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산책'에 해당되는 글 32건

  1. 2020.11.13 "No, No" 세계는 이번에도 트럼프를 오독했다
  2. 2020.10.19 '트럼프의 4년'이 서막에 불과하다고? 미국 대선, 게임의 법칙
  3. 2019.04.16 이탈리아는 어떻게 유로 포퓰리즘의 전위에 섰나
  4. 2019.03.29 가자, 예루살렘으로! 이스라엘은 어떻게 포퓰리즘의 성지가 됐나 (2)
  5. 2018.11.30 두테르테의 포퓰리즘은 필리핀을 어디로 끌고 가나
  6. 2018.08.03 훈센총리 6선, 머나먼 '앙코르와트 민주주의' (1)
  7. 2018.07.20 '스트롱맨 정치' 비난한 오바마의 ‘원죄’
  8. 2018.04.15 헝가리는 왜 포퓰리즘의 덫에 빠졌을까
  9. 2018.03.04 이상한 포퓰리즘, 이탈리아 오성운동이 흔드는 유럽통합 (2)
  10. 2018.02.24 미국 민주주의 흔드는 '푸틴의 저주'
  11. 2017.12.02 민족주의, 전쟁, 학살, 절반의 진실 4 - 백발의 보스니아 전범은 왜 법정에서 독약을 마셨을까
  12. 2017.11.29 민족주의, 전쟁, 학살, 절반의 진실 3 - '우리안의 라트코'를 경계한다
  13. 2017.11.29 민족주의, 전쟁, 학살, 절반의 진실 2 - 포퓰리즘의 원형, 보스니아 전쟁
  14. 2017.11.25 민족주의, 전쟁, 학살, 절반의 진실1 - 라트코 믈라디치는 과연 '발칸의 도살자'였나. (1)
  15. 2017.09.21 [김진호의 세계읽기]트럼프의 유엔연설에서 우리가 간과한 것
  16. 2017.07.26 “감정적 포퓰리즘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 인터뷰. Eva Illouz. 르몽드 170726/
  17. 2017.07.15 [김진호의 세계읽기]몽골 새 대통령의 '레지스탕스 포퓰리즘'
  18. 2017.06.20 [김진호의 세계읽기]마크롱의 '스타트업(Start-up) 정부'에 진실의 순간은 9월
  19. 2017.05.08 [프랑스대선]마크롱과 오바마의 대선 승리연설 비교해 보니...
  20. 2017.05.02 대선, 한국은 세종대왕 간의 대결, 프랑스는 빅토르 위고와 리셜리외의 승부
  21. 2017.05.01 프랑스판 강남좌파...대선 유력주자 마크롱 인물탐구
  22. 2017.04.26 선명한 포퓰리즘과 흐릿한 중도 사이에 놓인 프랑스
  23. 2017.04.25 마크롱의 승리? 프랑스 대선 결과 뒤집어보기
  24. 2017.04.24 어떤 국가를 꿈꾸는가-프랑스 대선후보들이 꿈꾸는 국가 정체성
  25. 2017.04.23 프랑스 대선, 11개의 당이름에 담긴 프랑스의 고민
  26. 2017.04.21 자본시장은 왜 포퓰리즘을 두려워하나
  27. 2017.04.19 [멜랑숑의 좌파 포퓰리즘2]프랑스 좌파 포퓰리즘의 전위에는 분노한 노인들이 있다
  28. 2017.04.14 [멜랑숑의 좌파 포퓰리즘1]프랑스 대선판을 뒤흔드는 또 하나의 돌풍
  29. 2017.04.13 [마린의 포퓰리즘은 어떻게 성공했나 3]현실이 된 포퓰리즘, 언제까지 타자화할 것인가
  30. 2017.04.05 [마린의 포퓰리즘은 어떻게 성공했나 2] ‘잊힌 그들’의 마음을 얻다 (1)

과연 트럼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는 단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다.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도 럭비공의 형태와 운동 방향을 모를 때나 놀랄 일이다. 트럼프는 더 이상 예측 불가능하지 않다. 세계는 또다시 트럼프를 오독했다. “아무리 트럼프라도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또다시 무너졌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가 승리만 하면 미국 민주주의가 기사회생할 것이라는 믿음이 기성 정치, 제도언론이 갖고 있던 희망 섞인 확증편향이었음을 입증한다.

 

"성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향군인의 날이었던 지난 11일 버지니아 앨링턴 국립묘지 내 무명용사의 무덤에 헌화한 뒤 추념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비가 내려서인지 잔뜩 찡그린 표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일주일이 넘도록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EPA연합뉴스

 

대선 불복은 기실 ‘트럼프의, 트럼프에 의한, 트럼프를 위한’ 결정이다. 20년 전 플로리다주 민주당 지지성향 카운티의 재검표 중단에도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면서 “이게 미국이다(This is America)”라고 선언했던 멋진 나라는 지도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한 번 속으면 네 탓이지만, 두 번 속으면 내 탓임을 인정해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무대 위 조명은 바이든을 비추겠지만, 대선 이후 제46대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기까지 70여일의 더블 캐스팅 주인공 또는 ‘주연 같은 조연’은 트럼프일지도 모른다.

 

■주연 같은 조연, 트럼프

 

트럼프가 ‘트럼프답게’ 행동할 여지는 우선 선거 결과에 있다. 바이든은 결코 선거판을 지배하지 못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성향의 주였지만,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선택했던 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미시간 등 이른바 ‘파란 장벽(Blue Wall)’주에서 바이든은 모두 앞섰다. 4년 전 힐러리 클린턴처럼 플로리다에서 헛된 발품을 파느니, 실지 회복에 유세를 집중하겠다는 전략의 성공이기도 하다. 하지만 2.7%포인트 차(50.6% 대 47.9%, 개표율 99%)를 기록한 미시간을 제외하곤 근소한 차이다. 폭스뉴스에 따르면 11일 현재 위스콘신(0.7%포인트)과 펜실베이니아(0.8%포인트)는 99% 개표 결과 격차를 넓히고 있다. 하지만 애리조나와 조지아에서는 0.3%포인트(개표율 99%)로 앞서고 있다.

 

지지자들은 트럼프를 닮아간다. 올해 미국 대선의 승자는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로 보도되기 시작한 지난 7일 조지아주 애틀란타의 주의사당 앞에 몰려나온 트럼프 지지자들이 ‘사기를 중단하라’ ‘가짜뉴스’ 등의 푯말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4년 전 석패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지지자들은 눈물을 떨궜지만, 트럼프 지지자들은 되레 분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아무리 차이가 적어도 결과에 승복하는 게 통상적이지만, 트럼프는 결코 통상적인 후보가 아니다. “억울하다”고 동정심을 유발하는 대신, “불법선거”라며 되받아친다. 그리곤 생뚱맞게 화를 낸다. 바이든이 사실상 정권인수에 나선 지난 주말 내내 버지니아 트럼프내셔널골프클럽에서 공놀이를 했다. 9일, 지난여름부터 눈엣가시였던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을 해임했다. 트럼프가 내년 1월 정권 이양 전에 손볼 대상으로는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FBI) 국장과 지나 헤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꼽힌다. 기성 권력을 상징하는 ‘정부 내 정부(Deep State)’가 임기 내내 발목을 잡았다는 게 트럼프의 주장이다.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을 공격할수록 지지층이 환호하는 현실이 중요하다. 화이자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의 승인 사실을 늦게 공표했다면서 식품의약국(FDA)에도 트위터 총격을 퍼부었다. 대선 이후 트럼프의 존재는 바이든의 안정적인 정권인수 못지않게 궁금한 미래다.

 

■ 법정 다툼,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바이든의 승리연설에도 공식 개표는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 가장 큰 관심은 재검표에 쏠린다. 주 개표가 완료된 뒤 재검표 돌입 가능성이 높은 주들은 위스콘신과 조지아, 네바다이다. 위스콘신은 99% 개표율에 표차가 0.7%포인트이다. 1%포인트를 넘어서지 않으면, 한쪽 후보의 요청으로 재검표가 가능하다. 조지아는 0.3%포인트(개표율 99%)에 머물러 재검표가 불가피하다. 재검표 기준(0.5%포인트 이하) 안에 있기 때문이다. 애리조나는 표차가 0.1%포인트 이상이면 재검표를 불허하며, 펜실베이니아는 재검표 기준(0.5%포인트)을 벗어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향군인의날이었던 지난 11일(현지시간) 버지니아 알링턴 국립묘지 내 무명용사의 무덤에 헌화한 뒤 추념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내리는 비가 양복 상의를 적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네바다는 표차와 상관없이 재검표 요구가 가능하다. 위스콘신·조지아·네바다의 선거인단을 모두 합하면 32명으로, 트럼프가 확보한 선거인단 232명(알래스카 3명과 노스 캐롤라이나 15명 포함)에 더해도 승패는 바뀌지 않는다. 바이든은 290명이다. 플로리다주에서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와 앨 고어 민주당 후보의 최종 표차가 537표(0.009%)에 불과했다. 그나마 연방대법원 결정으로 재검표가 중단된 결과다.

 

하지만 악마는 늘 복잡한 디테일에 똬리를 튼다. 카운티·주 법원, 주정부, 연방대법원의 개입이 각각 변수로 작용한다. 트럼프의 전략은 “각 주정부의 선거결과 공표를 저지하는 데 있다(월스트리트 저널)”. 재검표 말고도 우편투표 소인 인정, 참관인의 불충분한 현장접근, 투표용 필기도구의 불량 등 법적 시빗거리는 많다. 트럼프와 공화당이 소송을 걸겠다고 밝혔거나 이미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은 10여건이다. 네바다·펜실베이니아·미시간·조지아 등 바이든이 앞섰거나 승리한 4개주에 집중된다.

 

일부 주의 재검표와 각종 송사, 여기에 지지층의 거친 시위가 이어지면,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선 불복 후폭풍은 지속된다. 그렇지 않아도 대선 이후 코로나 19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 뒤숭숭한 상태다. 트럼프는 골프만 치고 다녀도 충분히 소란스러운 잡음을 낼 수 있는 것이다. 먼지가 가라앉고 나면, 지지자들에겐 트럼프가 스스로를 기성 엘리트 제도의 횡포에 희생당했다는 '신기루'가 기정사실이 될 게 분명하다. 그가 백악관을 떠나도 제도권 밖에서 가슴을 탕탕 치며 괴성을 지르는 ‘우두머리 오랑우탄’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정치적 자산인 동시에 제도권을 공격할 빌미가 된다. 바로, 트럼프의 노림수다.

 

한 트럼프 지지자가 지난 11월9일 펜실베이니아주 대선 개표장 밖에서 벌어진 시위도중 '합법적인 표만(개표하라)'는 구호를 들어보이고 있다. 종이박스로 만든 구호판 위에 성조기가 펄럭인다. 펜실베이나아는 대선 투표 사훌 뒤까지 도착한 우편투표지를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투표일(11월3일)까지 도착한 표만 합법적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젠더도 못 뚫은 ‘백인 애국주의’

 

공화당과 민주당, 보수 우파와 리버럴, 월스트리트(금융산업 및 거대기업)와 메인스트리트(전통산업 및 중소기업), 일자리, 총기 소지 찬·반, 낙태 및 피임의 문화 논쟁, 증세와 감세, 공공 건강보험 확대 또는 트럼프가 3년 전 폐지한 지불가능한 건강보험법(ACA·오바마케어) 부활 등은 늘 존재하는 미국 대선의 쟁점들이다. 이번 선거만의 특징으로 예상된 이슈는 코로나19 대확산과 인종 갈등 및 젠더(性) 문제였다. 결과는 미국 밖에선 의외이지만, 미국 안에선 상식에 가깝다. 민주당 지지표는 코로나19 대확산을, 공화당 지지표는 경제활동 재개를 중시했다. 에디슨리서치의 출구조사 결과 두 가지 이슈 중에선 경제와 일자리가 주목을 받았다. 응답자 10명 중 3명은 경제를, 10명 중 2명은 코로나19를 최대 이슈로 꼽았다. 

 

인구 100만명당 코로나19 감염자가 500명이 넘어 바이러스 확산이 가장 심각한 11개주 가운데 바이든이 우세한 주는 위스콘신과 일리노이 등 2곳에 그쳤다. 몬태나·노스다코타·사우스다코타·아이다호·와이오밍·유타·네브래스카·캔자스·알래스카 등 9개 주는 트럼프를 택했다. 이들 주가 전통적으로 공화당 지지성향인 레드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는 않다고 볼 수도 있다. 트럼프 투표자의 78%는 바이러스 위험이 있더라도 경제활동 정상화를, 바이든 투표자의 79%는 경제 타격에도 코로나19 차단을 각각 선택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건강보험 개혁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오히려 백인 저소득층에서 강한 반대에 직면했던 것을 상기해보면 지극히 미국적 현상이다. 하루 최대 확진자가 20만명이 넘고, 사망자가 23만여명에 달했음에도 보건의료는 철저히 사적 영역에 속한다는 ‘미국적 상식’을 드러낸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동안 쏟아져 나온 그에 대한 비판서적들. 마이클 울프의 <화염과 격노> 밥 우드워드의 <격노> 등의 표지가 보인다. AP통신은 지난 9일 이 사진을 배포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난 뒤에도 그에 관한 책의 출판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AP연합뉴스

 

■상식을 배반한 결과? ‘미국적 상식’?

 

 

젠더 문제는 이번 대선의 승부를 가를 최대 변수로 예상됐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대선 국면에 공개된 트럼프의 저속한 여성폄하 발언으로 여성들의 반트럼프 지수가 높아진 지 오래다. 트럼프 취임식 다음날 벌어진 ‘2017 여성 행진(Women’s March)’에는 미국 내에서 최대 520만명이 참가했다. 같은 해 10월 할리우드에서 터져나온 미투(#MeToo) 운동은 미국 사회를 혁명적으로 흔들어놓았다. 선거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특히 도심 교외지역에 거주하는 여성들이 트럼프를 심판할 가장 강력한 유권자층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에디슨리서치 조사 결과 백인 여성의 55%는 트럼프를 찍었다고 답했다. 2016년 대선의 52%보다 되레 늘었다. 백인 남성은 58%였다. 트럼프를 찍은 흑인 여성표 역시 2016년 대선의 4%에서 8%로 갑절이 늘었다. 흑인 남성표는 13%에서 18%로 각각 늘었다. 중남미계 라티노 여성의 28%와 남성 36%도 트럼프를 택했다. 이 역시 멕시코 장벽과 가족간의 생이별을 낳았던 트럼프의 우악스러운 반 이민 정책에도 지난 대선보다 늘어난 수치다. 젠더에 따른 민주당 후보 지지 비중은 1980년 이후 평균을 벗어나지 않았다. “대선에선 정치가 젠더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는 설명(워싱턴포스트)으론 납득이 되지 않는 결과다. 흑인 유권자들의 트럼프 지지 증가는 지난 6월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과 이후 미국사회를 달군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 사태를 무색하게 하는 결과다. 성적 소수자(LGBT) 유권자들의 트럼프 지지가 28%로 4년 전에 비해 두배 많아진 것 역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트럼프가 후안무치하게 보여준 여성혐오와 반유색인종, 반LGBT 정서에도 불구하고 수컷다움을 숭상하는 ‘백인 부족장주의(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찰스 블로)’는 여전히, 미국 사회를 특정 짓는다.

 

공화당의 트럼프 대통령후보/펜스 부통령후보의 티셔츠를 입은 꼬마가 조지아 주도 애틀란타의 주의사당 앞에서 지난 11월11일 벌어진 선거불복 시위에서 어른들의 구호를 따라하고 있다. 미국민의 반 유색인종, 반 자유무역, 반 세계화 정서가 줄어들지 않는 한 포퓰리즘이 제2, 제3의 트럼프로 구현될 가능성은 늘 남아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세기 마오쩌둥의 공산주의 유격대만 물과 물고기의 관계처럼 서식지가 필요한 게 아니다. 포퓰리즘도 마찬가지다. 2009년 건강보험 개혁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확장돼온 포퓰리즘의 영역은 바이든의 승리에도 미국의 절반에서 건재함이 드러났다. 2016년 대선을 지배한 반세계화·반이민·반자유무역이 이번 선거엔 이슈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에 가렸을 뿐이다. ‘3반(反)’에 백인 우월주의 및 남성 우월주의가 애국주의라는 이름으로 덧씌워진 포퓰리즘의 토양은 비옥하다. 민주당이 토양을 뒤엎지 않는 한, 미국사에서 ‘트럼프 4년’이 해프닝이 아니라, ‘바이든 4년’이 예외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덕을 톡톡히 본 바이든은 근본적인 변화 대신, ‘더 나은 트럼프 이전’으로의 복귀만을 약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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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것은 빌어먹을 서막에 불과하다(Past is fucking Prologue).”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40년 지기이자 최고의 선거운동 책사인 로저 스톤(68)의 신조다. 3년 전부터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고 있는 다큐물 <킹메이커 로저 스톤(Get me Roger Stone)>에 나오는 ‘스톤의 법칙들’ 중 하나다. 다음달 3일 미국 대선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주류·비주류 미디어가 대량 생산하는 보도물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DNA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넷플릭스 다큐물이 더 다가온다. 트럼프는 지난 7월 위증을 비롯한 7가지 혐의로 교도소에서 40개월형을 살아야 했던 그를 전격 석방했다. 공화당 내에서조차 비난이 쏟아졌지만, 스톤을 감형해 석방한 것은 그만큼 트럼프에게 그의 존재가 절실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아무리 욕을 먹어도 어차피 ‘빌어먹을 지난 일’이 될 테니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24일 플로리다주 잭슨빌의 세실 공항에서 선거유세를 하고 있다. 트럼프 입 끝에서 ‘미국(성조기)’이 흔들리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잭슨빌/로이터연합뉴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 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트럼프를 앞서고 있다. 당선에 필요한 선거인단은 270명(전체 538명). 월스트리트저널이 소개한 쿡 폴리티컬 리포트·인사이드 일렉션·내탄 곤잘레스 및 래리 사보토의 유리구슬(버지니아대)의 이달 초 공동예측에 따르면 바이든은 222명의 안전(188명) 또는 우세, 트럼프는 125명의 안전(77명) 또는 우세를 보이고 있다. 중간지대 선거인단 191명을 지지 성향으로 보면, 바이든 68명, 트럼프 56명, 초경합 67명이다. 하지만 2016년 대선에서 예측이 보기 좋게 빗나간 탓에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는 금이 갔다. 트럼프의 역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민주당 텃밭을 잠식하고, 중간지대 선거인단을 최대한 끌어온다면 무리한 예상은 아니다.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생각해야 하는 ‘트럼프 시대’의 미국 대선을 종래 잣대에 의지해 가늠한다면 허방 짚기 십상이다. 스톤이 정치적 속임수라는 금단의 열매를 처음 맛본 것은 놀랍게도 8세 때인 1960년 대선 정국에서다. 가톨릭 신자인 부모가 존 F 케네디 후보를 지지하고 있음을 알게 된 스톤은 학교 식당에 줄을 선 학생들에게 “(리처드) 닉슨은 토요일 등교를 지지한다더라”라는 가짜뉴스를 퍼뜨린다. 꼬마들을 상대로 한 모의투표에서 케네디가 압도적 우세를 보이자 지역 언론에 소개됐다고 한다. ‘가장 더러운 사기꾼’임을 자인하는, 미래의 선거전략가가 탄생한 순간이다. 가짜뉴스와 언론 활용은 그의 주무기다. 지난 대선에서 스티브 배넌의 브레이트바트 뉴스를 비롯한 비주류 매체들을 변방에서 중심으로 끌어당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4일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자들을 상대로 연설을 하면서 승리의 V자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디모인·포트로더데일 AFP연합뉴스

 

민주당 ‘반트럼프’ 정강, 공화당은 ‘4년 전 그대로’…사라진 공약 경쟁

40여년 전부터 사업가에 불과한 트럼프에게서 대통령의 소질, 정확히 대선 싸움에서 승리할 소질을 발견한 것도 스톤이었다. 트럼프가 개혁당 후보 등록 검토위원회를 조직, 몇 달간 유세활동을 벌였던 2000년 대선 당시부터 선거전략을 총지휘했다. 2016년 트럼프의 대선 당선 뒤 그는 “1988년부터 내가 꿈꿔온 것이다. 트럼프에게는 대통령이 될 만한 그릇(size)과 용기, 배짱이 있다고 늘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선거전략가가 아이디어를 준다고 모든 후보가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건 아니다. 스톤이 등 뒤에 초상화 문신을 해넣을 정도로 숭배하는 리처드 닉슨은 ‘침묵하는 다수’란 말을 남겼다. 로널드 레이건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법과 질서의 후보’라는 구호로 보수 표심을 자극했다. 스톤은 “이전에 다른 사람들이 발견했던 것들을 단지 알려줬을 뿐이다. 그걸 활용해 대통령직을 거머쥔 것은 트럼프”임을 강조한다. 트럼프가 재선 유세에서도 즐겨 동원하는 표현들이다.

 

선거를 보름여 남기고 이미 상당수 주에서 사전 우편투표가 진행 중인 시점에 스톤을 거론하는 것은 그가 정한 ‘스톤의 법칙들(Stone’s Rules)’이 트럼프 유세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의심 때문이다. 트럼프 캠프뿐 아니라 미국 사회도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것도 인정하지 마라, 죄다 부인하라, 역습하라”는 스톤의 법칙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이 9월29일 1차 대통령 후보 TV토론이었다. 막말과 끼어들기로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했던 토론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이게 미국인가”라고 탄식했다. 하지만 선거판에서건 외교무대에서건, ‘트럼프 시대’가 주는 드문 미덕의 하나는 날것 그대로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렇다. 바로 그게 미국이다. 지금까지 그럴듯하게 포장돼왔을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40년 지기이자 선거전략가인 로저 스톤이 지난 7월10일 플로리다주 포트로더데일의 집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두 손으로 V자 제스처를 하고 있는 모습. ‘로저 스톤을 석방하라’고 쓰인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 양손 V자 제스처는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디모인·포트로더데일 로이터연합뉴스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상대방 외모나 생김새를 놓고 비방하는 것은 비열한 짓이다. 권투선수가 벨트 아래를 가격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작금의 미국 정치문화는 서로 벨트 아래로 선방을 날리고, 상대가 비틀거리는 순간 승기를 잡으려는 사각의 링이 돼버린 지 오래다. 심판은 보이지 않는다. 반트럼프 진영 역시 이에 못지않다. 대놓고 트럼프를 조롱하거나, 원색적으로 맞대응해왔다. 미국 선거 역사상 가장 더럽고 추잡한 선거판이 진행 중이다. 상대 후보를 마구 해치는 정치가 트럼프 시대의 ‘새 표준’이다.

 

‘상대 후보가 상처받기만 한다면…’ 양쪽 진영 모두 가세한 막말싸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물론 주류 언론도 막말싸움에 가세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는 트럼프의 피부색을 빗댄 ‘오렌지맨’과 적은 숱을 가리듯 옆으로 빗어넘긴 헤어스타일이 화제에 오르고, 월스트리트저널엔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음성 판정을 받은 트럼프가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 없다는 강변이 버젓이 실린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9월30일 미네소타주 덜루스 국제공항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당연히 공약 경쟁은 사라졌거나, 의미를 잃었다. 공화·민주 양당은 4년마다 대선·총선이 있는 해 여름 전당대회에서 발표하는 정강(Party Platform)으로 국내외 현안에 대한 당 입장을 공개한다. 선거 구호와 정치적 수사에 묻히기 쉬운 당의 우선순위와 정책적 시사점을 준다. 민주당 전국위원회(DNC)는 7월31일 ‘반트럼프’를 골자로 91쪽의 정강을 내놓았다. 첫 번째 공약의 주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부터 국민과 경제를 보호하겠다”는 것이었다. 공화당은 이례적으로 2016년 정강을 원문 그대로 다시 채택했다. 공화당 전국위(RNC)는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어젠다’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확인하면서, 새 정강은 다음 대선인 2024년에나 내놓겠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재선된다면, 제46대 대통령의 국내외 정책 내용과 방향은 지난 4년과 같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를 두고 “짐이 곧 국가”라는 프랑스 루이 14세의 말에 기대어 트럼프가 절대군주가 됐다는 비아냥(브루킹스연구소)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차피 복잡한 정책 내용은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을 챙겨 읽는 먹물들이나 관심을 둘 사안이다. 트럼프의 콘크리트 지지층인 남부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중서부 산업 황폐화 지역의 ‘성난 백인 남자들’은 종이 활자 대신 트위터 메시지나 트럼프의 말 한마디에 더 열광한다. 그 점, 무정강은 현실적이다. 저소득·저학력 백인뿐이 아니다. 찰스 코크 코크인더스트리 회장을 비롯한 상당수 월가의 백인 자본가들은 대선을 코앞에 두고 진행 중인 에이미 코니 배럿 연방대법관 후보자의 무난한 상원 인준을 위해 소리 소문 없이 지갑을 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0월18일 네바다주 카슨 시티 공항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지층에게 트럼프의 또 다른 미덕은 멕시코 국경의 장벽 건설,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및 보호무역, 반중국·반이민·반무슬림 정책, 동맹 때리기, 기후변화 무시, 고용 증가 등 약속을 잘 이행해왔다는 점이다. 구체적 수치나 원인은 중요치 않다. 혹 충분히 이행하지 못했다면 트럼프 탓이 아니다. 국가 속 국가(Deep State)로 군림해온 기득권층과 제도권 언론 탓이다. 얼추 국민 두 사람 중 한 명이 스톤의 규칙, 트럼프의 주문에 단단히 홀린 미국의 현주소다.

 

4년 전 트럼프를 당선시킨 포퓰리즘의 양대 동력인 분노와 증오는 여전히 유효하다. 굳이 스톤의 법칙이 아니더라도 선거판에서 증오는 늘 사랑을 이긴다. 다만 코로나19 대확산 속에 불안감을 느끼는 백인 노년층의 이탈 심리와 지지층 사이에서 승자의 여유 또는 안도 심리가 확산된다면, 트럼프 캠프엔 재앙이 될 수 있다. 트럼프가 이번에도 “미국이 위기에 처했다”며 공포심리를 부추기는 까닭이다.

 

바이든은 결코 변화의 핵이 아닌 것 같다. 버락 오바마나 힐러리 클린턴과 같은 주류 후보나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등 비주류 후보들이 몰고다녔던 특유의 바람이 없다. 트럼프와 바이든 사이에서의 선택이라기보다 친·반 트럼프를 가려내는 선거의 성격이 짙어 보인다.

 

지난 1일 미국 미네소타주 덜루스 국제공항에서 유세를 마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용기에 오르기 전 지지자들에게 오른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덜루스/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은 대선 다음날인 11월4일은 물론, 한 달 뒤인 12월4일에도 대통령 당선자 얼굴을 보지 못할 수 있다. 트럼프는 선거 결과 불복 의사를 노골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스톤은 선거에 패하면 계엄령 발동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행 여부는 중요치 않다. 상대가 당황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공화당 주도 상원은 선거가 연방대법원으로 갈 것에 대비, 배럿 연방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준청문회를 서둘러 진행하고 있다.

 

그러한 트럼프의 요구에 적당히 귀 기울이면서 평화와 번영을 모색하는 게 동아시아 분단국의 운명이라는 현실이 결코 유쾌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트럼프의 대외정책 자체가 ‘원칙화된 현실주의’다. 바이든이 당선된다고 해도 경제적·정치적으로 중국을 봉쇄하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유사한 정책이 나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트럼프가 되건, 바이든이 되건 ‘익숙한 미국’을 보게 될 것이라는 점이 예측 가능한 유일한 미래다.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와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백중지세를 보였던 2000년 대선은 플로리다주에서 불과 537표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 적지 않은 미국 언론은 2000년 11월22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 선거사무실에서 벌어진 ‘브룩스 브러더스 난동’이 승부를 갈랐다고 분석했다. 일단의 폭력시위대가 사무실에 난입해 직원을 폭행하고 소란을 피우자 개표작업은 결국 법원이 허락한 시한 내 끝내지 못한 채 중단됐다. 당시 폭력시위를 조직, 투입한 장본인이 바로 스톤이었다. 트럼프가 스톤을 사면한, 진짜 이유일지도 모른다. “법의 경계를 넘지 않는 선에서 나의 후보를 당선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일을 할 것이다.” 스톤이 석방된 뒤 일성으로 내놓은 자신의 규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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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월 말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각국의 포퓰리스트 정당들과 선거 연합을 주도하고 있는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지난 8일 밀라노에서 유럽의회 포퓰리스트 교섭단체인 ‘자유와 직접민주주의의 유럽(EFDD)’의 멤버인 독일, 핀란드, 덴마크 극우 포퓰리즘 정당 대표들과 손을 맞잡고 있다. 밀라노 | 로이터연합뉴스

연민보다는 증오, 연대보다는 차별, 포용보다는 배제가 현실정치에서 힘이 세다. 포퓰리즘 시대에 더욱 선명해진 현실정치의 속성이다. 또 한 가지 원칙이 있다. 분노는 아무리 정당해도, 증오를 이기지 못한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포퓰리즘 연정을 이룬 이탈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오성운동과 북부동맹이라는 두 개의 이탈리아 포퓰리즘 정당이 던지는 함의는 알프스 산맥을 훌쩍 뛰어넘는다. 올해 유로 포퓰리즘의 큰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한 지붕 두 가족의 포퓰리즘 연정

작년 오성운동의 극우연정 파트너가 된 북부동맹, 1년 만에 제1당 부상
5월 유럽의회 선거도 약진 전망…중심에 선 ‘반 이민 선동가’ 살비니
“의석 3분의 1 확보 가능” 기성 극우 포퓰리즘 정당들과 세 규합 서둘러
스스로 “시민운동” 앞세운 오성운동은 결이 다른 별도의 연대 모색

현 이탈리아 연정이 출범한 것은 지난해 6월이다. 총선 득표율은 오성운동(32.7%)과 민주당(22.9%), 북부동맹(17.4%), 포르차(전진) 이탈리아(FI·17.4%) 순이었다. 이 중 오성운동과 북부동맹이 손을 잡고 연정을 꾸렸다. 이른바 ‘변화의 정부’다. 득표율에 따라 오성운동에서 주세페 콩테가 총리, 루이지 디 마이오 당대표(32)가 부총리 겸 경제·노동·사회 장관을 맡고, 북부동맹에서 마테오 살비니 대표(46)가 부총리 겸 내무장관을 맡는 방식으로 권력을 나눴다.

하지만 연정 출범 이후 두 정당의 세는 역전됐다. 올들어 지난 3월 말까지 치러진 3번의 지방선거에서 오성운동은 참패하고, 북부동맹이 주도한 중도우파 연합은 압승을 거뒀다. 지방선거가 있었던 바실리카타주(3월), 사르데냐주(2월), 아브루초주(2월)는 모두 ‘성난 남부’다. 이탈리아 남부는 높은 실업률과 낮은 산업기반, 북아프리카를 넘어오는 이민자들의 문제 등 3중고를 겪고 있다. 북부동맹과 중도우파를 표방하는 ‘전진 이탈리아’, ‘이탈리아의 형제들’ 등으로 이뤄진 우파연합이 선거를 모두 휩쓸었다. 특히 북부동맹은 여러 여론조사에서 30%를 넘는 지지율로 제1당으로 부상했다.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분노’와 ‘증오’의 승부

포퓰리즘은 나라마다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반세계화와 반엘리트, 반기성제도가 공통된 출발점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 반자유무역협정(FTA), 반기성권력의 흐름도 겹친다. 유럽연합(EU)의 통합과정은 세계화 속 또 다른 세계화였기에 유로 포퓰리즘은 반세계화와 함께 반유럽통합을 외친다. 하지만 유로 포퓰리즘을 속성재배한 숙주는 단연 반이민 정서다. 2015년 시리아와 북아프리카에서 대규모 난민이 몰려들면서 유럽 정치지형을 흔들었다. 미국과 유럽의 반이민, 반이슬람 정서는 정확하게 증오와 차별, 배제로 구체화된다. 증오와 공포는 동전의 양면이다. 여기에 소수 무슬림 이민자들이 기독교 전통을 위협한다는 공포를 선동하면 폭발력이 커진다. 이탈리아에서 이러한 특성을 골고루 갖춘 극우 포퓰리즘 정당은 북부동맹이다.

 오는 5월 말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각국의 포퓰리스트 정당들과 선거연합을 주도하고 있는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오른쪽 두번째)가 지난 8일 밀라노에서 유럽의회 포퓰리스트 교섭단체인 ‘자유와 직접 민주주의의 유럽(EFDD)’의 멤버인 독일, 핀란드, 덴마크 극우 포퓰리즘 정당 대표들과 손을 맞잡고 있다. 밀라노/로이터연합뉴스

오성운동 역시 반유럽, 반세계화, 반기성제도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포퓰리즘 정당이다. 불법이민에 반대하지만, 상대적으로 반이민 정서가 미지근하다. 반부패, 반빈곤을 우선한다. 반대로 북부동맹의 살비니 부총리는 이민자 문제를 다루는 내무장관을 겸하면서 강한 행동과 선동으로 반이민 정책을 펼쳐왔다. 지난해 6월 취임하자마자 “튀니지는 범죄자들만 이탈리아로 보낸다”고 말해 외교적 잡음을 일으켰다. 구호단체 국경없는의사들(MSF)과 지중해 SOS가 난민 600명을 싣고 온 선박의 이탈리아 입항을 막았다. 같은 달 집시를 불법이민자로 규정하고, 집시 인구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역풍을 맞았다. 2018년 나이지리아 이민자에게 살해된 이탈리아 젊은 여인 파멜라 마스트로피에토의 이름을 자주 거론하면서 증오를 부추긴다.

오성운동은 부패한 정치권에 대한 분노가 출발점이다. 기본소득(시민소득) 제도를 도입하고, 연금 수령 연령을 낮추는 한편 감세정책을 시행했다. 디지털 직접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온라인 의견 수렴 플랫폼 ‘루소’에서 주요 정책을 결정한다. 반부패 운동인 마니 폴리테(깨끗한 손)의 전통이 살아 있는 이탈리아 유권자들이 작년 총선에서 오성운동을 제1당으로 만들어주었던 요인이다. 하지만 분노는 살비니가 부추긴 증오를 이기지 못했다. 오성운동은 다양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끌어모은 ‘포괄 정당(Big Tent)’의 약점도 갖고 있다. 반이민을 포함한 주요 현안에 대한 모호한 입장 탓에 선명한 극우 포퓰리즘의 북부동맹에 밀린다.

똑같이 반유럽을 지향하지만, 오성운동이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를 넘지 못하도록 한 EU의 재정정책 반대에 집중하는 데 비해 북부동맹은 반이민 및 난민정책에 화력을 집중한다. 지난달 23일 이탈리아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콩테 총리 및 디 마이오 부총리와 맺은 투자협정 조인식에 살비니는 불참했다. 주요 7개국(G7) 국가 중 처음으로 중국의 일대일로(BRI) 투자자본을 받아들인 정부 노선과 사뭇 다른 길을 택한 것이다.

오성운동과 북부동맹이 드물게 일치하는 것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혐오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경모한다는 점이다. 특히 지난해 8월 유로 포퓰리즘의 확산을 ‘나병’의 확산에 비유한 마크롱은 동네북이 된 지 오래다. 디 마이오 부총리는 “이민자들을 뒤에서 내치는 위선자야말로 진짜 나병”이라고 비난했고, 살비니는 마크롱을 ‘수다쟁이’로 비하했다.

5월23~26일 열리는 유럽의회 선거 포스터.

 

■북부동맹과 오성운동이 주도하는 ‘포퓰리즘 국제연대’

올해 유럽에서 떠오르는 스타는 단연 북부동맹의 살비니다. 유럽 의회가 오는 5월23~26일 선거를 앞두고 28개 회원국의 국내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 3월 발표한 득표 예상에서 북부동맹이 전 유럽에서 가장 약진할 것으로 점쳐졌다. 전체 705석(영국의 불참 전제) 가운데 독일 기민당(29석)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의석(27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탄력을 받은 살비니는 유로 포퓰리즘의 새로운 규합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 8일 밀라노에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핀란드 극우정당 ‘진짜 핀란드’, 덴마크 인민당 대표들을 초청해 유럽의회 선거 뒤 반이민 포퓰리즘 정당들을 묶어 ‘유럽 인민과 국가 동맹(EAPN)’을 출범시킬 것이라고 발표했다. 양해각서까지 체결했다.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정당들의 연합이 장악한 EU의 ‘브뤼셀 벙커’에서 지분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더욱 강력한 반이민 정책과 유럽의 정체성 보호가 목적이다. 프랑스 극우 지도자 마린 르펜의 국민연합(RN·국민전선의 후신)과는 지난 5일 파리에서 회동, 유럽의회 선거에서 ‘상식의 혁명’을 달성하자며 연대를 다짐했다. 살비니는 지난 1월 바르샤바를 방문, 폴란드 집권 ‘법과 정의당(PiS)’과 협력을 모색하기도 했다.

물론 살비니의 꿈이 실현되기에는 몇가지 장애가 있다. 반이민·반EU·반제도에는 공감하지만 PiS와 헝가리 집권 피데스는 기독교의 뿌리를 중시하는 반면, RN은 아무리 극우라도 프랑스 정당이다. 내놓고 정교분리를 주장할 수 없다. 북부동맹과 RN 등은 친러시아 성향이 뚜렷하지만 PiS는 러시아를 경계한다. EU 이민정책에서 살비니가 이탈리아의 부담을 나누려고 하는 것도 녹록지 않다. 덴마크 인민당의 앤더스 비스티센은 그러나 “우리를 분리하는 것보다 연합하게 하는 것이 더 많다”면서 포퓰리즘 연합의 실현을 장담했다.

지난 4월5일 주요 7개국(G7) 내무장관 회의차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겸 내무장관(왼쪽)이 바쁜 와중에도 프랑스 극우 지도자 마린 르펜을 만나 회동을 가졌다. 사진은 르펜이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려놓은 것이다.

살비니의 시도는 단순히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EU의 이민정책과 재정정책에 반대하는 포퓰리즘 정당들로 전체 유럽의회 의석의 3분의 1을 확보, EU 집행위원회 고위직 인선 및 정책 결정에서 지분을 행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독일과 프랑스의 중도파가 주도해온 상대적으로 관대한 이민정책과 엄격한 재정정책에 변화를 꾀한다면 EU는 변곡점을 맞을 수밖에 없다.

유럽의회 자체 조사에서 포퓰리즘 정당은 705석 중 150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됐다. 여기에 포르차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로회의론 성향의 우파정당들이 가세하면 실현 가능한 목표다. 올해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중도우파정당연합(EPP)의 의석 점유율이 26.7%에서 2.3%로, 중도좌파정당연합(S&D)은 20.1%에서 4.7%로 각각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빈 의석의 상당 부분은 각국의 극우 포퓰리즘 정당들이 채울 것으로 예상된다.

언론 “살비니가 토론의 방아쇠 당겨”…‘결전의 무대’에 각국 이목집중

오성운동 역시 별도의 포퓰리즘 정파 및 정당들의 연대를 도모하고 있지만 결이 다르다. 디지털 직접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오성운동은 ‘정당’의 정체성을 부정한다. 스스로 시민운동임을 내세운다. 올들어 유럽에서 이러한 특성과 가장 비슷한 현상은 반기성제도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이다. 디 마이오 부총리 겸 오성운동 대표는 지난 1월 노란 조끼 지도부에 공개서한을 보내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하는 한편 유럽의회 선거연대를 제안했다. 폴란드의 록 뮤지션 파벨 쿠키즈가 주도하는 극우 정치운동 ‘쿠키즈(Kukiz)15’와 핀란드 정치운동 단체 ‘지금 운동(Movement Now·Nyt)’, 크로아티아 극우정당 ‘인간방패(Zivi zid)’ 등과 유럽의회 선거연합을 도모하고 있다. 북부동맹이 기성 극우 포퓰리즘 정당들과 연대한다면, 오성운동은 새롭게 형성되는 운동세력과 힘을 합하는 것이다. 유럽 각국의 포퓰리즘 정당 및 정치인들은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온라인 공간에서 공적 담론을 압도하고 있다.

이탈리아발 유로 포퓰리즘의 두 가지 흐름이 각국 유권자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평균 투표율 40%대의 유럽의회 선거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살비니는 분명 유럽이 찾는 지도자가 아니다. 하지만 (‘유럽의 미래’를 묻는) 토론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분명하다.”(월스트리트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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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시리아를 가르는 골란고원의 철책. 시리아 드루즈족 마을 마즈달 샴 지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골란고원 강점을 공식 인정함으로써 중동평화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EPA연합뉴스

“가자,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이 새로운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기독교 순례자들이 찾는다는 말이 아니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극우 포퓰리즘 지도자들의 성지가 되고 있다. 지난 2월19일 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 등 중부유럽 3개국 정상들이 함께 예루살렘을 찾았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안드레이 바비스 체코 총리, 피터 펠레그리니 슬로바키아 총리. 하나같이 반이민, 민족주의를 내세워 대권을 거머쥔 포퓰리스트들이다. 이들은 각각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예루살렘에 ‘외교 사무실’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가 막판에 방문을 취소해 당초 중부유럽 4개국의 연합기구인 비제그라드 그룹(V4) 정상회담을 가지려는 계획은 축소됐다. 성사됐으면 1991년 창설된 V4의 첫 유럽 밖 정상회담이 될 수 있었다. V4 정상들뿐이 아니다. 아시아 포퓰리즘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이미 작년에 다녀갔다. 작년 11월 대선에서 깜짝 당선된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이달 31일 순례 행렬에 동참한다.

외교도 거래다. 체코·헝가리·루마니아는 최근 미국의 예루살렘 대사관 이전을 비난하는 유럽연합(EU)의 성명 채택을 저지했다. 극우 포퓰리스트들이 네타냐후 총리의 본거지로 몰려가는 현상은 좌파 지식인들이 1960~1970년대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를 동경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불가리아 사회학자 이반 크라스테예프)

 

두 개의 이스라엘. 지난 27일 요르단강 서안의 베들레헴 인근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이스라엘군의 총격에 사망한 18세 청년의 장례식에서 한 소년이 시신의 뺨에 입을 맞추고 있다. 베들레햄/AP연합뉴스(왼쪽). 오른쪽 사진은 이스라엘이 1967년 중동전 이후 강점하고 있는 골란고원의 헤르몬 산에서 지난 26일 이스라엘 주민들이 스키 리프트를 타고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골란고원에 유대인들을 대거 이주시켜 정착촌과 키부츠 농장 및 각종 주민 편의시설을 건설해놓았다. 헤르몬/로이터연합뉴스

#포퓰리즘 성지가 된 예루살렘

포퓰리즘은 ‘정체성의 정치’를 지향한다. 유럽의 경우 반이민·민족주의·기독교가 정체성의 축이다.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면서 반무슬림 정서만 심화된 것이 아니다. 유럽의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 역시 동반상승하고 있다. 대표적 인물이 오르반 총리다. 그는 지난해 압승을 거둔 4월 총선 유세 중 헝가리 출신 미국인 투자자 조지 소로스를 ‘국가의 적’으로 지목했다. 시오니즘(유대인 국가) 음모론을 흘리며 소로스의 대학 설립 계획을 불허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헝가리 지도자로 홀로코스트를 방조했던 미클로스 호르티를 공개적으로 칭송하기도 했다. 당연히 헝가리 유대인들의 적이다. 그런 그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다시 이스라엘을 찾았다.

극우 포퓰리즘의 또 다른 특성은 역사에서 증오와 원한의 소재를 기막히게 찾아낸다는 점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 분야의 선두주자다. 그는 V4 예루살렘 정상회의 전 주에 하필 바르샤바 방문에 나서면서 폴란드인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지난 14일 바르샤바 중동평화안보회의 연설에서 “폴란드인들은 나치에 부역했다”는 말을 내놓은 것이다. 네타냐후는 “(일부) 폴란드인들(Poles)을 지칭했을 뿐 폴란드 국민(The Polish)을 뜻한 게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지 못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겉으론 분노하면서도 외교장관을 대신 이스라엘에 보내는 ‘성의’를 보였다. 오르반과 모라비에츠키의 경우는 각각 역사에서 상대에 대한 증오의 재료를 캐내면서도 현실에선 생뚱맞게 가깝게 지내는 포퓰리스트들의 아이러니를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네타냐후는 오르반을 “이스라엘의 진정한 친구”라고 치켜세운다. 

예루살렘과 다마스커스, 어디가 가까운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영토로 공식 인정한 지난 25일 골란고원 벤탈 산의 관측소에 서 있는 표지판.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는 60㎞,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은 160㎞라고 적혀 있다. 마운트 벤탈 관측소/로이터연합뉴스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마약 범죄 용의자들을 살해해 온 두테르테 대통령은 자신을 아돌프 히틀러에 빗대면서 “300만 마약 중독자들을 기꺼이 학살하겠다”고 말해 유대인들의 홀로코스트 감수성을 건드렸다. 하지만 그 역시 네타냐후의 절친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마음속으론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면서 카메라 앞에만 서면 “좋은 친구”라면서 활짝 웃는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정치인이란 원래 그렇다는 일반론으론 납득이 안된다. 그 답의 일단은 엉뚱하게 지난해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무슬림 여성 최초로 하원의원에 당선된 일한 오마르(민주, 미네소타)가 내놓았다. 

#트럼프-네타냐후의 ‘벤자민 동맹’

오마르 의원은 지난 2월 트위터 메시지에서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미국 정치인들을 언급하면서 “모두가 벤자민의 아기들”이라고 썼다. ‘벤자민’은 벤자민 프랭클린이 그려진 100달러 지폐를 말한 것이다. 미국 내 최대 로비단체인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가 미국 정치인들의 이스라엘 지지를 끌어낸다는 말끝에 ‘금기’를 건드렸다. 당연히 ‘벤자민’에 눈이 멀어 이스라엘 역성을 드는 정치인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그중 가장 크게 반발한 사람이 유대인 정치자금을 가장 많이 받는 정치인일 터, 바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마르에게 “하원의원에서 사퇴하라”며 발끈했다. 오마르는 억지 사과를 하면서도 “유대인의 동맹들과 동료들이 고통스러운 역사를 알려주었다”며 말속에 ‘뼈’를 넣었다. 
 포퓰리스트들의 드문 미덕 중의 하나는 끊임없이 서로를 밀어주고 당겨주며 공생을 도모한다는 점이다. 국경을 넘는 연대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이 입증하듯 본래 좌파의 전유물이었다. 작금의 세계에서는 그러나 ‘극우 포퓰리즘 인터내셔널’이 확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5일(현지시간) 백악관 외교접견실에서 골란고원이 이스라엘의 영토임을 확인하는 포고령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바로 뒤 왼쪽부터 유대인 사위이자 중동정책 설계자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박수를 치고 있다. 워싱턴/EPA연합뉴스


트럼프는 지난 25일 이스라엘이 1967년 중동전 이후 불법 강점하고 있는 골란고원은 이스라엘 영토라고 확인하는 포고령을 발표했다. 이스라엘 총선을 불과 보름 앞두고 워싱턴을 방문한 네타냐후와 자신의 유대인 사위이자 중동정책의 설계자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나란히 지켜보는 가운데 집무실 책상에서 서명을 했다. “우리는 말보다 더 중요한 행동으로 반유대주의라는 독(poison)에 맞설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누가 봐도 총선을 앞둔 네타냐후를 지원하기 위한 간접유세였다. 유럽연합(EU)을 필두로 세계는 트럼프의 돌출 행동에 또 한번 경악했다. 골란고원과 요르단강 서안, 동예루살렘 등 이스라엘의 점령지는 중동 문제 해결의 열쇠였다. 지난 수십년 동안 겉돌고 있을지언정 이스라엘이 점령지를 내놓고 그 대신 중동평화를 조성하자는, 영토와 평화의 맞교환(Land for Peace) 원칙은 국제사회가 품어온 희망의 끈이기도 했다. 시리아의 부자(父子) 대통령 바샤르는 대를 이어 이스라엘을 상대로 골란고원의 반환을 요구해왔다.

트럼프는 지난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공식 인정한 데 이어 이번엔 골란고원이 이스라엘 영토라고 확인한 것이다. 수년간 이슬람국가(IS)에 시달려온 시리아는 골란고원 문제에 적극 나설 여유가 없다. 겉으론 반발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의 수니파 국가들은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국·이스라엘 진영에 올라탄 지 오래다. 공동의 적, 이란에 맞선다는 이유에서다. 중동은 다시 한번 흔들린다. 

트럼프의 내년 대선과 네타냐후의 다음달 총선을 잇는 공생의 동아줄 역시 ‘벤자민’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이를 정확히 짚었다. 그는 “(트럼프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유대인 큰손 셸던 애덜슨으로부터 더 많은 정치자금을 받으려는 욕심에서 한 결정일 뿐 어떠한 전략적 고려도 없었다”고 못박았다. 애덜슨 샌즈그룹 회장은 미국 내 최대 정치자금 후원자다. 2016년 대선 뒤 트럼프 취임위원회에만 500만달러를 쾌척했고, 트럼프 대선 캠프에도 거금을 지원했다. 재선 자금에 쫓기는 트럼프에겐 애덜슨의 지갑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

 

풍경의 역설. 이스라엘 병사들이 지난해 5월9일 골란고원에서 탱크를 일렬로 세워놓고 작업을 하고 있다. 골란고원은 중동에서도 가장 풍광이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인도-파키스탄의 분쟁지역인 카슈미르와 한반도의 비무장지대(DMZ) 처럼 분쟁지역은 많은 경우 아름다운 경치를 갖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포퓰리즘의 실험실, 이스라엘

미국을 방문했던 네타냐후는 골란고원 폭력사태 탓에 급거 귀국한 뒤 텔아비브에서 위성 생중계로 AIPAC 연차총회 연설을 했다. 그는 연설에서 “미국민 대다수가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것은 우리의 돈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벤자민(Benjamins)’에서 's'자만 뻬면 네타냐후의 이름인 ‘베냐민(Benjamin)’이 된다. 로이터 통신은 네타냐후의 말을 빗대 "벤자민이 아니라 베냐민"이라고 풍자했다. 뒤가 구린 정치인일수록 조국과 민족을 들먹인다. 이스라엘 검찰은 지난 2월28일 “뇌물수수와 불법거래 등 3가지 부패 혐의로 네타냐후 총리를 기소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총선에서 낙선하면 철창에 갈 처지다. 선거 직전의 악재에 네타냐후가 꺼내든 카드는 13년간 총리에 있으면서 탄탄히 기반을 다져온 유대 민족주의와 안보다. 네타냐후와 그의 리쿠드당은 이미 지난해 7월 크네셋(의회)에서 ‘이스라엘은 유대인 국가’라는 점을 명시한 기본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안보 역시 이스라엘 극우엔 전가의 보도다. 가자지구의 이슬람저항운동(하마스)와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 및 이란 탓에 조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렸다는 논리다. 

각국의 극우 포퓰리스트들이 예루살렘을 찾는 것은 현실 정치적 필요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투자를 끌어들여 자국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목적과 트럼프 행정부를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네타냐후를 매개로 트럼프에게 다가가려 의도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모로코 태생의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로 설명한다. 그는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네타냐후의 이스라엘이야말로 ‘포퓰리즘의 실험실’이기 때문이라면서 각국 포퓰리스트들 간에 가치의 동맹이 형성되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이슬람 이민자 탓에 종교와 인종으로 구성된 국가 정체성이 위험해졌다는 게 유럽 극우 포퓰리즘 지도자들의 주장이다. 국내외 아랍인에게 둘러싸여 살아가면서도 종교·인종의 정체성을 지켜내고 있는 ‘이스라엘 모델’은 그들에게 모범사례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본인들이 반유대주의자인지는 서로에게 중요치 않다. 돈과 표만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 포퓰리즘 지도자들의 정치적 셈법이다. 여기에 반무슬림, 반이민의 가치까지 공유한다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스라엘은 결국 네타냐후의 주장처럼 ‘유대인만의 국가’로 남을 것인가, 팔레스타인 주민을 포함한 민주주의 국가로 남을 것인가. ‘Mr. 안보’ 네타냐후의 운명 보다는 예루살렘이 계속 포퓰리즘의 대본영으로 남을 것인가. 다음달 9일 이스라엘 총선에 걸린 세계의 관심이다.  이스라엘은 과연 ‘유대인 만의 국가’로 남을 것인가, 팔레스타인 주민을 포함한 민주주의 국가로 남을 것인가. 또 예루살렘이 계속 포퓰리즘의 대본영으로 남을 것인가. ‘Mr. 안보’ 네타냐후의 운명 따위는 잊어도 된다. 다음달 9일 이스라엘 총선에 걸린 세계의 관심이다. 

골란고원의 이스라엘과 시리아 경계선에 위치한 마즈달 샴 마을의 전경.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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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조협 2019.04.01 08: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제깡패 이스라엘 ♫♬♪♫♪들

  2. gino's gino's 2019.04.07 14: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트럼프, 골란고원 주권 선언은 '즉석 결정' "짧은 역사수업했다"
    공화당-유대인 연합 모임서 밝혀…"신속하고 좋은 결정" 주장

    (서울=연합뉴스) 임은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동을 들쑤셔놓은 골란고원에 대한 자신의 이스라엘 주권 인정과 관련, 짧은 '역사수업' 후에 바로 내린 결정이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공화당-유대인 연합 모임'에서 중동 문제 고문들과 다른 주제로 대화하다가 골란고원에 대해 '즉석 결정'(snap decision)을 내렸다고 비화를 소개했다.
    이 자리에는 데이비드 프리드먼 주이스라엘 미국대사와 유대계인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도 함께했다.
    유독 짧은 보고를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약간의 역사(지식)를 빨리 달라. 나는 중국과 북한 등 할 일이 많다. 내게 빨리 달라'라고 말했다"라고 참석자들에게 당시 상황을 전하면서 "우리의 논의 사항을 내가 정확히 인지한 데 대해 여러분 마음에 드는가?"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프리드먼 대사가 당시 '착하고 예쁜 아기'처럼 놀라면서 자신에게 정말로 그것을 할 것인지 물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그렇다는 답을 내놓았다며 "우리는 신속한 결정을 내렸고, 좋은 결정을 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백악관에서 공동회견을 하고 골란 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는 포고문에 서명했다.
    이에 대해 아랍권은 강하게 반발했다. 아랍권 국제기구인 아랍연맹(AL)은 이튿날 성명을 내고 "점령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미국 외교정책의 새 접근"이라며 "아랍연맹은 이 접근을 거부하고 점령된 영토를 되찾을 시리아의 권리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골란 고원은 1967년 이스라엘이 제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후 1981년 자국 영토로 합병한 곳이다. 그러나 국제 사회는 이곳을 시리아 영토로 인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이날 모임 참가자들에게 이번 이스라엘 총선에서 누가 이길 것 같으냐고 물었다.
    참가자들이 "비비"(네타냐후 총리의 애칭)라고 외치자 트럼프 대통령은 "경합할 것 같다"며 "두 사람 모두 훌륭하다"라고 답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오는 9일 예정된 총선에서 5선을 노리고 있으며, 군 참모총장 출신인 베니 간츠와 접전을 벌이고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유대인 모임에서 연설을 시작하려던 때 시위자 3명이 의자에 올라가 "유대인들이 여기에 말하려고 왔다. 점령은 역병이다"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에 다른 참석자들은 "미국! 미국!"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시위자들의 입을 막았고, 경비원들이 이들을 끌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자들을 향해 "그는 엄마한테 혼날 것"이라고 비꼬았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마약과의 전쟁이 남긴 장면. 지난 10월 30일 마닐라에서 열린 희생자 추도식에서 가족들이 고인의 영정 앞에 하얀 장미꽃을 놓고 있다. 경찰은 물론 자경단을 동원해 마약사범  또는용의자들을 살해하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잔인한 정책에 피살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빈민가 주민들이다. 마닐라/AP연합뉴스


 필리핀 마닐라 한복판에서 흡연에 어려움을 겪게 될 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1990년대 중반 웬만한 항공기에서 금연을 실시할 때도 필리핀 국적기에서는 흡연이 허용됐을 만큼 흡연에 관대한 나라였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73)의 급진적인 금연정책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 그 결과 지난 8일 저녁 근사한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마닐라의 가로수길’ 마카티에서 무심코 담배를 빼어물었다가 기겁을 해야했다. 지나던 행인이 근처의 ‘제복’을 가르키며 황급히 제지했기 때문이다. 이방인을 걱정하는 마음이 담긴 몸짓언어였다. 노천 흡연장소는 식당에서 족히 30m나 됐다. 두테르테는 마약과의 전쟁만 시작한 게 아니었다. 지난해 5월부터 필리핀 전역의 공공장소는 물론 인도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누적 횟수에 따라 최장 4개월 징역형에 처해진다.

 2016년 6월 두테르테 취임 이후 마약 복용 또는 거래 혐의를 빌미로 2만명 이상이 피살된 것으로 추산된다. 상당수 사법절차 없이 자경단원들이 현장에서 집행했다. 이를 밝히려는 법조인들도 사적 처형 대상이다. 두테르테 취임 이후 이달 초까지 의문의 암살을 당한 법조인만 35명이다. 공권력은 단 한명의 용의자도 찾아내지 않았다.

 금연정책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담배에 관대했던 사회분위기를 급작스레 돌려놓은데는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기 십상이다. 담배와 마약으로부터 자유로우면 맑고 깨끗한 나라가 될까. 깨끗함에 대한 강박이 정치권력과 잘못 만나면 국가폭력이 된다. 순수와 민족이 만나 인종청소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두테르테에게 마약범죄자들은 치워야 할 쓰레기에 불과하다. “마약거래인들의 시체를 마닐라만에 내다버리면 물고기들을 살찌울 것”이라면서 “취임 6개월 내 마약범죄인 수만명을 죽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집권 2년 반이 되지만 필리핀이 깨끗해졌다는 증거는 별로 없다.


 범죄에 대한 두테르테의 ‘살인 해법’은 그가 대선출마 전까지 22년 동안 시장을 지낸 다바오시에서 이미 허실이 드러난 바 있다. 자경단원들을 동원해 1400여명의 ‘범죄 혐의자’들을 살해했지만 2010~2015년 살인범죄 발생률 1위, 성폭행 2위로 종합 범죄지수가 필리핀에서 4위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두테르테는 “다바오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라는 주장을 태연하게 내놓고 있다. 기실 두테르테에게 마약은 조작된 공포를 부추기기 위한 도구였다. 필리핀 정치학자 리처드 헤이다리안은 저서 <두테르테의 부상>에서 두테르테는 마약과 범죄에 포위된 국가라는 공포심리를 조성, 강력한 지도자의 등장이 절실하다는 점을 선전했다고 지적했다.



필리핀을 국빈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일 마닐라 말라카낭 궁에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영접을 받으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시 주석은 “비온 뒤에 무지개가 뜬다”면서 2012년 스카보로 암초를 강점하면서 악화됐던 양국 관계의 복원을 다짐했다.   마닐라/로이터연합뉴스


 두테르테의 정치적 성공은 전형적인 포퓰리스트의 교본을 충실히 따른 결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뺨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제1의 원칙은 국외자의 이미지다. 필리핀의 정치, 경제는 소수의 유력 가문들이 좌지우지하는 패밀리 비즈니스다. 다바오시에 뿌리를 둔 대표적 유력가문 출신인 그는 엉뚱하게도 스스로를 기성 제도권 밖의 아웃사이더로 포장했다.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열성 지지자들을 동원해 살포한 가짜뉴스로 가능했다. 트럼프가 ‘워싱턴’을 겨냥해 ‘워싱턴 밖’의 민심을 대변하는 것처럼 위장했듯 두테르테는 ‘마닐라 황실(Imperial Manila)’을 손가락질 하면서 표를 챙겼다.

 포퓰리즘은 증오와 공포를 숙주로 한다. 하지만 100% 조작은 있을 수없다. 많은 사회구성원들이 오랫동안 직면해온 집단적 절망이 없다면 싹을 틔울 수없기 때문이다. 구미 포퓰리즘은 주로 이민자로 인한 경제적 박탈감과 정체성 위기에서 비롯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심화된 헝가리와 폴란드 등 동유럽의 포퓰리즘은 여기에 반서방의 프리즘을 덧씌웠다. 현실의 고단함을 대변해왔던 중도좌파 정당들은 이미 세계화의 포로가 된지 오래다. 연대와 통합의 좌파 가치를 말하지만, 정권을 잡고 내놓는 것은 하나 같이 신자유주의 정책이다.

 기댈 언덕을 잃은 민심을 채가는 것이 포퓰리즘이다. 표면적인 경제실적은 문제가 아니었다. 전임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 재임 6년 동안 평균 경제성장률은 6%를 넘었다. 두테르테 집권 이후에도 6%대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이민 문제 역시 중요치 않다. 필리핀은 역으로 해외 인력송출로 국가경제를 지탱하는 나라다. 가톨릭 국가이지만 이슬람과의 갈등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포퓰리즘이 먹혔을까.

 그 답은 40대 유력가문들이 권력과 재력을 과점하는 필리핀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서 찾아야할 것 같다. 헤이다리안 박사는 필리핀과 같은 신흥국가에서 포퓰리즘이 발흥하는 원인으로 기존 시스템에 실망한 중산층의 집단 좌절을 꼽고 있다. 기대는 높아지지만 국가기관들의 구조적 비효율성 탓에 더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현실이 주는 좌절감이다.

 필리핀은 아직 산업혁명을 경험하지 않았다. 제조업 기반이 없는 소비 주도 경제이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라면 필리핀은 ‘세계의 비서(백 오피스)’라고 할만하다.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이라고 부르는 콜센터 사업이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차지한다. 의사와 기술자에서 가사도우미까지 해외취업자들이 보내오는 송금액도 10% 정도다. 경제적 이권을 틀어쥔 유력가문들은 굳이 리스크가 따르는 제조업을 일으키지 않는다. 콘도와 주택을 지어 임대료를 받거나, 대형 쇼핑센터를 지어 소비자들의 지갑을 터는 것으로 만족한다. 필리핀 공기업(GOCC)은 대대로 권력과 결탁한 유력 가문들이 부를 나누는 빨대였다. 마닐라 외교가에선 해외 가족이 돈을 보내오면 쇼핑센터에 들고가서 쓰는 게 필리핀 경제라고 요약한다.

 트리클 다운은 필리핀에도 없었다. 국가경제가 성장하고 집값이 오르지만 정작 내 주머니는 늘 허전하다. 2013년의 경우 40대 가문이 성장 과실의 76%(세계은행)를 폭식했다. 불만의 정서는 출구를 찾고 있었다.

지난 20일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마닐라 말라카낭궁 밖에서 학생 시위대가 중국 오성홍기를 든 채 두 지도자를 희화화한 마스크를 쓰고 반중시위를 벌이고 있다.  여론은 남중국해의 영토주권을 위협하는 중국을 반대하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은 인프라 건설을 명분으로 차이나 머니에 손을 내밀고 있다. 마닐라/로이터 연합뉴스


 아시아에서 가장 오랜 민주주의 국가의 하나이지만 민주주의 역시 희망이 되지 못했다. 피플파워를 통해 세차례나 정권을 교체했지만 늘 도돌이표였다. 1986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21년 독재를 무너뜨렸지만 한 유력 가문에서 다른 가문으로 정권을 옮긴 데 지나지 않았다. 코라손 아키노 모자와 피델 라모스 모두 유력 가문의 일원이었다. 유일한 서민대통령으로 분류됐던 조지프 에스트르다 대통령은 부패혐의 탓에 재임 3년이 안돼 피플파워에 실각했다.

 또다른 유력가의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은 부정선거와 횡령 혐의로 퇴임 1년 남짓 지나 선거부정과 공금유용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환자복 차림으로 종종 외신에 등장했던 아로요는 지난 7월 하원의장으로 날씬하게 변신, 두테르테 찬가를 부르고 있다. 구순을 바라보는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89)는 현역 하원의원으로 가문의 영광을 잇다가 지난 9일 철퇴를 맞았다. 필리핀 반부패 특별법원으로부터 최고 징역 77년을 선고받았다. 촛불도 여러번 들면 맥이 빠진다. 이쯤되면 유권자들이 피플파워에 피로를 느끼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두테르테의 정치는 포퓰리즘의 동의어처럼 사용되는 애국주의 또는 민족주의와도 거리가 멀다. 오히려 남중국해 분쟁을 계기로 증폭된 필리핀 사람들의 반중정서에 역행하고 있다. 지난 20~2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필리핀 국빈방문을 ‘역사적인 이정표’라면서 우호관계를 다짐했다. 남중국해 석유·가스 탐사를 비롯한 29개 프로젝트에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의기양양했다. 미국의 든든한 군사동맹국에서 중국에 추파를 던지는 이중 국가로 변모하는 것이다. 중국과 체결한 양해각서 중 4개가 과거 미국 해·공군 기지였던 수빅과 클라크 지역 개발과 관련됐다. 미국이 비운 자리를 중국이 메우는 모양새다.


필리핀은 피플파워로 세차례나 정권을 교체했다. 그때마다 미국과 세계의 찬사를 받은 필리핀 민주주의가 바꿔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말라카낭궁의 입주자만 한 유력가문에서 다른 가문으로 바꿨을 뿐이다. 사진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의 21년 장기독재를 무너뜨린 1986년 2월 피플파워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마닐라시 에피파니오 델로스 산토스 거리를 가득 메운 시위 군중들이다. 위키페디아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유일한 덕목은 공약을 성실하게 실현한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양자·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를 파기 또는 재협상하고, 이슬람 국적자의 입국금지령이나 최근 군대를 동원해 멕시코 불법이민 행렬을 제지하는 조치는 모두 공약 이행의 일환일 뿐이다. 두테르테는 ‘6개월 내 수만명’까지는 아니었지만 마약사범 용의자 살해 약속을 지키고 있다. 마약정책과 함께 두테르테의 양대 공약은 인프라 건설이었다. 특히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가 외면해온 교통 인프라 개선과 신도시 개발이 중심이다. 이른바 ‘토건, 토건, 토건(Build, Build, Build)’정책이다. 

 지하철과 마닐라의 교통지옥을 개선하기 위한 통근 철도 클라크 그린시티 개발 및 투투반-마닐라-클라크-파판가를 잇는 통근 철도망 등이 포함됐다. 2018년도 정부예산 3.77조 필리핀페소(80조8431억원)의 3분의1을 투입했다. 두테르테가 차이나 머니를 위해 남중국해 영토주권 다툼을 미뤄놓은 것은 바로 중국의 인프라 투자를 받기 위해서다. 

 하지만 중국은 필리핀의 더 많은 정치적 양보를 요구하며 쉽게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2016년 두테르테의 방중 당시 240억달러 규모의 직접투자(FDI)와 공적개발원조(ODA)에 합의했다. 지난 3월 현재 중국 및 홍콩 자본의 실제 투자액은 10억4000만달러(필리핀 중앙은행)에 불과하다. 마카오에서 밀려난 카지노 건설에 대부분 들어갔다. 이번에 시진핑 주석과 합의한 29개의 프로젝트 중 실제 집행의지가 담긴 것은 2개 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 중 한개는 두테르테의 고향인 다바오의 고속도로 건설사업이다. 아시아 포퓰리즘의 현장, 필리핀 방문 후기다.

국제전문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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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와트를 파괴하는 나무. 왕성하게 성장하는 나무가 사암으로 건축된 사원 건물을 위협하고 있다.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한여름 작열하는 태양 아래 앙코르와트를 처음 찾은 것은 1996년이었다. 무척이나 후덥지근했다. 곡창지역인 바탐방을 중심으로 크메르 루주의 잔당이 준동했고, 남자들이 집 앞 평상에 앉아 태연하게 M16 소총을 분해하고 소지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구입한 론니 플래닛 국가안내서 캄보디아편은 123쪽에 불과했다. 당시만 해도 캄보디아 현장답사가 어려웠기에 많은 내용을 담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재작년 꼬박 20년 만에 앙코르와트를 다시 찾았다. 최신 론니 플래닛은 족히 400쪽이 돼 보였다. 하지만 20년 전 현지에서 구입한 옛날 책을 버리지 않았다. 낡은 책의 갈피에 앙코르와트 1일 입장권이 꽂혀 있었다. 가격은 20달러. 놀랍게도 20년 뒤에도 같은 가격이었다. 캄보디아 관광당국이 하루 입장료를 37달러(3일 62달러·1주일 72달러)로 올린 지난해 1월 전까지 유지한 가격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찾는 탐방객을 배려한 국가 차원의 서비스였을까. 아니면 그대로 방치한 결과일까.

20년의 세월을 두고 방문한 앙코르와트는 입장권 가격과 함께 또 다른 의문을 남겼다. 입장권 판매 수입이 고스란히 베트남에 간다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적어도 현지인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이를 집요하게 쟁점화하기도 했다.

지난 7월29일 총선에서 여당인 캄보디아인민당(CPP)이 압승했다. CPP는 하원 125석을 모두 석권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33년간 총리직을 유지해온 ‘스트롱맨’ 훈센 총리(66)가 다시 5년 임기를 더 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떠오른 기억들이다.

캄보디아의 역사는 태국과 베트남 사이에서 생존을 모색해온 과정이었다. 앙코르와트가 있는 시엠레아프(Siem Reap) 지역의 지명 자체가 시엠, 즉 ‘태국에 대한 승리’를 뜻한다는 학설도 있다. 크메르인들은 12세기 시엠을 몰아낸 자리에 장엄한 신의 나라를 건설했다. 하지만 앙코르 제국의 영광은 비옥한 캄보디아를 ‘밥주발’ 정도로 여긴 태국과 베트남의 경쟁적인 침탈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메콩 델타의 옥토는 베트남 영토가 됐다. 앙코르와트의 입장료가 20달러로 책정됐던 1990년대는 캄보디아 현대사에서 중요한 시기였다. 크메르 루주 이후의 혼란이 국제사회의 중재로 간신히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 그 안정의 의미는 자유 총선과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국가와는 거리가 멀다. ‘훈센에 의한, 훈센을 위한, 훈센의 국가’로 퇴행했기 때문이다.

 

훈센 캄보디아 총리가 지난 1일 수도 프놈펜에서 측근들에 둘러싸인채 양 손의 검지를 들어 보이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훈센 총리의 집권여당 CPP는 지난 달 29일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프놈펜/AP연합뉴스 

앙코르와트의 수입이 베트남으로 간다는 소문은 전혀 근거없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베트남계 캄보디아인이 창업한 소키멕스(Sokimex)그룹이 1999년부터 17년 동안 입장권 판매사업을 독점했다. 캄보디아 공기업 압사라와 이익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소키멕스는 석유사업으로 시작해 호텔, 리조트 운영은 물론 군 납품업에도 손을 댔다. 그 창업주 속콩(63)은 캄보디아 태생이지만 부모가 모두 베트남 사람이다. 크메르 루주의 킬링필드 당시 3년간 베트남에서 피난살이를 했다. 베트남군이 캄보디아를 전면 침공한 1978년 말 돌아온 23세 청년 속콩은 국영 석유판매소를 매입하면서 사업을 키웠다. 처음부터 정·경 유착의 결과물이었다. 10년간 캄보디아를 점령한 베트남군 치하에서 민간기업의 사업은 베트남 또는 베트남이 내세운 훈센 정부와의 거래 없이는 불가능했다. 짧은 베트남 체류(2년) 뒤 역시 베트남군 치하에서 성공가도를 달렸던 훈센과 비슷한 이력이다. 훈센의 친베트남 성향은 2012년 작고한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의 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는 훈센을 두고 ‘외눈박이 베트남의 머슴’이라고 지칭했다.

앙코르와트는 캄보디아인들의 민족적 자랑이다. 국기에도 그려넣었다. 관광산업이 섬유산업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수입원인 나라에서, 더구나 국가 상징의 수입이 베트남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의혹은 민족 감정을 건드리기 십상이었다. 캄보디아 사람들 사이에 베트남인에 대한 증오심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크메르 루주의 킬링필드(1975~1979년) 기간 동안 가장 큰 피해를 본 소수민족이 베트남계인 까닭이다. 무고한 캄보디아인들도 ‘베트남의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죽어갔다. 이러한 민족적 반감에도 불구하고 훈센 정부는 2016년 앙코르와트의 입장권 판매를 국영기업 앙코르 엔터프라이즈에 맡길 때까지 소키멕스에 사업독점권을 허용했다. 속콩은 2008년 베트남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과거에는 여러 이유로 내가 베트남 사람이라는 게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베트남 사람이고, 그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소키멕스는 지금도 캄보디아군에 군복과 일용품을 납품하고 있다.

 

앙코르와트의 입장권 판매 수입은 지난해 1억달러(1억800만달러)를 돌파했다. 프놈펜포스트에 따르면 일각에서 입장권 가격 인상 탓에 방문객이 줄어들 것을 우려했지만 기우였다. 전년 대비 12% 늘어나 총 250만명이 방문했다. 하지만 캄보디아 사회는 여전히 부패가 판을 친다. 관광수입이 베트남에 가지는 않더라도 국가경쟁력을 높이거나, 1600여만 국민의 복지에 사용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진기자는 허투루 앵글을 잡지 않는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콕피치에 걸려 있는 집권 캄보디아 인민당( CPP)의 홍보물을 굳이 창살에 비치게 찍었다. 프놈펜/로이터연합뉴스

 

1993년 국제사회 감시하에 치른 총선에서 CPP가 패배했음에도 끝내 권력을 놓지 않았던 훈센이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야당과 독립언론, 시민단체 등 민주주의 제도들을 조직적으로 파괴했다. 지난해 제1야당 캄보디아구국당(CNRP)을 정부 전복 혐의로 강제해산하고 그 대표를 구금했다. 전혀 정권에 위협이 되지 않을 군소 야당도 좌시하지 않았다. 한때 훈센과 공동총리를 지냈던 시아누크 국왕의 아들 라나리드(74)는 선거를 한 달여 앞둔 지난달 의문의 자동차 충돌사고로 병석에 누웠다. 언론에 재갈을 물린 것은 물론이다. 지난 5월엔 사실상 유일한 독립언론인 프놈펜포스트의 사주를 바꿨다. 양식 있는 유권자들이 투표를 거부하는 것도 녹록지 않았다. 정부가 나서 “투표 안 하면 반역자”라고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다. 이례적으로 총선 무효표가 8.6%(60만표)에 달한 배경이다. 권력욕은 결코 그 끝을 모른다.

“74살 때까지 권력을 잡겠다”고 공개 선언한 훈센은 지난달 30일 아들 훈마네트 중장(40)을 군 요직에 배치했다.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뉴욕대를 거쳐 브리스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훈마네트에 대한 우상화 작업이 시작된 지는 오래다. 훈센은 “아들이 태어난 날 지붕 위로 밝은 빛이 지나갔다”면서 초자연적인 존재로 부각시켜왔다. 훈센이 압승한 날은 각국 언론에 ‘슬픈 날(sad day)’로 기록됐다. 

서방 각국 정부들은 이번 총선을 불법선거로 규정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캄보디아 정부의 선거참관인 초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훈센은 결코 외롭지 않았다. 영국 독립당과 이탈리아의 포퓰리즘 정당 프라텔리 이탈리아, 벨라루스의 친정부 정당 등 각국의 포퓰리즘 정당들이 총선 감시인단을 파견해주었다. 

국제사회가 주도한 1993년 총선 이후 훈센은 억지로라도 민주주의 제도들을 유지해왔다. 미국과 EU, 일본 등의 원조를 받으려면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미국 정부는 이번 총선을 비난했지만, 훈센에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은 복음이었던 것 같다. 2016년 미국 대선 전에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공개 지지한 데 이어 선거 뒤 당선을 축하했다. 이후 언론 탄압을 하면서 제도권 언론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매도하는 트럼프를 본받고 있다. 지난 3월 국내 연설 중 돌연 영어로 “피스 퍼스트(Peace First)”를 외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말한 ‘미국 퍼스트(America First)’와 비슷하지만, ‘피스 퍼스트’는 캄보디아에 매우 귀중하다”는 말이었다.

 

 

앙코르와트의 1일 입장권. 왼쪽이 1996년, 오른쪽이 2016년 티켓이지만 20달러로 같은 가격이었다.

 

그러나 훈센의 빅 브러더는 트럼프도, 미국도 아니다. 그에게 권좌를 안겨준 베트남과도 과거에 비해 뜨악해졌다.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훈센이 서방의 질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압제를 강화할 수 있게 해주는 버팀목이다. 시아누크 국왕 시절부터 시작된 중국과의 전통적 우호관계는 훈센 정부의 정치적·재정적 무게추가 되고 있다. 캄보디아가 유치한 외국의 산업투자 중 중국 자본이 70%를 점한다. 캄보디아의 ‘정치적 안정’과 값싼 노동력, 시장 선점 효과, 지정학적 이점을 노린 다목적 투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캄보디아를 일대일로(BRI)의 주요 거점으로 삼으면서 인프라 건설을 위한 뭉칫돈도 쏟아붓고 있다. 75억달러 규모의 수력발전소 건설, 2040년까지 2230㎞의 고속도로 건설사업 등이 진행 중이다. 중국 국영기업들이 제2, 제3의 소키멕스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훈센은 ‘중국 모델’을 발전의 목표로 설정한 지 오래다. 지난 1월 베이징을 방문, “우리는 메콩강에 더 많은 다리와 더 많은 도로, 철도가 필요하다”면서 시 주석을 상대로 투자 및 원조 확대를 요구했다. 외교적으로 주고받는 거래관계도 있다. 캄보디아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에서 노골적으로 중국 편을 들고 있다. 남사군도 영토분쟁에서 아세안이 통일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는 이유다.

앙코르와트와 바이욘 등 수많은 사원들이 있는 시엠레아프 지역은 캄보디아 내전 당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피해를 주는 것은 나무와 바람이다. 땅밑에서 솟아오르는 우람한 열대수목들이 사원을 파괴하고 있다. 핵심 건축재가 사암(沙巖)이어서 풍화작용에 의해 닳고 있는 것도 위협이다. ‘스러짐의 미학’을 간직하고 있기에 더욱 귀한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훈센의 철권통치는 결코 닳지 않고 있다. 독재정권을 밑에서부터 뒤흔들 국민의 힘도 가까운 미래에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입장권 가격을 갑자기 2배 가까이 올린 건 정상적이지 않다. 특혜 기업에 맡긴 채 방치했던 것이 분명하다. 캄보디아는 2016년 기준 5732만달러(무상 3693만달러)의 유·무상 원조를 한국으로부터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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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ino's gino's 2018.08.03 09: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000 Days of Hun Sen
    By BRAD ADAMSMAY 31, 2012


    “I not only weaken the opposition, I’m going to make them dead ... and if anyone is strong enough to try to hold a demonstration, I will beat all those dogs and put them in a cage.”

    No, this was not Muammar el-Qaddafi in his infamous “cockroach” speech in 2011, when he urged his supporters to go “house to house” to kill the opposition. The speaker was Prime Minister Hun Sen of Cambodia, responding with typically threatening language to the suggestion by a Cambodian critic that he should be worried about the overthrow of a dictator in Tunisia.

    Often overlooked in discussions about the world’s most notorious autocrats, on Friday Hun Sen will join the “10,000 Club,” a group of strongmen who through politically motivated violence, control of the security forces, massive corruption and the tacit support of foreign powers have been able to remain in power for 10,000 days.

    With the fall of dictators in Tunisia, Egypt, Libya and Yemen, the ranks of the 10,000 Club have been depleted, making Hun Sen one of the 10 longest-serving political leaders in the world.

    A former Khmer Rouge commander, Hun Sen has proven to be a highly intelligent and ruthless leader, able to keep his domestic opponents and international critics off balance. His main tactic has been the threat and use of force.

    For example, when the then largest-ever United Nations peacekeeping force entered Cambodia to implement the 1991 Paris Peace Agreements, Hun Sen and his party mobilized the security forces to intimidate and attack opposition party members. More than 100 opposition party members were killed under the U.N.’s nose.

    In March 1997 his personal bodyguard unit colluded in a grenade attack on a rally led by the opposition leader, Sam Rainsy, in which 16 people died and more than 150 were injured. Because an American citizen was wounded, the F.B.I. was sent to investigate. Its chief investigator concluded that the chain of command led to the prime minister.

    Months later, fearful of losing the next election, Hun Sen staged a coup against his royalist coalition partners. Units under his command committed more than 100 extrajudicial killings. My U.N. colleagues and I dug up bodies of men stripped to their underwear, handcuffed, blindfolded and shot in the head. No one has ever been held accoun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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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April, Chut Wutty, Cambodia’s best-known environmental activist, was gunned down while researching illegal timber sales. The government first claimed he died in a shootout, then that he had been killed by a soldier who had subsequently managed to commit suicide by shooting himself twice in the chest. Last week, 13 women protesting their forced eviction from prime real estate in Phnom Penh — sold by the government to a crony company and its Chinese partner — were whisked off to court and summarily sentenced to prison terms.

    Widespread corruption is the subject that makes Cambodians most angry. Though Hun Sen has worked only for the Cambodian government since 1979, he appears to be fabulously wealthy. Ten years ago a U.S. State Department official told me the U.S. government estimated his personal wealth at $500 million. When I repeated this figure last year to a different U.S. official, he said, “Is that all?”

    Today Hun Sen rules Cambodia with an iron fist, a fact that no Phnom Penh diplomat would dispute, but few confront. He has forced opposition leader Sam Rainsy into exile after orchestrating a prison sentence of 10 years for an act of nonviolent protest. The country goes through the trauma of manipulated elections every five years in which no one imagines that the vote will be free and fair or that an electoral defeat would result in Hun Sen leaving power.

    In 1998, after government-manipulated elections, tens of thousands of protesters poured into Phnom Penh’s streets. In a Tahrir Square-style show of defiance, they set up a “Democracy Square” in a park and demanded a recount or new elections. Hun Sen ultimately sent in his shock troops and cleared the park. Western governments muttered their disapproval but did nothing. When Cambodians had their “Khmer Spring,” the world let them down.

    At 59, Hun Sen is the youngest member of the 10,000 Club. He has said that he wants to rule until he is 80. After all the pious post-Arab Spring diplomatic talk about confronting dictatorships, Cambodians can be forgiven for asking why no one seems to be paying attention while Hun Sen begins work on his next 10,000 days.

    Brad Adams is Asia director at Human Rights Watch and worked as a lawyer with the United Nations in Cambodia.

    A version of this op-ed appears in print on June 1, 2012, in The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Today's Paper|Subscribe

    https://www.nytimes.com/2012/06/01/opinion/10000-days-of-hun-sen.html

지난 17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크리켓 경기장에서 열린 넬슨 만델라 탄생 100주년 기념 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오바마는 이 자리에서 특히 젊은이들에게 민주주의 수호에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AFP연합뉴스


“미국 경제는 일부의 탐욕과 무책임 탓에 심각하게 약해졌다… 집이 사라지고, 일자리가 없어졌으며, 비즈니스는 문을 닫았다… (그럼에도) 오늘, 우리는 모였다. 두려움 대신 희망을, 분쟁과 불일치 대신 단합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신이 우리의 자유이자 신조다. 모든 인종, 모든 신앙의 남성과 여성, 아이들이 이 웅장한 몰에 함께 모여 자축하는 까닭이다. 60년쯤 전만해도 시골 레스토랑에서 서빙도 받지 못했을 아버지(아프리카 흑인 남자)의 아들이 여러분 앞에 서서 가장 신성한 서약을 할 수 있게 된 연유이기도 하다….”


영하 5도의 추운 날씨에 바람이 세찬 날이었다. 2009년 1월20일, 버락 오바마의 감동적인 대통령 취임사의 일부분이다. 여전히 생생한 기억이다. 취임식장인 의사당 앞마당에서 가까운 지하철역은 폐쇄됐다. 인파가 몰리자 당국은 의사당 직전 또는 직후의 역에서 하차하게 했다. 빤히 눈앞에 보이는 행사장의 지정석까지 가는 데 30분 가까이 걸렸던 것 같다. 그날 워싱턴에 운집한 사람은 100만명이 훨씬 넘었다. 바로 앞사람의 발 뒤꿈치만 보고 종종걸음을 옮겨야 했다. 멈춰 선 인파들 속에서 사상 첫 흑인 대통령의 탄생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흑인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오바마의 유세 자체가 ‘총성 없는 민란’이자 '촛불 없는 촛불집회'였다. 워싱턴 주류 정치권으로부터 외면받아온 아웃사이더들이 몰렸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넬슨 만델라 탄생 100주년 기념 강연장에 모인 청중들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기조연설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오바마가 지난 해 1월 퇴임 뒤 한 첫번째 대규모 연설이었다. AP연합뉴스


백인은 물론 흑인과 히스패닉, 아시아계가 오바마가 말한 ‘우리가 믿는 변화(In Change We Believe)’의 메시지에 열광했다. 희망의 세례를 받았다. 그의 당선을 도와준 1등 공신은 역설적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흙먼지 속에 수조달러를 탕진한 전임자 조지 부시였다. 부시의 부자감세안에 취한 월가의 ‘살찐 고양이’들이 자초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파동이 선거운동을 대신해줬다. 미국 경제는 휘청였고, 세계 경제는 더 크게 흔들렸다. 그 절체절명의 위기가 아니었다면 오바마는 취임식 연단에 서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절망 속에 형성된 거대한 희망의 물결이 워싱턴 기성 권력의 오랜 편견을 깼다. 시대에 맞게 오바마의 메시지는 신선했다.


“우리는 미국 경제의 힘을 억만장자들의 숫자나 포천지 500대 기업의 이익으로 계량하지 않는다. 누군가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지, 팁으로 먹고사는 웨이트리스가 아픈 아이를 돌보기 위해 해고 걱정 없이 휴가를 낼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계량할 것이다.” 2008년 8월 민주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는 노동 존엄의 경제를 약속했다. 오바마는 말과 글에서 모두 탁월한 전달자다. 많은 유권자들이 그의 연설에서 위로와 힐링, 감동을 얻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저속한 말을 쏟아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비교하면 아득한 옛날의 일이다. 품격과 절제, 위트와 유머가 넘친 오바마의 연설에 익숙해졌던 많은 미국민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입이 열릴 때마다 좌절하고 있다. 문제는 많은 미국인들이 ‘트럼프현상’에서 여전히 트럼프만 보고, 저변의 큰 흐름은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만 시선이 머무는 것과 다르지 않다. 트럼프는 얼굴마담에 불과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19일 백악관에서 '아메리칸 노동자들을 위한 전국협회' 창립을 지시한 행정명령을 내린 뒤 발언하고 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보인다. '워싱턴'은 흐릿하고, 트럼프는 선명한 게 미국의 현주소다. 로이터연합뉴스 

 

오바마가 오랜만에 감동적인 연설을 내놓았다. 적절한 예를 들어가며 세계의 현주소를 짚었다. 부시 덕에 오바마가 더욱 빛났었다면, 이번엔 트럼프 덕에 오바마의 장외 주가가 올라갔다. 오바마는 지난 17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넬슨 만델라 탄생 100주년 기념식 기조연설에서 “스트롱맨들의 정치(Strongman politics)가 민주주의 제도와 규범을 망치려 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이상하고도 불확실한 시대다. 매일매일 더 골치 아픈 헤드라인들이 뉴스에서 쏟아진다… (극우 포퓰리즘)지도자들은 몇년 전만 해도 불가능했던 속도로 공포와 분노, 뺄셈의 정치를 받아들이고 있다.” “(포퓰리즘) 정치지도자들 사이에 부끄러움이 사라지고 있다. 거짓말이 탄로나면 되레 거짓말을 두 배로 한다. 정치인들은 늘 거짓말을 해왔지만, 그나마 과거엔 탄로가 나면 머쓱해하기라도 했다”고 꼬집었다. 정치인이 앞장서 ‘가짜뉴스’를 확산시키면서 진실이 사라진 세태를 도마에 올려놓은 것이다. 이날 연설은 지난해 1월 퇴임 뒤 공식활동을 자제했던 그가 처음으로 한 대규모 대중연설이었다. 오바마는 A4용지 16장 분량의 긴 연설 중에 ‘도널드 트럼프’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누가 들어도 트럼프를 겨냥한 독설이었다. 요하네스버그 크리켓 경기장을 메운 수천명이 환호했음은 물론이다.


오바마는 구미 각국에서 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리는 원인을 제대로 짚었다. 기실, 이민과 난민은 지엽적인 문제다. 포퓰리즘의 독버섯은 세계화의 폐단이라는 뿌리에서 자라났다. 그는 “미국과 유럽연합 내부에서 세계화에 대한 도전이 처음엔 좌파에서, 이후엔 우파에서 더욱 물리적으로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한 움직임이 도심 외곽 거주민들의 불안정과 경제적 안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공포를 자극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사회적 지위와 특권이 없어짐에 대한 공포, 문화적 정체성이 아웃사이더들에 의해 위협받음에 대한 공포를 자극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크리켓 경기장에서 열린 넬슨 만델라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한 남성이 행사 팸프렛으로 햇볕을 가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오바마는 그러나 세계화의 폐단을 키운 자신의 미필적 고의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세계화의 부작용으로 드러난 포퓰리즘을 비난하는 데는 열을 올렸지만, 정작 자신이 그 부작용과 타협한 장본인이었다는 사실을 감춘 것이다. 물론 임기 중 보건의료개혁을 통해 기본적인 의료혜택조차 누리지 못했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초석을 놓았다. 그의 민주당은 의회에서 ‘토드-프랭크법’을 제정, 금융자본 규제 노력도 기울였다. 하지만 대공황 이후 최대 경제위기 속에서 근본적인 개혁은 외면했다. 자본의 논리도 아니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를 비롯해 도산위기에 처한 월가 금융업체들은 수천억달러의 공적자금을 수혈받아 명줄을 유지했다. 기업은 자본의 소유 아니던가. 그 자본이 공적자금이면 당연히 국가소유가 돼야 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누리엘 루비니 등 민주당계 경제학자들이 은행 국유화를 주장했던 까닭이다. 

심지어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까지 나서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업체들을 한시적으로나마 국유화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그린스펀이 누구인가. 클린턴 행정부 당시 금리를 1%대로 낮춰 부동산·정보기술(IT) 버블의 환경을 조성하고, 파생금융상품을 '기술혁신(innovation)'이라고 찬사를 보낸 장본인이 아닌가. 그런 그린스펀까지 나서 진로 수정을 권했지만 오바마는 흘려들었다. 그러고선 뒤늦게 남아공으로 날아가 점잖게 포퓰리즘을 비난하는 데 그 좋은 언변을 구사한 것이다.


[김진호의 세계 읽기]연준은 “임무가 대부분 완수됐다(Mission mostly completed)”고 하지만….

미국 뉴욕 월스트리에 주로 서식하는 살찐 고양이.


월가는 세계화 체제의 심장이다. 오바마가 월가의 방종한 자본에 굵직한 고삐를 조여매고, 세계화를 대체할 새로운 체제를 고민했다면 결과적으로 포퓰리즘이 뿌리를 내린 증오의 토양은 척박해졌을 것이다. 월가 자본의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오바마 본인보다도 그의 민주당이었다. 금융위기 이후 2010년까지 월가 헤지펀드들은 공화당보다 민주당에 더 많은 정치자금을 투여했다. 2016년 대선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은 월가 정치자금을 당겨오는 데 우등생이었다. 비영리 정치자금감시단체 ‘반응하는 정치센터(CRP)’에 따르면 2015년 하반기에 받은 2500만달러의 자금 중 1500만달러를 월가에서 조달했다. 오바마는 외곽에서 온 아웃사이더임을 강조하면서 워싱턴 정치를 개혁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기존 체제 내에서 따뜻한 한 세월을 보낸 인사이더 정치인에 마냥 행복해했다. 바로 트럼프가 공격하는 제도권 정치의 선봉이었던 것이다. 정치는 금융자본의 뭉칫돈에 의지하는 대신 소액 기부자들의 풀뿌리 민심에 의지해야 더욱 독립적일 수 있다. 백발의 정치인 버니 샌더스가 2016년 민주당 대선 경선과정에서 보여준 놀라운 저력이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뒷줄 오른쪽)이 지난 7월17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연설을 한 뒤 시릴 라만포사 남아공 대통령(뒷줄 왼쪽)과 함께 남아공 국가를 부르는 소웨토 가스펠 합창단원들 뒤에 서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돌이켜 보아도 당시 스티글리츠를 비롯한 민주당계 경제학자들의 처방이 옳았다. ‘고 위험, 고 수익(high risk, high return)’에 취한 월가는 더 큰돈을 벌기 위해 더욱 위험한 도박을 다시 시작한 지 오래다. 오바마가 내놓은 대안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비롯한 자유무역협정(FTA)의 활성화였지만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었다. 그나마 트럼프의 ‘FTA 혐오’에 막혀 표류하고 있다.


각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양축으로 하는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몰락을 한탄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을 필두로 스트롱맨들이 주도하는 권위주의 질서의 도래를 경계하고 있다. 오바마는 재임 당시나 퇴임 이후에나 그중 한가지, 민주주의만 말한다. 구구절절 옳은 말들이다.


서유럽의 중도좌파, 중도우파 정당들이 극우 포퓰리즘 정당에 전통적인 표밭을 잃는 것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특히 세계화의 흐름에 편승함으로써 제 발등을 찍고 있는 서구 중도좌파 정당들은 여전히 근본적인 체제전환보다는 미봉책만 궁리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포퓰리즘이 성하고, 중도 정당들이 쇠할 것은 불문가지다. 미국 민주당이나 서구 중도좌파 정당들이나 기성 정치 엘리트들은 세계화에 치이고, 정치권의 무응답에 다친, ‘잊힌 그들’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오바마의 조리 있는 연설문은 민주주의 이론 또는 영어 학습의 텍스트로나 유용할 것 같다. 포퓰리즘을 욕하면서 기존 세계화 체제에 머무는 한 해법이 될 수 없다. 구미 중도좌파의 공통된 패러독스다. 트럼프의 일상화된 분탕질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서 민주당에 희망을 거는 목소리가 낮은 까닭이다. ‘변화’와 ‘희망’은 더 이상 오바마를 따라다니지 않는다. 오바마에게 8년 백악관 입주권을 안겨준 걸로 시효가 끝났다. 세계는 더욱 묵직한 고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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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로슬라브 카진스키 폴란드 집권 법과 정의당(PiS) 대표(왼쪽)이 지난 6일 스몰렌스크 참사 추모시설의 준공식이 열린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의 행사장에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스몰렌스크 참사는 2010년 4월 카진스키 대표의 쌍둥이 형이자 당시 폴란드 대통령이었던 레흐 카진스키 부부를 비롯한 폴란드 각계 지도층 인사 등 96명이 러시아 스몰렌스크 인근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사건이다. 부다페스트/AP연합뉴스 

 

 ■과거엔 유럽이 우리의 미래였지만, 이제는 우리가 유럽의 미래?

빅토르 오르반 총리(54)의 집권여당 ‘피데스’가 압승을 거둔 헝가리 총선을 이틀 앞둔 지난 6일. 부다페스트 남부의 다뉴브강가에는 다소 엉뚱한 추념시설이 들어섰다. 2010년 4월 러시아 스몰렌스크에서 추락한 폴란드 공군기 Tu-154기 탑승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시설이다. 레흐 카진스키 폴란드 대통령 부부를 포함해 장관들과 육·해·공·특수부대 지휘관, 가톨릭주교, 중앙은행장, 국회의원 등 96명이 전원 사망한 참극이었다. 하지만 100% 폴란드인 희생자들을 추념하기 위한 시설이 왜 헝가리 수도에 들어설까. 

폴란드의 국가적 불행을 부다페스트에서 추념한 것은 중·동부유럽 포퓰리즘을 이끌고 있는 오르반 총리와 야로슬라브 카진스키 폴란드 집권 법과 정의당(PiS) 대표 간의 특수관계 때문이다. 카진스키 대표는 이날 “스몰렌스크 추념시설은 우리의 우정을 강화하는 아름다운 제스처”라며 사의를 표했다. 곧이어 생뚱맞게 이웃나라 총선 지원에 나섰다. “폴란드나 헝가리에서 자유와 주권, 민족적 존엄은 빅토르 오르반이라는 이름과 연결돼 있다”면서 총선에서 오르반과 피데스를 지원해줄 것을 호소했다. 오르반과 카진스키는 EU가 내정에 간섭한다는 비난을 함께 제기해온 사이다. EU는 최근 폴란드의 사법제도 개악을 빌미로 EU 내 폴란드의 투표권을 박탈하는 리스본조약 7조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헝가리 역시 이민정책과 민주주의 퇴행, EU 기금 전용 등의 혐의로 EU의 견제를 받고 있다. 오르반은 “중부유럽을 민족적, 기독교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헝가리와 폴란드 두나라에 달렸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27년 전 유럽은 우리의 미래였지만 이제는 우리가 유럽의 미래라고 말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지난 6일 부다페스트 남쪽의 다뉴브강가에서 열린 스몰렌스크 참사 추모시설 준공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헝가리 총선을 이틀 앞두고 바쁜 와중에도 강행한 이날 행사는 중부유럽에서 오르반 총리의 리더십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부다페스트/EPA연합뉴스 

 

 ■총선 뒤 언론과 시민사회에 재갈 물리는 오르반 정부

오르반의 피데스(Fidesz)와 연합정당 기독민주국민당(KDNP)은 지난 8일 총선에서 48%를 상회하는 득표율로 전체 199석 중 3분의2가 넘는 133석을 차지했다. 2010년, 2014년에 이어 세번째로 개헌선을 넘는 압승이다. 절반이 안되는 득표율로 개헌선의 의석을 차지하는 것은 오르반 정부가 2012년 개정한 선거법 덕분이다. 선거유세는 오르반이 퍼뜨린 공포와 증오의 바이러스가 판을 갈랐다. 반 이민, 반 무슬림, 반 서방이 주제였다. 헝가리 유대인 출신의 미국인 투자자 조지 소로스는 ‘국가의 적’으로 지목됐다. 헝가리를 이민자들로 뒤덮으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매도했다. 유세 기간 동안 국영TV는 중동과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이 유럽으로 몰려들었던 2015년 이후 불법이민과 관련한 끔찍한 (범죄)장면들을 되풀이 방영했다. 

최고법원 판사의 40%가량을 곧 해임하는 것을 골자로 한 폴란드의 사법 개악은 기실 오르반이 1998~2002년, 2010~2018년의 12년 동안 해왔던 것을 흉내낸 것에 불과하다. 중부유럽의 스트롱맨 오르반은 시민권을 제약하고 헌법재판소와 사법부의 권위를 약화시켜왔다. 2015년 유럽 난민 위기 당시에는 헝가리-세르비아 국경지역에 철책을 세워 불법이민자들의 유입을 차단했다. 총선 뒤 헝가리 민주주의는 우려대로 급속히 후퇴하고 있다. 

 

총선을 이틀 앞둔 지난 6일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헝가리 국기가 나부끼는 다페스트 인근의 한 유세장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부다페스트/AP연합뉴스 

 

당장 80년 역사의 최대 야당지 마자르 넴제트가 지난 11일 경영상의 문제로 문을 닫았다. 한때 오르반의 동지였다가 갈라선 라조스 시믹스카가 발행인이다. 온라인 신문과 라디오 방송국도 문을 닫았다. 마자르 넴제트는 정부광고를 받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2010년 오르반의 2기 집권 이후 친정부 기업들이 온·오프라인 미디어를 사들여 정권의 나팔수로 만들고, 반 정부 성향의 매체에는 정부광고와 민간투자를 억제됐다. 오르반은 또 난민 관련 비정부기구(NGO)들로 하여금 내무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한편, 외국의 기부금에 25%의 무거운 세금을 부과할 작정이다.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사법부에 대한 통제 역시 강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독립언론 기자들은 ‘저널리스트 체임버’로 몰아넣어 더욱 재갈을 물릴 방침이다. 카진스키가 오르반에게 “우리는 당신이 보여준 솔선수범에서 배운다”며 찬사를 보내는 까닭이다. 

총선 압승에는 또다른 비결이 있었다. 투표일 몇주전부터 헝가리 가정마다 총리의 편지를 보내 가스비를 한번에 한해 38유로(약 5만원) 깎아준다는 희소식을 꽂았다. 200만명을 웃도는 연금생활자들에게는 32유로 상당의 상품권을 전달했다. 오르반 정부는 자녀를 많이 갖거나 집을 살 경우 금전적 인센티브를 주는 가족정책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PiS 역시 연금 개시연령을 낮추고, 자녀 혜택과 최저임금을 높이는 방식으로 금전적 혜택을 뿌리고 있다. 구매력 기준 국내총생산(GDP)이 3만달러를 웃도는 두 나라에서 어떻게 속이 빤한 선심공세가 먹힐까. 그에 대한 답은 시장경제 이행기에 깊이 각인된 좌절 때문인 것 같다. 코르비니우스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피터 보드 전 헝가리 중앙은행장은 특히 이행기에 박탈감이 강했던 중하류층 서민들 중에는 아버지 같은 정치인과 어머니 같은 안전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폴리티코에 전했다. 오르반 피데스 정부가 바로 그 두가지를 제공하고 있다. 선심정치와 권위주의 지도자, 갈수록 경직되는 사회 분위기를 조합하면 시민적 자유를 다소 제약받지만 약간의 번영과 안정을 구가했던 소비에트 블록 시절의 ‘좋았던 옛날’이 복원된다. 폴리티코가 헝가리, 폴란드 특집에서 ‘신 공산주의자들’이라는 헤드라인을 단 연유다. 

빅토르 오르반 총리의 집권여당이 압승을 거둔 헝가리 총선 하루 뒤인 지난 11일 부다페스트 시내의 한 카페에서 한 주민이 마자르 넴제트의 마지막 신문을 읽고 있다. 80년 역사의 최대 야당지인 이 신문은 이날 폐간을 발표했다. 부다페스트/로이터연합뉴스

 

 ■서유럽 포퓰리즘과 다른 점

1990년대 만해도 체코·헝가리·폴란드·슬로바키아 등 중부유럽 국가들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우등생이 될 것으로 기대됐다. 바츨라프 하벨 체코 대통령과 레흐 바웬사 폴란드 대통령 같은 인물이 건재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생활수준은 곧바로 서구수준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되레 자본의 논리 탓에 종래의 삶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속출했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시장경제 이행기의 좌절에 소금을 뿌렸다. 부채에 몰린 각국 정부는 긴축재정에 돌입하면서 복지를 대폭 줄였다. 빈 곳간은 증오를 만들어낸다. 민족주의와 인종주의가 고개를 들고 그에 착종한 포퓰리즘이 싹을 틔운 것이다. 오르반 같은 정치인들이 리버럴 성향에서 권위주의 성향으로 전향한 배경이기도 했다. 발빠른 변신이었고, 선거에서의 승리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1980년대 말 공개연설에서 소련군의 철군을 촉구하며 사자후를 토했던 청년 오르반은 이제 서구의 가치를 비난하는 ‘푸틴주의자’(요시카 피셔 전 독일 외교장관)가 됐다. 2016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를 가장 먼저 인정했다. 오르반은 ‘비 자유주의적(illiberal) 민주주의’라는 궤변을 내놓은 바 있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개개인의 시민권을 존중한다. 하지만 자신이 보기에 민족적 자족과 주권을 보호하고 민족 공동체를 구축해야할 국가는 리버럴할 수 없다. 해서 비리버럴이다. 오르반은 비리버럴 모범국가로 터키와 싱가포르, 러시아, 중국을 지목했다. 

세계화와 유럽통합이 낳은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숙주로 한다는 점에서 중·동부 유럽 포퓰리즘은 서구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무슬림 이민자와 유대인 등 외부의 적이 국가의 기독교 정체성을 흐린다는 위기의식도 닮은 꼴이다. 하지만 여기에 서구에 대한 피해의식과 시장경제 이행의 쓰라린 경험이 더해졌다.  

헝가리 총선을 이틀 앞둔 지난 6일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부다페스트 인근의 한 유세장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부다페스트/EPA연합뉴스

 

■서구 가치의 위기, 차이나 머니 변수

서구 포퓰리즘과 또다른 차이는 헝가리와 폴란드 정부가 받고 있는 외부의 재정지원이 대부분 EU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두나라가 계속 경제성장을 하는 것도 아이로니컬하게도 포퓰리스트들이 기회만 있으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 비난하고 있는 공공의 적, EU 덕분이다. 오르반과 카진스키에게 서구는 가상의 적이자, 현실의 돈줄이다. 2014~2020년 EU가 폴란드에 지원하는 지역개발·사회·농업펀드 등 각종 기금 만 860억유로에 달한다. 오르반은 지난 2월 국정연설에서 “EU와 독일, 프랑스 정치인들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헝가리는 외국 강대국들의 명령대로 살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유권자들에게 EU의 내정간섭과 국제금융의 위험을 끊임없이 경고하면서, 한편으로 EU의 자금에 의존하는 위태로운 두줄타기를 하는 것이 중·동유럽 포퓰리즘의 현주소인 것이다. 

일대일로를 표방한 차이나 머니는 또다른 변수가 되고 있다. 중·동부유럽 국가들과 EU 지도부 간의 틈새를 더욱 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지난해 11월28일 부다페스트에서 중·동유럽 16개국 정상들과 ‘16+1정상회의’를 갖고 중국의 투자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일단 30억달러 투자가 확정됐지만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은 이미 2012년 이후 150억달러를 이 지역에 투자하고 있다. 주최국 수반이던 오르반은 “유럽 자본만으론 부족하다. 중국이 중·동부유럽의 발전과 개발에 관심을 갖는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헝가리 총선을 이틀 앞둔 지난 6일 부다페스트 서남쪽 스젝스케스페르헤르바르에서 열린 유세장에서 빅토르 오르반 총리의 지지자들이 집권 여당 피데스의 푯발과 헝가리 국기를 흔들고 있다.  부다페스트/EPA연합뉴스

 

헝가리와 폴란드가 서구의 가치를 계속 저버린다면 EU는 재정지원을 줄이는 방식으로 이들 정부의 일탈을 통제할 수있다. 이론적으로 그렇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EU 신규 회원국들은 1993년 ‘코펜하겐 기준’에 따라 △민주적 가버넌스와 △인권 △법의 지배 존중 등의 의무가 있다. 이를 어길 경우 각종 EU 기금의 지원을 중단하거나 EU 내 의결권을 박탈할 수 있다. 하지만 두가지 모두 만장일치제로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녹록지 않다.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가입(WTO) 가입을 계기로 중국의 열린 시장과 자유주의 세계질서 편입을 기대했던 미국과 EU는 호된 수업료를 치르고 있다. 헝가리와 폴란드 같은 포퓰리즘 정부의 득세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유럽 질서는 더 혼란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서유럽 각국 역시 자국 내 포퓰리즘 정당의 발흥을 지켜보고 있다는 점이다. 작금에 구미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포퓰리즘 현상은 세계화 이후 세계질서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경고음을 잇달아 내고 있다. 

 

유난히 민족주의가 강조돼서인지 헝가리 총선이 진행된 지난 8일 베레세기하즈의 한 투표구에서 전통의상을 입고 투표하고 있는 여자들의 뒷모습이 주목을 끌었다. 베레세기하즈/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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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의 주도 팔레르모에서 지난달 24일 시위군중들이 극우 파시즘 단체의 집회에 반대하는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반 이민 정서에 편승한 네오 파시즘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팔레르모/EPA연합뉴스 


■파워블로거에서 정치인으로, 코미디언의 변신 

정치 풍자 코미디언 베페 그릴로(69)의 인생을 흔든 것은 부패로 얼룩졌으면서도 엄숙하기 그지없는 이탈리아 정치문화였다. 1986년 라이1방송의 토요일 밤 토크쇼에서 베티노 크락시 당시 총리(사회당)를 풍자한 것이 화근이 돼 공영TV 출연이 금지됐다. 이후 20여년 동안 파워블로거로 거듭났다. 자신의 블로그에서 조성한 돈으로 라 레퓌블리카나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 등 국내외 신문에 전면광고를 냈다. 부패 스캔들에 휩싸인 이탈리아 중앙은행장의 사임을 촉구하거나, 전과자들의 국회의원직 박탈을 주장했다. 2007년엔 전국적으로 ‘엿먹이는 날(V-day)’ 행사를 조직해 부패와 탈세, 살인교사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정치인 24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200만명이 거리로 뛰어나왔고, 인터넷 기반 정당의 모태가 됐다. 4일 이탈리아 총선을 계기로 포퓰리즘이 유럽통합을 다시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이번 선거는 지난해 프랑스 대선과 독일 총선을 거치면서 한숨을 돌렸던 포퓰리즘이 올 한 해 유럽 정치에 던질 방향타이기도 하다. 그 핵심에 그릴로가 웹 전략가 지안로베르토 카사레지오와 함께 2009년 10월 창당한 오성(五星)운동이 있다. 

■깨끗한 정치, 깨끗한 환경 주장하는 빅텐트(Big Tent) 정당 

이탈리아 제1야당의 자리에 오른 오성운동은 반유럽통합·반이민·반기성제도를 주장하는 포퓰리즘 정당이다. 하지만 지난해 프랑스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극우 또는 좌파 포퓰리즘과는 결이 다르다. 프랑스 극우 포퓰리즘을 대변하는 마린 르펜의 민족전선(FN)의 자매정당은 오성운동이 아니다. 북부동맹(LN)이다. 정통 사회주의 가치로 돌아갈 것을 호소하는 미국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나 장 뤼크 멜랑숑의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프랑스 앵수미즈)’와도 다르다. 공용 수자원·인터넷 접속권·지속가능한 개발·지속가능한 교통·환경주의 등 오성운동이 내세우는 5대 가치와 반유럽통합이란 면에서 진보정당과 겹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반이민 정서에서 갈라진다. 세계화와 유럽통합에 대한 저항을 넘어 경제성장 감퇴(degrowth)를 주장한다. 여러 가지 관점과 이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아우르는 포괄(Big Tent) 정당으로 분류되는 연유다. 1990년대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검사의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 운동에 환호했던 이탈리아다. 오성운동은 부패한 정치문화가 만들어낸 이탈리아만의 독특한 정치현상인지도 모른다. 

오성운동은 2013년 총선에서 기성 정당에 실망한 민심을 얻었다. 상원 23.8%, 하원 25.5%를 득표했지만 다른 정당과의 비동맹 원칙에 따라 연정에 불참했다. 그 탓에 상원 315석 중 54석, 하원 630석 중 109석을 얻는 데 그쳤다. 2014년 유럽의회 의원 선거에서도 21.15%를 득표했다. 로마 시장과 토리노 시장에 30대 여성 시장을 각각 배출하기도 했다. 이번 총선에는 기본소득 도입과 연금수령 연령 재조정, 재정적자 비중을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제한한 유럽연합(EU) 재정협약 재협상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선거를 앞두고 유로존 탈퇴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이번 총선에선 정권창출을 꿈꾼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지난해 9월17일  남부 피우지에서 열린 행사에서 검지를 내보이며 이야기하고 있다. 포르차 이탈리아를 결성한 그는 총선에서 반 이민 정서에 편승해 주류 정당으로 부활을 꿈꾸고 있다.  피우지|로이터연합뉴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지난해 9월17일 남부 피우지에서 열린 행사에서 검지를 내보이며 이야기하고 있다. 포르차 이탈리아를 결성한 그는 총선에서 반 이민 정서에 편승해 주류 정당으로 부활을 꿈꾸고 있다. 피우지|로이터연합뉴스

■승부처는 ‘분노의 남부(Angry South)’ 

포퓰리즘은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숙주로 한다. 지역적으로 이탈리아에서 분노지수가 가장 높은 곳은 바로 경제적으로 뒤처진 남부지방이다. 실업률이 10.9%로 높은 이탈리아이지만 특히 남부의 젊은층 실업률은 50% 이상이다. 여전히 마피아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여기에 지중해를 건너오는 아프리카 난민들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이다. 분노한 남부의 민심에 가장 효율적으로 다가가는 정당은 오성운동과 극우 북부동맹이다. 불과 5년 전 연정을 구성했던 민주당은 프랑스 사회당과 마찬가지로 갈수록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세계화를 주도하면서 전통적 지지기반으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유럽 중도좌파정당들의 공통된 운명이다. 


풍자전문 코미디언 출신으로 오성운동을 창당한 베페 그릴로가 지난달 12일 나폴리 인근에서 열린 선거유세에 루이지 디 마리오 오성운동 정치대표와 함께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나폴리/로이터연합뉴스


1991년 부유한 북부의 분리독립을 추구하면서 창당한 북부동맹은 마테오 살비니가 당권을 장악한 2013년 이후 민족주의 전국 정당으로 변신했다. 마린 르펜의 프랑스 극우 포퓰리즘이 벤치마킹의 대상이었다. 이번 총선 로고에는 아예 ‘북부’를 빼고 ‘동맹(lega)’만을 새겨넣었다. 2013년 총선 때만 해도 4%에 불과했던 지지율이 성공적인 전국 정당화로 15%에 육박했다. 민주당 정부가 최근 4년간 받아들인 난민 62만명에 대한 거부심리를 반영한다. 북부동맹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81)의 포르차(전진) 이탈리아, 이탈리아의 형제들이 구성한 우파연합은 이번 총선의 바로미터로 주목을 받았던 작년 11월 지방선거에서 남부 시칠리아를 중도좌파로부터 빼앗았다. 북부동맹은 역시 중도좌파의 아성이었던 중부 토스카니 지방에서도 2010년 이후 지지율을 6%에서 16%로 올렸다. 합리적인 중도우파의 정체성을 주장하면서 유럽통합에 찬성하는 포르차 이탈리아 역시 단호한 반이민 입장 덕에 주요 정당으로 부활했다. 

■포퓰리즘이 득세하거나, 연정 구성을 못하거나  

지난달 중순 마지막으로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 총선에서 가장 우세한 곳은 우파연합이다. 테르모멘토-폴리티코 조사 결과 37.5%의 지지율을 보였다. 민주당(21.3%) 주도 중도좌파 연합은 25.3%에 그쳐 단일정당으로 1위를 차지한 오성운동(26.3%)의 득표 예상률에도 미치지 못했다. 우파연합 안에서는 포르차 이탈리아 15.9%·북부동맹 14.8%·이탈리아의 형제들 5%였으며, 기타 우파가 1.8%였다. 하원 과반 의석은 316석이지만, 과도정부를 구성하려면 최소 40%의 의석을 차지해야 한다. 현재로선 우파연합이 가장 근접해 있다. 

파올로 젠틸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달 27일 로마에서 열린 TV프로그램에 참석한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젠틸로니 총리의 민주당은 오는 4일 총선에서 고전이 예상된다.<br />로마|EPA연합뉴스

파올로 젠틸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달 27일 로마에서 열린 TV프로그램에 참석한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젠틸로니 총리의 민주당은 오는 4일 총선에서 고전이 예상된다. 로마|EPA연합뉴스

우파연합이 40%선을 넘기더라도 그 안에서 반유럽 성향의 북부동맹이 1위로 총리직을 가져간다면 EU에는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낡고 부패했지만 그나마 EU의 질서를 인정하는 포르차 이탈리아와 중도좌파 민주당 간의 대연정도 거론되지만 가능성이 낮다. 오성운동이 단독 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반유럽·반이민을 기치로 북부동맹과 연합한다면 EU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밖에 없다. 총선이 끝난 지 6개월이 다 되도록 아직 연정 구성을 못한 독일처럼 장기간 표류하거나 재선거를 실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떤 경우라도 갈 길 바쁜 EU로서는 악재다. 이탈리아 총선이 치러지는 4일에는 독일 사민당(SPD)이 기민·기사당과의 연정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당원 투표를 실시해 EU로서는 두 개의 투표 결과에 모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이탈리아는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에서 독일, 프랑스에 이어 경제 규모가 3위다. 하지만 국가부채가 2조3000억유로(3044조4000억원)로 지난해 GDP의 133%에 달한다. 유로존 전체 부채의 20%가 넘는다. 실업률(10.9%)과 빈곤위기 인구 비율(30%)은 각각 EU 평균(7.3%, 24%)보다 높다. 갈 길 바쁜 EU의 통합 행보를 더욱 무겁게 할 악재들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탈리아를 ‘유럽의 새로운 병자’로 지칭하면서 총선 결과에 대한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고 있음을 사설로 밝혔다.


이탈리아 직접민주주의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을 만든 베페 그릴로(왼쪽)이 지난달 12일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인근에서 열린 유세에 루이지오 디 마리오 정치대표(31)와 함께 참석하고 있다. 선거 유세는 마리오 정치대표의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나폴리|AP연합뉴스


■욕하면서 배운다. 포퓰리즘의 시대에 적응해가는 유럽의 기성 정당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과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로 충격에 빠졌던 세계는 2017년 프랑스 대선과 독일 총선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포퓰리즘의 기세가 수그러들 것으로 기대됐다. 특히 2015~2016년 100만명 이상의 난민을 받아들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기민당이 1위를 한 것에 고무됐다. 하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정부의 대선 승리 및 이후 안정적인 정국 운영이 오히려 예외적 현상이었음이 드러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독일 총선에서 기민당과 사민당은 의석을 각각 수십석 잃었다. 반면에 극우 포퓰리즘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12.6%의 득표율로 사상 처음 연방의회에 진출했다. 메르켈-마크롱의 ‘MM라인’이 반이민·반유럽·반세계화의 포퓰리즘으로부터 유럽을 지켜낼 것이라는 기대 역시 희박해지고 있다. 욕하면서 닮는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오히려 수권정당으로 살아남기 위해 반이민 정서에 편승하고 있다. 마크롱 프랑스 정부는 불법이민 규제를 대폭 강화한 이민법안을 지난달 발의했다. 총선에서 AfD로부터 일격을 당한 메르켈의 기민당 역시 작년 말 한 해 수용 난민의 한도를 20만명으로 제한했다. 오스트리아의 중도우파 국민당은 연정 파트너로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자유당을 선택했고,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자유민주당)도 불법이민을 허용하지 않을 태세다. 

2017년을 고비로 세계경제와 함께 유럽 경제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성장궤도에 복귀했다. 하지만 이민에 대한 유럽 사람들의 시선은 바뀌지 않고 있다. 2015년 난민 파동을 계기로 ‘경제적 부담’에서 ‘위협’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작년 11월에 발표된 프랑스 퐁다폴의 조사 결과 EU 응답자의 58%는 이슬람(난민)을 ‘위협’으로 지목했다. 올 한 해 유럽 포퓰리즘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이탈리아 총선을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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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zino 2018.03.06 1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伊총선서 반체제·극우 돌풍…과반정당 불발에 정정불안 우려(종합)
    오성운동 최대 정당 약진…극우당 동맹, 베를루스코니의 FI에 앞서 이변
    오성운동·동맹 "우리에게 정부 구성 권한 부여돼야"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4일 실시된 이탈리아 총선에서 강경 난민 정책을 공약하고, 유럽연합(EU)에 회의적인 반체제 정당과 극우 정당이 약진했다.
    9년 전 좌와 우로 나뉜 기성 정치체제의 부패를 심판하겠다는 구호 아래 탄생한 신생정당 오성운동은 30%가 훌쩍 넘는 득표율로 단일 정당 가운데 최대 정당으로 발돋움, 이탈리아 정계의 지각 변동을 예고했다.



    약 37%의 표를 얻어 최다 득표를 한 우파연합에서는 "난민이 이탈리아를 침범했다"는 과격한 구호와 함께 '이탈리아 우선'을 외친 극우정당 동맹이 당초 예상을 깨고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정당 전진이탈리아(FI)에 득표율이 앞서는 이변을 연출했다.
    5일 총투표의 약 98%가 개표된 가운데 우파와 극우성향의 4개 정당이 손을 잡고 총선에 나선 우파연합은 상원과 하원 모두 37%를 웃도는 득표율로 선두를 차지했다. 마테오 살비니가 이끄는 동맹이 약 18%의 표를 얻어 14%의 표를 얻는 데 그친 FI에 앞섰다.
    다른 정당과 연대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선거에 임한 오성운동은 약 32%의 표를 득표, 우파연합의 뒤를 이었다.
    31세의 루이지 디 마이오 대표가 이끄는 오성운동은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기록한 지지율 28%보다 훨씬 높은 득표율을 보여, 이번 총선의 최대 승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저소득층을 위한 월 780 유로(100만원)의 기본소득 도입 공약으로 청년 실업에 시달리는 젊은층과 빈곤에 찌든 남부를 적극 공략한 전략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분석이다.
    디 마이오 대표는 "역사적인 승리"라며 "이탈리아의 제3공화국이 시작됐다"고 감격을 나타냈다. 이탈리아는 대규모 부패 수사 '마니 풀리테'로 기독민주당 정권이 몰락한 1990년대 초반까지를 제1공화국,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제2공화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집권 민주당이 중심이 된 중도좌파연합은 약 23%의 지지율로 멀찌감치 뒤로 처졌다. 마테오 렌치 전 총리가 이끄는 민주당은 역대 최저 수준인 약 19%의 저조한 득표율로 참패를 당했다.
    총선 전 여론조사에서 기록한 약 23%의 지지율보다도 훨씬 낮은 충격적인 결과에 렌치 전 총리는 이날 당 대표직에서 사퇴를 선언했다.
    렌치 전 총리는 사퇴 기자회견에서 "극단주의 정당과의 연대는 없으며, 민주당은 야당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탈당파 인사들로 구성된 좌파정당 자유평등(LEU)은 약 3%의 지지율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총선 전 예상처럼 어떤 진영도 독자적 정부구성에 필요한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짧게는 수 주, 길게는 수 개월 간 정파 간 새로운 연대 시도가 이어지며, 이탈리아는 당분간 정정 불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총선 결과로 야기된 불확실성이 반영되며 이날 이탈리아 밀라노 증시의 FTSE MIB는 0.4% 떨어져 약세를 보였다. 당초 우려처럼 급락은 없었다.
    그러나, 단일 정당 가운데 최대 정당으로 약진하며 정부 구성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예상되는 포퓰리즘 성향의 오성운동이 EU에 적대적인 동맹, FDI 등 극우정당과 전격적으로 손을 잡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금융 시장이 요동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시장의 관측이다.
    향후 정부 구성을 위한 정당 간 교섭에서는 총선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대 정당으로 올라서며 사실상 승리를 거둔 오성운동과 최다 득표한 우파연합의 4개 정당 가운데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동맹이 주도권 다툼을 할 것으로 보인다.
    디 마이오 오성운동 대표와 살비니 동맹 대표는 이날 각각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들에게 정부 구성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디 마이오 대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연대를 타진할 것"이라고 밝힌 반면, 살비니 대표는 "오성운동과의 연대는 없다"고 못박았다.
    총선 전 유력한 가설로 떠올랐던 민주당과 FI의 독일식 좌우 대연정 가능성은 두 정당이 예상보다 낮은 표를 얻음에 따라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이 방안은 이탈리아 정치 체계의 급격한 변화를 억제하고, EU에 미치는 충격파를 최소화한다는 점에서 EU와 시장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었다.


    이탈리아 언론은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을 거둔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극우 동맹의 총선 결과에 놀라움을 표현했다.
    일간 라 레푸블리카는 1면에 "이탈리아를 오성운동과 동맹이 접수했다"며 오성운동을 빼놓고는 정부 구성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간 라 스탐파는 1면에 "디 마이오가 이겼고, 이탈리아는 통치 불가능해졌다"는 헤드라인을 실었다.
    한편, 이번 총선 투표율은 72.9%로 집계돼 역대 최저치였던 2013년 총선 투표율(75.2%)을 갱신, 정치에 대한 이탈리아 대중의 무관심을 반영했다.

  2. sdf 2018.03.06 1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가 내리지만 멋진 날이군요.”
     이탈리아 총선 다음날인 5일 오전(현지시간),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의 대표 루이지 디 마이오는 로마에 있는 자택을 나서며 이렇게 말했다. 이탈리아 선거는 극우·포퓰리즘 정당의 승리로 끝났다.
     개표율이 95%가 넘어선 이날 오후 2시30분 기준으로 오성운동은 상·하원에서 약 32% 득표율을 기록해 단일 정당으로는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오성운동은 2009년 코미디언 베페 그릴로가 기성 제도권 정치의 부패와 무능을 비판하며 창당한 이후 9년 만에 제1당으로 올라섰다. 전직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우파연합은 37%로 가장 앞섰으나 연합 내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건 극우 성향의 동맹당(18%)이다. 중도좌파 성향의 집권 민주당은 19%로 참패했다.
     오성운동은 구체적인 재원 마련 대책은 제시하지 않은 채 세금은 적게 걷고 복지는 확대하겠다고 밝힌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당이다. 불법이민자들에 대한 즉각적인 추방은 이 당의 대표적인 공약이다. 오성운동 같은 포퓰리즘 정당의 선전은 집권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최근 고조된 반난민 정서가 겹친 결과로 풀이된다. 이탈리아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금까지 성장률이 채 6%가 안될 정도로 활력을 잃었다. 청년 실업률은 30%를 넘나들 정도로 높다. 오성운동은 민주당이 국민연금 수령 연령을 높이기로 한 것에 반대하며, 월 최저 연금수령액도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지난달 불법이민자 소행으로 보이는 잔혹 범죄가 일어나면서 이탈리아에서 반이민 정서는 최고조에 달했다. 오성운동은 물론 불법이민자의 즉각 추방을 약속한 동맹당 등 포퓰리즘 정당은 약진했다. 동맹당은 불법이민자를 막기 위해 국경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마테오 살비니 대표는 타 인종 혐오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민주당은 난민이 처음 발을 내디딘 국가에 수용 의무를 규정한 더블린 조약에 반대하고, 유럽연합(EU)이 할당한 난민을 받지 않는 회원국에 대한 지원 중단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주목받지 못하고 오히려 반감만 샀다.
     오성운동과 동맹당은 선거 기간 동안 유로존 탈퇴를 주장하는 등 유럽통합 움직임에 반대해왔다. 선거 막판 잦아들긴 했지만 오성운동은 이탈리아의 독립적인 재정정책을 펼치기 위해 유로존을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맹당은 여전히 유로존을 탈퇴하길 원하며, EU가 권고하는 재정적자 상한선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3%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프랑스 극우정당 민족전선(FN) 대표 마린 르펜은 이날 트위터에 “우리의 동지이자 친구인 살비니가 포함된 우파연합이 1등으로 총선을 마치고 극적으로 전진했다”며 축하했다.
     반EU 정당들이 약진한 것으로 나타나자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한 시간 만에 0.1% 떨어지는 등 요동쳤다. 이탈리아의 국가부채는 GDP 대비 132%로, 유럽에서 그리스 다음으로 높다. 유로존에서 경제 규모는 독일·프랑스에 이어 3번째로 크다. 가능성은 낮지만 오성운동과 동맹당이 손잡고 독자적인 재정정책을 펼치겠다고 나설 경우 EU에는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과반 정당이 없어 정부를 구성하는 연정협상 결과가 중요해졌다. 하지만 극우·포퓰리즘 정당들이 앞으로도 협상의 주도권을 쥘 것으로 보여 유럽통합 진영으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게 됐다. 살비니 대표는 투표 결과 우파연합 내에서 자기 당이 1위를 할 경우 총리는 자기 몫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를루스코니의 전진이탈리아(FI)는 예상보다 낮은 득표율로 연정협상의 주도권을 잡기 쉽지 않다. 집권 민주당도 낮은 지지율로 과반 정부를 구성할 원동력을 잃어 연정협상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푸틴의 입맛을 잡았다. 그다음 신흥재벌의 날개를 달았다. ‘푸틴의 요리사’로 불리는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모스크바 외곽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고급 레스토랑을 찾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음식을 서빙하고 있다. 2011년 11월11일의 자료사진이다. 입맛으로 푸틴의 마음을 산 프리고진은 각종 관급계약으로 신흥재벌이 됐다. 

모스크바 | AP 연합뉴스 



예브게니 빅토로비치 프리고진(56). 공교롭게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동갑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태생의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재벌)이다. 한때 스키선수를 꿈꿨지만 10대 후반부터 20대의 대부분을 절도와 강탈, 사기로 징역을 살았다. 유형에서 풀려난 1990년 시작한 핫도그 체인점 사업이 성공하면서 첫 번째 인생의 전기를 맞았다. 식료품 체인점 콘트라스트가 다시 성공을 거두었다. 1995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스트라야 타모쥐냐’라는 고급 레스토랑을 열었다. 내친김에 바트카강에 선상 레스토랑 ‘뉴 아일랜드’를 띄웠다. 옛소련 붕괴와 시장경제 이행기의 혹독한 시절이었다. 그때 단골 중 한 명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상트를 방문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2001년)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2002년)을 각각 뉴 아일랜드에 초대했다. 대통령 취임식 역시 프리고진의 콩코드 케이터링이 맡았다. 러시아 언론이 그를 ‘푸틴의 요리사(chef)’로 부르는 까닭이다.



권위주의 국가에서 1인자와의 관계는 성공의 보증수표다. 프리고진은 이후 러시아 군대와 학교 등에 대규모 관급계약을 따내는 케이터링 사업으로 덩치를 키웠다. 여기까지가 공식적인 성공 이야기다. 푸틴의 절대적인 신임 속에 활동영역을 해외로 넓혀왔다. 내전 중인 시리아에 수천명의 용병을 파견, 유전을 보호하고 원유수입의 일부를 보장받는 사업을 시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온라인 댓글부대(troll) 사업은 우연한 계기에 시작했다. 모스크바 공립학교에 점심을 제공하는 사업을 하던 2011년 음식이 상하자 학부모들 사이에서 업체를 바꾸라는 여론이 빗발쳤다. 위기였다. 프리고진은 젊은 남녀 블로거를 댓글부대로 고용해 온라인상에 떠돌던 불리한 여론을 단 몇 분 만에 돌려놓았다. 인터넷상에 콩코드 케이터링의 음식을 칭찬하는 글과 댓글을 무더기로 포스팅, 비난하는 글들을 묻어버렸다. 프리고진은 이후 상트 시내에 인터넷리서치에이전시(IRA)를 설립, 관급계약의 수입 일부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관급계약을 받는 대신 정부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해온 것이다.


■뮬러 특검, 러시아 댓글부대(troll)의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확인


베일에 싸인 푸틴의 요리사가 국제적인 초점을 다시 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선캠프의 러시아 커넥션을 수사하고 있는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지난 16일(현지시간) IRA를 비롯한 러시아 업체 3곳과 러시아인 13명을 2016년 대선 개입 혐의로 정식 기소하면서부터다. 물론 프리고진도 기소했다. 특검은 이들이 2014년부터 IRA를 거점으로 페이스북과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미국 소셜미디어(SNS)에 침입해 미국 정치시스템에 불화의 씨를 뿌려왔다고 발표했다. 로드 로즌스타인 법무부 차관은 “음모 가담자들이 원했던 것은 미국 사회의 불화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공신력 훼손이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소셜미디어상에 미국인 신분을 도용해 가짜 계정을 만들거나 자동증식 프로그램인 ‘봇(bots)’을 심어 놓고, 주요 이슈에서 미국 사회의 분열을 극대화해왔다. 인종과 불법이민, 총기판매 등 고질적인 이슈는 물론 미식축구 선수들의 무릎 꿇기 시위 등 돌출 이슈에도 적극 달려들었다. 대선에선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낙선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당선이 목적이었다.



미국인 신분으로 페이팔 계정을 만들고 대선 기간 클린턴을 공격하거나 트럼프를 띄워주기 위한 정치광고 13건의 대금을 지불했다. 주·야간으로 팀을 나눠 수백개의 소셜미디어에 거짓 메시지를 흘렸다. ‘#힐러리 클린턴은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 ‘힐러리는 사탄이다’ 등의 문구를 살포한 것이다. 특히 테네시주 공화당을 가장해서 만든 트위터 계정(@TEN.GOP)은 10만명의 팔로워를 갖고 있다. 한 달 운영비용이 125만달러에 달했다. IRA에서는 그래픽과 데이터 분석, 정보기술 등을 전담하는 그룹도 포함됐다. 필요하면 오프라인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러시아 댓글부대는 텍사스주의 풀뿌리 보수단체의 충고를 따라 지지정당이 자주 바뀌는 콜로라도와 버지니아, 플로리다 등 스윙스테이트에 집중하기 위해 미국 출장을 여러 차례 다녀왔다. 곳곳에서 친트럼프, 반클린턴 집회를 열었다. 특검이 밝힌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2016년 5월 말 워싱턴 백악관 앞에서 한 미국인으로 하여금 ‘보스(boss)의 55세 생일을 축하한다’는 푯말을 들고 서 있게 한 것이다. 특검은 오바마 전 대통령의 생일이 8월인 만큼 프리고진의 생일(6월1일)을 축하하는 메시지였다고 해석했다. 특검의 추정이 맞다면 워싱턴 한복판에서 미국 민주주의를 통렬하게 우롱한 한 편의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프리고진은 특검의 기소 뒤 러시아 리아 노보스티 통신에 “미국인들은 매우 감상적이어서 보고 싶은 것을 본다. 그들이 악마를 보고 싶어한다면 보게 하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선거캠프와 러시아 측의 관계를 수사하고 있는 미국 법무부의 로버트 뮬러 특검이 연방수사국( FBI) 국장이던 2013년 6월13일 하원 법사위 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워싱턴 | 로이터연합뉴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선거캠프와 러시아 측의 관계를 수사하고 있는 미국 법무부의 로버트 뮬러 특검이 연방수사국( FBI) 국장이던 2013년 6월13일 하원 법사위 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워싱턴 | 로이터연합뉴스



■푸틴의 저주, 최대 피해는 미국 민주주의 

인터넷이 여론의 주요 통로가 되면서 권위주의 국가에서 관제 댓글부대를 동원해 여론 조작에 나선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러시아는 1990년대 말부터 시작한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 우마오당(五毛당)은 국내 SNS 포스팅 178건당 1건꼴로 관제 포스팅 또는 댓글을 다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버드대 개리킹 박사팀의 2013~2014년 연구 결과 연간 4억8800만개의 정보 옹호 포스팅을 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2013년 미국 프리덤하우스는 22개국에서 친정부 성향의 댓글부대를 운영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우마오당을 비롯한 대부분의 경우 정부에 대한 찬사와 충성을 다짐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러시아 댓글부대는 미국 선거 개입은 물론, 궁극적으로 미국 사회의 분열과 미국 민주주의의 파멸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확연히 구분된다. 미국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댄 코츠 국가정보국장(DNI)은 지난 13일 상원 정보위의 연례 위협평가 청문회에서 “러시아는 계속 선전과 소셜미디어, 가짜인물 등의 수단을 동원해 미국의 사회적·정치적 분열을 악화시키려고 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올해 11월 미국 중간선거는 물론 유럽 각국의 선거에 반드시 개입할 것으로 분석됐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왜 서구, 특히 미국 사회를 집요하게 공격하고 있을까. 



이와 관련해 뮬러 특검의 기소장이 밝힌 대로 러시아 댓글부대의 활동이 시작된 2014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 무력개입했던 시점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그해 3월 서방의 군사개입 가능성을 배제하면서 그 이유로 러시아는 미국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가할 우려가 없는 ‘지역강국(regional power)’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초강대국(super power)이 아니란 말이었다. 이후 푸틴은 물론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이 비난하는 등 국제적 논란을 야기했던 발언이다. 크림반도 병합과 미국의 제재 이후 미·러 관계는 복원되지 않고 있다. 푸틴이 미국 SNS에 제2의 전선을 구축할 만한 이유는 충분했을 것 같다.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외국 선거 개입과 여론 조작은 그다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그 분야의 챔피언도 러시아가 아니라 미국이다. 중앙정보국(CIA) 요원을 파견해 우호적인 외국지도자를 당선시키기 위해 돈 보따리를 배달하거나 특정 후보의 스캔들을 폭로하는 것은 물론 민주언론과 정당을 지원해왔다. 러시아 댓글부대는 미국이 오프라인에서 했던 공작을 온라인으로 옮겨왔을 뿐이다. 또 CIA가 연방예산으로 실행한 작전을 프리고진과 같은 민간인, 민간기업을 활용하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그럼에도 댓글부대는 종래의 지정학적 현실정치에서 행해졌던 외국선거 개입과는 사뭇 결을 달리한다.


러시아 신흥재벌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지난해 7월4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미·중 재계인사 회동에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모스크바/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사회가 최종 분열될 때까지 멈추지 않을 ‘봇’ 


자국에 유리한 정치인을 당선시키려는 목적은 같지만, 사회 자체를 분열시킨다는 점에서 폐해의 범위와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댓글부대의 ‘봇’은 한 사회에서 의견이 갈라지는 지점을 포착해 달려들도록 프로그램화돼 있다. 중간선거까지 기다릴 것도 없다. 러시아 댓글부대는 지난주 플로리다주 고교 총격사건 역시 먹잇감으로 삼고 있음이 드러났다. 총기소지 찬·반 양론을 각각 극단으로 몰고 간 뒤 결국 해결이 불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래야 언론과 정당, 선거 등 민주주의 기성제도에 대한 좌절이 깊어져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풍토가 조성되기 때문이다. 바로 포퓰리즘이 만개할 토양이자, 제2·제3의 트럼프가 등장할 최적의 조건이다. 



푸틴의 저주가 설치해놓은 러시아 댓글부대로 인해 미국 사회와 미국 민주주의는 물론, 트럼프 행정부 취임 이후 엉뚱하게 유탄을 맞고 있는 세계가 피해를 입고 있는 셈이다. 특검의 이번 기소는 러시아의 대선개입 사실만을 규명했다. 트럼프 대선캠프와의 관련성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물론, 러시아인들의 대선 여론조작이 러시아 정부에 의해 주도된 것인지조차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에 대한 직접조사 역시 여전히 협의 중이다. 그 사이 트럼프는 건재하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30%대에 머물던 지지율이 여론조사기관 모닝컨설트와 퀴니피액대학 등 두개 기관의 이번 달 조사 결과 40% 후반대로 치솟았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2231655015&code=970205&sat_menu=A074#csidxbee29b4467e88de8ef1591d4f136cb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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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유고전범재판소 법정에서 섰던 슬로보단 프랄략이 지난 29일 판결을 거부하면서 작은 병에 든 액체를 마시고 있다. 다 마신 뒤 그는 “방금 내가 마신 것은 독약이다”라고 말했다. 전세계에 생중계되는 과정에 벌인 희대의 자살극이었다. |EPA연합뉴스

"피고에게 20년형을 선고한다. (보스니아 무슬림에게 반인도적범죄를 저지른) 당신의 죄를 인정하는가?”라는 판사의 질문에 그는 “Bullshit(헛소리)! 슬로보단 프랄략은 전범이 아니다. 당신의 판결을 경멸하며, 거부한다”고 말했다. 

증오가 전쟁을 부르고, 전쟁이 다시 증오를 심화하는 이 지독한 아이러니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지난 11월29일 보스니아 전쟁 당시 반인도적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크로아티아계 군인·정치인 6명에게 최종 선고공판이 있었던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유고전범재판(ICTY). 백발의 전 보스니아 크로아티아계 장군 슬로보단 프랄략(72)은 이 말 끝에 작은 병에 든 액체를 마셨다. “그만하라(stop please)”는 판사의 말을 무시한 그는 “나는 방금 독약을 마셨다”고 외쳤다. 재판은 중단됐고,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전세계로 생중계된 장면이다. 현대적인 국제전범재판이 시작된 이후 사상 처음 벌어진 희대의 사건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으며, 그 죽음의 함의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군복 입은 예술가, 프랄략 

극적인 자살로 생을 마감한 프랄략은 전쟁 전까지만 해도 보스니아의 유명한 연극인이었다. 희곡작가이자 영화 감독이기도 했다. 각국 언론이 독약을 마시기 전후 프랄략의 외침이 연극대사 같았다고 보는 이유다. 지금쯤 보스니아 연극계 원로로 평온한 노년을 보냈을 그의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뀐 것 역시
보스니아 전쟁 탓이었다. 프란요 투지만 크로아티아 공화국 대통령이 이끈 크로아티아민주동맹의 창당인사 중 한명인 프랄략은 크로아티아방위협의회(HVO·보스니아 크로아티아계 민병대)의 사령관을 맡았다. 

보스니아 크로아티아계 전범 슬로보단 프랄략이 지난 11월29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유고전범재판소 법정에 출두하는 모습. 아무도 그의 주머니에 독약이 든 작은병이 있었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AP연합뉴스

보스니아 크로아티아계 전범 슬로보단 프랄략이 지난 11월29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유고전범재판소 법정에 출두하는 모습. 그의 주머니에 독약이 든 작은병이 있었던 것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AP연합뉴스


전쟁 초기인 1992년 보스니아 내 크로아티아계와 무슬림은 협력관계였다. 유고연방군 및 세르비아계의 스르프스카 공화국군이 포위했던 보스니아 남부의 고도(古都) 모스타르를 지켜냈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 1993년 초 벌어진 크로아티아계와 무슬림 간의 전쟁에서 모스타르를 파괴한 것은 프랄략의 군대였다. 보스니아 내 크로아티아인 거주지역을 병합, ‘대 크로아티아’를 만드려는 투지만 대통령이 기획한 전쟁이었다. HVO는 모스타르 안팎의 무슬림 거주민들을 내쫓았다. 수만명이 추방됐고, 1만여명이 수감됐다. 수감자 중 노인과 여성은 학대를 받았고 상당수가 학살됐다. 피해자에는 세르비아계와 집시도 포함됐다. 지난 주 역시 ICTY에서 민족학살과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라트코 믈라디치 세르비아계 스르프스카군 사령관 이 “모두가 거짓말”이라면서 판결에 승복하지 않은 것처럼 프랄략도 판결을 거부했다. 

프랄략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 지난 11월29일 밤, 보스니아 크로아티아계의 거주지역인 모스타르에서 크로아티아계 주민들이 촛불을 밝히고 ‘영웅’의 죽음을 애도했다.  AP연합뉴스

프랄략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 지난 11월29일 밤, 보스니아 크로아티아계의 거주지역인 모스타르에서 주민들이 촛불을 밝히고 ‘영웅’의 죽음을 애도했다. AP연합뉴스

■보스니아 전쟁의 또 다른 ‘범죄집단(JCE)’ 

종신형을 받은 믈라디치와 달리 프랄략은 20년형을 받았다. 이날 자살을 하지 않았다면 머지않아 석방될 수도 있었다. ICTY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이미 13년을 복역했기 때문이다. 형기의 3분의 2을 마친 죄수는 석방시키는 것이 관례다. 머지않아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던 그가 기획자살을 한 까닭은 스스로 전쟁 때부터 걸머진 ‘대의’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10~25년형을 받은 6명의 전범은 모두 보스니아 크로아티아계다. 세르비아계에 비해 규모는 적었지만 크로아티아계 역시 민족청소·전쟁범죄·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렀다고 공식인정을 한 것이 이날 판결의 핵심이었다. ICTY는 투지만이 스스로 녹음해두었던 방대한 대화와 통화 녹음테이프를 통해 투지만이 보스니아 크로아티아계의 HVO군에 돈과 차량, 무기 및 군 지휘관을 지원한 배후였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는 보스니아 전쟁범죄의 주체는 세르비아계라는 국제사회의 통념을 깨고 크로티아계 역시 투지만으로부터 수직적으로 내려온 기획범죄의 일원이었다는 점을 밝혔다는 점에서 세계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ICTY는 프랄략의 자살에도 불구하고 이날 판결내용을 거듭 확인했다. 전쟁범죄를 저지른 정치·군사 지도자들을 묶어 ‘범죄집단(Joint Criminal Enterprise)’이라는 용어를 새로 만들었다.

슬로보단 프랄략이 지난 2004년 4월5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유고전범재판소에 출정하기 위해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 공항에 도착해 아들과 며느리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다. 이후 헤이그 구치소에 13년동안 수감돼 재판을 받아왔다.<br />EPA연합뉴스

13년 전의 여유. 슬로보단 프랄략이 지난 2004년 4월5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유고전범재판소에 출정하기 위해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 공항에 도착해 아들과 며느리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다. 이후 헤이그 구치소에 13년동안 수감돼 재판을 받아왔다. EPA연합뉴스

■ICTY, 크로아티아계도 전쟁범죄 가담 인정 

세르비아계는 이미 1990년대 초부터 민족청소의 주범으로 세계의 지탄을 받았다. 악마시됐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크로아티아계까지 민족청소의 주범으로 지탄을 받게 됐다. ICTY에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세르비아 대통령이 재판 중 옥사한 것과 달리 투지만은 ICTY가 기소를 완성하기 전인 1999년 자연사했다. 살아있었다면 크로아티아인들이 ‘국부’로 모시는 투지만 역시 ICTY 법정에 섰어야 했다는 말이다. 

믈라디치와 마찬가지로 프랄략도 ‘확신범’이다. 믈라디치가 판결 뒤 “나는 늙은 사람이다.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나의 사람(동족)들에게 남길 유산이다”라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프랄략의 절규는 자신의 무죄 만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크로아티아계가 전후 누려온 면책이 끝나고, 또 다른 악마화의 대상이 되는 것을 죽음으로 막으려고 했던 것 같다. 

■더 악화된 세르비아·크로아티아·무슬림의 극우 민족주의, ICTY의 쓸쓸한 퇴장

믈라디치가 여전히 세르비아인들의 영웅인 것처럼 프랄략은 크로아티아인들의 영웅이다. 보스니아 안팎의 크로아티아인들 사이에서는 그의 죽음을 순교로, 그를 성인으로 떠받드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당장 29일 당일 보스니아 크로아티아계 지역에선 추모 예배와 촛불 추념회가 열렸다. 안드레이 플렌코비치 크로아티아 총리는 “프랄략의 자살은 ICTY의 부당한 판결 결과에 대해 저항하라는 메시지였다”라고 말했다. 아이슬랜드를 방문중이던 콜린다 그라바르-키타로비치 크로아티아 대통령은 급거 귀국했다. 그라바르-키타로비치 대통령은 지난주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에서 열렸던 공식행사에서 ‘세르비아계의 공격으로부터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를 방위한 프랄략 장군의 위업’을 평가하는 책을 낭독했었다. 

보스니아 남부의 고도(古都) 모스타르. 이 아름다운 중세의 도시에서 전쟁범죄가 자행됐다. 맨 위의 다리는 크로아티아계 민병대가 파괴한 크리바 쿠프리야 다리로 보스니아의 상징이다. 오토만 제국이 발칸반도에 남겨놓은 가장 아름다운 구조물로 평가된다. 전후 재건됐다. 위키피디아

보스니아 남부의 고도(古都) 모스타르. 이 아름다운 중세의 도시에서 전쟁범죄가 자행됐다. 맨 위의 다리는 크로아티아계 민병대가 파괴한 크리바 쿠프리야 다리로 보스니아의 상징이다. 오토만 제국이 발칸반도에 남겨놓은 가장 아름다운 구조물로 평가된다. 전후 재건됐다. 위키피디아

하지만 보스니아 무슬림들의 반응은 달랐다. 전쟁 중 크로아티아계에 구금됐던 한 무슬림 퇴역군인은 AFP통신에 “슬픈 일이다. 하지만 프랄략은 형량을 다 채웠어야 했다”고 말했다. 작고한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보스니아 대통령의 아들 바키르는 AP통신에 “프랄략씨는 훌륭한 영화감독이었다. 모스타르를 파괴하는 대신 모스타르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ICTY는 명예롭지 못한 끝을 보게 됐다. 이날 선고는 1993년 설립된 ICTY가 올해 말 문을 닫기 전에 연 마지막 공판이었다. 희대의 자살극으로 명예롭지 못한 퇴장을 하게됐다. 프랄략의 자살은 국제사회가 주장해 온 정의에 대한 통렬한 부정인 동시에 죽음으로 ‘대의’를 지키려는 마지막 수단이었다. 하지만 그 ‘대의’는 대의가 아니다. 보스니아 전쟁 뒤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무슬림 사회에서는 극우 민족주의 가 더욱 견고해졌다. 바로 ICTY가 막으려고 했던 악의 근원이다. 네덜란드 경찰은 재판정을 ‘범죄현장’으로 지정하고 프랄략이 독극물을 반입한 경위를 수사하고 있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이후 가장 중요한 전범재판이었다는 ICTV가 과연 정의를 구현했을까. 무슬림·세르비아계·크로아티아계가 연방을 이루는 방식으로 종결된 전쟁, 보스니아의 평화는 항구적일까. 22년전 총성이 멎은 보스니아가 세계에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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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주 샬롯츠빌의 한 공원에 있는 남북전쟁 때 남부군 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 지난 8월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폭력시위 뒤 검은 장막이 씌워졌다. 위키페디아


■보스니아 1992년&샬롯츠빌 2017년, 상징과 기억의 전쟁 

장면1=미국 버지니아주의 아름다운 고도 샬롯츠빌의 해방공원에서 지난 8월11일부터 이틀 동안 벌어진 연합우파 집회는 그야말로 극우의 종합판이었다. 백인우월주의 KKK와 남북전쟁 당시 남부동맹 부흥주의자, 신나치를 비롯한 극우주의자들이 연합했다. 반 유대주의 구호도 새나왔다. 남부동맹의 사령관이었던 로버트 E 리장군의 동상을 없애자는 여론이 커지는 것에 반발해 모인 사람들이다. 이들 중 한명이 맞불시위를 벌이던 행렬로 승용차를 몰아 30여명에게 상처를 입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인우월주의자들을 두둔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파장이 커진 집회였다.

장면2-보스니아 전쟁은 ‘날조된 공포’가 촉발시킨 전쟁이자, ‘기억의 전쟁’이었다. 처음엔 세르비아계에 대항해 크로아티아계와 보스니아계가 함께 싸우다가 크로아티아계-보스니아계, 크로아티아계-세르비아계, 세르비아계-보스니아계 등이 물고 물리는 혼전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상대를 ‘악마화’하기 위한 상징들이 동원됐다. 하나같이 과거의 상징들이었다. 우선 세르비아계는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괴뢰국 ‘크로아티아 독립국’의 파시스트 정파인 우스타샤의 상징을 소환했다. 지금도 크로아티아 국기에 들어가 있는 적·백 체크무늬 문장(紋章)이다. 

2차대전 당시 크로아티아 파시스트 정파 우스타샤의 상징. 적·백 체크무늬는 지금도 크로아티아 국기에 표시돼 있지만, 세르비아인들에겐 공포의 상징이다.

2차대전 당시 크로아티아 파시스트 정파 우스타샤의 상징. 적·백 체크무늬는 지금도 크로아티아 국기에 표시돼 있지만, 세르비아인들에겐 공포의 상징이다.


■우스타샤·체트니크·예니체리·남부군 깃발, ‘역사의 무덤’에서 꺼내온 증오의 상징들

포퓰리즘은 상징과 기억에 기생한다. 본능적으로 분열과 증오를 숙주로 삼기 때문이다. 현재에서 분열의 단서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주저없이 지나간 분열과 증오의 상징 및 기억을 소환한다. 남북전쟁 이후 12년 동안 ‘재건(Reconstruction)’의 기치 아래 북군의 점령통치를 받았던 딕시랜드(Dixieland, 옛 남부연맹 지역)의 좌절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탈냉전 뒤 미국의 극우시위대는 나치의 상징인 스와스티커와 함께 140여년전 남부동맹의 상징을 소환했다. 보스니아에서는 2차대전을 넘어 수백년 전 오토만제국 시절의 상징까지 소환됐다. 

2차대전 중 크로아티아인들을 테러공격했던 세르비아인들의 무장단체 체트니크의 상징.

2차대전 중 크로아티아인들을 테러공격했던 세르비아인들의 무장단체 체트니크의 상징.

2차대전 중 우스타샤에 대항했던 세르비아인들의 집단은 체트니크(Chetnik)이었다. 크로아티아계와 무슬림들을 상대로 테러를 벌였다. 크로아티아인들과 무슬림에겐 역시 증오의 상징이다. 종종과 종교와 무관하게 구성됐던 티토의 유격대(빨치산)도 공격대상이었다. 국제유고전범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보스니아인들은 세르비아계를 경멸의 의미를 담아 ‘체트니크’라고 불렀다. 보스니아 무슬림들은 2차대전에서 증오의 상징을 찾지 못했다. 해서 더 오랜 과거의 상징을 소환했다. 바로 오토만제국 시절 주로 보스니아 지역에서 차출됐던 예니체리였다. 오토만에 부역했던 보스니아인들과 달리, 오토만에 저항했던 세르비아인들에겐 증오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우스타샤는 전쟁 중 세르비아계와 무슬림, 집시, 유대인 등에 대해 무차별 인종청소를 저지른 ‘제2의 나치’였다. 유고연방 통계청은 우스타샤로 인한 희생자를 59만7323명으로 잡고 있다. 이중 34만6740명이 세르비아인, 8만3257명이 크로아티아인이다. 크로아티아인들은 세르비아인들이나 무슬림들이 자다가도 놀라 깨어날 적·백 체크무늬 깃발을 들고 전쟁에 나선 것이다.

1946년 9월16일자 미국 시사주간 타임의 표지인물로 등장한 요시프 티토. 1990년대 보스니아에선 티토와 같은 ‘통합의 상징’이 ‘증오의 상징’으로 대체됐다.

1946년 9월16일자 미국 시사주간 타임의 표지인물로 등장한 요시프 티토. 1990년대 보스니아에선 티토와 같은 ‘통합의 상징’이 ‘증오의 상징’으로 대체됐다. 


■사라예보의 과거는 포퓰리즘의 미래일까 

1990년대 초 보스니아 전쟁은 어찌보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유고연방의 붕괴와 신천지를 열어야할 동인이 적었다는 말이다. 현재에서 증오를 발견하지 못한 민족주의 정치인들이 과거에서 증오의 상징을 소환했다. 수백년 동안 살았던 삶의 터전이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 먼곳에 떨어져 있는 동포가 죽임을 당한다는 거짓 정보, 이 모든 공포를 부추기고 조작한 정치의 세가지 요소가 파괴적인 칵테일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한국전쟁 후 남북의 영토가 크게 차이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세 민족의 거주지는 보스니아 전쟁 뒤 약간의 조정과정을 거쳤을 뿐 누구도 압도적인 영토상 이익을 얻지 못했다. '약간의 조정' 과정에 20만명이 죽고 300만명이 난민이 됐다. 

1992년 사라예보 도심의 정부청사가 세르비아계의 포격으로 불타고 있다.  전쟁은 1984년 동계올림픽 주최도시를 석기시대로 돌려놓았다. 위키페디아

1992년 사라예보 도심의 정부청사가 세르비아계의 포격으로 불타고 있다. 전쟁은 1984년 동계올림픽 주최도시를 석기시대로 돌려놓았다. 위키페디아 

유고연방이 애시당초 분열될 운명이었다는 시각은 서구 중심의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본다. 1차대전 전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과 오토만제국(세르비아·마케도니아·몬테네그로)의 지배를 받으면서 종교(가톨릭과 정교회)와 문자(키릴문자와 로마알파벳)가 달라졌지만, 남(Yugo) 슬라브 민족들은 40여년 간 통합을 구가하고 있었다. 그 밑둥에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자 연맹(SKJ·유고 공산당)’이 있었다. 유고공산당의 분열이 밀로셰비치나 프란요 투즈만,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같은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수직 전파되면서 비극이 잉태됐다. 유고연방이 현대사에서 이룩한 통합의 정신, 통합의 상징을 과거사에서 소환한 증오의 감정, 증오의 상징으로 대체한 것이다. 

무슬림 밀집지역 사라예보의 비극이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에게는 1973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정현숙 선수가 금메달을 딴 곳으로 알려졌다. 1984년에는 제16회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현대화된 도시다. 하지만 전쟁과 함께 세르비아계의 포위가 1425일(1992년 4월5일~1996년 2월29일) 동안 계속됐다. 특히 저격수들의 인간사냥이 치명적이었다. 1만여명이 숨졌다. 사라예보 축구경기장은 시체가 많아지면서 공동묘지로 변했다. 단순히 전쟁의 참상으로만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거짓 공포의 확산→공포의 증오화→충돌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이 사라예보에 남긴 것은 보스니아의 과거이자 포퓰리즘이 제시하는 미래상일지도 모른다. 

사라예보 포위 20주년을 기념해 2012년 4월6일 사라예보 도심에 재현된 레드라인. 희생자 1만1541명의 숫자에 맞춰 붉은 색 의자로 만든 선이다.  위키페디아

사라예보 포위 20주년을 기념해 2012년 4월6일 사라예보 도심에 재현된 레드라인. 희생자 1만1541명의 숫자에 맞춰 붉은 색 의자로 만든 선이다. 위키페디아

■포퓰리즘, 세계의 발칸화(Balkanization)? 

작금에 확산되는 구미 포퓰리즘과 보스니아 전쟁은 모두 민족주의와 거짓 공포, 증오의 감정이 야기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포퓰리즘이 수평적으로 확산되는 반면에 유고연방의 민족주의는 기성 정치인으로부터 수직적으로 내려왔다. 역사적 기억을 호출했다는 점에서, 또 정치적으로 하달된 프로파갠다라는 점에서 수직적이다. 세계화의 패배자들 사이에서 수평적으로 시작했지만 수직화의 실험을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은 예외다. 유고연방의 민족주의가 사회주의의 연대와 제도를 붕괴시켰다면, 트럼프의 미국은 민주주의의 톨레랑스와 제도를 흔들고 있다.

보스니아 전쟁에서 거짓 공포와 증오를 퍼날랐던 언론도 달라졌다. 이제는 라디오나 TV, 신문과 같은 기성 매체의 역할이 크지 않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소셜미디어가 더욱 효율적으로, 더욱 빠르게 증오를 확산시킨다. 트럼프에게는 나치의 괴벨스와 같은 선전의 고수가 필요치 않다.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트위터 메시지를 통해 지지자들과 직접 소통하면 되기 때문이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의 깃발. 지금도 미국 극우파들의 시위에 자주 등장하는 상징이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의 깃발. 지금도 미국 극우파들의 시위에 자주 등장하는 상징이다.

트럼프의 미국이 직면한 위협은 단순한 민주주의 가치의 위기에 그치지 않는다. 조작된 공포와, 소환된 증오가 이미 샬롯츠빌 사태에서처럼 사회적, 문화적 내전으로 치닫고 있다. 그 불온한 에너지가 밖으로 향할 때 세계 역시 불안정해질 공산이 크다. 보스니아 전쟁과 포퓰리즘이 한반도에 던지는 메시지도 간단치 않다. 북한의 핵위협에 노출된 한반도는 한국전쟁에서 잉태된 증오의 감정이 여전히 시퍼렇다. 단순히 온라인 상에서 골통우파와 친북좌파 간에 댓글싸움 만 벌이는 게 아니다. 태극기 시위대와 촛불 시위대의 충돌에서처럼 물리적 충돌로 번지고 있다. 과거의 증오와 현재의 갈등이 비극의 칵테일로 발전할 소지가 다분한 것이다. 국제유고전범재판(ICTY)에서 지난 11월22일 종신형을 받은 라트코 믈라디치는 정규 사관학교를 졸업한 엘리트 군장교였다. 증오의 광기에 휩쓸리지만 않았다면 지금쯤 퇴역군인으로 명예로운 노년을 보낼 수있었다. 우리안에도 잠재적인 라트코 믈라디치는 많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1281556001&code=970100#csidxe5044dc1685a2f38b7b0272f1d49c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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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의 현장 스레브레니차에서 2012년 520여구의 유해가 새로 발견됐다. 그해 7월9일 보스니아 무슬림 여자들이 친척의 유해를 담은 관 앞에서 추모하고 있다. 라트코 믈라디치에 대한 ICTY의 판결 하루전인 지난 21일 AP통신이 다시 내보낸 자료사진이다. AP연합뉴스


■조작된 공포→증오→학살의 악순환 
사람은 언제 가장 잔인해질까. 현대사의 비극을 보면 많은 경우 스스로 두려울 때 잔인해졌다. 두려움이 클수록 잔인해졌다. 최대 150만명이 희생된 캄보디아 킬링필드에서 크메르루즈 병사들이 학살의 광기를 벌인 이유의 하나는 “베트남이 침략한다”는 소문이었다. 캄보디아내 베트남 주민이 학살당하면서 결국 1979년 베트남이 실제 침공했지만, 그 몇년전부터 베트남 침공에 대한 공포가 간첩 또는 잠재적 부역 혐의자들에 대한 학살의 광기에 석유를 부었다. 

‘형제애와 단합(Brotherood and Unity)’의 깃발 아래 2개의 자치주(보이보디나, 코소보)와 6개의 공화국(세르비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슬로베니아·마케도니아·몬테네그로)이 평화로이 어우려져 살던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 역시 정치적으로 조작된 ‘거짓 공포’였다.

2017년 현재, 세계 곳곳에 만연하고 있는 포퓰리즘은 1990년대 초 보스니아 내전에 그 원형이 있었다. 바로 민족주의와 ‘거짓 공포’에 젖줄을 대고 있는 증오의 감정이다. 무슬림이 일자리는 물론 국가정체성마저 위협한다는 거짓 공포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은 물론,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 폴란드 등 유럽을 휩쓸고 있지 않은가. 다른 점이 있다면 아직 구미 각국의 포퓰리즘이 물리적 내전으로 번지지 않았다는 점 뿐이다. 사회적으론 이미 내전상태다. 큰 틀에서 진행순서 및 경로는 동일하다. 정치적 의도→미디어를 통한 거짓 공포의 확산→공포의 증오화→충돌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인 것이다. 라트코 믈라디치 전 세르비아계 총사령관에게 종신형을 선고한 지난 11월22일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판결을 계기로 보스니아 전쟁을 되돌아 보는 이유다. 

위키페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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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1월, 베오그라드. 결국 문제는 정치였다 

주말 저녁 베오그라드 대학 구내 카페는 젊은이들이 독차지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편안하게 식사와 와인, 커피를 즐기는 공간이었다. 그곳에는 보스니아계 무슬림들도 섞여 있었다. 당시 베오그라드 최고 인기곡 역시 보스니아 여가수의 노래였다. 1995년 11월이면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의 인종청소가 일어난지 4달이 된 시점이다. (전쟁은 최악을 겪은 뒤 사그라든다. 보스니아 전쟁은 같은해 12월 데이턴협정 체결로 종식됐다.) 세르비아계가 인종청소를 위해 학살은 물론 무슬림 여성들을 집단 강간했다는 뉴스로 세계가 분노하던 시점이다. 하지만 세르비아 수도 한복판에서 보스니아계가 활보를 하는 것은 물론 서로 어울려 춤을 추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기자가 이야기를 나눈 주민들은 모두 “전쟁은 전쟁으로 재미를 보는 사람들이 일으켰을 뿐, 보통사람들과는 관계가 없다”는 말을 내놓았다. 전쟁의 참화에 휩싸인 보스니아 내에서도 무슬림,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가 아무런 이질감 없이 섞여 살았다는 말도 전해주었다. 실제로 전쟁 발발 전까지 ‘형제애와 단합’은 2차대전 이후 유고연방의 핵심가치였다. 류블라냐(슬로베니아)-자그레브(크로아티아)-베오그라드(세르비아)-스코페(마케도니아)로 남북을 잇는 고속도로의 이름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을 바꿔놓은 것은 정치였으며, 이에 복무한 나쁜 언론이었다. 

■“우리 동족이 살륙의 위협에 처했다” 정치가 만든 ‘가짜뉴스’

1991년 6월25일 크로아티아가 유고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먼저 정정이 불안해진 곳은 크로아티아다. 크로아티아 내 세르비아계가 독립을 선포, 크라이나 공화국을 표방했다. 크로아티아계와 세르비아계 민병대 사이에 전운이 짙어졌다. 1991년 10월15일 보스니아 의회가 독립선언(공식 독립선언은 1992년 4월7일)을 하자 이번에는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와 크로아티아계가 각각 독립 공화국을 표방했다.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와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는 각각 소수민족으로 전락한 동족이 위험에 처했다는 소문이 급속히 퍼지기 시작했다. 바탕에는 1991년 3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세르비아 대통령과 프란요 투지만 크로아티아 대통령이 보스니아를 분점, 각각 자국에 통합키로 한 밀약이 있었다. 

보스니아계는 크로아티아계와 세르비아계의 공격을 과장 선전하고, 크로아티아계는 세르비아계와 보스니아계의 공격을, 세르비아계는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의 공격을 선전했다. 그 결과 보스니아 내 동족들을 돕기 위한 기금이 걷히고 무기와 민병대가 속속도착했다. 이와중에 방화와 약탈을 통해 거액을 축재한 이들이 있었다. 실제로 3개의 종족 간에 자행된 광범위한 인종청소와 집단강간은 상당부분 민병대에 의해 이뤄졌다. 지난 11월22일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가 라트코 믈라디치 세르비아계 스르프스카 공화국 사령관에게 인종청소 및 전쟁범죄, 반인도적범죄 등의 혐의를 물으면서도 보스니아 6곳에서 자행된 인종청소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한 이유다.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총사령관이던 라트코 믈라디치에 대한 ICTY의 판결이 있던 지난 11월22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법정 밖에서 보스니아 전쟁 당시 세르비아계의 수용소에 갇혔던 자신의 깡마른 모습이 담긴 1992년 타임지 표지사진을 들고 서 있다. EPA통신은 그가 무슬림인지, 크로아티아계인 지 밝히지 않았다. EPA연합뉴스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총사령관이던 라트코 믈라디치에 대한 ICTY의 판결이 있던 지난 11월22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법정 밖에서 보스니아 전쟁 당시 세르비아계의 수용소에 갇혔던 자신의 깡마른 모습이 담긴 1992년 타임지 표지사진을 들고 서 있다. EPA통신은 그가 무슬림인지, 크로아티아계인 지 밝히지 않았다. EPA연합뉴스 

일례로 보스니아 무슬림과 크로아티아계 매체들은 세르비아계가 6만명의 무슬림 여자들을 강간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유엔 주도하에 국제사회가 조사에 나서자 보스니아 무슬림 정부가 제출한 증거에는 피해자가 126명에 불과했다. 조사결과 전체 2400명이 강간피해를 당했으며, 무슬림은 물론 크로아티아계와 세르비아계 여성들도 포함됐다. 민족청소 및 전쟁범죄 역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자행된 혼란의 도가니였다. 이 와중에 특정 정파의 선전에 넘어간 서방 주류매체들의 과장, 허위보도가 불투명성을 더했다. 전쟁이 끝나고 세르비아계 뿐 아니라 무슬림계와 크로아티아계 군지지휘관들도 민족청소 또는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ICTY에 기소돼 종신형 또는 수십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투즈만은 1999년에 사망함으로써 기소를 피했다. 

지난 11월11일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의 스르프스카 공화국 수도인 반야루카에서 한 세르비아계 소년이 라트코 믈라디치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보고 있다. 티셔츠에는 ‘장군, 누가 두려우십니까. 두려워할 것은 신 밖에 없습니다’라는 문장이 써 있다.  세르비아계에게 믈라디치는 극단의 위협에서 자신들을 보호해준 영웅이다. AP연합뉴스

지난 11월11일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의 스르프스카 공화국 수도인 반야루카에서 한 세르비아계 소년이 라트코 믈라디치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보고 있다. 티셔츠에는 ‘장군, 누가 두려우십니까. 두려워할 것은 신 밖에 없습니다’라는 문장이 써 있다. 세르비아계에게 믈라디치는 극단의 위협에서 자신들을 보호해준 영웅이다. AP연합뉴스 


■극단적인 ‘정치적 날조’가 전쟁 원인, ‘라트코 믈라디치’는 여러명이었다 

보스니아를 분할하려는 밀로셰비치와 투즈만의 정치와 이에 복무한 나쁜 미디어가 주범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혼란을 틈탄 범죄집단이 구성한 민병대가 피해를 키웠다. 영국 사학자 노엘 말콤은 1994년 “지난 15년 동안 보스니아의 무슬림, 크로아티아계, 세르비아계 마을을 여행하면서 민족 간 증오가 들끓고 있었다는 주장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1991~1992년 기간 동안 베오그라드에서 라디오와 TV를 지켜본 뒤에야 왜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크로아티아의)우스타샤와 (보스니아의)이슬람 원리주의 지하드 전사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고 믿게 됐는지 알게 됐다”고 기술했다. 같은해 저서 <보스니아, 약사>에서 내린 결론이다. 종교분쟁설도 마찬가지다. 스탠퍼드 대학 글로벌환경 개발윤리학(EDGE)의 ‘유고분쟁의 역사 및 분쟁 분석’ 보고서는 “종교갈등의 어떠한 근거도 없었다”면서 “보스니아 전쟁은 과거의 민족 간 증오의 결과가 아닌, 극단적인 정치인들에 의한 날조(fabrication) 때문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전쟁을 조작했던 정치인과 군인들은 대부분 죽거나 감옥에 있다. 밀로셰비치는 네덜란드의 ICTY 감옥(2006년)에서, 투지만(1999년)과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보스니아 대통령(2003년)은 자연사했다. ‘형제애와 단합’의 고속도로는 끊겼다. 그 폐해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라트코 믈라디치는 조연에 불과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1271050001&code=970100#csidx1a3f69f37b51fa8b3e6e506d47492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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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레브니차 학살의 유해발굴 현장. 1996년 9월18일 국제유고전범재판소의 조사관들이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 인근 피리차에서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995년 11월, 기자는 발칸의 첫눈을 베오그라드에서 맞았다. 고전음악축제를 마치고 레스토랑으로 온 사람들은 음악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덧없음을 토로하면서 밤이 늦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식탁 옆 집시악단의 바이올린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며 전쟁의 궁핍함을 한탄했다. 그들이 아쉬워한 좋았던 시절은 언어와 종교가 다르지만 인종학적으로 동족인 남(Yugo)슬라브 사람들끼리 사이 좋게 넘나들며 친선과 번영을 구가하던 요시프 티토(1892~1980)시절이었다. 1995년은 유고 내전 또는 국제전이 막바지에 달했던 때다. 

베오그라드에서 머문 며칠 동안 국제부 기자로서 사고의 근육을 키울 수 있었다. 하나의 국제적 이슈를 볼 때 서방언론을 상식으로만 접했던 절반에서 벗어나 다른 절반의 진실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깨침이었으며, 현실 국제정치에서 정의는 늘 절반의 사실을 토대로 한다는 발견, 또 그 결과는 결코 정의롭지도, 공평하지도 못하다는 상식의 반란이었다. 

발칸의 굴곡진 현대사가 한반도의 그것과 중첩되어 읽혔던, 우리 문제의 객관화도 경험했다. 역사도, 인물도 그리 흘러간다. 하지만 어떠한 전쟁도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절반을 정리하고 절반을 뭉갠다. 그 상태에서 다시 새로운 연대기를 시작하는 것이 역사인지도 모른다. 역할이 컸건 작았건, 역사의 거대한 격랑에 실려가는 사람도 그렇다. 

보스니아 세르비아계가 건립한 스르프스카 정부군 총사령관이었던 라트코 믈라디치가 지난 11월22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에 출정하고 있다. 뉘렌베르크 전범재판 이후 가장 중요한 전범재판소인 ICTY는 그에게 인종청소를 비롯한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 혐의를 물어 종신형을 선고했다.  EPA연합뉴스

보스니아 세르비아계가 건립한 스르프스카 정부군 총사령관이었던 라트코 믈라디치가 지난 11월22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에 출정하고 있다. 뉘렌베르크 전범재판 이후 가장 중요한 전범재판소인 ICTY는 그에게 인종청소를 비롯한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 혐의를 물어 종신형을 선고했다. EPA연합뉴스 

보스니아 내전(1992~1995) 당시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의 사령관이었던 라트코 믈라디치(74)가 22일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을 들은 믈라디치는 “이건 모두 거짓말이다. 모두가 거짓말쟁이다”라고 외치면서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심리과정에서 ICTY를 두고 ‘악마의 법정’이라고 했던 그다. 항소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물론 지극히 희박하다. 우선 밝혀진 혐의가 너무 무겁다. 16년의 도피생활 끝에 2011년 체포된 뒤 500여명의 증인들이 라트코의 범죄사실을 증언했다.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에서 대부분 남자였던 무슬림 8300여명을 인종청소, 내전 기간 내내 사라예보를 포위 공격해 주민 1만1000여명을 죽인 혐의 외에도 혐의는 많다. 고문과 살해, 인질 억류 등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 혐의가 인정됐다. 

ICTY는 24년 동안의 활동을 마치고 연내 문을 닫는다. 뉘렌베르크 전범재판 이후 처음으로 전쟁범죄에 대한 국제사회의 단죄를 완성함으로써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 서방언론은 이에 의미를 부여하며 보편적인 정의가 작은 승리를 거뒀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뉘렌베르크 이후 한국전쟁을 필두로 베트남전, 소련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미국이 치른 두차례의 걸프전, 러시아의 체첸내전 등 숱한 전쟁에서 저질러진 전쟁범죄는 단죄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최근의 시리아 내전도 마찬가지다. 보스니아 내전의 3개의 축인 세르비아계만을 콕 집어 악마시해 온 모순도 고스란히 남게됐다.

믈라디치에게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를 단죄하는 것으로 손을 털고 일어선다면 불완전한 진실을 인정하는 셈이다. 전쟁에선 모두가 가해자이고, 모두가 피해자이다. 그만큼 발칸의 역사는 녹록치 않으며, 보스니아 전쟁은 그 한 장(章)에 불과하다. ICTY가 그를 스레브레니차 인종학살의 주범으로 단죄한 날, 보스니아 동부의 세르비아계 거주지역에는 여전히 그를 영웅으로 떠받드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오히려 ICTY를 비난하는 시위까지 벌어졌다. 보스니아 내전은 작금에 유럽을 휩쓸고 있는 포퓰리즘과는 결이 다르다. 결만 다른 게 아니라, 깊이 패인 골도 다르다.

1995년 여름 보스니아 반야루카의 일선부대 시찰에 나선 라트코 믈라디치 스르프스카 정부군 사령관이  경례를 하고 있다. 티토 휘하 빨치산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보스니아 전쟁 전까지 유고연방의 정규 육사를 졸업한 엘리트 군인이었다.<br />EPA연합뉴스

1995년 여름 보스니아 반야루카의 일선부대 시찰에 나선 라트코 믈라디치 스르프스카 정부군 사령관이 경례를 하고 있다. 티토 휘하 빨치산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보스니아 전쟁 전까지 유고연방의 정규 육사를 졸업한 엘리트 군인이었다. EPA연합뉴스 

헤르체고비나 보자노비치에서 태어난 라트코의 운명은 갓난아기 시절에 이미 결정됐는지도 모른다. 2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는 나치독일에 저항했던 요시프 티토의 유격대 전사였다. 우스타샤와의 교전중 사망했다. 우스타샤는 나치친위대(SS)를 모방해서 크로아티아인들이 만든 극우 파쇼 무장세력이다. 라트코의 고향마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협력했던 크로아티아 괴뢰 공화국의 영토였다. (우리로 따지면 항일 독립군이 일제의 괴뢰국이던 만주국의 독립군 토벌대에 죽음을 당한 격이다.)

유고슬라비아는 미국이나 소련의 도움 없이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됐다. 티토의 빨치산 투쟁 덕이었다. 유고연방이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1956년 스탈린 체제에서 탈피, 비동맹국가의 맹주로 떠오른 배경이다. 티토의 유고연방은 ‘제3의 길’을 걸었다. 이미 1950년대 사회주의의 단점을 보완하는 ‘자주관리 사회주의’로 중·동유럽에서 가장 성공적인 경제적 번영도 구가했다. 1980년대 현대자동차가 ‘포니’로 미국시장을 처음 두드릴 때 경쟁 차종이 유고연방이 만든 ‘유고(Yugo)’였다.

보스니아 전쟁중이던 1995년 7월14일 유엔이 마련한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의 안전지대에 난민들이 모여 있다.  AP연합뉴스

보스니아 전쟁중이던 1995년 7월14일 유엔이 마련한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의 안전지대에 난민들이 모여 있다. AP연합뉴스

빨치산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군인의 삶을 선택했다. ‘라트코(Ratko)’라는 이름부터가 슬라브어로 ‘전쟁’을 뜻한다. 1965년 유고연방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마케도니아에서 소대장으로 군경력을 시작했다. 1990년 당이 해체될 때까지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원의 신분을 유지했다. 1991년 6월 민족 분규가 잦던 코소보에 잠시 주둔한 그는 같은달 독립을 선언한 크로아티아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이동했다. 혁혁한 무공을 세웠지만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막지는 못했다. 

장군 계급장을 단 1992년 5월 ‘주적’이 다시 바뀌었다. 역시 독립을 선포한 보스니아의 반란군이었다. 그 사이 반란의 주·객이 바뀌었다. 반란군을 진압하는 유고연방군에서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반란군으로 전략한 것이다. 헬무트 콜 총리의 독일을 필두로 각국이 보스니아를 독립국으로 인정하면서 자기 땅 안에서 정부군에서 반군으로 신분이 바뀐 것이다. 유고 내전을 국제전으로 비화시킨 장본인이 콜 총리라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그는 1992년 5월 보스니아 세르비아계가 선포한 스르프스카 공화국(Republika Srpska)의 정부군사령관이 됐다. 세르비아계 입장에서 보면 정부군이지만, 스프르스카를 인정하지 않은 서방 입장에선 여전히 반군이었다. 결정의 주체인 국제사회의 승인 여부에 따라 유고연방군에서 보스니아 반군으로 다시 스르프스카 정부군으로 바뀐 셈이다. 

보스니아 주민들이 11월22일 스레브레니차 인근 포토카리에 세워진 학살 추념시설에서 라트코 믈라디치에 대한 ICTY의 판결이 내려지는 장면을 TV로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AP연합뉴스

보스니아 주민들이 11월22일 스레브레니차 인근 포토카리에 세워진 학살 추념시설에서 라트코 믈라디치에 대한 ICTY의 판결이 내려지는 장면을 TV로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AP연합뉴스

보스니아의 독립선포는 무모한 것이었다. 앞서 유고연방에서 이탈한 슬로베니아는 민족구성이 복잡하지 않았던데다가 지정학적으로 서방에 가까웠고, 크로아티아는 자체 역량이 있었지만 보스니아는 무턱대고 독립을 선포했다. 라트코의 정규군은 오즈렌과 투즐라 등의 접전지역에서 보스니아 정부군을 격퇴했다. 보스니아 정부군은 서방의 지원을 받았지만 유고연방군의 무력과 조직을 물려받은 스르프스카 정부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라트코는 병사들과 함께 먹고 함께 잠을 잤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투중에 장갑차에 올라 진두지휘했다. 스르프스카는 전쟁 기간 대부분 보스니아 영토의 70% 가량을 점령하고 있었다. 보스니아는 사라예보에서 섬처럼 고립됐다. 

전쟁에는 정규군만 동원된 것이 아니었다. 스르프스카 정부군과 보스니아 정부군은 물론 크로아티아계와 세르비아계, 보스니아계 비정규 무장세력도 활동했다. 스레브레니차 학살을 비롯한 그에게 씌워진 많은 전쟁범죄의 상당부분에 다른 무장세력도 관여했었다는 말이다. 서방언론으로부터 ‘발칸의 도살자’라는 악명을 받았지만 상당부분 잘못 알려졌거나 과장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믈라디치가 총사령관이 되기 전에 이미 학살은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최소한 그 모든 학살의 책임을 라트코에만 씌우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실제로 스르프스카 정부군의 한 장교는 믈라디치 사령관이 무슬림 전쟁포로의 처형을 금지시켰다고 증언했다. 크로아티아계 전쟁포로는 그가 수용소를 방문한 뒤 포로대우가 훨씬 개선됐다고도 증언했다. ICTY가 1만여건의 증거자료를 검토한 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보스니아 6개 지방에서 자행됐던 인종청소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린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전쟁에서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ICTY가 라트코 믈라디치에게 종신형을 선고한 11월22일 밤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도심에서 믈라디치를 지지하는 주민들이 모여 항의 집회를 갖고 있다. 배경에는 믈라디치의 초상화와 함께 ‘세르비아인과 러시아인은 영원한 형제다’라는 펼침막이 보인다.  AP연합뉴스

ICTY가 라트코 믈라디치에게 종신형을 선고한 11월22일 밤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도심에서 믈라디치를 지지하는 주민들이 모여 항의 집회를 갖고 있다. 배경에는 믈라디치의 초상화와 함께 ‘세르비아인과 러시아인은 영원한 형제다’라는 펼침막이 보인다. AP연합뉴스 

믈라디치는 여전히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주민들에게 영웅이다. 그는 2011년 체포되기 전까지 16년 동안 세르비아에서 도피생활을 했다. 2009년 ICTY 측의 세르비아 주민 여론조사에서 라트코 믈라디치를 국제사법당국에 넘기겠다는 응답자는 34%에 불과했다. 78%는 넘기지 않겠다고 답했고, 전체 40%는 그를 영웅이라고 답했다. ‘영웅’과 ‘도살자’ 사이 어느 지점에 그의 인생이 놓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희생자였다는 점에 전쟁의 아이러니가 있다. 사라예보에 있던 그의 집은 개전 초기에 불탔다. 가족들과 떨어져 사라예보의 의과대학을 다니던 그의 딸 아나(당시 24세)는 아버지에 대한 비난을 못견뎌하다가 1994년 3월 자살했다.

그 역시 자신이 지휘했던 군대의 잔학행위를 인정한다. 하지만 조국의 군인으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스레브레니차 참극 역시 보스니아 측이 세르비아계를 비롯한 다른 인종을 내몰려고 무리수를 둔 끝에 발생했다. 전쟁 뒤 보스니아 연방 내 공화국으로 남은 스르프스카의 밀로라드 도디크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ICTY의 판결이 무엇이든 라트코 므라디치는 세르비아인들에게 전설로 남아 있다. 그는 군인으로서의 직업적 능력과 인간적 능력을 쏟아 세르비아인들과 그들의 자유를 지키는 책무를 다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침략자인가.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또는 포클랜드를 침략했는가. 아니면 소말리아나 걸프전에 뛰어들었는가. 아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국민을 지켰을 뿐이다.” 1994년 뉴욕타임스 매거진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이다. ICTY가 그를 기소하자 “베트남전에서 양민을 학살한 미국 장군은 왜 기소하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라트코는 종신형 판결 뒤 로이터에 “나는 늙었다. (내 운명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나의 사람들(세르비아인)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주느냐이다”라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1231524001&code=970205#csidx6cd8b20a742c3deb0d1468999865d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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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kfg 2021.06.10 0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발칸의 도살자’ 믈라디치 끝까지 반성이란 없었다
    국제형사재판소, 보스니아 대학살 주범에 종신형 확정

    장은교 기자 입력 : 2021.06.09 21:47 수정 : 2021.06.09 21:48


    1992~1995년 전쟁 과정서
    세르비아계 사령관 맡아
    무슬림 8000여명 학살 주도

    2017년 유죄 판결 후 항소, "군인의 의무 수행했을 뿐”

    1990년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이하 보스니아)에서 학살을 주도한 전 세르비아계 사령관 라트코 믈라디치(79)가 8일(현지시간) 국제형사재판소 최종심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피해자들은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준 역사적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믈라디치는 끝까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고, 세르비아에선 그를 영웅시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헤이그에 위치한 유엔 산하 국제형사재판소는 이날 대량학살과 전쟁범죄 등의 혐의로 2017년 유죄판결을 받은 믈라디치의 항소를 기각하고 종신형을 확정했다. 믈라디치는 “군인으로서 의무를 수행한 것뿐”이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믈라디치는 첫 판결 때 욕설을 내뱉으며 강하게 저항했지만, 이번엔 아무런 말이 없었다고 영국 언론 가디언은 전했다. 믈라디치는 유럽의 한 지역에서 남은 생을 복역하게 되는데, 장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유고슬라비아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슬로베니아 등으로 분리되는 과정에서 심각한 무력분쟁을 겪었다. 특히 1992~1995년 보스니아에서 일어난 전쟁은 동방정교회에 뿌리를 둔 세르비아계와 이슬람이 많은 보스니아계, 로마 가톨릭인 크로아티아계가 충돌하면서 피해가 컸다. 보스니아계는 독립을 추진했으나, 유고연방군의 지원을 받은 세르비아계군은 ‘인종청소’에 가까운 학살을 자행했다. 3년8개월간의 전쟁에서 약 10만명이 사망하고 200만명 이상이 난민이 됐다.
    .
    유고연방 육군 출신인 믈라디치는 1992년 5월 세르비아군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그는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1425일 동안 고립시킨 포위작전에 깊이 개입했고, 특히 1995년 소년들을 포함한 무슬림 8000여명을 살해해 2차대전 이후 가장 끔찍한 인종 대학살로 기록된 스레브레니차 대학살을 주도했다. 잔학한 수법 때문에 믈라디치는 ‘발칸의 도살자’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내전 종식 후 믈라디치는 16년 동안 도주 생활을 하다 2011년 친척집에서 붙잡혔다. 보스니아 내전과 관련해 160명 이상이 기소됐고 80여건의 재판이 진행됐다. 그와 함께 학살을 주도한 세르비아계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는 2019년 종신형을 선고받은 뒤 영국에서 복역 중이다.

    믈라디치를 생포해 기소한 검사 세르게 브람머츠는 “믈라디치는 현대사의 가장 악명 높은 전범 중 하나로 전쟁 범죄와 증오, 인간의 고통을 상징한다”며 “이번 판결은 피해자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가족 22명을 잃은 또 다른 피해자는 “이번 판결은 보스니아계든 세르비아계든 자식을 잃은 고통을 겪은 모든 어머니들의 승리”라고 말했다.

    믈라디치는 심판받았지만 유고연방에서 분리된 국가들 간의 분열은 여전하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판결은 세르비아의 일부 민족주의 단체들이 학살 책임을 부인하고 분쟁의 역사를 다시 쓰려고 하는 상황에서 나왔다”며 “유죄 판결을 받은 전범들이 영웅으로 칭송받고 믈라디치와 카라지치의 포스터가 공공장소에 등장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재판을 지켜본 한 수용소 생존자는 “유감스럽게도 그의 눈에서 악마를 보았다”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가 남긴 증오와 분열의 이데올로기 속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월19일(현지시간) 제72차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주권·안보·번영의 기본은 애국심, ‘트럼프 독트린’의 탄생

“뉴욕에 오신걸 환영한다… 신이여, 미국에 축복을.(Welcome to New York…God bless America)”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19일 유엔 총회 첫 연설에서 쏟아놓은 말들은 가장 솔직하고 선명하게 자신의 세계관을 천명한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미국)는 이데올로기가 아닌 결과에 따라 움직인다”면서 공허한 가치와 이상 보다는 실제적인 결과물을 추구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미국이 대의와 명분을 위해 잇속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미국 대통령들이 유엔 총회 연설 기회를 통해 이상적인 가치에 대한 신념을 강조해온 것과 극명하게 대조됐다. 트럼프 역시 주권·안보·번영이라는 3개의 ‘아름다운 기둥’이 떠받치는 세계 평화와 인도주의, 조화와 우애, 반 테러· 반 극단주의, 공정무역의 가치를 말했다. 현학이나 가식, 군더더기가 없이 내놓은 점이 종전 미국 대통령들과 다를 뿐이다. ‘아메리칸 포퓰리즘 선언’이자, ‘트럼프 독트린’을 세계에 알린 41분 연설이었다. 우리에겐 “미국과 동맹을 지켜야 한다면 북한을 완전하게 파괴할 수밖에 없다”는 한마디가 더 크게 들린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라도 트럼프가 그 막대한 전비를 미국이 부담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 같다. 트럼프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이번 연설문 처럼 좋은 텍스트는 없는 것 같다.



■“나는 미국 퍼스트(America First) 할테니 당신들은 당신 나라 퍼스트 하라”

세계는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선언에 기함을 하고 있지만 기실, 어떤 미국 대통령도 자국의 이해에서 벗어난 적은 없다. 트럼프는 터놓고 말했을 뿐이다. “나는 미국 대통령으로 미국을 최우선 할거다. 당신들도 자기나라 지도자로서 당신 나라를 최우선할 것이며, 또 그래야만 한다”면서 각각 자기나라의 주권과 번영을 위해 힘쓰자고 말했다. 트럼프가 처음 박수를 받은 대목이다. 그러면서 “하지만 미국은 더이상 이용당하거나, 일방적인 거래를 할 수없다. 대통령직을 갖고 있는 한 나는 다른 어떤 것보다 미국의 이익을 지킬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나온 것이 현실주의 선언이다. “미국은 분쟁과 갈등이 아닌, 조화와 우애를 원한다. 하지만 이념이 아닌, 결과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대외정책을 ‘원칙적 현실주의(principled realism)’라고 정의했다. 목표와 이해, 가치를 공유하는데 뿌리를 둔 현실주의라는 뜻이다.


■‘현실주의’의 지정학, 북한·이란의 변죽을 울려 중국·러시아에 경고

트럼프의 ‘원칙 현실주의’에 따르면 세계에는 지금 국제 평화는 물론 자국민을 위협하는 깡패정권이 2개 있다. 북한과 이란이다. 특히 북한은 모든 악의 결정판이다. 주민 수백만명의 굶주림, 투옥, 고문, 살해를 저지르고 있다. 버지니아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죽게 했고, 자기 형 김정남을 독살했으며, 13세 일본 소녀(요코다 메구미)를 납치해 일본어 선생으로 썼다.(요코다를 언급한 데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그간 트럼프에게 기울여온 노력이 엿보인다.) “핵무기와 미사일로 무장한 범죄자들의 무리에 관심을 갖고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면서 북한을 ‘타락한 정권’이라고 못박았다.


유엔 안보리가 최근 두개의 대북 제재 결의를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중국과 러시아에 특별한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그 직전, “우크라이나에서부터 남중국해까지 해당국가들의 주권을 위협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면서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했다. 2500만 인구의 북한을 “완전 파괴하겠다”는 대목에서 총회장은 싸늘해졌다.

(사진)

(이란 반체제 주민들이 9월20일 유엔 총회가 열리고 있는 뉴욕 유엔본부 밖에서 이란 정부의 인권탄압을 비난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란의 압제를 비난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란계 미국인 단체가 연 시위다. 사담 후세인 대통령 시절 이라크 반체제 인사들도 이러한 시위를 벌였었다. 하지만 미국의 침공으로 수십만명이 죽고, 수백만명이 난민이 된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는지 모를 일이다.  AP연합뉴스)


트럼프에게 이란은 ‘부패한 독재’의 가면을 쓴 나라다. 민주주의는 분장일 뿐이다. “이란 핵합의는 미국이 한 최악의 가장 일방적인 거래다.” 해서 “수출품이 폭력과 유혈, 혼란 뿐인 황폐화된 깡패국가가 (핵합의 덕에) 미사일과 궁극적으로는 핵프로그램을 구축하는 것을 좌시할 수가 없다.” 트럼프는 그러나 아직 이란 핵합의를 폐기할 명분이 없기 때문인지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북한과 이란이 지역 및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깡패국가라면, 베네수엘라는 자국민을 비참하게 만드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의 문제는 사회주의를 부실하게 이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주의를 충실하게 이행했기 때문”이라면서 사회주의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을 드러냈다. 옛 소련에서 쿠바, 베네수엘라에 이르기까지 사회주의를 제대로 이행한 국가들은 예외 없이 빈곤과 실패에 직면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현실주의’의 경제학, 안보든 번영이든 ‘더치페이’하자

대외원조를 중심으로 국무부 예산을 3분의 1정도 삭감한 트럼프의 세계관은 이번 연설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트럼프에 따르면 미국은 전쟁과 기아, 에이즈, 말라리아, 재해, 인권탄압에 신음하는 국가들을 연민해왔다. 마샬플랜을 비롯해 국제사회에 수십억달러를 공여해왔다. 하지만 193개 회원국의 하나인 미국이 유엔 운영예산의 22%를 부담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시리아 난민을 수용한 요르단·터키·레바논의 역할에 감사하면서도 트럼프가 안전하고, 책임성 있으며, 인도적 접근으로 제시한 난민정책은 비용과 직결돼 있다. 난민 1명을 미국에 받아들이는 비용으로 10명을 해당 지역에서 수용할 수 있다는 셈법이다. 최근 난민들을 고국 근처에 수용하는 것을 모색키로 한 주요 20개국(G20))의 결의와도 일치한다.


유엔의 고상한 창설이념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전복시키려는 국가들이 유엔을 하이재킹(납치)했다면서, 끔찍한 인도적 기록을 갖고 있는 나라들이 유엔 인권위원회 구성원으로 앉아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결론은 미국이 다른 나라의 주권을 존중할테니 “각국은 자신들의 지역에서 안전하고 번영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더 큰 역할을 해달라”는 주문이었다.


■‘현실주의’의 이데올로기는 ‘아름다운 애국심’

교역과 관련해 트럼프가 강조한 두가지는 공정성과 호혜성이다. 너무도 오랫동안 미국민은 거대 다국적 무역협정과 무책임한 국제법정, 강력한 글로벌 관료주의가 최선의 성공책이라고 들어왔다. 하지만 그러한 약속들이 지나간 뒤 수백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수천개의 공장이 사라졌다. 그 결과 “한때 미국 번영의 초석이었던 위대한 중산층은 잊힌 채 내버려졌다. 하지만 더 이상 잊히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다시는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버니 샌더스는 물론 프랑스의 극우 국민전선(FN) 마린 르펜의 주장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트럼프가 세개의 ‘아름다운 기둥’으로 내세운 가치는 주권·안보·번영이다. 그 세가지를 관통하는 상위의 개념이 애국심(Patriotism)이다. 트럼프는 생뚱맞게도 “유엔과 전 세계인들이 지금 직면한 진정한 문제는 바로 ‘우리는 여전히 애국적인가’라는 물음”이라고 말했다. “각국의 정신과 자존심, 국민중심 사고와 함께 애국심을 부흥시켜야 한다”고도 목청을 높였다. 주권과 애국심을 통치기반으로 삼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의 터키 등의 ‘스트롱맨’들이 좋아할 주장이다.


크림반도를 병합한 러시아와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국이 모두 그 아름다운 ‘주권’을 지키기 위해 행동했다고 하면 곧바로 모순에 부딪힌다. 하지만 트럼프에게 모순과 자가당착을 놓고 고민하는 모습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세계화의 연대기가 시작된 지 40년이 다 돼가는 시점에 주권과 애국심을 강조하는 것은 지독한 패러독스다. 하지만 그것이 트럼프의 세계관이고, 세계는 그와 함께 몇 년을 더 살아야 한다. 비난은 풍성하지만, 그 생각의 밑둥을 찬찬이 뜯어보는 작업은 빈곤하다. 동의하든 안하든 그의 생각을 읽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현실주의자’ 또는 ‘포퓰리스트’ 미국 대통령과 공존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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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감정적 포퓰리즘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 인터뷰. Eva Illouz. 르몽드 170726/'감정의 사회학'의 전문가. 


-도대체 미국은 물론 서구사회 일부가 왜포퓰리즘에 흔들리는가.

 우선 경제적 퇴보 때문이다. 1950녀대만해도 노동계급은 노동조합에 의해 보호를 받았다. 원하는 봉급을 받고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었다. 해외로의 공장이전은 노조를 약화시켰고, 일자리의 안전을 상습적으로 흔들고 있다. 

 두번째 중요한 요인은 사법적이고 상징적인 소수자의 권리가 대폭 향상됐다는 점이다. 소수자엔 여성도 포함된다. 인종주의와 차별과의 싸움에서 성공했다. 법정에서는 물론 미디어에서도 성공했다. 백인남자인 트럼프는 사회 경제적 지위가 하락한 노동자들을 동원하는 방법을 알아챘다. 자신들의 지위가 하락하는 동안 소수자들의 지위는 강력하게 향상된 세상에 살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많은 노동자들에게 가정과 거주지역(마을, 촌락)은 정체성의 근원이다. 동성애자와 자유로워진 여성들 및 이믽바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의 근원이자 지표인 가치를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실업상태의 많은 남성 노동계급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장미빛 칼라(여성)' 또는 낮은 임금도 마다않고 일할 준비가 된 이민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많은 가정에서 남자들보다 여자들의 노동이 더 안정적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남성성과 자본주의 사회조건을 전복시키고 있다. 이러한 남성들의 굴욕은 사회적이고 경제적이며 가정적이기도 하다. 가정 내에서 종래의 전통적인 역할을 할 수없게 됐기 때문이다. 마초인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의 성격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세번째 요인은 객관적인 불평등의 증가이다. 세계화와 함께 가장자리(주변)에 있던 일부 계층은 엄청나게 충실(성숙, enrichissement)해졌다. 이는 네번째 요인인 리버럴 좌파(La gauche liberale)의 새로운 위치설정과 맞물려 있다. 


-리버럴 좌파는 극우 포퓰리즘의 분출에 어떤 책임이 있는가.

 1970~1980년대만해도 좌파는 노조는 물론 거리에 있었다. 노동계급을 직접적으로 대변했다. 하지만 조금씩 노동계급과 멀어졌다. 대학에 다시 자리잡기 위해서였다. 여성과 성적소수자(LGBT)들의 권리 향상을 ㅇ위해서 성적 행동주의에 뛰어들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1980년대 이후 이러한 주제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다. 필요하면서도 유익한 연구였다. 이러한 노력이 없었다면 성적, 인종적 소수자들은 여전히 여성이나 흑인은 우주인이나 국가지도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소수자의 권리를 대변하는 좌파와 노동계급 사이는 틈이 벌어졌다. 노동계급은 점차 교회와 TV전도사들에게 기울었다. 가족과 국가의 가치 속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지극히 부유한 트럼프가 노동계급이 더 믿고 기댈 수 있는 대변자가 되는 데 성공한 까닭이다. 노동자들에게 리버럴 좌파는 소수자를 위해 싸울 뿐 자신들을 대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파는 어떻게 자신들이 시종일관 지지해온 경제적 변화와 결코 분리될 수없는 이러한 사회적 혼란을 유리하게 이끌었나. 

 독일 사회학자 Zygmunt Bauman의 표현을 빌자면 1970년대부터 정주민과 유목민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정주민은 한 장소에 머물면서 하나와 전통과 국가, 역사에 연연했다. 유목민들은 코스모폴리탄 엘리트들다. 금융가, 학자, 예술가들에게 여행은 살믜 방식이었다. 우파는 이처럼 좌파의 코스모폴리탄적인 도덕의식에 모욕감을 느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전통적인 정체성에 대해 다시 자부심을 갖도록 제안했다.  

  

-포퓰리즘의 정서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포퓰리스트들은 공포와 원한, 친밀성 등 세가지 기본적인 감정을 정치에 동원한다. 공포는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에게 긴요한 도구다. 내부와 외부에서 동시에 상상 속의 적을 만들어낸다. 유럽에서 우리는 이미 난민들에 대한 공포가 커지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인구학적으로 문화적으로 자신들의 사회 구조가 바뀔 것이라는 공포가 대표적이다.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통해 사회구조 변화의 공포와 긴밀하게 연계된 안보상의 공포도 있다. 인구구성의 변화에 대한 공포, 경제적 공포, 정체성의 공포, 안보적 공포는 모두 새로운 상상을 만들어낸다. 

 두번째 중요한 감정은 원한(ressentiment)이다. 독일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Max Scheler은 '결코 채울 수 없는 복수욕'이라고 원한을 정의한 바있다. 내가 보기에 원한은 특히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원한을 정확하게 설명해준다. 트럼프를 찍은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비정상적인 원한 역시 잘 설명한다. 트럼프 지지자의 상당수는 여성들이 사회적 지위가 상승했음에도 여전히 불평등하게 대우받고 있다고 불평한다고 생각한다. 남성들의 강력했던 경력을 파괴하는 데 성공했음에도 성적인 공격을 받았다면서 남성들을 고소한다. 소수민족에게도 마찬가지다. 인종주의자들은 소수민족을 싫어하지만 법과 워싱턴의 엘리트들 및 대학과 미디어의 엘리트들이 그들을 보호하고 있음을 알기에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트럼프가 넓고 깊에 활용한 것이 바로 이러한 원한이다. 트럼프는 라티노에 대해 “라티노들은 멕시코에서 건너와서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우리의 여인들을 범한다”고 말했다. 

 포퓰리즘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세번째 감정은 친밀성이다. 한명의 지도자와 하나의 공동체와의 관계망을 만드는 능력으로서의 친밀성이다. 현대사회는 원자화돼 있다. 공동체 의식 대신 개인에게 우선권을 준다. 포퓰리스트들은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되는, 위엄 있는 그룹에 속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트럼프의 대선 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쇠락에의 공포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사랑의 메시지를 전한다. 트럼프는 지지자들로 하여금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말을 한다.

 

-당신은 이스라엘이 일종의 포퓰리즘 실험실이라고 한 바 있다. 이스라엘 정부의 정치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유럽과 이스라엘에서 일어나는 현상에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스라엘의 시민의식(la citoyennete)은 프랑스의 공화주의 시민의식과 마찬가지로 universelle했던 적이 없다. 늘 인종적-종교적 성격을 가져왔다. 유대인들의 정체성은 특히 지난 20년간 급진적으로 변했다. 동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체성의 급진적인 변화도 그렇다. 비록 헝가리 체제가 반 유대적 성격이 있지만 오르반 총리와 네타냐후 총리는 서로 잘 어울린다. 이스라엘은 유럽 및 미국 국우파의 성향을 갖고 있다. 시민성은 인종과 종교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거리낌없이 말하는 나라들이다. 두번째 공통점은 이스라엘이 아랍 적국에 둘러쌓인채 늘 안팎에서 위협을 받고 있는(있다고 느끼는) 소국이라는 점이다. 이스라엘 800만 인구 가운데 200만은 아랍인이다. 이스라엘은 항상 국경을 흐린다. (un flou aristique) 바로 유럽의 난민 위기 당시 벌어졌던 현상이다. 국경은 모호해졌다. 잠재적인 적과 위협을 상징하는 나머지 세계가 우리 문 앞에 있다. 이처럼 경직된 정체성은 이민자들의 유입과 연관돼 있다. 이민자들이 서구 강대국들의 전쟁 정책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할 지라도 말이다. 테러리즘과 안보정책은 경직성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며, 이스라엘은 이런 분야의 파이오니어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인종적 균형에 집착해왔다. 1990년 대 이후 유대인이 아닌 이민 노동자들의 유입을 막는 가혹한 조치들을 취해왔다. 안보정책에 대한 집착이 더해졌다. 이점에서 미국은 같은 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흑인과 라티노 간의 인구적 균형이 깨질 것이라는 공포는 '존재론적인 공포'의 반향을 갖는다. 유럽과 미국이 느끼고 있는 새로운 공포다. '과연 우리가 내일도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이 수십년동안 수없이 자문해온 질문이자 서유럽이 사로잡혀온 질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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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7일 대선 결선투표에서 4년 임기의 대통령에 당선된 칼트마 바툴가가 다음날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울란바토르|EPA연합뉴스



■칼트마 바툴가 대통령은 포퓰리스트인가 


포퓰리즘이라는 말이 과용되고 있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고 고민의 결이 다름에도 통칭해서 ‘포퓰리즘’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빨갱이’로 낙인 찍는 것을 연상시킬 정도다. 지난 10일 몽골의 5대 대통령에 취임한 칼트마 바툴가(54)가 그런 경우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포퓰리스트 대통령’으로, AP통신은 ‘포퓰리스트 재계 거물(Business Tycoon)’로 각각 규정했다. 그 근거는 대선 유세를 하면서 최대 경쟁후보였던 몽골인민당(MPP)의 미예곰보 엥흐볼드 국회의장을 두고 ‘중국인 혼혈’이라고 공격했다는 데 있다. 엥흐볼드의 조상이 중국계라는 주장이 담긴 비디오 영상을 유포하기도 했다. 그 덕분인지 바툴가 대통령은 지난 7일 결선투표에서 50.6%를 얻어 41.2%에 그친 엥흐볼드를 제쳤다. ‘핏줄 공략’이 얼마나 대선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분명치 않다. 

서구 언론이 바툴가를 포퓰리스트로 낙인찍은 것은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몽골 사회 일각에서 일고 있는 극우 민족주의 바람과 무관치 않다. 스와스티카를 새겨넣은 나치 군복을 입고 히틀러의 생일을 축하하는 몽골의 신나치들은 모든 외국인, 특히 중국인을 증오한다. 앙투완 매리 파리 정치대학 연구원은 바툴가가 “반 중국 감정에 편승한 일종의 민족주의자”라고 지칭한 바 있다. 그럼에도 사회적 소수자인 외국 이민자를 공격하는 서구의 극우 포퓰리즘과 몽골의 민족주의를 같은 걸로 보기는 어렵다. 몽골과 중국의 역사적, 현실적 관계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몽골에 중국, 중국인은 절대 강자였고, 지금도 그렇다. 당장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0일 바툴가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면서도 “선거 기간 동안 일부 정치인들이 사실과 다른 무책임한 말을 했다. 중국은 이에 우려를 표명한다”는 견제구를 공식적으로 날렸다. 

칼트마 바툴가의 지지자들이 지난 7월8일 바툴가의 대선 승리를 기뻐하며 울란바토르 시내를 행진하고 있다. 울란바토르|EPA연합뉴스

칼트마 바툴가의 지지자들이 지난 7월8일 바툴가의 대선 승리를 기뻐하며 울란바토르 시내를 행진하고 있다. 울란바토르|EPA연합뉴스


■트럼프를 연상시킨 반 외국인(중국) 정서와 ‘몽골 퍼스트’ 공약

서방언론이 바툴가를 포퓰리스트라고 부르는 또 다른 근거는 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성공한 사업가인데다가 ‘아메리카 퍼스트’를 본따서 ‘몽골 퍼스트’ 선거공약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바툴가는 여기에 ‘애국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도 다짐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여기서도 강자와 약자의 전도현상이 읽힌다. 옛 소련의 위성국가였던 몽골은 1990년대 민주화 이후 중국의 절대적인 망토 밑에서 경제를 꾸려왔다. 

광산물 중심의 수출은 80%가 중국으로 간다. 2011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7.5%에 달했던 몽골 경제는 파산상태다. 지난해 1% 성장에 그쳤으며, 올해는 0.2% 성장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경제의 두배에 가까운 230억 달러의 부채를 짊어지고 있다. 구리를 비롯한 광산물의 국제 가격이 폭락한데다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 경제의 성장이 주춤해진 것이 이유다. 경제위기는 대 중국 의존도를 더 높였다. 바툴가는 중국과 같은 이웃국가와 ‘동등한 협력’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세계 최고 부국인 미국이 다른 나라들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서 손을 보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접근이다. 대 중국 의존도를 낮추라는 것은 지난 2월 몽골 GDP의 절반에 가까운 55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건넨 국제통화기금(IMF)의 핵심 권고사항이기도 하다. 중국은 몽골 경제의 생사여탈권만 쥐고 있는 게 아니다. 티벳 불교도가 많은 몽골에 달라이 라마가 방문할 때마다 중국은 ‘매’를 들었다. 2002년에는 72시간 동안 몽골·중국 국경을 폐쇄했고 지난해 11월에는 대 몽골 관세를 인상했다. 몽골 정부는 결국 다음달 더 이상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해야 했다. 

지난 6월26일 1차투표에서 한 몽골 주민이 투표를 하기 위해 몽골 투브 지방 에르덴솜의 초원에 설치된 대선 투표소로 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6월26일 1차투표에서 한 몽골 주민이 투표를 하기 위해 몽골 투브 지방 에르덴솜의 초원에 설치된 대선 투표소로 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술학도, 레슬링 선수에서 정·재계 거물 된 ‘대부(代父)’ 

바툴가는 성공한 사업가라는 점에서 트럼프와 비교된다. 총천연색의 삶을 살아왔다. 3세 때부터 홍수로 집을 잃은 부모에게 국가가 할당해준 게르에서 걸음마를 익혔다. 미술학교를 다니면서 어쭙잖은 외국어 몇 마디로 관광객들에게 작품을 팔면서 세상이치를 깨우쳤다. 그러나 돈과 명예를 안겨준 직업은 부친에게 배운 브흐(몽골전통씨름)였다. 브흐로 몸을 단련한 바툴가는 16세 때인 1979년부터 1990년까지 레슬링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1989년에는 울란바토로 세계 레슬링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2006년 몽골 유도협회장을 맡아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하기도 했다.


1990년 헝가리에서 시작한 청바지 사업이 성공하면서 재계에 발을 들였다. 영화 <대부>의 주인공 비토 콜리오네가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미국 뉴욕으로 막 건너왔을 때 그를 도와준 친구의 이름을 딴 젠코(Genco)그룹을 창업했다. 콜리오네가 쓰던 모자도 애용한다. 몽골 민주화 뒤 국영기업이었던 호텔과 육가공업체를 사들였고 택시와 나이트클럽 관광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징기스칸의 동상을 세우고 징기스칸 테마파크도 만들었다. 

몽골 경제의 핵심사업은 광산개발이지만 소수 정치인들이 외국 자본 및 대기업과 결탁해서 이익을 독점해왔다. 지난 3월31일 노욘산 인근에서 주민들이 “오유-톨고이 광산은 외국에 권리가 있다. 우리 나라의 안전을 보장하자”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광산개발로 인한 부의 공평한 분배는 이번 대선의 핵심 쟁점이었다.  울란바토르|AP연합뉴스

몽골 경제의 핵심사업은 광산개발이지만 소수 정치인들이 외국 자본 및 대기업과 결탁해서 이익을 독점해왔다. 지난 3월31일 노욘산 인근에서 주민들이 “오유-톨고이 광산은 외국에 권리가 있다. 우리 나라의 안전을 보장하자”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광산개발로 인한 부의 공평한 분배는 이번 대선의 핵심 쟁점이었다. 울란바토르|AP연합뉴스


■광산개발 이익을 국민에게, 5400㎞의 철도건설 프로젝트 
바툴가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 어떠한 공직도 맡아본 적이 없는 트럼프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2004, 2008, 2012년 총선에서 잇달아 승리하면서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정치인 바툴가가 가장 역점을 둔 분야는 광산개발 이익의 공평한 배분과 철도망의 확충이었다. 외국 자본이나 일부 재벌기업과 결탁한 소수의 정치엘리트들이 광산개발의 이익을 독점하는 것에 반대했다. 

‘모든 광산물 개발은 국가경제의 안전과 몽골 국민의 적절한 사회적 발전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몽골헌법 6조1항을 들어 공정한 광산개발을 주창했다. 산업부장관과 교통부장관을 지낸 그는 2010년 6월 몽골 정부로 하여금 3단계에 걸쳐 5400㎞의 기간철도망을 건설토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중국과 러시아 항구로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내륙국가 몽골의 광산물을 수출항까지 직접 운반하는 동시에 철도거점마다 공업단지를 만들어 고용창출과 산업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자는 담대한 계획이다. 몽골은 2012년 11월 1단계 철도망과 2단계 철도망을 잇는 1800㎞의 철도건설을 확정했다.

지난 6월9일 카자흐스탄 이스타나에서 열린 상하이 협력기구 정상회에 참석한 차히야 엘벡도르지 몽골 대통령(왼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중국이 아닌, 제3국의 이웃국가를 찾는 것이 몽골의 숙원이다. 이스타나|AP연합뉴스

지난 6월9일 카자흐스탄 이스타나에서 열린 상하이 협력기구 정상회에 참석한 차히야 엘벡도르지 몽골 대통령(왼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중국이 아닌, 제3국의 이웃국가를 찾는 것이 몽골의 숙원이다. 이스타나|AP연합뉴스


■‘제3의 이웃국가’를 찾겠다는 정책에 담긴 함의 

선거유세와 현실정치는 다르다. 바툴가의 민주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원내 소수당으로 전락했다. 몽골인민당이 전체 76석인 국회의 85%(65석)를 휩쓸었다. 민주당 의석은 9석에 불과하다. 프랑스가 두 차례 경험했던 동거정부와 마찬가지로 국회 다수당과 협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대선에서 바툴가와 겨뤘던 엥흐볼드는 국회의장으로 국정의 필연적인 동반자이기도 하다. 바툴가는 취임사에서 “빈곤과 실업이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점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면서 국회가 그 해결노력을 함께 하자고 당부했다. 

외국인 투자에 대해서는 “외국인 투자를 지지하겠지만 모두가 이겨야(win-win) 한다. (투자국이) 중국이냐, 러시아냐, 다른 나라냐 상관이 없이 그렇다는 말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제3의 이웃국가를 찾는 정책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역설했다.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 있는 몽골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내비친다. 바툴가의 ‘탈 중국’ 신념은 뿌리가 깊다. 그는 교통장관으로 새철도 건설을 주도하면서 선로 간격을 중국표준이 아닌 러시아 표준으로 정했다. 

2014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몽골을 국빈방문하자 이에 항의하기 위해 대통령 행렬 옆에서 조깅을 하는 시위를 벌여 국민적 주목을 받았다. 같은 민주당 소속인 차히야 엘벡도르지 대통령 시절 이야기다. 반 중국 성향의 TV르포 제작을 지원하기도 했다. 반면에 2015년 10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실무방문 때는 ‘몽골·일본 협력’ 각서의 최종 서명을 주도했다. 


지난 6월13일 워싱턴의 미국 국무부 청사를 방문한 트센드 문크흐-오르길 몽골 외교장관(왼쪽)이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과 악수를 하고 있다.  워싱턴|EPA연합뉴스

지난 6월13일 워싱턴의 미국 국무부 청사를 방문한 트센드 문크흐-오르길 몽골 외교장관(왼쪽)이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과 악수를 하고 있다. 워싱턴|EPA연합뉴스



■바툴가 정부의 4년이 주목되는 이유 


이번 몽골 대선은 지난 봄 프랑스 대선과 비슷한 점이 많다. 마찬가지로 바툴가는 트럼프보다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공통점이 더 많다. 같이 경제부처 장관 출신으로 성장주도의 경제발전을 약속하고 있다. 여기에 광산 및 산업개발을 통해 국가부채를 청산하고 더 많은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포퓰리즘은 (세계)경제의 실패와 기성 제도 및 기성 정치엘리트에 대한 실망에서 태동한다. 선거에서는 높은 기권율로 나타난다.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의 유효표가 전체의 66%에 불과했던 것처럼 몽골 대선의 투표율은 61%에 그쳤다. 바툴가를 포함한 3명의 대선후보가 모두 부패의혹을 일으켰다. 총리를 역임한 엥흐볼드 국회의장은 공직 매매와 뇌물수수 의혹을, 바툴가는 해외은행에 거액을 예치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았다. 1차 투표에서 탈락한 몽골인민혁명당의 사인쿠 간바타르 후보는 통일교로부터 4만 유로를 받았다는 비난에 직면했다.(르몽드 6월26일 보도).


바툴가가 포퓰리즘 성향이 다분한 정치인이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몽골이 처한 현실에서 그나마 국민에게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경력과 비전을 갖고 있는 유일한 후보였던 점 역시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몽골의 중국 경계심리는 근거 없는 증오가 아니다. 옛 소련의 도움이 없었으면 독립국가 건국이 불가능했다. 중국 내 자치주가 된 네이멍구(내몽골)에서도 몽골인은 전체 2400여만명의 17%(400여만명)에 불과한 소수민족으로 전락했다. 그나마 몽골 국민 310만명보다는 많다. 자기 땅에서 추방당한 내몽골인들의 분노는 2011년, 2013년 폭동으로 표출됐지만 곧바로 진압당했다. 몽골 내 반 중국 정서가 서구 극우주의자들의 공격적 포퓰리즘과 거리가 먼 ‘저항(레지스탕스)의 포퓰리즘’인 까닭이다. 

(2013년 10월31일 평양 김일성대학에서 몽골이 1992년 비핵지대를 선언했음을 소개하면서 “어떠한 폭정도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이례적인 연설을 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던 엘벡도르지 전 대통령은 두 차례 임기(8년)를 마쳤기에 이번 대선엔 불출마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7141134001&code=970207#csidxd9cc23776f06952bf579f829f99ce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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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총선 결선투표가 치러진 지난 6월18일 샤를르 드골의 항독 레시스탕스 선언 77주년을 맞아 파리 교외 쉬르렌느의 몽 발레리앵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쉬르렌느/EPA연합뉴스


■마크롱을 다시 위대하게!(Make Macron great again!)
파리 시간으로 지난 6월2일 자정을 넘긴 시간. 엘리제궁 홍보팀이 숨가쁘게 가동됐다. ‘www.makeourplanetgreatagain’라는 웹사이트를 띄우기 위해서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파리협정 탈퇴 발표에 대응해 지구온난화 대책의 시급성을 강조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39)의 연설 동영상을 유포하기 위한 것이었다. 2일 0시18분. 인터넷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해 대선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패러디한 마크롱 대통령의 ‘지구를 다시 위대하게(Make our Planet great again)’ 연설이 올랐다. 3분 분량의 이례적인 영어연설이었다. 정확하게 1분 뒤, 마크롱의 트위터에도 동영상을 올렸다. 백악관이 트럼프의 파리협정 탈퇴성명을 공식 발표한 것은 1일 오후 4시3분(미국 동부시간). 파리시간으로는 같은 날 밤 10시3분이었다. 대략 2시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마크롱의 연설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인터넷에 올렸다. 마크롱이 젊고, 잘난 프랑스 대통령에서 일약 세계의 지도자로 거듭난 순간이었다. 트럼프의 탈퇴 선언이 예상됐다고 하더라도 긴가민가하던 상황에서 발휘한 탁월한 순발력이었다.

르몽드 탐사보도기자 스테판 푸카르가 지난 13일자 ‘마크롱의 공현(L’epiphanie)‘ 제하의 칼럼에서 전한 당일 상황이다. 공현(公現)은 신이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마크롱의 연설은 포악한 트럼프에 맞서 지구를 지키는 수퍼맨(그것도 잘생긴)의 강한 인상을 남기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소셜미디어 상에 수백만번 유통됐다고 한다. 영국 BBC방송은 국제적으로 ‘마크롱의 팬클럽’이 늘어나는 순간이었다면서 ‘반 트럼프 (세계)지도자의 탄생’이라는 칭호를 헌정했다.

마크롱의 트위터에 있는 ‘지구를 다시 위대하게’ 연설의 한 단락. “기후문제와 관한 한, 플랜B는 없다. 플라넷(행성)B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씌여 있다.

마크롱의 트위터에 있는 ‘지구를 다시 위대하게’ 연설의 한 단락. “기후문제와 관한 한, 플랜B는 없다. 플라넷(행성)B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씌여 있다.

■슈뢰더+올랑드+오바마=로널드 레이건?
마크롱을 위대하게 만든 능란한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아직 ‘마크롱주의’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어떠한 정책도 현실정치Reapolitik)에서 구현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지난 5월 7일 대선 당선 이후 마크롱이 한 것은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 등 우왁스러운 지도자들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인 것 뿐이다. 트럼프와의 악수 배틀에서 밀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크림반도 병합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관해 할 말을 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특히 푸틴 대통령과의 공동기자회견 장소를 파리외곽 베르사유 궁전의 고풍스러운 무도장으로 잡은 것은 ‘연출정치’의 정점을 이뤘다. 하지만, 냉소적으로 보면 마크롱은 아직까지 실체가 모호하다.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정부에서 경제장관을 지낸 그가 제시하는 길은 프랑스 판 ‘제3의 길’이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지난 세기 말에 내놓은 ‘아겐다 2020’을 긍극적으로 지향하면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미완의 개혁을 완수하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구호였던 ‘희망’을 벤치마킹하고 있기도 하다. ‘슈뢰더+올랑드+오바마의 총합’이 마크롱의 정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크롱의 현란한 연기정치 역시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프랑스 국민들이 21세기 이후 프랑스 정치에서 열망했던 그 무엇을 충족시키져주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대선에 이어 총선에서까지 승리를 거머쥔 그의 정치력은 일단 인정해야 한다. 이미지와 연기, 연출에 힘입었을지언정 안팎으로 사기가 떨어진 프랑스 국민들에게 ‘희망의 단서’를 줬다는 점에서 성공했기 때문이다. 슈뢰더와 올랑드, 오바마에 이어 마크롱을 설명할 4번째 인물로 로널드 레이건이 등장하는 까닭이다.

1주일 사이에 확바뀐 자전거 패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총선 1차투표 하루전인 6월10일 부인 브리지트와 경호원들과 어울려 고향인 르 투케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오른쪽  사진) 왼쪽 사진은  총선 결선투표 하루전인 6월17일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르투케/EPA연합뉴스

1주일 사이에 확바뀐 자전거 패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총선 1차투표 하루전인 6월10일 부인 브리지트와 경호원들과 어울려 고향인 르 투케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오른쪽 사진) 왼쪽 사진은 총선 결선투표 하루전인 6월17일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르투케/EPA연합뉴스


■‘삶은 배추’와 같던 정치적 무기력(inertie)과의 작별
프랑스는 이제 마크롱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봐야 할 것 같다. 경제적 병((malaise)과 정치적 무기력(inertie) 중 한가지를 덜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10% 대의 실업률과 경직된 노동시장, 독일에 비해 갈수록 떨어지는 산업경쟁력 등으로 대표되는 ‘프랑스병’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별무대책으로 일관해온 정치적 무기력은 과거가 됐다. 비록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총선 결선투표 기권·무효표가 57.36%에 달했지만 절반에 가까운 유권자들은 정치에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중요한 변화다. 허드슨연구소 연구원이자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인 월터 러셀 미드는 마크롱이 가져온 변화를 로널드 레이건의 변화에 빗댔다. ‘삶은 배추’와 같은 무기력한 리더십을 보였던 올랑드만 바라보던 프랑스 국민들이 젊고 잘난 마크롱에게서 ‘희망’이라는 낯선 느낌을 발견했다는 분석이다. 레이건은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서 가장 대중 친화력이 강했던 ‘소통의 달인(The Great Comunicator)’이었다. 직전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의 미지근한 리더십과 대비되면서 빛을 발했다. 카터의 무색무취 스타일에 신물이 난 미국민들에게 화려한 언변의 강한 지도자의 면모를 보였다. 게다가 미남이었다. 마크롱 역시 올랑드의 낡은 정치에 물린 프랑스 국민에게 ‘영웅의 탄생’을 예고하면서 신선한 자극을 줬다는 인상비평이다. 프랑스 5공화국을 연 샤를 드골과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수아 미테랑을 거치면서 형성됐던 강하고 결단력 있는 대통령의 이미지는 퇴색한 게 사실이다. 경망스러웠던 니콜라 사르코지에 이어 올랑드를 거치면서 프랑스 국민들이 어느 때보다 신선한 리더십에 배가 고팠던 것이 사실이다. 그 허기를 적시에 파고든 것이 마크롱의 성공요인었던 것이다.

2012년 총선(왼쪽)과 2017년 총선 결과 달라진 프랑스의 정치지도. 붉은 색 계열이 중도좌파 사회당과 공산당 등 좌파계열 정당들의 승리 지역이고 파란색은 중도우파 공화주의자들 및 기타 우파 후보의 당선지역이다. 오른쪽의 올해 총선에서는 노란색의 ‘전진하는 프랑스( LRM)과 민주운동(MoDem)’ 후보들의 당선지역이다. 황색 돌풍이 프랑스 국민의회(하원)을 마크롱의 텃밭으로 만들어놓았다.    르몽드

2012년 총선(왼쪽)과 2017년 총선 결과 달라진 프랑스의 정치지도. 붉은 색 계열이 중도좌파 사회당과 공산당 등 좌파계열 정당들의 승리 지역이고 파란색은 중도우파 공화주의자들 및 기타 우파 후보의 당선지역이다. 오른쪽의 올해 총선에서는 노란색의 ‘전진하는 프랑스( LRM)과 민주운동(MoDem)’ 후보들의 당선지역이다. 황색 돌풍이 프랑스 국민의회(하원)를 마크롱의 텃밭으로 만들어놓았다. 르몽드


■총선 압승의 의미, 5년전 집권여당과 19석 차이
6월18일 총선 결선투표 결과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선 지극히 이례적으로 바람이 좌우했다. 마크롱의 ‘전진하는 공화국(La Republique en Marche·LRM)’과 프랑수아 바이루의 민주동맹(MoDem)의 집권연합은 국민의회(하원) 전체 577석 가운데 350석(60.65%)를 얻어 단독 과반수를 얻었다. 중도우파 공화주의자들(LR)은 기타우파를 묶어 137석(22.53%)에 그쳤다. 2012년 총선에서 단독과반수를 얻었던 사회당(PS)는 46석(7.97%)로 쪼그라들어 당장 당 운영자금을 걱정해야할 처지에 놓였다.당선자 577명 중 432명이 신인으로 국민회의 의원의 75%가 바뀌었다. 평균 연령이 48.6세다. 여성의원도 200명을 넘겼다. ‘아웃사이더의 돌풍’이니 ‘선거혁명’이니 하는 팡파레가 울리는 근거다. 중도좌파와 중도우파가 갈마들며 집권하던 양당제의 낡은 틀을 깬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2012년 선거결과의 데자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당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사회당과 집권연합 역시 577석 중 331석을 얻어 단독과반수를 얻었었다. 거품을 걷어내면, 마크롱 정부와 사회당을 거덜내고 퇴진한 올랑드 정부의 의석차는 고작 19석에 불과하다. 안팎으로 경제회생과 유럽통합 이라는 양대 과제도 마찬가지다. 르몽드 분석에 따르면 마크롱이 대선공약 및 취임 뒤 내놓은 밑그림에는 경제, 노동 정책을 중심으로 올랑드 정부의 국정과제 25개가 담겨 있다. 똑같이 대선 승리에 이은 국민의회 과반수를 갖고 올랑드가 못한 것을 마크롱이 해낼지가 향후 관전포인트다. 자본시장의 이익을 대변하는 파이낸셜타임스는 총선에 승리한 마크롱의 프랑스를 ‘스타트업 국가(Start-up Nation)’라고 명명했다.

마크롱이 올해 1월 출범시킨 ‘전진하는 공화국(LRM)’의 카트린 바르바로 의장이 6월18일 총선 결선투표 종료뒤 파리 당사에서 승리 연설을 하고 있다. 2015년 3월 파리에서 발족한 자유좌파(La Gauche Libre)를 모태로 한다. 파리/EPA연합뉴스

마크롱이 올해 1월 출범시킨 ‘전진하는 공화국(LRM)’의 카트린 바르바로 의장이 6월18일 총선 결선투표 종료뒤 파리 당사에서 승리 연설을 하고 있다. 2015년 3월 파리에서 발족한 자유좌파(La Gauche Libre)를 모태로 한다. 파리/EPA연합뉴스


■’진실의 순간‘은 올여름 바캉스 이후에 온다
이미지와 실체는 다르다. 트럼프의 대선 구호를 제물로 삼아 파리협정의 전도사로 거듭난 마크롱의 환경관은 보여준 이미지와 사뭇 다르다. 르몽드 탐사전문기자 푸카르에 의하면, 마크롱은 트럼프의 파리협정 탈퇴선언 이전까지 환경문제에 무감각했다. 대선 1차, 2차 투표까지 수차례 진행된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단 한번도 기후변화 문제를 언급한적도 없다. 선거공약에서도 환경문제는 후순위였다. 환경의 위기, 생태의 위기를 가장 목청 높여 강조한 대선후보는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a France Insoumise)’의 멜랑숑 후보였다. 마크롱은 지난 5월7일 당선 이후에도 다국적 원자력기업 아레바의 로비스트를 지낸 우파 정치인 에두아르 필립을 총리에 임명했다. 프랑스 라니온 만(灣)의 골재채취 및 코트다모르 지역에 대한 호주 광산업체의 광물탐사를 허가했다. 두가지 모두 프랑스 환경운동가들의 지탄을 받은 사안이다. 푸카르는 마크롱이 ‘지구를 다시 위대하게’ 연설에서 밝힌대로 진정 기후변화를 우려한다면 미국을 대신해 프랑스가 파리협정 분담금의 최대 공여국이 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국의 향수을 되살리게 하는 장면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이  지난 5월 29일 파리 인근 베르사유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동을 한 뒤 문을 나서고 있다.  음영이 짙은 사진이 많은 것도 마크롱 이미지 정치의 특징이다.  프랑스 대통령궁(엘리제궁) 홈페이지

제국의 향수을 되살리게 하는 장면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이 지난 5월 29일 파리 인근 베르사유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동을 한 뒤 문을 나서고 있다. 음영이 짙은 사진이 많은 것도 마크롱 이미지 정치의 특징이다. 프랑스 대통령궁(엘리제궁) 홈페이지

대선 국면에서부터 시작한 마크롱의 이미지 정치, 연출 정치는 18일 총선과 함께 막을 내렸다. 이제부터는 실제와 맞부닥쳐야 한다. 마크롱이 국민의회 다수당의 지위를 활용해 우왁스럽게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추진한다면 프랑스 노조들과의 일전이 불가피하다. 당장 대선 당시 마크롱을 지지했던 최대 노조 민주노동총동맹(CFDT)은 성급한 노동개혁에 반대하며 마크롱 정부에 경고장을 던졌다. 공산당 계열의 노동총동맹(CGT)은 당장 19일부터 거리시위에 나선다.

마크롱은 대통령령(Ordonnance)로 노동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9월 국민회의에 그 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마크롱이 다짐한 유럽연합(EU) 개혁은 독일이 지갑을 여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9월 독일 총선의 승자와 마주앉아야 답이 나온다. 경제와 유럽, 두가지 화두에 대한 마크롱의 정치력이 실제 시험대에 오르는 것은 그때이다. 마크롱이 황금마차를 계속타게 될 지, 호박마차로 갈아타게 될 지를 가르는 ‘진실의 순간’은 올여름 바캉스 이후에 온다. 그때까지는 외신이 전해오은 마크롱의 ‘쇼’를 마음껏 즐겨도 될 것 같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6201114001&code=970205#csidx21b5659247158438432a9a182671b0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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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톨령 당선자 에마뉘엘 마크롱이 7일 루브르 박물관 마당에서 대선승리 연설을 하고 있다. TV5화면캡처


열광도 감동도 덜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 유세 기간 동안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벤치마킹했다. “레드스테이트(공화당지지주)의 미국도, 블루스테이트(민주당지지주)의 미국이 아닌, 우리가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단합된 미국(United States of America)을 만들겠다”는 문구를 표절해 “모두의 프랑스”를 강조한 것이 대표적이다. 마크롱은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을 본따 이번 승리를 ‘담대함의 승리’라고 선언했다. 오바마는 “바로 오늘 밤, 변화가 시작됐다”고 선언했지만, 당장 다음달 총선이 급한 마크롱이 언급한 ‘변화’는 달랐다. 변화를 만들어낼테니 다음 달 총선에서 하원(국민의회) 다수당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었다. 

7일 밤 10시30분 루브르 박물관 궁정에서 한 그의 승리연설과 2008년 11월5일 밤 비슷한 시간 시카고 그랜드파크에서 한 오바마의 승리연설에서 드러난 확연한 차이다.

루브르 박물관 안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마크롱이 몇개의 계단을 내려와 연단으로 천천히 향하는 데 걸린 시간은 3분30초. 베토벤의 9번 ‘합창’ 교향곡 제4악장 ‘환희의 송가’가 장중하게 울려 퍼졌다. 무대에 올라 두손을 번쩍 들어보이면서 연설을 시작하기 전까지 마크롱의 제스처 역시 느린 동작이었다. 축하파티 보다는 장중한 의식의 집도자로 비쳤다. 

에마뉘엘 마크롱의 ‘앙마르슈’ 홈페이지에 게재된 버락 오바마의 마크롱 지지 메시지.

에마뉘엘 마크롱의 ‘앙마르슈’ 홈페이지에 게재된 버락 오바마의 마크롱 지지 메시지.

오바마는 그랜드파크의 넓은 연단에 부인 미셸과 어린 두 딸의 손을 잡고 같이 올랐다. 국회의원의 첫 등원일에 자식들은 물론 손자, 손녀까지 데리고 나오는 미국식 전통에 따른 것. 잠시후 가족들은 들어가고 연설을 시작했다. 첫마디는 “헬로, 시카고”였다. 오바마는 연설 초반부에 곧바로 대선에서 패배한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와 그의 러닝메이트 새라 페일린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길게 보내면서 훌륭한 지도자들이라고 추켜세웠다. 이어 “그들과 함께 일해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크롱은 패배한 마린 르펜 민족전선(FN) 후보에게 별다른 위로의 메시지도 보내지 않았다. 되레 지난 3일 상호비방과 욕설로 얼룩졌던 마지막 TV토론의 연장인 듯 르펜을 밀쳐냈다. “경제적 어려움과 허물어진 국가도덕 등의 어려움 탓에 일부(유권자들)는 분노와 의심, 걱정에서 극단주의자에게 표를 줬다. 마린 르펜이 34.2%를 득표했다. 우리를 약하게 하는 분열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당장 내일부터 통합과 화해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5년 뒤에는 극단주의자들에게 표를 줄 어떠한 이유도 없게 만들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버락 오바마의 2008년 대선승리연설 장면    NBC방송 캡처

버락 오바마의 2008년 대선승리연설 장면 NBC방송 캡처

대선 종료 연설에서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마크롱의 승리를 축하한 르펜과도 대비됐다. 전반적으로 앞으로 해야할 일을 나열하는 모범생의 코멘트 수준을 크게 넘지 못했다.

오바마의 경우 독립 200여년만에 첫 흑인대통령이라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명연설로 대선승리연설장을 감동의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것과 크게 대비됐다. 경제위기와 무너지는 노동, 이민자 문제 등 숱한 난제를 앞두고 당선됐다는 점에서 마크롱이나 오바마는 비슷하다. 오바마는 “미국 경제의 성공은 국내총생산(GDP)의 규모에만 의존해온 게 아니다”라면서 질적 성장을 강조했다. 마크롱은 2022년까지 600억유로 규모의 예산절감을 위해 12만명의 공무원 감축과 친기업적 노동법 개혁을 다짐하고 있다. 오바마가 갈 길은 멀고 험하지만, 미국이 건국 이래 걸어온 길을 상기시키면서 “60년 전이라면 시골 식당에서 서빙을 받지도 못했을 (흑인)아버지의 아들이 가장 신성한 서약의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게 됐다”면서 감동을 선사했다. 

‘담대함’과 ‘희망’ ‘변화’ 등 오바마의 키워드들이 많이 등장했지만 젊고 잘생긴 마크롱의 이미지에 비해 갈 길은 멀고도 험해 보인다. 오바마와 매케인의 득표율은 각각 52%대 46%였다. 마크롱과 르펜의 득표율은 출구조사 결과 65% 대 35% 정도다. 하지만 사상 최고의 기권율(25.4%)과 무효표(11.5%)를 제외하면 실 득표율은 43%에 그쳤다. 

나라 마다, 시대 마다 차이는 있을지언정, 오니지널과 짝퉁은 늘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짝퉁에는 오리지널이 풍기는 감동이 없다는 점이다. 마크롱에 연설에도 그 감동이 빠졌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5081313001&code=970205#csidxa1783b0112341f498d5f47db724cbc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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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셜리외 추기경


5월9일 치러지는 한국 대선이 세종대왕과 세종대왕의 대결이라면 5월7일 결선투표를 벌이는 올해 프랑스 대선은 루이13세 때 재상이었던 리셜리외와 빅트로 위고의 대결로 압축됐다. 지지율 1, 2위 대선 후보들이 본받고 싶은 인물로 보았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정치인들이 본받고 싶은 인물은 문제의식의 출발점이자, 지향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프랑스 역사전문지 ‘이스토리아(Historia)’ 4월호가 대선 후보들에게 물은 역사적 인물 중에서 누구를 존경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평소 잔다르크를 동경한다고 밝혀왔던 극우 민족전선(FN)의 마린 르펜 후보는 의외로 루이 13세의 재상이었던 리셜리외를 택했다. 프랑스 전성기의 철로를 깐 사람이기 때문이란다. 르펜은 “리셜리외의 초상화를 사무실에 두고 있다”고 소개했다. 단단한 정치적 의지와 모든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국가 비전의 상징으로 리셜리외를 설정한 것이다. 주권주의자이자 애국주의자인 르펜의 정체성이 묻어난다. 하지만 리셜리외의 정책들이 당시 프랑스 민중의 이해와는 반한 것이었다.

빅토르 위고

빅토르 위고

르펜과 결선에서 맞붙을 중도 ‘전진!(앙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는 빅토르 위고를 꼽았다. 국어 및 국문학 선생이었던 아내 브리지트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프랑스는 위고를 통해 비참함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솟아나는 빛을 이해하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위고는 망명을 택함으로써 해방의 언어와 저항정신을 새롭게 발견했다”고도 했다. 마크롱 스스로가 자유롭게 말하기 위해 장관직을 버린 것 처럼 들린다고 주간 르푸앵은 짚었다. 하지만 위고는 시대 흐름에 따라 강력한 통령주의자(보나팍티스트)나 현체제 지지주의자(레지티미스트), 입헌군주제 지지자(오를레아니스트)는 물론 공화주의자로도 해석된다. <레 미제라블>로 유명한 위고는 작품 속에서는 공화주의자로 보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와 절대왕정을 거쳐 입헌군주제를 옹호했다. 공약과 정체성이 흐릿한 데 이어 본받고 싶은 역사적 인물 역시 여러가지로 해석되는 위고를 선택한 셈이다.

샤를르 드골

샤를르 드골

1차투표에서 3위를 거두었던 프랑수아 피용은 온갖 역경에 맞서 주권을 강조해온 신드골주의자 필립 세갱 전 국민의회 의장을 꼽았다.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 후보는 미국 민권운동의 상징인 로자 팍스를, 결선투표에서 르펜을 지지한 우파 주권주의자 니콜라 뒤퐁에냥은 샤를르 드골을 각각 꼽았다.


막스밀리앙 로베스피에르

막스밀리앙 로베스피에르

극좌연대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프랑스 앵수미즈)’의 장 뤽 멜랑숑은 역사 속의 위인으로 18세기 루이 15세에 저항했던 오트-손 지방의 노예해방운동가를 꼽았다. 멜랑숑은 “원칙을 위해서는 식민지도 없애라”며 식민주의자들의 노예제도 옹호론을 거칠게 반대했던 혁명지도자 막스밀리앙 로베스피에르도 거론했다. “로베스피에르는 그 당시의 경제적 현실주의에 반대할 줄 알았다”는 이유에서다.

세종대왕

세종대왕

앞서 지난 달 25일 JTBC의 대선후보 토론에서 본받고 싶은 인물을 묻는 질문에 더불어 민주당의 문재인후보와 국민의 당 안철수 후보는 모두 세종대왕을 꼽았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박정희를,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다산 정약용을,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삼봉 정도전을 각각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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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선의 유력한 후보로 떠오른 중도 ‘전진!’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가 지난 4월 26일 프랑스 북부의 쇠락한 산업지역 아라스를 찾아 연설을 하고 있다. 마크롱은 “(극우 민족전선의 마린)르펜은 증오와 공포를 조장하며 거짓말을 일삼으면서도 해답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5월7일 결선투표일이 다가오면서 프랑스 대선은 갈수록 상대방 헐뜯기 국면으로 바뀌고 있다. 아라스/EPA연합뉴스


한국 대선 투표일 이틀전인 5월7일 결선투표를 벌이는 프랑스 대선은 중도 ‘전진!(EM!)’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39)와 극우 민족전선(FN)의 마린 르펜 후보(48) 간의 대결로 좁혀졌다. 이중 마크롱은 엘리제궁의 대통령 비서실 부실장 2년과 경제장관 2년의 일천한 경력 끝에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그는 누구이며, 어떤 비전을 갖고 있을까. 


■‘금수저’에 꽃길 만 걸어온 귀공자 

에마뉘엘 장미셸 프레데릭 마크롱은 프랑스 북부 아미앵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모두 의사였다. 중학교 교장 출신 할머니의 영향으로 정치에 투신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파리의 명문 앙리4세 고교를 졸업한 그는 파리 10대학에서 철학 전공으로 박사과정(DEA)까지 수료했다. 이후 프랑스 엘리트의 산실인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을 거쳐 2004년 국립행정학교(ENA·에나) 스트라스부르 캠퍼스를 졸업했다. ‘전진!’의 대선 홈페이지에 올려 놓은 자기소개서의 첫 줄이 “나는 에나를 졸업했다(J‘ai fait l’ENA)”는 것이다. 기실 프랑스의 기성 정치인들의 상당수가 시앙스포와 에나를 거쳤지만 많은 경우 굳이 드러내지 않는다. 유독 이를 강조한 데서 그의 선민의식이 엿보인다. 성장기에 10년간 피아노를 배웠고 격투기와 축구로 몸을 단련했다. 마크롱은 같은 자기소개서에서 “되돌아보면 나는 운이 좋았다. 안정된 환경에서 자랐다”고 인정하고 있다. 

마크롱의 부인 브리지트(65)가 지난 4월1일 남부 마르세유에서 열린 선거유세에 참석하고 있다.  마크롱의 고교 선생님이었던 그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맏아들(41)보다 두 살 어린 제자와 2007년 전격 결혼했다.   마르세유/AP연합뉴스

마크롱의 부인 브리지트(65)가 지난 4월1일 남부 마르세유에서 열린 선거유세에 참석하고 있다. 마크롱의 고교 선생님이었던 그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맏아들(41)보다 두 살 어린 제자와 2007년 전격 결혼했다. 마르세유/AP연합뉴스

■금융시장의 인수합병(M&A) 귀재 

에나를 졸업한 2004년(27세), 마크롱의 첫 일터는 프랑스 재정감독청(IGF)이었다. 자크 아탈리의 ‘프랑스 성장의 자유화 위원회’에도 참여했다. 2008년 로스차일드 계열 은행(Rothschild&)로 자리를 옮겨 금융가로 변신했다. 에나 졸업생으로 10년 동안 국가기관에서 일하겠다는 계약을 했다. 이를 어겼기에 5만4000유로(약 6600만원)를 국가에 납부해야 했다. 마크롱은 네슬레의 화이자 유아 우유부문 재인수(90억유로 규모) 및 일간지 르몽드 매각 등에 관여했다. 프랑스는 물론 유럽에서 손꼽히는 M&A 전문가로 성장했다. 2009~2013년 그가 신고한 소득은 280만유로(34억6000만원)에 달했다. 2012년 대선 직후 엘리제궁 대통령비서실 부실장으로 취임했다. 사회당 당적을 10년 간 갖고 있었지만, 정작 그가 당비를 납부한 것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3년 뿐이었다. 

잠시 공직을 떠났다가 2014년 8월(36세) 경제·산업·디지털 장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지스카르 데스탱에 이어 반세기 만에 최연소 경제장관이었다. 정부를 떠난 기간 동안 금융컨설팅 회사와 토플시험 준비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사업에 발을 담그기도 했다. 2년 뒤 대선출마를 위해 사회당 정부를 떠났다. 그는 경제장관 시절 ‘마크롱 법(Loi Macron)’으로 알려진, ‘성장과 (경제)활동 및 경제적 기회의 평등을 위한 법’을 제정했다. 친 기업적인 개혁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프랑스 경제의 성장에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5년 발효된 이 법이 야기할 효과가 향후 5년 간 국내총생산(GDP)의 0.3% 정도라고 평가했다. 2016년 1월 그가 제출한 ‘새로운 경제적 기회들’을 마련하기 위한 ‘마크롱2 법안’은 폐기됐다. 

마크롱은 사회당 우파의 전형적인 ‘캐비어 좌파’였다. 고급 수제양복을 입고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비싼 와인을 마시면서 입으로는 좌파의 가치를 말하는 프랑스 판 ‘강남좌파’였던 것이다. 그나마 ‘좌파’의 모자를 벗어 던지고 중도로 탈바꿈했다. 

꽃길만 걸은 ‘프랑스판 강남좌파’…출마 위해 중도로 변신

■‘올랑드2’인가, ‘슈뢰더2’인가 

마크롱과 올랑드 대통령의 관계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2011년 사회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올랑드캠프에 가담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올랑드가 당선된 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2년 간 엘리제궁의 대통령 비서실 부실장으로 일했다. 올랑드가 정치적 대부인 셈이다. 그런데도 이번 유세기간 동안 인기 없는 올랑드 정부와 거리를 뒀다. 소득 불균형과 부의 재분배 문제를 다룬 <21세기 자본>의 저자인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 마크롱에게 “가면을 벗으라”고 비난해온 것이 그 때문이다. 피케티는 “올랑드 정부 경제 실패의 일급 책임자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한다”고 질타했다.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경제장관이었던 마크롱은 2016년 4월 정치운동단체 ‘전진!’을 결성한다. 좌도 우도 아닌 또는 좌이기도 하고 우이기도 한, 초당적 정치를 표방했다. 마크롱의 변신을 두고 사회당 우파가 신자유주의개혁에 실패하자 ‘얼굴마담’을 바꿨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포린폴리시의 크리스토퍼 글라젝은 “마크롱의 성공은 리버럴리즘의 문제가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 때문일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것”이라면서 “사회당이 사실상 당을 해체하는 ‘정치적 자살’을 통해 활로를 모색한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사회당 우파의 중진들은 1차투표 전부터 사회당 대선후보(브누아 아몽)가 아닌 마크롱 지지를 선언했다. 올랑드는 1차투표 뒤 마크롱 지지를 표명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의 ‘정치적 대부’인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4월19일 파리 동부의 교외 클리시-몽페르메이에서 한 화가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받고 활짝 웃음을 짓고 있다.  파리/AP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의 ‘정치적 대부’인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4월19일 파리 동부의 교외 클리시-몽페르메이에서 한 화가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받고 활짝 웃음을 짓고 있다. 파리/AP연합뉴스

마크롱의 공약도 많은 경우 올랑드 정부 정책과 궤를 같이 한다. 노동시간은 현행 주 35시간제를 고수하되 기업 단위에서 탄력적으로 운영 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부유세(ISF)를 상속 부동산에만 국한하고 기업 투자를 장려하며, 법인세 인하 및 사회보장세(CSG) 인상, 부가세(TVA) 현행유지 등을 약속하고 있다. 독일 사민당(SPD)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2003년 전격 실시해 성공한 ‘아젠다 2010’ 처럼 복지를 줄이고, 기업을 도와주는 개혁안들을 담고 있다. 

■마크롱과 오바마 

마크롱은 2008년 미국 대선에서 ‘희망’의 상징이었던 버락 오바마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다. 하지만 마크롱은 오바마와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오바마는 케냐 유학생과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흙수저’로 태어났다. 인도네시아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외할아버지는 영업사원이었다. 하와이에서 사립고교를 나왔지만 로스앤젤레스의 2년제 옥시덴탈 칼리지에 들어가는 데 만족해야 했다.

더 큰 차이는 마크롱의 인생에는 공적 가치를 위해 헌신한 기간이 없다는 점이다. 오바마는 컬럼비아대로 편입, 졸업한 뒤 시카고 지역공동체의 조직활동가로 일했다. 교회를 기반으로 하는 일종의 빈민운동이었다. 저소득층 자녀들의 대학시험 준비와 세입자들의 권리옹호 운동에도 뛰어들었다. 오마마는 또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을 거쳐 연방 상원의원을 지냈지만, 마크롱은 어떠한 선출직에도 뽑힌 적이 없다. 국민의회(하원)의원에 출마하려다가 사회당 공천을 받지 못한 적은 있다. 오바마는 희망 만 말한 것이 아니었다. 희망과 변화를 말했다. 하지만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 ‘변화’의 아이콘은 마크롱이 아닌 것 같다. 지난 24일 여론조사기관 엘라브의 조사 결과 응답자의 47%가 마크롱이 아닌, 마린 르펜 FN후보를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후보’로 꼽았다. 초선 연방 상원의원이었던 오바마는 워싱턴의 아웃사이더였지만, 마크롱은 10대부터 파리의 인사이더로 살아왔다. 정계 진출 전 오바마 주변에는 사회활동가와 법률가들이 많았다. 마크롱의 주변에는 금융·재계 인사들이 많다.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지난 4월25일 연설메시지. “우리가 강하다면, 우리가 스스로 개혁할 줄 안다면, 우리가 가장 취약한 계층을 보호할 줄 안다면, 효율적이면서도 정의로운 사회를 가질 수 있다”고 쓰여 있다. 좌파의 덕목인 ‘정의’  보다 우파의 가치인 ‘효율’을 앞세웠다. 효율과 정의를 섞은 것이 그의 ‘중도’인 셈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지난 4월25일 연설메시지. “우리가 강하다면, 우리가 스스로 개혁할 줄 안다면, 우리가 가장 취약한 계층을 보호할 줄 안다면, 효율적이면서도 정의로운 사회를 가질 수 있다”고 쓰여 있다. 좌파의 덕목인 ‘정의’ 보다 우파의 가치인 ‘효율’을 앞세웠다. 효율과 정의를 섞은 것이 그의 ‘중도’인 셈이다.

■‘잘난 대통령’과 ‘불편한 대통령’의 사이 

마크롱은 올랑드 대선캠프의 젊은 금융가로 시작해 대통령 비서실 근무 2년, 경제장관 2년의 짧은 경력으로 대권을 거머쥘 수 있는 위치에 와 있다. 행운 덕분이었다. 당초 올해 프랑스 대선에서 당선이 확실시되던 중도우파의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 후보가 지난 2월 부패스캔들이 연루되면서 대안으로 떠올랐다. 1차투표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극우 포퓰리즘을 우려, 마지못해 그를 뽑는다는 소극적 지지자가 45~52%에 달했다. 마크롱의 이력 가운데 유일하게 눈길을 끄는 대목은 15세 때 처음 만난 고등학교 국어(불어)와 연극 교사였던 24세 연상의 브리지트(65)와 결혼했다는 것이다. 브리지트의 딸 로랑스가 마크롱과 같은 반에 있었다. 막내 딸 티판느 오지에르(33)와 마크롱의 대선 유세를 돕고 있다.

잘생기고 잘난 이미지와 소탈한 서민 이미지가 대선에서 맞붙었을 때 많은 경우 소탈한 이미지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는다. 미국인들이 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 민주당 후보 대신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를 선택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굳이 비교하자면 오히려 르펜이 서민대통령에 가깝다. 문제는 극우의 르펜이 적지 않은 유권자들에게 그리 편하지 않다는 점이다.

중도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와 극우 마린 르펜 후보가 26일 시차를 두고 방문한 프랑스 북부 아미앵의 월풀공장에서 노동자들이 공장의 해외이전에 반대하면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먼저 방문한 르펜은 노동자들의 환대를 받았지만, 마크롱의 방문 직전 노동자들은 바리케이트 앞의 타이어에 불을 붙이면서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아미앵/EPA연합뉴스

중도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와 극우 마린 르펜 후보가 26일 시차를 두고 방문한 프랑스 북부 아미앵의 월풀공장에서 노동자들이 공장의 해외이전에 반대하면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먼저 방문한 르펜은 노동자들의 환대를 받았지만, 마크롱의 방문 직전 노동자들은 바리케이트 앞의 타이어에 불을 붙이면서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아미앵/EPA연합뉴스


지난 4월 26일 마크롱과 르펜은 모두 북부 아미앵의 월풀공장을 찾아갔지만 전혀 다른 장면을 연출했다. 내년에 폴란드로 공장이 옮겨가면서 290명의 노동자들이 실업자가 될 위험에 놓여있는 곳이다. 마크롱은 이날 오전 아미앵 상공회의소에서 노조지도자들과 먼저 만났지만, 르펜은 공장부터 찾아가 노동자들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뒤늦게 공장으로 달려온 마크롱은 주차장에서 노동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노동자들이 친 기업 개혁의 신봉자인 마크롱을 내친 것이다. 르몽드는 월풀 공장 주차장에서의 두 장면이 이번 대선의 가장 중요한 순간의 하나라고 논평했다.


지향점은 슈뢰더에, 현실은 올랑드에, 이미지는 오바마에 맞추려는 마크롱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마크롱은 지난 4월 23일 1차투표 승리 뒤 ‘전진!’의 대선캠프 연설에서 “우리는 1년 만에 프랑스 정치의 얼굴을 바꿨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머리와 몸은 바꾸지 않은 것 같다. 그의 말대로 ‘얼굴’ 만 바꾼 셈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5011715001&code=970205#csidx20f2a6cdb0e37e2be8f24d5ced464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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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은 유권자의 눈높이에 더 빨리,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극우 민족전선(FN)의 마린 르펜 후보가 결선투표 진출이 확정된 다음날인 4월24일 곧바로 재래시장으로 달려가 상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다. 반면에 중도 ‘전진!’의 젊은 엘리트, 에마뉘엘 마크롱은 1차투표 승리 축하 저녁을 먹는 장면이 언론에 노출된 뒤 다른 활동현장을 트위터에 올려놓지 않고 있다. 르펜은 이날 국영 프랑스2 TV인터뷰에서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면서 FN의 당대표직을 내려놓겠다고 선언, 배수의 진을 쳤다. |마린 르펜 트위터



■안심할 수 없는 마크롱의 우세 

프랑스 여론조사기관들이 1차 투표 때처럼 정확하게 결과를 예측한다면, 결선투표의 결과는 예상이 어렵지 않다. 마크롱은 60~64%의 득표율로 36~40%에 그친 르펜을 누르고 당선될 것으로 점쳐진다. 프랑스는 물론 각국의 기성 제도(establishment)들이 마크롱의 당선을 기정사실화 하는 근거이다. 1차 투표가 끝난 다음 날인 4월24일 달러화 대비 유로화 가치 상승·프랑스 기업들의 주가 상승·프랑스 국채와 독일 국채의 수익률 격차 축소 등 자본시장의 3대 지표가 모두 호전됐다. 하지만 그 이면의 진실 역시 예측이 어렵지 않다. 2002년 FN의 장마리 르펜 후보는 결선투표에서 17.8%의 득표에 그쳐 82.2%를 얻은 중도우파 공화국연합(RPR)의 자크 시라크 후보에게 참패했다.

1차 투표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결선투표의 예상득표율을 보면 마크롱이 65%를 넘지 않는 가운데 마린 르펜은 40%에 육박하는 지지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15년 만에 유권자 10명 중 4명이 극우 후보를 지지하게 된 것이다. 1차적으로는 2002년 결선투표에서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후보가 시라크를 지지했던, 좌우합작의 공화국 전선이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르펜이 종래 중도우파의 영토를 파고 들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FN과 중도우파 지지자들의 수렴현상은 더 이상 이론적 가정이 아니다. 특히 ‘프랑스적인 삶’과 ‘가톨릭 정체성’을 수호하려는 르펜의 비전은 대 테러·이민·난민·치안 정책 분야에서 전통우파와 일치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엘라브의 24일 조사에 따르면 중도우파 ‘공화주의자들’의 프랑수아 피용 후보의 지지자 가운데 37%가 결선투표에서 르펜을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63%는 마크롱에게 갈 것으로 조사됐다.

1차 투표와 마찬가지로 투표율도 중요한 변수가 된다. 르펜의 지지자들은 80~90% 이상 결선투표장에 갈 것으로 점쳐졌지만 적극적 지지 보다는 소극적 지지가 많은 마크롱 지지자들의 투표율은 미지수다. 충성도와 기권율이 만들어 낼 경우의 수에 따라 이변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파리정치대학 정치연구소(CEMPOF)의 세르주 갤럼 연구원은 이변의 매직넘버를 ‘50.07%’로 제시한 바 있다. 르펜 지지자의 90%·마크롱 지지자의 65%가 투표할 경우 르펜의 득표율이 간신히 과반을 넘을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이다.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결과가 발표된 4월23일 밤 민족전선의 마린 르펜 후보의 결선투표 진출에 항의하는 청년들이 파리 시내 바스티유 광장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파리|AP연합뉴스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결과가 발표된 4월23일 밤 민족전선의 마린 르펜 후보의 결선투표 진출에 항의하는 청년들이 파리 시내 바스티유 광장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파리|AP연합뉴스



■더 중요한 지표는 포퓰리즘의 확장성 

엘라브의 같은 조사에서 ‘공화주의 전통’에 대한 충성도는 좌파가 훨씬 강했다. 사회당 브누아 아몽 후보 지지자의 93%가 마크롱을 지지한 반면, 7%만 르펜을 지지했다. 극좌연대 장 뤼크 멜랑숑 지지자들은 77%가 결선투표에서 마크롱을 찍겠다고 했다. 하지만 사회당 지지자들의 3배가 넘는 23%가 르펜을 지지할 작정이다. 멜랑숑과 르펜의 경제, 유럽, 대외관계 공약의 싱크로율이 가장 높았던 것을 반영한 것이다. 1차 투표 주요 후보들의 지지자들을 상대로 한 조사결과를 종합한 판세가 엘라브의 경우 64% 대 36%로 마크롱 우세를 예측한 것이다. 

하지만 더욱 의미 있는 조사 결과는 극우 포퓰리즘의 확장성이다. 마크롱과 르펜 가운데 진정한 변화를 불러일으킬 후보로는 르펜이 47%로 앞섰다. 다시 말해 갈 길이 뻔한 마크롱의 친기업·개방 개혁이 프랑수아 올랑드 현 사회당 정부처럼 벽에 부딪힌다면 5년 뒤 대선의 승자는 르펜이 될 수 있음을 가늠케 한다. 

향후 프랑스 정치의 지형도는 몰락한 사회당과 공화주의자들의 지지층을 누가 얼마나 빼앗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중도 좌·우파의 재구성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중 가장 주목되는 대목이 바로 중도우파 지지층의 FN 경도 현상이다. 지난 4월20일 이슬람국가(IS)의 파리 샹젤리제 총격테러보다 규모가 큰 테러가 발생하거나 유럽연합(EU)이 터키와 맺은 난민협약이 깨져서 더 많은 난민이 프랑스로 들어온다면 르펜의 포퓰리즘은 저변이 확대될 것이 분명하다. 마크롱의 중도개혁 결과에 따라 멜랑숑에 환호하는 유럽통합과 세계화의 희생자들이 좌파 포퓰리즘의 처마 밑에 들어올 가능성도 필연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1차투표 결과 4위에 그친 극좌연대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장 뤽 멜랑숑 후보의 트위터에 올려진 사진. “우리는 ‘함께 하는 미래’에 투표한 700만명에 머물지 않는다. 유튜브에서 운동은 계속된다”고 써 있다.

1차투표 결과 4위에 그친 극좌연대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장 뤽 멜랑숑 후보의 트위터에 올려진 사진. “우리는 ‘함께 하는 미래’에 투표한 700만명에 머물지 않는다. 유튜브에서 운동은 계속된다”고 써 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오랜 전통은 중간 접점 찾기, 이번엔 중도와 포퓰리즘 사이

대선 1차 투표 후보들 가운데 사회당 출신인 마크롱(23.86%)과 멜랑숑(19.62%), 아몽(6.35%)의 득표율을 합하면 절반(49.83%)에 육박한다. 가히 사회당의 전성시대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사회당의 적자인 아몽의 몰락에서 확인됐듯이 각기 다른 캠프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이합집산의 혼란기에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형국이 될 것을 예고한다. 

중도 좌·우파의 몰락으로 입증됐지만 프랑스 정치에서 이념은 폐기처분된 지 오래다.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힘겹게 유지해온 프랑스식 ‘제3의 길’은 끝났다. 중도좌파 사회당이 신자유주의 개혁을 앞서 실천함으로써 우파의 아젠다를 뺐었지만 토니 블레어의 영국과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독일에 이어 프랑스에서도 그 수명이 다했다. 오히려 좌우 포퓰리즘에 전통 좌파의 아젠다를 빼았겼음이 이번 선거과정에서 여실히 증명됐다. 더 이상 좌우 구도는 없다. 이제는 중도와 극우 사이에서 또다른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 

중간 접점 찾기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 역사가 밟아온 길이기도 하다. 대혁명 이후 100년 동안 백색테러와 적색테러로 혼란을 겪은 뒤에야 탄생한 것이 좌우파의 중도가 합의를 이룬 작금의 구도였다. ‘잊힌 그들’을 대변하는 포퓰리즘은 더 이상 무시해도 좋을 세력이 아니라는 점이 입증됐다. 선거연대나 정치적 이해에 따른 거래가 아닌, 보다 근본적인 콩방시옹(convention·협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더 이상 물타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 멜랑숑이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듯이 좌파는 좌파의 가치로 돌아가고, 우파는 우파의 가치에 충실하되 극우화를 경계해야 한다. 그럴 때 건전한 좌파와 우파가 새로운 콩방시옹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장 뤼크 멜랑숑 후보가 지난 4월23일 파리에서 결선투표가 좌절되자 지지자들에게 연설을 한 뒤 연단을 떠나고 있다.<br />파리|AP연합뉴스

장 뤼크 멜랑숑 후보가 지난 4월23일 파리에서 결선투표가 좌절되자 지지자들에게 연설을 한 뒤 연단을 떠나고 있다. 파리|AP연합뉴스


■ ‘회색지대’를 장악해야 대권을 잡는다 

프랑스 만의 전통도 아니다. ‘중간지대’를 선점하는 정치인이 시대를 열어간다. 어차피 이쪽도 저쪽도 아닌 정치적 회색지대에 있는 유권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1980년대 초 로널드 레이건 아래 모인 ‘레이건 민주당원’들이 그랬다면, 사상 첫 흑인대통령의 역사를 연 버락 오바마에게는 ‘오바마 공화당원들’이 있었다. 작금의 프랑스에선 르펜을 추종하는 ‘르펜 중도우파’가 늘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새로운 접점의 좌표에 따라 이념적 스펙트럼의 발원지인 프랑스 정치판은 요동칠 수밖에 없다. 아웃사이더의 참신한 이미지를 프리미엄으로 챙긴 마크롱은 엘라브 조사에서 국민의회(하원) 의원을 뽑는 오는 6월 총선에서 다수당을 구성할 후보(68%)로 꼽혔다. 그 순간 8개월 전 떠났던 제도권 친정에 ‘기성 정치인’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4261106001&code=970205#csidx6251320dc514577b853629836f19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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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에 따라 다르다. 프랑스 대선 1차투표 결과를 놓고 세계는 서둘러 중도파 에마뉘엘 마크롱의 승리로 결론지었다. 중도우파 공화주의자들의 프랑수아 피용을 필두로, 중도좌파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 등 주요 후보들이 중도 ‘전진!(En Marche!)’의 에마뉘엘 마크롱 지지를 선언하면서 결선투표는 벌써 끝난 듯한 분위기다. 유럽연합(EU)과 국제자본시장을 비롯해 세계화체제를 지탱하는 제도(establishment)들이 경쟁하듯이 마크롱 지지를 표방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1차투표 결과를 뒤집어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프랑스 대선 1차투표에서 24%에 가까운 지지율로 1위를 차지한 중도 ‘전진!’의 후보 에마뉘엘 마크롱이 4월23일 파리 시내 선거본부에서 왼손 엄지를 들어올려보이고 있다. 경제장관 취임 3년, 사회당 탈당 8개월만에 대선 결선투표에 나가게 된 그는 벌써부터 당선이 된듯한 말을 하고 있다. _ AP연합뉴스

 

 

득표율 1위와 4위 차이가 고작 4.2%, 누구도 압도하지 못했다

 

극우 민족전선(FN)의 마린 르펜 후보는 유권자 21.43%를 득표했다. 1972년 창당 이래 최대 기록인 770만명의 표를 얻은 것이다. 2002년 역시 결선투표에 진출했던 FN의 장마리 르펜이 기록한 득표수는 553만표였다. 주류 정치권의 중도 좌·우파 정당이 몰락하는 동안에 220만명이 불어난 것이다. 

 

지역적으로도 실업률이 높은 북부 및 서부 산업지대는 르펜의 텃밭으로 변했다. 기존의 남불지역에 더해 대서양 연안의 보르도 지방의 해안지역은 물론, 피레네 산맥에 가까운 내륙도 넘어갔다. 사회당의 수십년 아성인 북부 릴과 중도우파의 표밭이었던 남부 니스가 FN에 넘어간 것은 중도 좌·우파 정당의 몰락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특히 르펜에 높은 충성도를 보인 북부·동부·남부에서 마크롱은 맥을 쓰지 못했다. 1차 투표의 득표율 지도를 보면 마크롱은 파리와 수도권(일-드-프랑스) 지역의 중산층을 중심으로 세를 굳히고, 북부·동부·남부를 제외한 내륙지역 곳곳에서 분산된 지지를 받았다. 표의 지역적 밀집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소개한 4월23일 프랑스 대선 1차투표의 후보별 유권자 분포도. 황토색이 민족전선의 마린 르펜이 가장 높은 지지를 받은 곳이고 중도 에마뉘엘 마크롱은 청색, 장 뤽 멜랑숑은 보라색이다.   황토색의 영역은 더 넓어졌다.<br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뉴욕타임스가 소개한 4월23일 프랑스 대선 1차투표의 후보별 유권자 분포도. 황토색이 민족전선의 마린 르펜이 가장 높은 지지를 받은 곳이고 중도 에마뉘엘 마크롱은 청색, 장 뤽 멜랑숑은 보라색이다. 황토색의 영역은 더 넓어졌다. |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프랑스 국민 두명 중 한명,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Un autre Monde est possible)”
 
막판에 군소후보에서 좌파 포퓰리즘의 돌풍을 일으키던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프랑스 앵수미즈)’의 장 뤽 멜랑숑 후보는 19.62%를 얻었다. 마크롱 스스로 벌써부터 대통령이 된 듯한 언행을 보이고 있지만, 기실 득표율은 23.86%에 그쳤다. 4위 멜랑숑과의 지지율 격차는 4.24%로 미미하다. 한국처럼 과반수와 상관없이 1위가 대통령이 되는 선거제도라면 마크롱은 국민 4명 가운데 1명의 지지도 받지 못한 것이다. 노동자, 농민이 환호해야 할 후보였지만, 정작 북부·동부의 러스트벨트(산업황폐화 지역)는 르펜에게 넘어갔다. 중부 및 남부 지역에 지지기반이 골고루 퍼졌다는 데 만족해야할 것 같다.

 

전국민 기본소득 공약을 제시했던 사회당 좌파의 브누아 아몽(6.35%)을 포함하면 르펜과 멜랑숑 등 세계화의 불만세력들의 득표율은 47.40%로, 신자유주의 개혁을 주장한 마크롱과 피용(19.94%)의 43.80% 보다 오히려 더 많다. 멜랑숑이 결선투표에 나갈 경우 지지하겠다고 미리 선언했던 아몽의 지지층은 멜랑숑의 지지층과 대부분 겹친다. 마크롱의 승리는 그야말로 신승일 뿐이다. 기성 정계 및 엘리트들이 선거 전반에 걸쳐 조장해온 극우 경계심리에 기대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승리다.

 
포퓰리즘의 확산, 애써 외면하는 주류사회
 
중도 마크롱의 축배 뒤에는 포퓰리즘의 확산이라는 현실이 놓여 있다. 자본시장과 프랑스 국내외 제도들은 애써 현실을 외면하고 있거나 의미를 내리깎고 있다. 르펜과 멜랑숑만 합해도 41.05%였다. 기성 정치권의 다소 성급한 축배는 현실을 흐리려는 의도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위기에 처한 생태문제와 관련해 르몽드와 그린피스 가운데 어느 쪽을 믿나. 에너지 문제에서 국영 프랑스2 방송과 내셔널지오그래픽 중에서 어느 쪽을 믿나.” 

 

지난 23일 프랑스 대선 1차투표에서 4위로 탈락한 좌파연대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프랑스 앵수미즈)’의 장 뤽 멜랑숑이 투표 직전에 주요 신문·잡지·TV·라디오 매체들을 프랑스가 직면한 현안에 비유하며 내놓은 발언이다. 멜랑숑으로부터 적어도 생태문제와 관련해 불신을 받은 르몽드는 그러나 23일자 사설에서 이번 대선의 의미를 추수하면서 ‘멜랑숑 효과’에 주목했다. 

 

르몽드는 이번 대선의 핵심은 국가 정체성이 아니라 ‘세계화에 대한 감정의 재발견’이었다고 짚었다. “세계화에 따른 자유무역이 전반적인 빈곤을 줄이지만, 동시에 극소수 특권층의 이익을 위해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감정이 특히 중산층 사이에서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세계화에 대한 새로운 감정이 아니라면 멜랑숑에 쏟아진 열광적 지지를 표현할 방법이 없다고도 분석했다. 

 

“공화국이 점령당했다.” 대선 1차투표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23일 밤 프랑스 공화국의 상징인 파리 시내 공화국광장에 폭동진압 경찰관들이 주둔해 있다.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은 사람들의 거센 항의로 소란이 있었다. 파리/EPA연합뉴스

“공화국이 점령당했다.” 대선 1차투표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23일 밤 프랑스 공화국의 상징인 파리 시내 공화국광장에 폭동진압 경찰관들이 주둔해 있다.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은 사람들의 거센 항의로 소란이 있었다. | EPA연합뉴스

 

마크롱은 법인세를 33.3%에서 25%로 낮춰 기업하기 더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해고를 쉽게하고 중장년 노동자를 보호하는 대신 젊은이와 실업자들이게 일자리를 주겠다고 한다. 큰 틀에서 기업친화적이면서 노동·복지 문제는 아랫돌 빼서 윗돌 메우겠다는 사고다. 좌우 포퓰리즘이 국민의 절반 가까이로부터 지지를 받았음에도 ‘지금 이대로’ 갈 수 있다는 주류사회의 외눈박이 비전은 다음달 7일 결선투표는 물론, 향후 5년 프랑스 사회의 앞날을 그리 밝게 하는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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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크롱과 르펜의 대결은 익숙함과 낯섬의 대결

 23일(현지시간) 1차 투표가 치러진 올해 프랑스 대선은 무엇보다 국가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선거다. 테러위협과 이민자 문제, 양극화와 경제정책, 유럽연합통합 및 세계화에 대한 해석을 놓고 후보들마다 지난 몇 달 동안 날선 토론을 벌여왔지만 그 핵심을 꿰뚫는 열쇳말은 단연 ‘국가의 정체성’이다. 주요 대선후보 4명의 발언과 공약에 드러난 4인4색의 정체성은 1차 투표의 결과와 상관없이 향후 프랑스가 나아갈 길에 대한 방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잣대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정체성을 가장 앞세운 극우 민족전선(FN)의 마린 르펜 후보(48)는 “프랑스 문명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음을 울려왔다. 그는 무슬림 이민자들 탓에 프랑스의 가톨릭 전통이 허물어지고 있다면서 ‘프랑스적인 삶’의 복원을 주장해왔다.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많은 국민을 도탄에 빠뜨린 유로화를 버리고 프랑화를 채택해야 한다는 공약을 다짐하고 있기도 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군사부문에서 탈퇴하고 친러시아 노선을 선택, 미국 주도 세계정세와 결별하겠다는 약속도 내놓고 있다. 르펜은 1차투표 결과 2002년 결선투표에 올랐던 아버지 장마리 벵상에이어 두번째로 정권을 노릴 수 있게됐다. 


 ■'프랑스적인 삶'을 되찾을 것인가 독일의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종할 것인가

 중도 ‘전진!(앙 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39)는 이번 선거를 ‘열린 프랑스’와 ‘닫힌 프랑스’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마크롱은 “프랑스 문화의 근본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개방”이라면서 경직되고 편협한 르펜의 정체성을 비판해왔다. 그는 “프랑스 문화는 스스로를 초월해 늘 새로운 미지의 세계에 도달해왔다”고 강조하고 있다. 마크롱이 말하는 개방은 문화의 개방에 그치지 않는다. 유로화를 유지하고 세계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메시지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경제적 평등의 기회를 제공하되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비롯한 신자유주의개혁을 더욱 가속화해 ‘전진’하자는 것이 경제장관 출신이자, 로스 차일드 은행 간부출신인 그의 제안이다. 그가 5월7일 결선투표에서 승리한다면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정부가 지난 5년간 벌여온 경제개혁을 더욱 심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올랑드II'이자 1990년대 '새로운 중도(Neue Mitte)'를 표방하면서 신자유주의 개혁을 먼저 시동걸었던 독일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당시 총리와 같은 길을 걷게될 것이 분명하다. 

  5월7일 결선투표에서 맞붙게된 마크롱과 르펜의 대결은 익숙함과 낯섬의 대결이다. 1990년대 이후 유럽 대륙이 지켜보아온 '세계화 기관차'의 질주를 보거나, 아니면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과 같이 보호무역정책과 유로존 및 나토 군사부문 탈퇴 등의 전혀 새로운 상황이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멜랑숑의 좌파 포퓰리즘은 확장성을 입증한 데 의미 

 중도우파 프랑수아 피용 후보(63)가 꿈꾸는 프랑스의 정체성은 르펜의 정체성과 유사하다. 마크롱의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프랑스’를 배격하고 프랑스가 생래적으로 기독교(가톨릭) 문명에 기초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외국인 이민자 및 망명신청자들이 프랑스에 살고 싶으면 프랑스 문화에 동화해야 한다는 소신도 갖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으론 공무원 50만명 감축과 부유세 및 주 35시간 근로제 등의 폐지를 주장, 프랑스 사회가 보다 효율적인 사회로 나가야 한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들의 1차투표 전 분석과 마찬가지로 19%대의 득표율을 얻은 좌연대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프랑스 앵수미즈)’의 장 뤼크 멜랑숑이 생각하는 정체성은 다른 후보들과 결이 다르다. 그는 프랑스인들이 민족적으로 ‘골족의 후예’라기 보다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탄생한 ‘시민’의 후예라고 해석한다. 프랑스 좌파의 전통이다. 혁명정신인 자유·평등·박애가 바로 정체성이라는 견해다. 멜랑숑은 정체성이라는 화두 자체가 피용, 마크롱 같은 자유주의자들이 만들어낸 개념이라면서 공화주의 전통이 강조하는 “인간적·혁명적·세속적·사회적 정체성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분배평등론자들'의 자손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결선투표 진출은 좌절됐지만 1차투표 20% 가까운 득표율로 중도우파 공화당과 어깨를 나란히 함으로써 확장성을 입증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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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프랑스 대선에 출마한 후보 11명의 얼굴. 윗 열 왼쪽부터 ‘노동자의 투쟁’의 나탈리 아르토, ‘인민공화연맹’의 프랑수아 아셀리노, ‘연대와 진보’의 자크 슈미나드, ‘일어서라 프랑스’의 니콜라 듀퐁에냥, ‘공화의자들’의 프랑수아 피용,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후보. 아랫열 왼쪽부터 ‘저항하자!’의 장 라살르, 민족전선의 마린 르펜, ‘전진!’의 에마뉘엘 마크롱,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장 뤽 멜랑숑, ‘반자본주의 신당(NPA)’의 필립 푸투 후보다. 지난 4월13일 촬영한 사진들이다. EPA/연합뉴스



■ ‘당 이름’의 정치학 

프랑스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는 모두 11명이다. 이중 여성은 극우 민족전선(FN)의 마린 르펜과 극좌 ‘노동자의 투쟁(LO)’의 나탈리 아르토 등 2명이다. 흥미로운 것은 11명의 후보를 낸 진영 가운데 ‘당(parti)’을 표방한 곳이 브누아 아몽 후보의 집권 사회당(PC)과 군소후보 가운데 필립 푸투 후보의 ‘반자본주의 신당(UPR)’ 등 두곳 뿐이라는 점이다. 

이는 프랑스 유권자들에게 ‘당’이 주는 부정적인 인상 탓이다. 역사적으로 당은 딱딱한 이미지에 더해 당략과 당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집단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좌파연대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프랑스 앵수미즈)의 장 뤽 멜랑숑 후보와 같이 프랑스공산당(PCF)를 비롯한 여러 정파가 선거연대를 한 경우 전체를 아우르는 정파의 이름을 지어야 하는 연유에서다. 후보를 낸 정파 별로 느낌표가 붙은 구호나 각 후보가 꿈꾸는 프랑스에 대한 염원이 담긴 내용을 정파이름에 담고 있어, 이를 통해 선거를 바라보는 프랑스 각계각층의 염원을 짐작할 수있다. 당명 또는 정파명에 이미 정체성이 담긴 것이다. 

후보 별로 보면, 중도우파의 프랑수아 피용은 한국 언론에서 편의상 '공화당'으로 표기하지만, 실제 이름은 ‘공화주의자들(Les Republicains)이다. 1차투표 전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에마뉘엘 마크롱은 ’전진!(En Marche!)이고, 프랑수아 아셀리노 후보는 ‘인민공화연맹’을 대표한다. 이밖에 ‘연대와 진보’의 자크 슈미나드, 니콜라 듀퐁에냥 후보의 ‘일어서라 프랑스(Debout la France)’, 장 라살르 후보의 ‘저항하자!’ 등이 정파 이름이다. 

■11명의 후보들의 소속 정파 중 ‘당’은 사회당과 반자본주의신당 두곳뿐

프랑스 앵수미즈를 구성한 정치그룹들의 이름도 다양하다. PCF와 ‘다함께(Ensemble!)’ ‘신좌파사회주의자 혁명’ ‘공산주의자 르네상스의 극(極)’ ‘혁명좌파’ 등 6개 극좌성향의 정파들이 뭉쳤다.

당명이나 정파명이 다양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선거판의 판세에 따라 소속당을 옮기고 정치적 소신을 달리하는 동아시아 한 분단국가의 ‘철새 정치인’과는 확연히 다르다. 대부분 수십년 동안 같은 신념을 갖고 사회활동 또는 정치일선에 섰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탈당과 창당을 했더라도 손바닥 뒤집듯이 소신을 버렸다기 보다 치열하게 소신을 지키기 위한 경우가 많다.

주요 후보 가운데 마크롱은 사회당원으로 현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에서 경제장관까지 지냈지만 당의 좌경화(정확히 말하면 노동자들을 대변해온 사회당의 본질)에 불만을 품고 2016년 ‘전진!’을 결성했다. 그가 내세우는 공약들은 자신이 경제장관 재직중에 추진했던 성장과 경제적 기회의 평등을 골자로 하는 경제개혁과 정체성이 맞는다. 유럽통합과 세계화가 초래한 불평등의 문제를 고쳐야 하지만, 정체된 상태가 아니라 앞으로 전진하면서 고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반대로 역시 사회당원으로 35년 동안 활동했던 프랑스 앵수미즈의 멜랑숑은 당의 우경 리버럴화(정확히 말하면 사회당의 본질이 바뀌는데)에 반발해 2008년 탈당, ‘좌파정당(PG)’을 창당했다가 이번에 범 좌파진영으로 외연을 넓혔다. 같은 사회당에 몸담았었지만 마크롱과 달리 전진하기에 앞서 유럽통합과 세계화의 문제부터 해결하자, 그 과정에서 결코 굴복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다. 

■군소후보들도 평생 외길 걸어온 소신의 정치인들 

'노동자의 투쟁'의 나탈리 아르토 후보는 노동운동의 전위에 서 온 인물로 지난번 대선에선 0.56%를 득표했다. 프랑수아 아셀리노는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한 엘리트이자 우파정치인이지만 프랑스의 유럽연합(EU)탈퇴 프로그램을 공약으로 내건 주권주의자이다. 자크 슈미나드는 반 시스템, 반 제도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아웃사이더 정치인이지만 기후변화회의론자이자 동성애를 혐오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우파 정치인이다. 니콜라 듀퐁에냥 역시 ENA 출신이지만, 주권주의자로 2012년 대선에서 1.79%를 득표했다. 장 라살르는 농촌운동과 환경 및 생태운동을 벌여온 인물이다. 그 과정에서 2006년 39일 동안 단식을 벌이기도 했다. 2013년에는 프랑스 국토 6000㎞를 도보여행했다. 필립 푸투는 공산주의 혁명을 주창하는 극좌파 정치인으로 2012년 대선에서 41만표(1.15%)를 득표했다.

전체 11명의 후보 가운데 8명이 반 유럽, 반 세계화를 주장하고 있다. 득표율로 보면 얼추 프랑스 유권자 2명 가운데 1명이 현재의 정치시스템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대선 후보들과 정치그룹을 토대로 본 올해 프랑스의 현주소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4231108001&code=970205#csidxaa47a1e62bc353aaa15f66f29455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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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프랑스 대선에 출마한 후보 11명. 윗열 오른쪽에서 두번째의 프랑수아 피용과 아랫열 왼쪽 두번째부터의 마린 르펜, 에마뉘엘 마크롱, 장 뤽 멜랑숑 등 4명이 주요후보이다. EPA연합뉴스

■“늑대가 온다” 유권자를 겁박하는 ‘선거판의 양치기들’ 
어차피 선거판에는 양치기들이 판을 친다. 서로 다른 후보가 당선되면 “국가가 위협에 빠진다”고 위협한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를 내세운다. 프랑스 대선도 예외는 아니다. 후보들마다 자신 만이 풍전등화에 처한 국가를 살릴 수 있다면서 다른 후보들을 위협의 원천으로 지목한다. 극우 민족전선(FN)의 마린 르펜(48)은 무슬림 이민자들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프랑스적인 삶은 물론 프랑스 문명이 위기에 처할 것”이라며 위협하고 있다. 중도 ‘전진(앙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39)과 중도우파 ‘공화주의자들’의 프랑수아 피용(63)은 포퓰리즘 정권의 위험성과 경제파탄 가능성을 집중 부각한다. 마크롱은 “르펜이 당선되면 프랑스 문화의 다양성이 위협받는다”고도 경고한다. 극좌로 분류되는 좌파연대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프랑스 앵수미즈)’의 장 뤽 멜랑숑(65)은 “르펜과 마크롱, 피용 중 한명이 당선되면 (프랑스 민중이)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선거판에 뛰어든 후보나 운동원이 아니면서도 유독 포퓰리즘을 정조준해서 비판하고 있는 부류가 있다. 다름 아닌 국제 자본시장이다.

극우주의 성향의 주간지 미뉫의 4월12일자 표지. 멜랑숑의 사진과 함께 ‘ 웅변가, (장 마리)르펜이 후계자를 찾았다. 그 이름은 멜랑숑이다’라고 헤드라인을 뽑았다. 민족전선(FN)의 명예대표인 장 마리 르펜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역으로 멜랑숑에게 들씌운 격이다.

극우주의 성향의 주간지 미뉫의 4월12일자 표지. 멜랑숑의 사진과 함께 ‘ 웅변가, (장 마리)르펜이 후계자를 찾았다. 그 이름은 멜랑숑이다’라고 헤드라인을 뽑았다. 민족전선(FN)의 명예대표인 장 마리 르펜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역으로 멜랑숑에게 들씌운 격이다. 


■포퓰리즘의 위험성 경고하고 나선 자본시장의 이중성 
자본시장은 예민하다. 또 민첩하다. 조금이라도 호재의 가능성이 보이면 그 틈새에 돈을 밀어넣고 이자를 챙긴다. 물론 악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한껏 불안을 부추키는 한편으로 베팅(돈걸기)을 도모한다. 일견 합리적인 예측에 입각한 투자의 정석일수도 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불안을 또 다른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시장의 악마성’이 엿보인다. 좌·우 포퓰리즘이 구질서를 흔드는 프랑스 대선을 보는 자본시장의 태도에도 돈냄새가 물씬 풍긴다. 

유럽 자본시장의 희망을 한몸에 받고 있던 후보는 프랑수아 피용 후보(63)이었다. 가족 스캔들로 그가 주춤하자 이번엔 사회당 출신의 중도 마크롱(39)의 당선을 고대하고 있다. 둘 다 친 유럽통합론자들이기 때문이다. 르펜이 여론조사에서 1위를 줄곧 유지하는 동안에도 자본시장이 다소 여유가 있었던 것은 피용이나 마크롱이 르펜과 함께 결선에 나간다면 르펜의 당선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예상에 근거한다. 멜랑숑이 여론조사에서 피용과 3, 4위를 다투자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포퓰리즘 후보의 당선을 전제로 자본시장의 시나리오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프랑스 주식과 채권은 물론 유로화의 급락에 대비하기 위한 보험비용이 요동을 칠 것이다. 투자자들은 프랑스 국채를 서둘러 내다 팔 것이 분명하다. 이는 같은 통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내 다른 국채에 연쇄반응을 일으킬 것이다. 2011년 유럽 국가들의 국채위기 때 벌어졌던 일이다. 

■“고위험, 고배당(High risk, high return)” 대선판도 투자대상
10년 만기 국채의 수익률은 선거 리스크를 가늠하기 위해 가장 많이 쓰이는 잣대다. 지난 4월18일 프랑스와 독일의 10년 만기 국채의 수익률 격차는 0.73%포인트였다. 그나마 다음날 0.69%포인트로 좁혀졌지만 지난 3월 프랑스 국채가 독일 국채 대비 0.57%포인트의 수익률을 더 기록했을 때 보다 여전히 악화됐다. 대선 리스크가 희박했던 지난해 9월에는 0.22%포인트에 불과했다. 시장의 우려는 이미 유로존 안에서 프랑스 경제 보다 맵집이 약한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등 ‘주변부경제(peripheral economies)’의 국가부채에 적용되기 시작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4월20일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이 4월20일 전한 프랑스와 독일의 10년 만기 국채의 수익률 격차. 격차가 벌어질 수록 프랑스 국채의 리스크가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2월 중도우파 프랑수아 피용의 스캔들이 커지자 마린 르펜의 득세를 우려해서 0.80% 가까이 치솟았다가 잠시 주춤하더니 좌파연대 장 뤽 멜랑숑이 막판 선전을 한 4월 이후 다시 벌어졌다.              블룸버그 통신 홈페이지                         
블룸버그 통신이 4월20일 전한 프랑스와 독일의 10년 만기 국채의 수익률 격차. 격차가 벌어질 수록 프랑스 국채의 리스크가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2월 중도우파 프랑수아 피용의 스캔들이 커지자 마린 르펜의 득세를 우려해서 0.80% 가까이 치솟았다가 잠시 주춤하더니 좌파연대 장 뤽 멜랑숑이 막판 선전을 한 4월 이후 다시 벌어졌다. 블룸버그 통신 홈페이지


르펜·마크롱·멜랑숑·피용 등 4마리의 말이 달리는 경마는 더 복잡한 경우의 수를 낳는다. 멜랑숑의 급부상이 불확실성을 짙게 하면서 통계학적 변수를 키우기 때문이다. 멜랑숑은 유로존 탈퇴를 주장하는 르펜과 달리, 유로의 존속을 인정하지만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공공부채 규모를 제한하고 있는 ‘안정과 성장 협약’의 총체적인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자본시장은 “르펜이나 멜랑숑의 당선은 프랑스와 유럽의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음을 올린다. 둘 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유로존 경제의 기존 질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포퓰리즘 후보들의 당선 가능성이 적다는 전망은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이들이 당선되더라도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처럼 어느 정도 현실에 적응하는 수순을 밟게될 것이 뻔하다. 기성정치권의 중도 좌우파가 장악하고 있는 프랑스 상·하원도 브레이크로 작동할 것이다. 멜랑숑의 경제자문역인 자크 제네로의 예상처럼 멜랑숑과 르펜이 결선투표에 진출하면 시장은 과잉반응할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미래를 앞당겨 걱정하고, 그 걱정을 수치화해서 투자대상을 옮겨다니는 것은 자본시장의 태생적 특성 때문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선거가 예상대로 유럽통합주의자의 승리로 끝난다면 이러한 수치는 곧바로 정상으로 돌아간다. 그 결과에 따라 벌거나 잃는 베팅의 결과가 배당된다. ‘카지노 자본주의’에 선거는 꽤 쓸만한 투자대상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선 1차투표를 사흘 앞둔 4월20일 2012년 사르셀의 한 유대인 잡화점을 수류탄으로 공격했다가 체포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파리 시내 법원에서 재판을 앞두고 얼굴을 복면으로 가리고 있다. 파리/EPA연합뉴스

프랑스 대선 1차투표를 사흘 앞둔 4월20일 2012년 사르셀의 한 유대인 잡화점을 수류탄으로 공격했다가 체포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파리 시내 법원에서 재판을 앞두고 얼굴을 복면으로 가리고 있다. 파리/EPA연합뉴스


■자본의 결론은 “더 일하고, 덜 받아라” 

최대 아이러니는 파이낸셜 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등 국제 자본시장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른바 주류언론들이 프랑스에서 좌우 포퓰리즘이 위세를 떨치게 된 배경을 현지 르포와 인터뷰, 분석기사 등으로 다른 어떤 매체보다 충실히 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결론은 변화를 생래적으로 거부하고, ‘지금 이대로’이다. 특히 “덜 일해도 봉급을 더주겠다”는 멜랑숑의 공약을 놓고 존 비노커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는 “그렇지 않아도 기진맥진한 프랑스 경제를 혼수상태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악담을 퍼붓는다. 노동시간을 줄이되 최저임금을 높이겠다는 멜랑숑을 악마화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 우려를 퍼뜨린다. 자본시장이 강조하는 ‘지금 이대로’는 현상유지가 아니다. “(노동자들이)더 일하고 덜 받으면서 언제든지 구조조정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논리다. ‘노동시장의 탄력성’이나 ‘노동시장 개혁’ 등의 전문용어로 민낯을 가렸을 뿐이다. 세계화가 본격화한 1980년대 이후 모범정답이기도 하다. 자본시장이 중도 마크롱과 중도우파 피용의 대선 승리를 바라는 이유는 자본이 원하는 개혁을 수행할 모범생들이기 때문이다.


좌우 포퓰리즘이 기세를 떨치게 된 배경을 이해하면서도 ‘지금 이대로’를 강조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 노동개혁을 필두로 성장주의 경제정책을 향후 5년간 더 밀고 나간다면 오히려 포퓰리즘의 바람은 더 거세질 수밖에 없다. 마크롱의 중도 노선이 독일 처럼 신자유주의 개혁에 성공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산소호흡기를 끼고 체제를 연장할 가능성이 더 짙다. 1990대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개혁이 결실을 맺고 있는 독일에도 포퓰리즘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마크롱과 피용은 세계화와 유럽통합의 희생자들을 부양하기 위한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지금 이대로’의 선을 크게 넘지 못한다. 포퓰리즘의 발흥은 이미 세계화의 톱니바퀴 속에 빨려들어간 각국 사회가 앓고 있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각각의 국가 차원에서 출구를 찾기 전까지는 세가 늘어날 수밖에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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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4211020011&code=970205#csidx536878d66ec35c8b5e87ba527a809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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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연대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대선후보 장 뤽 멜랑숑이 지난 4월16일 프랑스 남서부 툴루즈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툴루즈/EPA연합뉴스

■분노한 노인들이 거리로 나왔다. 청년들을 만났다.

좌파 포퓰리즘은 극우 포퓰리즘의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아니다. 전혀 다른 세계관에서 등장해 세를 늘려왔다. 흥미로운 사실은 각국의 좌파 포퓰리즘의 핵심에 분노한 노인들이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좌파 포퓰리즘을 말할 때 빼놓을 수없는 것이 2013년 95세를 일기로 타계한 ‘영원한 레지스탕스’ 스테판 에셀이다. 에셀은 92세 때인 2010년 <분노하라·Indignez vous!)>라는 소책자를 발간, 유럽 판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의 지침을 내렸다. 지난 해 미국 대선 판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올해 76세다. 프랑스 대선에서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는 장 뤽 멜랑숑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a France insoumise·프랑스 앵수미즈)’ 후보는 65세로 오히려 ‘전사(militant)세대’의 막내 쯤에 해당한다. 늙은 전사들은 놀라운 적응력을 보였다. 무엇보다 SNS를 통해 분노한 시민들을 네트워킹하고 그 네트워크를 통해 다시 메시지를 퍼뜨리는 소통의 전문가들이다. 그 소통을 통해 젊은이들과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일자리 없이 답답한 현실과 앞이 보이지 않는 전망이 짓눌려 분노를 정당하게 표출할 출구를 찾지 못했던 성난 젊은이들이다. 에셀은 월가 금융위기 탓에 유럽대륙에 긴축재정이라는 이름의 현실권력이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삶을 위기로 몰아넣는 상황에서 “인간이고 싶으면 분노하라”라고 외쳤다. 샌더스 역시 느닷 없이 등장한 포퓰리스트가 아니다. 30여년 전부터 홀로 외쳐온 같은 주장을 되풀이 하되, 소통의 플랫폼을 SNS로 확대했을 뿐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공립대학 등록금 면제, 의료보험 개혁, 자유무역협정 반대 등의 주장은 오래된 구호다. 그럼에도 좌파 포퓰리스트들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그만큼 보통사람들의 쌓인 분노가 많아졌다는 변화의 증좌이다. 멜랑숑의 대선 지지율이 3위까지 치솟은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펜만 쓰던 시대에 등장한 만년필에 모두가 곧장 적응한 것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컴퓨터와 통신혁명이라는 새로운 문물을 먼저 받아들여 소통에 활용한 역전의 노장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그 뜻이 젊은층과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분노를 네트워킹하고, 소통에 나선 늙은 전사들은 같은 노인이지만 민족전선(FN)의 창당멤버들과 확연하게 다르다. 장 마리 르펜을 비롯한 분노한 극우 전사들은 알제리 독립전쟁의 패잔병들이다. 장 마리 르펜부터 준사관으로 참전했었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강한 프랑스’에 대한 향수에서,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불만을 무슬림 이민자들에게 쏟아내는 퇴행적 전사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우익쿠(羽翼)과 피가 통한다. FN의 노인 전사들에게는 덴노(天皇)에 대한 충성이 없지만, 제국주의를 동경한다는 점에서 일란성 쌍생아와 같다. 반면에 좌파 민족전선의 늙은 전사들은 인터내셔널 노래에 주먹을 흔들던 세대다. 나치 치하에서는 레지스탕스로 가장 격렬하게 투쟁을 했고, 이후 대량생산시대에는 좌파정당과 노동조합 등을 통해 ‘공화국의 가치’가 실현되는 과정을 주도했으며, 이후 세계화 시대 변방으로 몰려났던 세대다. 그들이 돌아온 것이다. FN의 노전사들이 마린 르펜이라는 새 지도자에 밀려 전열의 후위로 밀려났다면, 프랑스 앵수미즈의 노전사들은 여전히 전위에 서 있다는 점에서도 다르다.

장 뤽 멜랑숑이 4월17일 파리 시내 센강의 유람선에 올라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자본시장의 이익을 대변하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멜랑숑 기사에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을 곁들이며 ‘멜랑숑이 보트를 흔들고 싶어한다’는 타이틀을 달았다.<br />멜랑숑 트위터 계정

장 뤽 멜랑숑이 4월17일 파리 시내 센강의 유람선에 올라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자본시장의 이익을 대변하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멜랑숑 기사에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을 곁들이며 ‘멜랑숑이 보트를 흔들고 싶어한다’는 타이틀을 달았다. 멜랑숑 트위터 계정

■몽디알리스트(mondiallistes·세계주의자)&파트리오트(pariotes·애국자)의 대결
멜랑숑의 좌파 포퓰리즘과 마린 르펜의 극우 포퓰리즘이 갈라지는 지점에 다른 유전자가 있다. 멜랑숑이 연대와 민주주의라는 좌파의 가치를 움켜쥐고 있다면, 르펜은 프랑스의 가톨릭 정체성과 반 이슬람 정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전통적으로 프랑스 정치인의 정체성은 좌파와 우파, 통합주의자와 유럽회의론자(주권주의자)라는 두 개의 잣대로 구분됐다. 좌파 안에도 유럽회의론자들이 있고, 우파 안에도 통합주의자들이 있다. 두 개의 잣대의 조합이 만드는 4개의 정체성으로 규정해왔다. 하지만 좌우 포퓰리즘이 기성질서(ancien regime)를 흔들고 있는 이번 대선에서는 새로운 구분이 생겼다. 르펜은 대선을 ‘몽디알리스트와 애국주의자들의 대결’이라고 규정했다. 자신의 민족전선(FN)을 ‘애국자들의 정당’이라고 강조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좌파의 멜랑숑도 반 몽디알리스트이다. 하지만 맹목적 애국자는 아니다. 중도 ‘전진(앙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은 열린 프랑스와 닫힌 프랑스로 양분한다. 르펜의 구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구분의 아젠다는 르펜이 먼저 설정했다. 유럽통합을 둘러싼 찬·반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그만큼 프랑스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날선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버니 샌더스 역시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했다. 단순히 유럽통합 문제를 떠나 자본·상품·사람의 자유이동에 기반을 둔 세계화에 대한 반대 분위기가 곳곳에서 세를 불리는 형국이다. 좌파 포퓰리즘이 ‘어차피 개방과 세계화에 반대해온 골통들’이라고 무시만 할 수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그 연원 역시 결코 얕지 않다.

■1999년 ‘시애틀 전투(The battle of Seattle) 승리’ 이후 오랜 좌절
반 세계화 운동이 국제적인 연대를 넓혀가던 1999년 늦가을, 프랑스 연수중이던 기자는 벵센느-생드니 대학(파리 8대학) 유럽연구소의 강의실에 앉아 있었다. 그날 수업을 맡은 베르나르 카센 교수(유럽연구소장)는 그해 11월30일 미국 시애틀에서 열릴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를 다룬 르몽드 기사를 프린트한 A4용지를 학생들에게 돌렸다. 카센 교수는 반 세계화 운동을 벌여온 ‘시민지원을 위한 국제 금융거래과세 추진협회(attac·아탁)의 공동 발기인이다. 기사는 바로 시애틀 회의 안건 중에서도 투자자 국가소송제의 위험성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었다. 그 끝에 파리 외곽 우앵의 동네 체육관에서 열렸던 아탁의 첫 국제연대회의에 참석했었다. 당시 기준으로 하루 1조달러가 넘는 국가간 투기자본 이동에 1~5%의 토빈세를 부과하고 이를 재원으로 세계화의 모순을 치유하자는 취지에 브라질 노동자당 대표를 비롯해 각국의 운동가들은 뜻을 모았다. 아탁과 미국 산별노조연합(AFO-CIO) 등이 주축이 된 4만명의 시위대는 격렬한 가두투쟁으로 결국 WTO 각료회의의 아젠다를 무산시켰다. 뉴 밀레니엄을 앞두고 국제무역의 룰을 정하려던 WTO 시도가 먹히지 않자 각국은 양자·다자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방향을 틀었다. 투자자국가소송제는 한·미 FTA에서도 핵심 이슈였지만 결국 관철됐다. 반 세계화 진영은 이후 매년 대안의 세계화를 모색하는 세계사회포럼(WSF)를 개최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세계화의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지 못했다. 오랜 좌절 끝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각국의 국내 좌파 포퓰리즘이다. 지구 차원의 자유무역협정이 실패한 뒤 양자·다자 FTA로 분절됐듯이, 반 세계화 운동도 각국 별로 분절된 셈이다. 국제적 연대가 엷어지고, 세계화의 희생자들의 삶이 더 어려워지면서 각국별 다른 토양에서 다른 이유로 분노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장 뤽 멜랑숑이 4월16일 툴루즈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연단에 ‘기업 내 민주주의’라는 피킷이 보인다. 르펜의 유세장이 그렇듯이 멜랑숑의 유세장도 많은 유권자들이 쌓인 분노와 희망을 쏟아내는 출구이기도 하다.        툴루즈/ EPA연합뉴스

장 뤽 멜랑숑이 4월16일 툴루즈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연단에 ‘기업 내 민주주의’라는 피킷이 보인다. 르펜의 유세장이 그렇듯이 멜랑숑의 유세장도 많은 유권자들이 쌓인 분노와 희망을 쏟아내는 출구이기도 하다. 툴루즈/ EPA연합뉴스

■긴장하는 국제 자본시장

프랑스의 좌파 포퓰리즘은 기존의 반 세계화 정서에 더해 유럽통합에 반대하는 주권주의자들의 결합이다. 그 안에서 이민자·난민·치안 정책에 대한 가치의 충돌이 극우와 좌파를 나눈 것이다. 르펜의 포퓰리즘은 좌파의 영역이었던 반 세계화 운동의 흐름에 종교적(가톨릭) 정체성과 맹목적 애국의 옷을 겹쳐 입고 등장했다. 국제 자본시장이 프랑스 대선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좌우 포퓰리즘이 공유하고 있는 반 자유무역, 반 유럽, 반 세계화 특성 때문이다. 지난 주 10년 만기 프랑스 국채와 독일 국채의 수입률 격차는 75bp(0.75%포인트)로 벌어졌다. 당초 낙승이 예상됐다가 부패스캔들에 휘말린 중도우파 ‘공화주의자들’ 프랑수아 피용 후보의 당선가능성이 희박해졌던 지난 2월의 기록 77bp 보다는 약간 낮지만 정치적 리스크를 우려한 투자자들이 보다 안전한 독일 국채로 옮겨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르펜은 어차피 결선투표에서 떨어질 것으로 보았지만, 멜랑숑의 막판 돌풍을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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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4190727001&code=970205#csidx6ac74b2bfa748d982aaa43b93754a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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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선에서 또다른 돌풍으로 등장한 극좌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a France insoumise)’의 장 뤽 멜랑숑 후보의 선거공약집 표지. 상단에 ‘인민의 힘’이라고 써 있다.


■‘잊힌 그들’이 열광하는 또다른 포퓰리즘 

종반으로 치달은 프랑스 대선에 마린 르펜(48)의 돌풍에 이어 또 하나의 돌풍이 등장했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프랑스 앵수미즈·La France insoumise)장 뤽 멜랑숑 후보(65)가 주역이다. 멜랑숑은 4월8일 발표된 BVA 여론조사 결과 멜랑숑과 중도우파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63)은 각각 19%로 공동 3위를 한 뒤 조사에 따라 피용을 1% 정도 앞선 단독 3위도 기록하고 있다. 민족전선(FN)의 르펜과 중도 ’전진(앙 마르슈·En Marche!)의 마크롱(38)이 각각 23%로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멜랑숑이 막판 변수로 등장한 것이다. 일부 프랑스 언론은 이제 르펜·마크롱이 아니라 르펜·멜랑숑의 결선투표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을 정도다. 

멜랑숑은 지난 5일 두번째 대선후보 TV토론 뒤 엘라브 조사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후보’(25%)로 꼽혔다. 마크롱 21%, 피용 15%, 르펜 11%였다. ‘당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후보’로도 26%로 1위였다. 르펜(14%)과 마크롱(12%) 등 친밀도에서 다른 후보들을 압도했다. 3월 말 1차 토론 뒤 설득력 있는 후보로 20%만 멜랑숑(마크롱 29%)을 뽑을 것을 보면 유세과정에서 가장 성공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지지율이 10%를 넘지 못하는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 후보는 멜랑숑이 결선투표에 진출할 경우 멜랑숑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사회당 우파가 마크롱에 향해 달려가고 있다면, 사회당 좌파는 아몽 대신 멜랑숑을 지지하고 있다. 멜랑숑과 르펜이 결선투표에서 붇을 경우 멜랑숑이 57%의 득표율로 승리할 것으로 전망됐다. 

프랑스 앵수미즈의 대선후보 멜랑숑이 지난 4월2일 사토루 유세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Getty Images/이매진스

프랑스 앵수미즈의 대선후보 멜랑숑이 지난 4월2일 사토루 유세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Getty Images/이매진스

■매력적인 캐릭터와 참신한 선거유세 
마오쩌뚱의 인민복을 즐겨 입는 그는 35년 동안 몸담았던 사회당을 탈당, 2008년 좌파당(PG)을 창당했다. 2012년 대선에서 11%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패배의 경험은 그를 바꿔놓았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참신한 선거유세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명철하면서도 고집불통의 투사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보다 인간적이고 장난기 어린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을 풍긴다. 이번에는 PG와 프랑스공산당(PCF), 다함께(Ensemble!), 신좌파사회주의자 혁명, 공산주의자 르네상스 극(極), 혁명좌파 등 6개 극좌성향 정파의 자발적 연대인 프랑스 앵수미즈의 후보로 나섰다. 구성요소들은 지극히 투쟁적인 ‘극좌 꼴통’들이지만 멜랑숑이 발산하는 매력은 사뭇 결이 다르다. 

멜랑숑은 현재까지 가장 성공적인 유세를 하는 후보로 꼽힌다. 지난 2월 프랑스 선거판에서 처음으로 홀로그램을 도입, 파리와 리용에서 동시 연설을 하고 부를 공유하는 ‘재정전투(Fiscal Kombat)’ 비디오게임도 인기다. 유튜브 팔로워는 26만명으로 다른 10명의 후보들을 합한 것보다 많다.

하지만 그의 급부상이 단순히 참신한 선거운동 덕분 만은 아니다. 마린 르펜의 민족전선과 마찬가지로 ‘잊힌 그들’을 호출한 데 있다. 멜랑숑의 이번 대선 공약은 2012년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세가 늘어난 것은 그만큼 세계화와 유럽통합의 패배자들에게 쌓인 분노와 불만이 많다는 방증이다. 스스로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파란을 몰고 왔던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식 좌파 포퓰리스트를 자칭한다.

멜랑숑의 불로그. 노숙자 사진 밑에 ‘주거, 내가 추가하고 싶은 단어들’라고 썼다. 멜랑숑은 경기부양예산 2천73억유로를 배정해 공공주택을 추가로 짓고, 각종 공공사업 및 그린 프로젝트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블로그 홈페이지 상단에는 ‘인민의 시대(L’ere du Peuple)’라고 써 있다.

멜랑숑의 불로그. 노숙자 사진 밑에 ‘주거, 내가 추가하고 싶은 단어들’라고 썼다. 멜랑숑은 경기부양예산 2천73억유로를 배정해 공공주택을 추가로 짓고, 각종 공공사업 및 그린 프로젝트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블로그 홈페이지 상단에는 ‘인민의 시대(L’ere du Peuple)’라고 써 있다.


■멜랑숑과 르펜, 앙시앙레짐(구체제) 흔드는 좌우 포퓰리즘의 주역들
르펜과 멜랑숑의 많은 공약, 특히 경제 및 대외관계공약은 닮은 꼴이다. 민심의 흐름을 읽어낸 것도 마찬가지다. 같은 문제에 대해 비슷한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르펜과 멜량송은 모두 반 자유무역·반 유럽·반 세계화를 외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군사부문 탈퇴와 친 러시아 성향도 같다. 반 엘리트 성향도 공통점이다. 모로코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은 멜랑숑은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이나 국립행정학교(에나) 출신 엘리트들과는 태생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르펜과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지만 이념적 유전자는 극과 극이다. 

멜랑숑은 세후 최저임금 15% 인상(월 1326유로), 주4일(32시간) 근무, 연금수령 개시 연령을 62세에서 60세로 하향조정, 평균소득의 20배(월 3만3000 유로·연 40만 유로) 이상 소득을 세금으로 100% 환수 등을 공약하고 있다. 경기부양예산 2천73억 유로를 배정해 공공주택을 추가로 짓고, 각종 공공사업 및 그린 프로젝트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유로존과 유럽연합(EU) 탈퇴를 공약하지는 않았지만, 당선된 뒤 유로화 평가절하 및 공공부문 적자의 구조조정, 보호무역주의 유럽중앙은행이 회원국에 직접 자금 공여 등 획기적인 가입조건 을 다시 협상하고 여의치 않으면 그때가서 유로존 탈퇴 및 EU분담금 지급중단 등의 플랜B를 선택할 작정이다. 연차휴가 60일과 올랑드 사회당 정부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위해 개정한 노동법의 폐지도 다짐하고 있다. 

‘함께 하는 미래’를 주제로한 그의 공약은 민주주의·사회적·생태주의적·지정학적 위기라는 4개의 절박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에코 사회주의를 비롯한 7개 축과 357개의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성장주의로 선회한 사회당에 실망한 당내 좌파들은 이제 프랑스 앵수미즈 밑으로 모이고 있다.

일요일이었던 지난 4월9일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의 구항구에서 열린 멜랑숑 지지 집회. 유세 시작 이후 최대 인파인 7만여명이 운집해 세를 과시했다. 멜랑숑은 이날 집회에서 “승리가 눈 앞에 있다”고 기염을 토했다.   마르세유/AP연합뉴스

일요일이었던 지난 4월9일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의 구항구에서 열린 멜랑숑 지지 집회. 유세 시작 이후 최대 인파인 7만여명이 운집해 세를 과시했다. 멜랑숑은 이날 집회에서 “승리가 눈 앞에 있다”고 기염을 토했다. 마르세유/AP연합뉴스

■멜랑숑을 선택한 ‘프랑스의 미래’ 
‘프랑스의 미래’는 이미 멜랑숑을 난세에 가장 적합한 지도자로 꼽았다. 여론조사기관 엘라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18~24세의 젊은 유권자들은 멜랑숑의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프랑스 앵수미즈)’를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지 레제코와 클래식 라디오 등의 요청에 따라 실시한 조사에서 멜랑숑은 안보와 교육, 불평등·경제적 양극화 완화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교육은 중도 에마뉘엘 마크롱과 공동 1위였다. 경제 부문에서도 멜랑숑은 29%로 마크롱(28%)을 제쳤다. 마린 르펜은 21%, 브누아 아몽은 7%, 프랑수아 피용은 5%였다. 특히 불평등 완화 부문에서 멜랑숑은 32%로 르펜(19%)과 마크롱(18%)을 큰 격차로 따돌렸다. 마크롱이 멜랑숑을 앞선 것은 국제문제(26%) 뿐이다. 멜랑숑은 24%였다.

같은 조사에서 멜랑숑의 1차 투표 예상득표율은 18%였지만, 젊은 층에서는 29%였다. 멜랑숑의 올해 9월 개학 때부터 대학 무상교육과 대학생들에게 매달 800 유로의 알로카시옹(급여) 무조건 지급 등의 공약이 먹힌 것이다. 프랑스 고등교육은 무상이지만 교육세 등의 명목으로 일부를 부담해야 한다. 완전무상 교육 공약을 이행하는 데 재정부담이 별로 크지 않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멜랑숑의 ‘좌파 포퓰리즘’은 어떻게 민심의 눈높이를 맞췄을까. 

■멜랑숑(극좌)과 르펜(극우)의 대선공약 비교 

1. 이민자 

·멜랑숑 : 난민 초대소 건립, 망명권 요건 완화. 불법체류자에 정기적 국적 부여, 국적 부여 완화

·르펜 : 속지주의 폐지. 연간 국적 부여 현재 4만명에서 1만명 축소, 이민자 가족결합제 폐지. 범죄자 추방 

2. 경제·노동·복지 

·멜랑숑 : 주 4일(32시간) 노동, 최저임금 15% 인상(월 1300유로). 연금수령 60세부터.

부유세 강화. 연 40만유로 이상 고소득에 100% 과세. 경기부양예산 2073억유로 배정

유럽연합(EU) 가입조건 재협상, 여의치 않으면 플랜B(유로존 탈퇴·예산분담 중단)

·르펜 : 똑똑한 보호주의, 외국인 신규채용자·외제 제품 추가과세. 프랑화 부분 유통,

부유세(ISF) 유지. 주 35시간 노동(조건부 39시간). 사회보호세(CSG)·부가세 동결,

최극빈층에 보조금, 구매력 제고 

3. 치안·안보·대외관계 

·멜랑숑 : 나토 군사부문 탈퇴, 군수산업 재국유화, 군인 대우개선. 대안교도소 도입. 친 러시아

·르펜 : 나토 군사부문 탈퇴. 프랑화 부분 도입, 유로존·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

범죄자에 무관용. 솅겐조약 탈퇴, 국경통제 강화. 경찰 1만5000명 증원. 친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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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3일 프랑스 대선 1차 투표를 앞두고 공식유세가 시작된 10일 파리지앵들이 나붙은 마린 르펜(왼쪽)과 에마뉘엘 마크롱의 선거벽보를 보면서 지나가고 있다. 프랑스 선거법에 따라 대선에 출마한 11명의 후보들은 지지율과 상관 없이 벽보 개수와 TV토론 할당시간 등에서 완벽하게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 Getty Images/이매진스


분노와 불만의 시대는 느닷없이 오지 않았다. 오래된 현재다. 마찬가지로 마린 르펜의 부상은 개인기에 의한 것 만이 아니다. 세계적 흐름과 겹친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어느 나라건 세계화의 패배자들이 많아지면서 쌓여온 문제다.

극우 본색 완화한 선거공약

프랑스의 경우 2012년 대선에서 이미 그 전조가 농후했었다. 2002년 대선에서 장마리 르펜이 결선투표에 진출했던 것도, 민족전선(FN)이 소멸직전에 몰렸다가 월스트리트 발 금융위기가 확산됐던 2008년 이후 되살아난 것도 글로벌 흐름과 맞물린다. 하지만 아무리 당의 체질을 개선하고, 내용을 더했다고 해도 FN의 극우 본색은 여전하다. FN이 레조하스(Les Horaces)의 도움을 받아 내놓은 대선공약을 뒤져봐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대선공약집 ‘144개의 약속’은 표현을 누그러뜨리고 절충적인 요소를 끼워놓았지만 ‘분노한 프랑스인들’의 취향에 맞춘 극우 민족주의 정체성이 척추를 이루고 있다. 그 핵심에 국수주의적 ‘프랑스 우선(La France, d’abord)‘ 정신이 배어 있다.

마린 르펜 민족전선(FN) 대선후보가 지난 3월30일 선거유세 여행 중 프랑스 서부 브르타뉴 지방의 돼지사육 농가를 방문하고 있다. 외국 이민자들이 많아지면서 프랑스 농촌지역에서도 FN 지지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포르딕/EPA연합뉴스
마린 르펜 민족전선(FN) 대선후보가 지난 3월30일 선거유세 여행 중 프랑스 서부 브르타뉴 지방의 돼지사육 농가를 방문하고 있다. 외국 이민자들이 많아지면서 프랑스 농촌지역에서도 FN 지지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포르딕/EPA연합뉴스


5년 전 이민 금지 공약은 다소 완화돼 합법적인 국적부여인원을 연간 4만명에서 1만명으로 낮췄다. 하지만 새로 취업한 외국인 봉급생활자들에게 높은 과세를 하고, 수입제품에 대해 3%를 신규과세할 것을 명시했다. 외국인 범죄자는 경범죄를 포함해 강제추방시킨다. 속지주의 폐지 및 하원(국민회의)의원은 577명에서 300명으로, 상원의원은 348명에서 200명으로 각각 축소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 개헌 국민투표를 다짐했다. 


치안 정책으로는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재미를 보았던 ‘무관용(톨레랑스 제로)’을 강화하고 미성년자 범죄를 부모에 귀책시키며, 교도소 수용인원을 5년 내 4만자리 증설한다. 사형제 부활은 이번에 제외했지만, 집권 후 유럽연합(EU) 탈퇴(프렉시트)와 함께 국민투표에 붙일 것으로 보인다. 대외적으론 쉥겐조약을 탈퇴해 프랑스 국경경비를 강화한다. 


보다 근본적인 변화는 외국인과의 ‘통합정책’을 ‘동화정책’으로 바꾸었다. 마린은 비지니스 거래에만 유로화를 사용하고, 일상적인 거래에서는 프랑화를 사용하는 두 트랙을 제시했지만, 긍극적인 유로화 탈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생명보험사들로 하여금 자산의 2%를 벤처캐피날에 할애하고,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프랑스 중앙은행이 프랑화를 찍어내며, 정부조달에 프랑스 제품만 허용한다는 계획이다. 화폐 전환우려는 자본유출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지만 이를 막기 위해 자본통제를 취할 경우 대혼란이 예상된다.


프랑스가 더이상 다른 나라 전쟁에 연루되지 않도록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군사부문 탈퇴도 못박았다. 영국은 EU를 떠나지만, 나토에는 남았다. 오히려 미국과 특수관계를 유지하는 동맹국의 지위는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의 나토 군사부문 탈퇴는 2차대전 이후 미국 주도로 구축해놓은 집단안보시스템의 한축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글로벌 안보체제에 큰 혼란이 예상된다.


민족전선(FN) 마린 르펜 후보의 대선 공약집 ‘144개의 약속’ 표지.
마린은 아버지 장마리 르펜의 이미지를 최대한 털어내기 위해 모든 선거 홍보물에서 ‘르펜’을 빼고 ‘마린’ 만을 넣었다.



당내 역할 분담, 집토끼·산토끼 몰이

유로존 탈퇴에 관한 FN의 공약은 민심의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순발력을 보여준다. 공약에서는 ‘유로’를 언급하지 않았다. 댓바람에 유로존을 탈퇴하기 보다 유로화는 비지니스용으로 제한하고 일상생활에서의 거래에서는 프랑화를 사용하자는 이중제안으로 바꾼 것이다. 


마린은 지난 3월20일 1차 TV토론에서도 유로화를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최근 유럽연합의 토대가 된 로마조약 60주년에 즈음해 여론기관 CSA의 조사 결과 EU에 남아야 한다는 응답이 66%로 예상보다 높게 나오자 즉각 유로화에 대한 언급을 자제한 것으로 풀이된다. FN 지지자의 78%가 EU탈퇴에 찬성하지만 대선 승리를 위해 다소 두루뭉술한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다. 물론 마린이 당선된다면 유로화 도입은 물론 EU 탈퇴를 추진할 것이 분명하다. 


집권당의 지위를 노린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당의 운영에서도 보인다. 본인은 “FN이 달라졌다”는 메시지를 계속 보이면서, 한편으로 당의 전통적 골수당원들은 장마리와 자신의 조카이자 FN의 유일한 국민회의 의원인 마리옹 마레샬 르펜(27)에게 맡기고 있다. 골수당원들이 요구한 동성결혼 반대 시위에 조카를 내보낸 것이 이를 말해준다. 마린과 마리옹 마레샬의 알력설도 있지만, 마리옹 마레샬은 집토끼를 묶어두고, 자신은 산토끼를 잡겠다는 역할분담으로 해석된다.


“사실이 아니라고? 그래서 어쨌다고” ’포스트 진실‘ 시대의 선거결과 왜곡


피곤한 대중은 거대담론도 싫어하지만, 미시적 팩트도 꼼꼼하게 따지지 않는다. 정보홍수의 시대, 사실(fact)은 유권자들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도널드 트럼프의 유세와 취임 이후 그의 행적에서 세계가 목도하고 있는 새로운 현실이다. 마린 르펜의 FN도 이러한 흐름에 올라타고 있다. 


지금까지 두차례 진행된 프랑스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마린은 다른 후보들의 공격으로 곤경에 처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FN의 우세는 꺾이지 않는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정치인만 바라보는 유권자들이 많아진 포퓰리즘의 시대에 어차피 사실(팩트)는 중요하지 않다. 팩트체크는 똑똑한 엘리트들에게나 맡겨둘 사안이다. 그러나 어쩌랴. 포퓰리즘에 열광하는 민초들은 엘리트를 싫어한다. 마린의 FN은 트럼프에 비해 프랑스의 특성인 경제, 군사 민족주의를 결합함으로써 완성도를 높였을 뿐이다. 


포퓰리즘은 세계화의 부산물이 정치적으로 표출된 현상이다. 포퓰리즘의 성공을 귀납적으로 분석한다면 기존 정치권, 특히 중도좌파의 몰락과 세계화의 핵심인 자본과 노동력의 이주가 낳은 국내경제의 피폐와 일자리·치안 불안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가장 큰 이유를 든다면 바로 현실정치에 대한 불만에 따른 낮은 투표율이 빚은 현상이다. 영국의 경우 젊은층의 낮은 투표율이 EU 탈퇴(브렉시트)를 현실화했다.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는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들의 낮은 투표율 역시 트럼프의 당선으로 귀결됐다. 


마린의 당선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 중 가장 큰 요인도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 기권층이 사상 유례 없이 많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재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4월23일 1차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유권자는 37%에 달한다. 과거 기권율이 많아야 20% 이내에 묶였던 것과 사뭇 다른 변화다. 낮은 투표율에 더해 FN지지자들의 충성도가 다른 정당 지지자들의 비해 월등하게 높은 점도 변수다.


민족전선(FN)의 로고. 장마리 르펜은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당의 상징을 벤치마킹했었지만 마린은 디자인을 바꾸면서 파시스트 이미지를 완화시켰다. “나는 프랑스를 사랑한다, 나는 민족전선에 가담한다!”고 적혀 있다.
민족전선(FN)의 로고. 장마리 르펜은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당의 상징을 벤치마킹했었지만 마린은 디자인을 바꾸면서 파시스트 이미지를 완화시켰다. “나는 프랑스를 사랑한다, 나는 민족전선에 가담한다!”고 적혀 있다.



FN 지지층의 높은 충성도와 다른 후보 지지층의 낮은 투표율이 당선의 조건

여론조사에서 중도 ‘전진(앙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 지지자 가운데 1차에 이어 2차에서도 찍겠다는 사람은 3분의2가 안되는 반면에 마린 지지자들은 80~90% 2차투표에도 나가겠다고 답했다. 중도우파 프랑수아 피용이 결선투표에 진출해도 비슷한 답이 나온다. 마린의 2차투표 득표 예상률은 40%대이지만, 충성도와 기권율에 따라 FN이 승리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2002년 대선과 마찬가지로 기존 좌·우파가 ’공화주의 전선‘을 결성하더라도 그 위력은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선거 막바지에는 늘 예상치 못한 악재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결선투표 진출이 확실시되면서 FN은 도전자에서 방어자로 입장이 바뀌었다. 특히 피용과 지지율 3위로 동률까지 따라붙은 좌파연대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a France insoumies)’의 장 뤽 멜랑숑의 막판 추격이 만만치 않은 형국이다. 보좌관 급여 횡령 논란과 본인의 자책골도 변수다. 마린은 지난 주말 프랑스 경찰이 1942년 유대인 1만3000명을 나치 수용소로 넘긴 ‘벨디브 사건’에 프랑스의 책임을 부인하는 반 유대주의 발언으로 곤욕을 치루고 있다. 뒤늦게 진화에 나섰지만 탈 악마화 전략이라는 화장술로 감춰왔던 장마리 르펜의 반 유대주의 본색을 드러낸 꼴이다. 


지난 4월9일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지와 인터뷰 하는 마린 르펜. 마린은 인터뷰 사실을 트위터에 올려 홍보했지만, 인터뷰 도중 2차대전 직전 유대인 1만3000명을 나치 수용소에 보냈던 당시 프랑스 정부의 책임을 부인해 ‘반 유대주의’ 본색을 드러냈다.

지난 4월9일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지와 인터뷰 하는 마린 르펜. 마린은 인터뷰 사실을 트위터에 올려 홍보했지만, 인터뷰 도중 2차대전 직전 유대인 1만3000명을 나치 수용소에 보냈던 당시 프랑스 정부의 책임을 부인해 ‘반 유대주의’ 본색을 드러냈다.



‘마린 르펜 프랑스 대통령‘이 쓸 요한계시록


브렉시트를 이끌어낸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통점은 모두 보수당과 공화당이라는 기존 정당에서 선거를 승리했다는 점이다. 집권 뒤 자신들의 아젠다를 풀어가는 노력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존 정당의 문법에서 완전히 이탈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비주류에서 중원으로 진출한 극우정당 FN이 공약을 이행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은 또다른 성격의 미답의 길이 될 것이다. 프랑화 복원 및 EU 탈퇴가 국민투표를 통과할 경우 영국 처럼 질서정연한 협상 과정을 기대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국제관례에 맞는 협상을 진행할 당의 인프라가 여전히 부족하다. 국민회의(하원) 477석 가운데 1석, 상원 348석 중 2석을 갖고 있을 뿐이다. 대선과 마찬가지로 1, 2차 투표로 진행되는 총선에서 기존 정당들의 견제 때문이다. 유럽의회에서만 74석 중 22석을 차지하고 있다. 대선도 중요한 고비가 되겠지만 FN이 6월 총선에서 어느 정도 의석을 확보하느냐는 또다른 변곡점이 될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제적으로 프랑화 복원과 긍극적인 EU탈퇴는 국제자본시장의 격동을 야기할 것으로 분석된다. 프랑스가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 자본통제를 할 가능성이 짙기 때문이다. 마린의 측근들은 이러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와 글로벌 자본시장이 프랑스 대선의 향방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까닭이다. 여기에 프랑스의 나토 군사부문 탈퇴는 그렇지 않아도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 및 중국의 남중국해 팽창 움직임, 북한의 지속적인 핵개발, 러시아와 미국의 갈등 등으로 불확실성이 많은 글로벌 안보상황에 평지풍파가 될 것이다.
 


프랑스 대선에도 또다른 포퓰리즘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좌파연대후보 장 뤽 멜량숑이 4월2일 샤토루에서 유세 연설을 하고 있다.    Getty Images/이매진스

프랑스 대선에도 또다른 포퓰리즘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좌파연대후보 장 뤽 멜량숑이 4월2일 샤토루에서 유세 연설을 하고 있다. Getty Images/이매진스



‘탈 진실’로 타자화하지말고 현실로 인정해야


전세계적인 포퓰리즘의 발흥은 모두에게 놀라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그 ‘모두’는 모두가 아닌 일부다. 주류(mainstream)에 포함된 학계와 언론, 정계 만이 포함된다. 포퓰리즘을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한 주류사회는 객관적인 사실보다 감정호소가 더 효과적인 환경임을 뜻하는 ‘탈 진실(Post-Truth)’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포퓰리즘에 관한 글을 연재하면서 SNS에서 접한 가장 인상적인 댓글은 ‘탈 진실’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글이었다. “기성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민심의 흐름을 놓쳐놓고 왜 뒤늦게 포퓰리즘을 타자화하는 것이냐”는 문제 제기였다. ‘탈 진실’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자신들의 기성세계와 분리시키지 말고 ‘탈진실=현실’임을 인정하라는 죽비소리로 들렸다. 


프랑스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우리는 이미 영·미를 중심으로 포퓰리즘이 주도하는 세계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일단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 대책 마련은 그 다음이다. 포퓰리즘의 기원이 세계화시대의 구조적인 모순에서 비롯됐다면 그 해법을 찾는 과정 역시 지구 차원에서 신자유주의 체제의 앞날을 고민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어떤 변화이건, 변화에 대한 해법은 세가지 밖에 없다. 새로운 현실로 등장한 포퓰리즘과 함께 살면서 적응하거나, 외면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느냐다. 포퓰리즘이 프랑스나 유럽의 고민이 아닌, 지구촌 차원의 고민인 이유다.


그 대안의 하나는 이미 등장했다. 미국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대선에서 좌파 포퓰리즘을 일으키고 있는 장 뤽 멜랑숑이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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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민족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의 유세장에 모인 지지자들. 진지한 표정으로 마린의 연설을 듣고 있다. 마린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이 사진 밑에 “나는 우리가 프랑스와 더나은 미래를 말할 때 유권자들의 얼굴에서 희망을 보았다!”는 설명을 붙였다.


잊힌 그들, ‘클리넥스 노동자’들의 분노


프랑스가 독일로부터 빼앗은 알사스-로렌 지방의 아양주. 철광석을 제련해 산업화를 이끌었던 프랑스 중공업의 발상지이지만 지금은 녹슨 기계들만 가득찬 빈 공장들이 많아졌다. 최근 15년 동안 프랑스 산업계에서는 15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졌다.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자들이 당장 실업상태는 아니더라도 일자리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프랑스의 유로존 가입은 막연한 유럽회의론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저속득층의 생계를 위협하는 원인의 하나다. 아양주에서는 광부들의 일자리도 줄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선승리에 오하이오주를 비롯한 러스트벨트 지역 노동자들의 지지가 있었다면 마린 르펜의 부상에는 프랑스 북부와 동부의 낙후된 산업지대의 노동자들의 지지가 동력이 됐다. 전통적으로 사회당과 공산당 등 좌파의 아성이었던 이들 지역은 왜 마린의 민족전선(FN)에 열광하고 있을까.

수십년 좌파를 지지해왔지만 정작 세계화와 유로존 가입,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탓에 이중, 삼중의 고통에 신음하면서 사회적 안전망 덕에 삶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을 프랑수아 올랑드의 사회당 정부는 외면했기 때문이다. 올랑드는 2012년 대선유세에서 이러한 불만에 편승했었다. “나의 가장 큰 적은 금융계”라면서 고소득자에게 높은 세금을 매기겠다고 약속했다. 독일이 주도한 유럽연합(EU)의 긴축재정정책에도 반대하겠다고 했지만 취임한 뒤 식언이 됐다. 그 대신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친성장주의 정책을 내놓았다. 노동자들 뿐 아니라 전통적인 지지자들이 사회당을 떠나는 까닭이다. 갈수록 이민자들이 많아지면서 치안이 불안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대도시에 비해 이민자들이 적었던 농촌지역에서 FN이 당세를 넓히는 것은 반 이민 정서 덕분이다.


2015년 지방선거로 달라진 프랑스의 정치적 지형. 회색 지역이 마린의 민족전선이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곳이다. 마린은 프랑스 북부와 동부의 황폐화된 산업지대(러스트벨트)에서 노동자들의 지지를 끌어모으고 있다.        위키페디아

2015년 지방선거로 달라진 프랑스의 정치적 지형. 회색 지역이 마린의 민족전선이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곳이다. 마린은 프랑스 북부와 동부의 황폐화된 산업지대(러스트벨트)에서 노동자들의 지지를 끌어모으고 있다. 위키피디아



극우 포퓰리즘의 부상과 중도좌파의 몰락은 샴 쌍둥이

한번 쓰고 버려지는 휴지와 같은 인생, 바로 ‘클리넥스 노동자’들은 철저히 잊혔다. 그 잊힌 사람들(les oublies)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사실상 유일한 정치인이 마린이었다. ‘성난 백인들’이 트럼프를 당선시켰다면, 마린에게는 ‘성난 프랑스인들’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아양주의 현실을 르포기사로 전한 포린폴리시는 민족전선 연구 전문가인 스테판 와니시의 말을 인용해 “파리와 리용이 좌파에 표를 던진 것은 그들이 부유하기 때문이지만, 아양주 사람들이 극우파에 표를 주는 것은 그들이 잊혔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잊힌 그들을 위해 나선 유일한 사람이 마린 르펜”이라고 말했다. 마린은 스스로 ‘잊힌 사람들의 대선 후보’를 자청하면서 정치적 레토릭과 정책적 대안으로 이들의 불만을 다독여왔다. 전통 좌파의 정치적 실지(失地)가 곧바로 민족전선의 정치적 텃밭으로 변한 까닭이다.

흥미로운 현상은 마린의 FN이 과거 전통좌파가 저소득층의 인기를 독차지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FN은 전통좌파가 버린 낡은 구호들을 채택, ‘노동자의 수호자’를 자칭하고 있다. 주요 대선후보 가운데 이념적으로 가장 왼쪽에 있는 장 뤽 멜랑숑 좌파당 대표의 공약이 상당부분 마린의 공약과 겹치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두 후보 모두 유로존 탈퇴 및 서민경제 부양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경제공약은 전통좌파의 공약을 방불케할 만큼 유사하다. 마린은 “국가통화(프랑화)를 재도입해 프랑스의 경쟁력을 부양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중소기업 지원과 함께 21세 이하 청년들을 고용할 경우 모든 기업에서 최장 2년 동안 관련비용을 면제해주는 것도 포함됐다. 사형제도 복원과 ‘닥치고 반 이민’ 공약을 삭제한 대신 연간 이민자를 현재의 4만명에서 1만명으로 줄이고, 외국인 봉급생활자들에 대한 추가과세와 수입제품에 대한 추가과세를 약속하고 있다. 프랑화 복원도 막연한 구호가 아니다. 은행계좌를 동결함으로써 예금인출 사태를 방지하는 자본통제를 골자로 한 프랑화 복원 로드맵도 작성해놓았다. 


마린 르펜을 환영하는 시장 인파들. 마린은 랑크루아트 지방의 한 시장을 방문했을 때 상인들과 시민들로부터 놀라운 환영을 받았다고 적었다.     마린 르펜 트위터계정
마린 르펜을 환영하는 시장 인파들. 마린은 랑크루아트 지방의 한 시장을 방문했을 때 상인들과 시민들로부터 놀라운 환영을 받았다고 적었다. 마린 르펜 트위터계정



변화를 이끌어낸 ‘레조하스(Les Horace)’


저소득층의 노동자, 농민만 FN으로 몰리는 것이 아니다. 고학력 엘리트들도 속속 FN에 넘어오고 있다. 반 엘리트주의를 표방하는 FN의 변신은 아이러니하게도 엘리트 군단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그 핵심이 마린이 이번 대선에 앞서 지난해 1월 조직한 엘리트 자문위원단 ‘레조하스(Les Horaces)’의 존재가 있다. 


‘Horace’는 7세기 로마의 수호자로 불리던 시인 호라티우스의 불어식 발음이다. 프랑스 수호에 나선 엘리트들이라고 할 만하다. 마린의 대선출마를 준비하기 위해 2016년 1월 출범한 레조하스는 파리정치대학(Science Po·시앙스포)과 국립행정학교(ENA·에나)를 졸업한 엘리트 관료들과 기업체 사장, 판사, 검사, 도지사 등 전문직을 망라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FN을 지지한다”고 커밍아웃하기가 어려운지 대변인 장 메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레조하스 구성원들은 익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집트 태생인 메시아는 에나를 졸업하고 국방부 병참국 부국장을 지내다가 2015년 말 FN에 가담했다.


트위터 정치는 도널드 트럼프의 전유물이 아니다. 마린 역시 트위터로 지지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오늘 밤 대선후보 토론에서 마린을 지지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트위터 정치는 도널드 트럼프의 전유물이 아니다. 마린 역시 트위터로 지지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오늘 밤 대선후보 토론에서 마린을 지지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유로존 탈퇴, 프랑화 복원 등 집권후 첫 100일 계획까지 작성

월 1회 마린 주재하에 열리는 회의에서 경제, 국방, 유럽연합, 국제관계, 정의 및 국내 치안 문제등 주제별 실무그룹으로 나뉘어 마린에게 자문을 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탈퇴 시나리오를 연구하는 그룹과 유로존 탈퇴 방안을 연구하는 그룹도 있다. 메시아 대변인은 프랑스 LCI 방송에 “우리는 마린 르펜의 손에 쥐어진 도구”라고 말했다. 레조하스는 변방의 극우정당인 FN의 정책기능을 강화함으로써 믿음직한 수권정당으로 거듭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엘리트들이 민족전선에 속속 가담하는 이유는 두가지다. 드골주의의 혈통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마린의 탈 유럽, 프랑화 복원 및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탈퇴 공약에 매력을 느끼고 있어서다. 2012년 대선 1차투표에서 마린이 17.9%의 높은 득표율을 얻은 것도 FN의 집권가능성에 투자할 만한 매력을 키웠다. 기성정당 안에 이미 자리잡고 있는 엘리트들과 경쟁하느니, FN에서 정치적 성공을 거두겠다는 포부를 키워준 것이다. 레조하스는 마린의 대선승리를 전제로 집권 후 첫 100일의 액션계획을 작성하고 있다.


레조하스 중에서 마린이 가장 신뢰하는 오른팔은 2009년 가담한 플로리앙 필립포다. 공약개발과 커뮤니케이션을 맡고 있다. 동성애자인 그는 시앙스포와 에나를 졸업한 엘리트로 내무부 관료 출신이다. 마린은 그와의 만남을 “첫눈에 지적으로 반했다”고 말한다. 마린의 전략가임을 숨겨왔던 그는 2011년 말 내무부를 떠나 마린의 2012년 대선 때부터 핵심 참모로 일해왔다. 당초 15명에서 시작한 레조하스의 구성원들은 이제 90명을 넘어섰다. 지역적 확장, 노동자·농민 및 엘리트들의 지지. 이제 누가 FN을 대안 없는 극우정당이라고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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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동 2017.04.14 17: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혜안임다. 늘 아주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