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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봄'은 겨울에 시작한다…평양 가는 길은 있다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5. 2. 1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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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계선도, 국경도 넘은 축구외교…김경성 이야기 ③

"우리는 이제 대화 보따리 다 만들었다. 미국과 중국, 남측용으로 각각 마련했다. 조만간 아리스포츠컵 축구대회 준비합시다. 교장 선생이 할 일이 많다." 

2018년 8월 평양에서 열린 아리스포츠컵 유소년 축구대회에 참가하는 남측 대표단이 개성~평양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아리'는 아리랑에서 따 왔다. 김진호 에디터

전쟁 위기 속 축구대회 제안한 북한

2017년 7월 초 중국 베이징에서 북측 관계자가 전한 말이다.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은 귀를 의심했다. 한여름에 폭설이 내릴 거라는 말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과 김정은의 북한 간에 전운이 짙어가던 시점이었다. 돌아보면 그가 말한 '보따리'는 ICBM 발사 준비가 끝났음을 의미했던 것 같다. 이후 전개될 정치·군사적 폭풍의 끝을 내다본 말이기 때문이다.

7월 4일 북한이 미국 서해안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을 처음 시험 발사하자 긴장이 정점을 향했다. 8월 들어 한미 양국 군은 강도 높은 연합훈련에 착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북한의 완전한 절멸"을 장담했고, 북한은 "괌 포위사격"으로 되받았다. 9월 북한은 6차 핵실험을 했고 11월엔 다시 ICBM 고각 시험발사를 한 뒤 '핵무력 완성' 선언을 했다. 군사적 긴장 속에도 남북체육교류협회는 북측 4.25 체육단과 12월 중 중국 쿤밍에서 아리스포츠컵 국제 유소년축구대회를 개최하기로 합의하고 베이징, 선양 등지에서 실무협의를 차질 없이 진행했다. 당국 간 대화는 완전히 닫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같은 달 6일 독일 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에서 △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2018년 2월) 참가 △시급한 인도적 문제(이산가족 등) 해결 △군사분계선 적대행위 중단 △ 남북대화 재개 등 네 가지 제안을 했다. 북한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북한의 첫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뒤인 2017년 7월 20일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미 공군 전략폭격기 B-1B가  괌의 앤더슨 기지에서 출격을 준비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완전한 절멸을 경고하고, 북한이 괌 포위사격으로 맞선 2017년 8월 14일,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북한이 미국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면 그것은 전쟁"이라고 말했다. AP 연합뉴스

세계가 주목한 '평화 올림픽'

김 이사장은 남북 교류를 시작한 이후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를 겪었다. 보수이건, 진보이건 북한과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상대적으로 진보 정부의 평화 추구 의지가 더 강했다. 노무현 정부는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 잠시 흔들렸지만, 분위기를 돌려놓았다. 미국의 요청에 1개 사단을 이라크에 파병하면서까지 남북관계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한다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000달러가 되도록 돕겠다는 '비핵개방 3000'을 표방한 이명박 정부는 '북한 붕괴설'에 손바닥 뒤집듯 태세를 전환했다. 취임 초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내놓고 러시아산 석탄을 북한 나진항을 통해 포항제철로 보내는 프로젝트를 발족시켰던 박근혜 정부 역시 잇단 안보 악재에 2016년 2월 개성공단에서 전격 철수했다. 김 이사장이 가장 크게 실망한 정부는 의외로 문재인 정부였다. 왜 그럴까?

북측으로부터 2017년 12월 쿤밍 국제유소년 축구대회 개최 논의를 할 즈음 김 이사장은 강원도 평화협력관으로 임명돼 최문순 당시 강원지사와 원팀을 이뤘다. 강원도의 최대 현안은 북한을 참가시켜 평창 동계 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만드는 것.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평화'와 '올림픽'의 결합 아이디어에 환호했다. 최 지사는 12월 18일 쿤밍에서 평창올림픽 주최자 자격으로 문웅 북측 4.25 체육단 단장에게 북한의 참가를 공식 제안하는 '요청서'를 전달했다. 문 단장은 "긍정적인 답변이 올 수 있도록 상부에 잘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희망이 보였다.

당시 상황에 대해 최 전 지사는 지난 11일 <시민언론 민들레>에 "북측에 선수단과 응원단이 머물 크루즈선을 원산항에 보내 이동과 숙박에 어려움이 없게 할 것을 약속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남북대화 라인이 모두 끊긴 상태에서 김경성 이사장이 유일하게 열린 통로였다"라고 회고했다. 평창올림픽 조직자로 군사적 긴장이 팽배한 상태에서 올림픽이 개막하는 것을 피하는 한편, 성공적인 개최와 경제적 효과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월 1일 신년사로 답했다. "남조선에서 머지않아 열리는 겨울철 올림픽 경기대회가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라면서 "우리도 대표단을 포함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 요청서 전달 13일 만이었다. 다시 축구가 평화의 통로가 된 것.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2일 브리핑에서 "당국 차원에서의 비공식 회담은 없었다"고 인정했다. 김 이사장과 최 지사는 언론을 상대로 뒤늦게 쿤밍 실무 접촉 이야기를 공개했다. 정부의 태클이 들어왔다. "당국 간 대화가 시작될 거니까 관련 언급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북한의 참가로 '평화올림픽'이 된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의 주요 장면. 가운데는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입장하는 남북 선수단. 위 왼쪽부터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남한 김여정 당 중앙위 부부장. 아래 사진은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을 응원하는 북한 응원단이다. 2018.2.25. 연합뉴스

하노이에서 다시 끊긴 남북대화

평창올림픽에 참가한 북한 대표단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의장과 김여정 당부부장 등 고위 실세가 포함됐다. 문재인 정부는 이후 남북 교류를 주도 또는 독점하며 4.27 판문점 정상회담과 9.19 평양 정상회담을 열렸다. 서정적인 무대장치만 기억에 남겼다. 2018년 6월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도 열렸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강조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평창올림픽 계기 남북대화로부터 불과 1년 정도만 유지됐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다시 끊긴 것. 그 사이에도 정부의 주도 또는 독점 움직임은 계속됐다. 개성남북연락사무소를 설치한 뒤 민간단체와 지자체의 교류협력사업을 그 곳을 통해서만 하도록 했다. 판문점 도보다리 산책을 비롯해 몇 개의 서정적인 장면을 만들었다. 그러나 '서사'가 동반되지 않는 '서정'은 순간에 그친다. 아무리 효율적으로 국민 감성을 건드려도 역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독점 의지는 북에도 전달됐다. 2018년 가을 춘천에서 열린 아리스포츠컵 국제유소년 축구대회에 온 북측 관계자는 "교장 선생, 이제 직접 대화는 어려워지는 거 아닌가. 남측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연락사무소를 통해서만 교류하기로 했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정부가 민간과 지자체의 교류협력을 독점하려고 한 점, 또 정치적 성과에 급급한 점. 김 이사장이 문재인 정부의 실책이자 교훈으로 꼽는 두 가지이다. 문재인 정부 당국자는 <민들레>에 "독점이라는 말은 적절치 않다. 교류협력 통로 단일화는 민간의 활동을 지원하려던 의도였다"고 해명했다.

남북 관계에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려던 정부의 의도는 북측이 2020년 6월 16일 개성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완도 섬마을의 소녀가 울산에서 수소산업을 공부하여 남포에서 창업하고, 몽골과 시베리아로 친환경차를 수출하는 나라. 회령에서 자란 소년이 부산에서 해양학교를 졸업하고 아세안과 인도양, 남미의 칠레까지 컨테이너를 실은 배의 항해사가 되는 나라(문재인 대통령 2019년 광복절 경축사)는 서랍 속 연설문에만 남게 됐다. '아이들의 공 잔치'도 부수적 피해를 입었다.

같은 장소 다른 장면. 2018년 8월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서 남북 축구 꿈나무들이 아리스포츠컵 국제유소년 축구 대회 경기를 하고 있다. 경기장 위쪽으로 모란봉이 보인다.  김진호 에디터
2019년 10월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H조 경기를 치르고 있는 남북한 국가대표팀. 관중석이 텅 비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왜 지금이 적기인가

아리스포츠컵 유소년 축구대회는 2017년 쿤밍→(평창올림픽)→2018년 8월 평양→2018년 10월 춘천 대회로 이어졌다. 그러나 2019년 대회를 원산에서 열자는 약속은 당국 간 관계 단절과 뒤이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여전히 성사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민간은 민간대로 각각 서사를 써가야 한다. 그래야 망외의 대화 통로가 열린다. 북한의 1차 핵실험과 비무장지대(DMZ) 총격전 속에서, 또 한반도 전쟁 위기 속에서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끌어냈던 것처럼.

'윤석열의 남한'과 '김정은의 북한'은 최악의 조합이다. 북측은 통일도 민족도 내버리고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를 선언한 뒤 모든 대화 통로를 닫았다. 선대가 세운 평양 남쪽 관문의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도 폭파했다. 앞서 진보 정부도, 보수 정부도 남북관계를 외면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윤석열 정부는 논외다. '담대한 구상'은 말뿐이었다. 어떠한 대북 제안도, 행동계획도 없었다. 되레 군사적, 비군사적으로 자극,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오죽하면 그에게 12.3 내란 혐의에 더해 외환 혐의를 추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겠나.

'윤석열의 난'은 안정적인 남북관계가 한반도 평화는 물론, 분계선 이남의 평화에도 절실한 것임을 새삼 각인시켰다. 언제 또 '돌연변이 대통령'이 등장해 공산전체주의와 반국가세력을 중얼거리며 종북몰이에 나설지 모를 일. 남한 민주주의, 남한의 평화가 얼마나 취약한지 백일하에 드러났다. 다행히 개가 짖어도 행렬은 지나간다. 온갖 거짓말이 난무하지만,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결정이든, 반란죄 처벌이든 윤석열의 난은 진압의 마지막 단계만 남겨 놓고 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의 막이 오르면 후보마다 대북정책 공약을 내놓을 것. 보수 후보이건, 진보 후보이건 공약을 준비하면서 지난 정부의 과오를 참고했으면 한다.

아리스포츠컴 국제유소년 축구대회 상징. [남북체육교류협회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어차피 다시 이어질 길

남북 간에는 강추위 속에 여름이 왔고, 무더위 속에 겨울이 닥치는 패턴이 반복됐다. 분단 이후 남북관계사가 그렇다. 북한 수령 체제는 한순간 U턴이 가능한 체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남측 내부다.

"정부의 대북 정책은 보수, 진보의 정권 교체에 따라 냉·온탕을 오간다. 화해협력에 적극적이라도 정치적 성과에 갇혀 지속가능성을 잃기 십상이다. 민간과 지자체의 대북 교류를 통제하려는 실수를 다시는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치어리더 역할을 하지 않아도 좋다. 심판관이 되려는 과욕만 부리지 마라. 그 과정에서 죄가 있으면 수사하고 처벌하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귀걸이와 다름없는 국가보안법으로 옭아매지만 않으면 좋겠다." 김 이사장이 한달음에 쏟아낸 말이다.

때마침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친분"을 거듭 강조하며 북미 정상회담 재개를 예고하고 있다. 북미가 대화에 나서면, 적어도 남북관계에서 '이른바 보수'는 무장을 해제할 수밖에 없다. 북한과 가까워지기 싫지만, 미국과 척지는 걸 더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남측 진보 정부의 대북 화해 제안과 북미 대화, 두 가지가 진행되는 상황에 홀로 어깃장을 놓으면 보수만 고립된다. 이 역시 반복된 패턴이다.

국보법의 사슬에서 풀려난 김 이사장은 국제대회를 통해 북한을 만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일단 남북이 이미 유치해 놓은 국제대회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 IOC는 여전히 우군이다. 2027년 충청권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와 2028년 평양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 남북 교차 참가에 더해 단일팀을 구성한다면 금상첨화일 터. 재중 조선족 동료들을 통해 북측과 교신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북측 관계자는 "어차피 올해는 같이 할 일이 없을 것 같다"는 메시지를 우회 전달해 왔다. 곧장 평양에 못 가면 돌아가면 될 일. 김 이사장은 먼 길의 동반자, 최문순 전 지사와 함께 워싱턴을 경유해 평양으로 가는 길도 모색하고 있다. 올해 여름쯤 윤곽을 공개할 계획이다.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이 지난 8일 경기 고양시 원마운트의 사무실에서 그동안 교류협력 역사가 담긴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2025.2.8. 시민언론 민들레

한겨울에 입춘이 있는 까닭은?

 최 전 지사는 김 이사장에 대해 "북한 관련 일이라는 게 잘될 때는 밀물처럼 몰려왔다가 안 될 때는 썰물처럼 빠진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갖고 일해 온, 지금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분이 아닌가 싶다"라고 평했다. 남북 관계의 변화 가능성도 조심스레 낙관했다. "너무 핵문제와 연계해 생각하면 답이 안 나온다. 한반도 문제에 전기가 임박했다고 본다. 평창올림픽 때와 9.19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김여정 당 부부장 등과 나눈 대화를 되새겨보면 북한은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하려는 생각이 분명해 보였다. 신뢰 회복의 계기가 이른 시일 내 만들어졌으면 한다." 우리 달력에 봄(입춘)은 늘 엄동설한의 한가운데 있다. <끝>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65)이 지난달 16일 수원지법 항소심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불법사찰부터 시작해 17년을 끌어온 사건이다. 의외로 그의 소감은 덤덤했다. 홀가분함과 설렘이 섞여 있다. 판결 다음 날 서울 마포구 신수동 한 음식점에서 그를 만났다. 이후 여러 번 온‧오프라인에서 나눈 이야기를 세 차례로 나누어 소개한다. 국보법 제7조 제1항(찬양·고무)의 문제와 함께 20여 년간 그가 교류협력에서 체득한 교훈, 이를 토대로 남북관계의 '폐허'에서 다시 일어날 방안을 모색하는 데 긴요하다는 판단에서다.       ☞ 김경성 이야기 ① 

평양으로 가는 길. 2018년 8월 평양에서 열린 아리스포츠컵 국제 유소년 축구대회를 치르기 위해 개성~평양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차량 행렬. 김진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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