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칼럼/한반도 칼럼 2015. 1. 12. 21:00

누구나 그 무덤에 침을 뱉을 이완용이 서울 옥인동 자택에서 생을 마감한 것은 1926년 2월11일이다. 매국노가 죽었으면 춤을 춰도 시원치 않았을 텐데 많은 이들이 슬퍼했다고 한다. 그중 이 왕가의 후손들도 끼어 있었다. 어찌 된 일인가. 역사학자 김윤희가 쓴 <이완용 평전>을 보면 을사5적의 수괴쯤으로 꼽히는 이완용은 극단의 시대, 합리성에 포획됐었을지언정 자신의 ‘조국’에 투철했다. 그의 조국이 순국선열의 조국과 달랐고,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조국과 달랐을 뿐이다. 왕조시대의 인간이었던 그의 조국은 고종과 이 왕가였다. 태국 군부에게 태국 국민이 아닌, 왕실이 조국인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다.

을사늑약에 단 한마디 명확한 반대의견을 표하지 않은 채 ‘모름지기 모양 좋은 협상’만 걸기대했던 허약하고 교활한 고종의 조국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자신의 나라로 보았지, 백성의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완용은 이 왕가에 대해 훨씬 박한 대우를 하려는 식민당국에 맞서 그 후손들의 지위와 생활수준을 지키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 왕가의 후손들이 그의 죽음을 애달파한 이유다. 또 그들에게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은 죗값을 고종을 대신해 치러온 은인이 아니었던가.

한동안 잊었던 이완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새삼 되새길 계기가 지난해 두번 있었다. 지식인 이완용이 댓바람에 친일파가 된 것은 아니었다. 두가지 논리로 무장했다. 그 첫번째는 을사늑약의 반대자들을 두고 “가령 저들처럼 충성스럽고 의로운 자들이 나라 안에 있었다면 쟁집(爭執)했어야 하고, 쟁집해도 안되면 들고 일어났어야 하고, 들고 일어나도 안 되면 죽었어야 했다”면서 반대론자들의 무행동을 비판했다. 나아가 “국가로서 독립할 실력이 없이 독립을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본과 제휴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이른바 자강론 또는 준비론을 사회에 침윤시켰다.

그 준비론의 세례를 듬뿍 받은 윤치호의 일기가 총리에 지명됐던 문창극씨에 의해 되살아났다. 이완용이 친미파들의 거점인 ‘정동파’의 핵심이었으며, 주미공사관 참찬관이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일본에 기대어 준비를 하자는 구한말의 준비론은, 전시작전통제권 무기한 연기 결정 과정에서 모자를 바꿔 썼다. 이번엔 미국에 기대어 준비를 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고, 기어코 승했다. 그들에게 조국은 늘 일본이나 미국의 품 안에서나 구현을 기대할 수 있는, ‘미생’에 지나지 않는다.

오후 6시 정각 서울시청 앞 애국가가 힘차게 울려퍼지며 하기식이 거행되자 길을 가던 시민과 학생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영화 <국제시장>에서 산업화 시대를 살았던 세대에게 조국은 두려움의 원천이었다. 자격이 부족한 덕수와 덕구가 파독광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면접시험 도중 생뚱맞게 부른 애국가 덕이었다. ‘애국심 투철’이라는 이유로 뽑혔다. 영화다운 설정이다. 하지만 그 당시 국가는 실제로 부부싸움 도중에라도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해야만 하는 무서운 존재였다. 그렇지 않다면 국제시장 상인 부인이 전쟁터로 돈을 벌러 가겠다는 남편을 말리다가 주위의 시선을 뿌리치지 못하고 의례를 하는, 초현실주의적 풍경이 벌어졌겠는가.

주인공 덕수가 눈 내리는 흥남부두에서 부친 및 막순이와 헤어지고, 지하 1000m의 막장에서 동료 78명을 잃어야 했을 때 국가는 곁에 없었다. 그들이 벌어온 외화를 숫자로 계산하고 산업화의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존재가 있었을 뿐이다. 덕수의 조국은 국가가 아니었다. 가족이었다.

이를 두고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까 경례를 하더라”면서 괴로우나 즐거우나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국가를 지목하는 분이 있는 것을 보면 광복 70주년이 되도록 우리는 여전히 제대로 된 조국에 대한 정의조차 갖추지 못한 것 같다. 남도, 북도 모두 조국이라고 믿게 된, 여행을 좋아하는 한 50대 재미동포 아줌마를 강제추방하는 것을 보면 분단 70주년을 극복하지 못하는 처지가 처량하다. 누구나 저마다의 조국이 있다. 하지만 사람을 중심에 세우지 않는 조국에 대해서는 마땅히 쟁집하고, 그래도 안 되면 들고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일제 잔재가 말끔히 씻긴 광복 100주년을 맞을 자격이 있다.


김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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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의 동진은 2000년 7월 시작됐다. 갓 취임한 러시아 대통령의 자격으로 일본 오키나와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평양에 들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언약을 받아내 국제사회의 조명을 톡톡히 받았다. 푸틴 등극 이후 러시아의 동진은 잊을 만하면 재개됐다. 지난해 11월에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한반도 주변의 4강 국가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다. 한반도 종단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연결이나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등의 거대한 선형(線刑) 프로젝트가 그때마다 회자됐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특사 자격으로 최룡해 당 비서가 지난달 17~24일 모스크바를 다녀간 뒤에는 사뭇 다른 담론이 새나오고 있다. 선형 프로젝트 못지않게 공간 프로젝트가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최 비서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최고위급 회담’에 대한 원칙적인 합의만 도출한 것이 아니다. 하바로프스키를 방문해 극동지역의 농경지 1억~1억5000㎡를 무상 임대받아 함께 경작하는 방식을 논의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군병력을 개편, 최대 15만명의 유휴 인력을 러시아에 파견해 농업·수산업·에너지개발 사업 등에 투입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러시아 각지에 파견돼 있는 북한 노동자(2만~3만명)의 5배 이상이다.

러시아는 북한의 부채 100억달러를 탕감한 데 이어 지난 10월부터 3500㎞에 달하는 북한 철도의 개건과 북한 지하자원을 빅딜하는 ‘포베다(승리)’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달 최 비서를 만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양국 간 경제관계가 전혀 새로운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고 말한 것을 보면 향후 양국 경협이 무언가 달라도 다를 것이라는 합리적인 관측을 낳는다.

러시아를 방문 중인 북한 최룡해 노동당 비서(왼쪽)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오른쪽)과 20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시내 외무부 영빈관에서 회담을 갖기 위해 함께 걸어가고 있다. _ 로이터


연해주를 경작해 남북관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여는 방식은 통일준비위원회 2차 회의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쌀을 공동경작해 종래의 대북식량지원 패턴을 벗어나 벼 30만t을 북한에 제공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러시아의 오랜 숙원인 극동개발과 남북·러 3국 경제협력은 그동안 화려한 청사진과 달리 실제 결실을 맺지 못해왔다. 중국의 주목을 받을 만큼 어느 정도 규모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지난 3분기 북·러 교역규모는 작년 동기에 비해 되레 10% 정도 줄었다.

고유가에 올라탔던 러시아 경제가 추락하면서 투자재원 마련 역시 녹록지 않다. 러시아 재무부는 투자효율이 낮은 극동지역 개발에 지갑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밀의 경우 극동에선 생산량이 흑해연안의 5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한사코 남북·러 3자협력을 강조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유가 하락의 악재가 아니더라도 한국의 자본과 기술이 결합되기 전에는 결코 구현되기 어려운 것이 극동개발의 청사진이다. 농업 개발 역시 현대식 경작 기술 및 장비, 대규모 곡물저장고와 블라디보스토크 항만의 곡물 선적시설 등이 갖춰지지 않는 한 기후조건과 낮은 생산성 탓에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탈냉전 이후 미국 및 서방과 결정적으로 등을 돌렸다. 대미, 대서방 관계복원에는 여러 해가 걸린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14년 전 푸틴을 떠오르는 스타로 만들었던 G8에서도 제외됐다. 하지만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한 미국과 공통된 이해를 갖고 있다. 러시아는 북핵 위기와 경색된 남북관계를 남북·러 3자 협력의 최대 걸림돌로 여기고 있기도 하다.

시기를 못 박지는 않았지만, 내년 중 열릴 북·러 정상회담은 북핵 위기의 추가적인 악화를 막을 안전장치가 될 수도 있다. 핵확산에 반대하는 러시아의 강경한 입장을 알고 있는 북한이 정상회담 전 4차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내년의 한반도 정세는 내달 초 정교력 상 성탄 연휴가 끝난 뒤 재개될 북·러 간 외교행보를 보고 전망해도 늦지 않을 성싶다.


김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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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국가주석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는 것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주최국으로서 일종의 의무가 아니겠나. 중국 정부는 비공식적으로 만날지, (야스쿠니신사 문제 등에 관한) 일본의 태도에 따라 두 정상이 선 채로 5분 정도 만날지 몇 가지 생각을 하고 있다.” 지난달 동아시아재단과 중국 난카이대학 및 베이징대학이 각각 마련한 한·중 대화의 언저리에서 만난 중국 싱크탱크 전문가의 전언이었다. “마지못해 두 정상이 만나더라도 중·일관계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며, 있다면 사전에 한국과 꼭 협의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 경우 한국은 협의를 기다리는 대상이다.

동아시아 국제관계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국력에 따라 전략적 밑그림의 크기가 달라진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과 육상·해상 실크로드 구축을 제시한 시진핑 국가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청사진은 아시아를 통으로 보고 나온 전략적 고민의 결과다. 지역 강국인 일본은 미국의 큰 그림 안에서 집단자위권을 행사하는 정상국가의 꿈을 실현하고 있다. 내친김에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분쟁을 빌미로 늘어난 안보적 수요를 그득 채우려 분주하다. 한국 앞에 놓인 도화지는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정확히는 도화지를 갖고 있는지조차 묘연하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로 대표되는 미국 군사전략의 밑그림에 한국은 구경꾼 같은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달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는 예상과 달리 사드와 관련한 논의가 없었다. 그렇다고 전·현직 국방부 장관이 나서 “주한미군이 배치한다는데 어쩌겠는가”라고 말하던, 무책임한 입장이 바뀐 건 아니다. 여전히 미국이 협의해오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처지다.

미국은 군사적 밑그림에, 중국은 경제적 밑그림에 한국을 편입시키고 싶어한다. 중국 현지에서 확인한 사드에 대한 반발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중국 전문가들마다 말의 결은 같았지만 메시지는 명확했다. 요약하자면 “한·미 동맹은 인정하되 중국을 겨냥한다면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사드가 배치된다면 중·한 간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관계가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공격대상이 될 것”이라는 경고였다. 경제발전에 바쁜 중국은 아직 미국과 군사적 갈등관계를 원치 않는다. 단지 한국을 내세워 최대한 미국을 압박하려는 우회전략을 구사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미국 미사일방어(MD) 체계와 사드 개요 (출처 : 경향DB)


사드가 양국 간 갈등의 뇌관이라면,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렸던 어제 한·중 정상회담 직전에 타결된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은 중국이 그리는 경제전략의 밑그림과 겹친다. 중국은 일단 한국과 FTA를 맺은 다음에 이를 토대로 아시아·태평양 국가들로 확대하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국은 그러나 지난달 말 출범한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에는 참가하지 않고 있다. 한국이 중국 주도의 국제금융기관에 뛰어드는 것을 경계하는 미국의 불편한 심기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의 전략적 밑그림 중에서 한국은 어느 한쪽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할 필요도 없다. 먼저 우리의 전략적 그림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미·중의 협의를 마냥 기다릴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 선택의 정당성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제로섬 게임의 사고방식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미·중 사이에서 그만큼 한국의 가치가 높아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제 베이징에서 성사된 중·일 정상회담은 비공식회담도, 억지춘향식으로 잠깐 얼굴을 보는 것도 아니었다. 엄연한 공식회담이었다. 시진핑 주석의 굳은 표정은 외교적 제스처로 읽혔다. 취임 2년이 다 되도록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라는 희미한 스케치만을 만지작거리다가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의 기한 없는 연기에서 드러났듯이 자발적으로 냉전의 족쇄, 미국의 족쇄에 잡혀 있으려 하는 한, 미·중이 그리고 있는 역동적인 지역질서에서 미아가 될 수밖에 없다.


김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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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의 경계선에서 총질이 잦아졌다. 심각한 상황과는 거리가 먼, 빈 총질에 가까웠다. 하지만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다.

북한의 조선노동당 창건 기념일인 지난 10일 휴전선 인근에서 북한군의 고사총이 불을 뿜었다. 북한 체제를 비난하는 한 민간단체의 전단 풍선을 겨냥한 총격이었다. 공중을 향해 날린 총탄 몇발이 우리 측 민통선 지역에 떨어진 것이 자칫 충돌의 화근이 될 뻔했다. 하지만 우리 군은 교전수칙에 따라 확인이 안되는 도발 원점 대신 가장 가까운 북한군 관측초소(GP)에 대응사격을 하는 것에 그쳤다. 40여발의 기관총탄을 발사했지만 북측 GP를 향했을 뿐 조준하지는 않았다. 양측 모두 허공에 대고 총질을 한 셈이다.

지난 7일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과 우리 고속함 간의 교전 역시 10여분 동안 소리만 요란했을 뿐 빈 총격에 가까웠다. 북측 경비정이 발사한 기관총탄은 어차피 사거리가 짧아 우리 고속함에 도달하지 못했다. 우리 해군의 경고사격과 함포 대응사격 역시 북한 경비정을 조준한 것이 아니었다. “남북 간에 상호교전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해석 탓에 ‘교전’으로 격상됐을 뿐이다. 하지만 빈 총질이라도 잦아지면 우발적인 충돌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2011~2013년까지 3년 동안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에 대해 우리 해군은 단 3회의 경고사격을 했지만, 올해는 벌써 6회에 달했다. 이번엔 2009년 대청해전 이후 5년 만에 처음으로 북한 함정을 향한 대응사격으로 이어졌다.

북 경비정 서해 NLL 침범 상호 시격 (출처 : 경향DB)


두 건의 이상한 교전으로 확인된 사실은 남과 북, 어느 쪽도 확전을 원치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의 서부전선사령부는 2012년 공개경고장을 통해 대북 전단(삐라)의 살포지점을 도발 원점이라고 규정하고, 물리적 타격을 가하겠다고 밝혔지만 타격목표를 완화했다. 그럼에도 확전으로 이어지지 않은 결과에만 연연하는 것은 ‘희망적 사고’에 불과할 것이다. 두 건의 교전이 던지는 표면적인 메시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정세는 지난해 봄의 ‘핵전쟁 위기’ 이후 급속히 군사화하고 있다. 5·24 조치 해제 문제와 이산가족 상봉, 개성공단 등 한반도 이슈 가운데 유일하게 진전돼온 것은 군사적 움직임뿐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북한은 올해 들어서만 20여차례 미사일 및 로켓을 시험발사해왔다. 한번에 5기만 쏘았다고 해도 100기가 넘는다. 한·미는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공격 조짐을 사전에 탐지해 선제타격하겠다는 킬체인의 구축 일정을 최대한 앞당기기로 했다.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당시 전투기와 포대를 동원하려던 한국의 보복공격을 가까스로 뜯어말렸던 미국도 군사적 대비에서는 되레 한발 더 나가고 있다.

주한미군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강행할 태세이고, 무인정찰기를 비롯한 대북 감시자산의 확충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 중 주일미군에 최신형 줌웰트급 구축함을 배치해 동해상의 대북 감시능력을 강화한다는 말도 들린다.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능력이 늘어남에 따라 한·미의 대북 군사적 태세가 강화되고, 다시 북한으로 하여금 추가적인 무기개발의 동기를 부여하는, 악순환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의 이해당사국들이 모두 전쟁을 원치 않으면서도 모두가 군사적 대비에 올인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충돌의 개연성을 높일 수밖에 없다.

맞춤형 대북 억제전략이 채택된 지난해 10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 이후 북한은 미국과의 어떠한 대화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역시 대화 용의를 잃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이달 말 또는 다음달 초 열릴 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의 의미는 심대하다. 마침 박근혜 대통령도 5·24 대북제재 조치 해제를 포함한 대화 의지를 표명한 터이다. 갈수록 군사화하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비군사적인 출구를 마련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민간의 대북 전단 살포 문제는 더 큰 맥락에서 살펴야 한다.


김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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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칼럼] 사드 배치 논란, 국방부는 무엇을 하고 있나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싸드(사드)를 조심해야 합니다. 싸드는 전쟁입니다. 미국과 싸워야 합니다.” 김진명의 최근작 <싸드>에서 주인공 최어민이 광화문 세종대왕 좌상 앞에서 외치는 절규다. 작가가 “너무도 긴박한 문제여서” 대하소설 집필마저 중단하고 썼다는 소설은 그야말로 소설에 불과하다. 가독성을 높이는 작가 특유의 재주가 돋보일 뿐이다. 하지만 지난 6월3일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의 한반도 배치 검토 사실을 공개한 뒤 국내에서 일고 있는 우려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힘의 불균형 상태에서 맺은 군사동맹은 필연적으로 연루의 위험을 안고 있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한·미동맹이 제기하는 딜레마의 하나이다. 국방부는 “주한미군 차원”이라고 하지만 사드의 타격수단과 함께 운용될, 탐지 범위 1000㎞의 X밴드 레이더는 한반도를 뛰어넘는 전략자산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반대하며 동북아에 필연적으로 군비경쟁을 유발할 것이라고 반발하는 까닭이다.

미국은 그럼에도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내보내고 있다. 지난 4월 방한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 정상이 개선키로 합의했다고 강조한 ‘미사일방어(MD)시스템 상호운용성’의 핵심은 센서, 즉 탐지능력이며 이는 X밴드 레이더다. 스캐퍼로티 사령관은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요청했다면서 “사드 체계는 광범위한 센서 탐지 범위와 위협을 상당히 조기에 인식하는 능력을 갖췄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입장이 이처럼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국방부의 입장은 입장이라고 할 수조차 없다.

국방부는 사드 체계를 들여온다고 해도 중·러가 아닌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용이라면서 미국을 대변하는 데 치중해왔다.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을 기한 없이 연기해야만 국토방위가 가능하다는 군이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주한미군의 무기 배치와 관련해 한국은 미국에 제동을 건 경험도 없다.

다만 “미국 측이 사드 배치를 결정한다면 우리에게 협의를 요청해올 것”이라는 국방부의 말은 틀리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미국이 무기 배치와 관련해 마지막으로 우리와 상의한 것은 1958년 전술핵무기 배치였다. 그만큼 사드가 갖는 전략적 의미가 심대하다는 말이다. 사드가 전술핵 못지않은 의미를 갖는 것은 핵전쟁을 전제로 필요한 무기체계이기 때문이다. 군은 최악의 가능성에 대비한다는 명분 아래 가급적 팬시한 무기를 갖고 싶어 한다. “우리가 사드를 구입하는 일은 없지만, 미군이 들여온다면 나쁠 것이 없다”는 국방부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군 기계화대대의 M1A2 전차 20여대와 M2A3 전투장갑차 30여대가 부산항에 도착해 줄지어 있다. 미군은 1개 기계화대대의 한반도 순환 배치를 위해 전투 장비를 배치했다. 부대는 주한미군 2사단에 배속돼 경기 북부 지역에 주둔하며 9개월 주기로 장비는 두고 병력만 교체된다. _ 연합뉴스


중국과 러시아가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사드 도입이 국토방위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면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다소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지만,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면 과감하게 대안을 찾아야 한다. 국가존망이 걸린 사안이 아님에도 미·중·러의 파워게임 복판으로 들어가는 것은 섶을 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격이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국방부는 적어도 사드의 필요성과 유용성을 면밀하게 분석해 국가적 판단의 근거라도 제공해야 한다. 펜타곤의 결정만 기다리겠다는 자세는 명백한 직무유기다.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한·미 간의 사드 관련 협의는 다음달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에서 일부 공개될 것이다. 그때 가서 정확한 근거도 대지 않은 채, 북핵 위협을 운운하며 사드 도입의 당위성만 강조한다면 국민적 저항을 부를 뿐이다. 그것이 한·미동맹에는 더 큰 해가 된다.

뫼비우스의 띠는 안팎의 구별이 없다. 바깥쪽에서 칠을 해가면 안쪽도 칠해진다. 동맹은 필요에 의한 결합일 뿐 뫼비우스의 띠가 될 수도 없거니와 돼서도 안된다. 남북 핵합작을 북핵 문제와 독도 문제의 해법으로 제시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마찬가지로 <싸드>의 결론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미국과 싸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진지한 협의를 위해서는 치밀한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국방부는 지금 그 준비를 하고 있는가.


김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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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칼럼]아베의 대북정책 성적표

 

 

청진회(淸津會). 일제시대 청진제철소(현 김책제철소)와 함흥비료공장 등에는 많은 일본인 기술자들이 근무했었다고 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청진 인근에 뼈를 묻었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만주지역의 일인들을 일단 청진으로 데려와 일본으로 실어나르다가 여의치 않아 발이 묶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래저래 청진 또는 함흥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거나, 그 주변에 묻힌 일인들이 꽤 된다. 일본인 납치자 문제에 가려 있었지만, 청진 일원의 조상묘지를 둘러보고 싶어하는 일인들의 희원 역시 북·일 간의 중요한 인도적 사안이었다.

 


태평양전쟁 기간에 북한 지역에서 숨진 일인은 3만4600명이고, 북에 남겨진 유골은 2만1600여주가 된다고 한다. 유족들로서는 후지산 자락에 북한에 묻힌 조상들의 넋을 기리는 비석을 세워놓고 하냥 그리워 해온 대상들이다. 사적 한(恨)일지언정 해결은 공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2012년 봄 북한이 일인들의 성묘를 허락할 뜻을 비치면서 이들의 묵은 한을 풀 계기가 찾아왔다. 같은 해 8월 중국 베이징에서 10년 만에 북·일 적십자회담이 열리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자문역인 이지마 아사오 내각관방 참여(사진)가 몇차례 북한을 들락거리더니 꿈이 영글었다. 지난해 말까지만 청진·함흥·평양 등지에 조상을 묻은 일인들의 성묘가 6~7차례 성사됐다. 그 핵심에 청진회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고 한다.

 

 

 


두번째 일본 총리직을 수행 중인 아베는 “재임 중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결의를 여러차례 내보였다. 말만 요란한 게 아니었다. 지난 5월 말 북한과 일인 납치자 및 행불자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스톡홀름 합의를 이끌어냈다. 북한 탓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대신 제재 일부 해제를 주고받았다. 청진회의 꿈이었던 북한 내 일인 유골 및 묘지에 대한 조사도 포함시켰다. 일인들의 자유로운 성묘 및 일본으로의 이장 문제까지 해결할지는 미지수이지만 그 실마리는 확실하게 잡았다.

근년 들어 중국과의 센카쿠(댜오위다오) 영유권 갈등이 불거지면서 주목도가 약간 떨어졌다지만, 납치자 문제는 여전히 일본 내 반향이 큰 이슈다. 일본 지도자 입장에서 해결에 매력을 느낄 만한 정치적 과제인 것이다. 여기에 이미 백골이 진토되었을 망자들의 유골과 성묘권까지 챙기려는 아베의 모습은 가상하다 못해 부러울 정도다. 적어도 분단 한반도에서는 지난 60여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정치적 성과다.

남북 간에는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 등 수만, 수십만 명의 한이 담긴 인도적인 사안들이 널려 있다. 아베와 아베의 일본을 사갈시하기에 앞서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아베는 고작 10명 안팎의 납치자 문제 해결에 정권의 명운을 걸었다. 김일성부터 김정은까지, 또 이승만부터 박근혜까지 그 누가 한 맺힌 인도적 사안 해결에 팔 걷고 나서거나, 해결에 근접한 적이 있었던가. 이 모든 것을 아베는 재집권 2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 동안 차근차근 풀어가고 있다.

물론 아베의 대북외교를 마냥 환영하기는 어렵다. 태평양전쟁의 전범국가이면서도 기회 있을 때마다 난징대학살이나 위안부 문제 등 주변국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한 일본은 결코 정상국가가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아베 역시 퇴행적 역사의식을 걷어내지 않는 한 국제사회의 균형 잡힌 지도자로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자국민의 인도적 숙원을 풀고 있다는 점에 국한해 본다면 아베의 대북 외교는 ‘적’이지만 멋지다.

박근혜 정부는 어제 북한에 대해 19일 이후 제2차 고위급 접촉을 제의했다. 이산가족 상봉과 다음달 인천 아시안게임에서의 북측 응원단 참석 문제가 탁자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접촉 시점이 묘하다. 교황 방한 일정(14~18일)을 피하면서도 한·미 양국군의 을지프리덤가디언 군사연습(18~28일)과 겹칠 가능성이 높다. 제안의 진정성은 교황이 떠난 뒤에나 밝혀질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정부가 이산상봉 제안을 또다시 1회용 국면전환카드로 활용한다면 인도적 사안에 관한 한 아베만도 못한 성적표를 받아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김진호 선임기자>


 

입력 : 2014-08-11 20: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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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08 0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gino's gino's 2014.10.08 15: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충분히 공감합니다~

접촉

칼럼/한반도 칼럼 2014. 7. 28. 11:06

[김진호의 한반도 칼럼]북녀 응원단과 북한 미사일

“어이! ○○선생, 저번에 남쪽에 왔을 때 한 건 쎄게 했데. 남측 TV에도 대서특필 되고 말이야. 평양에 돌아와 큰 상 받았겠어?” 장소는 평양이었다. 실내에서도 절반쯤 코팅이 된 선글라스를 낀 그에게 돌발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남측에서 열렸던 한 남북 교류행사에 파견됐던 그가 반북단체 관계자들의 공개적인 북한 체제 비판에 격분해 돌진하는 장면을 TV 뉴스에서 보았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반북단체 관계자들과 주먹다짐이라도 할 결기로 달려나가던 그의 모습은 적지 않은 남측 사람들에게는 전율이자, 충격이었을 것이다.

 2003년 8월 20일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한 북한 선수단을 응원할 미녀 응원단이 환한 표정을 지으며 김해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군사분계선만이 아니다. 남과 북이 만나는 자리에는 ‘지뢰’가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자칫 선을 넘으면 터진다. 듣기에 따라 그의 기분이 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인환시리에 농을 던지는 활짝 웃는 낯에 정색을 하고 대거리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 사람들(반북단체 관계자들)이 하도 말같지 않은 말(북한 체제 비판)을 하기에…”라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그래, 그 덕에 어떤 상을 받았느냐고”라는 거듭된 짓궂은 질문에는 어색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주변의 북측 동료들 역시 입가에 웃음을 띤 것으로 보아 뭔가 상을 받긴 받았으리라 짐작했을 뿐이다. 그후 그와 가까워졌던 기억이 새롭다.

참여정부 시절 취재차 10차례 북한 땅을 밟으면서 익힌, 아슬아슬한 경계에 대한 감이 없었으면 던지기 힘든 농담이었다. 그보다는 접촉이 잦았던 당시 남북관계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다. 북측은 그 무렵 술 한잔 걸치고 중국에서 두만강을 헤엄쳐 입북한 남측의 열혈 문인을 달래 돌려보낸 적도 있지 않은가.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당시 북녀 응원단은 비 맞고 있는 현수막 속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진을 보고 발을 동동 굴렀다. 울며불며하다가 끝내 현수막을 끌어내렸다. 남측 시각으로 보면 이해하기 쉽지 않은 돌발행동이었지만, 전쟁이 나더라도 자기 목숨보다 지도자의 얼굴이 담긴 ‘1호 사진’을 먼저 챙겨야 하는 북측 시각으로 보면 일상생활의 단면이었다. 남한 TV의 보도로 졸지에 ‘영웅’이 됐을 북측 요원 역시 사전에 치밀하게 계산했다기보다는 조건반사에 가까운 행동이었을 것이다. 남북은 그런 접촉 계기를 통해 각각 화성과 목성만큼이나 다른 체제에 살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동시에 이질감을 깨뜨릴 수 있는 농담의 파괴력과 접촉의 힘을 발견하기도 한다.

‘김정은의 북한’은 여전히 알쏭달쏭하다. 한편에선 오는 9월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 ‘큰 규모의 응원단’을 보낸다고 하더니, 다른 한편에선 개성 북방 20㎞ 지점에서 한반도를 횡단하는 미사일을 발사했다. 남쪽 사회에서는 ‘북녀 응원단’과 ‘북한 미사일’ 중 어느 하나만을 강조하려는 예의 남남갈등이 도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의 응원단이 9년 만에 인천을 다시 찾는다고 해서 무작정 당시로 돌아가 환호하기 어려운 것이 작금의 남북관계이고, 북한 내부의 불투명한 사정이며,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급변하는 정세다. 신뢰는커녕 싱거운 농담 한마디 던지기 힘든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녀 응원단과 북한 미사일 중 한가지만 떼어놓고 본다면 동전의 한면에 불과할 것이다.

다른 행성에서 온 것 같은 상대라도 만나서 어깨를 부딪치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가까워진다. 깊은 신뢰는 바라지 못해도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속내를 주고받을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촉이 폭넓은 신뢰로 발전하기에는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 영원히 안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신뢰구축 과정이라는 지극히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과정은 작고, 사소한 데서부터 출발한다고 나는 본다. 전시에는 교전, 평시에는 적극적 상대라는 의미의 인게이지먼트(engagement)야말로 북녀 응원단과 미사일을 통으로 보는 유일한 길이다.

박근혜 정부가 판단할 문제이지만 17일 판문점 실무회담 석상에서는 북측 응원단의 체재 비용과 같은 작은 셈이 아닌, 큰 셈을 하기를 바란다. ‘국민정서와 국제기준’ 타령은 그만 들었으면 한다.

<김진호 선임기자>


 

입력 : 2014-07-14 21: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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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정전협정 61년 맞아 되짚어 보는 국군포로 4만여명… 남쪽선 ‘외면’ 북쪽선 ‘학대’ 남북정치에 희생돼 철저히 잊혀진 존재로

“한국군을 1만명 이상 섬멸하라.” 마오쩌둥이 격노했다. 정전협정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3년 6월18일 새벽, 이승만 정부가 기습적으로 반공포로를 석방하자 특별명령을 내린 것이다. 마오는 “정전협정 조인을 반드시 늦춰야 하며, 언제까지 미룰지는 상황 전개를 보아 결정할 수 있다”는 명령을 덧붙였다.

한국전쟁 중 국군의 7대 패전의 하나로 불리는 금성전투는 국군포로 문제와 질긴 인연이 있다. 정전협정 협상 막바지에 중국은 영토와 명분을 건졌고, 한국은 모두 잃었다. 6월19일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는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 장군에게 질의서를 보냈다. “유엔군 사령부는 한국 정부와 군대를 통제할 능력이 있는가.” 그 끝에 나온 것이 마오의 진격 명령이었다.

정전협정 61주년을 맞아 ‘돌아오지 못한 국군’ 문제를 다시 들춰본다. 금성전투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야 할 필요가 있다. 북한강 지류인 금성천은 강원도 평강군에서 발원, 김화군에서 합류하는 강이다. 전선은 북쪽으로 반원형으로 올라가 있었다. 중국인민지원군 20병단을 주축으로 한 6개 군단과 인민군 2개 군단의 공세에 국군 2군단의 4개 사단과 미 제9군단 휘하 국군 수도사단 및 제9보병 사단

한국전쟁 중 중국인민지원군이 국군포로들을 이송하는 장면. 포로들의 입성이나 용모가 깔끔하게 나오지만 실제는 달랐다. 포로로 붙잡혔던 국군 및 유엔군 병사들은 그나마 중국군의 포로대우가 북한 인민군에 비해 덜 잔인했다고 회고한다. | <그들이 본 한국전쟁1> 눈빛출판사 제공

 

이 배치됐던 전선은 무너졌다. 훙쉐즈 중국인민지원군 부사령관의 회고록 <중국이 본 한국전쟁>에 따르면 이 전투 이후 우리가 잃은 영토만 192.6㎢에 달한다. 사람은 더 잃었다. 포로 문제 끝에 벌어진 마지막 대규모 전투는 또 다른 포로를 낳았다.

 



국군 및 유엔군 포로들이 전선에서 이송됐던 경로. 녹색선이 국군포로, 붉은선이 유엔군 포로의 호송경로다. 호송 중 사망자가 많아 ‘죽음의 행진’이라고 불렸다.


■ 이승만, 반공포로 석방 도박으로 희생 늘어

양융 중국인민지원군 제20병단 사령관은 <양융 상장>에서 한국군 등 5만2783명을 섬멸했고, 그중 2836명이 포로라고 밝혔다. 이 책에서 ‘섬멸했다’는 말은 사상자와 부상자를 포함한 말이다. 아군 전투사에 따르면 7월12~27일 전사자와 실종자는 5569명이다. 실종자의 상당수가 전사자로 처리된 것을 감안하면 국군포로는 2836~5569명 사이다. 이승만의 도박이 없었으면, 가족의 품에 돌아올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전후 함경북도 학포·고건원·하면·고참·주원·유선·무산·용양·온성·아오지 탄광 등지에서 ‘똥간나 새끼’라는 손가락질을 당하면서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다. 1990년대 이후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국군포로 80명의 대부분이 7월 전투에서 붙잡혀 함경북도 지역 광산에 근무했었다. 2008년 북한인권정보센터가 심층면접한 20명 가운데 절반도 금성전투 지역에서 포로가 됐다.

■ 중국 마오쩌둥 격노… 금성전투 벌어져

한국전쟁은 교전보다는 협상하는 기간이 훨씬 더 길었다. ‘말로 싸우는 전쟁(A Talking War)’이라고 불리는 까닭이다. 싸우다가 쉬고, 쉬다가 싸웠다(打打停停, 停停打打). 정전협상은 1951년 7월8일 시작해 만 2년을 끌었다. 그중 1951년 12월11일 착수한 포로의제에만 20개월이 걸렸다. 전쟁은 좀 더 빨리 끝날 수 있었고, 더 많은 국군포로가 귀환할 수 있었다. 1953년 4월20일~5월3일 판문점에서 상병포로 교환이 있었고, 같은 해 6월8일 “송환을 원하는 모든 포로는 60일 이내에 송환한다”는 포로교환협정이 조인됐다. 정전협정이 조인만 남겨둔 상태에서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은 수만명의 추가 사망자와 수천명의 추가 포로를 낳았다. 금성전투 후 7월19일 속개된 정전협상장에서 유엔군 측은 미귀환 국군포로 문제를 강하게 꺼낼 수 없었다.

한국전쟁은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지 않음으로써 여전히 미완의 전쟁으로 남아 있다. 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전투 종결의 가장 기본적인 절차인 포로 문제조차 정리되지 않은 채 61년이 흘렀다. 이러한 반인도적 상황은 유독 한반도에서만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 핵심에 ‘사람’을 부수적인 고려사항으로 경시했던 이념적, 정치적 타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반공포로 2만7000여명의 석방은 겉으로 내세운 명분이 무엇이었건 간에 난관에 봉착했던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이승만의 승부수였다. 미국은 1953년 8월8일 결국 상호방위조약 최종안에 가조인을 했다. 한·미동맹의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어렵사리 끌어낸 합의를 깔아뭉개는, 막무가내식 방법밖에는 없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사람을 내버리고 조약을 얻은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후 남북한의 어떤 정권도 미귀환 국군포로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전쟁이 잊힌 전쟁이라면, 국군포로야말로 철저히 잊힌 존재들이었다.

미귀환 국군포로가 대규모로 발생한 가장 큰 원인은 북한 인민군의 뒤틀린 포로정책 때문이었다. 정전협상이 시작되기 보름 전인 1951년 6월25일 북한군 총사령부가 전쟁 발발 1주년을 맞아 노동신문을 통해 발표한 국군 및 유엔군 포로는 10만8257명이었다. 빨치산 활동을 했던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 기관지 ‘승리의 길’ 12호도 같은 숫자를 제시했다. 그러나 1951년 12월18일 유엔군 측이 북에 건넨 공산포로 명단은 13만2474명(인민군 9만5531명)이었던 반면에, 공산 측이 통보한 국군과 유엔군 포로의 수는 1만1599명(국군 7142명)에 불과했다. 북한은 정전협상 개시 보름 전에 스스로 발표한 숫자의 10%에 불과한 포로 명단만을 내놓고 생떼를 부렸다. 국군과 유엔군 측은 실종자 중 포로가 최소한 62%인 6만2000명이 돼야 한다는 통계추정치를 들어 나머지 5만여명의 국군포로 송환을 촉구했다. 공산 측은 “5만여명을 이미 석방했다”고 맞섰다.

북한 인민군이 1951년 6월 국군 및 유엔군 포로 수가 8만5428명이라는 내용의 전단을 살포했던 것과 비교해도 설명이 안되는 대목이다. 중국군은 포로를 4만6062명으로, 러시아 측은 5만5800명으로 추산했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실제 귀환한 국군 및 유엔군 포로 1만3444명과는 최소 4만명 이상의 차이가 있다. 국방부가 1997년 10월 발표한 실종자 4만1971명과 비슷한 규모다. 이러한 자료들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정전 61주년을 맞아 지난달 펴낸 <6·25전쟁과 국군포로>에 근거한 것이다. 정부는 1994년 조창호 소위의 귀환을 계기로 국군포로대책위원회를 설치했다. 하지만 그동안 국방부 내부 보고서와 전문가들의 논문만이 있었을 뿐 번듯한 책 한권 나오지 않았다. 조성훈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이 펴낸 이 책은 국군포로 문제의 기원에서부터 현황 및 향후 대책을 망라한 종합판이라고 할 만하다. 그렇다면 정전 후 북에 남은 국군포로들은 어떻게 됐을까.

북한 인민군이 한국전쟁 발발 1주년에 즈음해 전선에 뿌린 선전전단. 1951년 5월22일까지 국군 및 유엔군 포로수를 8만5428명으로 명시하고 있다.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제공


1953년 7월27일 판문점에서 유엔군 측 대표 윌리엄 해리슨 중장(왼쪽 탁자 앞에 앉은 사람)과 북한 인민군 남일 대장이 정전협정문에 서명하고 있다.


■ 포로들 질병·기아·혹한·노역 ‘참혹한 삶’

국군 및 유엔군 포로는 대부분 평안북도 의주 근처의 천마·강계·만포·벽동 일대의 수용소에 수용됐다. 포로들은 전선에서 일단 포로수용소로 이동했지만 포로 규모를 위장하기 위해 수용소 간에도 이동이 많았다. 특히 전선에서 첫 수용소로 이동하는 과정은 ‘죽음의 행군’이었다고 생존자들은 증언한다. 부상이 악화되거나 질병과 기아, 혹한, 북한군의 살해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스러졌다. 한 국군포로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편했다”고 기억했다. 경북 영덕에서 포로가 된 국군 제3보병사단과 수도사단 포로 300여명이 함경남도 고원에 도착했을 때는 생존자가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동 중 하루 옥수수 한 개로 끼니를 때웠다. 고원 읍내 제일인민학교에는 국군포로들의 시체가 마른 고기처럼 널려 있었다고 한다. 포로 대우는 북한 인민군이 중국인민지원군에 비해 더욱 포악했다. 이동이 어렵거나 저항하는 포로들을 즉결처형하는 경우가 많았다. 많지는 않지만 이동 중 또는 수용생활 중 유엔군 폭격의 희생자들도 발생했다. 국군포로 중 상당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북한 인민군에 자원입대하는 길을 택했다. 북한은 이들을 ‘해방전사’라고 치켜세우며 부족한 병력자원으로 활용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1952년 9월2일자 첩보 보고서에 따르면 국군포로 중 수천명이 소련으로 끌려갔지만 아직까지 규명되지 않고 있다. 국군포로들은 전후 북한 전역의 도로, 철도, 주택 복구와 각종 건설사업에 동원됐다. 1956년 재배치됐지만 대부분 광산노동자로 60세가 될 때까지 살인적인 강제노역에 종사해야 했다. 북한 입장에선 체제 불안 세력이기에 끊임없는 감시와 처벌의 대상이기도 했다. 강원도 금화전투에서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가 정전을 불과 23일 앞두고 포로가 됐던 허재석씨(83)는 아오지 탄광에서 환갑을 맞았다. 중국을 통해 탈북한 그는 2008년 <내 이름은 똥간나 새끼였다>라는 자서전을 통해 “지하 4000m 막장에 들어가면 숨쉬기도 바쁘지만 우리 포로들은 말 한마디 못하고 일하는 기계가 되어 묵묵히 일만 했다”고 털어놓았다. 아침 식사는 북한의 일반주민인 동료 광부들의 3분의 1에 불과한 좁쌀밥 반공기에 소금국으로 때웠다. 정년 뒤 경비원 등으로 생활했지만 1990년대 중반 덮쳐온 식량난 속에서 국군포로 가족들의 삶은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2012년까지 80명의 국군포로가 남한으로 넘어오게 된 계기였다.

■ 살아남은 자들 남 “변절자” 북 “해방전사”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측 정부는 납북자 문제와 함께 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시도했지만 북측은 협의 자체를 거부해왔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범주에 넣어 126명의 생사확인을 요청했지만 북한은 그중 93명이 확인이 안된다고 답해왔다. 결국 17건의 국군포로 가족 상봉만이 성사됐으며, 그나마 북한은 이들이 해방전사라고 강조했다.

남으로 내려온 국군포로들도 그다지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귀환국군용사회 창립 1주년 행사가 열린 지난 4월23일 유영복 용사회 회장은 “만약 내려오지 않았다면, (남에서는) 우리를 두고 변절자나 투항자라고 낙인찍었을 것”이라면서 “북에서 비참하게 죽은 전우들 몫까지 당당하게 증언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늙었다. 어제 일도 잘 기억이 안 난다”는 그의 고백처럼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쇠하는 데다 많은 경우 북에 두고온 가족이 있기에 얼굴과 실명을 드러내고 활동하지 못한다. 젊어서는 이중, 삼중의 감시 탓에 탈출을 꿈꾸기가 어려웠다.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경험이라도 전해야 한다”는 다짐에는 그들이 살아온 한 맺힌 일생이 담겨 있다. 귀환 국군포로들은 너나없이 ‘대한민국 군인의 명예’를 강조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그들의 명예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품격을 지켜주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스스로 자문해보지 않으면 안된다.

<김진호 선임기자 jh@kyunghyang.com>


 

입력 : 2014-07-25 2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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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kfg 2021.06.10 0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北 조양탄광, 국군포로·가족의 강제 노역장이었다”
    60대 탈북자, 알고 지냈던 9명 실명 공개… 국방부 “확인 못 해준다”

    이용수 기자, 입력 2021.06.05 03:00(조선일보)

    수많은 국군포로와 그 가족들이 평안남도 개천군의 조양탄광에서 강제 노동에 내몰리는 것을 목격했다는 탈북자의 증언이 4일 공개됐다. 1960년대 고위급 인사였던 친척의 숙청으로 일가족이 조양탄광으로 추방됐다는 탈북자 Y(60)씨는 최근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를 만나 당시 알고 지냈던 국군포로 9명의 실명을 거론했다. 최 대표는 Y씨의 증언을 국방부에 전달하고 생사 확인을 비롯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국방부는 “국군포로의 신원 정보는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북한에서 노동당 강원도당 책임비서(도지사)를 지낸 김종항의 친척인 Y씨는 김종항이 1960년대 종파분자로 몰려 숙청되면서 조양탄광으로 추방됐다. Y씨는 최 대표에게 “조양탄광은 1955년 이후 국군포로, 월남자 가족, 전쟁 당시 부역자, 납북자 등 성분이 가장 나쁜 사람들을 동원해 개척한 탄광으로 오지 중에서도 오지”라며 “내 앞집, 옆집, 뒷집 모두가 국군포로 가정이었다. 그 자녀들과 학교를 같이 다녀 잘 알고 지냈다”고 했다.

    Y씨에 따르면 파월 국군 출신의 정준택 하사는 1970년 북한에 왔으며, 탄광에서 굴진공(갱도를 굴착하는 광부)으로 일했다. Y씨는 “처음엔 (정씨가) 북에 와서 기자회견을 했다고 해서 월북자로 알았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월남에서 부대 밖으로 나왔다가 북한에 납치된 경우였다”고 말했다. 이어 “정씨를 마지막으로 본 1980년에 그의 쌍둥이 딸이 6세였다”며 “정씨는 (탈북 이후) 전화로 접촉한 2005년에도 거기에 살고 있었다”고 했다. 정 하사의 이름은 국방부가 파악 중인 월남전 실종자 명단에 실제 포함돼 있다. 그의 납북 사실이 알려진 건 처음이다.

    6·25 국군포로 이귀생씨는 탄광 채탄공으로 일했으며 아내도 국군포로였다고 한다. Y씨는 “이씨의 1959년생 아들 이병찬도 갱도에서 일했다”고 했다. 역시 국군포로인 구방구씨는 “대구 출신의 국군 장교라고 들었다”며 “아내 없이 1960년생 아들 구병삼과 함께 살다가 1980년대 중반에 사망했다”고 했다. 이 밖에도 Y씨는 같은 동네에 살았던 국군포로로 이형제, 민채기, 민병언, 박삼룡, 김창현, 성경복 등 6명의 이름을 떠올렸다고 최 대표는 전했다.

    수만명의 국군포로들이 북한의 최하위 성분에 속해 각종 차별을 받으며 오지의 탄광·광산에서 대를 이어 강제 노동에 시달린다는 얘기는 간헐적으로 전해져 왔지만, 이들과 20년 동안 가깝게 지낸 북한 인사가 국군포로의 명단과 그 가족 관계를 구체적으로 증언한 건 처음이다. 북한인권시민연합 등의 조사에 따르면, 개천군과 인접한 북창군 18호 관리소 탄광지대에 강제 동원된 정치범과 국군포로들은 매일 3교대로 24시간 석탄 생산에 내몰린다고 한다. 교대 근무를 마친 뒤에야 식권이 제공되는데, 그나마도 하루 할당량(채탄공의 경우 약 10t)을 채운 경우에만 허용되고, 휴일은 한 달에 하루다. 이들의 자녀들은 오전에만 학교에 나가고 오후엔 철로에 떨어진 석탄 줍기에 동원된다고 한다.

    Y씨가 이들의 생사를 마지막으로 파악한 건 2005년이었다고 한다. 구씨를 제외한 8명이 당시에도 생존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16년이 흐른 지금 이들의 생존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 대표는 “정부가 국군포로 문제의 시급성을 절감하고 지금이라도 북측에 생사 확인 요청을 비롯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1980년대 초 논산훈련소 병영의 침상 머리맡에는 영점표적지가 붙어 있었다. 눈 운동보다는 영점사격 훈련용이었다. M16소총의 가늠쇠와 가늠자를 정렬시키는 영점사격은 녹록지 않았기에 평상시에도 눈에 힘을 주어 초점을 잡는 훈련이 필요했다. ‘레이저 김’이라고 불리는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보면 그 시절의 영점훈련이 떠오른다.

참여정부의 합참의장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국방장관으로 부활하더니 명실공히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인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자리를 꿰찼다. 화려한 이력을 가능케 한 배경에는 ‘레이저 김’이라고 불리는 그의 눈빛이 인사권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것도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김관진 실장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직후에 국방장관에 취임해서인지 유독 호전적인 발언을 자주 내놓았다. “(북한의) 도발원점은 물론 지원 및 지휘세력까지 타격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의 강성발언이나 그의 레이저 눈빛을 접한 북한 군부의 간담이 서늘해졌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자국민을 불안케 하는 데는 분명 효력이 있었다. 올해 들어서는 ‘1~3월 북한도발설’ 등을 내놓았다. 왜 그럴까. 나는 그 이유를 그만의 ‘영점표적지’ 때문이라고 본다.

2010년 12월 취임 직후부터 국방장관 집무실에 적장의 사진을 붙여놓았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김영춘 당시 북한 인민무력부장과 북한군 4군단장 시절 연평도 포격을 주도한 김격식 총참모장의 사진을 응시했다고 한다. 그의 적장 노려보기는 두 가지 점에서 난센스였다. 장수가 아닌 장관 자리에서 적장의 생각을 읽겠다는 생각은 번지수가 틀렸기 때문이다. 또 굳이 격을 따지자면 북한 군의 1인자인 총정치국장의 사진을 붙여놓아야 했다. 1년 전 칼럼을 통해 지적한 사실들이다.

김관진 안보실장이 박근헤 대통령 주재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다행히 그의 집무실 영점표적지는 다소 진화한 듯하다. 당분간 그가 겸하게 된 국방장관 집무실 벽에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와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사진이 걸려 있다고 한다. 그 사이 북한군의 구조와 특성을 파악했음을 말해준다. 청와대의 안보실장 발탁 사유처럼 ‘국가안전보장회의 및 외교안보장관회의 구성원으로 외교, 통일 분야 정책결정에 참여해온 경험’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태산을 울릴 듯한 그의 호언은 종종 의미가 줄어들거나 허언으로 그친 적이 적지 않다. 도발원점 및 지원·지휘세력까지 타격하겠다는 결기는 지난해 봄 한·미 국지도발대비계획으로 구체화됐다. 하지만 미국과의 합의를 거치기로 해 전시는 물론 북한의 평시 도발에도 우리 스스로 판단할 권리를 반납했다. 2007년 6월 참여정부의 합참의장으로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과 함께 2012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한 단계적 이행계획서에 합의했던 그가 기어코 전작권 전환을 기한없이 연기키로 했다. 입과 눈빛으로는 강경했지만, 실제 행동에서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입과 눈에 힘을 더 주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영점표적지가 병사에게 필요하듯이, ‘적장 노려보기’는 야전 지휘관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국가안보실장 자리에 오른 뒤에도 ‘영점’을 바라보거나 강성발언을 내놓는다면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일 것이다. 위험할 수도 있다. 미국과 냉전 이후 처음으로 크림반도에서 맞짱을 떴던 러시아가 중국과 군사·에너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과도 손을 잡았다. 아베 신조의 일본은 집단자위권 행사를 추진하는가 싶더니, 성동격서 식으로 북한과 납치자 합의를 이뤄냈다. 지난달 중국 상하이에서 열렸던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에서는 중국과 미·일의 아시아 전략이 맞붙었다. 북한은 4차 핵실험을 공언한 지 오래다. 복잡다단한 외교안보 환경 속에서 청와대 외교안보실장의 시야는 광폭이 돼야 한다. 눈빛은 풀고, 말은 조심스레 하더라도 머리에 힘을 주기 바란다. 그의 군 주특기 530의 작전마인드는 더더욱 금물이다. 외교안보부처 간의 소통 및 조율은 물론 주변국의 동향을 응시하는 다초점렌즈를 권한다.

더구나 그의 새 집무실이 있는 종로구 세종로 1번지에는 청와대가 홍보동영상으로 널리 알린 더 큰 레이저 눈빛의 대통령이 있지 않은가. 한 직장에 두개의 레이저 빔은 에너지 낭비다.

김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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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군인들의 세상이다. 북한의 선군(先軍)정치가 휴전선을 건너와 박근혜 정부의 선군인사를 낳더니, 이제는 국제화하는 양상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최근 무엇이 불안한지 군 수뇌부를 또 갈아치웠다. 민간당료 최룡해를 군 총정치국장에 임명, 선대의 선군정치와 결을 달리하는가 했더니 군을 다시 군 전문가 손에 넘겼다. 장성택 처형 이후 일인지하, 만인지상에 올랐던 최룡해 대신 황병서를 군 총정치국장으로 임명한 까닭이 무엇인지는 추측의 대상일 뿐이다. ‘(포병) 구분대의 싸움 준비’를 잘하라는 것인지, 최룡해 한 사람에게 과도한 권력집중을 막으려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 여부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다. 하지만 잦은 군 수뇌부 교체는 분명 안정적인 신호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 선군인사의 정점인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바쁘다. 세월호 침몰 따위의 재난 사태를 컨트롤할 여유는 당연히 없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에 몰두하기도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통일 대박’까지 추수하려면 부지런히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국방부는 어느 부처보다 열심히 뛰고 있다. 무엇보다 섬뜩한 말을 자주 내놓는다. 지난해 말부터 김관진 국방장관이 퍼뜨린 ‘1~3월 북한 도발설’이 그야말로 ‘설’로 끝나자, 이번엔 김민석 대변인이 나서 “(북한군은) 4월30일 이전에 (적들이 상상도 못할) 큰 한 방을 준비하고 있다”는 위기설을 살포했다. 5월에는 “북한은 없어져야 할 나라”라는 낡은 신상품을 출시했다. 2008년 미국 대선 와중에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가 내뱉었던 “북한은 절멸(extinction)시켜야 할 나라”의 피동형 패러디다.

군이 말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말 서울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입을 통해 내년 말로 합의됐던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을 재연기한다는 확약을 받았다. 국방부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대응하기 위한 킬체인과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체계가 갖춰질 2020년까지 전작권 이양 시점을 논의조차 안 하고 싶어하는 눈치다. 주한미군은 ‘졸업을 거부하는 대학생(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같은 한국군을 위해 미 2사단을 한·미연합사단으로 개편, 한강 이북에 계속 주둔할 방안을 마련 중이다.

2차 남북 당국간 고위급 접촉에서 남북 수석대표들이 전체회의를 하고 있다(출처 :연합뉴스)


아베 내각은 오바마 행정부의 지지 속에 지난 15일 집단자위권 행사 추진을 공식 선언했다. 미국의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였는지 이젠 한·미·일 간 군사정보 교환 시스템의 변형 구축도 머지않아 보인다. 이로써 한·미 동맹이 미·일 동맹의 하부구조로 새 자리를 잡는 과정에 본격 진입하게 됐다.

갈등을 총과 대포가 아닌, 대화와 협상으로 푸는 것을 업으로 하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달 초 방미 길에 ‘김관진식 강성발언’을 한 무더기 쏟아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면 “(제재는) 견딜 수 없는 무게의 철모가 될 것”이라는 등 다양한 표현능력을 발휘했다. 학자 출신 통일부 장관은 여전히 학자 활동에 열심이다. 올가을 세계북한학 학술대회 개최를 최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 6자회담 특사를 지낸 성 김 주한 미국대사의 후임으로 국방장관 비서실장과 한·미·일 3자 국방회담(DTT) 수석대표를 지낸 마크 리퍼트가 내정된 것은 작금의 한반도 정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등 지난해 말 장성택 처형을 앞두고 삼지연에 모였던 이른바 북한의 신실세들이 잘나가고 있지만 유독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의 근황만이 북한 매체 보도에서 사라진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남북대화와 6자회담의 주역들이 사라진 자리에 군사전략가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좌들이다.

북한이 연내 4차 핵실험을 한다면 이후 진행될 시나리오는 예상 가능하다. 장거리 로켓 발사-안보리의 대응-핵실험-안보리의 추가 대응 수순이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남북이 험악한 군담(軍談)을 주고받고, 동북아 각국이 군사전략에 코를 묻고 있는 현 상황이 초래할 결과는 전혀 예상 가능하지 않다. 북한 내부의 심상찮은 움직임도 불확실성의 지수를 높인다. 21세기 한복판에 한반도는 철 지난 냉전시절로 되돌아가는 것인가.



김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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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지고 있다. 이례적으로 함께 피었던 개나리, 진달래, 목련도 더불어 꽃잎을 떨군다. 어느새 라일락 세상이다. 올해 한·일 간의 ‘사쿠라 전쟁’에서 승자는 한국이었다. 기상관측 이래 처음으로 3월 마지막 주 고온이 계속되면서 꽃망울을 조산했다. 도쿄 히비야 공원보다 여의도 윤중로가 먼저 꽃비를 흩뿌렸다. 포토맥 강 주변을 하양, 분홍으로 뒤덮는 워싱턴의 체리블로섬 축제 역시 이상 한파로 늦게 시작됐다고 하니 서울은 개화시기에서 단연 앞섰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꽃이 피고 지고 있지만, 한반도의 봄은 여전히 봄이 아니다.

올해도 화신(花信)에 앞서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포성이 봄의 서곡을 울렸다. 북한의 군사적 대응과 맞물리면서 험악한 불협화음을 연주했다. 그 와중에 100발의 북한 포탄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자, 300발의 남한 포탄이 북을 향해 발사됐다. 한·미 공군은 키리졸브·독수리 훈련이 끝난 뒤에도 오는 25일까지 103대의 군용기가 동원된 역대 최대 규모의 맥스선더 훈련을 이어간다. ‘언덕 너머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볼 수 있는 수준’(제임스 하디 제인스 디펜스 매거진 에디터)이라는 무인기 3대가 한반도 남쪽에서 야기한 과장된 잡음도 있었다. 중국발 황사와 미세먼지, 일본발 역사도발, 남북 간의 포연이 뒤섞여 봄의 시계(視界)는 혼탁하기만 하다.

한반도 외교안보 기상도에서 봄소식은 늦게 온다. 늘 벚꽃이 진 다음에나 조짐을 보인다. 올해도 한·미 합훈이 끝나는 이달 말 즈음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공교롭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일본, 한국 순방 시기와 겹친다. 핵과 미사일을 움켜쥐려는 김정은의 북한이나, 과거사를 부정하면서 군사대국을 지향하는 아베의 일본은 박근혜 정부가 좋건 싫건 직면해야 할 양대 장벽이다. 지난해 박근혜 정부는 대북 관계에서건, 대일 관계에서건 별다른 봄소식을 가져오지 못했다. 북한의 대화제의로 물꼬를 트는가 했던 남북대화는 수석대표의 격을 둘러싼 기싸움 탓에 가을에 접어들어서나 개성공단 재가동을 성사시켰다.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라는 국내정치 수요에 매몰됐던 아베 신조 일본 내각의 거듭된 망언 탓에 어떠한 관계개선의 실마리도 잡지 못했다. 올해도 봄소식을 단언키는 어려운 상황이다.

통일 구상 밝히는 박 대통령-1 (출처 ;연합뉴스)


북한 최고 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는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드레스덴에서 내놓은 또 하나의 구상에 대해 ‘황당무계한 궤변’이라고 일축했다. 이미 4차 핵실험 강행 의도를 공개적으로 흘려놓은 상태다. 아베 신조 일본 내각은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한 고노담화의 계승 의지를 밝히는가 했더니, 한국이 독도를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내용의 초등학교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킴으로써 연례 교과서 도발을 한층 강화했다. 오늘부터 한·일 국장급 협의가 열리지만 외교부가 위안부 협의만을 의제로 발표한 데 반해 일본 외무성은 ‘여러 과제’를 강조해 시작 전부터 엇갈림을 보인다. 오바마 순방에 앞서 양자간 갈등지수를 낮춰보려는 한·일 정부의 성의표시에 그칠 수도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취임 이후 양국 간 핵심현안을 놓고 사실상 처음 마주앉는 자리인 만큼 기대를 가져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

남북 간에도 한·미 합훈과 북한의 대응 군사훈련이 끝난 뒤에는 모종의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을 공산이 크다. 북한은 드레스덴 구상이 흡수통일 의도를 내비쳤다는 점에서 비난을 퍼부었지만 남북대화 자체를 봉쇄하고 있지는 않다. 박근혜 정부 역시 국내외적으로 공표한 드레스덴 구상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라도 북측과 고위급 대화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종전처럼 ‘국민 감정과 국제적 기준’이라는 모호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대통령 봉급을 받는 동안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현안 해결에 나설 시간은 그만큼 줄어든다. 또 한가지.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해 상대방의 우선적인 변화만을 고집하며 북한과 일본을 백안시하는 비전략적 관망으로 일관한다면 ‘봄’은 더 멀어질 뿐이다. 지난해처럼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을 맞을 수도 있다. 모기를 보고 칼을 빼어든 형국이라며 국내외 비아냥을 받았던 무인기 소동과 같이, 국민을 불안케 했던 해프닝 역시 곤란하다.


김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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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대한해협 건너에서 나쁘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고노담화를 수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와 일제의 식민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모두 인정하겠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내친김에 “한·일관계와 동북아관계가 공고히 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희망사항을 얹었다.

총리 취임 3년째, 고노담화에 대해서는 “(위안부) 강제동원의 증거는 없다”면서 고노담화와 마찬가지 성격의 관방장관 담화로 대응하겠다던 아베다. 침략 여부에 대해서는 “역사가에게 맡겨야 할 문제”라는 궤변으로 일관해왔다. 아베의 가치관이 하루아침에 바뀌었을 리는 만무하다. 다음달 중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일본, 한국 방문을 앞두고 미국이 일본의 팔을 비틀었음을 짐작게 한다. 미국 국무부는 아베의 발언 직후 “좋은 한·일관계는 미국에도 최선의 이익에 해당한다”면서 “긍정적 진전”으로 평가했다. 한·미·일이 어우러져 한 편의 잘 짜인 시나리오를 탄생시켰다는 연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계기야 어쨌든 간에 아베 내각이 전향적인 입장을 내보인 것은 청와대 발표대로 ‘다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뿐 아니라 우리 역시 힘겹게 성사시킨 오바마의 방한을 앞두고 한·일관계를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한·일관계의 악화는 미국 국익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국익에도 명백하게 해가 된다. 과거사 문제는 물론 아베가 말하는 적극적 평화가 예고하는 안보환경의 변화는 한·일 정상 간 대화의 수요를 높였다. 북한의 핵무장과 중국의 부상에 따른 동아시아 정세 변화에 대해서도 한국과 일본은 함께 협력을 모색해야 할 대목이 있다. 일본은 북·일 당국간 회담의 재개를 서두르고 있기도 하다. 한·일 간 역사갈등은 외교의 영역을 넘어 경제와 문화의 영역으로 옮겨지고 있다.

급속히 우경화하는 일본은 한국이 직면한 하나의 현실이다. 이를 한사코 외면하고서 고고하게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을 외치는 것은 공허한 독백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아베의 한마디에 덜렁 정상회담을 예약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음주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 앞서 장관급 접촉을 통해 일본의 진정성을 재삼 확인하고 난 뒤 한·일 정상회담의 멍석을 깔 필요가 있다. ‘생산적인 대화가 가능해지기 위한 여건’이 조성되기를 앉아서 기다리기보다는 일본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적극적인 행보가 필요한 까닭이다. 꼬일 대로 꼬인 한·일관계는 정공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변인을 내세운 한두마디 입장 발표로 돌파구를 열 수 있는 계제가 아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4년 3월18일(출처: 경향DB)


한·일 지도자가 마주 앉는 것 자체가 원칙의 후퇴이거나 보상은 아니다. 만나서 한국민의 우려 및 우리가 원하는 바를 가감없이 전달하고, 반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래도 아베 정권의 역사적 퇴행이 계속된다면 그때 가서 외면해도 국제적으로 정당성을 축적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과 일본에 대해 원칙과 진정성의 확인을 강조하지만 진정성은 쌍방향으로 흐른다. 쉽게 좁혀지기 힘든 간극이 있을수록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외교이고, 안보의 초석이며, 통일 준비가 될 수 있다. 아베 총리가 의심쩍은 말만 내놓았다면,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첫 단추를 풀자는 대통령의 제안에 행동으로 화답했다. 그럼에도 우리 측에서 두번째 단추를 찾으려는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어떤 통일을 어떻게 하겠다는 설명이 없이 ‘묻지마 통일대박’의 국지풍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정부의 대북 및 외교안보 정책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우리가 잘했다기보다는 북한과 일본의 잇단 패착이 더 큰 원인이다. 오죽하면 “장학퀴즈에 출연해 문제를 맞혀 점수가 올라갔다기보다는 다른 학생들이 문제를 계속 틀려줘 우리 점수가 올라간 격”이라는 말이 정부 안에서 나오겠는가. 이제 정부 스스로 점수를 올려야 할 때이다.


김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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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군 탄현면에 가면 실향민 전용 공동묘지가 있다. 정식 명칭은 동화경모공원으로 풍광이 그럴듯하다. 한강 하류와 임진강이 몸을 섞어 황해로 흘러들어가는 출발점이다. 계단식, 평면식 묘역이 조성돼 공동묘지라기보다는 공원 같은 푸근함을 준다. 1993년 처음 문을 열 때만 해도 허허벌판에 덜렁 놓인 이질적인 감이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영어마을 파주캠프와 헤이리가 인접해 들어서 주말이면 제법 북적인다. 출생지가 휴전선 이북 지역이라야 묻힐 수 있다. 실향민들이 오랜 타향살이 끝에 마지막으로 누리는 호사라면 호사다. 이를 두고 일종의 특혜라고 할 필요까지는 없다.



야생동물도 멸종 위기에처했다면 보호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광복 이후 및 한국전쟁 와중에 월남한 이북 출신 인구는 280만명에 달한다지만 2005년 인구조사에서 이산가족이 있다고 답한 북한 출신 실향 1세대는 16만1605명이었다. 지난달 말 현재 대한적십자사(한적)에 등록한 이산가족 생존자는 7만1480명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 현재 2만6000여명에 달하는 탈북자들이 그나마 휴전선 이남의 이북 출신 인구를 늘려주고 있을 뿐이다. 80만명에 육박하는 다문화가정과 비교해도 마이너리티 중에 마이너리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산가족 찾기 명단 확인하는 실향민(출처; 경향DB)


2004년 취재기자 신분으로 본 이산가족 상봉행사장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의외로 눈물이 적었기 때문이다. ‘마른 상봉’이라는 신문 헤드라인이 나올 정도였다. 부모자식 간의 수직상봉이 희귀해지다보니 형제, 친척들과 만나 10분 정도 젖은 재회를 하다가 서로 가져온 가족사진을 나눠보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마른 상봉이 이어졌다. 구순의 노모가 아들을 만나는 수직상봉이 있었지만, 그리움도 반세기 이상 지나면 화석처럼 변한다. 치매에 걸린 남의 노모는 휠체어에 앉아 퀭한 눈빛으로 낯선 남자를 바라보고, 장성한 북의 아들은 억장이 무너졌다. 20대에 헤어져 반세기를 홀로 넘긴 아내는 칠순의 남편을 만나기 전날 밤 오줌을 지렸다.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흘렀다.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남과 북의 기막힌 이산의 현실을 바라보는 남북 당국은 철저하게 정치적이었다. 한적은 1956년 10월 조선적십자 중앙위원회의 이산가족 접촉 제안을 묵살했다. 7·4공동성명에 앞서 1971년 8월 첫 남북 적십자회담이 열렸지만 첫 이산상봉행사는 14년 뒤에나 열렸다. 그렇게 분단의 연대기가 깊어가면서 이산가족의 한은 화석으로 굳어져갔지만 남북 당국은 민족과 국가를 팔면서 흥정만을 벌여왔다. 수십년째 생사확인·서신교환·상봉행사·고향방문을 놓고 왈가왈부했지만 결론은 늘 현실정치의 필요에 따라 내렸다.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산상봉 행사는 더 이상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상봉 행사가 잦아지다 보니 생긴 현상이었다. 일간지에 사진 몇 장에 작은 기사가 딸리는 정도로 보도가 축소됐다. ‘쌀은 당국 간 회담용, 비료는 이산가족 행사용’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산가족이 아닌 일반 국민들은 많은 경우 무관심하거나, 상봉행사 성사를 위한 남측 당국의 저자세 대북협상에 비판적이었다.


남북은 이번에도 정치적 의도를 섞었지만, 나쁘지 않은 첫걸음이다. 동상이몽 속에 접점을 찾았을지언정 더 큰 걸음을 내디디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 금강산 상봉행사가 4년 만에 다시 열린다. 북한은 한·미 합훈과의 연계 주장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지난해 2월 핵실험 이후 개성공단 폐쇄와 최근의 장성택 처형에 이르기까지 국제적으로 몰린 상황에서 나온 결론이라고 볼 수 있다. 북이 어떠한 속셈에서 ‘통 큰 용단’을 내렸던 간에 중요한 사실은 이제 공이 남쪽으로 넘어왔다는 점이다. 상봉의 정례화와 생사확인·서신교환의 오랜 숙제를 재개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엉뚱한 곳에 DMZ 세계평화공원을 만들기보다는 기왕에 완성된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와 지리적으로 연계시키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산가족 문제를 서로 정치적 필요에 따라서 한번 쓰고 버리는 카드로 활용한다면 남북 지도자들의 업보는 더욱 커질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오래된 반인도적 범죄가 아니겠는가.



김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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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까지 한반도 정세는 예측이 쉬워졌다. 향후 몇달간 벌어질 구체적 상황의 세밀화야 미리 알 방도가 없지만 그 방향성만은 뚜렷하게 읽힌다. 새해 첫 남북 간의 대화공세 역시 징조가 나쁘지는 않았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시험발사 성공과 3차 핵실험 사이에서 맞았던 작년 초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하지만 적어도 당분간 서로 기싸움을 하는 형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박근혜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대북 태세를 보면 더욱 그렇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분위기를 마련할 것을 강조했다. 북한 국방위원회는 대남 중대제안을 통해 오는 30일부터 상호비방 및 중상 금지와 군사적 적대행위의 전면 금지를 제안했다. 북한의 제안은 새로운 내용이지만, 조건은 오는 2월 말부터 시작하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중단이다. 서해 5개섬에서 상대방 자극 행위를 중단하겠다는 제의를 덤으로 얹었다. 대화와 협상에서 윈윈하려면 서로의 기대를 섞어야 한다. 하지만 남북이 서로 메아리 없는 제의와 담론만을 내놓는다면 결과는 예측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설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하자는 제의를 덜렁 내놓았던 박근혜 정부는 어떠한 대북 후속제의도 하지 않고 있다. 대신 대통령 스스로 북한의 잇단 제의를 “선전공세”라며 의미를 내리깎았다. 철통같은 안보태세를 강조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 1~3월 초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국방부의 정세분석에 토대를 두고 있다. 국정원발로 알려진 ‘2015년 자유 대한민국 체제 통일설’의 연속선상이기도 하다. 대통령은 대화와 교류협력을 통해 지속가능한 평화를 만들어 나가고, 강화된 대북 인도적 지원으로 남북 주민 간 동질성을 회복하겠다는 말을 2년째 반복하지만 빈말에 머물고 있다. 되레 정체불명의 ‘통일대박론’이 운동장 구석의 회오리 바람처럼 맴돌고 있을 뿐이다.


뉴욕타임스스퀘어 '통일은대박이다' 광고판(출처: 연합뉴스)


견고한 대오로 질주하는 박근혜 정부의 ‘안보열차’를 당장 멈추게 할 길은 없어 보인다. 남북의 엇갈림은 올봄에도 한반도에는 전쟁담론이 무성할 수밖에 없게 됐음을 짐작하게 한다. 올해 남북관계의 1막이 가파른 대치국면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는 잠정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까닭이다. 어차피 “미군 없이는 국토방위가 어렵다”는 대한민국 국방부 입장에서 한·미 합훈이 절실할 것임을 이해하고 넘어갈 필요도 약간은 있다. 하지만 엄동설한 속에 봄을 기다리듯이 올 하반기부터 펼쳐질 2막에 대한 기대만큼은 쉽게 포기할 일이 아니다. 


북한이 장성택 처형 이후 내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도발할 조짐은 아직 포착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한·미 양국군이 2월 말부터 시작할 올해 합훈에서 얼마나, 어떻게 핵전력 시위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난해처럼 B52, B2 전폭기와 핵잠수함 등 핵전력을 공개적으로 전개한다면 북한은 격렬한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북한을 흔들어댐으로써 자칫 ‘1~3월 북한 도발설’을 구현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외교안보 고위당국자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안보논리를 강조하며 북한을 자극하면 긴장지수는 급상승할 것이다.


분단 한반도의 현실은 늘 전쟁과 평화 사이의 중간 어디쯤에 놓여 있다. 이를 평화 쪽으로 좀 더 끌어당기는 것이 지도자의 책무다. 올해 남북관계의 2막은 6월 지방선거 뒤에나 열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때 가서 정치적 요소를 덜어낸 담백한 대북 제의를 내놓고 남북관계를 풀어가려면 강 대 강의 궤도에 진입하려는 지금부터 지혜를 모아야 한다. 우선 북한의 평화 제의를 댓바람에 백안시했던 경직성을 누그러뜨려야 한다. 한·미 합훈을 예정대로 진행하더라도 최대한 조용히 치러야 할 필요가 있다. 전쟁 위협을 하면 전쟁 위협한다고 비난하고, 평화 공세를 하면 위장된 평화 공세라고 되받으면 도대체 언제 북한과 마주 앉아 지속가능한 평화를 도모하겠다는 것인가. 


‘통일대박론’을 두고 손은 강 건너 초원을 가리키면서 정작 발은 강물에 담글 생각이 없는 모순에 비유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분단의 시원에서부터 흘러온 강물에는 진흙은 물론 오물도 섞여 있다. 그 구정물에 몸을 담그고 건너갈 자세가 안된 자, 감히 통일을 논하지 말 일이다.


김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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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실각 가능성을 처음 밝힌 지난 3일, 진위를 떠나 “왜 지금 발표할까”하는 의문부터 떠올랐다. 국정원 개혁 필요성이 국민적 공감대를 넓혀가던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선정국 중 뒷방에서 댓글을 퍼나른 죄과 탓이다. 이후 북한이 장성택의 숙청을 결정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 내용과 관련 사진을 공개함으로써 실제 사태로 이어졌다. 지난 13일 새벽에는 전날 열렸던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에서 초췌한 모습의 장성택의 마지막 사진과 함께 그에 대한 처형 사실을 내보였다. 의혹과 경악, 충격의 끝은 섬뜩하리만큼 잔잔하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이후 인민군 설계연구소와 마식령 스키장 건설현장 등을 방문해 연일 파안대소를 흘리는 모습을 내보이고 있다. 딸을 한명 두며 수십년 해로했던 장성택의 부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 역시 건재한 것으로 보도됐다. 40여년 동안 당과 내각, 군에서 고위직으로 지내오며 깔아놓았을 장성택의 인맥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북에선 반당반혁명종파분자로 국가전복음모를 획책했던 ‘개만도 못한 추악한 인간쓰레기’의 주변을 단속하는 작업이 진행 중일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스키장이나 둘러보는 김 제1비서의 일거수 일투족은 한가롭기조차하다. 공포의 소용돌이 속에서 웃을 수 있는 권력의 냉혹함을 새삼 깨닫게 한다. 


北 김정은,삼지연혁명전적지 방문(출처 :연합뉴스)


요란한 움직임은 되레 한반도 남쪽에서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일 “북한은 현재 김정은의 권력강화를 위해 대대적인 숙청을 감행하면서 공포정치를 하고 있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더 불안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어제는 “북한 정세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불투명하며 무모한 도발과 같은 돌발사태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외교안보장관 회의도 소집했다. 실로 오랜만에 존재의 가치를 입증한 것으로 알려진 국정원의 행보는 소란스럽다. 불안하기까지 하다. 국회 정보위원회를 확성기로 삼아 북한이 올해만 40여명이 처형당했다고 밝혔다. 서상기 정보위원장(새누리당)은 한술 더 떠서 장성택에 대한 기관총 사살설을 퍼뜨렸다. 



‘복수의 안보당국 관계자들’은 사안의 위급성을 강조하는 데 급급했는지 정보기관 종사자의 금도마저 넘었다. ‘군·정보당국, 장성택 실각 감청으로 확인’이라는 특종보도를 제공해주었으니 하는 말이다. 한 종편방송이 얼마전 대대적으로 보도한 뉴스다. 정보기관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췄어야 할 정보소스였다. 오죽하면 조너선 폴락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국정원 스스로) 통신정보라는 소스를 노출함으로써 북한 사람들은 더욱 통신 보안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면서 안타까워했겠는가. 국정원 작품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군당국이 수집한 1차 정보를 발표만 국정원이 했을 뿐이다. 국정원의 행태를 보고 외교가에서는 “누가 한국과 대북정보를 공유하겠는가”하는 우려가 새나오고 있다고 한다. 그 와중에 국정원이 슬그머니 내놓은 자체 개혁안은 싱겁기 짝이 없다. 국정원법이 기왕에 금지하고 있는 정치개입금지 조항을 잘지키겠다는 서약만 하고 넘어가겠다는, 개혁안 아닌 개혁안이었다. 북한군의 특이 동향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익명의 정부 관계자들은 “북한이 장성택의 실각으로 흔들릴 체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장성택 처형을 둘러싼 국정원과 청와대의 과잉 홍보가 모두 정치적 필요에서 나온 것이라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를 풍겨온 것은 사실이다. 


장성택은 북한의 대중, 대남 경제협력을 책임졌던 인물이다. 당연히 우리의 관심은 장성택 이후 북한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면서 대응전략을 모색하는 데 집중돼야 한다. 요란한 숙청 끝에 애써 여유를 부리는 평양의 행태는 물 밑에서 치열하게 발길질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유유하게 수면을 가르는 오리를 연상시킨다. 서울의 행태는 정반대다. 물 위에선 추측과 가능성에 기반을 둔 발길질이 요란하지만 정작 물 밑에서 어떠한 대응책을 고민하고 있는지 묘연할 따름이다. 북한 급변사태는 아직 시나리오이다. 조용히 대비하길 바란다. 그전에 국가 중추 정보기관에 대한 신뢰의 위기라는 발등의 불부터 끄기를 바란다.



김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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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의 한반도 리서치]장성택 운명보다 ‘이후’가 중요하다

2013 12/17ㅣ주간경향 1055호
ㆍ정부 고위당국자들이 나서 추측 남발하지 말고 차분한 대책 세워야

 

연기가 자욱하다. 국가정보원이 돌연 공개한 ‘장성택 실각 가능성 농후’라는 소식이 삽시간에 국내 뉴스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적어도 지난 주말까지는 국정원 개혁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일본의 집단 자위권 문제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확대 발표로 미세먼지가 자욱한 한반도 정세에 또 하나의 연막탄을 터뜨렸다.

북한발 뉴스는 적지않은 경우 국내외 언론의 실체 없는 추측게임이다. 이번엔 그 발화점이 개혁 수술대에 오른 국정원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색채를 진하게 띤다. 안보문제보다는 남북한의 국내정치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 안개를 걷어내는 지름길일지도 모른다는 잠정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까닭이다.


 

 

장성택 북한 국방위 부위원장. | AP연합뉴스

 

보위부 위에 행정부, 그 위에 조직지도부
장성택은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겸 노동당 중앙위 행정부장이다. 국정원이 12월 3일 공개한 요지는 이렇다. “지난 11월 하순 북한이 장성택의 핵심 측근인 리용하 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을 공개처형했다. 이후 장성택 소관 조직과 연계 인물들에 대해서도 후속조치가 진행 중이다. 장성택은 모든 직책에서 해임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에 따르면 리용하와 장수길이 공개처형된 죄목은 ‘월권’과 ‘분파행위’ 및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거부’ 등이다. “장성택의 등 뒤에 숨어서 당 위의 당, 내각 위의 내각으로 군림하려 했다”는 것이다.

12월 4일자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혁명적 신념은 목숨보다 귀중하다’는 글을 통해 “지난날 아무리 오랜 기간 당에 충실하였다고 하여도 오늘 어느 한순간이라도 당에 충실하지 못하면 충신이 될 수 없다.

충신은 99%짜리란 있을 수 없으며, 오직 100%짜리만이 있을 수 있다”고 명토를 박았다. 하지만 여기서도 오랜 기간 당에 충실했던, 1% 모자란 충신이 공개처형된 리용하와 장수길을 말하는 것인지 장성택을 지목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여기까지는 왕조시대를 방불케 하는 북한의 수령체제에서 항다반사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를 두고 최용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중심으로 한 군부의 반란이라느니, 권력투쟁설이라느니 하는 식의 해석을 내놓는 것은 그야말로 추측에 불과하다. 북한 군부 내에서는 “바늘 하나가 떨어져도, 나뭇잎 하나가 떨어져도 당에 보고하라”는 격언이 있다고 한다. 일거수 일투족은 물론 말 한 마디까지 당에 노출된다. 장성택을 두고 ‘북한의 2인자’라고 칭하는 것 역시 어불성설이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수령체제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기관을 꼽으라면 단연 당 조직지도부다. 노동당 중앙위의 다른 당기구와 달리 조직지도부 부장은 공석인 경우가 많다. 한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이 조직지도부장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라고 한다.

행정부는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 검찰을 총괄한다. 당 간부들을 수시로 도청할 권한을 갖고 있는 보위부 위에 행정부가 있고, 그 위에 조직지도부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장성택 행정부장의 수하들을 처형할 수있는 기구는 조직지도부밖에 없다.

1980년대 말 한시적으로 존재했던 행정부를 정리한 것도 조직지도부였다. 김시호 당시 행정부장은 조직지도부의 지도에 따르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숙청됐다. 김정일은 “행정부가 당 위의 당”이냐고 질타하면서 행정부를 조직지도부 내 행정과로 격하시켰다.

행정부와 장성택의 인연은 오래된다. 장성택은 1995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됐다. 내용상으로는 행정과를 담당하는 행정담당 부부장 직이었다. 따라서 이번 사안은 김정은 체제 들어 20여년 만에 복권된 행정부가 조직지도부의 위상을 위협하면서 벌어진 국내정치의 결과물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만 1980년대 행정부 숙청과정에서 공개처형이 없었던 것을 보면 이번엔 외자유치까지 맡았던 장성택 측근들의 비리나 반당행위가 도를 넘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경향신문이 지난 6일 특종 보도한 장성택 최측근의 중국 도피 및 망명 요청은 상당한 개연성을 갖는다.

더구나 외자유치를 맡고 있었던 장성택의 자금을 관리해온 인물이 맞다면 북한으로선 정권의 치부가 백일하에 드러날 수 있는 뇌관이 아닐 수 없다. 한 북한 전문가는 “김정은이 언젠가는 장성택을 칠 것이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앞당겨진 데다 거칠게 진행하는 것으로 봐서 무언가 문제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장성택 최측근 망명설 상당한 개연성
장성택 본인에게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라는 죄명을 씌웠다면, 그의 운명은 끝났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한 북한 전문가는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라면 자기 아버지라도 죽여야 하는 것이 북한 체제”라고 말한다. 그의 부인이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고모인 김경희라도 감히 장성택의 구명을 요구할 입장이 되지 못한다는 얘기다.

장성택의 운명보다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장성택의 숙청 이후다. 장성택 측근들에 대한 공개처형 사실을 전 북한군에 통지하고, 관영언론을 통해 절대충성을 강조하는 상황은 공포정치를 예고하고 있다. 김정은 체제 출범의 일등공신인 장성택의 위치는 “김정은 제1비서에게 현안과 관련해 수시로 보고 또는 자문할 기회가 굉장히 많은 자리(김의도 통일부 대변인)”였다.

직언이나 조언을 할 사람이 없어졌다는 말은 향후 북한이 김정은 1인의 결정에 따라 종잡을 수 없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짙어졌음을 말한다. 장성택은 압록강변의 황금평 및 위화도 경제지대를 중국과 공동개발키로 합의한 인물이다. 남북관계는 물론 중국과의 주요 대화통로가 없어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 전문가는 “누군가 장성택의 역할을 대신하겠지만 중국 입장에서 누가 오더라도 장성택만큼 인정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선순위가 다소 처지는 문제로는 북한 내부의 불안으로 자칫 한반도 정세가 흔들릴 가능성이다. 북한 체제 특성상 김정은 체제에 반기를 든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장성택 계열의 고위 당간부들이 자신들을 옥죄어오는 추가 숙청의 공포 속에서 모종의 반항을 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이는 그야말로 예의주시해야 할 대목이지 한국 정부 고위당국자들이 나서 국민적 불안을 부추길 사안은 결코 아니다.

 

장성택의 실각은 역설적으로 김정은 체제의 굳건함을 확인시켜주었다. 다듬어지지도 않은 정보와 첩보를 뒤섞어 국민 앞에 불쑥 내놓은 국정원이나, 국회에 출석해 장성택의 거취를 안다 모른다 하면서 혼선을 자초한 통일부 장관이나 일개 ‘관측통’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또 해야 할 일은 북한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는 것이다. 동시에 장성택 이후 북한이 어디로 가는지, 언젠가 재개될 남북경협을 어떻게 끌어가야 할지에 대한 차분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눈으로 보고 말로만 떠들 것이 아니라 천근같이 무거운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뒷방에서 댓글이나 달던 국정원을 하루 빨리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김진호 경향신문 선임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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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백화제방(百花齊放)인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질서가 있었다. 56개 민족을 한 줄로 엮어 ‘국족(國族)’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중국이 나아가는 방향에 대한 굵직한 흐름이 감지됐다. 특히 60년이 지난 한반도 정전체제와 20년이 지난 북한 핵문제의 해법을 모색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오래된 설계도를 그대로 틀어쥐고 있었다. 지난달 말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에게서 받은 인상이다. 동아시아재단과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이 공동주최한 제1회 한·중 대화에 참석했다. 그 주변에서 중국 공산당 이론가들을 만났다. 학자임을 강조하지만 기실 시진핑 시대 대외정책에 적지 않은 입김을 행사하는 분들도 포함됐다.


중국의 한반도 입장은 잔잔한 연못 같았다. 수표면에 미세한 물결이 이는 듯했지만, 다시 살펴보면 그대로 고요하다. 지난 2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 및 이후 이행과정에서 중국이 예전과 달리 사뭇 단호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지난 6월 베이징 한·중 정상회담 이후 서울 일각에서는 중국의 대북 입장이 강경해졌음을 시사하는 기대감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번 방문에서 중국의 전략적 목표(한반도 안정)와 수단(한반도 비핵화)은 바뀌지 않았음을 새삼 발견하게 됐다. 한 전문가는 양의(洋醫)와 중의(中醫)의 차이를 빌려 설명했다. 중국 내에도 서양의학식 외과수술로 북핵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과 중의학적 처방으로 문제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 공존하지만 정작 기본입장은 불변이라는 설명이었다. 핵실험과 같은 북한의 잘못은 질타하되 한반도의 안정을 추구하는 정책 근간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뀌지 않은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1970년대 이후 유지돼온 한반도 현상유지론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북한 핵문제의 뿌리는 북한의 안보상 우려에 맞닿아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중국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렇다고 중국이 북한에 핵우산을 제공해줄 수는 없지 않으냐”는 반문이 이를 압축해 말해준다. 하지만 미국이 할 수 있는 것은 많다는 것이 중국 측 논리의 핵심이었다. 북한 핵무기는 물론 남한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도 함께 제거해야 한반도 비핵화가 달성된다. 미국과 남한의 결심이 필요한 대목이다. 여기에 관계정상화를 통해 북·미 안보협정이라도 맺으면 북한의 안보적 우려는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미 . 중 외교장관 회담 (출처 :AP연합)



미국은 한반도에서 어느 정도의 긴장을 유지하려고 한다. 중국 견제를 위해 한반도 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생각이 상당수 중국 전문가들 사이에 퍼져 있었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재래식 군사 도발은 서해상의 한·미 합훈과 미·일의 동북아 미사일방어(MD) 시스템 구축으로 중국의 안보적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는 불만과 연결된 생각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나서 북핵 문제나 한반도 근본문제를 해결할 의지는 읽히지 않았다. 


미국 고위당국자들은 북핵 문제가 악화될 때마다 중국의 역할을 당부한다. 내놓고 말은 않지만 북한 정권 유지의 생명선이라고 할 수 있는 원유와 식량 공급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중국이 대북 압박을 가해주기를 기대한다. 일종의 아웃소싱이다. 중국은 그러나 대북 생명선을 차단한다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깨진다는 점에서 이를 받아들이는 데 주저한다. 중국 전문가들은 역발상의 접근으로 미국과 남북한에 해결을 아웃소싱한다. 나서서 해결은 못 해주지만 6자회담의 대화 탁자 정도는 마련해주겠다는 게 중국이 자임하는 역할의 한도인 것이다. 큰 말썽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되도록 ‘뜨거운 감자’를 입에 넣고 싶지 않은 것이 미·중의 복심이다. 그나마 중국은 ‘제한된 역할’일지언정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물밑에서 꾸준하게 움직이고 있다. 


어떠한 전략적 밑그림도 그려내지 않으면서 불과 몇달 전 “중국이 변했다”고 환호작약했던 서울은 정치적 내전상태다. 국방장관은 국회에 나와 “한국의 전력이 북한의 80%”라면서 국토방위를 미국에 아웃소싱하고 있음을 털어놓는다. 뒷방에서 댓글이나 달던 국정원 개혁은 정치 논리 속에 함몰됐다. 정치 쟁점으로 변질된 북방한계선(NLL) 논쟁은 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러운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미·중의 전략적 이해가 엇갈리고 우경화된 일본에선 새로운 정한론(征韓論)이 새나오는 지금, 여기 한국 정부의 역할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지독한 패러독스가 아닐 수 없다.



김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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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놓고 처음 마주앉은 것은 1991년 10월 말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였다.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을 위한 고위급 회담이 진행되던 와중에 북한의 제안으로 한반도 비핵화가 의제로 올랐다. 하지만 북한이 핵문제 회담 탁자에 초대하려 한 진짜 상대는 미국이었다. 남북 간의 ‘핵협상’이 두 달 뒤 한반도 비핵화 선언문 한 장을 달랑 내놓고 유야무야된 반면, 이듬해 1월 아널드 캔터 미국 국무부 차관보와 북한의 김용순 조선노동당 국제비서 간에 북·미 고위급 회담이 열리기 시작했다. 남북대화의 기능은 북·미 회담으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징검다리였다.


1차 북핵 위기 국면에서 북·미가 제네바 합의에 이르도록 김영삼 정부는 철저하게 소외됐다. 그 시절 유행했던 문구가 통미봉남(通美封南)이었던가. 이후 한국 정부의 요구로 북·미 대화 전에 남북 대화가 열리는 틀이 굳어졌다. 뭔가 역할을 하긴 해야겠는데 뾰족한 수가 없는 정부일수록 ‘북·미 대화 전 남북 대화’는 매력적인 카드였다. 별다른 복안도 없이 일각의 반북 정서에만 올라탔던 이명박 정부가 대표적이었다. 지난해 2·29 베이징 합의를 도출해낸 북·미 간 세 차례의 고위급 회담 전에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두 차례 만났지만 무늬만 회담이었다.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대표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서우두 국제공항에 들어서고 있다 (출처 :AP연합)



하지만 징검다리 역할도 활용하기 나름이다. 노태우·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북·미 대화를 적극 지지했다. 노태우 정부는 탈냉전의 거대한 흐름 속에 큰 그림을 그렸다. 미·일의 대북 교차승인을 추진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북·미 회담을 주선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로 이어지는 그랜드디자인을 토대로 북한과의 접촉면을 넓히는 동시에 북·미 대화를 지지했다.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를 위협하는 북핵 문제를 북·미가 먼저 논의한다는 사실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어차피 한국은 핵을 들고 회담장에 나올 북한과의 협상 탁자 위에 올려놓을 칩이 별로 없다. 남한의 해상·수중·공중에 수시로 배치되는 미국의 핵무기를 포함하는 한반도 비핵화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철회, 북·미관계 정상화 가운데 한국이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태우·김대중·노무현 정부처럼 북·미 대화의 징검다리 역할이라도 적극 펼치면서 한편으로 남북 대화의 내용과 수준을 격상시킬 칩을 쌓아가야 한다. 


김영삼·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가 되풀이하고 있는 실책은 바로 긴요한 칩이 될 자원을 국내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 먼저 소진시켰다는 점이다. 남북 간에 해상경계 문제에 대해 합리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 한 남북 간 정치·군사회담은 언감생심일 뿐이다. 또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은 어떤가. 유사시 국군 통제권조차 없는 남한 정부를 상대로 북한이 한반도 핵심 문제를 다루는 회담에 진지하게 나설 이유가 있겠는가. 미국 내에서조차 남우세를 사고 있을 뿐이다. 


북한은 지난 6월 미국에 고위급 회담을 공식 제안했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미국은 아직 핵능력이 입증되지 않은 이란과의 협상에는 적극성을 보이면서도 정작 세 차례의 핵실험을 끝낸 북한과의 대화에 나설 용의는 내보이지 않는다. 북한이 지난해 2·29 합의를 깬 이후 대북 회담 추진의 동력이 고갈됐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비확산체제를 관리하는 미국에 북핵 문제는 중요하다. 하지만 미국의 더 큰 우선순위는 동아시아에 미국 중심의 견고한 지역질서를 수립하는 데 있다. 미국이 이달 초 일본과의 전략대화에서 아베 신조 정권의 집단적 자위권 추구를 공식 지지한 것도 그 때문이다. 


6자회담에 참가한 각국 대표들이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 : AP연합)


이 지점에 박근혜 정부의 역사적 역할이 놓여 있지만, 현재까지 기대할 만한 움직임은 없다. 북·미 대화 주선은커녕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문제에 가타부타 입장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사이 개성공단 재개와 이산가족 상봉을 놓고 남북 대화가 있었지만 실무 차원의 기술적인 논의에 그쳤다. 이쯤 되면 박근혜 정부는 대답해야 한다. 김영삼·이명박 정부처럼 구경꾼의 자리에 머물 것인지를 말이다. 원칙과 신뢰는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전략적 밑그림이다. 박근혜 정부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국내외 홍보를 계속하는 것 외에 어떤 밑그림을 갖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김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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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의 한반도 리서치]멈추지 않는 ‘북핵열차’

2013 10/08주간경향 1045호
핵 활동이 새로 포착되고 각국 전문가들의 분석이 잇따르면서 북한 핵문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미 공조 명분으로 북핵 해결을 미국에 아웃소싱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는 언제까지 팔짱만 끼고 있을 것인가.

한동안 국제사회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북한 핵문제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아직까지 미국과 중국, 한국 등 북핵문제 해결의 핵심 당사국 정부들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는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지난 2월 12일 3차 핵실험 이후 공개적으로 확인되지 않던 북한의 핵활동이 다시 포착된 데다, 각국의 전문가들이 잇달아 내놓고 있는 새로운 분석 결과들은 북핵문제를 언제까지 방관하고 있을 계제가 아님을 말해준다.

북핵에 대한 새로운 관심의 발단은 2007년에 활동을 중단했던 북한의 영변 핵시설에서 정체불명의 하얀 연기가 나오는 장면이 담긴 위성사진이었다. 미국 존스홉킨스 국제관계대학원의 한미연구소는 지난 9월 11일 위성사진을 공개하면서 “연기의 색깔과 양으로 볼 때 원자로가 가동 중이거나 가동 직전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는 “그것이 사실이라면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면서도 “예의주시하겠다”고만 했을 뿐 큰 관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국 정부 역시 어슷비슷한 입장을 내놓았다. 북한이 지난 4월 영변의 5메가와트 원자로를 재가동하겠다고 선언했던 만큼 6개월 정도 걸리는 재가동 준비기간을 감안하면 연기가 나올 때가 됐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동향은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미국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또 다른 이유는 이미 알려진 위험인 플루토늄 프로그램보다는 미지의 위험인 우라늄 프로그램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2월 12일 세 번째 핵실험을 통해 폭발력 증대 및 핵무기의 소형화·경량화·다종화에 성공했다면서 고농축우라늄(HEU) 개발에 진전이 있었음을 암시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핵전문가인 조슈아 폴락 과학적용국제법인(SAIC) 선임연구원이 9월 25일 아산정책연구원의 북한 콘퍼런스에서 내놓은 분석 결과는 세계적인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북 원심분리기 핵심부품 국산화”
폴락 연구원은 “북한이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고농축우라늄을 만드는 원심분리기의 핵심 부품들을 자체 생산하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그가 6대 핵심 부품으로 꼽은 것은 원심분리기에 주입할 가스 형태의 육불화우라늄(UF6)과 진공펌프, 링 마그넷, 주파수 인버터, 마레이징 강철, 컴퓨터 수치제어 유동성형 기계 등이다. 이 중 육불화우라늄과 진공펌프, 링 마그넷, 주파수 인버터는 북한의 과학보고서와 특허 수상자료를 통해 공식 확인되며, 마레이징 강철도 2009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위대한 승리’라고 평가했던 주체강철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컴퓨터 수치제어 유동성형 기계들 역시 김 위원장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현지지도 사진들을 통해 확인된다면서 관련 사진들을 군축 관련 웹사이트(www.armscontrolwonk.com)에 공개했다. 폴락은 “북한의 핵심 부품 자력생산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지난 10년 동안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개발을 막기 위해 동원해왔던 수출 통제 및 제재, 물리적 차단 등의 방식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개발해온 원심분리기는 종래의 가스 확산 방식에 의한 우라늄 농축에 비해 전력을 덜 필요로 하고 방출하는 열도 적다. 농축시설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건설할 수도 있다. 이는 북한이 농축시설을 만들어도 군사위성 등을 통해 찾아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폴락의 지적대로 언젠가 북한과 비핵화 합의가 이뤄진다고 해도 북한 스스로 고백하기 전에는 농축시설을 검증할 방도가 없다는 얘기다.

북한이 농축시설의 핵심 부품을 국산화했다고 해도 기본 품목은 여전히 수입해야 한다. 하지만 기본 품목들의 수입 현황을 일일이 감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국제사회의 제재대상이 아닌 품목들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추정 우라늄 매장량이 400만톤(대한상공회의소)에 달하는 북한은 천연우라늄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상태다.

북한의 원심분리기 핵심 기술 확보 사실을 입증한 분석작업은 폴락뿐 아니라 세계적인 우라늄 농축 전문가인 스캇 캠프 MIT대학 교수가 함께한 것으로 신빙성을 더한다. 폴락은 “북한의 핵능력 과시가 과거에는 실제 능력보다 부풀리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분명한 능력을 갖춘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추가 핵실험 금지나 추가 장거리 로켓 발사 금지, 타국으로의 핵기술 수출 금지 등을 현실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상한으로 설정했다.

방치할수록 문제 해결 어려워져
북한의 핵능력이 어느 정도까지 발전했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능력을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과소평가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북핵이 당장 목전의 위험은 아닐지언정 중단되지 않는 한 시간이 흐를수록 그 위험지수가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라늄 농축은 고도의 기술 축적이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지난 9월 26일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북핵문제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심포지엄에서 “농축은 (원심분리기) 수천 개 가운데 한 개만 고장나도 잘 되지 않는다”면서 “북한이 원심분리기를 갖고 있다고 해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심 부품 국산화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발언이었다.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농축시설이) 실제 가동된다면 북한이 (하얀 연기가 포착된) 5메가와트 실험용 원자로를 재가동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중국의 핵전문가 리빈 칭화대 교수 역시 9월 25일 아산정책연구원의 북한 콘퍼런스에 참석해 북핵이 당장의 위협은 아니더라도 무시할 수 없다는 데 방점을 두었다. 리빈 교수는 3차 핵실험 뒤 북한이 주장한 것처럼 핵탄두를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적재할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통상 핵실험을 할 때 핵물질보다 많은 화학물질을 넣어 실험하지만 북한은 1차 핵실험의 경우 소형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화학물질을 조금 넣어 실험했다가 실패했고, 2차와 3차 핵실험에서는 폭발력을 증대하는 데 치중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발표 가운데 폭발력 증대에 성공한 것은 맞더라도 소형화와 다종화(고농축우라늄 핵무기)는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리빈 교수는 “북한은 세 차례의 핵실험으로 상당한 경험과 기술을 축적한 상태이지만 핵무기 소형화를 이루기 위해 다시 플루토늄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물론 북한이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모두 이용한 핵무기 개발에 최종적으로 성공한다고 해도 국가적 자멸을 각오하지 않는 한 쉽게 사용할 수는 없다.

핵무기 능력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으면서 핵실험도 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과 달리 북한이 끊임없이 핵활동을 공개하는 것도 해결 기회를 제공한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의 표현대로 “북한의 핵개발 열차가 (영화) 설국열차처럼 어떠한 악천후에도 끝까지 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 방치한다면 해결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미국은 이란 핵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면서도 2012년 2월 26일 베이징 합의가 불발된 이후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무시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한·미 공조라는 명분으로 북핵 해결을 미국에 사실상 아웃소싱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입장 역시 다르지 않다. 하지만 더 이상 팔짱만 끼고 있을 수 없다. 북핵열차가 설국열차가 되지 않도록 나서는 것이 정부의 책무이다.

<김진호 경향신문 선임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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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의 한반도 칼럼]시리아와 한·미동맹의 현주소

전투에서 패한 장수는 용서해도 경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책 없이 전선만 확대시킨 장수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시리아 문제와 한반도 문제가 섞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관진 국방장관의 친절한 한마디가 원인을 제공했다. 김 장관은 지난달 28일 브루나이에서 만난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에게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이 북한에 화학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면서 미국의 강경대응을 주문했다. 1년 전 화학무기 레드라인(금지선)을 설정했던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지난 8월21일 시리아 내전에서 화학무기가 사용된 뒤 시리아 공습에 나서려는 참이다. 김 장관은 묻지도 않은 ‘북한 화학무기’의 존재를 먼저 꺼냈다고 한다. 안팎으로 고립무원의 처지에 있던 오바마 행정부는 망외의 시리아 공습 논리를 반기고 있다. 헤이글 장관과 존 케리 국무장관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이란·헤즈볼라에 나쁜 신호를 줄 수 있다면서 시리아 공습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있다.

 
지난달 31일자 외교부의 시리아 사태 공식성명은 “극악한 범죄행위를 강력히 규탄하며 관련자들은 반드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어디에도 ‘북한’이라는 단어는 없다. 정부 입장과 장관 발언이 따로국밥인 셈이다. 국방부 스스로 “정부 입장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하고 있을 정도다. 주요 사안에서 메시지를 통일하지 못하는 정부는 삼류다. 불안을 넘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냉혹한 국제관계의 현실에 비춰본다면 시리아 사태는 한반도의 안보적 이해와 관련이 없다. 영국이 미국의 푸들 역할을 거부하고, 프랑스와 터키를 제외한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국들이 사태를 관망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한국처럼 강력한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는 이스라엘의 제1타깃은 정작 시리아가 아니다. 미국이 시리아를 공격하면, 이스라엘은 핵개발을 멈추지 않는 이란을 공격하기가 쉬워진다. 김 장관 논리대로 북한에 분명한 메시지를 주려면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역시 “해야 한다”면서 부추겨야 한다.

시리아는 북한과 마찬가지로 1992년 화학무기금지조약(CWC)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이 아직까지 화학무기 보유 사실을 단 한차례도 인정한 적이 없는 반면에, 시리아는 지난해 7월 처음으로 보유사실을 인정했다. 그 끝에 나온 것이 오바마의 레드라인이다. 북한 핵문제 해결이 겉도는 와중에 북한이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도 않은 화학무기 문제를 국제 현안으로 끄집어내는 것이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될 것인가, 안될 것인가. 이를 가늠하는 것은 고등수학이 아니라 단순한 산수의 영역에 속한다. 최전선을 맡은 ‘장수’가 아니라 ‘장관’이라면 최소한 시리아와 북한을 가려보는 안목쯤은 갖춰야 한다. 국제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발언이 미칠 파장을 헤아리는 것 역시 기초 교양과목이다.

갤럽의 지난 주말 조사결과 시리아 공습은 이라크와 아프간 침공, 코소보·세르비아 공습, 걸프전 등 미국이 지난 20년 동안 벌인 무력개입을 통틀어 사상 처음으로 반대가 50%(찬성 36%)를 넘었다. 그럼에도 오바마 행정부가 공습에 나서려는 이유를 한 가지만 든다면 체면 때문이다. 화학무기 공격으로 숨진 1400여명의 시리아 주민들을 위한 정의는 더욱 아니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이 이란군과 쿠르드 주민들을 상대로 화학무기 공격을 해도, 민주콩고공화국 전쟁으로 500여만명이 죽어도, 사라예보가 1000일 동안 포위돼 주민들이 저격수들의 사냥감이 됐어도 나서지 않았다. 무엇보다 한국전쟁 정전 60년이 되도록 한반도 문제 해결에 손을 놓고 있다. 오바마의 시리아 공습이 ‘레드라인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는 비아냥이 미국 내에서 나오는 이유다.

시리아 문제는 그들의 문제이다. 최소한 제코가 석자인 한국이 나설 문제는 아니다.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을 다시 몇년 미루자는 이야기를 주로 했던 한·미 국방장관 회담 자리에서 느닷없이 북한 화학무기를 꺼낸 김 장관과 한반도 문제를 고작 시리아 공습의 명분으로나 활용하는 미국. 올해만 34조5627억원의 예산을 쓰면서 미국 없이는 국토방위가 어렵다는 한국과, 매년 북한 핵문제를 미국과 지역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으로 평가하면서도 팔 걷고 해결에 나서지 않는 미국. 김 장관의 돌출발언이 드러낸 한·미동맹의 현주소다.

<김진호 선임기자>


 

입력 : 2013-09-09 21:3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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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의 한반도 리서치]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어떻게’가 빠졌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핵심인 ‘한반도신뢰프로세스’ 그림이 나왔다.
하지만 통일부 장관이 발표한 주요 내용에는 로드맵과 액션플랜이 안 보였다. 회견이 끝난 뒤 내외신 기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새로운 게 하나도 없잖아.”

“이게 뭐야.” “새로운 게 하나도 없잖아.” “대선공약에서 되레 후퇴만 한 것이 아닌가.” 지난 8월 21일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 사무국.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주요 내용을 확정해 발표한 내외신 기자회견 뒤 적지않은 참석 기자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신프(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무엇인가. ‘박근혜 정부=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고 해도 좋은 핵심 대선공약이자 핵심 국정과제가 아니던가. 대통령이 후보 시절 국민에게 약속하고 지난 5월 국무회의에서 확정한 대북정책의 청사진이 바로 한신프였다. 그러한 구상을 다시 주무부처인 통일부가 몇 달 동안 가다듬어 그 개념과 목표, 추진원칙, 추진기조, 추진과제를 국민 앞에 선보인 이날은 잔칫날이 됐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한 시간여 진행된 류 장관의 발표 및 질의·응답 과정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강연에 머물렀고, 발표가 끝난 사무국에는 실망만 쓰레기처럼 남아 있었다.

 

 


8월 21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 내외신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홍보 책자를 들어 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 홍도은 기자 

박근혜 대통령 취임 6개월에 즈음해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분야는 단연 대북정책 분야다. 취임 직전 북한의 3차 핵실험에 이어 3~4월의 전쟁 위협에 이은 개성공단 폐쇄조치 탓에 순탄하지 못한 상황에서 출범한 정권이다. 하지만 개성공단 정상화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원칙의 리더십이 국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판문점에서 남북 적십자 회담이 가동되면서 이르면 9월 말쯤 3년 동안 중단됐던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치러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대북정책의 전달자이자 1차 소비자 격인 통일부 출입기자들을 실망시킨 까닭은 무엇일까. 정부가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에게 발표할 때는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고 그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로드맵과 액션플랜이 곁들여져야 설득력을 갖는다. 정부를 대표해 류 장관이 발표한 내용에는 그러나 이러한 알맹이들이 쏙 빠져 있었다. 여전히 정책이라기보다는 두루뭉술한 구상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직까지 두루뭉수리 구상 수준
먼저 류 장관이 이날 소개한 리플릿과 34쪽 분량의 설명책자를 살펴보자. 한신프는 남북관계 발전·한반도 평화정착·통일기반 구축 등을 대북정책의 3대 목표로 설정했다. (안보와 교류, 남북협력과 국제공조의) 균형·(지속적으로 보완·발전시키면서 상황에 맞춰 대북정책에 변화를 주겠다는) 진화·(국제사회와의) 협력을 추진 원칙으로 제시했다. 북한의 도발-위기-타협-보상-도발의 악순환을 끊고,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안보위기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며, 정권에 따라 냉온탕을 오간 과거 대북정책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배경에서 한신프가 탄생했음을 적시하고 있다. 설명책자는 신뢰 형성을 통한 남북관계 정상화와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 통일 인프라 강화, 평화통일과 동북아 평화협력의 선순환 모색 등 4대 부문별로 14개의 과제를 선정했다.

하지만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을 제외하고는 손에 쥘 만한 내용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다른 의견을 수용하는 열림의 통일, 남북이 뜻을 같이하는 울림의 통일, 주변국이 함께 하는 어울림의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는 류 장관의 멋진 수사가 반향을 크게 얻지 못한 까닭이다.

정치·군사적 신뢰조치를 과제로 꼽았으면서도 남북 장성급회담의 정례화나 DMZ 평화공원과도 연결되는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 방안,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 등이 생략됐다. 1989년 노태우 정부가 발표하고 역대 정부가 수용해온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겠다면서도 “광범위한 의견수렴을 거쳐 발전방향을 공론화하겠다”는 것 외엔 다른 방도가 보이지 않는다. 작은 통일(경제공동체)에서 시작, 큰 통일(정치통합)을 지향하겠다는 희미한 그림이 제시됐을 뿐이다.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추구한다면서도 군사적 도발을 단호하게 막겠다는 ‘소극적 평화’에만 방점이 찍혔을 뿐 ‘적극적인 평화’를 위한 평화체제라는 표현은 애써 회피하고 있다.

남북관계 주도하겠다는 의지 안 보여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서울과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던 3~4월의 전쟁 위협, 개성공단 근로자 일방 철수 등의 험악한 분위기에 출범해 이제 간신히 대화국면으로 접어든 남북관계의 현실에 비춰볼 때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개성공단 정상화를 타결짓고 이산가족 상봉 재개를 논의하고 있으며, 곧이어 금강산 관광 재개 및 5·24 조치의 재고 등 남북관계 현안이 밀려 있는 상황에서 장밋빛 청사진을 제공해 헛된 기대를 갖게 할 필요는 없었다. 더욱이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경제발전과 함께 병진하겠다고 선포해놓지 않았는가. 그러한 점에서 한신프 설명책자에서 가장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은 첫 번째 추진과제로 제시된 ‘신뢰 형성을 통한 남북관계 정상화’인지도 모른다. 특히 ‘정상화’라는 단어에 유의해야 한다.

‘비정상적인 관행을 정상화하는 개혁’을 유독 강조하는 박 대통령의 말에는 역대 정권에서 만들어진 관행은 비정상적이었다는 평가가 담겨 있으며, 대북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대화·교류 중심의 포용정책이 남북협력은 강화했지만 원칙을 훼손했고, (이명박 정부의) 원칙 중심의 대북정책은 유연성이 떨어지는 만큼 각각의 장점을 취하겠다는 말 역시 뒤집어보면 각각의 비정상을 정상화하겠다는 말에 다름이 아니다. 문제는 중간선을 찾겠다는 구상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남은 임기 4년 6개월을 허송할 가능성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는 점이다.

그 전조를 보여주는 것이 “북한이 유연할 땐 유연하게, 단호할 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수동적 자세다. 남북관계를 능동적·적극적으로 주도하겠다는 의지가 안 읽힌다. 희미한 목표는 있되, 거기까지 가는 길은 북한의 선택과 상황에 따라 바꾸겠다는 말이며, 이는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어느 지점에서부터인가 길을 잃을 가능성을 내포한다. 신뢰, 신뢰 하지만 그 진정성도 의심스럽다. 서로 믿으려면 북도 남도 같이 변해야 하는데 남의 기준에 맞게 북만 변해야 한다고 고집한다고 신뢰가 쌓이지는 않는다. 무엇을 위한 신뢰인가도 따져봐야 한다.

분단체제에서 신뢰의 최종 목적은 평화를 위한 신뢰여야 한다. 한사코 평화체제를 외면하면서 어떻게 정치·군사적 신뢰를 구축하겠다는 것인지 묘연하기 짝이 없다. 정전체제를 상징하는 비무장지대(DMZ)에 평화공원을 건설하겠다는 구상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DMZ를 남북이 공동관리함으로써 정전체제를 현상유지하려는 것이지, 이를 토대로 무엇을 하겠다는 구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DMZ에는 평화적 공간을 만들자면서 정작 가장 휘발성이 높은 대치의 현장인 서해 북방한계선(NLL) 상에는 어떠한 평화수역도 만들 수 없다는 주장은 모순적일 뿐 아니라 한신프의 근본 정신을 의심케 한다.

류 장관은 내외신 회견 자리에서 “긴 시야에서 긴 호흡으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남북관계의 단기적 성과에 연연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정책 아닌 정책이 그나마 희망을 주는 것은 역설적으로 미완성의 구상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류 장관 말대로 하나하나 완성해 나가면서 국민과 북한 모두에게 지속가능한 신뢰의 원천이 되길 바란다. 그 전에 균형 잡히지 않은 대목들에 대한 자기성찰이 있어야 함을 물론이다.

주간경향 1041호

<김진호 경향신문 선임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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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그리 급하게 가십니까.” 개성공단 시범단지 입주업체인 리빙아트의 첫 제품생산 기념식이 있었던 2004년 말로 기억된다. 옥외 행사장에서 주동창 북측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장의 연설이 끝나고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기념사가 막 시작된 직후였다. 맨 앞 열에 앉아 있던 주 국장이 벌떡 일어나 행사장을 벗어났다. 기자의 잔혹성이랄까, 바로 그를 뒤쫓아갔다. 남측 대표단 400여명의 좌장격인 정 장관의 연설이 막 시작된 시점에 보란 듯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연유가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명확한 목적지가 없는 갈지자 행보였다. 두리번거리던 주 국장은 쫓아오는 남측 기자가 신경 쓰였던지 “위생소(화장실)가 어딘가…”라고 우물거린 뒤 시야에서 멀어졌다. 핵심 청중을 잃은 정 장관의 연설은 맥이 빠졌다.

당시 통일부 관계자들 역시 “화장실이 급했는가 보다”라고 얼버무렸다. 이날 리빙아트가 출시한 ‘통일냄비’가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팔리는 이벤트에 파묻혔지만 현장에서 목격한 주 국장의 행태는 의도적으로 남측을 무시하려던 것이 분명했다고 본다. 행사장의 북측 대표였다. 설령 설사가 나오려 했다고 해도 자리를 지켜야 마땅했다. 그게 도리이고 국제적 상식에 부합하는 행동이었다.

남북대화나 교류·협력의 세밀화는 종종 구질구질하다. 길들이기로 보아야 할지, 자존심 대결로 보아야 할지 남북 사이에는 상대를 굴복시키고야 말겠다는 조급증이 드러나곤 한다.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를 논의하던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이 6차를 끝으로 결렬되면서 사실상 폐쇄 단계에 돌입했던 지난 7일 극적으로 분위기가 반전됐다. 북측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공단 재가동 및 남측 기업들의 출입 허용, 북측 근로자들의 정상 출근 등 진전된 입장 표명과 함께 7차 회담 재개를 전격 제의했다. 정부는 조평통 담화를 ‘총론적으로 전향적’으로 평가하며 북의 회담 제의를 수락했고, 북측은 이에 “좋은 결실을 기대한다”는 회신문을 보내왔다.

전조가 그리 밝지만은 않다. 북측이 회신문 말미에 넣은 한 구절이 발단이 돼 벌어졌던 해프닝이 상서롭지 못한 단서를 제공한다. 북측은 전날 자신들의 7차 회담 제안 소식을 전한 남측 일부 언론에서 “백기를 들었다”는 식으로 폄하한 것을 염두에 두었는지 “(우리들의) 아량과 대범한 제안에 찬물을 끼얹는 말을 삼가 달라”고 언급했다. 이를 허투루 넘길 박근혜 정부가 아니다. 통일부는 하루가 지나서야 “우리 측은 어제 북한 전통문의 일부 표현이 상호존중의 자세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입장을 북측에 전달했다고 우정 발표했다. 남북관계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의도에서 통일부가 결정, 발표했다고 한다. 대통령 1인에 무게가 과도하게 실린 정부 스타일로 보아 윗선에서 빨간펜을 들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입력 : 2013-08-12 21:43:44

대북포용정책을 추진하던 지난 정권에선 북한의 체면을 중시해 무례를 가급적 부각하지 않던 분위기였다. 신뢰 프로세스를 내세운 박근혜 정부는 남측 정부도 국민감정과 국제적 기준을 잣대로 작은 디테일에도 어깃장을 걸고 있다. 참여정부가 남북관계에서 속도전을 추진했다면 박근혜 정부는 지구전을 강조한다. 북측과의 접촉과정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를 대하는 데 있어 어느 쪽이 100% 옳다는 판단은 잠시 미뤄두자. 중요한 것은 목전의 회담을 꼼꼼히 챙기는 것뿐 아니라, 그 이후를 내다보는 혜안이다. 개성공단 7차 실무회담은 4개월여 끌어온 개성공단 파행의 종착점이자 박근혜 정부와 김정은 체제가 풀어나갈 남북관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북한의 돌연한 공단 중단 사태가 재발해서도 안되지만, 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이고 마는 선택은 곤란하다. 4년 반 남짓 남은 임기는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북핵문제, 한반도 평화, 나아가 동북아 평화협력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긴 프로세스에 아직 진입조차 하지 못한 상태가 아닌가. 상호존중 역시 중장기적 프로세스 속에서 풀어야 할 과제이지 당장 오늘 내일 안으로 끝내야만 하는 숙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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