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대학생 선생님들이 마련한 중학생 공부방은 보신탕집 이층이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에 기대어 놓은 야구방망이에 종종 피가 묻어 있었다. ‘개를 어떻게 도살할까’라는 의문이 치밀어 올랐다. 1970년대 중반 서울 아현시장 인근 한 이층 건물에서 목도한 장면이다. 그즈음만 해도 보신탕은 많은 한국인들이 즐기던 전통음식이었다. 반려견을 키우는 가정이 늘어나면서 식문화가 급속하게 바뀌고 있지만 우리가 지나온 내력이다. 갈수록 보신탕 전문점이 줄고 있다. 바뀐 식문화 때문만은 아니다. 잔인한 도살 방식과 비위생적 처리 탓에 외면을 받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위생의식이 낮은 것은 당시 음식점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 초까지 서울의 선술집에서는 의자에 앉은 채 식당 바닥에 가래침을 뱉는 술꾼들을 어쩌다 보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설 연휴 뒤 지나간 외국 신문들을 뒤적이다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한 영국 신문은 중국 우한(武漢)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속보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외국인들의 원정출산 제한 정책을 시행한다는 기사를 같은 면에 배치했다. 왜일까. 의문은 기사 말미에서 풀렸다. 한 해 3만여명으로 추산되는 외국인 출산관광객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중국인이라는 설명이 나왔다. ‘대한민국’도 있었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중국과 터키, 레바논, 러시아, 멕시코, 한국, 서인도제도 순으로 신생아의 시민권 취득을 위해 미국에 많이 온다는 뉴스였다.
세상이 온통 중국 우한발 신종 코로나 뉴스와 가짜뉴스, 정보와 추측으로 넘실댄다. 아직 정체가 파악되지 않은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 못지않게 가짜뉴스의 고속철에 올라탄 ‘중국 공포’ 또는 ‘중국 혐오’가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미국 상원에서 진행 중인 트럼프 대통령 탄핵재판과 같은 굵직한 뉴스를 밀어낸다. 급속도로 늘어나는 감염 의심자와 사망자 숫자에 촉각이 곤두서는 게 인지상정이다. 미세먼지가 나쁘지 않아도 마스크에 손이 간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 뉴스를 온종일 접하면서 불현듯 우리 식문화와 인종 문제와 관련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기억들이 떠오르는 건, 신종 코로나의 매개체로 추정되는 박쥐와 중국 식문화에 쏟아지는 ‘쇼킹 아시아(Shocking Asia)’류의 혐오 때문이다.
지난주 중국의 여행 분야 파워블로거 왕멍윈이 5년 전 게시한 ‘박쥐 수프’ 시식 동영상이 새삼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영국 데일리메일과 러시아투데이 등 일부 매체들과 각국 파워블로거들이 이를 소개했다. 그가 박쥐 날개를 두 손에 쥐고 먹는 장면을 담고 있다.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사진이다. 때마침 신종 코로나 발원지로 야생동물 식재료를 판매하는 우한 화난(華南) 수산물도매시장이 추정되고 특히 박쥐가 매개체일 가능성이 전해진 시점이었다. 초기 조사 결과와 맞물려 중국인들의 박쥐 시식이 신종 코로나의 원인인 양 유포됐다. 전 세계 수백만명이 문제의 동영상을 보았다고 한다.
소동은 왕멍윈이 블로그에 장문의 사과문을 게시함으로써 일단락되는 듯했다. 사진은 우한이 아니라 2016년 5월 남태평양 팔라우제도에서 현지 음식을 소개하며 찍은 것인데 누군가 자막을 고쳐서 유포했다는 것이다. 그는 “촬영 당시엔 박쥐에 바이러스가 있는지 몰랐다”고 적었다. 하지만 박쥐 수프 사건 이후에도 야생동물을 식용 또는 약용으로 섭취하는 중국 식습관에 대한 비난은 끊이지 않고 있다. 화난 시장에선 박쥐뿐 아니라 오소리와 흰코사향고양이, 대나무쥐, 코알라 등이 도축된다고 한다. “탁자 빼고 다리 네 개 달린 건 다 먹는다” “비행기 빼고 날아다니는 것은 모두 먹는다”는 중국인들 식습관이 호사가들의 사치에서만 비롯된 문화는 아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숱한 기근을 겪으면서 생겨난 풍습이다.
‘쇼킹 아시아’ 관점에서 보면 한국이나 중국이나 도긴개긴이다. 개고기는 물론 뱀과 산낙지도 국제적으로 혐오식품에 올라 있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지난 28일 페이스북에 한국인 역시 한때 박쥐를 먹었음을 입증하는 1979년 경향신문 기사를 게시했다. 기사는 경남대 생태조사 결과를 통해 “희귀종인 황금박쥐가 신경통과 정력에 좋다는 소문에 남획돼 멸종위기에 처했다”고 전했다. 황씨는 페북에 “시대에 따라 인간의 먹을거리가 바뀐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건으로 적어도 중국에서는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요즘 유행어로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고 단정할 일이 아니다. 중국 식문화를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 격이다. 원정출산을 한다고 한국인이 백인이 될 수 없듯이, 오래된 식문화를 군사작전이나 마녀사냥으로 없앨 수는 없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준비했던 독재정권은 사대문 안 보신탕집을 없앴지만 눈가림 미봉책이었을 뿐이다. 한 문화의 단점만 들여다보고 다른 문화의 장점만 강조하는 게 바로 인종주의 아니던가.
포린폴리시 선임에디터 제임스 팔머는 “중국인들은 문명화되지 않았고, 깨끗하지 않으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더럽다”고 규정한 1854년 뉴욕데일리트리뷴 기사를 꺼내왔다. 그는 왕멍윈의 동영상이 곤충이나 뱀, 생쥐를 먹는 중국인 또는 다른 아시아인에 대한 서구의 오랜 편견을 일깨웠다고 지적했다. 스스로 보신탕과 곤충 등을 시식해보았다고 고백한 팔머는 야생동물 음식을 먹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요리사 및 식당 종업원들의 위생의식과 시장 좌판의 칸막이 부족, 보건감독관의 부재 또는 뇌물수수 등 주변적 요소들이 전염병의 원인이라고 짚었다.
그의 말대로 신종플루(H1N1)는 돼지를 매개체로 하지만 돼지고기를 먹는 식문화가 문제는 아니었다. 화난 시장이 진원지라는 전문가들의 초기 판단도 흔들리고 있다.
새로운 바이러스의 70% 정도가 동물에서 전파되는 만큼 중국 야생동물 거래시장의 위생 수준 개선과 관련 제도 정비는 중요하다. 야생동물의 포획·도살·거래 과정이 모두 전염병 발생의 위험 소지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내에서 야생동물 거래를 영원히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차이나데일리의 28일자 내부필진 칼럼은 “똑같은 일을 거듭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며 “(야생동물 거래금지를 하지 않는다면) 다음에는 더 심각한 전염병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2002년 전 세계에서 800명 가까운 사망자를 낳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마찬가지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박쥐를 숙주로 하는 코로나바이러스다. 박쥐는 여러 가지 바이러스의 숙주다. 2013년 사스의 숙주가 박쥐(chrysanthemum head bat)라는 사실을 처음 밝혀낸 국립과학원 바이러스학 연구소는 공교롭게 우한 화난 시장과 불과 15㎞ 정도 떨어져 있다. 차이나데일리는 이 연구소 한 연구원이 2018년 “자연에는 사스와 유사한 바이러스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면서 대책을 촉구했었다고 소개했다. 그 연구원은 “우리가 그러한 잠재적 위협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다음번 바이러스가 머지않아 인간을 감염시킬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그의 우려는 정확한 경로를 거쳐 전달되지 않았다.
사스는 박쥐의 코로나바이러스가 사향고양이를 중간숙주로 인간에게 전염됐지만 신종 코로나의 중간숙주 동물은 물론, 인간 대 인간 전염 원인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지레짐작하고 초기 조사 결과를 부풀리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되는 것은 물론, 문화적 이해를 왜곡하는 또 다른 바이러스일 뿐이다. 중국발 전염병의 원인은 식문화의 문제라기보다 정치적·경제적 문제다. 중국 당국은 사스 발병 이후 한동안 박쥐 거래를 금지했지만 다시 허용했다. 중국 정부는 전통 한약을 장려해왔으며, 일부 지방에선 식용 야생동물을 농촌 소득 증대원으로 평가해왔다. 뉴욕타임스는 광시좡족자치주에서 대나무쥐가 농민들의 빈곤 탈출을 돕고 있다는 신화통신의 최근 보도를 인용했다.
인구 1000만명이 넘는 도시가 봉쇄된 지 열흘이 돼간다. 1949년 신중국 건국 이래 처음인 것은 물론, 현대사에 유례가 없는 사건이다. 우한은 9개의 다른 성으로 연결된 중국 중부지방의 최대 교통 중심지이다. 중국 정부의 봉쇄령이 내려진 지난 22일 오전 10시 이전에 우한을 빠져나간 사람만 500만명이다. 당분간 지구촌 차원의 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신종 코로나 사태가 어떤 개선의 출발점이 되려면 중국의 위생 혁명과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과거 발생했던 수많은 천재지변과 전염병 확산 때와 마찬가지로 변화를 추구하는 시간은 짧고 경제적·정치적 의도가 압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어떤 결말을 보건 우한과 중국인들에 대한 지지와 격려가 인종주의나 식습관 비판보다 더 건설적인 역할을 한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꾸준히 살아남아 언젠가 인간들에게 교훈을 알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 어떤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을지 모른다.” 알베르 카뮈가 소설 <페스트>에서 의사 리외의 입을 빌려 내놓은 경고다. ‘페스트균’을 ‘바이러스’나 ‘문화적 편견’으로 대체해도 뜻이 통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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