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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향, 서울...

by gino's 2022. 4. 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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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향 서울, 평창동
 
글쓰기처럼 양면적인 테마는 없는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글쓰기는 만화영화 속 아수라 백작 처럼 천사와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다. 기껏 신문쪼가리에 잡글을 쓰고 살아왔지만, 글쓰기는 많은 경우 그 과정에선 지독한 괴롬이었고, 탈고한 뒤에는 순간의 성취감이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여러번 손가락이 근질거렸지만 집필을 하지 않고 있다. 직업적 의무감이 없어지면서 태생적인 게으름이 발동하기도 했지만, 익숙한 괴롬의 예감 탓에 서둘러 무장을 해제했다. 하지만 이런건 어떨까. 내가 나고 자란, 또 살고 있는 고향 이야기를 쓰는 것. 괴로움 대신 즐거움일 수도 있지 않을까.
 
여러번 이사를 다녔기에 서울 곳곳에 뿌려놓고 오랫동안 방치해놓았던 단상들. 그림조각 맞추듯 한조각, 한조각 찾아내는 건 장소와 연결된 나의 일부분을 찾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모처럼 봄햇살이 부드러운 오후, 동네산책하면서 든 생각이다. 알제리에서 나고 자란 어떤 작가의 소설 속 주인공은 단도로 눈을 찌르는 듯한 햇살 때문에 살인을 했지만, 내고향 서울의 봄 햇살은 살인이 아닌, 활인을 한다. 해서, 두서없이 내고향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단 평창.
평창은 형제봉-보현봉 줄기의 북한산 남동면과 북악산 북서면 사이의 계곡이다. 1971년 북악터널을 시작으로 구기터널(1980)과 자하문터널(1986)이 생기기 전까지는 '평창동'이라는 지명조차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논밭이 들어설 자리도 없었기에 나무꾼이나 군속들이 살았을법한 동네다.
 
아래사진의 동이름 유래석은 '평창'이 본시 군량미 창고였음을 말해준다. 자하문터널 위 서울미술관이 위치한 도로는 터널이 생기기전 동네주민들이 아침저녁으로 출퇴근을 하던 길이어서 '조석고개'로 불렸다는게 토박이의 전언이다. 그리 높지 않되, 낮지도 않은 고개 너머 서울과 거리상으론 지척간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서울 또는, 시골의 시작지점이었다.
월탄 박종화가 1975년 평창동에 한옥을 짓고 정착한 것은 서울을 떠나 전원생활을 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법하다. 북악터널이 개통한지 4년 만에 이사왔지만 그당시 서울(4대문 안)에서 세검정을 가려면 먼길을 돌아야 했다. 북악산 너머의 산길을 구비구비 돌거나, 서대문을 지나고, 무악재 고개를 넘어 홍제동 4거리에서 홍제천을 따라 꽤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퇴촌이자 은둔지였다. (문화적 식견이 얕아서인지... 안에 들어가보지 못했으되, 그 집이 왜 국가등록문화재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어령-강인숙 부부가 영인문학관을 연 시점은 그로부터 26년이 지나 평창동 일대가 고급 주택가로 자리를 잡았던 2001년이다.
 
세 개의 터널이 생기기 전에는 평창동이란 이름 자체가 생소했다. 지금의 평창-구기-신영-홍지-부암동은 통틀어 '세검정'으로 불렸다. '세검정'이라는 지명은 일단 '버스 종점' 또는 '서민동네'와 한묶음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실제로 평창동 성당 부근에서 사시던 친척 어르신집을 친척들 사이에선 지금도 '종점집'이라고 부른다. 세검정은 '칼을 씻은 정자'라는 지명에 담겨 있듯이 칼과 무기, 군사시설과 깊은 관련이 있다. 세검정초등학교 앞에 붙어 있는 '총융청(군사령부)' 유래석이나, 상명대 건너편의 탕춘대성(군훈련장), 홍제천변의 홍지동 '포방터(포병진지)' 등의 지명이 이를 말해준다. 세검정 일대가 조그만 군사도시가 된 것은 세검정의 유래가 됐던 인조반정 이후부터 인 것 같다. 도성안에 살던 이씨조선의 지배층에겐 가장 중요했을 방어기지였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조선왕조는 대체로 어떤 전쟁이건 적극적으로 방어하지도, 공격하지도 못했던 찌질한 왕조였다. 해서, 외적의 침입보다는 최전방인 북방 주둔군이 도성으로 쳐들어오는 쿠데타를 염두에 둔 방위가 아니었나 싶다. 이괄의 난 때 도성을 버리고 줄행랑을 놓았던 인조가 돌아와 무엇을 가장 먼저 생각했겠나. 숙종대에 완성한 북한 산성도 그 연장일 것 같다. 역사를 돌아보면 세검정은 외침이 아닌 내침을 위해 조성한 군사도시였다고 해도 무리는 아닌듯싶다...
 
송희영, Soonyoung Min-Kim, 외 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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