회담을 기준으로 중재자는 문재인 대통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으로 바뀌었다(루디거 프랭크 빈대학 교수). 북·중·미 삼각관계(Triangle)는 교묘하다. 북·미가 가까워지면, 미국에 거추장스러워지는 존재가 중국이다. 반대로 북·미가 멀어지면 중국은 미국에 아쉬운 존재다. 트럼프 시대, 북·중·미 삼각관계의 동인(動因)으로 작동하는 게 미·중 무역협상이다. 그렇다면 미·중 무역협상의 순항이 한반도에 주는 함의는 무엇일까.

지난 1일 평양 개선문 인근에서 북한 젊은이들이 민속놀이를 즐기고 있다. 사각등에 '2020 축하'라고 쓴 작은 글씨가 보인다.  AP연합뉴스

트럼프 취임 초로 거슬러 올라가면 단서가 있다. 중국과의 무역전쟁은 트럼프가 대선 유세 과정에서 줄곧 내세운 ‘1호 공약’이었다. 취임 초기 최우선 순위의 외교안보 이슈는 북한이었다. 트럼프는 처음부터 두 가지를 묶었다. 2017년 4월 시 주석과 첫 미·중 정상회담을 하기 사흘 전 FT 인터뷰에서 “중국과의 큰 거래(grand bargain)로 북한 문제를 풀겠다”고 일성을 터뜨렸다. “중국이 북한 문제를 풀지 않으면 우리가 할 것”이라며 중국 협조 여하에 따라 무역 문제가 달라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2017년 북핵 위기가 깊어지자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을 선양 북방전구 지휘부로 보내 미·중 ‘유사시 소통’을 강화했다. 그러다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한 달 전, 돌연 회담 취소를 발표하면서 ‘중국의 방해’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2018년 5월 북·중 다롄) 정상회담 뒤 김정은의 태도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나는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우여곡절 끝에 싱가포르 회담이 성사되자 미국은 곧바로 대중국 무역전쟁을 시작했다. 트럼프는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다”고도 트윗했다. 미·중 무역전쟁 1단계를 끝낸 시점에 트럼프가 중국과 시 주석을 새삼 호출한 것은 왜일까. 트럼프는 지난 15일 시 주석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며 북·중·미 3국 지도자들의 관계를 ‘아주 아름다운 모자이크’이자 ‘아주아주 아름다운 체스(Chess)게임이거나 포커게임’이라고 했다. 굳이 체커(Checker)게임을 들먹이며 “그것보다는 훨씬 대단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중국의 역할로 북·미관계가 발전 또는 관리될 계기를 찾은 것일까. 트럼프의 찬사는 늘 의미를 깎아서 들어야 안전하다. 지금까지 경향으로 보면, 미·중이 가까워지면 북·미관계는 후퇴하거나 최소한 제자리걸음을 했다. 다만 트럼프가 체스와 체커를 우정 비교한 것은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체커게임의 대가 매리언 틴슬리 박사는 “체스가 대양 건너편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체커는 우물 속을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평한 적이 있다고 한다. 트럼프가 비유한 까닭이야 알 길이 없다. 다만 트럼프가 무엇에 몰두하는지는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연방상원의 탄핵재판과 11월 대선에 눈코 뜰 새 없는 그가 한반도 문제 해결에 팔 걷고 나설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류허 중 부총리가 1월15일 백악관에서 미·중 1단계 무역합의문에 서명한 뒤 합의문을 펼쳐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해가 바뀌어도 북한과 미국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 친분을 복원했을 뿐이다. 한반도 문제 당사자 중 가장 크게 변한, 또는 변할 것이라고 공언한 주체는 대한민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신년사에서 교착상태인 북·미 대화만 기다릴 게 아니라 남북 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협력’을 추구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동안 북·미 대화만 바라보고 남북관계를 유예했던 기존 노선에서 벗어날 것임을 예고했다. ‘최대 협력’ 내용으로는 접경지(DMZ) 공동개발과 철도·도로 연결 진행, 7월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스포츠 교류 등이 언급된다. 남북관계를 넓힘으로써 북·미 대화를 촉진시킬 수 있다는 가정이다. “필요한 경우 북한에 대한 제재 일부를 면제하거나 예외를 인정하는 데 있어 국제적 지지를 넓힐 길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이 담겨 있다. “작년까지 앞바퀴였던 북·미 대화가 계속 겉돌고 있기에 올해는 뒷바퀴부터 돌린다”(전직 고위 당국자)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팀이 마침내 실력 발휘를 할 기회가 온 것일까. 문제는 아직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그 ‘입구’가 안 보인다는 점이다.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아닌, 교수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다고 강조한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7일 워싱턴 특파원단 간담회에서 그 일단을 풀어놓았다. 미국 정치학자 밴 잭슨의 ‘위협 현실주의(Risk Realism)’를 원용해 한·미가 함께 검토할 과제로 한반도 평화체제, 북한의 비핵화 진전과 연동한 점진적 주한미군 감축, 협력적 위협(CTR) 기금 조성, 위반 시 본래대로 복귀하는 스냅백(Snapback) 제재 완화 및 이를 논의할 북·미 워킹그룹 구축 등 5가지 제안을 했다. 중·러가 제안한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에 북한의 비핵화 상응조치를 포함시키면 미국·영국·프랑스도 동의할 여지가 커진다는 주장도 보탰다.

본인의 공적 역할을 ‘자문교수’로 제한한 그는 사견임을 강조했다. 이 중 어떤 것이 실제로 미국에 전달한 또는 북한에 전달할 제안인지 구분하지 않았다. 하나같이 담대한 구상들이다. 어떠한 방식이건 성과를 도출하려면 미국과 북한을 모두 설득해야 한다. 작년까지 ‘최대 압박’을 밀어붙였던 미국에 ‘최대 협력’을 설득하고, 한·미 합동훈련 중단과 첨단무기 반입을 물고 늘어지는 북한을 상대로 전시작전권 반환에 필요함을 설득해야 한다. 북·미의 입장을 일부 헐어내야만 한국의 역할 공간이 생긴다. 머뭇거리지 않고 당당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한반도 북쪽의 새해 인사에는 ‘복(福)’이 없다고 한다. ‘복’은 주술적 의미가 있어서란다. 새해맞음을 서로 축하한다고 한다. 수동적으로 복을 기대하기보다, 쌍방향의 덕담을 주고받는 게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해서, 그들식 새해 인사를 다시 소개한다. “새해를 축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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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이 최근 이동식 발사대에서 초대형 방사포 시험발사를 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11월29일 배포한 사진이다.      AP연합뉴스

 

북한과 미국이 서로 날선 ‘말의 전쟁’을 재개하면서 세밑 한반도 안보 기상도가 뿌옇다. 분명한 사실은 12월31일이 전환점이라는 것이다. 바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에 ‘새로운 셈법’을 요구하며 제시한 시한이다. 그가 올해 신년사에서 거론한바, ‘어쩔 수 없이 부득불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는 새로운 길’과 맞물려 총천연색 분석과 전망, 견해를 낳고 있다. 미국은 “목표가 있을 뿐 시한은 없다”며 김 위원장의 시한을 무시한 채 대화 제의를 거듭하고 있다. 동시에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와 같은 ‘고강도 도발’을 할 경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추가 제재는 물론 물리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일각에서 미국의 군사행동을 비롯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내놓는 근거다.

 

■북·미의 여전한 비대칭 셈법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북한은 미국이 셈법을 바꿀 것을 요구해왔다. 10월5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실무접촉 뒤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는 한·미 합동군사연습 중단과 한반도 주변 첨단 전쟁장비 반입 금지 및 지난해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뒤 미국이 추가로 발동한 15차례의 제재 취소를 대화 재개 조건으로 걸었다. 한·미는 이 중 한 가지에 대해 성의를 보였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11월13일 당초 같은 달 말 실시 예정이던 한·미 연합공중훈련의 조정 여지를 밝히자 북한은 반겼다. 김영철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은 다음날 담화를 통해 “대화의 동력을 살리려는 미국 측의 긍정적인 노력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북한은 ‘한·미 훈련의 완전한 중단’을 강조했지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전엔 어떠한 제재도 풀지 않겠다는 미국 입장이 맞서면서 협상은 겉돌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1월23일 서해 접경 해역의 창린도를 방문해 해안포 사격을 지시하고 있다. 공교롭게 연평도 포격 도발 9주년을 맞은 날이었다. 이로써 작년 9월 남북군사합의는 흔들리게 됐다. 국방부 국방정보본부가 국회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한 보고에 따르면 북한은 2015년 이후 연평도 일근의 갈도와 아리도, 함박도 등 무인도를 군사기지화해왔다. 조선중앙통신이 25일 배급한 사진이다. AP연합뉴스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한다는 발언은 주로 군복 입은 사람들 입에서 나온다. 박정천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은 지난 14일 담화에서 “우리는 거대한 힘을 비축했다”고 장담했다. 북한 국방과학원이 평북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7일과 13일 실시한 두 차례 ‘중대한 시험’에서 확보한 새로운 기술들이 미국의 핵위협을 견제, 제압하기 위한 또 다른 전략무기 개발에 적용될 것이라고도 밝혔다. 중대한 시험은 미사일 엔진 연소 또는 신형 엔진 개발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창리 위성발사장은 북한이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우선 영구 폐기하기로 했다’고 명시했던 시설이다.

 

미국 국방부는 아예 북한이 연내 ICBM 발사와 같은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을 것을 전제한다. 찰스 브라운 태평양 공군사령관이 대표적이다. 그는 17일 워싱턴 언론간담회에서 북한이 거론한 ‘성탄절 선물’은 “일종의 장거리탄도미사일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이 전략무기들을 한반도 주변에 전개했던 “2017년에 (검토)한 많은 것들의 먼지 털어내고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는 말에 뼈를 심었다.

 

가장 직설적인 말은 군대도 안 갔다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입에서 나왔다. 트럼프는 3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가 열린 영국 런던에서 “우리가 (북한에)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면 사용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김정은 위원장을 두고 “로켓맨(rocket man)”이라는 호칭을 다시 호출했다. 북한이 그 직후 동창리 발사장을 다시 가동한 것은 트럼프의 ‘도발’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북한이 고강도 도발을 하더라도 군사행동을 결정하는 주체는 미국이라는 점이다. 북한의 군사행동은 자칫 체제 존속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브라운 사령관이 소환한 2017년 초부터 미국은 대략 20개의 군사적 옵션을 검토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대북 심리전에서부터 사이버 공격, 전략자산 전개 등이 포함된다. 강도가 높은 옵션으론 영국 텔레그래프와 파이낸셜타임스 등의 보도로 알려진 ‘코피 작전(Operation bloody nose)’이 있었다.

 

■한국이 모르고 지나간 ‘2017년 위기’

 

코피 작전은 일회성 공격으로 상대를 위협해 협상장으로 끌어낸다는 복안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장 또는 발사대 위의 미사일, 무기고 등이 소규모 제한 공격의 과녁이 될 수 있다. 제임스 매티스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서울에 큰 피해를 주지 않을 군사옵션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됐다가 낙마한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지난해 1월30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자신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제한적 군사행동에 반대했다면서 코피 전략의 존재를 확인했다. 한반도 거주민들이 몰랐던 위기는 또 있었다. CNN 국방해설가 피터 버건은 트럼프가 2017년 9월 주한미군 가족들의 소개 지시를 내렸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달 초 펴낸 책 <트럼프와 장군들: 혼돈의 비용>에서 공개된 사실이다. 실행됐다면 가장 확실한 대북 공격 신호였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30일 판문점 앞뜰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다행히 아직까지 ‘한반도 위기론’은 워싱턴과 서울에서 초점을 받고 있지 않다. 내년 11월 미국 대선과 맞물려 북·미 대화가 장기간 공전하면서 어느 정도 긴장이 유지되더라도 유사시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윌리엄 번 미국 합참 부참모장(해군 제독)이 말했듯이 “희망은 전략이 아니다”. 방금 백악관 상황실 회의에서 나온 양 ‘전쟁’을 입에 담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다.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한·미 양국 전직 관료들이 나섰다. 그레이엄 앨리슨 전 미국 국방부 정책·계획 담당 차관보(하버드대 교수)와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이다.

 

앨리슨 교수는 12일 ‘일본 아카데미아’가 도쿄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 현재의 한반도 상황을 “매우 위험하다”고 진단한 뒤 일본과 중국도 전쟁을 회피하기 위한 노력을 즉각 시작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그는 “제2의 한국전쟁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북한이 설정한 연말 시한이 지나가고 북한이 탄도미사일 또는 핵실험을 재개하면, 2017년 11월 이전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대나 핵심 군사시설을 공격해 전쟁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가정이다. “50%는 안돼도 꽤 큰 가능성”이라고 부연했다. 패권국과 신흥국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는 ‘투키디데스 함정’을 분석틀로 전쟁의 국제관계를 읽는 그다운 주장이다. 저서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에서 미·중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될 운명을 짚었다. 미국 내셔널인터리스트가 작년 12월 게재한 ‘2019 나의 북한 전망’ 특집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그는 “(북·미) 협상이 붕괴되고, 트럼프가 자신이 제압당했고 모든 판돈이 떨어졌다고 결론 내린다면, 북한이 다시 ICBM을 발사하고, 그것이 제2의 한국전쟁으로 이어질까”라는 의문형으로 전쟁 가능성을 글에 남겼다.

 

■2020, 희망이 될 수 있는 전략은?

 

천영우 이사장은 17일 유튜브 방송 ‘천영우TV’의 ‘미국의 대북 공격 시나리오: 김정은을 살려둘 것인가’를 통해 전쟁 가능성을 설파했다. 그는 16분40초 방송의 도입부에 “북한이 ICBM을 발사해도 트럼프가 무력으로 대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무력대응 가능성이) 1993년 1차 북핵 위기 때보다는 높다”고 주장했다. 그 역시 근거를 제시한 건 아니다. 그가 거론한 1차 북핵 위기 당시 빌 클린턴 행정부는 영변 핵시설에 대한 외과수술식 폭격 옵션을 검토했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 당시 6자회담 수석대표로 외교적 해결 노력을 기울였던 그가, 미국의 대북 공격 가능성을 주장한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천 이사장에게 통화를 청한 까닭이다.

 

미국 연방하원이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다음날인 지난 12월19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아이젠하워 빌딩에서 열린 행사를 마치고 나가고 있다. 미국 대통령의 문장(紋章)이 벽에 걸려 있다. EPA연합뉴스 

 

그의 논리는 1993년과 2019년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1993년과 달리 이번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자국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됐기 때문에 미국이 무력대응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는 “높진 않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며 자위권 차원에서 공격할 요인이 성립된다고 본다. “북한의 ICBM 개발은 미국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기에, 미국이 핵과 미사일 관련 시설에 제한 공격을 한다면 무력행동에 필요한 국내법적, 국제법적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인공위성을 로켓으로 발사해도 마찬가지다. 실제 켈리 크래프트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11일 안보리 공개회의에서 북한의 ICBM 발사와 장거리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우주발사체(SLV) 발사를 공히 ‘매우 걱정되는 신호들’로 지목했다. 특히 “북한의 ICBM은 미국 본토를 핵무기로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미국에 대한 위협임을 분명히 했다.

 

북·미의 레드라인은 서로 연결돼 있다. 북한의 도발이 저강도에 그칠 가능성 역시 엄존한다. 2017년과 다른 점은 북한이 이미 핵·미사일 능력을 확보했기에 무작정 미국과 충돌하기보다 ‘선’을 지킬 것이라는 전망에 귀가 더 솔깃해진다. 조성렬 국가안보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이 ICBM 또는 괌을 사정권에 두는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와 같이 미국을 위협하는 선은 넘지 않겠지만, SLV를 발사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한반도다. 북한이 올해 개발 완성 단계에 진입했다고 밝힌 전술유도무기·대구경 방사포·지대지미사일·초대형 방사포 등 ‘신형 단거리 4종 세트’를 동원해 도발할 가능성이 더 크다. 한반도 전역을 사정권으로 하는 무기들이다. 내년 7월 말부터 열리는 도쿄 올림픽 시기 긴장을 일본열도까지 확산할 수도 있다. 가장 큰 변수는 트럼프다. 18일 연방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됐다. 북한의 새로운 도발로 지난 3년의 대북 외교가 실패했음이 분명해진다면, ‘돈’과 ‘표’가 되는 일에는 앞뒤를 가리지 않는 트럼프가 어떤 판단을 할지 예측이 어렵기 때문이다. 더이상 "전쟁만은 안된다"는 호소 만으론 안된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희망의 근거를 만들어내는 주권국가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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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ino's gino's 2019.12.22 17: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반도를 끌어안고 살아온 저널리스트에게 'again 2017'은 또 다시 북한과 미국이 쏟아낼 한바탕 말의 전쟁을 다시 들여다보아야 하는 괴로움이다. 지난 3년의 경험은 한미동맹 지상주의자들도, 뜨거운 가슴으로 북한을 향하는 민족주의자들도 정답이 아니었음을 확인시켜준 기간이었다. 트럼프도, 김정은도 우리의 현위치를 일깨워주었다는 점에서 고마운 사람들이다. 트럼프와 김정은 그 중간 어딘가에서 우리의 선택을 위치시키는 담대한 외교안보전략은 없었다. 무엇보다 주권국가에 살고 싶은 생각이 지난 3년처럼 절실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리스 테살로니키에서 지난 10월17일 열린 반터키 시위에 참가한 쿠르드족 소녀가 터키군 공격으로 화염에 휩싸인 시리아 북부 쿠르드족 마을에서 울고 있는 아이 사진을 들고 있다. 테살로니키/AP연합뉴스

 

미국이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에서 긴요한 동맹이었던 시리아 쿠르드족 민병대를 배반했다. 미국 조야는 물론 각국은 미국이 언제든 동맹을 버릴 수 있는 사례로 꼽아 비난하고 있다. 국제뉴스에는 하나의 굵은 흐름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측불가능성, 모든 판단 기준을 채산성으로 보는 거래주의의 특이한 사례로 들면서 각국 미디어들이 비난 대열에 동참해 트럼프의 배신을 소비한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익숙한 과정이다. 1920년 세브르 조약으로 독립의 꿈이 영글었다가 강대국들의 잇단 배신으로 결국 터키와 이라크, 시리아, 이란 등지에 흩어져 나라 없는 설움을 겪는 쿠르드의 슬픈 역사가 뒤이어 쏟아진다.

 

하지만 진실은 큰 흐름 속에만 있는 게 아니다. 작은 흐름에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미국의 망토에서 벗어나면 당장이라도 국가 존재 자체가 흔들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포획된 동아시아의 한 분단국에선 그러한 생각의 경로가 더욱 분명하다. 미국의 시리아 쿠르드족 방기(放棄)는 과연 예외적인 사건일까. 착시가 생기는 지점이다. 트럼프가 예외적인 인물이라고 해서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까지 예외적인 건 아니다. 예외가 아닌 현실로 인정할 때 목전의 선택과 향후의 선택을 구분해보는 혜안이 생긴다.

 

마운트 버논. 미국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생가다. 워싱턴에서 포토맥 강을 건너 올라가면 멀지 않은 거리다. 기념관에는 독립전쟁 고비마다 워싱턴의 활약상이 전시돼 있다. 하지만 기념관을 둘러보다 보면 프랑스 라파예트 장군의 업적이 돋을새김돼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워싱턴 기념관인지 라파예트 기념관인지 헛갈릴 정도다. 미국 국부(國父)의 생가 기념관임에도 라파예트의 활약상이 두드러지는 것은 그만큼 그의 공이 컸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군을 상대로 결정적 승리를 거둔 1781년 ‘요크타운 전투’는 그의 지휘와 헌신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식민지 민병대를 번듯한 대륙군으로 키운 주역이었다. 백악관 뒤편의 아담한 정사각형 공원을 라파예트 스퀘어라고 이름 지은 연유다.

 

지난 10월26일 터키의 시리아 북부 쿠르드족 지역 침공을 비난하는 시위가 열린 이탈리아 밀라노의 터키 영사관 앞에서 한 집회 참가자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허수아비를 태우고 있다. 밀라노/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은 그러나 태생부터 외국과의 영속적인 군사동맹과는 거리를 뒀던 나라다. 워싱턴은 1796년 퇴임사에서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를 권했다. “특정 나라들과 영원하고 뿌리 깊은 반감도, 다른 나라들에 대한 열정적인 결탁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특정국에 대한) 습관적인 증오나 습관적인 선호는 미국을 반감과 애정의 노예로 만들며, 둘 중 어떤 경우도 국가의 길을 잃게 만들기에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1789년 프랑스가 대혁명 소용돌이에 휩싸이자 워싱턴은 독립전쟁 때 프랑스 전우들의 숱한 도움 요청에도 중립을 고수했다. 미국 동맹정치의 출발점이자, 동맹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불과하다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n First)의 맹아였다.

 

워싱턴의 세계관을 돌아보면 미국이 시리아 쿠르드와의 동맹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게 정당하다. 트럼프의 성급한 결정과 경박한 방식에 문제가 있지만 옳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미국 케이토 연구소의 더그 밴도 선임연구원과 크리스토퍼 프레블 부회장이 최근 워온더록스 공동기고문에서 펼친 논지다. 이들은 트럼프의 결정을 두둔하면서 “동맹이라고 다 같은 동맹이 아니며, 그중 일부는 동맹도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미국과 시리아 쿠르드는 상원에서 비준을 받은 조약상 동맹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쿠르드는 IS가 시리아를 제패하면 몰살당할 운명이었고, 미국도 IS 토벌 필요성이 있어 ‘마음의 동맹(alliance in mind)’을 맺었을 뿐이라는 논리다. 쿠르드와 터키의 갈등에서 수십년간 조약상 동맹이자 미군기지를 두고 핵무기까지 배치했던 터키의 역성을 든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조약상의 동맹을 존중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자국 안보와 별 관련이 없음에도 유지하고 있는 동맹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한·미 및 미·일 동맹을 콕 짚어 지목했다. 소련이 붕괴하고 바르샤바조약이 해체됐으며 마오쩌둥이 죽었는데도, 미국보다 더 부유해진 나라들과의 동맹 유지에 예산을 쓰고 있다는 말이다. 동맹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설파하는 이들은 미국 내 동맹회의론자들을 대표한다. 리처드 닉슨 행정부가 1970년대 초 남베트남과의 집단안보협정을 휴지통에 던진 것처럼 필요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바꿀 수 있는 게 동맹정치라고 역설한다. 차제에 미국이 무작정 동맹을 늘리기보다  국익과 상황 변화에 따라 필요한 동맹이 무엇인지를 검토하는 계기로 삼자는 게 이들의 제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10월30일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아프가니스탄 대테러 전투에서 동료들의 목숨을 구한 공훈을 세운 미군 제3특수전그룹 소속 매튜 윌리엄스 상사에게 훈장을 수여하기 전 악수를 하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밴도 선임연구원은 일관된 한·미 동맹 회의론자다.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가 맞붙어 한반도에 전운이 짙어가던 2017년, 북한 문제 해결의 첫 단추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 바 있다. ‘이제 남한을 풀어줄 때’라는 제목의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다. 미군이 주둔하는 한 분쟁이 확산될 뿐이라며 충분히 자체 국방력을 갖춘 한국에 한국 방위를 맡기자고 제안했다. 그의 한·미 동맹론에는 진즉 성년이 됐음에도 유년의 추억에 매몰돼 있는 한국군에 대한 안타까움이 배어있다. 한국군이 주한미군에 의존하는 오랜 관성 탓에 스스로의 잠재력을 발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도 내놓았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를 무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북한의 비대칭 전력에 대한 방비는 일본과 괌, 하와이 등에 포진한 미국의 전략 핵무기로 충분하다는 전제에서 주한미군의 재래식 전력을 빼내야 한국군이 자주국방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짚었다. 한국을 위해 내놓은 충언은 아니다. 2005년 테드 갤런 카펜터와 공저한 <한반도 난제(The Korean Conundrum)>에서 밝혔듯이 북한의 핵무장과 한·미 간 갈등 사이에서 주한미군이 ‘핵(核) 인질’이 되는 만큼 한반도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미군의 시리아 철군과 쿠르드 방기가 미국의 글로벌 동맹을 약화시킨다는 우려와 지적은 미국 리버럴과 보수 양 진영에서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 조야의 주류가 모두 이런 비난에 동참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이자, 동맹 전문가인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달 28일자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 밴도 등의 주장을 환영하면서, 미국은 이제 좋은 동맹과 나쁜 동맹을 가려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30일 판문점 남측구역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걷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0월16일 백마타고 백두산에 오른 사진을 내보내며 "지금 나라의 형편은 적대세력들의 집요한 제재와 압살 책동으로 의연 어렵고 우리 앞에는 난관도 시련도 많다"면서 "미국을 위수로 하는 반공화국 적대세력들이 우리 인민 앞에 강요해온 고통은 이제 더는 고통이 아니라 그것으 그대로 우리 인민의 분노로 변했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흥미로운 대목은 밴도나 월트 모두 트럼프의 대외정책에 신랄한 비판론자라는 점이다. 트럼프가 취임 이후 전통적인 미국 대외정책의 가치와 규범을 흔들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월트는 동맹은 비용과 의무를 동반하는 것이기에 결코 신성불가침의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소련과의 냉전에서 승리한 이유의 하나로 소련이 지극히 의존적인 바르샤바조약국들과 맺은 동맹보다 미국이 일본과 독일, 프랑스, 영국 등 경제적·군사적으로 부강한 나라들과 맺은 동맹이 더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논했다. 베트남의 경우가 유일한 예외였다. 미국·남베트남 동맹보다 소련·북베트남 동맹이 더 강했다. 월트가 꼽은 좋은 동맹의 조건은 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고 있거나, 걸프만의 유전과 같은 전략적 자산을 통제하는 나라들이다. 안정된 국내정치 역시 주요 덕목이다. 미국이 정권 유지를 돕기 위해 많은 시간과 재원을 투입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유의 전략적 가치가 줄었듯이 좋은 동맹의 조건도 시시각각 바뀐다.

 

이 기준에서 나토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력에서 합격점이지만 미국 보호에 의존해 군사력을 증강하지 않은 것을 단점으로 꼽았다. 취임 이후 분담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나토 회원국들을 비난하는 트럼프와 같은 가치관이다. 반면 중국의 부상에 군사비 지출을 늘리는 아시아 국가들은 높게 평가했다. 그는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 대외정책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는 현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우방 및 동맹국들은 여전히 미국의 지지를 갈구하고 있는 만큼 미국이 관계의 조건을 조정할 수단을 확보하고 있다고 짚었다. 동맹정치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미국의 핵심 이해가 걸려 있을 경우에만 동맹 공약을 확대해야 한다는 말이다.  밴도의 동맹 선별론과 맥이 닿는다. 

 

지난 10월2일 북한이 원산 근해에 발사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발사 모습.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이다. 한국과 미국 군사전문가들은 그러나 북한이 잠수함에서 발사했는지, 바지선에서 발사했는지 분명치 않다고 분석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측이 공개한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발사 장면을 참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AP연합뉴스 

 

지난 8월 말 내한했던 월트는 동맹의 가치에 대해 보다 쉽게 풀어서 말했다.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제 몫을 내고, 제 역할을 다해야 좋은 동맹”이라면서 동맹의 비용과 의무를 설명했다.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을 소요액의 5배나 요구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를 전하며 “한국에 이런 동맹이 지속가능한가”라고 기습적인 질문을 던지자 0.1초도 망설이지 않고 “그렇다”고 답했다. “동아시아 안보환경을 감안할 때 한국에 미국과의 긴요한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고 못박았다. 괌에 배치한 전략자산을 한반도 지역에 전개하는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도 “집단적 부담을 나눠야 한다”는 답을 돌려보냈다.

 

미국의 동맹정책은 원칙이 아닌, 편의에 따라 움직였다. 1914년과 1939년 영국의 동맹이 아님에도 세계대전에 참전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한국전쟁에도 동맹으로 참전한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미 동맹은 불변의 조건으로 굳었다. 다음달 한·미안보협의회(SCM)를 앞두고 ‘한·미 동맹 위기관리각서’ 개정과정에서 한·미연합사의 위기관리 범위를 기존 ‘한반도 유사시’에 더해 ‘미국 유사시’도 포함시키자는 미국 제안이 알려졌다. 연말까지 매듭을 지어야 하는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에선 방위비분담금을 5배 늘려 50억달러로 하자는 미국 셈법도 전해진다. 월트가 말한 비용과 임무를 모두 바꾸려는 움직임이다.

 

미국은 쿠르드처럼 한·미 동맹을 버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서 입증됐듯이 중국을 포위하는 장기판의 말로 생각하고 있다. 더 많은 비용을 대고 미국의 세계전략에 복무하라는 명령이다. 한국군은 미군을 대신해 또는, 미군 앞에서 낯선 전장을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한·미 동맹의 존재를 깊이 생각할 좋은 기회다. 대한민국엔 이런 고민을 하라고 봉급 받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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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ino's gino's 2019.11.04 11: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터 자이한 "美, 동맹애정 식어···방위비 50억달러? 참 싸다" 본문듣기 설정
    미국 지정학 전략가 피터 자이한 인터뷰
    “셰일가스 개발로 에너지 자급의 꿈을 이룬 미국은 이제 세계 질서 유지에 관심이 없다. 미국의 동맹은 각자도생해야 한다.”
    기사입력2019.11.04. 오전 1:01

    국제지정학 전략가 피터 자이한(46)이 저서『셰일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최근 방한한 그를 인터뷰했다. 그의 핵심 주장은 “한국, 꿈 깨라”였다. 외교관 출신인 자이한은 민간 정보기관 스트랫포에서 부사장으로 일하다 2012년 안보 컨설팅 회사를 세웠다. 고객은 세계 다수의 정부ㆍ군·기업이다. 인사를 건네자 그는 세계 곳곳의 전략적 요충지 사진을 담은 카드를 펼쳐 보였다. 명함이었다.

    ’미국, 주한미군 완전 철수도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미국의 지정학 전략가 피터 자이한. 오종택 기자
    자이한은 대부분의 질문에 대해 “내 얘기를 한국인들은 별로 반기지 않겠지만”이라는 말로 답변을 시작했다. 한ㆍ일 갈등에 대해선 “한국은 일본을 절대 못 이긴다. 일본과 다시 손잡아야 한다”라고 확언했다.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누가 얼마나 낼지에 대한 한ㆍ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놓곤 “50억 달러(약 5조8755억원)라면 참 싸다(real cheap)”고 평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방위비 50억달러? 앞으로 더 오를 것”
    Q : 주한미군, 철수 얘기가 거론된다.
    A : 장담하건대 10~20년 안에 떠난다. 한국이 특단의 조치를 하지 않으면 말이다. 시간 문제일뿐, (철수는) 불가피하다. 그나마 그걸 문재인 대통령이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많이 양보하면서 잡아뒀다. 그게 아니었으면 미군은 진작 철수 절차에 들어갔을 거다.
    Q :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50억 달러로 요구했다는데.
    A : 50억 달러밖에 안 한다고? 참 싸다. 미국은 앞으로도 계속 더 많이 요구할 거다. 주한미군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한국으로서는 아껴서는 안 되는 비용이다.

    Q : 내년 미국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되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A : 천만에. 트럼프 대통령이라서 주한미군을 빼고 싶어하는 게 아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동맹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 미국 대통령이 포퓰리스트 또는 고립주의자들인 시대가 곧 온다. 미국의 외교·안보 정통파는 이미 주류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기 시작했다. 트럼프 개인의 문제가 아닌 미국 사회의 구조적 변화다. 트럼프 후임은 트럼프보다 한술 더 뜰 거다. 한국의 보수도, 진보도 모두 꿈에서 깨야 한다.


    Q :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 결정자들에게 조언한다면.
    A : 미국이 뭔가를 해주겠거니 기대해선 안 된다. 미국보다 먼저 움직여야 한다. 미국보다 더 미국처럼 행동해야 한다. 호주가 참고될 만하다. 호주는 미국이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남반구의 정보 사항을 공유한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전에도 제일 먼저 파병했다. 호주는 이런 적극성 덕에 미국의 우방으로 대우받고 있다.

    미국 속내 “ICBM만 아니면 상관없다”
    Q : 북한 문제는 어떻게 될까.
    A : 트럼프 대통령의 악수 외교 메시지는 간결하다.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개발하지 말아라.’ 속마음은 이거다. ‘북한 핵 문제? 내 문제 아니고 한국 너희의 문제다.’


    Q : 북한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도 개발 중인데.
    A : 쉽게 개발하지 못한다. 돈도 많이 들고 기술적으로도 북한엔 무리다. 대신 한·일을 칠 수 있는 중장거리 미사일은 쉽다.

    Q : 이러니 한국도 핵무장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A : 이 인터뷰가 끝날 때쯤이면 한국 기술로 핵무기 하나 뚝딱 만든다. 못 할 건 없다.

    Q : 한국에도 여러 제재가 가해질 건데.
    A : 미안하지만 미국은 이제 더는 신경 쓰지 않는다. 미국 본토를 타격 가능한 ICBM만 없으면 말이다. 대북 제재? 제재는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미국이) 제일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다. 지금의 제재 체제는 유지되겠지만 앞으로는 옛 외교 정책 유산의 짐짝(legacy baggage)에 불과하다.

    Q :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지난달 31일 국무부 부장관 승진)도 지난 9월 공개 강연에서 북핵 협상이 실패할 경우 한ㆍ일이 핵무장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이 내심 한국 핵무장 가능성을 고려하기 시작했단 얘기인가.
    A : 그렇게까지 나가진 않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거다. 미국에 정교한 외교 정책은 기대하지 말라는 것.

    Q : 그렇다면 한국으로선 중국이 자연스러운 선택 아닌가.
    A : 중국은 절대 미국과 같은 수퍼파워가 될 수 없다. 미국은 대륙 국가이지만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는 캐나다ㆍ멕시코뿐이다. 중국은 소수민족부터 홍콩ㆍ대만 등 문제가 산적해 있다. 미국은 셰일가스로 에너지 자급자족도 이뤘지만 중국은 에너지·식량 모두 해외 의존도가 높다. 한국의 선택지는 명확하다.

    “지소미아 살려야만 한국 생존”
    Q : 한ㆍ일 관계는 어찌해야 할까.
    A : 역사 문제는 잘 알지만 냉정히 말해야겠다. 해양강국이자 미국 내 FDI(외국인직접투자) 수위를 다투는 일본은 한국이 필요 없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이 필요하다. 한국이 일본을 이길 수 없는 이유다. 지금 한국은 일본 중심 산업 및 외교·안보 구조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무용지물이다. 기어를 빨리 바꿔야 한다. 일본과 손을 잡지 않으면 국가 생존이 위태롭다.

    Q : 한ㆍ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시한이 이달 22일이다.
    A : 한국은 생존을 위해 지소미아를 살려야 한다. 대단한 효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미국 없이도 한·일이 외교·안보 협력을 할 수 있다는 상징이어서다. 과거 미국 정부였으면 지소미아 파기 직후 중재에 나섰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다. 전수진 기자chun.sujin@joongang.co.kr

 

작년 8월15일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린 국제 유소년(U-15) 축구대회 남북 경기장면.  관중석은 단체 관람을 나온 학생들고 빼곡하게 찼다.  1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열린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남북한 전이 텅 빈 관중석으로 치러진 것과 대비된다.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완도 섬마을의 소녀가 울산에서 수소산업을 공부하여 남포에서 창업하고, 몽골과 시베리아로 친환경차를 수출하는 나라. 회령에서 자란 소년이 부산에서 해양학교를 졸업하고 아세안과 인도양, 남미의 칠레까지 컨테이너를 실은 배의 항해사가 되는 나라. 농업 전공한 청년이 아무르 강가에서 남과 북, 러시아의 농부들과 대규모 콩농사를 짓고 청년의 동생이 서산에서 형의 콩으로 소를 키우는 나라.”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8·15 경축사에서 펼쳐 보인 ‘우리가 원하는 나라’였다. 문 대통령은 그즈음 ‘북한의 몇차례 우려스러운 행동’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 미국이 이어온 대화 분위기가 흔들리지 않는 것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큰 성과로 꼽았다. 올해 광복절 경축사로 큰 그림을 제시한 ‘평화경제’는 만능 열쇠였다. 한반도 통일로 8000만 단일시장을 만들고, 세계 6위권의 경제 규모와 2050년 국민소득 7만~8만달러 시대 등을 예측한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지난 15일 관중 없이 텅 빈 평양 김일성경기장을 보고 난 뒤 새삼 문 대통령 연설문을 다시 꺼내 읽었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다음날 원색적인 비난을 내놓은 연설이었다. 조평통은 대변인 담화를 통해 “우리는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고 단언했다. 공교롭게 광복절은 한·미 연합 지휘소훈련이 벌어지던 시점이었다. 국방부는 광복절 하루 전 2020~2024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했다. 북한은 한·미 훈련을 전쟁연습이라고 비난하며 단거리 미사일을 수차례 발사하던 끝에 문 대통령의 경축사를 비난한 것이다. 조평통 담화가 발표된 16일 아침에도 북한은 강원도 통천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쏘았다.

 

지난 10월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H조 경기를 치르고 있는 남북한 국가대표팀. 텅 빈 관중석 위로 모란봉이 보인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북한의 공개적인 면박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지난 9월24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다시금 평화 제안을 내놓았다. 유엔의 모든 회원국들에 동서 250㎞, 남북 4㎞의 비무장지대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북한과 공동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고도 선언했다. 하지만 아무런 메아리가 없었다. 지난 2년간 제안과 합의는 넘쳐났다. 이벤트 역시 모자람이 없었다. 평화는 ‘새로운 시작’이었다가 ‘새로운 미래’로 바뀌었다. 이쯤 되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무언가 대안이 나와야 하건만 외교부, 통일부, 국가정보원과 청와대 국가안보실 등 관련 부처들은 침묵하고 있다. 어떤 생각들을 하며, 어떤 전략을 준비하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남북관계 맥락을 보면 다음달 부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초청 가능성은 생뚱맞기 짝이 없는 ‘아이디어’였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이 대북 군사공격을 심각하게 검토했던 지난해 초 남북관계가 위기 국면에서 평창 평화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북·미 대화 국면으로 전환했다면, 올해 남북관계에는 단 하나의 일관성만 두드러진다. 바로 대화와 교류의 단절이다. 10·15 텅 빈 김일성경기장은 그 현주소를 극적으로 노출시켰다. 평창 올림픽,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6·12 싱가포르 대좌, 도보다리 산책의 서정적인 장면을 남긴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 능라도경기장에 모인 15만 평양 시민들을 상대로 했던 문 대통령의 연설. 숨가쁘게 진행되던 대화와 화해 선언들은 이제 과거가 됐다.

 

6·30 판문점에서의 북·미 정상회동을 끝으로 북·미 간 현란했던 외교 이벤트의 계절 역시 끝났다. 트럼프가 기획하고 김 위원장이 출연한 ‘판문점 드라마’에서 문 대통령의 출연시간은 짧았다. 북한 외무성의 권정근 미국담당 국장은 판문점 북·미 회동 사흘 전 “협상을 해도 조·미가 마주 앉아 하는 것인 만큼 남조선 당국을 통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며 남측을 철저히 배제했다.

 

평화 역시 과학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평화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있었는가. 여기서 중대한 시간적 편차가 생긴다. 평화경제는 중장기 과제이지만, 남북관계의 악화는 현재 상황이다. 북측에 평화는 청사진에만 있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북이 목전의 현실을 말하는데 남은 머나먼 중장기만 말한다면, 당연히 대화가 이뤄질 수 없다. 조건에 따른 전시작전권 전환을 위해서는 북이 반발하는 한·미 연합훈련을 계속해야 한다. 두 개의 서로 다른 목표를 추구하려면 그 사이에 정밀한 전략과 치열한 조율이 필요하다. 그 과정이 생략된 채 평화 메시지만 발산한다면 그것은 정책이 아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른 모습.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10월16일 배포한 사진이다. AP연합뉴스

 

내친김에 문 대통령의 올해 3·1절 기념사도 다시 읽었다. 기념사는 이념과 진영의 시대를 끝내자면서 ‘신한반도체제’를 비전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3·1절 기념사에 있었다가 8·15 경축사에서 사라진 대목이 눈길을 끈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의 재개 방안도 미국과 협의하겠다”는 약속이다. 작년 9월 평양공동선언에도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우선적으로 정상화하기로 합의한 사업들이다. 북한의 비핵화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기 전 남측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대열에서 이탈하는 건 물론 어렵다. 하지만 관광을 비롯해 제재 대상이 아닌 분야에서 남북 간 합의를 부분 실천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필요했다. 시간이 갈수록 북측의 변화라기보다는 남측의 변화로 읽힌다. 3·1절과 광복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북한의 불만은 4월12일 김 위원장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 담겨 있다. 그는 “남조선 당국은 추세를 보아가며 좌고우면하고 분주다사한 행각을 재촉하며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비난을 위한 비난은 아니었다. 한·미가 합동군사연습 중단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거론하며 “미국의 시대착오적인 오만과 적대시 정책을 근원적으로 청산하지 않고서는 북남관계에서의 진전이나 평화번영의 그 어떤 결실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때늦기 전에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며 여지를 남겼다. 북한 체제에서 ‘최고 존엄’의 한마디는 아래로 내려올수록 표현이 거칠어진다.

 

지난 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미 실무협상을 전후해 정부는 북·미 대화의 진전에 기대를 걸었음직하다. 하지만 북·미 협상의 ‘낙수효과’는 없었다. 북측은 결렬 성명을 미리 준비할 정도로 애초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음이 확인됐다. 정부로선 그 끝에 기대한 이벤트가 월드컵 남북 축구였을지도 모른다. 이를 간파한 북한이 무관중, 무중계 경기를 강행한 것은 남측의 기대에 우악스럽게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2018년 방북일정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9월20일 양강도 삼지연 공항에서 공군2호기에 탑승해 활주로에서 배웅하는 북측 인사들을 창밖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리설주 여사의 모습이 멀리 보인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서성일기자

 

김일성경기장의 무관중 경기는 지난해 이후 쌓아온 북한의 국가이미지에도 타격을 입혔다. 어떠한 정치적 포석이 있었더라도 북한 체제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텅 빈 경기장과 북측이 건설하겠다고 밝힌 ‘사회주의 문명’을 겹쳐보면 도저히 맞지 않는 그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북측이 이런 결정을 한 배경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대화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1주일 전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열어 기존의 핵·경제 병진노선의 승리를 선언하면서 ‘경제건설’에 집중할 것을 결정했다. “더 이상 인민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김 위원장이다. 북한이 경제를 최우선시한 것은 그만큼 사정이 어려움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내년은 북한이 정주년으로 중시하는 노동당 창건 75주년이다. 판문점선언 다음달 김 위원장이 당 7차 대회 중앙위 사업총화 보고에서 “철저히 수행해야 한다”고 다짐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마지막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장 올 12월이면 안보리 대북 제재 2397호에 따라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자들이 전원 복귀한다.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로 핵무력을 갖췄다고 선언했지만 그 과정에서 가해진 유엔 대북 제재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전에 대화에 나섰다. 국내외 많은 북한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온갖 제안이 오가고 합의문이 만들어지는 동안 경제 조건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협상에서 북한이 민생 부문과 관련된 제재의 해제를 요구한 것은 경제적 어려움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북한 체신당국이 최근 발행한 우표. 조선중앙통신이 15일 배포한 우표사진은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인민의 나라’의 장면들이 담겨 있다. 연합뉴스

 

강한 부정은 긍정의 다른 표현이다. 김 위원장은 4·12 시정연설에서 제재 해제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말을 반복하며 자력갱생을 강조했다. 대북 제재를 더 강화해 북한이 손을 들게 하려는 것이 미국의 셈법이다. 이상한 축구경기가 벌어진 15일 랜들 슈라이버 미국 국방부 인도·태평양 안보담당 차관보는 “한반도는 ‘특별한 시점(particular juncture)’에 이르렀다”면서 주로 중국을 상대로 대북 제재의 엄격한 이행을 촉구했다. 김 위원장은 삼지연군을 방문한 자리에서 “미국을 위수로 하는 반공화국 적대세력들이 우리 인민 앞에 강요한 고통은 이제 더는 고통이 아니라 그대로 우리 인민의 분노로 변했다”고 말했다고 노동신문이 16일 전했다.

 

북한은 변하지 않았고 당분간 변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변한 것은 남측이다. 남북관계가 더 이상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순위가 아니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북한의 비핵화도 체제안전 보장도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는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냉·온탕을 오가는 사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남북한 주민들에게 떨어진다. 기괴한 축구는 그 일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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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핵잠수함 유리 돌고루키호와 툴라호가 지난 8월24일 북극해에서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러시아 국방부는 북극해와 바렌트해에서 실시한 훈련 중 ICBM 불라바(Bulava)와 시네바(Sineva) 시험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EPA연합뉴스

 

“떠다니는 구름이 시야를 가린다고 해서 두려워 말고….” “구름이 어지럽게 흩날려도 여전히 태연해야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3일 중국 중앙당교 중·청(중년·청년간부) 양성반 개강식에서 한 연설은 투쟁으로 시작해 투쟁으로 끝났다. 왕안석의 시구와 마오쩌둥의 칠언절구를 삽입했지만 연설의 핵심은 간단없는 투쟁이다.

시 주석은 “우리나라의 주권과 안보, 발전 이익을 위해하는 각종 위험과 도전에 견결히 싸울 것이고, 게다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가 강조한 최종 목표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었다. 중국 입장에서 위협은 태평양 건너편에서 온다. 지난달 초 관세에서 환율로 전선이 확대된 미·중 무역전쟁은 그나마 협상 테이블 위에서 속도가 조절될 수 있다. 극적인 타협점을 찾을 수도 있다. 서로 주고받을 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협상 테이블조차 마련하지 못한 위협이 다가오고 있다. 중국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에 드리워지고 있는 가장 짙은 먹구름의 정체는 미사일이다.

■ 미사일의 국제정치학

눈부신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아직 군사적으로 미국에 필적할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해서 국방의 큰 그림으로 선택한 것이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이다. 두가지 모두 21세기에도 압도적인 미국의 해군력과 무관하지 않다. 해군력과 공중공격 능력에서 열세인 중국은 미사일 배치 및 해상접근 거부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중국은 대함 탄도미사일 DF(東風)-21D와 지대지 미사일 DF-26 등을 개발, 실전배치해왔다. 사정거리가 최대 3000㎞에 달하는 DF-21D는 미국 항공모함과 한·일 내 미군기지를 겨냥한 것이고, 최대 5500㎞인 DF-26은 괌의 미군기지를 사정권 내에 두고 있다. 베트남과 필리핀 등 동남아국가연합(ASEAN) 국가들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남중국해에서는 ‘전함 부딪히기’ 전술로 미 해군의 헤게모니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

미국의 2018년 핵태세검토보고서(NPR) 수록된 2010년 이후 각국의 핵무기 운반수단(미사일) 추가 개발 현황. 러·중에 이어 운반수단을 많이 개발한 나라로 등재한 북한은 화성-12·13·14·15형 등 대륙간탄도미사일급 장거리 로켓 5종을 포함해 총 9종의 육상 및 2종의 해상발사 수단을 확보한 것으로 집계됐다. 러시아는 14종, 중국은 9종을 늘렸지만, 미국은 공중발사 수단을 1종 늘린 것으로 표기했다. 미국이 중거리핵전력(INF)조약을 파기한 근거이자, 중거리 미사일과 소형 핵무기 개발에 나설 것을 선언한 보고서다.

 

중국의 전략은 지난달 2일 미국이 기어코 미·러 중거리핵전력(INF)조약을 파기함에 따라 암초에 부딪히게 됐다. 시진핑 주석이 승진을 앞둔 당 간부들을 모아놓고 투쟁을 다짐한 배경이다.

1987년 미·소가 맺은 INF는 사거리 500~5500㎞의 지상발사형 중(장)거리 순항·탄도미사일 금지협정이다. 미국이 INF 족쇄에서 풀려나 중거리 핵전력을 개발, 배치한다면 중국이 미사일로 유지해온 억지력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해리 해리슨 주한 미국대사가 인도·태평양사령부 사령관이었던 작년 4월 의회 청문회에서 보고한 바에 따르면 중국 미사일 전력의 95%가 INF에 저촉된다. 미국은 중국의 위협 인식을 되레 부추기고 있다. INF 파기 다음날 아시아 순방 중이던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몇달 내로 아시아 지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보름쯤 뒤인 16일엔 캘리포니아주 샌니컬러스섬에서 중거리 순항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동아시아에서 미사일 개발 우등생은 바로 북한이다. 2018년 미국 핵태세검토(NPR)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2010년 이후 모두 7종의 지상발사 미사일을 개발, 중국(5종)과 러시아(5종) 및 미국(0종)을 앞질렀다. 지난해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괌을 사거리로 하는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시험은 잠정 중단했지만 단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아예 내놓고 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석달 동안 모두 8차례의 단거리 미사일 및 초대형 방사포 시험발사를 실시했다.

안보리 대북 제재 위반이건만 트럼프 행정부는 묵인한다는 제스처로 일관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두고 “북한이 판문점에서 약속한 것은 핵실험과 ICBM·IRBM 시험발사 중단”이라고 공개하며 “(단거리 미사일 시험은) 어느 나라나 하는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한·미 간 북한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따른 안보인식의 차이를 공식화한 셈이다. 북·미 대화가 진척되지 않고 공전상태가 장기화한다면 갈수록 벌어질 인식의 격차다.

■ 미·중·러 갈등의 핵, 한반도

북한이 지난 8월11일 함경남도 함흥 일대에서 단거리 발사체를 발사하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신무기’라고만 밝혔지만, 신형 전술 지대지 탄도미사일로 추정됐다. 로이터연합뉴스

 

한국 국방부는 에스퍼 장관의 발언에 대해 “논의도 검토 사실도 없다”고 즉각 부인했다. 하지만 중국 또는 러시아를 겨냥해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한다면 유효 사거리 안에 있는 한국과 일본이 유력한 후보지가 될 수밖에 없다. 북·중·러는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 북한은 한국을 상대로 ‘스스로 총알받이 노릇을 하는 어리석은 자멸행위’(조선중앙통신 8월14일)라고 경고했다.

푸충 중국 외교부 군비통제국장은 지난달 6일 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과 일본, 호주를 콕 집어서 미국 미사일을 배치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경고했다. 그는 “어느 나라도 중국 문 앞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면서도 미국·러시아와 함께 군축체제를 새로 짤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예 싹을 잘랐다. 세르게이 라브코프 러시아 외교부 군비통제 담당 차관도 “미국이 새로운 미사일을 아시아에 배치하면 그 위협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대응조치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가 신형 중거리미사일을 개발, 배치한다면 한반도는 북한 미사일의 기존 위협에 더해 미·중·러의 군비경쟁이 중첩되는 지역이 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군사전략(그런게 있다면)이 낳은 최악의 부산물은 중·러 간 안보협력을 강화시켜놓은 것이다.

지난 7월23일 동해상에는 동아시아 4개국 공군기가 동시에 떴다. 중·러 공군기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한 데 이어 러시아 공군기가 독도상공을 정찰했다. 한국 공군의 K-15K, KF-16기는 360여발의 경고사격을 했다. 중국은 “방공식별구역은 영공이 아니다”라며 무시하고 있다. 일본 자위대 전투기도 발진했다.

중·러와 미국이 서로 상대 위협을 빌미로 군비를 확충하는 경쟁이 계속되면 중·러의 군사행동은 ‘미래의 일상’이 될 수밖에 없다. “더 자주 일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최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 미·일 지식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문제해결 시점을 지금이 아닌 ‘이후’로 제시했다.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제외,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중단을 주고받은 한·일 갈등에 대해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아베 이후’에나 해결에 착수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역사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미루되 아베 시대에는 한·일 양국 국민들 사이에까지 적의가 생기지 않도록 단속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고언이었다. 중국과 북한은 한·일 관계 악화에 환호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가 지난 8월18일 캘리포니아주에서 지상형 중거리 순항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있다. 미국의 중거리미사일 시험발사는 1987년 미·러 중거리핵전력 조약 체결 이후 처음이다. 로이터연합뉴스

 

국제정치학계에서 현실주의와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와 존 아이켄베리 프린스턴대 교수의 세계관은 확연하게 달랐다. 하지만 양자 공히 작금의 악화되는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근본적인 해법은 ‘트럼프 이후’에나 모색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급변하는 동아시아 안보상황에서는 1년 후도 먼 시간이다. ‘아베 이후’나 ‘트럼프 이후’에도 기약은 없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한·일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는 것은 해당 지역 주둔 미군과 한국, 일본 등 동맹국 방어에 관한 것”이라면서 벌써부터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다가오는 선택의 순간

월트 교수는 솔직하게 미국의 본심을 드러냈다. 트럼프가 동맹국들을 공공연하게 무시함으로써 미국 안보이익의 근간인 동맹관계가 느슨해졌다고 한바탕 비난을 쏟아낸 그는 중거리 미사일 배치 필요성을 묻자 차갑게 돌변했다. “미국이 (결정에 앞서) 동맹국들의 처지를 고려해야 한다”면서도 “한국 역시 선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거리 미사일이 한국의 안보를 강화할지에 따라서, 다시 말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면 배치하라는 말이었다. “중국이 두려워 한국의 이해가 아님에도 받아들이는 것 역시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친절하게 덧붙였다.

중거리 미사일 배치가 중국에 위협을 제기함으로써 군비강화의 악순환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 아이켄베리 교수는 한·미 동맹의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할 것을 해법으로 내놓았다. 그러면서도 “동맹이 흔들리면 한국이 자칫 동아시아의 흔들리는 (군사적) 균형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경고를 잊지 않았다.

중국의 094형 잠수함발사9SLBM)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장착한 진(Jin)클래스 잠수함. 중국 해군이 촬영한 사진으로 미국의 2018년 핵태세보고서가 소개했다. 

미국의 핵전략에 동조해 북·중·러와의 새로운 분쟁에 연루될 것인지, 동맹으로부터 방기 위험을 감수할지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과 박정현 연구원이 더힐 기고문에서 지적했듯이 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을 곤혹스럽게 했던 ‘전략적 유연성’과 유사한 딜레마다. 전략적 유연성은 양안 분쟁에 주한미군이 파견됨으로써 한국이 연루될 가능성만으로도 극심한 반발과 우려가 있었다. 이번에는 북·중·러에 직접적 위협이 될 수 있는 공격용 미사일 배치가 걸려 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을 무시하고 제 갈 길을 가려는 북한을 더 멀리 보낼 수도 있다. 남북이 언제 마주 앉았었는지 아득하다.

동맹은 가도 지리적 조건은 바뀌지 않는다. 한반도 거주민이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할 수 없는 핵심가치는 평화다. 미국 스스로 동맹을 금전적 흥정 상대로만 여긴다면 ‘평화’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구름이 시야를 가려도 두려워 말고(不畏浮云遮望眼)’, 투쟁해야 할 당사자는 바로 우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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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도쿄 신오쿠보 지역의 한 건물에 설치된 태극기와 일장기가 교차된 광고물 앞을 한 일본 여성이 걸어가고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된 상황을 취재한 AP통신 기자의 앵글이다. 도쿄/AP연합뉴스

  

“2001년 10월8일 자정이 넘은 깊은 밤. 타이(태국) 북방의 관광도시 치엥마이에서도 140키로메터나 떨어진 먄마(미얀마) 국경과 린접한 깊은 원시림을 꿰지른 삥가우로 네 사람을 태운 커누 하나가 물살을 헤가르고 있었다. 구름 속을 헤염치는 초생달빛이 조심히 젓는 노질에 술렁술렁 번져지는 강물우를 어슴프레하게 비칠 뿐 사위는 쥐죽은 듯 고요했다….”

 

지난해 8·15를 평양에서 맞았다. 평양 한복판에서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을 찾게 될 줄은 몰랐다.  방북 취재 길에 접한 전운광의 소설 명은 <네덩이의 얼음>이다. 태국의 국경 마을 칸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태국 및 일본 형사가 공조수사를 하는 것을 골격으로 한다. 일본 형사가 끼어든 것은 피살자 2명이 모두 일본인이기 때문이다. 렌코라는 이름의 30대 여성은 사원 불당에서, ‘흰 대머리의’ 노인은 그 반대편의 수백년 된 티크나무에 목매인 채 각각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들은 왜 태국 변방의 작은 마을에서 피살됐을까. 유일한 단서는 현장에서 발견된 ‘아시아정의련합’ 명의의 ‘판결집행장’뿐이었다. ‘일본군 전쟁범죄, 성노예 범죄자들을 마지막 한사람까지 추적 처벌한다’는 게 골자였다.

 

■ 평양 한복판에서 발견한 추리소설

전형적인 추리소설 기법으로 쓰였지만 일본의 과거사 관련 현안들이 중간중간 소개된다. 관방부 장관으로 사건을 무마하려는 아베 신조 현 총리도 나온다. 하지만 한달음에 읽힐 만큼 가독성이 높았다. 피살된 노인은 태평양전쟁 당시 태국 라후족 유격대를 진압하던 일본군 토벌대의 니시하라 중대장으로 신원이 밝혀진다. 렌코는 우익단체에서 활동하던 그의 손녀다. 둘 다 일본 황실의 인척이다.

사건을 수사하던 태국 민완형사 웅카라는 현지인과 결혼한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의 아들로 설정된다. 결론은 선명한 인과응보다. 제목의 ‘네덩이의 얼음’에 대한 설명은 종장(終章)에 나온다. 소행성이 일본 근해에 떨어져 시코쿠섬이 완전 폐허가 되고 후쿠시마 원자로가 재폭발해 4개의 일본 열도 전역에 방사능 피해가 퍼진다는 저주를 담고 있다. 그리하여 “풍파사나운 태평양 한가운데를 향방없이 좌충우돌하며 떠돌고있는 차고 싸늘한 그 네덩이의 얼음을 세상 사람들은 쓰거운 웃음 속에 지켜본다”.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열린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항의하는 집회 참석자가 ‘No 아베’ 펼침막을 들고 있다. 한국의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반일본’보다 비난 대상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로 국한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AP연합뉴스

 

일본의 전쟁범죄를 추궁하는 것은 평양 사람들에게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였다. 조선중앙TV에서는 해방 직후 인민 속으로 숨어든 친일파와 미군첩자를 색출하기 위해 비밀활동을 하는 여성 혁명가 이야기를 담은 <방탄벽>이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었다. 딱히 광복절 즈음에만 반짝하는 게 아니다. 김일성 주석의 항일투쟁을 건국의 초석으로 여기는 사회다. 일본은 철저하게 응징과 저주의 대상이다. 일본도 이를 알기에 북한을 대하는데 조심스럽다.

 

■ 남한이 우스운 일본, 북한이 아쉬운 일본

 

아베 신조 내각이 지난 7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에서 기어코 제외하면서 올해 8월은 어느 해보다 반일 에너지가 분출되고 있다. 아베의 준비된 일격에 대응책을 찾는 것도 녹록지 않다. 그래서인지 오는 24일 우리가 연장 결정을 하게 돼 있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재검토론까지 대두됐다.

노동신문을 비롯한 북한 매체들은 아베의 도발에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부으면서 ‘민족공조’를 하고 있다. 북측의 언어는 매섭다. 적반하장격인 일본을 두고 ‘평화 부수는 악성종양’ ‘고약한 섬나라 족속’이라고 지탄했다. 아베 총리는 ‘현실을 제대로 분간할 줄 모르는 정치난쟁이’로 규정했다. 남측 일각에서 “속이 다 시원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그런데 북한은 일본만 공격하는 게 아니다. 7월23일 신형 잠수함을 공개한 데 이어 지금까지 네차례나 신형전술유도탄 혹은 신형대구경조종방사포시험을 감행했다. 특히 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참관하에 위력시위 발사한 신형전술유도탄은 평양 수도권 상공에서 한반도를 횡단, 동해의 목표물을 정밀타격했다. 정확하게 남측을 사정권으로 하는 무기다. 한·미 군사훈련을 빌미로 내세우지만 북측 매체의 보도를 꼼꼼히 읽어보면 ‘지상군 작전의 주역을 맡게 될 신형 무기’ 개발 성공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일본과 북한만 우리를 옥죄는 게 아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경제와 안보 악재에 꼼짝없이 포획된 모양새다. 미국은 한·일 갈등 해소에 나서기는커녕 한국에 대해 방위비 증액, 호르무즈 해협 파병, 중거리 미사일 배치의 3중 압박을 가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인가. 한발 떨어져서 보면 한반도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제·안보 사안들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느닷없이 돌출한 것도 아니다. 한반도 분단 체제에서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사건들이 공교롭게 겹쳤다. 나라별로 따져보면 각각 갈등요인과 협력요인이 병존한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실타래를 풀어가야 한다. 우선 일본이다.

 

■ 아베, 도발인가 몽니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 이후 북한의 잇단 단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작은 일’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 본토에 도달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아니면 괜찮다는 말이다. 5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체 시험에 ‘깊은 유감’을 표했던 아베 역시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복창하듯 “일본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사태는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은 “중대한 위협이자 심각한 과제”라고 본심을 내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해 9월26일 뉴욕의 롯데뉴욕팰러스 호텔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미·일 정상회담 기자회견을 갖는 자리에서 불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받았다는 편지를 양복 상의 안주머니에서 꺼내 보이고 있다.        뉴욕/AP연합뉴스

 

아베의 여유는 북한 미사일의 사거리에 따라 간단하게 뒤집힐 수밖에 없다. 2017년 8월29일 오전 6시2분, 북한이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을 일본 열도 위로 발사하자 홋카이도 주민들은 혼비백산했다. 재난 및 긴급상황을 통보하는 ‘J-얼럿(Alert)’ 시스템이 발동됐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각료회의를 열었다. 한반도 유사시 서울 수도권의 인명피해와 도쿄 수도권의 피해 예상치는 별차이가 없다. 북한발 위기에 관한 한 한·일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것이다.

 

다만, 아베의 대응에는 뒤틀린 속셈이 엿보였다. 한반도 위기를 종종 평화헌법 개헌의 호재로 동원하려는 의도 탓이다. 지난해 4월13일 참의원 국방위에 출석해 “북한이 사린가스 미사일 발사 능력을 갖췄을 것”이라며 되레 국민을 더 불안케 한 것이 대표적이다. 같은 달 “유사시 (대한해협을 넘어올) 난민 수용시설 설치 및 난민 심사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한반도 거주민을 졸지에 ‘가상난민’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단호한 행보는 거기까지였다.

 

지난해부터 5차례의 북·중, 3차례의 남북, 2차례의 북·미, 1차례의 북·러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아베는 철저히 소외됐다. 작년 9월 미·일 뉴욕 정상회담 기자회견 석상에서는 트럼프가 자신을 앉혀 놓은 채 품속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꺼내 보이는 것을 바라봐야 했다. 결국 올해 6월부터 김정은 위원장과의 무조건적 대화 제안을 내놓고 마냥 기다리고 있다. 대남 경제 도발 이후 남한의 고위급 대화제의를 한사코 외면하는 반면에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 납치문제 해결 모습을 자국민에게 보이길 고대하고 있다. 남북을 분리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일본 문제에 관해서라도 은밀하게나마 민족공조를 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북·일이 대화의 물꼬를 튼다면, 오히려 우리가 소외되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남북관계나 북·일관계나 많은 부분 북·미협상 결과에 영향을 받는다.

 

■ 아베의 다음 수(手), 그 의표를 찔러야 한다 

일본과의 역사문제나, 우리의 안보문제나 단기간에 풀어나갈 수 있는 것들은 아니다.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현실은 한·일 모두 미국과의 안보 삼각형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중재를 기대하지만, 미국은 한·일 갈등에 여유가 넘친다. 갖가지 현안에서 한국이나 일본을 미국 편으로 끌어들이기 좋은 조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 일본과 일전을 불사하려 한다면, 일본을 향한 결기만으론 안된다. 미국 중심 안보 삼각형의 틀을 깨겠다는 담대한 전략을 먼저 마련하고 움직여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삼각형 내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차도지계(借刀之計)는 어떨까. 해결고리는 일본이 내민 ‘안보상의 우려’라고 본다.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서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징용자 판결에 대한 대항조치나, 보복조치가 아니라 수출관리의 문제라고 시치미를 떼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이 하는 것을 봐서 언제든지 보복 범위를 넓힐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오는 24일 우리가 연장 여부를 결정할 GSOMIA는 양날의 칼이다. 북한 관련 정보는 일본이 더 아쉽다.

 

우리가 홧김에 탈퇴한다면 당장 속이 시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난관이 많은 한·미관계에 상당한 타격이 된다. 한번 깬 협정을 복원하기는 더 어렵다. 특히 중국발 위기가 고조되면 우리 역시 아쉬운 면이 커진다. 워싱턴의 보수정객들 사이에서 “한국이 GSOMIA를 흔들 것”이라는 말이 넓게 퍼져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아베가 사전에 설치해놓은 덫일 가능성이 높다는 전언이다. 그 덫에 들어가면 아베의 꾀에 넘어간다.

 

이럴 때 딱 ‘아베 수준’으로 대응하는 것도 방법이다. 예를 들면 “경제 갈등에도 불구하고 대승적인 의미에서 GSOMIA를 연장한다. 다만, 일본이 제기한 ‘안보상의 우려’가 명확하지 않은 만큼 우리 역시 안보상의 우려에서 대일 정보제공에 더욱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천명하는 것이다. 일본이 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못박아둠으로써 우리 역시 여지를 확보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북한의 반일 감수성은 분단 70여년 동안 다져온 것이다. 단단하다. 하지만 ‘당의 결심’에 따라 언제든지 일본과 관계개선을 할 수 있는 게 북한과 같은 당국가체제이다. 일본에 대한 심정은 충분히 공유하되, 현실에서는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남과 북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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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혼란스러울 때 등 뒤에 화살을 쏘아선 안된다. 구한말 조선의 지식인들이 느꼈을 국가적 위협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게다. 그중 무엇을 가장 큰 위협으로 보았느냐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달라졌다. 나라를 상속재산쯤으로 여겼던 봉건 왕가의 피붙이들과, 왕실과의 혼인으로 권력과 재력의 로또를 맞은 민씨 일족에겐 재산권 침해가 가장 큰 위협이었을 게다. 나라의 운명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녹두장군 전봉준에게 위협은 ‘사람을 하늘로 여기지 않는’ 부패한 관리들이었고, 국권 침탈을 노리는 외세였다. ‘극단의 시대, 합리성에 포획된 근대적 인간’(역사학자 김윤희) 이완용이 을사늑약과 한일합방을 주도하면서 내세운 논리는 두 가지였다. 을사늑약 반대론자들에 대해 “가령 저들처럼 충성스럽고 의로운 자들이 나라 안에 있었다면 쟁집(爭執)했어야 하고, 쟁집해도 안되면 들고일어났어야 하고, 들고일어나도 안되면 죽었어야 한다”는 말 화살을 날렸다. “국가로서 독립할 실력이 없이 독립을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본과 제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른바 준비론의 요체다.

 

합방 이후 그리 합리적이었던 친일파들의 행적은 ‘준비’나 ‘자강’과 거리가 멀었다. 덴노(天皇)가 던져준 작위를 감지덕지 받아 챙기고 부귀영화를 누렸다. 독립할 실력을 키우기는커녕 대부분 제 재산을 불리기에 바빴다. 부인할 수 없는 현대사의 질곡이다. 마땅히 쟁집했고, 쟁집해도 안되니 들고 일어났으며, 죽어 쓰러지는 순간까지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깃발을 들었던 동학도들은 저들의 안중에 국민이 아니었다. 

 

지난 6월28일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악수한 뒤 그를 지나쳐 걸어가고 있다. 아베 총리의 시선이 카메라를 보고 있다. 오사카 AP연합뉴스

 

 

친불·친영파 나뉜 미국 초창기
자유 제국·무역입국 놓고 충돌

외세보다 조국 택해 슈퍼파워로

 

개혁·이념파 경쟁하는 베트남
투쟁·협력의 외교원칙 정착돼
강대국과 군사동맹 없이 자강

 

한·미·일 삼각 질서에 포획돼
과거와 다름없는 좌표만 노출
소모전보다 외교 역량 키울 때

 

난세에 특정 외국에 기대려는 심리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있다. 그 최종 목적이 무엇이냐가 중요하다. 독립 초기 신생국 미국의 엘리트들은 두 부류로 갈렸다. 친프랑스파와 친영국파다. 친불파의 대표적 인물은 주불 대사를 거쳐 초대 국무장관과 3대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이었고, 친영파의 지도자는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이었다. 각각 제퍼소니언과 해밀토니언으로 불리며 지금까지 이어지는, 미국적 가치의 양대 흐름이다. 양 진영에 ‘제휴할 나라’만 다른 게 아니었다. 제퍼슨은 자작농에 기반한 ‘자유의 제국’을 꿈꾸었지만, 해밀턴은 금융과 무역입국을 도모했다. 제퍼슨은 공화당, 해밀턴은 연방당을 이끌었다. 양 진영의 대립은 그리 고상하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제퍼슨은 환호했지만 영국을 좇은 해밀토니언들은 급진주의를 경계했다. 해밀턴의 연방당원들은 “제퍼슨이 정권을 잡으면 뉴잉글랜드 사람들은 모두 단두대감”이라고 걱정했다고 한다.

 

제퍼소니언들은 해밀토니언을 두고 ‘영국의 사람들’이라고 비난하고, 해밀토니언들은 ‘프랑스의 도구들’이라고 되받았다. 저잣거리에서 일반 주민들 간에 격돌까지 벌어졌다고 하니, 감정적 대립도 심했다. 조지 헤링의 <식민지에서 슈퍼파워까지>가 전하는 미국 사회의 대립구도다. 프랑스 공화국 제1집정관 나폴레옹의 거병으로 영·불 전쟁의 전운이 짙어가던 무렵 미국 내에서 먼저 영·불 전쟁을 한 셈이다. 1790년대 초 ‘미국 내 모든 항구에서 영국 선박을 차단해달라’는 프랑스의 주문이 전달되면서 갈등은 증폭됐다. 하지만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영·불 사이에서 중립을 선택하면서 파멸적 충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스페인이 프랑스에 루이지애나를 할애하자 미국의 고민은 깊어갔다. 아메리카 대륙에 거대한 프랑스 영토를 건설하려는 나폴레옹의 야심을 알기 때문이었다. 위기를 기회로 돌려놓은 것은 ‘친불파’의 핵심, 제퍼슨이었다. 제퍼슨은 프랑스에 뉴올리언스와 주변 해안지역의 매입을 제안했다. 협상이 진행되면서 매입 대상은 미시시피강 수계에 걸쳐 있는 루이지애나 영토 전체로 확대됐다. 제퍼슨은 프랑스가 거부한다면 영국과 동맹을 맺을 수 있다는 복안을 드러내며 영국 카드를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1803년 ‘루이지애나 매입’이 성사된 것은 그가 오랜 세월 프랑스에 심어놓은 신뢰가 자산이 됐다. 전비가 급한 나폴레옹에게 1500만달러(2017년 GDP 기준 6000억달러)를 쥐여주고 얻은 루이지애나는 미국 본토의 40%에 달하는 거대한 영토였다. 후일 미국을 슈퍼파워로 만들어준 자산이 됐다. 미국 동부를 중심으로 금융과 무역입국을 꿈꿨던 해밀토니언들은 넓어진 영토에서 번영을 일궈냈다. 위기에 처한 약소국 안에서 양분된 채 정쟁을 일삼았지만, 각기 자신들의 신념과 방식으로 국가의 부(富)와 강(强)을 끌어낸 사례로 꼽고 싶다. 그들의 최종 목적은 조국이었지 프랑스나 영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어쩌다가(accidental) 슈퍼파워’가 된 것은 두 개의 ‘사대주의’가 모두 제 몫을 다한 덕분이다. 특히 프랑스가 제기하는 위협을 ‘친불파’가 해결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방한한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운데)가 지난 17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청사에서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면담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일이 싸우고 미국이 지켜보는 구도는 1965년 이후 반복되고 있다. 스틸웰 차관보는 한·일 무역전쟁과 관련해 “동맹국이기 때문에 한·미가 관련된 모든 이슈에 관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AP연합뉴스

 

1980년대 말, 국가적 존망의 위기에 처한 베트남의 경우 역사적 숙적이자 위협의 원천인 중국과 교섭하는 역할을 ‘친중파’가 맡았다. 1978년 캄보디아 점령 이후 10년 동안 베트남은 두 개의 전선에서 싸웠다. 캄보디아에선 크메르 루주를 비롯한 게릴라들과, 중국 국경에선 중국군과 포격전을 벌였다. 두 개의 전쟁을 치를 수 있도록 군사적, 경제적으로 도왔던 소련이 돌아섰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1985년 페레스트로이카(개혁)·글라스노스트(개방)와 함께 신사고를 표방했다. 그 신사고 안에는 베트남과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도 포함돼 있었다. 베트남 공산당 지도부는 양 진영으로 갈려 국가가 직면한 위협에 대해 각각 다른 판단을 내놓았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 투철한 이데올로그들은 사회주의권 붕괴를 위협의 원천으로 보았고, 개혁파는 낙후된 경제를 최대 위협으로 꼽았다. 이듬해 제6차 당대회에서 도이머이(쇄신) 정책을 발표했지만 서방세계로부터 고립된 상황에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베트남 지도부는 결국 캄보디아 철군을 결정한 뒤 중국에 투항했다. 1989년 9월2일, 베트남 지도부는 하노이를 비우고 중국 청두로 날아갔다. 응우옌 반 린 당 총서기와 레 둑 안 국방장관 등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은 중국에 사회주의 연대를 제안했다. 제국주의에 맞서 ‘이념의 동맹’을 맺자는 제안은 “친구는 될 수 있지만, 동맹은 아니다”라는 중국의 거절 탓에 좌절됐다. 하지만 대중 외교는 베트남이 최소한 국제사회로 복귀하는 첫 단추를 끼웠다. 1991년 중국과의 국교정상화, 동남아국가연합(ASEAN) 복귀, 1995년 미국과의 국교정상화로 이어졌다. 베트남 공산당 지도부에는 여전히 중국 공산당을 이념의 동지로 여기는 세력이 권력의 한 축을 맡고 있다. 개혁파와 이념파는 지금도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 주권을 침해하는 중국을 견제하되, 중국의 고도성장에 편승하는 ‘투쟁·협력의 외교원칙’을 정착시켰다. 베트남과 중국 관계는 전형적인 ‘관온민랭(官溫民冷)’이다. 2015년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아시아 10개국 국민들의 상대국 인식조사에서 베트남 응답자의 19%만이 중국에 우호적이라고 답했다. “베트남 공산당이 중국의 2등 국민이 되길 원한다” “조국을 중국에 팔아넘겼다”는 불만이 나온다. 하지만 양국 지도층과 관영 언론은 양국관계에 부정적인 요소를 한사코 지우고 있다. 베트남은 그럼에도 군사동맹을 맺지 않는다. 강대국의 망토 안에서만 안보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동아시아 분단국과 참 다르다.

 

아베가 활짝 웃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1일 참의원 선거에 당선된 자민당 후보들의 이름 옆에 장미꽃을 붙여놓으며 웃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아사히TV 참의원 선거 개표방송에 출연해 “한국이 청구권 협정 위반 상황에 대한 답변을 가져오지 않으면 건설적인 논의가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EPA연합뉴스

 

이달 초 한국의 의표를 찌른 아베 신조 일본 내각의 무역보복 탓에 한·일관계는 1965년 수교 이래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지면서 그나마 활발했던 민간교류에까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무역마찰을 ‘무역전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전쟁을 방불케 할 만큼 긴장이 고조되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와 결합해 실제 전쟁으로 이어진 사례도 적지 않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급습은 미국의 대일 석유금수조치 끝에 발생했다. 치밀하게 계산된 도발에 나선 일본과 달리, 뒤늦게 대책 강구에 나선 한국은 비축해놓은 총알이 별로 없다.

 

그 와중에 전선에 나선 이들의 뒤통수에 총을 쏘는 구한말의 작태가 재연됐다. 일부 정치인들이 정부의 외교실책 비판에 화력을 집중하면서 작용과 반작용이 맞물리며 발생한 사태다. 친일파 논란이 새삼 불거지고, ‘죽창가’와 국채보상운동, 의병론의 레퍼토리가 나왔다. 밥값을 못하는 정부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일본과 대적해야 할 정부의 뒤에 총을 쏘고, 적을 응시해야 할 정부가 고개를 돌려 맞총질을 하는 구도는 볼썽사납다.

 

‘일본’은 한국민에게 단순한 나라 이름이 아니다. 과거사를 돈 몇 푼에 팔아넘긴 선대의 패착이 악순환하면서 숱한 감정의 복선을 낳았다.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민족주의와 국민적 감정은 다르다. 과열되지만 않는다면 대일 교섭의 에너지가 될 수도 있다. 그 감정을 인정하되 현실외교에서 냉정하게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국민의 총합으로써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친일파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지 100년이 넘었다. 그 정도면 준비하기 충분한 시간이 아닌가. 그럼에도 여전히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 친불파와 베트남 친중파가 그랬듯이 우리의 친일파도 자산이 될 수는 없을까. ‘토착왜구’도 분명 우리 역량의 일부다. 일본을 깊이 이해하고, 애정하는 그들이 경쟁적으로 대일 교섭에 나서주었으면 한다.

 

아베의 일격은 우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세계 굴지의 교역국이자 반도체 강국의 급소가 노출됐다. 국제 분업으로 유지되는 자유무역 질서라고 하지만 일본 소재로만 완성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재계 일각의 안이함이 위기를 배양해왔다. 우리 기술, 우리 중소기업을 키워낼 생각이 적었다. ‘푸른 눈의 쇼군(將軍)’은 이번에도 한·일 갈등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일본인들의 철저한 준비와 의사결정 과정을 네마와시(根回し)라고 한다던가. 아베 내각의 네마와시 과정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사전 조율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건 난센스다. 그럼에도 미국으로 달려가 ‘거시기한 반응’만 접하고 돌아와야 했다. 한·미·일 삼각형 질서에 포획된 우리의 좌표가 아프게 노출됐다. 1965년 체제는 끝났다. 새로운 포석을 고민하고, 준비할 때다.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그동안 친일파라도 나서주길 기대한다.

 

뉴저지 베드민스터에 있는 자신의 골프클럽에서 주말을 보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 백악관으로 귀환하면서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골프장으로 가기 하루 전인 19일 한-일 무역분쟁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일 무역갈등 관여를 요청받고 ‘내가 얼마나 많은 일에 관여해야 하나’라고 했다”면서 “양국이 모두 원한다면 개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법어를 남겼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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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26일 알래스카의 엘멘도르프 공군기지에서 잠시 기착했다가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에 오르면서 오른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



“많은 나라들이 회담 장소로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남북의 경계에 있는 판문점 ‘평화의집’이 제3국보다는 더 표상적(representative)이고, 중요하며, 영속적인 곳이 아닐까? 그냥 한번 물어본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사상 첫 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밝힌 트위터 메시지다.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에 관심을 두었던 까닭은 ‘축제’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사람은 (판문점을) 싫어하고, 어떤 사람은 아주 좋아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까닭은 거기에서 무언가 일이 잘되면 엄청난 자축을 해야 할 장소는 제3국이 아니라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한반도와 관련해 잠재적으로 무언가 일어나게 할 수 있는 지점에 이처럼 가까이 온 적이 없었다”고도 말했다. 몽골과 베트남, 싱가포르와 함께 판문점이 회담 장소로 거론됐던 즈음이다. 판문점은 싱가포르와 함께 마지막까지 검토됐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판문점’


트럼프가 아니더라도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판문점과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해왔다. 냉전시대에는 베를린과 함께 공산진영과 대치했던 자유진영의 최일선으로서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고, 탈냉전 시대에는 세계로부터 고립된 섬이자, 핵무기를 개발하는 위험한 나라에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방문 장면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겨 은퇴 뒤 대통령 도서관에 보관해왔다. 8·18 도끼만행 사건 7년 만인 1983년 11월13일 미8군 야전점퍼를 걸치고 판문점 캠프 리버티벨에 섰던 로널드 레이건은 미 2사단 장병들에게 확고한 전투태세를 주문했다. “아웅산 테러를 저지른 북한은 증오와 좌절에 토대를 둔 공산주의 정권”이라면서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유일하게 생산할 수 있는 것이라곤 폭압과 군사력뿐”이라고 지탄했다. 레이건의 음성은 차분했지만, 후일 판문점 방문을 인생의 가장 잊지 못할 경험의 하나로 꼽았다. 

 

역대 미 대통령들의 판문점 방문 모습한국을 방문한 많은 미국 대통령들에게 판문점은 주요 방문 장소 중 한 곳이었다. 주로 북한의 도발을 경고하거나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다짐하는 무대로 사용됐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로널드 레이건과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판문점 미군 초소에서 각각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판문점을 찾은 미국 대통령들은 최북단의 미군 초소 오울렛에서 북쪽을 바라보는 사진을 남겼다. 북한과 25m 지점이다. 판문점에서 북한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사람은 빌 클린턴이었다. 클린턴은 1993년 7월 ‘돌아오지 않는 다리’의 중간쯤까지 걸어갔다. 북한군 초병이 불과 15m 앞에 있던 지점이었다. 클린턴은 북한군 병사들을 바라보며 “언젠가 저들도 이곳까지 평화롭게 걸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아시아 순방의 마지막 방문 장소로 판문점을 선택했던 것은 미국의 강한 방위공약을 확인시킴으로써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에 따른 한국과 일본 등 우방국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였다.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해 한반도 거주민을 긴장시켰던 조지 W 부시는 2002년 2월20일 도라산역 연설에서 자극적인 발언을 삼갔다. 대신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권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무기들로 우리를 위협하도록 허용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세 달 뒤인 2012년 3월25일, 북한이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를 예고한 가운데 판문점을 찾은 버락 오바마는 처음으로 방탄 안경을 썼다. 오바마는 캠프 보니파스의 미군 장병들에게 “여러분은 자유의 최일선에 있다”면서 “자유와 번영의 관점에서 남북한의 차이는 너무도 분명하다”고 말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견학이 재개된 지난 51일 오전 북측 경비군인들이 판문각을 나와 근무지로 이동하고 있다. 군은 ‘9.19’ 군사합의’에 따라 JSA 자유왕래를 위한 비무장화 조치를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일반인 안보견학을 일시 중단해왔다. 사진 공동취재단


■1년 만에 달라진 트럼프의 판문점

 

트럼프가 오늘 다시 서울을 방문한다. 내친김에 판문점을 방문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계획은 없다고 확인했다. 지난 26일(현지시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릴 일본 오사카로 떠나기 전 백악관 로즈가든 회견에서 밝힌 내용이다. 트럼프는 그러나 “나는 어쩌면 다른 형식(form)으로 그와 말할 것”이라면서 여운을 남겼다. 판문점을 방문한 미 대통령들은 ‘미군통수권자’임을 강조하기 위해 대부분 군복을 걸쳤다. 미군 병사들을 위로, 격려하는 한편 한·미 동맹의 굳건한 태세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트럼프가 판문점을 방문한다면 그 역시 군복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유독 주한미군 병사들의 고향 복귀를 여러 차례 다짐해온 트럼프가 내놓을 메시지는 사뭇 결이 다를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희망 섞인 관측은 주로 한반도 남쪽에서 나오지만 트럼프의 방한 전 분위기는 사뭇 다르게 흘러간다. 

 

트럼프 입에서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이 거론된 지 1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결코 짧지 않은 여정이었다. 때로 울퉁불퉁한 험로를 지나고, 앞이 잘 안 보이는 안갯속이었지만, 그 끝에는 평화의 단서가 잡힐 것이라는 기대가 살아 있다. 그사이 1번의 북·러, 2번의 북·미, 3번의 남북, 4번의 북·중 정상회담이 열렸다. 하지만 돌고 돌아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행보는 그리 멀리 나가지 못했다.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북한 외무성의 권정근 미국 담당 국장은 지난 27일 담화를 통해 북·미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미국의) 제대로 된 협상자세’와 ‘말이 통하는 사람(실무협상 대표)’을 내세웠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4월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강조한 대로 “미국이 올바른 셈법을 가지고 나와야 한다”고 못 박았다. 남측에 대해선 “우리가 미국에 연락할 것이 있으면 조·미 사이에 이미 가동되는 연락통로를 이용하면 되는 것이고, 협상을 해도 조·미가 마주앉아 하는 것인 만큼 남조선 당국을 통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겉으로만 보면, 일개 국장이 대한민국을 능멸한 셈이다. 하지만 아기가 유난히 보채면 잠잘 때가 됐거나, 젖먹을 때가 됐다는 신호이다. 북쪽에서 험한말이 자주 나오면, 그만큼 그 반대의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칙으로 안다. 어쨋든 평양을 방문했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편에 “트럼프 대통령과 가급적 이른 시일에 만나고 싶다”는 말을 건넸던 1년 전과 판이한 변화다. 

 

지난 5월1일 오전 북측 판문각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북측 판문각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판문각 옥상과 출입문에선 중국인으로 보이는 북측 관광객들이 기념촬영 등을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사진공동취재단


■돌고 돌아 제자리인 북핵 협상


북·미 협상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그사이 상당 부분 식었다. 관심의 초점도 이동했다. 트럼프의 방한 및 판문점 방문 여부가 아니라 오늘 오전 오사카에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에 관심이 쏠려 있다. 지난 5월 강 대 강 구도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결렬된 미·중 무역분쟁의 후속 협상이기 때문이다. 각국 관측통들은 지난 20일 평양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의 의미 역시 미·중 무역협상의 틀 속에서 읽었다. 뉴욕타임스는 북한과 미국, 중국 정상의 ‘어울리지 않는 3자 댄스’로 표현했다. 하지만 굳이 춤에 비유하자면 북핵 문제는 결국 북·미가 함께 추는 탱고라는 말이 더 정확할게다. 북·미 간 직접 대화를 제외한 다른 모든 움직임은 중재 또는 조력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가 아무리 블라디보스토크역이나 베이징역을 돌아다녀도 결국은 워싱턴에서 여정을 마쳐야 한다. 국내 일각에서 기대하는 바, 트럼프의 판문점 방문에서 인상적인 이벤트가 있다면 나쁠 건 없지만, '나홀로 리얼리티쇼'는 문제 해결의 핵심과 거리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하면서 잠시 틈을 내 도보다리 산책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마찬가지로 김 위원장의 최근 북·러, 북·중 정상회담 역시 각각 양자관계의 정상화 또는 심화라는 소득은 있을지언정 북한의 국가적 명운이 걸린 대미협상에서 결정적인 자산이 될 가능성은 없다. 드러난 성과도 없었다. 지난 4월25일 북·러 정상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의 한 축을 허물 획기적인 역할을 약속했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북·중 정상회담 하루 전인 지난 19일자 노동신문 기고문에서 양국 간 교류와 협조의 대상으로 ‘교육·문화·체육·관광·청년·지방·인민생활 등’을 언급했다. 하지만 북한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경협은 제외했다. 북·중이 ‘좋은 동지와 좋은 이웃’으로 국교수립 70년 동안 우호관계를 확인하는 외교적 수사만이 남발됐다. 중국에 북한의 존재가 혹 없어지면 치아가 시릴 수도 있기에 긴요한 ‘입술’이라면, 미국과의 관계는 곧바로 ‘치아’에 해당한다. 미·중 오사카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시 주석이 트럼프의 심기를 거스르는 무리수를 둘 가능성은 애초 없었다.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은 각각 북한의 ‘합리적인 관심사’인 체제 안전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을 것이다. “북한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풀을 뜯어먹더라도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푸틴 대통령)”임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 주고받은 북·미 정상의 편지

 

세계는 북·러, 북·중 정상회담 결과보다는 북·미 정상이 주고받은 편지 내용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북·미관계에서 유일하게 적대적이지 않은 관계로 “생각나면 아무 때든 서로 안부를 묻는 편지를 주고받을 수도 있는” 트럼프와의 개인적 관계를 꼽았다. 그가 말한 편지가 최근 오갔다.

 

트럼프는 지난 11일 김 위원장으로부터 ‘아주 개인적이고 따뜻한 편지’를 받았다고 소개했다. “매우 긍정적인 무언가가 일어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그 편지에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고 부연했다. 이에 화답하듯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23일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 능력과 남다른 용기에 사의를 표한다. (친서의) 흥미로운 내용을 심중히 생각해볼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서로의 편지에 담겼다는 ‘흥미로운 내용’은 27일 현재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북·미 간에 긍정적인 발전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낳고 있을 뿐이다. 그 끝에 이뤄지는 게 트럼프의 방한이고, 판문점 방문 검토 사실이 알려지면서 연상작용을 일으키는 희망의 근거다.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북한과의 거리를 오울렛 초소의 25m에서 다소나마 줄이는 데에는 빌 클린턴의 방문까지 꼬박 40년이 걸렸다. 오바마는 다시 25m로 후진했다. 트럼프는 얼마나 다가갈까. 어쨌든 판문점을 대북 경고와 한·미 동맹을 과시하는 무대가 아닌, 축제의 장으로 지목한 미 대통령은 트럼프뿐이니 기대해본다. 다만, ‘다른 형식의 대화’가 아닌, 대면을 권한다.

 

2017년 4월17일 방한 첫 일정으로 판문점을 방문한 렉스 틸러슨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왼쪽)의 말을 듣고 있다. 창밖에선 북한군 병사가 바짝 붙어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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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 시내 한복판에서 길을 잃었다. 지난 6월 3일 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골목을 걷다가 문득 뒤돌아보니 보수되지 않은 계단이 인상적으로 보였다. 

 

 

 지난 7일 오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 한 무리의 북한 청년들이 청사 앞 광장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다가가 말을 건네니 “오늘 아침에 평양에서 비행기를 타고 막 도착했다”고 한다. 평양~블라디보스토크 간에는 고려항공이 주 2회 취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1시간20분. ‘열차 편으로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고 묻자, 피식 웃으면서 “몇 시간이 아니라 며칠 걸립니다”라고 말했다. 23세라고 나이를 밝힌 한 청년에게 ‘학생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짧게 답했다.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섬의) 극동연방대학에 다닌다”면서 “전공은 설계”라고 말했다.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그는 불쑥 담배를 갑째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가 건넨 담뱃갑의 상표에 눈길이 꽂혔다. ‘평화’였다.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의 북한인들. 마이크로 버스에서 내린 이들은 말쑥한 차림으로 러시아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간부급 직원들로 추정된다. 몇마디 말을 주고받은 사람들은 더 젊은 청년들이었다. 

북한 사람들에게 러시아는 ‘기회의 땅’이다. 수만명이 주로 건설노동자와 벌목공으로 러시아에서 일해왔다. 하지만 2017년 12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에 따라 취업 중인 북한 노동자들은 올해 말까지 철수해야 한다. 

 

러시아는 ‘한반도’를 열망하고 있었다. 지난 4월 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프리모르스키주(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방문이 강한 인상을 남긴 듯했다. 지난 3~4일 블라디보스토크 롯데호텔에서 KEB하나은행 금융경영연구소(소장 정중호)와 사단법인 유라시아21(이사장 김승동)이 공동주최한 ‘동북아 초국경 경제협력 포럼’에서 만난 러시아인들은 김 위원장의 방문에서 희망을 캐내고 싶어 했다. 북·러 합작법인인 라선 콘트라스의 이반 톤키흐 공동대표(35)는 자신이 ‘셀피’로 담은 김 위원장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젊고 거침이 없는, 오픈 마인드의 지도자였다. 과거의 (사회주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시장을 발전시키지 않았나. 그 시장을 국제 차원으로 넓혀갈 것”이라고 말했다. 알렉세이 스타리치코프 국장은 “북한 주민의 생활여건 향상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외곽에 있는 레스나야 자임카. '사냥꾼들의 작은방'이라는 뜻의 고급식당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26일 식사한 곳이다. 

 

김 위원장이 귀로에 점심 식사를 한 시 외곽의 레스토랑 레스나야 자임카의 종업원 개릭은 러시아 TV방송에서 보도한 스틸화면 사진을 휴대폰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하지만 몇 장의 사진과 인상기 외에 김 위원장의 방러가 무엇을 남겼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러시아 국경일(러시아의날)을 맞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보낸 축전에서 “우리의 뜻깊은 첫 상봉에서 이룩된 공동인식과 합의들이 풍만한 결실을 거둠으로써…”라며 전략적·전통적 친선관계의 승화를 강조했다. ‘사냥꾼들의 작은 방’이라는 뜻의 레스나야 자임카의 벽에는 2002년 8월24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다녀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러시아가 한반도를 열망하는 것은 전략적, 실리적 이유에서다. 북·중 국경은 1420㎞인 데 비해 북·러 국경은 17㎞에 불과하다. 두만강을 사이에 둔 북한과의 짧은 국경선은 러시아 극동이 한반도와 연결된 ‘기회의 통로’다. 그곳에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 횡단열차(TSR)를 연결하고, 가스관을 설치해 천연가스를 한국과 일본으로 공급하는 게 러시아의 오랜 숙원이다. 휴전선으로 대륙과 분리돼 섬처럼 살아온 우리 역시 대륙과의 연결이 긴요하다. 하지만 천문학적 예산이 들어가는 메가프로젝트를 당장 실현할 가능성은 적다. TKR과 TSR 연결을 통해 유럽으로 가는 물류 루트 역시 북극항로라는 대체재 또는 보완재가 등장한 변화를 감안해야 한다. 

 

중국 지린성 훈춘에서 관광 버스 편으로 막 크라스키노에 도착한 조선족 동포들. 왼쪽 구본권 선생(88)은 지린성 창춘에서 중학교 교사를 지내신 분이다. 그분의 선친은 고향 울릉도를 떠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2년 동안 거주하시다가 중국 지린성 옌볜자치주로 이주하셨다고 한다. 북-중-러 삼국의 접점에는 각각의 사연을 가진 한국인 코스모폴리탄들이 아직도 많이 거주하신다. 

 

연해주 방문기간이던 지난 7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러·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미국에 맞선 러·중의 견고한 연대를 과시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중국을 경계한다. 공연한 경계가 아니다. 중국의 대표적인 현실주의 정치학자 옌쉐퉁은 아예 내놓고 러시아를 ‘대중국 의존국가’로 분류한다. 저서 <2023, 세계사 불변의 법칙>에서 원유·천연가스 수출에 의존하는 러시아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지면서 결국 중국에 기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하나로 비핵화를 지지한다. 대북 제재 결의를 준수한다. 하지만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와야만 러시아 극동의 번영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미국은 비핵화를 앞세우는 반면 러시아는 대북 체제 안전 보장을 강조하는 까닭이다. 2000년대 북핵 6자회담에서도 다자안전보장 실무그룹 의장국을 맡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도모했다. 북·미 협상의 완전한 타결 전이라도 남·북·러 협력사업을 진행시키려는 동기가 강하다. 

 

지난 6월6일, 러시아 국경도시 크라스키노로 가는 길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단지동맹 기념비에 누군가 바친 꽃이 놓여 있다.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12명이 이곳에서 조국 광복을 다짐하며 약지를 잘라 단지 동맹을 맺었다. 

 

미국 당국자와 전문가들은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종종 “러시아는 ‘공짜 점심(free lunch)’만을 바란다”고 비아냥거린다. 대북 지원 등 금전적 부담에는 관심이 적고,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한반도와의 경협에 더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확인한 러시아인들의 한반도 열망은 그들 스스로의 절박한 필요에서 비롯된 것으로 읽혔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재개 안 하면, 중국에 밀려 한국이 빠질 수도 있다”는 협박(?)성 주장은 그만큼 한국의 결정을 고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중국은 러시아 극동에 대한 외국인 투자의 75%를 점하고 있다. 한국, 일본은 1억~2억달러 수준이다(러시아 변호사 프리세키나 나탈리아).

 

장고 처럼 생겼다고 해서 고려인들이 '장고봉'으로 이름붙인 장고봉 정상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크라스키노.

 

‘동북아 초국경 경제협력 포럼’의 발표 및 토론 내용에는 몇 가지 긍정적인 신호들이 제시됐다. 일부 수십년째 동어반복식으로 되풀이된 구상에는 진부함도 느껴졌다. 남북은 작년 말 경의선(개성~신의주 414㎞)과 함께 러시아와 연결될 동해선(금강산~두만강 777㎞)에 대한 공동조사를 벌였다. 남북 철도 연결은 지난해 4·27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합의사항이다. 레일과 침목에서부터 교량·터널·신호·전력·차량까지 총체적인 문제점이 드러났다. 하지만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2015년 해외에 원산~금강산 간 철도(118.2㎞) 현대화 투자 제안을 하면서 처음으로 내부수익률(IRR) 및 순현재가치(NPV), 투자회수기간 개념을 도입했었다”면서 “북한이 글로벌 비즈니스 관행에 적응하고 있음을 말해준다”고 평가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북한 식당 '고려관'에서 노래하는 여성 복무원.

 

러시아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류혜정 변호사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내린 제재와 관련해 “기업 차원에서 위기 관리는 해야겠지만, 일반적인 기업 활동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이고르 흐루쇼프 러시아 교통부 극동지역 총괄국장은 “기존 두만강 철교(조선·로씨야 우정의 다리)와 별도로 자동차 도로의 연내 착공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간기업이 투자비용을 회수하는 민관 파트너십(PPP) 방식으로 추진하는 도로에 한국행 물동량이 포함돼야 효율성과 경제성이 담보된다고 강조했다. 

 

 

남·북·러 협력사업이 기어중립 상태였던 지난 몇 년간 러시아 측을 고무시킨 것은 관광 분야였다. ‘가까운 유럽’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2016년 5만명, 2017년 10만명에서 지난해 22만2000명으로 늘었다. 2014년 비자면제 협정 발효와 국내 저가항공사들의 취항이 호재가 됐다. 스타리치코프 관광국장은 “올해 1분기에만 작년 동기 대비 35% 증가한 데다 관광객 1인당 지출 규모가 중국인 관광객보다 많았다”고 소개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동북아평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러시아 측이 블라디보스토크~금강산~속초~부산을 잇는 크루즈의 운항을 주도할 것을 제안했고, 유철호 이코노미21 기획위원은 여기에 원산(금강산) 관광특구 정박 제안을 더했다. 유엔 대북 제재와 무관한 남·북·러 크루즈 아이디어는 러시아 측의 큰 호응을 받았다. 매년 여름 블라디보스토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열리는 ‘극동페스티벌’에 북한의 조선국립교향악단과 윤이상관현악단을 초청해 남·북·러의 문화 교류를 넓히자는 유 위원의 제안도 관심을 끌었다.

 

지난 6월5일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 섬에 있는 극동연방대학 본관(A동). 매년 동방경제포럼이 열리는 곳으로 지난 4월25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에 정상회담이 열린 곳이다. 건물내부는 일반인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철도·가스 연결과 같은 대규모 선형(線形) 프로젝트와 러시아 극동지역과의 금융협력 등에 관한 논의는 겉돌았다. 예산과 경제성도 따져봐야 하겠지만, 북핵 문제가 풀리기 전에는 준비와 연습에만 집중하려는 한국 정부의 입장도 작용한 듯하다. 두 개의 선형 계획에는 메가프로젝트를 통해 동북아지역 질서 변화를 추동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경제협력을 통해 외교안보를 바꾸는 구도다. 하지만 지금은 외교안보(한반도 문제) 탓에 경협이 막혀 있다. 신범식 서울대 교수는 “외교안보가 풀려야 경협이 된다는 말도, 경협이 돼야 외교안보가 풀린다는 말도 모두 맞다. 중요한 것은 관련국들 사이에서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다”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조바심은 남·북·러 협력이 늦어지면, 결국 중국이 주도한다는 데 기인한다. 동북아 전략공간에는 중국 외에 ‘방 안의 코끼리’가 더 있다. 바로 미국이다. 미·중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러시아와 남북한, 일본 등 중간국가들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북·중·러 삼각지점에서 중국의 주도권이 강화되면, 필연적으로 동북아 영향력이 줄어들 미국은 중간국가들의 협력을 지연시키거나, 구도가 바뀌기를 기다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신범식 교수) 


한국 언론이 중국 단둥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및 하산을 찾는 가장 큰 동기는 북한을 건너다보기 위해서다. 두만강에 손이라도 적시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 여정이었다.  하산역에서 열차에 몸을 실어 나선으로 갈 날을 기다려본다. 

 

러시아 국경도시 크라스키노에서 하산으로 가는 길. 동해의 푸른 바다와 길 양편의 너른 들판이 어우러져 아름답다. 텅 빈 도로에 언젠가 앞서간 차량의 바퀴자국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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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철로가 서울까지 이어진다면… 지난 6일 북·러 접경지역인 러시아 하산역. 광궤와 표준궤 등 7개의 철로가 놓인 하산역에 정차한 무개 화물열차에 석탄이 실려 있다. 오른쪽 내수면 너머로 두만강 철교(조선-로씨야 우정의 다리)의 난간 위쪽이 보인다. 하산 우철훈 선임기자  

“그냥 왔었다.” 지난 6일 오후 러시아 프리모르스키주(연해주)의 하산역. 역장을 대신해 나온 중년의 역무원 타티아나는 지난 4월24일 하산역에 내려 러시아 땅을 처음 밟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관한 몇 가지 질문에 단 한마디 답변만 내놓았다. 다른 질문엔 입을 닫았다. 전용열차에서 내린 김 위원장은 하산역 앞에서 빵과 소금을 대접받았다. 일반인의 접근이 통제되는 군사지역 특유의 통제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눈앞에 빤히 보이는 야트막한 야산에 오르면 두만강 건너 북한 땅이 보이련만, 역 관계자들은 역사에서 30여m 떨어진 선로 위 육교에 오르는 것만을 허용했다. 육교에선 두만강 위에 놓인 ‘조선-로씨야(북-러) 우정의 다리’의 난간 지붕만 시야에 들어왔을 뿐, 강을 볼 수 없었다. 다리 옆 조-로 친선각 역시 야산에 가렸다. 

 

|‘두만강 다리 건너면’ 하산 

북·중과 닿은 인구 2760명 도시 
도로변에는 유리창 깨진 건물들
무뚝뚝한 하산역 역무원은 
김정은 위원장 방문에 대해 묻자
“그냥 왔었다” 한마디 답변만 

 

열차 시간표에는 하산~두만강역이 오전 11시에 1편, 두만강역~하산은 오후 4시45분에 1편씩 하루 한 번 왕복하는 노선 안내가 적혀 있었다. 소요시간은 2시간30분. 하산~우수리스크를 잇는 열차도 하루에 왕복 1편이어서 하루 4번 열차가 드나들 뿐이다. 한갓진 선로에는 석탄이 실린 무개 화물차량들만 정차해 있었다. 일행이 역 앞을 걸어가던 도중 젊은 러시아인 청년이 다가오더니 한국어로 말을 걸면서 화물열차 사진의 삭제를 요구했다. 영어와 한국어를 구사하는 말쑥한 차림의 그는 역 근무자가 아니었다. 화물열차의 석탄이 나온 사진이 ‘삭제대상’이었다. 석탄은 산지가 확인되기에 유엔 안보리 제재에 묶여 있는 북한산일 가능성은 적어 보였다. 그런데도 삭제를 요청한 이유는 무엇일까. 

 

러시아 연해주 자루비노항. 속초에서 출발한 크루즈선이 정박했던 곳이다.   우철훈 선임기자

 

한 달 남짓 전에 김 위원장 취임 7년 만에 처음으로 북·러 정상회담이 열렸지만 블라디보스토크와 국경도시 크라스키노, 하산 등 프리모르스키주 어디에도 남·북·러 협력의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3~4일 블라디보스토크 롯데호텔에서 열렸던 KEB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소장 정중호)와 사단법인 유라시아21(이사장 김승동) 공동주최 ‘동북아 초국경 경제협력 포럼’을 계기로 북·러 국경지역을 돌아보았다. 

 

 

 

국경은 하나의 세계의 끝이자, 다른 세계의 시작이다. 경계선 너머가 늘 그립다. 더구나 하산과 인접한 중국 훈춘, 북한의 두만강 지역은 3국 국경이 만나는 곳이다. 이중, 삼중의 정서가 흐른다. 하산은 북한 측 두만강역과 연결된 러시아 극동지방의 관문이다. 하지만 하산역과 국경도시 크라스키노에는 국경지역 특유의 활기가 없었다. 작년 봄 찾았던 북·중 접경의 단둥 사람들이 양국 또는 남·북·중 간의 교류에 희망을 걸고 있던 것과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도시의 활기는 사람에서 나온다. 하지만 북·러 접경지역의 인구는 계속 줄고 있다. 하산으로 가는 길에 거쳐가는 크라스키노의 2018년 인구는 2760명에 불과했다. 도로변 멀쩡한 건물들도 유리창이 깨진 채 버려져 있었다. 2010년 인구 조사 당시의 3256명에서 더 줄었다. 러시아 극동 9개주의 수도 격인 블라디보스토크 인구도 60만명을 약간 넘는 수준이다. 극동지방의 ‘인구’는 ‘항구’와 함께 러시아·중국 관계의 저변에 깔린 민감한 변수다. 

 

|중국 자본이 ‘께끄름한’ 러시아 

중 훈춘 인접한 자루비노항엔 
대형 크레인 2대만 ‘덩그러니’
의도적으로 개발 미루는 듯… 
중국이 리조트 짓고 있지만
낙수효과 적어 한국 진출 원해 

 

러시아가 차이나 머니를 반기면서도 께끄름한 입장을 보이는 까닭은 바로 중국인들이 흘러들어와 자리를 잡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경제력이 월등한 중국의 진출로 러시아 경제의 자립성이 휘둘릴 것 역시 우려 대상이다.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의 훈춘에서 불과 38㎞ 거리인 자루비노는 부동항이다. 동해 진출이 긴요한 중국에 최단거리 항구이건만 러시아는 쉽사리 내주지 않는다. 지난 6일 찾은 자루비노항에는 대형 크레인 2개만이 덜렁 놓여 있을 뿐 방치돼 있었다. 의도적으로 개발을 미루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서너 시간이 걸리는 중·러 통관절차도 중국의 거듭된 요청에도 간소화되지 않고 있다. 중국의 동해 진출을 교묘한 방식으로 늦춘다. 

 

북-러 합작회사인 라선 콘트라스의 이반 톤키흐 대표가 지난 4월24~26일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자신의 휴대폰으로 찍은 셀피 사진을 전해주었다. 그는 김 위원장 환영만찬과 야외 방문행사에 함께 했다. 

 

지난 6일 찾은 프리모르스키주 아르촘시 복합 엔터테이너 리조트(IER) 개발 현장에서는 중국 기업이 투자한 리조트 건설이 한창이었다. 연해주 개발공사가 개발 중인 IER은 해안가에 골프장과 카지노, 마리나 스포츠 시설을 갖춘 단지로, 카지노 7곳이 들어선다.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서 불과 10분 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2022년 완공해 그해 동방경제포럼에 참가할 각국 정상들을 초청한다는 계획이다. 마카오 자본이 먼저 완공한 타이거 더 크리스탈 리조트I은 이미 영업을 시작했다. 마카오(1곳), 중국(2곳), 러시아, 캄보디아, 일본 기업들이 건설을 시작했거나 준비 중이다. 이 중 중국 자본은 결코 홀로 오지 않는다. 공사 현장에는 중국 건설노동자들의 천막숙소 수십 개가 보였다. 중국 자본이 돈을 대고, 중국인이 건설한 뒤 완공되면 다시 중국인 관광객이 이용하는 순환구조로 진출한다. 해당국, 해당 지역에 낙수효과가 적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중국인들의 진출은 가뜩이나 경제력은 물론, 인구가 적은 러시아가 경계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역으로 러시아가 한국 자본의 진출을 애타게 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 횡단열차(TSR)를 잇는 철도와 가스관 연결 등 두 개의 선형(線形) 프로젝트에 극동지방의 미래를 걸었다. 중국의 강한 영향력 속에서 블라디보스토크~하산~나진~원산~부산을 잇는 환동해 벨트 개발만큼은 주도권을 쥐려는 게 러시아의 꿈이다. 북한을 경유해 대륙과 연결하려는 한국의 꿈도 가능성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북한 비핵화와 대북 체재보장을 논의하는 북·미 협상의 긍정적인 결과를 기다리는 태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한국을 바라보고, 한국은 북한을 바라보는 셈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4월26일 귀로에 점심식사를 한 블라디보스토크 외곽 레스나야 자임카 레스토랑.

 

지난 3일과 4일 초국경 경제협력 포럼에서는 특히 한국의 망설임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북·러 합작법인인 라선 콘트라스의 이반 톤키흐 공동대표(35)는 “나인 브리지(9-bridges) 논의를 시작한 지 1년이 다 돼가지만 아무런 진척이 없다”고 말했다. 

 

나인 브리지 사업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 동방경제포럼에서 밝힌 구상이다. 북극항로와 조선·항만·가스·철도·전력·일자리·농업·수산 등 9개의 다리를 놓아 러시아와 한국이 ‘동시다발적인 협력’을 이뤄나갈 것을 제안했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 구상을 밝혔다. 이 모든 제안과 사업은 청사진 안에만 머물러 있다. 러시아 전문가들이 “말만 무성할 뿐 아무런 행동이 없다”는 볼멘소리를 내놓는 까닭이다. 불만의 핵심은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 뒤 박근혜 정부의 대북 독자제재로 중단된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집중됐다.

 

|멈춰선 한·러 협력 사업들 

한반도 종단·시베리아횡단 철도 
문 대통령이 제안했던 ‘9 브리지’
“말만 무성, 아무런 행동 없어” 
북 100번 한국 10번 갔단 사업가
“비즈니스, 정치적 접근 거둬야” 
한국 정부에 독자 제재 유예 제안

 

2014년 시작했던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TKR-TSR 연결의 시범사업으로 기대를 모았었다. 러시아산 석탄을 하산~나진 간 철도편으로 옮겨 나진항에서 한국으로 보내는 사업은 2015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30만5000t의 석탄을 실어나르면서 남·북·러 합작의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됐다(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러시아는 3억달러를 들여 하산~나진 간 54㎞의 철로를 개·보수하고, 나진항 제3부두 항만시설을 갖췄다. 하지만 한·러가 합작하기로 했던 물류회사의 설립은 중단됐다. 안보리 제재는 러시아 외교부의 노력으로 예외를 인정받았다. 지난 3월8일자로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가 보낸 공식 답변서는 라선 콘트라스가 러시아산 석탄을 북한 나진항을 통해 제3국에 수출하는 것을 허용하는 한편, 라선 콘트라스의 대북 합작사업을 예외로 인정했다. 180일 이내 북한을 기항한 제3국 선박의 국내 입항을 금지한 한국 정부의 독자제재만 남은 것이다.

 

하산역 앞에서 한 중년여인이 청소를 하고 있다. 이정표에는 왼쪽에 두만강(북한), 오른쪽에 모스크바라고 써 있다. 

 

톤키흐 공동대표는 “지난해 안보리 제재에도 불구하고 라선 콘트라스는 28%의 마진율을 올렸다”면서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비즈니스임에도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한국에 있는 것 같다”고 불만을 표했다. 북한을 100여차례, 한국을 10여차례 다녀갔다는 그는 한국 내 부정적인 여론을 거론하면서 “이러한 프레젠테이션을 열 번도 더 해봤지만 반응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고 아쉬워했다. 

 

토론에 나선 올레그 키리야노프 모스크바 국립대 아시아·아프리카 연구소 연구원은 더욱 직설적인 언어로 프로젝트 재개를 촉구했다. 그는 “라선 콘트라스가 하는 일은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서 “통일에 대한 준비는 돼 있는지, 원하기는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나진은 지금 중국인 천지가 되고 있다”면서 “중국이 나선다면 한국 투자자들은 참여할 권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블라디보스토크 역 앞의 레닌 동상. 

 

물론 불만만 표한 것은 아니다. 톤키흐 대표와 키리야노프는 프로젝트의 마지막 걸림돌인 한국 정부의 독자제재를 유예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북한이 핵·장거리 미사일을 다시 시험하거나 심각한 도발을 하면 곧바로 제재로 복귀하는 것을 조건으로 제재를 중단하고 프로젝트를 재개하자는 말이다. 라선 콘트라스는 제재 예외를 인정받은 뒤 처음으로 다음달 하산~나진 루트로 러시아산 석탄을 베트남에 수출할 계획이다. 하산역 화물열차에 실린 석탄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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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여성이 밭에 물을 대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세계식량계획(WFP)의 올해 ‘북한 식량안보 평가’ 보고서 표지 사진.

 

‘배고픈 아이는 정치를 모른다(A hungry child knows no politics).’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남긴 이 한마디는 인도적 지원, 특히 식량위기에 처한 나라에 지원을 해야 한다는 명제가 됐다. 또 하나의 황금률은 정치적 사안과 인도적 사안의 분리다. 레이건이 누구인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냉전의 정점에서 ‘악의 제국’이 후원하는 공산주의 독재자 멩기스투가 통치하던 에티오피아에 식량지원을 결정하면서 위와 같은 명언을 남겼다. 하지만 레이건의 한마디에는 생략된 뒷문장이 있을 법하다. ‘배부른 어른은 정치를 너무 잘 안다(A fat grown-up knows too much politics)’가 아닐까 싶다. 지난 5월3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이 ‘북한의 식량안보 평가’ 보고서를 발표한 뒤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당위와 담론을 지켜보면서 뇌리를 떠나지 않는 단어가 ‘정치’다. 


■ 어른들의 담론- ① 통계의 문제

 

그동안 한반도 남쪽에서 ‘배고프지 않은 어른들’이 나눈 논의 결과를 요약하면 이렇다. 우선 북한이 과연 식량이 부족하냐는 점이 가장 큰 관심이었다. FAO·WFP 보고서의 정확성이 도마에 올랐다. 보고서는 북한의 지난해 곡물 생산량을 껍질 포함한 조곡 기준으로 490만t, 알곡 기준으로는 417만t으로 추정했다. 북한의 올해(2018년 11월~2019년 10월) 식량 수요량을 576만t으로 설정하고, 159만t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북한 당국의 수입량 20만t과 국제기구 지원 2만1200t을 포함해도 136만t이 부족하다. FAO·WFP는 북한 인구의 40%인 1010만명이 식량부족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국제기구 통계는 우선 15도 이상 경사지의 수확량(최소 20만t)과 개인 소토지(텃밭·7만t) 및 밀수 물량이 빠졌다. 식량 수요 추정의 기준인 인구수가 실제보다 최소 70만명 정도 부풀려졌다는 분석도 있다.(김병연 서울대 교수). 북한 중앙통계국의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한 국제기구 보고서가 왜곡됐을 가능성을 지적한 것이다. 북한의 중앙 및 지방당국은 물론 국제기구들도 식량 생산량을 가급적 낮게 보고해온 게 사실이다. 

 

FAO는 2010년 전까지 북한의 주식 중 하나인 감자를 통계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후 포함시켰지만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비현실적으로 낮게 책정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FAO 생산연감(Production Yearbook)에 따르면 1997년 북한의 단위면적(㏊)당 감자 생산량을 11t으로 추정했지만, 2010년 이후에는 3~4t으로 잡고 있다.(김영훈·임수경 '북한의 농업·식량 관련 통계', 농촌경제연구원, 2014).

 

유엔 식량농업기구와 세계식량계획 현장조사팀이 지난 4월 북한 황해남도 신천군의 식량배급소를 둘러보고 있다.

 

기구 존립의 목적을 강화하기 위한 국제기구의 정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지난 2월 유엔에서 국제사회의 긴급한 지원을 요구하며 밝힌 올해 식량부족분 50만3000t과도 편차가 크다. 통계는 들쭉날쭉일지언정 가뭄과 이상고온, 홍수 등의 영향으로 2년째 북한의 작황이 좋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적었다. 북측이 예년 수준(20만~30만t)으로 식량을 수입한다면 식량부족량은 20만~30만t으로 좁혀진다. 

 

북한 장마당 쌀값을 보름 단위로 공개하는 데일리NK에 따르면 5월28일 현재 평양의 쌀값은 1㎏당 4300원(시장 환율 1달러당 8025원 기준)이다. 이는 지난해 12월의 5000원에 비해 외려 700원 내려갔다. 전문가들은 장마당 쌀값 내림세는 공급량이 늘었다기보다 구매력 저하로 수요가 줄은 탓이라고 해석한다. 북한 주민들은 가장 비싼 북한산 쌀 대신 중국산 쌀을 사거나, 쌀이 아닌 옥수수나 감자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식량을 해결하기 때문이다. 인도주의적 우려는 옥수수나 감자마저 넉넉히 장만할 수 없는 취약계층에 집중된다. 

 

취약계층의 식량난은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평년 수준이었던 2016년 이후 작황이 나빠지고 있다. 식량이 부족하면 노동력이 떨어지고, 떨어진 노동력은 더욱 식량부족을 심화시켜 만성적인 영양결핍으로 귀결된다. 빈곤지수와 불평등지수가 합해지면 치명적인 칵테일이 된다. 특히 취약계층 아이와 산모에게 주는 타격은 심각하다. WFP가 139만t의 식량 긴급지원을 호소하면서도 곡물을 지원하지 않고 5세 미만 영유아와 산모들에게 영양강화 비스킷과 슈퍼 시리얼만 제공하는 까닭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지원 활동을 해온 국제 구호단체들은 일반적인 식량지원 대신 취약계층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컨선월드와이드는 취약계층 텃밭농사(house farming)에 종자·비료·물을 공급하는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강원도와 양강도, 황해북도는 구릉지에 밭이 많아 가뭄 피해가 큰 취약지역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와 세계식량계획 현장조사팀이 지난 4월 북한 황해북도 봉산군의 집단농장에서 북측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어른들의 담론- ② 남과 북의 정치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지난 2월20일(현지시간) 유엔에 전달한 메모에서 “지난해 식량 생산이 2017년에 비해 50만3000t이 줄었다”면서 “노동자 가족 1인당 배급량을 550g에서 300g으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보고했다. 300g이면 햇반 1개 분량이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다음날 공식 브리핑에서 이를 확인하면서 “지난해 작황에 따른 북한의 식량부족분이 140만t에 달한다”면서 시급하게 협의를 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과 북의 정치가 시작된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김 대사는 “유엔 제재 탓에 필요한 농자재 공급이 안된 것이 (생산량 감소의) 또 다른 주요 원인”이라면서 제재의 악영향을 강조했다. 일주일 뒤인 2월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민생에 관련된 제재’의 해제를 요구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민생 관련 제재 완화 요구의 명분 쌓기용이었다고 해석할 여지를 준다.

 

북한이 유엔에서 식량부족분을 공개한 뒤 정작 한국 정부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농촌진흥청이 북한의 곡물 생산 예상량을 공식 발표했을 때도 반응이 없었다. 농진청이 북한의 식량 생산량을 455만t으로 예상하면서 전년 대비 3.4%만 줄었다고 발표해서였을까. 그러던 정부가 석 달 뒤 갑자기 대북 식량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WFP와 유니세프에 800만달러를 지원할 방침을 밝혔다. 그나마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가 이어지던 2017년 9월21일에 발표했던 공여 규모였다. 정부는 “정치적 사안은 인도적 지원과 무관하다”면서 지원 방침을 밝혔다. 그렇다면 800만달러는 왜 지금까지 국제기구에 전달되지 않고 있다가 다시 거론됐을까. 작년엔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평화 분위기가 한층 고조됐었다. 북이 원하고, 남이 결정하면 지원하기 쉬웠다는 말이다. 북측 취약계층의 인도적 재앙은 그때도 진행되고 있었다. 

 

북한의 아이들1.    협동농장에서 재배하는 야채는 쌀과 옥수수, 콩, 감자 등 단순한 식단에 변화를 주고 있다. 특히 고아원 아이들이 채소를 섭취하게 된 것이 성과다.  © Thomas Gutschker, Welthungerhilfe.  Concern Worldwide 홈페이지 

 

이해는 한다. 작년엔 남이나 북이나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의 재개 등 민족경제의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큰 꿈을 꾸었다. 인도적 지원은 뒷전이었다. 웅지를 품는 것은 좋다. 하지만 인도적 지원은 어떤 경우에도 지속돼야 효과도, 명분도 있다. 정치적 문제는 대북, 대미 담판으로 풀어야 한다. 남북관계가 막힐 때마다 지원 카드를 꺼내는 사고는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칫 명분을 흐릴 빌미를 준다. 혹여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상황 돌파용으로 인도적 지원을 꺼냈다면, 외교적·전략적 상상력의 빈곤을 보여줄 뿐이다.

 

휴전선 북쪽 동포의 어려움을 도와준다는 정서만으로 접근해서도 곤란하다. 특히 고질적인 문제인 취약계층 지원에는 정치학이 아닌, 과학이 필요하다. 과학적 근거에서 과학적으로 접근해 그 성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남과 북의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북측의 공식 지원 요청-현장 실사-맞춤형 지원-모니터링-정밀한 평가의 과학적 레짐(regime) 구축을 지원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어느 과정 하나 빠지면 곤란하다. 당장 어렵다면 과감하게 국제기구에 위임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런 관점에서 800만달러는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WFP가 지난 2월 집행이사회에서 2019~2021년 3년간 북한 영유아·산모 영양강화 사업에 필요한 재원으로 설정한 금액은 1억6100만달러이다. 국제기구의 부풀리기 관행을 감안하더라도 그 상당 부분을 제공할 재원이 한국에는 넘쳐난다. 박근혜 정부도 WFP와 세계보건기구(WHO)에 1330만달러 지원책을 발표했었다. 유일하게 필요한 정치적 고려는 남측 정부가 요란하고 떠들썩한 지원 관행을 탈피하는 것일 게다. 그냥 조용히 건네면 될 일이다. 아직도 남측에선 인도적 지원의 ‘정치적 효과’를 입에 올리는 분들이 많다.

 

북한의 아이들2.   2018년 8월 방문한 평양 대동강 수산물 식당 1층에서 어른들 손을 잡고 나들이 나온 아이들이 대형 수조 속의 물고기를 구경하다가 깜찍한 포즈를 잡아주었다.       김진호

 

■ 어른들의 담론- ③ 대북 제재의 정치학

정부가 할 일은 또 있다. 인도적 지원은 안보리 제재와 원칙적으로 무관하다. 미국도 거듭 이 부분을 확인한다. 실상은 다르다. 유엔 제재위는 손톱깎이 한 개라도 금속물질이 넘어가는 데 신경을 곤두세운다. 남측이 북측에 식량을 제공하는 것은 문제가 없는데 차량(트럭)은 넘어갈 수가 없는, 기막힌 모순은 이래서 발생한다. 소달구지로 실어 날라야 한다는 말이 된다. 중국에선 열차편으로 운송이 가능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중국 측에 전달해야 할 식량 구입 및 운송비용 송금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5만달러 이상 송금액은 내역을 적어야 한다. 북한 관련 자금이라면, 중국 금융기관들이 혹여 미국이 제3국 금융기관에 가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에 저촉될지 모른다는 걱정에서 몸을 사린다. 남측 지원단체들도 께끄름하다. 

 

물론 가장 아쉬운 것은 북한의 정치다. ‘최고 존엄’이 최우선 순위를 놓은 분야는 예외없이 발전했다. ‘혁명의 수도’ 평양에는 매년 번화한 거리가 일떠섰고, 헐벗은 산에는 나무가 촘촘히 식수되고 있다. 고아원 환경 개선이 우선순위가 되면서 북한의 육아원(취학전)과 애육원(유치원)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고 한다. 당장 서울 한복판에 옮겨놓아도 될 만한 시설을 갖춰놓고 있다는 전언이다. (북한에선 '고아'라는 말을 쓰지 않지만, 교육기관의 이름을 달리한다.) 오히려 제재 탓에 살림이 어려워진 탄광촌 유치원 아이들이 더 열악한 밥을 먹는다. ‘최우선 순위’가 취약계층 생활 개선에 놓인다면 가장 빨리 해결책을 찾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라도 빈틈을 메워주는 것이 남측이 국제사회와 함께해야 할 일이다. 

 

북한 매체들은 남측이 논의하는 인도적 지원을 두고 “민심을 기만하는 행위”(조선의 오늘), “부차적이고 시시껄렁한 인도적 지원”(통일신보)이라고 헐뜯는다. 북에서 이렇게 주장하는 어른들은 쌀 구매력이 충분한 사람들일 게다. 남에서 대북 식량지원 자체를 비난하는 어른들도 배가 고프지 않은 사람들일 게다. 정부가 동기가 어떻든 간에 뒤늦게나마 북한 취약계층에 관심을 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중, 삼중으로 에둘러싼 어른들의 정치를 걷어내면, 굶주린 아이들의 허기만이 오롯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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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ino's gino's 2019.06.01 14: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정은 처음 고아원 찾아간 이유
    워싱턴-정영 jungy@rfa.org
    2014-02-05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 선전매체 보도 내용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는 ‘북한언론 뒤집어보기’ 최민석입니다. 오늘도 정영기자와 함께 합니다.

    최민석: 정영기자, 오늘 다룰 내용은 무엇입니까,

    오늘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집권 후 처음으로 고아원을 찾아간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4일 자 노동신문은 김 제1위원장이 평양시 고아양육시설인 육아원과 애육원을 방문했다고 보도했는데요, 사진도 여러 장 공개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이 시점에서 김정은이 고아들을 찾아갔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최민석: 정영기자, 방금 정영기자가 육아원과 애육원을 말했어요. 그런데 고아원과 육아원이 틀립니까, 이게 어떻게 다릅니까,

    정영: 노동신문 사진을 보니까, 애육원과 육아원이라는 말을 썼는데, 북한에서 고아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왜냐면 고아라는 게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칭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가리켜 ‘아버지’라고 부르기 때문에 무슨 고아가 있냐는 식이지요.

    북한에서는 수령이 상징적으로 아버지로 되어 있기 때문에 고아라는 말을 잘 쓰지 않습니다.

    최민석: 아, 그렇군요. 그러면 실제로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뭐라고 부릅니까?

    정영: 사람들 사이에서는 부모 잃은 아이들이라고 부르긴 하는데, 딱히 고아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최민석: 특별히 지칭되는 말이 없다는 거죠. 김 제1위원장이 고아원을 찾아간 것은 집권 이후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까,

    정영: 김정은 제 1위원장이 집권한 지 3년째 접어들고 있지만, 고아들을 직접 찾아간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최민석: 전번 언젠가는 김정은이 소년 소녀들을 방문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방문이었지요?

    정영: 그곳은 묘향산 소년단 야영소인 데요, 거기에 있던 애들이 많이 말라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김정은 제1위원장의 행적을 보면 지금까지 특권층을 위한 릉라인민유원지, 문수원, 미림승마구락부 등 놀이터와 위락시설들만 골라 찾아 다녔는데요,

    최민석: 거기에 하나 더 있지요. 마식령 스키장….

    정영: 그렇지요. 김정은이 특권층 놀이시설만 다녀서 ‘서민적인 지도자’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있었는데요, 이번에 고아원을 찾아갔다는 것은 참 이례적입니다.

    최민석: 북한에서 고아를 가리켜 꽃제비라고 하던가요?

    정영: 부모 잃으면 일단 보호자가 없기 때문에 고아가 되는데요, 먹을 것을 찾아 거리나 역전으로 방황하면 이를 또 ‘꽃제비’라고 부릅니다. 북한에서 고아가 대량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초반부터였습니다.

    최민석: 90년대 초반이라면 ‘고난의 행군’ 전부터 생겨났다는 건가요?

    정영: 식량배급이 중단되면서 주민들은 생활고에 찌들 리고,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때부터 경제난이 심각해졌는데요, 벌써 20년이 지났습니다.

    최민석: 북한의 고아문제는 꽤 일찍 시작됐군요.

    정영: 그때 주민 수백만 명이 굶어 죽으면서 고아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지금도 고아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요, 사실 고아는 김정일 시절에 생겼지만, 그가 애육원과 고아원을 찾아갔다는 보도는 없었습니다. 김정일도 외면했던 시설입니다.

    최민석: 왜 안 찾아 갔습니까?

    정영: 왜냐면 북한은 “세상에 부럼 없이 사는 사회주의 지상낙원인 우리나라에는 고아들이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외부에 꽃제비들을 절대 공개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모 잃은 아이들은 감옥이나 다름없는 수용시설에 갇혔다가는 탈출하고, 장마당과 거리를 돌면서 구걸해 먹고 견디다 못해 탈북까지 하는 것입니다.

    최민석: 그러니까, 김정은이 아버지 때 해결하지 못한 고아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그나마 고아원을 방문한 것은 다행이라고 보이는데요. 해결될 가능성이 있을까요?

    정영: 김정은은 평양시 육아원의 아기방과 주방 등을 둘러보고, 아이들의 영양 상태가 좋은 것을 보고 만족해했다고 북한 매체가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올해부터 육아원과 애육원의 아이들에게 물고기를 매일 300g씩 먹이겠다”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최민석: (한숨 소리……) 예~

    정영: 또, “영양가 높은 곶감을 정상적으로 먹이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최민석: 참, 말이야 뭘 못하겠습니까, 매일 물고기 300g이라고요? 그러면 큰 동태 한 마리쯤 먹인다는 소리인데, 어린이 식사 규정치고는 작지 않은 양입니다. 물론 이 약속을 지키겠습니까?

    정영: 김 제1위원장은 지난 1월 534군부대, 인민군 후방총국 산하 군부대의 새로 건설한 수산물 냉동시설을 찾아가 앞으로 육아원, 애육원, 양로원 등 취약계층에게 물고기를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수산사업소를 만들라고 지시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김정은이 고아들과 취약계층에게 하루에 300g의 물고기를 먹이자면 얼마나 필요한지를 직접 수첩에 계산해봤다고 합니다.

    김정은은 지금 장성택 계열로부터 빼앗은 수산기지를 군대에 넘겨주고 “물고기를 많이 잡으라”고 수산일꾼 열성자 회의까지 열고 고무했습니다. 그런데 전국에 있는 고아원 애육원에 있는 고아들과 노인들에게 먹이라고 했는데, 앞으로 두고 지켜봐야겠지요.

    최민석: 정말 두고 봐야지요. 군대들이 물고기를 잡아서 팔 던 것을 진짜 고아들에게 나눠줄지는 앞으로 봐야겠지요. 참, 김정은이 애육원을 방문한 사진을 보니까, 지난번 소년단 야영소를 방문했을 때와 너무 대조적이지 않습니까, 그때 소년단원들은 너무 여의고 피골이 상접한 게 영양상태가 안 좋았는데요, 여기 사진에는 아이들의 볼에 살이 올라 있고요. 이거 좀 신빙성이 약하지 않습니까,

    정영: 글쎄요. 북한이 대외에 공개하는 사진이기 때문에 진짜 이곳이 애육원 시설인지, 그리고 진짜 고아들인지 조차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최민석: 좀 애매모호 합니다. 북한 매체의 사진을 보니까, 김정은과 그의 수행원들은 어린이 방에 구두를 신고 들어가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건 좀 예의는 아니지요.

    정영: 원래 북한에서 집안에 손님이 찾아가면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게 관례이지요.

    최민석: 북한뿐이 아니라 한민족은 다 같지요.

    정영: 혹시 집에 도둑이 들거나, 이사를 가거나 할 때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경우가 있기는 한데, 아이들이 있는 방에 저렇게 어른들이 신발을 신고 망탕 들어가는 것은 관례에 맞지 않지요.

    최민석: 한국 사람의 정서에는 잘 안 맞지요. 그 사진 한 장에 김정은의 진정성이 평가되는군요. 그런데 보여주기 식이라는 게 드러나지 않습니까?

    정영: 김정은이 지금에 와서 고아원을 찾아간 것은 ‘인민의 지도자’라는 이미지 상징 조작을 위해서 찾아갔다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왜냐면 최근 북한 내부는 장성택 처형으로 인해서 김정은의 이미지를 몹시 구겼습니다.

    왜냐면 과거 김정은이 인민들과 팔짱을 끼고 웃는 등 친 서민적인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했는데, 자기 고모부 장성택을 총살하면서 악인의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김정은의 웃는 얼굴도 저것은 가식이다. 어떻게 자기 고모부를 총살할 수 있는가고 혀를 차고 있습니다.

    최민석: 그렇지요. 천륜을 어겼지요……

    정영: 고아나 여성은 사회적으로 약자가 아닙니까, 그래서 김정은은 고아들을 사랑한다는 이미지를 만들어 장성택 처형으로 구겨진 이미지를 회복해보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민석: 그래서 지금까지 했던 것들이 잘 먹히지 않아서 다른 것으로 시도해본다는 거군요. 지금까지 집권해서 특권층의 놀이시설만 찾아 다니다가 이제 와서는 제일 소외계층인 고아들을 찾아갔다는 말이군요. 아버지 대에서 해결하지 못한 고아문제를 김정은 대에는 해결되겠는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정영기자, 수고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 gino's gino's 2019.06.01 14: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북한에선 '고아'라는 말을 쓰지 않지만, 교육기관의 이름을 구별한다.육아원은 취학전 고아들을 통칭해서 쓰는 말이고, 애육원은 유치원을 뜻한다. 고아가 아닌 경우에는 유치원이라고 쓴다.

  3. gino's gino's 2019.06.10 12: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연철 장관 “남북정상회담 낙관도 비관도 하기 어려운 국면”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4차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지금 상황으로서는 낙관도 비관도 하기 어려운 국면”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9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이전에 ‘원포인트’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 최적의 타이밍이 아니냐는 질문에 공감을 표시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최근 청와대와 정부 일각에서 4차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과 관련해 “무슨 움직임이 있어서, 접촉의 근거를 갖고 얘기한 건 아니다”라며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낙관을 하기엔 상황이 녹록지는 않다는 부분도 같이 봐줘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장관은 또 현재 상황은 “조기에 북·미 정상회담을 재개하기 위해서 정부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시기”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제안도 북·미 정상회담 조기 재개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장관은 북한 식량지원과 관련, “일단은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 부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원 품목이 쌀이냐 다른 곡물이냐는 질문에 “우리가 남는 쌀이 130만t 정도 된다. 남는 쌀의 창고보관료만 1년에 4800억원 이상을 지출하고 있다”며 “이런 부분을 종합적으로 국민들도 고려해주시면 고맙겠다”는 설명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김 장관은 이어 최근 처형설이 불거진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의 거취가 파악됐느냐는 질문에 “확인할만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북한의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를 거론하며 “(외교, 대남분야 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중간실무자들도 교체가 여전히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를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5일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섬의 극동연방대학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EPA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을 거쳐 평양에 당도한 것은 19년 전이었다.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 한 달 뒤,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에 쏠린 2000년 7월19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푸틴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장거리미사일(ICBM) 시험발사 유예 약속을 받아냈다. 평화적 목적의 우주 발사체를 러시아가 제공하는 것을 전제로 한 약속이었다. 푸틴의 방북은 볼셰비키 혁명 이후 러시아 지도자가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은 ‘사건’이었다. 푸틴의 여로는 다소 의도적이었다. 러시아 대통령에 처음 취임한 지 두 달 만에 나선 화려한 외출이었다. 장쩌민 주석과 베이징에서 러·중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재확인한 뒤 평양에 들렀다가 일본 오키나와로 향했다.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 데뷔하기 위해서다. 세계는 국제 외교무대에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 푸틴의 행보에 주목했다. 

 

‘푸틴의 러시아’가 오랜만에 한반도 논의의 한복판에 등장했다. 이번엔 평양이 무대가 아니었다. 푸틴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초청, 지난 25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정상회담을 갖는 형식을 취했다. 여정은 역순이다. 이번엔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뒤 일대일로 정상회의가 열리는 베이징으로 날아갔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고 난 뒤 김정은 위원장의 첫 정상외교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김 위원장이 지난 12일 제14기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굳게 손잡고 나가겠다”고 천명한 ‘세계 모든 평화애호역량’의 첫번째 상대로 러시아를 택한 것이다. 북한은 올해 초부터 북·미 협상의 새로운 ‘중재자’를 찾아왔다. 하노이 회담을 앞둔 지난 1월 방중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음을 내외에 공표한 것이었다면, 하노이에서 미국의 셈법을 확인한 뒤 나선 이번 방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한반도 평화의 ‘당사자’가 돼야 할 한국은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를 당당히 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추세를 보아가며 좌고우면하고 분주다사한 행각을 재촉하며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하고 있다”(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북한 관영매체의 보도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북한의 입장에서 본, 또는 북한의 주장에 담긴 한국의 위치일 뿐이다.

러시아를 방문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02년 8월23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포옹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재자는 협상의 양 당사자에게 모두 공정한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 협상이 막히면 중재안을 내놓고 양측을 설득하는 역할도 필요하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정권과 미국의 관계정상화 과정에서 영국이, 이란 핵합의 과정에서 독일이 한 역할이다. 한·미 동맹에 매인 한국은 공평한 중재를 하기 쉽지 않다. 그렇기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이 중재를 할 것이 아니라, 북한을 상대로 미국의 논리를 설득, 관철시킬 것을 요구한다. 굳이 트럼프 행정부가 아니라 어떤 미국 행정부라도 비슷한 입장일 것이다. 미국은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재개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위반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대화 촉진책으로 개성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제시하지 못하는 연유이다.

 

미국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이전까지 대북 제재를 유지하겠다는 셈법을 바꾸지 않고 있다. 북·미 대화가 겉돌고 있고, 마땅한 중재자가 없는 상황에서 북한이 러시아를 ‘기댈 언덕’으로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중국이나 러시아 역시 중재자 역할을 하기는 쉽지 않다. ‘조력자’는 될 수 있다. 푸틴은 이번에 정확히 그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24일 러시아 하산역에 도착해 전용열차에서 내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대북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 따른 비핵화, 비확산을 지지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이나 중국과 접근 방식이 다르다. 북한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 토대 위에서 해법을 제시해왔다. 대북 제재에 찬성표를 던지면서도, 제재는 미국이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동원하는 정치적 수단이라는 거부감이 강하다. 안보리 논의 과정에서 중국과 함께 미국의 초안을 물타기하는 것은 물론, 중국이 못하는 ‘사이다 발언’도 자주 내놓는다. 푸틴은 북한과 미국이 핵전쟁 일보직전까지 위기를 고조시키던 2017년 9월 “북한이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는 한 풀을 뜯어먹더라도 핵무기 프로그램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북·미 간에 ‘화염과 분노’ ‘괌 포위사격’과 같은 말이 오가자 “유치원 수준의 싸움”이라고 비꼬았다. 미·중관계에 국가적 명운을 걸고 있는 중국은 결코 할 수 없는 말들이다. 러시아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력은 적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차별성 있는 활동 공간이 있다.

 

북핵 위기가 고조되던 2017년 7월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러·중 공동방안을 내놓았다. ‘조력자’의 역할이었다. 중국이 제안했던 쌍중단(한·미 합훈과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유예) 및 쌍궤병행(비핵화 협상과 평화협정 협상 병행)에 순서를 부여했다. 1단계 쌍중단은 그대로지만 2단계 평화협정 체결을, 3단계 다자간 협의를 통한 지역안보체계의 확립 및 비핵화 협상의 병행 방안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만 바라볼 게 아니라 푸틴이 북·러 정상회담과 거의 같은 시간인 지난 25일 오후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연방안보회의 서기를 서울에 보낸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 역할을 하는 파트루셰프 서기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새로운 ‘러·중 공동행동계획’을 제안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 방문 마지막 날인 지난 4월26일 블라디보스토크의 2차대전 전몰 러시아 해군장병 추모시설에서 화환 증정식을 지켜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러 양국은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비핵화 협상의 진전을 위해 북·러가 유엔 안보리에서 공동행동을 취하겠다는 구상이라고만 밝혔다. 푸틴은 같은 내용을 김 위원장에게 전달했을 것이 분명하다. 러시아의 기존 입장을 감안하면 2년 전 발표한 1차 러·중 공동방안의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당시엔 전쟁위기를 없애는 게 화급했지만, 지금은 북·미 협상을 촉진시켜야 할 계제다. 푸틴은 이번에도 북한의 체제보장을 강조했다. 북·러 단독 정상회담 뒤 회견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선 대북 체제안전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고 못 박았다. 북한이 핵포기를 가장 망설이는 이유는 체제안전 보장이다. 그게 확보되지 않는다면 핵을 포기할 수 없다. 

 

한반도 평화협정이 타결되더라도 미국이 제도적으로 평화를 보장하긴 쉽지 않다. 평화조약의 비준에 상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러·중이 다자간 체제안전 보장 체제를 만들 수 있다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러·중 역시 비핵화 문제는 북·미가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타결 뒤 대북 체제보장에 힘을 보탤 수는 있다.

 

푸틴이 6자회담을 거론한 것은 다자간 대북 체제보장을 논의하자는 말이다. 6자회담에서 만들었던 다자안전보장 실무그룹(의장국 러시아)의 부활을 말한 것이다. 2017년 1차 러·중 공동방안에서 제시한 3단계의 구체화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문제는 미국이 수용하지 않는 한 러·중 공동방안은 그야말로 ‘조언’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한반도 문제에서 제3국의 개입에 강한 거부감을 보여왔다. 미국은 1차 러·중 공동방안도 수용하지 않았다. 북·미 직접대화 결과 러·중 1차 방안의 1단계(쌍중단)가 됐을 뿐이다. 미국은 김 위원장의 방러에 앞서 지난 18일 스티븐 비건 대북 특별대표를 모스크바에 보내 모굴로프 외교차관과 북핵 문제를 논의케 했다. 자세한 논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러시아 측이 전했을 러·중 공동방안에 대한 미국 입장도 알려지지 않았다. 푸틴이 내놓은 러·중 방안은 이번에도 ‘참고사항’으로 간주될 공산이 짙은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4월26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정상회의 개막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전날 김정은 위원장과의 북미정상회담을 마치고 곧바로 베이징으로 날아갔다.  로이터연합뉴스 

 

한반도 문제는 푸틴에게 극동지방 경제를 회생시킬 지름길인 동시에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지위를 높일 의제라는 점에서 매력이 있는 이슈다. 러시아 국민들은 여전히 강대국(Super power)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6월 퓨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 결과 글로벌 이슈에 관한 푸틴의 활동에 대한 지지도는 87%에 달했다. 하지만 국내, 국제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다. 러시아 경제는 저유가와 2014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 제재의 이중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G8에서 제외된 지 오래다. 푸틴은 지난해 8월 대선 승리로 4번째 임기를 시작했지만 국제사회의 고립과 경제난 속에 지지도가 급속하게 추락하고 있다. 한때 80%를 넘어 고공행진하던 지지율은 지난 1월 조사에서 33.4%로 최저점을 찍었다. 러시아 경제부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1.3%로 낮춰 잡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관되게 푸틴의 러시아에 호감을 표해왔다. 하지만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조사가 종결된 뒤에도 러시아의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푸틴과의 밀월외교는 언감생심이다. 푸틴이 정상외교를 통해 북한을 지원할 여지는 크지 않다.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신년 연설에서 밝힌바, “미국이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로 나간다면, 부득불 모색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던 ‘새로운 길’을 러시아가 내주긴 어렵다는 말이다. 

 

김 위원장의 방러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부터 중국, 쿠바, 베트남과 사회주의 국제연대를 복구한 데 이어 러시아 방문으로 대외관계 정상화를 일단락 짓는 소득이 있었다. 하지만 베이징이나 블라디보스토크는 잠시 머물다 가는 정거장에 불과하다. 종착역이 될 수 없다. 비핵화와 북한 체제보장, 나아가 인민경제 발전을 위한 궁극의 해법은 결국 워싱턴과의 담판에서 풀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종착역에 가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기착지는 베이징이나 블라디보스토크가 아니다. 바로 서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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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일 베트남 하노이의 대통령궁에서 열린 공식 환영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뒤 이틀간 베트남을 친선공식방문했다.  하노이/EPA연합뉴스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노이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지 보름이 지났다. 어느 정도 먼지가 가라앉을 시간이 됐건만 이 경우엔 아닌 것 같다. 시야가 뿌옇다. ‘과연 하노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에 쏠렸던 관심의 초점은 ‘과연 평양에서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을까’로 이동했다. 실체가 보이지 않으니 ‘이미지’가 크게 보이는 것일까. 지난주부터 언론은 평안남도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서해 미사일 발사장)과 평양 산음동 미사일 종합연구단지의 위성사진들을 일제히 보도했다. 특히 동창리의 움직임을 미사일 발사 준비로 보는 분석이 많았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조립·생산시설인 산음동 연구단지에서 차량의 움직임이 포착됐다는 국가정보원의 국회 정보위 보고도 함께 제시됐다. 아직까지 두 곳의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 와중에 트럼프 팀의 치어리더로 변신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회담 뒤 폭스뉴스를 비롯한 미국 주요 언론을 돌며 “하노이 회담은 실패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다.

■ 벼랑끝 외교? 엉성한 준비와 허술한 협상태세의 예고된 실패

하노이 회담의 전모는 파악할 길이 없다. 주로 미 고위당국자들이 내놓는 말의 파편만으론 복원이 어렵기 때문이다. 합의문을 도출하지 못한 만큼 어느 쪽도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 다만, 드러난 외양만 놓고 보면 북한의 실패다. 사전 준비와 협상장에서의 태세가 모두 엉성했다. 그 하이라이트가 ‘영변 핵시설’을 둘러싼 애매함 또는 방관이었다. 미국 측 회견을 들여다보면 북측은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던 순간까지 영변 핵시설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했다.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뒤늦게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영변 내 모든 시설’이라는 답을 듣고 이를 미국 측에 전달하기 위해 달려야 했다.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는 새로운 제안이 아니었다. 작년 9월 남북 정상의 평양공동선언 5조 2항에 명시됐다. 그 이후 영변 핵시설의 범위 및 내용에 대한 내부 정의조차 하지 않았음이 드러난 꼴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호찌민 영묘를 방문해 화환증정식을 기다리고 있다.  하노이/로이터연합뉴스 


2월 초 평양 실무회담에 참석한 양측 대표단은 숫자부터 달랐다. 북측은 회담 대표가 달랑 4명이었던 반면 미측은 15~16명이었다. 핵 전문가는 물론 미사일 및 국제법 전문가들을 망라했다. 광범위한 비핵화의 정의에 대해 북·미가 이견을 보이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다. 논의가 필요하다. ‘볼턴의 노란 봉투’에 담겼다는 핵·미사일·생화학무기 등 모든 대량살상무기(WMD) 폐기안은 한쪽의 제안일 뿐이다. 하지만 ‘최고 존엄’이 5개월 전 수결한 합의 내용조차 준비를 안 했다면, 상대를 과소평가한 것이다. 미국 측은 ‘3평방마일 내 300여개 시설’을 파악하고 회담장에 들어갔다. 북측 내부의 의사소통이 없었거나, 적어도 실무선에서  영변 핵시설조차 통째로 내놓지 않겠다는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된다. 특한 특성상 김 위원장의 지시가 없었음의 방증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영변 핵시설의 정의 또는 광범위한 비핵화의 정의를 둘러싼 북·미 간의 오해 또는 이견은 향후 협상의 진전을 위해 우선 매듭지어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하노이 대좌가 남긴 더 큰 의미는 다른 곳에 있다. 바로 각본의 주체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작년 1월 이후 지금까지 진행된 4차례의 북·중 정상회담과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 2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은 대부분 김정은 위원장의 각본에 의해 진행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이 회담 상대와 장소, 시기를 정했고, 준비한 제안을 내놓았다.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안’은 그 일부일 뿐이다. 


■ 각본(playbook)의 저자가 바뀌었다

멀리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도 북핵을 둘러싼 외교 드라마는 많은 경우 북한이 설정한 일정과 각본에 따라 진행됐다.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과 같은 용어조차 북한이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하노이 회담장에서 평양의 각본이 아닌, 워싱턴의 각본을 내밀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비핵화의 정의 역시 새로운 것은 아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선(先) 핵포기’ 요구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같은 제안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내놓고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밝은 미래가 있다는 말 역시 기시감을 준다. 하지만 어떤 미국 대통령도 몸짓언어와 동영상까지 총동원해서 북한 지도자에게 직접 전달하지는 않았다. 작년 6·12 싱가포르 대좌에서 트럼프는 아이패드로 ‘북한의 기회 이야기(A Story of Opportunity for North Korea)’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김 위원장에게 보여주었다. 동영상은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서 소수만이 지속적인 영향을 남긴다. 마찬가지로 아주 소수만이 자신들의 조국을 새롭게 하는, 역사의 경로를 바꾸는 결정을 내린다”면서 북한의 결단을 에둘러 권했다.


트럼프는 하노이 회담장에서도 몸짓언어를 아끼지 않았다. 김 위원장과 악수한 손등을 두들기거나 어깨를 치고, 귀엣말을 하는 제스처를 보였다. 이는 정상회담의 정석에 충실한 것이기도 하다. 정상 간의 만남은 합의문의 조항을 둘러싼 기술적이고 건조한 대화만을 주고받는 자리가 아니다. 서로의 인간성을 발견하고 개인적 신뢰를 심어주는 자리이기도 하다. 70여년 동안 대립과 반목을 해온 북한과 미국의 역사에 없었던, 지도자 간 화학적 결합의 효과가 나올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회담 결렬 이후에도 서로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고 있는 것은 두 차례의 대면이 주는 효과이자, 북·미회담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긍정적인 신호의 하나다. 미국은 여기에 여러 카드를 손에 쥐고 상대 카드를 읽으려는 종래 게임의 법칙을 이탈했다. 쇼다운(showdown), 들고 있던 카드를 모두 내보인 것이다. 


북한이 종래의 각본으로 돌아가려면 북한의 교역과 금융은 물론 노동자 해외취업까지 막은 복수의 안보리 제재를 이고 살아야 한다. 중국이 제재에 충실히 동참한다면 북한 사회와 경제가 견딜 수 있는 한계가 몇 달 안 남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당장 올여름이 고비라는 관측도 있다. 지난 2월27일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이 단독회담을 갖기 전 “서두를 생각이 없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합의를 하는 것”이라는 트럼프의 말에, 김 위원장이 “우리한테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데…”라면서 말끝을 흐린 이유일지도 모른다. 국제사회가 북한 산음동과 동창리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는 것은 익숙한 과거가 떠올라서일 게다. 바로 북한의 ‘벼랑끝 외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월27일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회견을 하고 있다.  하노이/EPA연합뉴스


벼랑끝 외교는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결국은 자신들의 요구에 가깝게 협상 조건을 유도하는 수단이었다. 북한 입장에서 벼랑끝 외교의 가장 큰 미덕은 시간을 벌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궁극의 목표였던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지금은 더이상 수단이 될 수 없다. 시간벌기의 여지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2017년 핵전쟁 직전까지 위기를 고조시킨 것처럼 위기에 그치지 않고 곧바로 파국을 자초할 수도 있는 길이다. 벼랑끝 외교의 피로가 가장 많이 쌓인 곳은 워싱턴이다. 민주·공화당이 정파별로 나뉘어 ‘한국정치식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는 워싱턴 정계가 한목소리로 “나쁜 합의보다는 노 딜(no deal)이 좋다”면서 하노이 결렬을 되레 반기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북한은 그 원인을 톺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북·미 합의 가능성이 낮아진다면 북한 역시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핵·ICBM 실험을 재개하지 않더라도 핵활동 및 성능 개선작업은 계속할 것이다. 하노이 결렬은 어쩌면 ‘진실의 순간’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 대목에서 궁금해지는 것이 미국이 전한 노란 봉투 안에 든 서류의 내용이다.


■ 올해 태양절이 기다려지는 까닭

트럼프는 2월28일 하노이 회견에서 “북한은 엄청난 잠재력, 믿기 어려울 정도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트럼프의 ‘북한 비전’에서는 부동산개발업자의 지문이 묻어난다. 한국은 물론, 러시아 극동과 중국 사이에 자리해 부러울 정도의 ‘지리적·지정학적·지경학적 위치’다. 북한이 세계로 돌아오는 결정만 하면 엄청난 이익을 제공해줄 입지조건이라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북한을 상대로 체제 유지의 사활이 걸린 핵무기 포기를 요구하면서 막연히 경제적 번영의 비전만 제시하지는 않았을 터. 볼턴이 밝히지 않은 나머지 절반의 내용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2만여리의 장정’을 마치고 지난 5일 평양으로 귀환한 김 위원장은 노란 봉투에 담긴 요구와 제안을 통으로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선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열린 지난 3월10일 평양시내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하노이 북·미 회담 뒤 북한 내부의 변화는 두 가지다. 정권 창립 이후 처음으로 북한 최고지도자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입후보하지 않았다. 또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성시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평양/EPA연합뉴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미국 측은 여러 차례 ‘빅(big)’을 강조하고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큰 합의(빅 딜), 큰 걸음(빅 스텝), 한입 크게 물기(빅 바이트), 큰 건(빅 샷) 등의 말을 내놓는다. 하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다른 모든 표현과 빅딜은 다르다. 주로 볼턴의 언론 인터뷰에서 강조되는 ‘빅딜’은 최종적인 의미이지만, 나머지 ‘빅’은 과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하노이 회견장에서 트럼프의 표현은 ‘조금 더 멀리’나 ‘더 크게’ 정도였다. 볼턴의 장광설처럼 한번에 모든 걸 해결하자는 뉘앙스가 아니었다. 조금 더 멀리 가려 했는데 북한이 원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익숙한 궤도’를 떠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더구나 ‘최고 존엄’이 아직 ‘인간 선언’을 하지 않은 북한이다. 지금은 고민의 결론을 기다릴 시간이지, 이미지 속의 ‘솥뚜껑’을 보고 놀랄 때가 아닌 것 같다. 다가오는 북한의 태양절(4월15일)은 무언가 변화의 단서를 포착하기 좋은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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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민1 2019.03.16 1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이 너무 노골적이고 비하의 느낌이 있소이다

  2. gino's gino's 2019.03.16 14: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가까이서 포착한 사진을 골랐는데.. 그리 보일수도 있겠군요

  3. gino's gino's 2019.04.07 14: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北최고인민회의] '하노이 이후' 北전략, 베일벗나…대미·경제 정책 관심
    11일 회의 전후 노동당 회의 가능성…김정은 내놓을 메시지 주목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 북한이 오는 11일 개최되는 최고인민회의 등을 계기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새롭게 가다듬은 대외·대내정책 방향을 공개할지 관심이 쏠린다.
    최고인민회의를 전후해 실질적 정책결정 기구인 노동당의 회의가 열릴 가능성도 높게 점쳐져 다음 주가 북한의 '포스트 하노이' 노선을 가늠할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고인민회의는 남한의 정기국회 격으로, 예산·결산과 국가직 인사 등의 안건을 처리하며 입법 권한을 갖고 있다. 다만 노동당이 결정한 정책 노선을 추인하고 예산 배정과 입법 등을 통해 이를 뒷받침한다.
    정부 안팎에서는 북한이 최고인민회의를 전후해 노동당 정치국 회의나 당 중앙위 전원회의 등 노동당의 의사결정 기구를 소집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김정은 시대 들어 노동당의 기능을 정상화하며 최고인민회의에 앞서 당의 주요 회의를 열어 국가적 주요 의제를 논의하는 패턴을 정착시켜 왔다.
    지난해에도 최고인민회의 이틀 전인 4월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당 정치국 회의가 열렸다. 당시 김 위원장은 남북관계와 북미대화 전망을 분석·평가하며 대응방향을 제시하고 최고인민회의에 제출할 예·결산안을 논의했다.
    최고인민회의 열흘 뒤인 4월 20일에는 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열어 핵무력과 경제건설 병진노선을 종료하고 '경제건설 총력 집중'이라는 새 노선을 채택했다.
    이번에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후 '기로'에 선 북한이 노동당 회의를 통해 대응전략을 재정비하고, 회의결과 보도 등을 통해 미국에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포스트 하노이' 국면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입을 열지 주목된다.
    김 위원장은 최근 양강도 삼지연군과 강원도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와 평안남도 양덕온천관광지구 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건설사업 현장을 잇달아 방문하며 '자력갱생' 기조를 재확인했다.
    원산 건설이 계획대로 추진되는 것은 "결코 조건과 형편이 용이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힘, 자기의 피땀으로 진정한 행복과 훌륭한 미래를 창조해 가려는 우리 인민의 억센 의지와 투쟁에 의하여 이루어진 결과"라고 평가하고, 삼지연에서는 "적대세력들과의 치열한 계급투쟁, 정치투쟁"을 강조했다.
    이번에도 김 위원장은 대북제재 장기화에 대응하기 위한 체제 내구성과 결속력 강화에 일단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경제집중 노선에 대한 의지를 변함없이 밝히고 있는 만큼, 대미 협상에서도 협상 중단 등 급격한 방향전환보다는 '양보 불가'를 내세우며 미국을 압박하는 기조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미 공동성명 이행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내부적으로 자력갱생을 재확인할 것"이라며 "미국이 지속해서 압박, 제재를 계속한다면 '새로운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고인민회의에서는 북미협상을 통한 제재 완화에 실패한 이후 경제난 타개 방안 등 북한의 대내정책 기조가 보다 구체화할 수 있다. 이번 회의는 새로 꾸려진 14기 대의원들이 처음으로 여는 정기회의다.
    최근 북한은 매년 최고인민회의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2016~2020) 수행을 위한 전년도 '사업정형'과 해당 연도 '과업'을 논의해오고 있다.
    올해도 이런 의제를 통해 대북제재 환경과 경제 현주소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인식과 대응책 등이 드러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대북제재의 영향이 전방위로 확산하며 북한 경제가 한층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해 왔다.
    통일부는 지난달 국회에 제출한 업무현황 보고 자료에서 지난해 북·중 무역액이 전년 대비 50.8% 감소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지난달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대의원 선거 결과 분석' 보고서에서 "거수기 역할에 한정되는 최고인민회의지만, 대내외 상황을 고려할 때 경제전략 방향을 비롯한 현실적인 의제를 (이번 회의에) 상정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4. gino's gino's 2019.06.21 15: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중 북미대화 관련 내용 전문



    동지들!

    민족 최대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위한 우리의 역사적 투쟁은 오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한평생 최대의 심혈과 로고를 기울이신 조국통일위업을 기어이 실현할 확고한 결심을 가지고 북남관계개선과 조선반도평화보장을 위한 획기적인 조치들을 연속 취해나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가 3차에 걸쳐 역사적인 북남수뇌상봉과 회담들을 진행하고 북남선언들을 채택하여 북남관계에서 극적인 전환을 가져온 것은 각일각 전쟁의 문어구(문어귀)로 다가서는 엄중한 정세를 돌려세우고 조국통일을 위한 새로운 여정의 출발을 선언한 대단히 의미가 큰 사변이었습니다.

    지금 온 민족은 역사적인 판문점선언과 9월평양공동선언이 철저히 이행되어 조선반도의 평화적 분위기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북남관계가 끊임없이 개선되어나가기를 절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조선의 보수세력들은 민족의 지향과 국제사회의 한결같은 기대 앞에 너무나 부실한 언동으로 화답하고 있으며 북남관계를 판문점선언 발표 이전 시기로 되돌려보려고 모지름을 쓰고 있습니다.

    미국은 남조선당국에 《속도조절》을 노골적으로 강박하고 있으며 북남합의이행을 저들의 대조선제재압박정책에 복종시키려고 각방으로 책동하고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 앞에는 조선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북남관계개선의 분위기를 계속 이어나가는가 아니면 전쟁의 위험이 짙어가는 속에 파국에로 치닫던 과거에로 되돌아가는가 하는 엄중한 정세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민족의 운명과 전도, 지역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는 현 사태를 수수방관할 수 없으며 온 겨레의 한결같은 지향과 염원에 맞게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시급히 강구해나가야 합니다.

    그러자면 그 어떤 난관과 장애가 가로놓여도 민족의 총의가 집약된 북남선언들을 변함없이 고수하고 철저히 이행해나가려는 입장과 자세부터 바로가져야 합니다.

    이미 천명한 바와 같이 남조선당국과 손잡고 북남관계를 지속적이며 공고한 화해협력관계로 전환시키고 온 겨레가 한결같이 소원하는대로 평화롭고 공동번영하는 새로운 민족사를 써나가려는 것은 나의 확고부동한 결심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해둡니다.

    조성된 불미스러운 사태를 수습하고 북과 남이 힘들게 마련한 관계개선의 좋은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그것이 평화와 통일의 의미있는 결실로 빛을 보게 하자면 자주정신을 흐리게 하는 사대적 근성과 민족공동의 이익을 침해하는 외세의존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모든 것을 북남관계개선에 복종시켜야 합니다.

    나는 남조선당국이 진실로 북남관계개선과 평화와 통일을 바란다면 판문점상봉과 9월 평양상봉 때의 초심으로 되돌아와 북남선언의 성실한 이행으로 민족 앞에 지닌 자기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조선당국은 추세를 보아가며 좌고우면하고 분주다사한 행각을 재촉하며 오지랖 넓은 《중재자》,《촉진자》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북남관계개선의 분위기를 계속 살려나가자면 적대적인 내외 반통일, 반평화 세력들의 준동을 짓부셔버려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일관한 주장입니다.

    미국과 함께 허울만 바꿔 쓰고 이미 중단하게 된 합동군사연습까지 다시 강행하면서 은페된 적대행위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남조선군부호전세력의 무분별한 책동을 그대로 두고, 일방적인 강도적 요구를 전면에 내들고 관계개선에 인위적인 장애를 조성하고 있는 미국의 시대착오적인 오만과 적대시정책을 근원적으로 청산하지 않고서는 북남관계에서의 진전이나 평화번영의 그 어떤 결실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때늦기 전에 깨닫는 것이 필요합니다.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민족의 운명과 전도를 걸고 북남관계개선과 평화통일에로 향한 역사적 흐름에 도전해나서는 미국과 남조선보수세력의 책동을 단호히 저지파탄시켜야 합니다.

    남조선당국이 진실로 북남관계개선과 평화와 통일의 길로 나아갈 의향이라면 우리의 입장과 의지에 공감하고 보조를 맞추어야 하며 말로써가 아니라 실천적 행동으로 그 진심을 보여주는 용단을 내려야 합니다.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는 앞으로도 민족의 지향과 염원을 숭엄히 새기고 북남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나라의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계속 진지하고 인내성있는 노력을 기울여나갈 것입니다.

    동지들!

    세계의 각광 속에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진행된 조미수뇌상봉과 회담은 불과 불이 오가던 조선반도에 평화정착의 희망을 안겨준 사변적 계기였으며 6.12조미공동성명은 세기를 이어오며 적대관계에 있던 조미 두 나라가 새로운 관계역사를 써나간다는 것을 세상에 알린 역사적인 선언인 것으로 하여 평화를 지향하는 국제사회의 전폭적인 지지와 찬동을 받았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케트시험발사중지를 비롯한 중대하고도 의미있는 조치들을 주동적으로 취하여 조미적대관계 해소의 기본열쇠인 신뢰구축의 첫걸음을 떼였으며 미국 대통령이 요청한 미군유골송환문제를 실현시키는 대범한 조치도 취하여 새로운 조미관계수립의 이정표로 되는 6.12조미공동성명을 성실히 이행하려는 의지를 과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2월 하노이에서 진행된 제2차 조미수뇌회담은 우리가 전략적 결단과 대용단을 내려 내짚은 걸음들이 과연 옳았는가에 대한 강한 의문을 자아냈으며 미국이 진정으로 조미관계를 개선하려는 생각이 있기는 있는가 하는 데 대한 경계심을 가지게 한 계기로 되었습니다.

    우리는 제2차 조미수뇌회담에서 6.12조미공동성명 이행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적인 단계와 경로를 조미쌍방의 이해관계에 부합되게 설정하고 보다 진중하고 신뢰적인 조치들을 취할 결심을 피력하였으며 이에 대한 미국의 화답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전혀 실현불가능한 방법에 대해서만 머리를 굴리고 회담장에 찾아왔습니다.

    다시 말하여 우리를 마주하고 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준비가 안 되어 있었으며 똑똑한 방향과 방법론도 없었습니다.

    미국은 그러한 궁리로는 백번, 천번 우리와 다시 마주 앉는다 해도 우리를 까딱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며 저들의 잇속을 하나도 챙길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우리의 대륙간탄도로케트 요격을 가상한 시험이 진행되고 미국 대통령이 직접 중지를 공약한 군사연습들이 재개되는 등 6.12조미공동성명의 정신에 역행하는 적대적 움직임들이 노골화되고 있으며 이것은 우리를 심히 자극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흐름을 매우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바람이 불면 파도가 일기마련이듯이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이 노골화될 수록 그에 화답하는 우리의 행동도 따라서게 되어있습니다.

    최근 미국이 제3차 조미수뇌회담을 또다시 생각하고 있으며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지만 새로운 조미관계수립의 근본방도인 적대시정책 철회를 여전히 외면하고 있으며 오히려 우리를 최대로 압박하면 굴복시킬 수 있다고 오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물론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중시하지만 일방적으로 자기의 요구만을 들이먹이려고 하는 미국식 대화법에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고 흥미도 없습니다.

    미국이 대화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자고 하면서도 우리에 대한 적대감을 날로 더 고조시키는 것은 기름으로 붙는 불을 진화해보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어리석고도 위험한 행동입니다.

    조미 사이에 뿌리 깊은 적대감이 존재하고 있는 조건에서 6.12조미공동성명을 이행해나가자면 쌍방이 서로의 일방적인 요구조건들을 내려놓고 각자의 이해관계에 부합되는 건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우선 미국이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서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 미국이 제3차 조미수뇌회담개최에 대해 많이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하노이 조미수뇌회담과 같은 수뇌회담이 재현되는 데 대하여서는 반갑지도 않고 할 의욕도 없습니다.

    하지만 트럼프대통령이 계속 언급하는 바와 같이 나와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개인적 관계는 두 나라사이의 관계처럼 적대적이지 않으며 우리는 여전히 훌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생각나면 아무 때든 서로 안부를 묻는 편지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조미수뇌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우리로서도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생각해보면 그 무슨 제재해제문제 때문에 목이 말라 미국과의 수뇌회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쨌든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지만 지난번처럼 좋은 기회를 다시 얻기는 분명 힘들 것입니다.

    앞으로 조미쌍방의 리해관계에 다같이 부응하고 서로에게 접수가능한 공정한 내용이 지면에 씌어져야 나는 주저 없이 그 합의문에 수표할 것이며 그것은 전적으로 미국이 어떤 자세에서 어떤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는가에 달려있습니다.

    명백한 것은 미국이 지금의 정치적 계산법을 고집한다면 문제해결의 전망은 어두울 것이며 매우 위험할 것입니다.

    나는 미국이 오늘의 관건적인 시점에서 현명한 판단을 내리리라고 기대하며 가까스로 멈춰세워놓은 조미대결의 초침이 영원히 다시 움직이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공화국 정부는 우리나라의 자주권을 존중하고 우호적으로 대하는 세계 모든 나라들과의 친선과 협조의 유대를 강화발전시켜나갈 것이며 조선반도에서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세계 모든 평화애호역량과 굳게 손잡고 나아갈 것입니다.

    동지들!

    방금 말했지만 적대세력들의 제재해제문제 따위에는 이제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우리의 힘으로 부흥의 앞길을 열 것입니다.

    우리의 투쟁목표는 방대하고 사회주의건설의 앞길에 의연히 도전과 난관이 가로놓여있지만 김일성-김정일주의 기치 높이 자력으로 부강의 새로운 국면을 열고 강국의 이상과 목표를 실현해나가려는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의 의지는 확고부동합니다.

    자주의 길에 번영이 있고 승리가 있습니다. 자기 힘을 믿고 제힘으로 앞길을 개척해나가려는 투철한 신념과 의지를 지닌 국가와 인민의 도도한 진군은 그 무엇으로써도 돌려세우거나 멈춰세우지 못합니다.

    모두 다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고 당과 공화국 정부의 두리에 굳게 뭉쳐 사회주의강국건설위업을 빛나게 실현하기 위하여 총진격해나아갑시다

  5. gino's gino's 2019.06.21 15: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재인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와 관련해 “그 친서 내용 속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하지 않은 아주 흥미로운 대목도 있다”고 말했다.

    노르웨이를 국빈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이날 에르나 솔베르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에서 대강의 내용을 알려준 바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하신 것 이상으로 제가 먼저 말씀드릴 수는 없다는 점을 양해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의 친서가 북·미 비핵화 교착 국면 해소에 기여할지 주목된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실장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내용 자체보다도 친서를 보낸 시점, 친서를 보냈다는 사실이 의미가 있다”며 “북·미가 선박 압류, 단거리 미사일 발사 등으로 긴장을 주고받는 와중에도 대화 모멘텀을 유지해왔는데, 친서를 보내면서 이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북한이 내부 정비를 마치고 다시 협상에 나설 준비가 된 것 아니냐는 분석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6월 중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한지는 저도 알 수 없다”면서도 “남북 간에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연락과 협의로 정상회담이 이뤄진 경험도 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북관계가 제대로 발전해 나가려면 개성공단 재개를 비롯한 여러 경제협력까지 이어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국제적 경제제재가 해제돼야 가능하고, 제재가 해제되려면 북의 비핵화에 실질적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그는 매우 멋진 친서를 썼다. 그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며 “언젠가는 여러분도 친서 안에 뭐가 있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아름답고 따뜻한 친서’를 받았다고 하면서도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1958년 11월 베트남을 처음 방문한 북한 김일성 주석(오른쪽)이 하노이에서 베트남 국부 호찌민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당시 김 주석과 마찬가지로 열차편으로 베트남을 방문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호찌민 박물관


1958년 11월 말, 중국 베이징역에서 동아시아 분단국의 지도자가 열차에 올랐다. 김일성 주석의 첫 베트남 방문길이었다. 열차 편으로 베이징에서 우한을 지나 광저우에 도착한 뒤 저우언라이의 전용기로 하노이 땅을 처음 밟았다. 비행기로 중국 항저우, 상하이 등을 거쳐 귀국했다. ‘죽의 장막’이 두껍던 시절이다. 그다지 세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게다. 반면에 지난달 23일 오후 늦게 평양역을 출발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용열차는 시종일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김 위원장의 이번 베트남 방문길은 김 주석의 첫번째 여정과 사뭇 달랐다. 김 주석이 중국 지도부를 만나기 위해 경유했던 베이징과 광저우 등 대도시를 우회, 최단거리를 택했다. 평양~단둥~선양~톈진~스자좡~우한~창사~헝양~구이린~류저우~난닝 코스였다. 행로는 국제정세를 반영한다. 김 주석의 행로는 북한·중국·베트남 3각 동맹의 결속을 말해주지만,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방중으로 이번 베트남행을 분리했다. 국내적으론 김 위원장이 전용열차를 탔다는 사실 자체가 더 중요하다. 북한 매체가 출발 당일 보도한 것처럼 평양역에서 전용열차에 오르는 이미지가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6일 중국 국경을 넘어 베트남 동당역에 도착해 전용열차에서 내리고 있다. 베트남 금성홍기와 북한 인공기가 보인다.  동당/EPA연합뉴스


북한 주민들에게 김 주석의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강한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비록, 두번째 북·미 대좌가 결렬됐지만 김 위원장은 하나의 서사(敍事)를 쓰고 싶었을 것이다. 과거의 상징과 현재의 상징을 순식간에 이었다. 남측이 지난해 4·27 판문점 회담과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서정(抒情)적 이벤트로 풀어낸 것과 사뭇 다른 접근이다. 

 

통치행위로서의 상징, 그 공간의 확대

기실 북한의 상징정치는 어제오늘의 전통이 아니다. 하나의 서사구조로 ‘국가 만들기(Nation Building)’를 했다. 나라 같지도 않은 나라였기에 일제의 침략을 받았고, 김 주석의 항일투쟁 덕에 해방을 맞았다는 게 서사의 얼개다. 김 주석이 박헌영의 국내파와 박일우의 연안파, 허가이의 소련파를 제거하고 권력을 독점한 뒤 상징을 심화했다. 1967년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하는 주요 계기가 바로 베트남전쟁이었다. 상징을 위한 상징이 아니다. 김 주석의 이미지는 국가 만들기 서사구조의 ‘뇌수’다. 김 위원장은 그걸 재연했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서사에서 항일은 항미로 대체됐다. 힘이 없었기에 일제의 침략을 당했고, 미국의 압박과 고립에 힘겨워했다. 이를 단번에 타파할 ‘보검’이 바로 김 위원장 집권 6년차에 완성을 선언한 핵무력이었다. 핵개발의 긴 여정과 비핵화의 또 다른 여정은 하나의 서사구조 안에 놓여 있다. 

북한 주민 입장에서 지난해 6·12 싱가포르 북·미 대좌는 세계 최강대국 지도자가 몸을 숙이고 나왔다는 데 방점이 놓여 있다. 이번엔 김 주석의 상징을 멀리 베트남까지 연장했다. ‘고난의 행군’을 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상외교의 공간을 중·러로 제한했다. 김 주석이 중·소를 넘어 아시아, 중동, 북아프리카, 동유럽 각국을 주유했던 것과 대비됐다. 그만큼 북한은 고립돼 있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베트남 친선공식방문은 북한이 정상국가로 한발 더 들어선 것이기도 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친선공식방문을 위해 지난 23일 평양역에서 전용열차를 타고 출발하기에 앞서 환송객들에게 오른손을 흔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김일성의 베트남, 김정은의 베트남

김 주석에게 베트남은 사회주의 형제국인 동시에 ‘제2의 전선’이었다. 1958년, 1964년 하노이를 찾았고, 호찌민은 1957년과 1961년 평양을 방문했다. 미국의 개입으로 베트남전쟁이 본격화된 1965년 여름 레탄니 베트남 부총리는 사회주의권 8개국을 순방했다. 북한도 포함됐다. 김 주석은 한국전쟁의 경험을 강조하며, 군수공장과 지휘본부, 격납고 등을 동굴에 마련할 것을 당부했다. 미국 윌슨센터가 공개한 레탄니의 ‘김일성과의 대화’에 나온다. 북한은 1951년부터 1956년까지 북한 내 동굴 군수공장을 만들었다. 확전이 임박한 베트남엔 반지하, 반동굴 건설 방식을 권했다. 이를 위해 500명의 전문가와 노무자를 즉각 파견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가 베트남에 제공하지 못할 물품은 국산화하지 못한 탄피와 야전 전화선뿐이다. 우리 경제계획이 늦춰져도 좋다”면서 전폭 지원을 다짐했다. 강철 2만t과 100㎞의 철로, 변압기, 트럭 200대, 견인시설 300개, 디젤엔진 등의 품목도 내놓았다. 


북한은 경제발전 7개년 계획(1961~1967) 중이었다. 김 주석이 1962년 “모든 인민이 이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기와집에서 비단옷 입고 사는 부유한 생활을 할 것”이라면서 목표연도로 제시한 바로 그 '몇년 뒤'의 시점이었다. 7개년 계획은 결국 3년이 지체돼 1970년에 완료됐다. 북한 관영언론을 인용한 BBC 보도에 따르면 김 주석은 베트남에 파견한 공군 조종사들에게 “베트남 창공이 우리 창공이라고 생각하고 싸우라”고 말했다. 단순히 공동의 적(미군)을 둔 우방 지원 차원을 넘어섰다. 베트남에 형성된 미국과의 제2의 전선. 김 주석은 이를 내부적으로 ‘최고 존엄’의 상징을 다지는 한편 ‘남조선 혁명’의 기회로 삼았다. 경제개발계획을 연기하면서까지 적극 지원한 동기였다.


“(1967년) 베트남전에 호응해 한국 내 혁명을 조직하고, 필요하면 다시 혁명전쟁을 한다. 그를 위해서 수령의 유일지도를 확립하고 항일 유격대원 정신으로 행동해 달라는 게 김일성의 주장이었다.”(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그해 6월28일~7월3일 당 중앙위 제4기 제16차 전원회의에서 유일사상체계를 수립했다. 항일투쟁의 서사에 유일사상체계가 장착되면서 북한은 이후 ‘최고 존엄’의 새로운 서사를 써나간다. 1968년 1월 김신조 일당을 내려보내고, 미군 함정 푸에블로호를 나포했다. 베트남이 테트(Tet·설) 대공세를 벌인 이듬해 초까지 계속된 북한의 소규모 대남 군사작전은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새로 구축된 ‘최고 존엄’의 지위는 유지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27일 하노이 마트로폴 호텔 회담장에서 밝게 웃으며 악수하고 있는 모습. 북한 노동신문이 28일자에 소개한 사진이다. 연합뉴스


베트남의 ‘캄보디아’ 북한의 ‘핵무력’

베트남 현대사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미국을 상대로 10년 전쟁을 벌였지만, 종전 직후부터 미국에 달려가기 위해 지난한 노력을 했다는 점이다. 당시에도 미국의 ‘무기’는 경제제재였다. 미국은 1975년 종전과 함께 경제제재를 취했다. 지미 카터 행정부의 대표단이 하노이를 찾은 것은 1977년 3월이었다. 베트남은 불법적인 제재 해제 및 전쟁보상금 우선 지급을, 미국은 관계정상화의 선결조건으로 미군 실종자(MIA) 문제 해결을 요구하면서 논의가 겉돌았다. 베트남은 1978년 9월 무조건적인 관계정상화를 공식 제안했다. 하지만 미·중 데탕트에 접어든 미국의 안중에 베트남은 없었다. 


미·베 협의가 결정적으로 어긋난 것은 같은 해 12월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이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마찬가지로 베트남에 인도차이나반도에서의 ‘특별한 지위’는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이었다. 중국이 후원했던 캄보디아에 헹삼린 정권을 수립하고, 이듬해 중국과 국경전쟁도 불사했다. 그 결과 베트남은 전 세계에서 철저히 고립됐다. 베트남의 잇단 러브콜에 미국은 캄보디아 철군을 수교의 전제로 못박았다. 


베트남은 1985년 7월 미군 유해 26구를 인계하고 MIA 조사를 2년 내 완결하겠다고 일방 발표했다. 1986년 도이머이(쇄신)를 선언했다. 미국은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1989년 캄보디아 전면 철군을 한 뒤에야 대미 협상의 동력을 얻었다. 1991년 중국, 1992년 한국에 이어 빌 클린턴 행정부가 1994년 제재 해제, 이듬해 국교정상화를 하면서 비로소 날개를 달았다. 


물론 북한과 베트남은 다르다. 베트남은 ‘캄보디아’를 버린 뒤 미국과 마주 앉았지만, 북한은 ‘핵무력’을 얻은 뒤 미국에 신호를 보냈다. 주고받을 게 별로 없었던 미·베 수교협상과 달리 북·미는 주고받을 것이 많다. 하노이 북·미 대좌를 결렬케 한 미국의 ‘영변 핵시설+α’ 대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 제안이나, 북한의 인민생활 관련 일부 제재 해제 요구는 모두 완전한 비핵화까지 가는 과정에서 주고받아야 할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회담도 100% 한쪽으로 기울 수 없다. 베트남 역시 미국이 요구했던 국제사회 감시하의 캄보디아 철군이 아니라, 일방적 철군을 했고 이를 워싱턴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삼았다. 베트남보다 북한의 입지가 낫다. 베트남과 달리 중국이라는 ‘잠정적 배후기지’도 있다.


평양 시민들이 지난 24일 시내에서 노동신문을 읽고 있다. 노동신문이 25일자에 보도한 사진으로 "수도 시민들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외국방문 출발 소식에 접하고 끝없는 격정에 넘쳐 있다"고 전했다. 평양 시민들에게 북미 정상회담은 미래에 대한 낙관의 근거이다. 연합뉴스


북한의 국가 만들기는 상징체계의 서사를 법제화하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김 위원장의 하노이 방문에서 부각된 ‘오래된 현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거의 연속은 거기까지다. 김 주석에게 베트남이 내부를 다지고 적화통일을 기도할 발판이었다면, 김 위원장에게 베트남은 한국전쟁을 끝내고 미국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는 발판이었다. 김 주석은 베트남전을 계기로 경제·군사의 병진노선에서 군사를 택했지만 김 위원장은 핵무력·경제의 병진노선에서 경제를 택했다. 그사이 세계도 베트남도, 북한도 변했다. 하노이 북·미 대좌의 에피소드에도 불구하고 작년 4월 노동당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을 선택한 북한의 국가적 우선순위는 쉽게 바뀔 노선이 아니다. 미국은 비핵화를 포기할 수 없고, 북한은 김 주석이 미뤄둔 ‘이밥에 고깃국’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협상이 필요하다. 


북한 ‘최고 존엄’의 상징체계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북한의 정치체제를 존중해줘야 한다. 김 위원장은 김 주석의 '상징'을 타고 베트남을 찾았다. 김 주석에게 군사노선의 정거장이었던 베트남이 김 위원장에겐 과연 새로운 서사의 출발점이 될 것인가. 하노이 이후에도 여전히 주목되는 대목이다. 어차피 비핵화는 속도전도, 천리만 운동도 될 수 없다. 하노이 북·미 대좌의 결렬은 비핵화·체제보장의 여정에서 만날 숱한 안전턱의 하나일 뿐이다. 여행이 끝난 곳에서 길은 늘 다시 시작된다. 

베트남 국부 호찌민이 1958년 11월 처음 하노이를 방문한 김일성 주석과 건배를 하고 있다. 호찌민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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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ino's gino's 2019.03.03 16: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정은, 베트남 환영만찬서 전통악기 연주하며 '활짝'


    (하노이=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정상회담 합의 무산 이후 베트남 공식방문 일정을 수행하던 중 전통 악기를 연주해보며 함박웃음을 짓는 사진이 공개됐다.
    베트남 외교부는 2일 트위터에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이 김정은 위원장을 위해 만찬을 주최했다"며 사진을 함께 게재했다.
    전날 하노이 국제컨벤션센터(ICC) 환영만찬 모습을 담은 사진에서 김 위원장은 베트남 인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전통 악기 '단보'(Dan Bau·독현금)을 연주하며 만면에 웃음을 짓고 있다. 쫑 국가주석도 환하게 웃으며 옆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베트남 현지 매체 VN익스프레스도 김 위원장의 '베트남 전통음악에 '열띤 관심'(keen interest)을 나타냈다며 만찬 당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베트남 측은 김 위원장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봄햇살(Spring Sunshine)'이라는 제목의 공연을 준비했는데, 김 위원장이 베트남 악기 '단보'와 '끌롱뿟'에 특히 관심을 보이며 더 알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공연자로 나선 베트남의 유명 여가수 홍늉은 김 위원장이 공연에 아주 열중했고 심지어 몸을 흔들기도 했다고 이 매체에 전했다.
    이런 내용으로 보면 만찬은 한껏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이날 기사에서 "베트남의 전통적이고 우아한 기악, 무용종목들이 올라 환영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고 전했다.
    당시 만찬은 2시간 반 이상 이어졌다. 노동신문에는 전용차에 탄 김 위원장이 차창 밖으로 쫑 주석의 손을 잡으며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듯한 사진도 실렸다.
    김 위원장의 이번 베트남 공식친선방문은 북미정상회담이 '빈손'으로 끝난 직후 치러져 다소 빛이 바랬다는 평가도 있다. 그럼에도 양국은 55년 만의 북한 최고지도자 '전통적 친선'을 과시하는 계기로 적극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2. gino's gino's 2019.03.03 16: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찌민묘 찾은 김정은, 얼굴에 수심가득…동당역선 웃으며 작별(종합)
    베트남 국부 호치민묘 헌화로 일정 마무리…정돈 덜 된 앞머리·굳은 표정
    출국 땐 환송 인파에 연신 손 흔들어…베트남 환대에 '성의'



    (하노이=연합뉴스) 김효정 정빛나 기자 = 베트남 공식 방문 마지막 일정으로 호찌민 전 국가주석의 묘소를 찾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친 기색이 역력하고 수심에 차 보였다.
    김 위원장은 2일 오전 9시 30분(현지시간)께 숙소인 하노이 멜리아 호텔을 나서 10여분 떨어진 호찌민 전 주석 묘소에 도착했다.
    김영철·리수용·김평해·오수용 노동당 부위원장, 김여정·김성남 노동당 제1부부장, 리용호 외무상,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 수행 간부들이 동행했다.
    김 위원장이 도착하자 다오 비엣 쭝 베트남 주석 비서실장이 맞이했으며, 참배에 동행했다고 베트남 온라인 매체 VN익스프레스는 전했다.
    이날 현지 언론의 생중계 화면에 포착된 김 위원장은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 전날과 달리 앞머리가 일부 내려오는 등 머리가 완전히 정돈되지 않은 듯했고, 낯빛도 어두운 편이었다.
    [https://youtu.be/1ncKU7kDJSg]
    김 위원장과 수행단은 '영웅렬사(열사)들을 추모하여, 김정은'이라고 적힌 대형 화환을 선두로 먼저 베트남 전쟁영웅·열사 기념비를 참배했다.
    이어 다시 전용차에 올라탄 김 위원장은, 호찌민 묘소가 있는 쪽으로 이동한 뒤 묘소 앞까지 4분가량을 걸어갔다.
    통상 김 위원장이 외부 일정 시 동선을 최소화하는 데다 특히 사방이 뚫린 야외에서는 거의 걷는 모습이 포착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베트남 국부'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묘소 앞에 놓인 화환을 정돈하며 경의를 표한 뒤 다른 수행원들과 묵념했다. 화환에는 '호지명(호찌민의 북한식 표기) 주석을 추모하여, 김정은'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어 김 위원장 일행은 호찌민 전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대리석 건물 안으로 향했다.
    이 장면은 주요 기념일마다 간부들을 동행해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시신이 안치된 평양의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호찌민 주석의 묘소는 1945년 베트남이 독립을 선포한 하노이시 바딩 광장 중앙에 있으며, 대리석 건물 내부에 호찌민 주석의 시신이 유리관 속에 안치돼 있다.
    통상 각국 정상들이 베트남에 방문 시 이곳을 찾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해 3월 베트남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도 호찌민 묘소에 헌화한 바 있다.
    묘소에 약 30분간 머문 김 위원장은 전용차를 타고 오전 10시 10분께 동당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전용차 창문을 열고 행인들에게 손을 흔들어줬다고 VN익스프레스는 전했다.



    낮 12시30분께 동당역에 도착해 차에서 내린 김 위원장은 역 주변에 환송을 나온 현지 주민들에게도 연신 손을 흔들며 감사를 표했다. 표정은 오전과 달리 환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그는 보 반 트엉 공산당 선전 담당 정치국원, 마이 띠엔 중 총리실 장관 등 베트남 고위 관계자들과도 한참 동안 악수와 인사를 나눴다. 베트남측은 도착 때와 같이 동당역을 레드카펫과 양국 국기 등으로 꾸며 성대하게 환송했다.
    김 위원장도 전용열차 앞에서 또다시 뒤를 돌아보고 두 손을 맞잡아 올려 흔드는 등 작별인사를 했다. 4박5일간 자신을 환대해 준 베트남 측에 마지막까지 '성의'를 보이는 모습이었다.
    김 위원장과 북측 수행원들이 차례로 탑승한 뒤 전용열차는 낮 12시 38분께 동당역 플랫폼에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차는 12시 46분께부터 약 5분간 플랫폼에 멈춘 뒤 반대방향으로 나아가 현장의 취재진을 긴장시키기도 했는데, 잠시 후진했다가 맞는 방향으로 역을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전용열차가 후진한 것은 장비 등을 싣기 위한 목적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이날도 '트레이드 마크'격인 검은색 치마 정장과 구두 차림에 핸드백을 들고 생중계된 화면에 끊임없이 포착돼 '그림자 수행'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아울러 근접 취재가 허용된 북한과 베트남 매체들이 ENG카메라와 카메라를 들고 '열띤' 취재 경쟁을 벌이는 장면이 생중계 화면에 포착돼 눈길을 끌었다.

  3. gino's gino's 2019.03.03 16: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北김정은 "베트남과 경제·국방 등 전 분야 교류 정상화해야"(종합)
    北김정은 "베트남과 경제·국방 등 전 분야 교류 정상화해야"(종합)
    北매체, 북·베트남 정상회담 보도…만찬서도 양국 유대 거듭 강조



    (서울=연합뉴스) 홍국기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일 북·베트남 정상회담에서 당과 정부, 경제와 국방 등 전 분야에서 교류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일 보도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전날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당적, 정부적 내왕(왕래)을 활발히 벌리며 경제, 과학기술, 국방, 체육문화예술, 출판보도부문(언론) 등 모든 분야에서 협조와 교류를 정상화하고 새로운 높은 단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선대 수령들의 뜻을 받들어 피로써 맺어진 두 나라, 두 당 사이의 친선협조 관계를 대를 이어 계승해 나가는 것은 우리 당과 국가의 일관한 입장"이라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베트남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과 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보내준 지지와 지원에 대해서도 사의를 표했다.

    회담에는 북측에서 김영철·리수용 노동당 부위원장, 리용호 외무상,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배석했다.
    중앙통신은 회담에서 양국 간 정치·경제 형편들이 상호 통보되고, 공동 관심사에 대한 의견 교환이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쫑 주석이 하노이 국제회의장에서 마련한 환영 만찬 연회에서 "격변하는 세계정치 정세 하에서 조선·베트남 친선의 역사적 전통을 변함없이 이어나가며 새 시대의 요구에 맞게 두 나라 관계를 보다 높은 단계로 발전시켜 나갈 일념을 안고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이어 "두 나라 수령들의 숭고한 심혼이 어리어있고 조선·베트남 친선의 역사를 피로써 새긴 두 나라 열사들의 공동의 넋이 깃든 베트남을 찾는 것은 너무도 응당한 것이며 마땅한 도리"라며 양국 간 유대를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베트남에 대한 첫 방문과 총비서 동지와의 뜻깊은 상봉을 통하여 김일성 동지와 호지명(호찌민) 동지에 의하여 맺어지고 다져진 두 당, 두 나라 인민들 사이의 친선협조 관계의 생활력과 훌륭한 미래를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만찬 연회에는 북측에서 김영철·리수용·김평해·오수용 당 부위원장, 리용호 외무상, 노광철 인민무력상, 김여정 당 제1부부장,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이 참석했다.
    연회에서는 베트남의 다양한 예술공연이 펼쳐졌으며, 김 위원장은 쫑 주석과 함께 공연을 준비한 베트남 예술인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중앙통신은 소개했다.
    통신은 또 김 위원장이 베트남 주석궁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베트남 권력서열 2·3위인 응우옌 쑤언 푹 총리와 응우옌 티 낌 응언 국회의장을 각각 면담한 사실도 전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평상시의 6면보다 2개 면이 늘어난 8면으로 증면, 북·베트남 관련 소식을 5개면에 걸쳐 사진 52장과 함께 크게 보도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전날 쫑 베트남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베트남 공식 친선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베트남 방문과 베트남 정상과의 회담은 김일성 주석이 1964년 베트남을 방문한 이후 55년 만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4박 5일간의 베트남 방문을 마치고 2일 귀국길에 오를 예정이다.

  4. gino's gino's 2019.03.27 11: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신보 "베트남전 전사 북한군 유해 27구 평양에 안치"



    (서울=연합뉴스) 정성조 기자 = 베트남전쟁(1964∼1975년)에서 전사한 뒤 평양 묘역에 안치된 북한군 유해가 모두 27구라고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가 26일 보도했다.
    조선신보는 이날 '계승·발전되는 조선-베트남 친선관계'라는 제목의 인터넷판 기사에서 2013년 준공된 평양 '조국해방전쟁 참전열사묘'에 "27명의 베트남전쟁 참전 열사들이 안치되어 있다"고 밝혔다.
    북한군의 베트남전쟁 참전 사실은 2000년 3월 백남순 당시 외무상이 베트남 방문 기간에 하노이 인근 박장성에 조성된 북한군 전사자 위령탑과 묘지를 참배하면서 처음 확인됐다.
    북한 매체들은 앞서 2002년 9월 이곳에 있던 유해 14구를 평양으로 송환했다고 공개했는데, 이번 조선신보 보도로 지금까지 확인된 유해는 27구로 늘었다.
    북한은 1966∼1969년 조종사 90명을 포함해 공군 200∼400명을 북베트남에 파견했으며 공중전에서 미군기 26대를 격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베트남전에 공군 조종사와 군수물자를 지원했다는 사실을 지난 2001년 매체를 통해 밝혔지만, 구체적인 파병 규모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베트남은 2002년 전사자 14명의 유해를 북한으로 송환한 뒤 기념관을 세워 이들을 기리고 있다. 이달 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방문 동안 이곳을 찾을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온 편지




지난 1월30일 베트남 하노이의 한 기념품점에 베트남 국기인 일성홍기 티셔츠와 함께 마르크스와 레닌의 초상화가 담긴 원형 사진이 걸려 있다. 2월들어 하노이가 북·미 정상횓마 장소로 발표된 뒤 북한 인공기와 미국 성조기가 기념품점마다 새로 들어섰다.

“베트남을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정한 것은 북한이 이미 하나의 승리를 거뒀음을 의미한다.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에 우호적인 땅에서 회담을 여는데 동의를 받아냈기 때문이다. 미국이 희망했던 다낭이 아닌 하노이를 선택한 것 역시 북한에게는 또다른 승리다. 물론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한다면 베트남은 개발모델이라는 점에서 미국에도 나쁜 선택이 아니다. 지역과 국제무대에서 위상을 높이는 기회가 절실한 베트남에도 좋은 선택이다. 결코 중단되지 않을 중국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꼭 필요한 국제적, 외교적 지위의 상승이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온 편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날 앞서거니, 뒤서거니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도착함으로써 2차 북·미 정상회담이 27일 공식 일정에 돌입했다. 각국 언론은 회담을 하루 앞두고 주로 핵문제와 관련한 합의내용을 미리 짚고 있다. 반면에 베트남 언론은 차분하게 관망하고 있다. 북한이나 중국과 마찬가지로 당이 지배하는 당·국가 체제인 만큼 당의 노선에서 벗어나는 보도를 할 수없는 한계일 수도 있다. 베트남 유력 매체의 중견 저널리스트가 회담 개최장소로 하노이가 공표된 이후 그의 의견을 묻자 보내온 답신이다. 국제통으로 한반도 사안을 꼼꼼하게 점검해온 그의 편지를 통해 북·미 회담을 보는 베트남 사람들의 시각을 소개한다.

두번째 북·미 회담을 앞두고 지난 2월25일 베트남 하노이 거리에 내걸린 인공기와 성조기 플래카드 밑으로 전통 모자를 쓴 행인이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두번째 북·미 회담을 앞두고 지난 2월25일 베트남 하노이 거리에 내걸린 인공기와 성조기 플래카드 밑으로 전통 모자를 쓴 행인이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런데 왜 베트남의 외교적 지위를 높이는 데 뜬금없이 중국이 등장할까. 그는 “최근 몇년간 다낭이 중국의 베트남 동해(남중국해) 야심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과 베트남의 동반자관계에서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에 북한이 피했다고 본다. 북한이 미국과의 정상회담 전부터 미리 확보한 선택의 우위다.”고 말했다. 다낭은 지난해 3월 미국 항공모함 칼 빈슨호가 베트남전 이후 처음으로 기항한 곳이다. 내놓고 중국과 맞서는 베트남과 아직 비핵화 및 북·미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중국이라는 ‘후방기지’가 필요한 북한의 입장이 갈리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가는 교통편으로 중국이 제공한 여객기를 사용한 데 이어 이번엔 중국 대륙을 종단해 하노이로 달려왔다.

#북한이 회담전에 이미 거둔 외교적 승리

북한이 북·미정상회담을 시작하기 전부터 거둔 외교적 성공 역시 간과할 수없다. 김 위원장은 28일 북·미 정상회담 뒤 응우옌 푸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및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정상외교의 무대가 사실상 한반도와 중국, 러시아에 제한됐던 북한이 김일성 주석 당시처럼 유라시아대륙 및 유럽과 북아프리카, 동남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중동 광폭외교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트남 동료는 북한이 베트남의 향방을 바꾼 1986년 도이머이(쇄신) 식 개혁·개방을 도입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었다.

“솔직히 김정은이 무엇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북한의 경제발전을 원한다는 것은 분명한 데 어떻게 할 것인지가 빠져 있다. 베트남은 분명 북한이 개방할 경우 완벽한 본보기가 될 수있다. 하지만 김정은 통제력을 잃고싶지 않아 보인다. 베트남과 북한은 다르다. 우리는 수십년전 도이모이를 시작하면서 세계를 향해 새로운 국가로 나섰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바꾸기가 쉬웠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선 무언가 건설하기 쉽지만, 이미 경직된 룰로 세팅이 된 국가에서는 쉽지 않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 거리에서 한 중학교 학생들이 2월27일 미국과 베트남, 북한 국기를 흔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베트남 수도 하노이 거리에서 한 중학교 학생들이 2월27일 미국과 베트남, 북한 국기를 흔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북한 판 도이머이(쇄신)에 회의적인 연유

베트남은 북한 처럼 1당(공산당) 독재 국가이되 ‘최고 존엄’ 1인이 전권을 갖는 체제는 아니다. 지도부내 집단 지도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가 말한 ‘경직된 룰’의 행간에는 이런 의미가 담겼으리라. 실제로 도이머이는 시장경제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 만이 아니었다. 경제와 사회, 정치는 동시는 아니더라도 서로 얽히면서 함께 움직인다. 경제 민주화는 필연적으로 정치의 민주화로 이어진다. 북한이 망설이거나 최대한 안전장치를 하고 시작할 것임을 짐작케한다. 이와관련 팜반득 베트남 사회과학원 부원장은 26일자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해 우선 북한에 맞는 경제발전과 인민을 위한 체제를 만들면서 민주화를 하는 것, 인민의 안전과 공평을 함께 해결하는 것, 마지막으로 제재를 하나씩 풀어가면서 외국과 관계정상화로 가는 것을 당부했다. 편지를 보내온 베트남의 동료는 그러면서도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 자체가 주는 의미에 무게를 두었다.

“베트남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아주 중요한, 첫번째 씨앗을 뿌리는 장소가 될 수있다. 더 많은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전쟁이 끝나야 한다. 북한이 국제사회에 가입한다면 베트남은 매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상상하기 어렵다.” 베트남 전문가나 언론의 공개적인 입장과 다소 다른 부분이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정전체제 또는 핵문제)’을 끝낼 것과 국제사회에 복귀할 것을 베트남과 진정한 친선관계의 전제로 달았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 시내에 있는 국부 호찌민의 영묘. 늘 방문객이 줄을 잇는다.   베트남 외교부 사이트

베트남 수도 하노이 시내에 있는 국부 호찌민의 영묘. 늘 방문객이 줄을 잇는다. 베트남 외교부 사이트

#남북한과 미국이 함께? ‘다가올 운명’

남북한과 베트남이 맺어온 모순의 관계에 대한 소회도 잊지 않았다. ‘다가올 운명’으로 읽었다. “베트남은 우연히 과거 두 개의 코리아 및 미국과 관계를 맺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북한은 베트남을 여러번 도왔다. 남한은 미국을 도와 군대를 보냈다. 가까운 미래에 베트남, 남북한, 미국 모두가 포함된 무언가 일어나는 것은 운명일지도 모른다.”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과 결단의 일단은 회담 종료뒤 28일 발표될 공동성명에 담길 것이다. 물론 지난해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그랬듯이, 하노이 공동성명 역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시나브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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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공식 방문한 팜빈민 베트남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왼쪽 첫번째) 일행이 지난 13일 평양 만수대 의사당 회의실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 일행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이번 방문은 지난해 12월 리 외무상의 베트남 방문 답방형식이었지만, 오는 27~28일 하노이에서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 준비와 관련한 의논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평양/AP연합뉴스


“베트남 전쟁 당시 나는 어린아이였다. 우리 모두는 매일 밤 TV에서 월터 크롱카이트가 이곳에서 벌어진 뉴스를 전했던 걸 기억한다. 우리 동네에서도 많은 가정의 아들과 아버지가 베트남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미국과 베트남 역사에서 어려운 시기였다. 그런 내가 미국 국무장관으로 하노이를 찾게 될 것이라고는 당시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북한과 베트남, 그리고 미국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해 7월8일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메트로폴 호텔에서 한 연설의 한 단락이다. 그는 국무장관으로 베트남을 처음 방문한 소회를 전하면서 1995년 수교 이후 미국과 베트남이 경제적, 외교적, 군사적으로 긴밀한 관계가 됐음을 수치를 들어가며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과 베트남 관계는 연설의 도입부에 불과했다. 전반을 흐르는 주제는 북한이었다.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여운이 남아서였을까. 아니면 하노이 방문 전날까지(6~7일) 평양을 찾아 고위급회담을 하고 온 길이어서일까. 어쨌든 한 나라의 외교수장이 방문국 수도 한복판에서 방문국 상공인, 외교관들을 앉혀놓고 제3국(북한)을 오디언스로 격정 연설을 한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었다. 폼페이오가 전한 메시지는 한마디로 ‘베트남을 보라!’였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장소가 베트남으로 발표된 뒤 새삼 꺼내본 연설문이다.

폼페이오는 미국·베트남 관계의 눈부신 발전을 언급한 뒤 “언젠가 북한과도 같은 관계를 맺기를 희망한다”고 말한 뒤 곧이어 북한 이야기를 꺼냈다. “미국이 한때 상상조차 못했던 번영과 동반자 관계를 베트남과 갖고 있는 점에 비추어 김 위원장에게 전달할 메시지가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당신의 나라도 이러한 길을 밟을 수 있다고 믿는다. 기적은 당신과 북한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열변을 토했다. “미국은 북한으로부터 무엇을 추구하는지 분명히 해왔다. 이제 선택은 북한과 북한 주민들에게 놓여 있다. 그들이 이 선택을 할 수만 있다면 북한 주민들은 김 위원장을 영웅으로 기억할 것이다”라는 말까지 내놓았다. 

연설 전날 북한이 평양 방문을 마치고 떠난 그의 뒤통수에 대고 “미국 측이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 들고나왔다”(외무성 대변인 담화)고 힐난을 퍼부은 뒤에 한 연설이었기에 더욱 주목을 받았다. 


레티투항 베트남 외교부 대변인이 지난 2월11일 2차 북미회담이 하노이에서 열리게된 것과 관련, “베트남은 2차 미·북 정상회담을 환영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대화를 강력하게 지지한다. 베트남은 (미·북) 양측과 협력해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적극 기여할 준비가 돼 있다”는 트위터 메시지를 내놓았다.


돌이켜보면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베트남을 강조해온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물론 북한 입장에서도 베트남의 ‘장소성’이 주는 함의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평양~하노이 거리가 2400㎞인 만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용기 참매1호의 운항에 문제가 없다는 기술적 이점은 후순위다. 미국과 전쟁을 치러 승리를 거둔 국가라는 상징은 매력적일 것이다. 여기에 김일성 주석이 1958년과 1964년 두 차례 방문했던 하노이를 김 위원장이 찾는 것은 올해 태양절(4월15일)을 앞두고 북한 국내에 강한 인상을 남길 수도 있다.


■“베트남을 보라!”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5일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하노이를 발표한 뒤 베트남 정부는 차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11일 레티투항 외교부 대변인이 트위터 메시지를 통해 “베트남은 2차 미·북 정상회담을 환영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대화를 강력하게 지지한다. 베트남은 (미·북) 양측과 협력해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적극 기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을 뿐이다. 하노이 정상회담의 의미를 적극 홍보하는 것은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다. 로버트 팔라디노 국무부 부대변인은 “베트남은 미국의 가까운 친구이자 동반자가 됐다. 또 평화와 번영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회담 장소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트위터 메시지로 “북한은 김정은의 지도 아래 경제강국이 될 것이다. 또 다른 종류의 로켓, 경제적 로켓이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폼페이오는 김 위원장이 추구하는 경제강국의 모델로 베트남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베트남의 예를 들어 미래 안보의 동반자 역할을 시사했다. 베트남은 과연 미국의 희망대로 ‘북한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하노이 북·미 대좌를 앞두고 관심이 머무르는 지점이다.

베트남전 참전국으로 관계를 시작, 1992년 수교 이후 경제협력을 강화해온 한국민에게도 여느 동남아 국가와 다른 정서를 자아낸다. 과거의 기억만 소환하는 게 아니다. 미국과 베트남, 미국과 한반도, 중국이 과거와 현재로 얽혀 온갖 상상력이 몽실몽실 피어나게 한다.


북한을 공식 방문한 팜빈민 베트남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왼쪽)이 지난 13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악수를 하고 있다.  평양/ AP연합뉴스


■방 안의 또 다른 코끼리, 중국

과거 베트남이 그랬듯이 북한도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절실히 원하고 있다.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 제1항에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 수립을 배치한 이유일 게다. 한반도에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함께하기로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에 필연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의도가 포함된다. 베트남전의 상흔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미국이 하노이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중국이 있었다.

빌 클린턴 행정부가 베트남 경제봉쇄 해제에 이어 국교정상화를 결정할 당시의 중국은 아직 개혁·개방의 과실을 본격적으로 수확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미국에 경제적, 군사적 위협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미국은 미래의 우환에 미리 포석을 놓는다는 관점에서 베트남을 바라보았다. 중국의 성장을 내다보고 세력균형 방책으로 ‘베트남 카드’를 선택한 것이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당시 발언에 잘 드러나 있다. 매케인 의원은 “베트남을 경제적으로 활성화시켜 북쪽의 거인인 중국에 맞서게 하는 게 우리의 이익”이라고 말했다(이코노미스트 인터뷰). 베트남전 당시 하노이에서 포로생활을 했던 그가 베트남 수교를 지지한 것은 과거의 적이 아닌 떠오르는 적을 겨냥했기 때문이다.


지난 1월23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한 기념품점에 베트남 국기 문양의 티셔츠와 마르크스와 레닌의 초상이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수교 당시 미국의 전략적 관측은 적중했다. 베트남은 미국에 경제적, 군사적 횡재가 됐다. 수교 당시 4억5100만달러에 불과했던 교역액은 520억달러(2016년)로 늘었다. 2014~2016년 3년 동안 미국의 대베트남 수출이 77% 늘었다. 매년 2만여명의 베트남 학생들이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 최근 몇년 새 급진적으로 발전하는 분야는 외교 및 군사협력이다. 중국이 휘저어놓은 남중국해(베트남 동해) 영유권 분쟁이 기름을 부었다. 미국은 2013년 베트남과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2년 뒤 공동의 비전성명(JVS)을 채택했다. 2016년 5월 미국이 대베트남 무기 금수를 전면 해제했다. 미국은 베트남 동해의 안보를 지원하기 위해 해밀턴급 해군 함정을 제공했다. 트럼프가 2017년 11월 국빈 방문한 뒤 군사협력은 더 긴밀해졌다. 지난해 3월 칼 빈슨호가 미국 항공모함으론 베트남전 이후 처음으로 베트남(다낭)에 기항했다. 베트남 해군이 해상종합기동훈련인 환태평양훈련(림팩)에 처음 참가토록 하기도 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71년 북한에 유학생으로 갔던 팜녹칸씨(69)가 지난 12일 하노이의 자택 거실에서 북한 출신 아내 리영희씨(70)와 함께 젊은 시절 찍은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두 사람은 1년 6개월의 짧은 사랑 뒤에 헤어졌지만, 애틋한 사연에 감동한 베트남과 북한 당국의 도움으로 2002년 결혼식을 올릴 수있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베트남 방문을 앞두고 양국관계가 새삼 조명되면서 두 사람의 인연에 언론의 관심이 다시 쏠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베트남엔 잠재적 적국, 북한엔 ‘한 참모부’

베트남과 북한은 모두 중국의 접경국가다. 북한은 1420㎞의 국경을, 베트남은 1281㎞의 국경을 접하고 다. 베트남은 캄보디아 침공 이듬해인 1979년 중국과 한 차례 국경전쟁도 치렀다. 한반도 거주민이나 베트남인들이나 중국에 대한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멀리는 한나라 때부터 침탈을 당해온 기억을 공유한다. 북한과 베트남은 냉전 시절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한 경험도 공유한다. 하지만 중국은 그때나 지금이나 북한과 베트남의 선택이 갈라지는 분기점이다. 베트남이 1975년 종전과 캄보디아 침공 이후 중국과 담을 쌓았다면, 북한은 되레 중국 역성을 들어 캄보디아 시아누크 국왕의 북한 체류를 주선하기도 했다.

중국과 소원해진 베트남이 꼬박 20년 동안 추구해온 것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였다. 북한 역시 1990년대 이후 미국과의 수교를 추구했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중국이다. 대중 경제의존도가 90%를 웃도는 현실을 비켜갈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북·미 대좌의 역사적인 전환 시기에 중국을 여차하면 미국을 대체할 경제적, 안보적 ‘보험’으로 여기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세 차례의 중국 방문을 통해 북·중이 ‘한 참모부’임을 선언하고,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기로 다짐했다. 지난달 베이징을 다시 찾은 것 역시 ‘중국 카드’를 십분 활용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김일성 주석 생일인 태양절에 즈음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을 유도, 미국이 외길이 아님을 내외에 천명하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이 많다.


베트남 하노이의 한 상점에 미국과 남북한, 베트남 국기가 놓여 있다. 지난 1월29일 촬영한 것이다.  AP연합뉴스


북한이 가까운 시일에 중국을 무시하고 미국으로 향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물론 미국과 전면 관계정상화가 되고 안보적 우려가 없어진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북한 역시 베트남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중국과 경제협력은 유지하면서도 안보적으론 경계하는 많은 아시아 국가들은 미·중 사이에서 두줄타기 외교를 하고 있다. 북한이 여느 아시아 국가처럼 미·중이라는 두 마리 코끼리와 공존하는 방식에 익숙해지는 것은 정상국가화의 또 다른 지표일 것이다.

■종전선언의 최적지

베트남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장소성을 생각하면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다. 굳이 문재인 대통령이 가지 않더라도 북·미 간 ‘작은 종전선언’도 무방할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베트남을 회담 장소로 선택한 것은 기묘한 한 수였다. 북·미 회담의 결과와 무관하게 승리가 확보된 주체는 베트남이다. 싱가포르의 ‘컨벤션 효과’에 더해 2017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에 이어 동아시아 외교의 중심 무대로 각광을 받게 됐다. AFP통신이 전한 베트남인들의 환영 코멘트 중에서 관광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의 말이 눈에 띈다. “김정은 위원장은 한 나라의 두 부분이 통일된 뒤 어떤 모습일지 보게 될 것이다.”


발렌타인데이였던 지난 2월14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하 파고다에서 한 젊은 여성이 기원을 하고 있다. 아직 연인이 없는 싱글 남녀들이 한적한 사원을 찾아 사랑의 행운을 빈다고 한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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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중국 방문길에 나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식 환영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인민해방군의 사열을 받고 있다. 북한과 중국은 '하나의 참모부'임을 선포하고 전략전술의 협동을 강조하고 있다. 베이징|AP연합뉴스


 신년 벽두에 단행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은 올 한해 한반도 문제의 전개에 무거운 시사점을 던진다. 조짐이 그리 좋지 않다. 지난해 한반도 평화의 과제를 남북·미 정상이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끌어왔다면, 올해는 중국이 포함된 다자구도가 전개될 수 있음을 예고한다.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할 문제가 미·중 간 ‘강대국 정치’에 포획됨으로써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의 적극적인 중재외교로 틀을 갖춘 북한-(한국)-미국의 3각 구도 대신, 미국-북한-중국의 3자 구도가 전면에 등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를 용납할지는 미지수이지만 북·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적극적 요소(要素·8일 중국 외교부 루캉 대변인)’가 확인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북·중 양국이 지난 10일 발표한 장문의 정상회담 결과문을 뜯어보기 전에 김 위원장이 지난 7일 베이징행 전용열차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의미는 적지 않다. 미·중이 무역전쟁을 타결짓기 위한 막바지 협상이 베이징에서 진행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미·중 사이에 뛰어든 것은 의도적으로 ‘새로운 길’을 열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지난해 4월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핵무력과 경제발전의 병진정책을 접고, 경제발전에 매진키로 방향을 설정한 북한에 중국은 과연 무엇일까. 또 미국과의 갈등이 진행되고 있는 중국에 북한은 과연 무엇일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일 집무실에 앉아 올해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김 위원장이 모종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징후는 지난 1일 신년연설에서 포착됐다. 늘 그렇듯이 북한 지도자의 신년사가 발표되면 국내외 전문가들은 총천연색의 해석을 내놓는다. 하지만 많은 경우 ‘○○하면 ○○할 것’이라는 식의 추측에 머문다. 이번 신년사에서는 특히 김 위원장이 “미국이…제재와 압박에로 나간다면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이 부득불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리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 대목이 주목을 받았다. 그 ‘새로운 길’이 바로 북·중 외교 강화라는 점을 지적한 사람은 루디거 프랭크 빈 대학 교수였다. 프랭크 교수는 지난 2일 북한 전문매체 38노스 기고문을 통해 ‘새로운 길’은 트럼프를 상대로 “당신은 북한의 안보와 경제 발전의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다. 협력을 거부하면 우리는 당신을 무시하고 중국을 바라볼 것이다. 한국도 함께 데려갈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준 것으로 읽었다. 북한이 미·중 무역전쟁에서 ‘냉전 2.0’의 상황을 발견하고 1950년대 이후 김일성 주석이 중·소 간에 펼쳤던 균형외교를 시작할 것임을 시사했다는 해석이었다. 김 위원장이 미·중의 갈등 또는 경쟁공간에 뛰어들어 활로를 모색할 것이라는 프랭크의 분석은 북·중 정상회담의 성사로 일단 들어맞았다. 미·중이 북한의 의도에 따라오지 않더라도 핵 위협을 통해 미·중의 주의를 끌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때론 한·미가 아닌, 한발 떨어진 시선이 긴요하다. 김 위원장의 방중 이전을 남달리 보았으면, 방중 이후도 남달리 보고 있을 터. 오스트리아에 있는 프랭크를 지난 10일 호출했다.

 -‘새로운 길’을 짚어냈다. 김 위원장이 왜 베이징으로 달려갔다고 보는가.

 “일단 북한이 지난해 중국에 보여주었던 우호의 상징을 잇기 위한 면이 있다. 김정은은 지난해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처음 방중했다. (싱가포르까지) 중국 여객기를 사용했다. 늘 자존심을 내세워온 북한으로선 극히 이례적으로 오성홍기가 찍힌 중국 비행기를 사용했다고 내외에 공개했다. 중국이 주목할 수밖에 없는 강력한 메시지들이었다. 김정은의 방중은 이러한 상징 라인을 잇는 것이다. 동시에 (한반도 문제의) 다른 행위자들에 대한 압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고 본다.”

 -어떤 압력인가.

 “김정은은 문 대통령이 국내의 강한 압력에 처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중국을 방문함으로써 한국으로부터 주도권을 다시 가져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리아’를 자신이 역사에 기록되는 도구로만 여긴 것 같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 해결자의) 각광을 훔쳐갈 것이라는 강박감에 쫓겨 행동에 나설지도 모른다. 결과는 같다. 주도권의 상실이다.”



 -북한이 ‘중국 카드’를 쓴다면 중국은 ‘북한 카드’를 쓰고 있다. 중국의 의도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리는 지금 지정학적인 분기점에 있다고 본다. (탈냉전 이후) 거의 30년 동안 미국의 분명한 의지에 반해서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경제제재의 벌을 받거나 도덕적 공격이나 군사적 침공을 받았다. 중국은 미국 헤게모니의 대안임을 내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그러한 잠재력을 사용하려는 게 분명하다. 기술의 원천일 뿐 아니라 수출 시장, 수입의 주요 원천, 군사적 안보의 제공자, 더 나아가 소프트파워와 정치적·도덕적 정당성 제공자로서의 잠재력을 말한다. 중국에 북한은 이런 점에서 시험적인 케이스가 될 수 있다. 전 세계를 상대로 내보내는 신호다. 성공한다면 많은 나라들의 전략적 고려에서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이다. 그리 많은 것이 걸려 있기에 중국은 북한에 많은 것을 제공하려 할 것이다. 중국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중이 10일 각각 정상회담 결과 발표를 할 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 흔한 트위터 메시지조차 날리지 않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프랭크의 분석은 예상 범위를 넘지 않으면서도 북한의 ‘후방 기지’로서 중국을 크게 봤다.


지난해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 서명 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걸으며 오른 손을 트럼프 대통령의 등에 올리고 있다. 싱가포르/AP연합뉴스


 그는 “(북·미 정상회담의 전망은) 순전히 추측의 영역이다. 다만 미국은 사찰 또는 북한의 미사일과 핵탄두 한 두개를 공개적으로 해체함으로써 돌파구를 열기를 바랄 것이다. 북한은 제재의 부분적인 해제를 요구할 것이다. 비핵화 합의에 서명하는 것 역시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은 자신의 전략적 자산(핵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갈 수 있는 데까지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악의 경우 북한의 목표는 북·미 정상회담이 극적으로 실패토록 함으로써 그 책임을 미국에 돌리고 평화와 안보, 안정의 보장자로 중국을 바라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 방중이 프랭크의 분석대로 미·중 헤게모니 다툼의 전환점이 될지는 미지수다.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의 ‘희망사항’일 수도 있다. 북·중 정상회담을 세계사적 사건으로까지 해석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말이다. 현단계에선 ‘제3의 시각’으로 읽을 따름이다. 

 북·중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정상회담 결과문을 보면 한반도 문제에 관한 양측의 기본 입장은 크게 다르지 않다. 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의 목표를 거듭 확인하고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의 성실한 이행을 촉구했다. 시 주석은 비핵화의 명분에 공감하면서 “조선 측의 합리적인 관심사항이 마땅히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합리적인 관심사항’은 핵무기를 내려놓고 난 뒤 또는 그 과정에서의 체제보장을 말한다. 북·미 싱가포르 성명은 새로운 북·미관계의 수립(1항)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 노력(2항) 및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노력(3항)을 순차적으로 배치했다. 미국은 그러나 이후 3항에 몰입하면서 1, 2항의 체제보장 부분은 밀쳐두었다.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지난해 12월31일 열린 송년 행사장에 수만명의 주민들이 운집해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배포한 사진이다. AP연합뉴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 연구위원 역시 북·중 정상회담의 목적을 두고 비핵화 문제만을 떼어놓고 다그치는 미국을 상대로 한 경고라는 점에서는 프랭크의 의견에 동의한다. 조 위원은 지난 9일 “지난해 5월 6~7일 다롄에서 열렸던 2차 북·중 정상회담 당시 북·중이 합의한 바,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하고도 미국이 체제보장을 하지 않을 경우 중국이 보험이 돼 줄 수 있다는 약속의 확인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다롄 회담 직후 트럼프와의 통화에서도 북한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를 해소해줘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조 위원은 하지만 “이번 회담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집중 논의했다기보다 북·중 간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 제반 협력을 종합적으로 확인하는 성격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북·중은 발표문에서 양국 간 교류협력을 강조했다. 

 문제는 중국이 들고나온 6자회담의 부활이다. 루캉 외교부 대변인은 6자회담을 두고 “지금까지 한반도 문제 해결 프로세스를 추동하고 가장 적극적인 성과를 얻어낸 프로세스”라면서 “중국이 이 과정에서 하나의 요소라면 시종일관 적극적인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는 꼭 프랭크의 분석이 아니더라도 한국이 설득과 중재를 맡았던 북-(남)-미 틀의 해체 또는 심각한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종전선언은 평화체제로 가는 첫걸음이다. 종전선언에는 중국을 배제하고 북-(남)-미 간에 기본 골격을 만든 뒤 평화협정의 최종단계에서 중국을 포함시키려는 게 미국의 복안(조성렬 연구위원)이었다. 그렇다면 한반도 논의의 다자구도화는 문제를 복잡하게 할 뿐이다. 중국의 숨은 의도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상화가 걸린 청와대 사랑채에서 지난 3일 한 관람객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중재자' 역할을 상징하듯 문재인 대통령의 초상화가 북-미 사이에 있다. AP연합뉴스


 한반도 사안의 핵심은 비핵화와 평화체제다. 이 중 비핵화가 움직일 때 북·미 대화가 원만해진다. 평화체제가 주의제로 오르면 북·중이 ‘한 참모부’를 구성한다. 북한의 선택에 따라 미국과 중국을 각각 대화 파트너로 삼을 수 있는 구조다. 북한이 중국을 만나 공동의 전략·전술 협동을 도모한다면 필연적으로 종전선언과 평화체제는 물론 유엔사 및 주한미군의 지위를 다룰 수밖에 없다. 북·중·미의 동상이몽 때문이다. 미국은 비핵화를 우선하지만 북한은 체제보장(평화체제)을 앞세운다. 중국은 ‘한반도 내 미국’의 존재라는 잿밥에 주목한다. “한·미 군사동맹은 냉전의 산물”이라는 게 중국의 공식입장이다. 이러한 중국의 의도가 짙게 투영된 다자회담은 비핵화 진전-대북 제재 부분 해제로 내달리려는 한국의 복안과도 충돌할 수밖에 없다. 북·미는 지난해 10월 초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이후 대화의 끈을 놓고 있다. 주로 북한이 미국 측의 의사타진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물밑 접촉을 시작했지만(조윤제 주미대사), 본격적인 북·미 정상회담 논의까지는 가지 않고 있다. 트럼프는 러시아 스캔들과 멕시코 국경 장벽에 발목이 잡혀 있다. 

 국제전문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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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일 백악관 앞에서 우산을 쓴 채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플로리다주의 허리케인 피해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나선 길이라 점퍼 차림이다. 워싱턴 | 로이터연합뉴스


“북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흠. 지금까지 엄청난 성취를 이뤘다. (지금까지만?) 모든 것이 끝나기 전까지는 언제나 지금까지다. 거래는 거래다. OK? 부동산 거래든, 소매물품 거래든 마찬가지다. 내가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까지 미국은 북한과 전쟁을 하려 했다. 취임 초기 몇달 동안에도 우리는 북한과 전쟁으로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우리도 전쟁을 원치 않는다. 더 이상 미사일 발사도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일 CBS방송의 시사프로그램 <60분>에서 말한 내용이다. 대담자는 원로 저널리스트 레슬리 스탈(76).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은 지금까지 단 한 개의 핵무기도 제거하지 않았다. 계속 미사일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스탈의 질문에 “그들은 (핵 및 미사일) 시험장들을 닫고 있다”고 반박했다. “신뢰하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말이 맞다면서도 “그럼에도 나는 그(김정은)를 신뢰한다”고 단언했다. 여기서 물러설 스탈이 아니다. 1972년 리처드 닉슨 이후 역대 대통령을 ‘링’ 위에 올려놓았던 그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 트럼프가 지난달 말 중간선거 유세장에서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한 것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의 이력을 읽어주고 싶다. OK? 압제와 강제수용소, 굶주림의 잔인한 왕국을 통치하고 있다. 이복형을 암살시켰다는 보도도 있다. 노예노동과 공개처형…. 이런 친구를 사랑한다고 했는가.”

“다 알고 있다. 나는 아기가 아니란 말이다. (그래도 사랑한다고 했지 않나?) 비유적 표현이었다. 그와 사이좋게 지낸다. (포옹인가?) 그렇다고 치자. 일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뭐라 불러도 좋다. 더 이상 끔찍한 위협도, 전쟁도 없지 않나.” 최근 되풀이해온 북·미협상에 대한 낙관의 연장선상이었다. 여유마저 보이고 있다. 지난달 26일 뉴욕 회견에서 “시간 게임을 하지 않겠다. 북핵 협상의 타결 시점이 2년 뒤건, 3년 뒤건, 아니면 5개월 뒤건 중요치 않다”고 말했다.

미국 중간선거는 외교 관심 밖
북핵 문제 해결 일단 거리두기
2차 북·미 정상회담 물밑 협상
내달 중간선거 이후 날짜 확정

북 “경제발전 2020년까지 성과”
미 “2020년 말까지 비핵화 성과”
비핵화·제제 완화 상응조치로
종전선언 등 요구 항목별 조율

불가역적 비핵화까지 제재 유지
트럼프 지연작전 이어갈 가능성
중국·러시아는 대오 이탈 조짐
미국 상응조치가 협상 진전 열쇠

트럼프는 그러나 다른 한편 대북 강경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달 29일 리용호 외무상의 유엔총회 연설을 기점으로 북한이 본격 요구하고 있는 제재 완화 문제다.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이전에는 제재의 고삐를 계속 조일 것을 공언하고 있다. 스탈과의 인터뷰에서도 제재 완화 가능성을 단호하게 차단했다. “(다만) 북한과 만나고 있다”고 말했을 뿐이다. 한국 정부가 대북 제재 완화의 필요성을 언급하기 시작하면서 미국 국무부는 거의 일상적으로 제재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10일 아예 “그들(한국)은 우리의 ‘승인’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우리의 자존심을 긁었다. 얼핏 말과 행동이 달라 보이는 트럼프의 이중적인 입장을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국내정치적으로 트럼프는 11월6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연일 유세장을 뛰어다니며 공화당 상·하원 의원의 선거운동을 거들고 있다. 물론 미국 중간선거에서 외교안보 문제가 현안으로 부각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분야별 정책집을 내놓는 대선에서는 그나마 외교문제가 거론되지만, 결정적 요인은 아니다. 유권자들이 웬만해서는 대외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미국 민주주의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다. 중간선거가 트럼프의 대북정책을 바꿀 분기점이 된다기보다는 물리적으로 바쁘게 할 뿐이라는 게 사실에 가까운 진단일 게다.


더구나 지난 6일 브렛 캐버너 미국 연방대법관이 취임하기 전까지는 그의 상원 인준청문회로 경황이 없었다. 한숨 돌리려 하자 이번에는 터키에서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의 토막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자칫 이란을 죽이고, 사우디를 살려온 중동정책의 지각을 바꿀 대형사고다. 트럼프가 지난 16일 AP통신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과의 북·미 정상회담에 관한 질문을 받고 “회담을 하긴 하겠지만 중간선거 이후가 될 것이다. (그때까지) 내가 이곳(미국)에 있고 싶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이유일 게다. 미국에 다른 협상가는 많지만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돼온 북핵 문제는 트럼프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웨스트 버지니아주 윌링의 한 체육관에서 열린 중간선거 유세장에서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워싱턴/EPA연합뉴스


북한의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를 볼 때까지 제재를 유지해야 하는 현실적 필요도 있다. 비핵화는 북한으로 하여금 다른 어떤 대안이 없다는 절박감을 주지 않는 한 쉽게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과 러시아의 대오 이탈 조짐이 완연해지고 있다. 유엔 안보리는 대북 제재를 둘러싼 미국과 중·러 간의 총성 없는 전쟁터가 된 지 오래다. 폼페이오 장관이 ‘실질적 진전’을 이뤘다고 자평한 4차 방북을 마치고 워싱턴에 돌아간 지난 9일, 사의가 발표된 니키 헤일리 유엔대사가 치르고 있는 마지막 전투가 대북 제재 문제이기도 하다.

월스트리트저널과 포린폴리시 등 미국 언론에 의해 일부 내용이 공개된 유엔 대북 제재 전문가 패널의 8월3일자 보고서에는 제재에 구멍이 뚫리고 있다는 구체적인 정황이 담겨 있다. 지난 1월부터 5월 말까지 북한의 남포·나진·원산항에서 하역작업을 한 유조선 89척의 저유량은 이미 140만배럴로 안보리 제재 2397호에 따른 한도(연 50만배럴)를 넘는다. 여기에 39개 러시아 기업과 200여개의 중국 기업들이 북한과 합작 형태로 사업을 벌이고 있다. 물론 중·러는 보고서의 수치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의 힘겨루기 속에 보고서 자체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중·러는 한편 지난 9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 모스크바에서 3국 외교차관회의를 열어 특히 각국의 독자적 대북 제재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취임 초 가장 시급한 현안이었던 북핵 문제에서 여유가 생기면서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지난 17일 “미국 입장에서 중국 및 중국과의 무역 이슈는 세력 균형의 문제인 반면 북핵 문제는 관리 대상”이라면서 “북한이 추가 도발만 하지 않으면 트럼프로선 시간적 여유를 갖고 중국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게 된다”고 짚었다. 미국이 제재에 연연하는 것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막는 한편 북핵 문제 해결을 유예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중간선거 뒤에도 계속될 노선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는 협상의 한 축인 북한이 미국의 지연작전에 말려든다는 것을 전제로 한 전망이다. 북한은 지난 4월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사회주의 경제건설’로 전략적 노선을 변경했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통해 2020년까지 성과를 내겠다고 다짐한 뒤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6·12 싱가포르 북·미 대좌에 나왔다. 제재 완화와 같은 인센티브 없이 비핵화 협상장에 계속 앉아 있을 이유가 있을까.

북한의 인내심이 고갈된다면 그다음에 벌어질 상황은 예측이 어렵지 않다. ‘사랑’에 배신당한 북한이 또다시 핵·탄도미사일 시험에 나설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역시 대내외적 어려움에 처할 게 불보듯 뻔하다. 국내에선 그리 요란하게 자화자찬했던 북한과의 성공신화가 깨지면서 비판을 받을 것이고, 국제적으론 관계가 껄끄러워진 중·러를 설득해 안보리 제재를 논의해야 하는 궁지에 몰리게 된다. 트럼프는 6·12 싱가포르 대좌 직후 기자회견에서 북한 비핵화의 목표를 밝혀놓았다. “20% 정도 진전되면 불가역적인 비핵화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힌 그가 연말까지라도 북핵 해결을 미룰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무리다. 폼페이오는 ‘2년 반 뒤(2020년 말)’ 비핵화의 주요 성과를 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비핵화의 1차 목표를 북한 핵탄두의 60% 정도 제거로 잡은 서훈 국정원장의 예상을 합해보면 한·미 간 목표 설정 작업은 이미 끝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제재 완화 문제의 문턱을 넘지 못해 북·미협상이 좌초될 것 같지는 않다. 패전국과의 일방적인 협상이 아닌 한, 한쪽이 모든 것을 내놓은 뒤에야 다른 쪽이 상응조치를 내놓는 경우도 없다.

북·미는 폼페이오 방북에서 이미 2차 북·미 정상회담 탁자에 올려놓을 의제에 대해 물밑 합의를 했을 수도 있다. 북·미가 종전선언과 북한의 추가 조치 간의 ‘작은 거래’를 성사시키고 북한은 제재 완화의 또 다른 골대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고, 미국은 그 방어의 일환으로 제재 유지를 강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폼페이오 방북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의제에 합의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북·미가 각각 요구 목록을 올려놓고 항목별로 교환 또는 조율하는 문제만 남겨두었다는 분석이다.

북·미 간 ‘이상한 로맨스’는 결국 중간선거 이후 열릴 트럼프-김정은 대좌에서 성격이 보다 분명해질 수밖에 없다. 정상회담을 열기로 한 것 자체가 진전이 있음을 말해주는 증좌이기도 하다. 스탈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트럼프만 세 번 인터뷰했다. 그는 CBS 홈페이지에서 “당선 사흘 뒤에 만난 트럼프는 (당선 사실을 못 믿었는지) 충격에 휩싸인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트럼프는 완전히 확신에 차 있었다. 진짜 대통령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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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달 26일(현지시간) 뉴욕의 롯데뉴욕팰러스 호텔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미·일 정상회담 기자회견을 갖는 자리에서 불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받았다는 편지를 품속에서 꺼내들어보이고 있다.  뉴욕/AP연합뉴스 

아베 숙원 북·일 납치문제 협상, 폼페이오 방북으로 ‘신호 대기’

우리에겐 국치일이었던 지난해 8월29일 오전 6시2분. 일본 홋카이도 주민들의 손전화에 긴급 경보가 떴다. 북한이 이날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을 일본 영토 위로 발사하자 재난 및 긴급상황을 통보하는 ‘J-얼럿(Alert)’ 시스템이 발동된 것이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대처 방식은 괴이하기 짝이 없었다. 국민적 불안을 다독이기는커녕 되레 불안을 증폭시켰다. 지난해 4월13일에는 참의원 외교국방위원회에 출석해 “북한이 사린가스를 장착한 미사일 발사능력을 갖췄을 것”이라고 말해 지난 세기말 사린가스 지하철 테러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일본 국민들을 한껏 자극했다. 나흘 뒤엔 중의원에 출석해 “유사시 (대한해협을 넘어올 한국인) 난민수용 시설 설치 및 난민심사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남이건, 북이건 한반도 거주민들이 아베의 혀끝에서 졸지에 ‘가상난민’으로 전락했다.

지난해 한반도 위기는 국내 정치적으론 아베에게 호재였다. 높아진 위협지수가 평화헌법 개정 추진에 좋은 핑계가 됐기 때문이다.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올해 3차례 남북정상회담과 3차례 북·중 정상회담, 한 차례 북·미 정상회담에서 모두 일본은 처량한 신세로 전락했다.

20년간 덜컹대는 납치문제
북핵에 막혔던 협상 기류 변화
아베는 김정은 직접 대면 제의
북한, 신뢰 증표 제재 완화 거론

한반도 위기 이용 정권 연장
북한 핵실험 과장 불안감 조성
안보적 위협을 정치적 호재로
북핵 해법은 미국과 보조 맞춰

한반도 평화 무드가 호기로
북·일 관계 비핵화 진전 연계
폼페이오 행보 가시적 성과 땐
북·일 교착 국면 전환 청신호

북·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에게 각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납치자 문제를 거론해줄 것을 부탁하는 처지가 됐다. 지난 3월 북·중 정상회담 소식은 신화통신 보도를 통해 파악해야 했다.

이번에도 아베가 믿을 구석은 ‘푸른 눈의 쇼군(將軍)’이었다.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의 플로리다 마라라고 휴양지로 날아가 “북한 문제가 미국 대통령과의 대화를 지배했다”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밝혔다. 트럼프로부터 “(납치 문제는) ‘신조’에게 너무도 중요한 문제이기에 피랍자 일본 송환에 가능한 한 모든 노력을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면서 의기양양했다. 트럼프는 6·12 싱가포르 대좌 뒤 아베의 요청대로 납치 문제를 언급했음을 밝히면서도 “그 문제는 처리될 것”이라고 간략하게 언급했다. 어차피 북·미 정상 간 대화 탁자에서 납치 문제는 핵심이슈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납치 문제는 아베 자신이 풀어야 한다.

일본은 북핵 문제 해법과 관련해 철저하게 미국과 보조를 맞춰왔다. 북핵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전까지는 대북 제재 해제도, 북·일관계 정상화도 없다고 강조한다. 여기에 20년 가까이 지속된 납치 문제의 ‘대못’이 박혀 있다.

납치 문제는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평양선언을 계기로 불거졌다. 김정일 위원장은 일본인 납치가 1980년대 초까지 일부 ‘망동주의자’가 벌인 일이라고 시인,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일본 측이 확인을 요청한 11명 중 4명은 생존하고 6명은 사망했으며, 1명은 확인이 안됐지만 다른 1명이 생존해 있다고 알려줬다. 하지만 일본은 북한이 일시 귀국시킨 피랍 생존자 5명을 되돌려보내지 않는 무리수를 두었다. 여기에 북한 측이 일본인 요코다 메구미의 것이라고 전한 유해의 유전자(DNA) 검사 결과 진위 논란이 불거지면서 일본 내 여론은 급격히 악화됐다. 아베는 관방 부장관이던 당시 생존자 5명의 북한 송환을 막고 나서면서 보수우익의 지지를 결집했다. ‘납치의 아베’가 탄생한 순간이다. 납치 문제는 2006년 첫 총리가 됐고, 2012년 다시 등극할 수 있었던 정치적 자산이었다. 아베가 뜨는 동안 납치 문제 자체는 온갖 미확인 주장과 추측이 난무하면서 실타래가 더 꼬였다.

북핵의 CVID와 납치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다짐해온 것은 아베에게 이중의 족쇄가 됐다. 일본 소외(재팬 패싱)라는 말도 새나온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안쓰러워 보이는 아베의 처지는 여기까지다. 아베의 망신살에 초점을 맞춘 시각으로만 판단한다면 낭패가 될 가능성이 아주 짙다. ‘정치인 아베’의 능력을 외면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0일 자민당 총재 3선에 성공, 2021년까지 임기를 보장받은 그다. 전후 최장기 집권을 앞두고 북한 변수 탓에 주저앉을 것이라는 가정은 희망적 사고에 가깝다. 아베는 오히려 지난 2일 발표한 새 내각에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에게 납치문제담당상을 겸임토록 하면서 힘을 실어주었다. “납치 문제를 하루라도 빨리 해결하겠다”고 거듭 천명했다. 김정은의 북한이 던진 비핵화-체제보장의 승부수는 아베에겐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아베는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대면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6·12 북·미 대좌 이후 몇 차례 내놓은 말이다. 이번엔 간접적으로 김 위원장의 용의도 파악했다. 같은 날 한·일 정상회담 자리에서 “그동안 김 위원장에게 납치 문제를 세 차례나 언급했다”는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김 위원장도 ‘적절한 시기’에 일본과 대화에 나서 관계개선을 모색할 용의가 있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아베는 납치 문제를 해결하고 북한과 관계개선을 추진할 것이라면서 한국 정부의 지원을 요청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일 도쿄 총리공관에서 새 내각을 공개한 뒤 연설을 하고 있다.  도쿄/EPA연합뉴스

북·일은 이미 사실상의 물밑교섭을 시작했다. 지난 7월 베트남에서 실무교섭을 벌인 데 이어 지난달 26일 유엔에선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고노 다로 외무상의 20분간 회담이 성사되기도 했다. 북한은 지난 8월27일 스파이 혐의로 억류했던 일본인 관광객을 보름 만에 전격 석방, 기류 변화를 짐작하게 했다.

북한과의 교섭에서 아베는 이미 실력을 입증했다. 2014년 7월 스웨덴 스톡홀름 북·일 합의를 통해 납치 문제 재조사를 전제로 대북 제재 일부 완화를 합의했다. 2012년 8월 베이징에서 10년 만에 열린 북·일 적십자 회담을 살려, 북한의 청진·함흥·평양 등지에 조상의 뼈를 묻고 온 일본인들의 숙원을 풀어주었다. 일본인 후손들은 이듬해 말까지 6~7차례의 성묘를 할 수 있었고, 긍극적으로 최고 4만기에 달하는 유해를 일본으로 송환키로 했다. 그중 우선순위는 스톡홀름 합의였지만, 2016년 1월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중단됐다. 역으로 북한이 비핵화에 성의를 보인다면 다시 잡을 수 있는 고리다.

북한 입장에서 납치 문제와 북·일 관계개선 문제는 북·미 협상과 구조가 비슷하다. 어차피 비핵화-평화체제 협상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문제다. 완전한 제재 해제는 그때 이뤄질 수밖에 없다. 그사이 제재를 다소라도 완화하고 이를 토대로 최소한 인민경제의 족쇄만이라도 풀려는 것이 북한의 중간 목표이다. “북한은 내년 상반기 중 제재를 완화해 인민경제를 살리고, 비핵화를 진행하면서 2년 뒤쯤 비핵화와 함께 제재 자체를 푸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북한 고위층의 속내를 듣고온 국내 인사의 전언이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지난달 29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비핵화는 미국이 우리로 하여금 충분한 신뢰감을 가지게 할 때만 실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일본에도 신뢰의 증표로 제재 완화를 거론하고 있다.

북·일 양자 간에 거론할 수 있는 제재는 유엔 안보리 제재가 아니다. 일본의 독자 제재이다. 스톡홀름 합의 당시 일본이 합의해 시행했던 총련 간부들의 방북 뒤 재입국 허용, 대북 송금 및 방북 시 소지현금 한도 증액 등만 원상회복된다고 해도 북한으로선 환영할 사안이다. 납치 문제 재조사 특별위원회를 부활시킬 동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아베가 스톡홀름 합의를 깬 것은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다. 북핵 위협에 공동대응하려는 미국 주도 대북 압력에 동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9월25일 유엔총회장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관심은 북한과 일본이 각각 생각하는 ‘적절한 시점’이 언제냐는 것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일본은 현재 한·일관계는 관심이 없고 북·일관계에 다걸기를 한다고 할 정도로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적”이라면서 “다만 북·미관계를 앞질러 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북한의 납치 문제 재조사와 일본의 제재 완화라는 필요가 들어맞는다면 문제 해결엔 시간이 걸려도 대화, 특히 북·일 정상회담은 언제든지 열릴 수 있다. 스톡홀름 합의에서 기왕에 마련한 문제 해결의 틀도 갖춰져 있다.

이 대목에서 트럼프가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에서 비핵화와 관련해 “시간싸움(time game)을 하지 않겠다”면서 “2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아니면 5개월이 걸리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비핵화를 장기 목표로 설정한다면 중간 단계에서 제재 일부를 완화할 필요는 미국과 일본에 다 있다. 납치 문제를 안고 있는 일본이 훨씬 절실하다. 일본이 2002년 9월 평양선언에서 식민지배에 대한 보상의 성격을 담아 약속한 대북 경제협력은 일부 제재가 완화된다고 해도 북한이 가까운 시일 내 만질 수 있는 종잣돈이 아니다. 북·미 및 북·일 관계 정상화와 마찬가지로 비핵화의 출구에서 거론될 문제다.

일본인 납북피해자 요코다 메구미의 아버지 요코다 시게루(오른쪽)와 메구미의 남편으로 확인된 납북 고교생 김영남의 어머니 최계월씨가 2006년 5월16일 서울 수협중앙회 강당에서 만나 반갑게 손을 잡고 있다.  강윤중기자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 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지난 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뉴욕에서 (미국에) 준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라면서 “대북 인도적 지원 문제에서 시작해 풀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는 다만 “북한이 풍계리(핵실험장 폐쇄)나 동창리(미사일 엔진공장 폐기)보다 더 나아가서 현재핵(핵탄두 및 탄도미사일)에 대한 가시적 조치를 취하면 우리 정부에서도 (제재 관련)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은 ‘적절한 시점’이 아니라는 진단이다. 7일 평양에 들어갈 폼페이오의 방북 결과는 북·일 간 이를 가늠할 잣대가 될 수 있다.

희망적 사고일까. 아닐 것이다. 겉으론 대북 최대 압박의 유지를 강조하는 트럼프 역시 생각이 달라질 개연성이 있다. 폼페이오 장관의 보따리를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 트럼프에겐 특히 자신의 베프(영원한 친구·BFF)인 ‘신조’가 그토록 사활을 걸고 해결을 구해온 납치 문제가 걸린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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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ino's gino's 2019.03.03 16: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0301, 일본, 하노이 북미회담서 '납치 제기’에 반색하지만...“북미회담 결렬로 해결책 더 안보여”

     일본 정부가 지난달 27~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해 반색하고 있다. 지난해 6월 1차 북·미 정상회담에 이은 ‘수확’이다. 하지만 북·미 교섭의 진전 없이 납치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고민도 깊어지는 모습이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1일 정례 브리핑에서 납치 문제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적어도 북·미 정상 간 회담에서 2차례나 이야기를 해 (아베 신조) 총리의 생각을 전해줬다. 이것은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달 28일 저녁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한 뒤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납치 문제를 두 차례에 걸쳐 제기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는 “다음은 저 자신이 김정은 위원장과 마주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결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NHK는 일본 정부가 1·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납치문제가 거론된 데 대해 “긴밀한 미·일 관계가 드러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번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북·미 교섭의 진전을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북·일 교섭으로 연결시키겠다는 일본의 기대는 어그러지게 됐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그간 일본 정부는 납치문제를 둘러싸고 북·일 정상회담 실현을 위해 복수의 경로를 통해 북한 측과 접촉해왔지만,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이 최대의 찬스”(아베 정권 간부)라는 말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납치문제가 진전되면 일본으로부터 경제지원을 얻을 수 있다”고 전해주면 북·일 정상회담의 실마리도 보일 것이라고 기대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북·미 교섭이 진전을 보인다면 북한의 다음 관심이 일본으로 향할 것이라고 봐왔다. 하지만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고 향후 북·미 교섭도 정체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일본 정부 내에는 “북한이 바로 일본에 다가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납치 문제는 일본이 자체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문제지만, 동시에 핵·미사일 문제가 진전하지 않으면 전체로서 진전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이 납치 문제 진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북·미 관계가 긴장 상태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시절인 2000년대 초반 북한이 일본에 다가왔던 것처럼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하면 일본에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정체되면 상대적으로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의 가치가 올라간다”며 “북한이 과거와 마찬가지로 일본에 접근해 미국과 흥정하는 전개가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런 전망을 두고도 고이즈미 총리 당시와 지금의 북·미 관계와 상황이 다르다는 반론이 많다. 북·미 관계가 잘 되지 않는다고 북한이 일본에 접근할 것이란 생각은 지나친 낙관론이란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