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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정동탑17

<정동탑> 미국은 북핵위기의 '출구'를 알고 있다 [경향신문]|2006-07-25|30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490자 시작은 돈문제였다. 2004년 10월2일 미 뉴워크항에 정박한 에버 유니크 호의 하역작업을 하던 인부들은 수상한 컨테이너를 한개 발견했다. 신고를 접수한 FBI와 미 재무부 비밀검찰국 요원들은 플라스틱 장난감 박스 밑에서 30만달러 상당의 슈퍼노트(정밀 위조지폐)를 찾아냈다. 북한 산 대규모 슈퍼노트의 미 본토 상륙이 확인된 순간이었다. 베이징 6자회담을 3차례 개최하고 북.미를 비롯한 관련국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논의하던 시점이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당시 북한 산 슈퍼노트에 대한 국무부 차원의 조사를 지시한 것은 6자회담의 초대 미국측 수석대표였던 제임스 켈리였다고 한다. 슈퍼노트와 북핵은 처음부터 얽혀 있었다.. 2012. 2. 25.
<정동탑> 6월, 월드컵, 두소녀 [경향신문]|2006-06-06|26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572자 2002년 월드컵 포르투갈 전을 앞둔 6월14일 아침, 일부 조간신문 사회면에는 200자 원고지 2장 안팎의 단신이 실렸다. 전날 경기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56번 지방도로에서 두 여중생이 훈련중이던 미군 궤도 차량에 깔려 숨졌다는 내용이었다. 16강의 꿈★을 이뤄줄 결전의 아침, 언론의 관심조차 끌지 못했다. 이후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대∼한민국 어른들이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월드컵 열기가 식고 난 뒤 전국은 '새삼스럽게' 두 소녀의 죽음을 슬퍼했고, 부박한 언론도 뒤늦게 호들갑을 떨었다. 여야 선량들 역시 월드컵 기간 동안 유독 국사에 바빴는지 7월29일에야 미군 당국에 사건 조사내용 공개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 2012. 2. 25.
<정동탑> 라면과 소주 [경향신문]|2006-04-18|30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640자 먼저 눈에 보이는 색이 달라졌고, 입맛을 버렸으며, 결국 속이 상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이후 서울 시내의 달라진 풍경은 빨간색 간판이 늘었다는 것이다. 홍등가와 정육점, 자장면 집 간판에서나 볼 수 있었던 붉은색이 업종과 상관없이 거리 곳곳을 물들였다. 배설물로 영역 표시를 하는 야생동물처럼 또는 빨강 루즈를 잔뜩 바르고 행인의 눈길을 끌려는 매춘부를 연상시킨다. IMF와 빨간 간판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거기에 함정이 있다. 모두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에서 눈길을 쉽게 흡입하는 빨간색이 동원됐으며 너나 없이 마케팅 마인드로 무장한 결과, 세상은 난전으로 변했다. 실제로 IMF.. 2012. 2. 25.
<정동탑> 캘리포니아의 봄 [경향신문]|2006-03-07|30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577자 미국의 남 캘리포니아에는 봄이 오고 있었다. 지난달말 들렀던 샌디에이고 '토리 파인(Torrey Pine) 보호구역'에서는 인디언 페인트브러시와 캘리포니아 포피 등 생소한 이름의 야생화들이 바닷가 언덕 위에 피어나기 시작했다. 솔잎 길이만 족히 한뼘이 넘는 희귀종 토리 파인을 보호하는 것은 이해할 만했지만 하찮게 지나칠 수 있는 야생초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보호에 정성을 기울이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시 당국은 바람에 날려오거나 뱃전에 묻어온 외래종 식물을 솎아내기 위해 종종 자원봉사자들을 동원, 풀밭을 샅샅이 뒤진다고 한다. 털 속에 외래종 개미라도 묻혀올까봐 애완동물도 출입이 금지된다. 캘리포니아주의 높은 .. 2012. 2. 25.
<정동탑> 파이프라인 국제정치학 [경향신문]|2006-01-10|30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590자 러시아의 대 우크라이나 천연가스 수출 중단 사태를 바라보면서 한편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북한 핵위기로 4년째 미적거리고 있는 한반도 상황과 중첩돼 보였기 때문이다. 저변에 깔린 지정학적 사정이 어떻든 간에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천연가스 가격 문제로 촉발된 위기를 가격 협상으로 풀었다는 사실이다. 유라시아 대륙 동서 양쪽에서 진행중인 두개의 이슈는 에너지와 안보, 또는 두가지를 아우르는 '에너지 안보'라는 점에서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러시아가 1월1일을 기해 파이프라인을 잠근 것은 분명 도발이었다. 냉전시절에도 없었던 일이다. 사태는 경제 논리와 정치 논리가 얽히면서 복잡한 양상을 보였다. .. 2012. 2. 25.
<정동탑> 슈뢰더를 위한 변명 [경향신문]|2005-11-08|34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500자 이달중 독일 총리직을 내놓게 될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결코 성공한 정치인이라고 할 수 없다. 그의 정계은퇴와 함께 2차대전 이후 한시대를 풍미했던 '게르만 모델' 역시 사실상 종말을 고하게 됐다. 좌우 동거정부 속에서 어떤 형식으로든 변할 전망이다. 독일 경제는 밀려오는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더 이상 높은 사회보장 수준을 유지하기 힘든 경계선에 도달한 듯하다. 헬무트 콜을 꺾고 1998년 등극했던 그는 실업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총리직을 내놓겠다고 장담을 했지만 콜의 전철을 되밟고 말았다. 콜 전총리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실업률(1994년 10.3%)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9월 조기총선에 승부수를 던졌건만.. 2012. 2. 25.
<정동탑> 인천과 노르망디 [경향신문]|2005-09-20|22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445자 전쟁은 끝났고, 푸른 눈의 장군은 자리를 지켰다.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을 둘러싼 진보세력과 수구세력의 갈등은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바꿔놓지 못했다. 맥아더가 노근리를 비롯한 양민학살의 주범이자 냉전의 상징이라고 몰아대는 철거론자들과 자유대한의 수호 군신(軍神)이라는 동상 사수론자들의 입장은 애시당초 접점을 찾기 어려운 문제였다. 철거론자들의 주장대로 동상의 목에 밧줄을 걸어 끌어내린다면 결과적으로 한.미동맹의 근간을 부인하는 자충수가 된다. "중공군의 전진을 지연시키기 위해 26개의 원자폭탄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그의 호전성을 재평가하는 것과 동상을 철거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우방국에서 존경받는 인물의 동상을.. 2012. 2. 25.
<정동탑> 부시가 평화의 사도라고? [경향신문]|2003-03-06|07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945자 걸프전 당시 이란의 풍자잡지 '아스가르 아가' 1990년 12월호가 소개한 만평에는 두 개의 제단이 나온다. 근간(近刊) 케임브리지 이슬람사에 소개된 그림은 신의 제단 앞에서 도움을 청하는 국민들과 달리 성조기의 제단에서 기도를 올리는 걸프의 보수적인 아랍국가들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지도자들을 조롱하고 있다. 위급할 때 신보다 미국을 찾는 아랍 지도자들은 여전히 자기 종교와 자기 국민으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있다. 이를 간파한 워싱턴의 책략가들도 아랍의 수구 지도자들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북녘 종교인들이 남녘의 교우들과 어우러져 의미 깊은 만남을 가졌던 지난 3.1절, 시청앞과 여의도를 점거한 구국반공 집회의 전열에는 일.. 2012. 2. 25.
<정동탑> 적과 동지 [경향신문]|2003-01-30|07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913자 나치 친위대(SS) 총책임자 히믈러는 독일이 항복하기 직전에 프랑스의 샤를 드골 장군에게 밀서를 보냈다. 히믈러는 "앵글로 색슨과 협력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독일과 프랑스가 울력으로 미국과 영국에 대항하자는 제안을 했다. 드골은 이를 묵살했지만 국제정세를 읽는 히믈러의 식견까지 무시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프랑스 지식인들 사이에서 19세기 이후 3차례의 전쟁을 치른 독일과 프랑스가 최대 우방이 된 연유를 설명할 때 종종 인용되는 일화다. '위대한 프랑스'를 꿈꾸면서도 역사적 라이벌인 영국 런던에서 레지스탕스를 지휘했던 드골은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노르망디로 상륙한 연합군 병사들을 반기면.. 2012. 2. 25.
<정동탑> 르펜과 '이른바 보수' [경향신문]|2002-12-12|07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900자 "나는 사회적으로 좌파이고, 경제적으로 우파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프랑스 국가주의자이다". 지난 4월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선전한 극우파 정객 장 마리 르펜이 한 말이다. 새삼 그의 이름을 꺼내는 것은 습관처럼 좌.우, 보.혁구도의 이분법적 시각으로 국민을 가르는 우리 사회의 '이른바 보수'들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나 보수우파는 민족을 더욱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이른바 보수'는 미국을 먼저 내세운다. 그래서 보수 앞에 '이른바'라는 수식어구를 붙일 수밖에 없다.르펜은 일부 계층의 증오에 기대어 정치생명을 유지하는 극우파 정객이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는 그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 2012. 2. 25.
<정동塔> '숭미(崇美) 마마보이'들의 궤변 [경향신문]|2002-11-07|08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611자 8년 만에 다시 불거진 북한핵 파문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 일각에서 흘러간 레퍼토리가 재연되고 있다. '이른바 보수' 논객들을 중심으로 이상한 반미 논란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반미정서가 위험수준에 달했다"는 이들의 반미경계론은 월드컵이 북돋아준 민족적 자신감과 북녀(北女) 신드롬이 회복시켜준 민족적 동질감이 되레 한반도 안정에 필수적인 한.미 군사동맹을 흔들고 있다는 궤변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일일이 대거리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시간문제일 뿐 어차피 낡은 레코드판은 폐기처분되게 마련이니까. 그러나 민족의 생사가 걸린 주제의 본령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최근 상황을 복기(復棋)할 필요는 있.. 2012. 2. 25.
<정동塔> '굿판'도 없이 보내는 국치일(國恥日) [경향신문]|2002-08-29|08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616자 '부관참시(剖棺斬屍)'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것은 영조 32년(1756년). 까마득한 과거의 행형제도가 올해 들어 유독 생뚱맞게 튀어나왔다. 3.1절을 하루 앞둔 2월28일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 모임'과 광복회가 공동으로 반민족행위자의 명단을 발표하자 곧 바로 "부관참시하자는 거냐"는 반론이 나왔다. 광복절 전날 친일문인 42명의 면모가 공개되고 나서도 비슷한 딴지걸기가 은밀하게 진행중이다.핑계없는 무덤은 없다고, 저마다 장황하게 사정을 늘어놓았다. 서슬퍼런 일제의 총칼 앞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상황론과, 그 당시 친일파 아닌 사람이 어디 있었냐는 배짱론, 이후 조국 또는 순수문학 발전에 혁혁하게 기여했다는 정상참.. 2012. 2. 25.
<정동塔> 경기지사와 오키나와 지사 [경향신문]|2002-07-25|08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629자 손학규 경기지사는 도지사로서의 첫 공식행사로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해군 장병들의 영결식에 참가했다고 지난 2일 취임사에서 강조했다. 경기도의 지역적 특성을 '통일시대의 전진기지'이자 '안보의 보루'라고 정의한 그로서는 나무랄 데 없는 처신이었다. 같은 취임사에 따르면 경기도의 주인은 도민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달 13일 양주군 지방도로에서 미군 궤도차량에 깔려 죽은 효순.미선양 사건의 처리과정을 보면 경기도의 주인은 도민이 아닌 것 같다.단발머리 여중생 미선.효순양이 숨진 날은 공교롭게 손지사를 당선시킨 지방선거가 있던 날. 평소 같았으면 학교 수업을 받고 있을 시간에 친구네 집에 가다가 변을 당했다. 관내에서 발생.. 2012. 2. 25.
<정동塔> '제3세력'이 희망인 이유 [경향신문]|2002-06-14|13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877자 권력에의 욕구가 충돌하는 선거는 애시당초 신사도와는 상관이 없는 게임인지도 모른다. 공개.비공개적으로 막강한 자금을 확보한 이른바 주류(主流)정당들이 선거판을 좌지우지한다. 간신히 존재하고 있거나, 갓 싹을 틔우려는 주변정당들의 몸짓은 허약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어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는 수십년 동안 꿈쩍도 하지 않았던 선거판을 흔드는 작지만, 의미 있는 꿈틀거림이 감지됐다. 진원지는 수십년간 기득권을 포식해왔거나, 어렵사리 장악한 5년 치세의 마지막 해를 추저분한 게이트로 닫고 있는 기성 정당들이 아니다. 이름조차 생소한 새내기 정당들이다.여도, 야도 아닌 '제3세력'이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게 처음은 아니다. .. 2012. 2. 25.
<정동塔> 죽은 이념 논쟁 [경향신문]|2002-05-09|07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916자 귤이 강을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은 이념에도 적용된다. '좌파'라는 말도 역사적, 사회적 배경이 다른 나라에서는 귤과 탱자만큼의 다른 의미가 된다. 유럽에서는 통상 온건 사회민주주의자를 말한다. 1997년 영국 총선 이후 우리나라에서 유독 회자됐던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은 여기서 다시 한번 물타기를 한 듯하다. 하지만 같은 말이 한반도 남쪽으로 건너오면 영락없이 '빨갱이'가 된다. 좌파라는 말에 뿔달린 빨갱이의 이미지가 담겨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우리만의 역사적, 사회적 경험이 퇴적된 결과다. 올해도 어김없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TV토론회에 나온 여야 경선후보들이 아전인수격으로 '좌파'의 정의를 내렸다... 2012. 2. 25.
슈뢰더와 룰라의 모험 지난달 말 재선에 성공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악화된 대미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었다. 취임 며칠만에 런던으로 날아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에게 미국과의 화해중재를 부탁하고 가능한 한 이른 시일내 워싱턴에서 부시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싶다는 러브콜을 독일 언론에 띄웠다. 선거판에서 아무리 급했다고 해도 슈뢰더 정권의 반미 유세는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국제여론 모으기에 경황이 없던 조지 부시 미 행정부의 의표를 찌르는 것이었다. 유세 도중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의지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의사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더니, 급기야 도이블러 그멜린 법무장관이 부시 대통령을 히틀러에 비유하면서 양국간 반세기 밀월관계에 결정적인 흠집을 냈다. ‘독일의 배반’에 백악관은 물론 미국 조야가 배신.. 2012. 2. 13.
베이징의 봄 “아직도 남북한 주민들이 서로 자유롭게 왕래를 할 수 없습니까?”. 지난달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 신문공작자협회 관계자의 질문은 의외였다. 북한 음식점 ‘평양 해당화’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거론하자 의아한듯이 되물어온 내용이다. 물론 신화통신 기자출신인 그의 주관심 대상이 한반도는 아니었다. 프랑스 유학과 아프리카 말리, 알제리 특파원사무소 근무 등 다양한 해외경력이 말해주듯 30여년간 글로벌 환경에 노출돼 있었던 그이다. 그러나 그의 폭넓은 국제적 안목에 한반도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있었다. 올 6월 중국 기자대표단을 이끌고 ‘조선’을 방문하는 데 고작 5명의 기자들을 뽑는데도 서로 안가려고 해서 고충이 많았다는 그에게 한국은 경제가 앞선 나라, ‘조선’은 뒤진 나라라는 도식이 성립될 뿐이었다. 경제.. 2012. 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