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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2막의 시작, ‘한방울의 물’이 나라를 흔든다.

세계 읽기

by gino's 2019. 11. 18.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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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산티아고서 홍콩까지... 10여개국 동시다발 시위, 어떻게 읽어야 하나

LA타임스에 따르면 칠레 시위는 한 중학생이 시작했다. 정부가 지난달 6일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 요금을 30페소(50원) 인상한다고 발표하자 이 학생은 소셜미디어(SNS)에 “티켓을 내지 않고 지하철 회전문을 뛰어오르자”는 제안을 했다. 지하철 공짜탑승 운동은 전국으로 번져 국가를 흔들었다. 100만명이 넘는 성난 주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최소 17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다쳤으며 7000여명이 체포됐다. 수도 산티아고에서 11월·12월에 각각 예정됐던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제25차 유엔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 25)가 취소됐다. 경제 피해는 14억달러.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고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던 야간 통행금지령이 발동됐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정부는 결국 지난 10일 상·하원 지도부와 회의를 갖고 시위대가 요구한 개헌 작업에 돌입했다.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에 화난 중학생의 SNS 제안이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독재 시절에 만들어진 신자유주의 헌법 개정의 50년 한을 풀게 한 셈이다.

진압경찰의 물대포에도 무지개는 뜬다.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지난 11일 시위대와 진압경찰이 충돌하고 있다. 칠레 정부는 지난 10일 개헌작업에 착수했다고 발표했지만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의 뒤늦은 대국민 사과와 사회보장 강화 조치도, 국가비상사태 선포도 사태를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다.  산티아고AP연합뉴스

칠레뿐이 아니다. 홍콩, 파키스탄, 알제리와 볼리비아, 스페인, 에콰도르, 프랑스 기니아, 아이티, 이라크, 카자흐스탄, 레바논에서도 성난 민중이 거리로 나오고 있다. 올해 초 인도에서는 양파값 파동이, 지난해 말 프랑스에선 유류세 인상안이 노란 조끼(Gilets jaunes) 시위를 불렀다.

호주머니 물가인상에서 분리독립, 반정부 등 시위대의 구호는 제각각이지만, 시위 자체가 전염병처럼 번지는 범지구촌 현상이다. ‘작은 저항’이 SNS라는 도구에 실려 나비효과를 일으키면서 시위에 처음 불을 댕긴 사람조차 상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포퓰리즘이라는 단어가 국제뉴스에 범람했지만, 이제는 전혀 낯선 뉴스가 아니다. 일상적인 뉴스의 일부분이 됐다. 나라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엘리트주의, 기성제도에 대한 반발이라는 큰 구조는 별반 차이가 없다. 서구의 경우 반이민이, 동구의 경우 반서구가 뒤틀린 증오의 주동력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포퓰리즘의 백화점이다. 반이민·반이슬람·반중국·백인우월주의 감정이 뒤엉켜 있다. 하지만 저변을 흐르는 심리는 내편과 네편을 일도양단하는 섬뜩한 민족주의 또는 인종주의이다. 그렇다고 포퓰리즘이 지속가능한 것 같지는 않다. 미국 하원에서 진행 중인 대통령 탄핵 움직임이 말해주듯 기성제도의 반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 참가자들이 눈동자를 그려넣은 펼침막을 내걸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눈동자는 지난 달 중순부터 시작된 시위 과정에서 경찰의 산탄총알을 눈에 맞은 200여명의 시민들을 상징한다. 진압경찰이 고의로 시위군중의 눈을 겨냥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산티아고 AP연합뉴스

2019년 가을,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상한 시위’들의 정체는 포착하기 쉽지 않다. 세계가 전에 보지 못한, 작은 분노와 작은 연대에서 촉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은 증오의 연대를 먹고 자란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포퓰리즘과 마찬가지로 각양각색의 지구촌 시위도 조만간 전혀 새롭지 않은 뉴스의 일부분이 될 수 있을까.

언론매체도 유전자(DNA)가 있다. 월가의 자본논리를 충실하게 대변하는 월스트리트저널은 칠레의 시위군중을 좌파 극단주의자로 규정하고, 라틴 아메리카의 꿈이 영글지 않은 것은 경제적 실패 탓이라기보다 사회적 사건 때문이라고 질타했다. 피녜라 정부는 신자유주의 헌법 개정 요구에 절대 굴복하면 안된다면서, 시위자들을 상대로 ‘칠레의 퓨마’를 살해하지 말라고 당부했다(메어리 아나스타시아 오그래디 칼럼). 퓨마는 아시아 4개국 경제를 호랑이로 부르는 것에 빗대어 만든 신조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2일자 사설에서 ‘칠레 지도자들이 경제적 불평등의 대가를 배우고 있다’면서 경제적 해법을 제시했다. 부를 보다 평등하게 나누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논평이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시위 경향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 같다고 관측하면서도 글로벌 혁명의 전조라기보다는 단지 ‘새로운 현재(status quo)’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역사적인 평가를 내린 것은 르몽드였다. 지난 8일자 사설에 지구촌의 요구는 “민주주의를 다시 정복하라”는 정언이라고 썼다. 시위는 권위주의 국가는 물론 신자유주의 국가에서도 벌어진다. 프랑스처럼 낡은 공화국도 노란 조끼의 도전을 받고 있다. 카이로에선 군부가 훔쳐간 정부의 귀환을, 홍콩에서는 중국의 압제가 빼앗은 자유를 외치고 있다. 산티아고에선 정치권력과 하나의 계급, 하나의 카스트, 하나의 마피아가 독점한 자본세력의 결탁이 부정됐다. 칠레에선 특히 사소하지만 견딜 수 없는 경제적 결정이 방아쇠가 됐다. 프랑스와 에콰도르의 유류세와 레바논의 왓스앱(WhtsAPP) 세금, 사우디아라비아의 레스토랑 물담배 세금이 이에 해당된다. 각국의 정치·경제 엘리트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원인들이었다. 사설은 이를 찰랑찰랑 차있는 물병의 물을 넘치게 한 ‘한 방울의 물’로 표현했다.

정치적 민주화를 요구하거나, 장바구니 물가 인상에 항의하거나 최근 시위에는 국기가 많이 등장한다. 학자들은 국기의 등장이 좁게는 빼앗긴 광장의 회복이며, 넓게는 빼앗긴 국가의 회복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11월19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한 교사가 칠레 국기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특정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지도자 없이 벌어지는 이러한 시위들은 존엄과 평등의 요구이면서 사회 시스템의 변화를 지향한다는 해석이다. 세계화로 인한 불평등에 항의하면서도 국경 없는 상품과 서비스의 이동과 교환이라는 세계화 논리에 따라 전염성을 갖는 것은 패러독스다. 르몽드는 최근 시위는 시장의 승리로 귀결된 베를린 장벽 붕괴 30년을 맞아 각국의 민중이 몽둥이를 다시 든 반역의 바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민생의 불만이 터진 시위와 이집트·홍콩 등 정치적 압제에 저항하는 시위들의 공통점은 SNS 시대의 전염성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민중이 몽둥이를 든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어딘가 아쉬운 해석이다.

2008년 월가의 살찐 고양이들의 탐욕이 부른 글로벌 금융위기 뒤 각국의 긴축재정이 초래한 시위사태도 글로벌 현상이었다. 유럽에선 ‘분노하라 시위’가,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선 ‘아랍의 봄’ 시위가 잇달았다. 뉴욕에선 ‘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 시위’가 추운 겨울 성난 민심을 대표했다. 아랍의 봄을 촉발시킨 주역 역시 과일행상을 하던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다행히 튀니지의 민주화는 진척됐지만, 보통사람들의 생활고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기에 언제든 다시 거리로 뛰쳐나올 수 있다. ‘작은 저항’도 뭉치면 기성제도를 흔들 수 있다는 경험이 살아 있고, 그럼에도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 대한 불만이 언제든지 ‘한 방울의 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옌데 정권을 무력으로 붕괴하고 권좌에 오른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칠레 대통령이 헨리 키신저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미국 보수우파는 칠레 쿠데타 초기부터 신자유주의를 주입했으며, 칠레는 대처의 영국, 레이건의 미국에 앞서 신자유주의가 이식된 국가이다. 사진/위키페디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시위현상과 최근의 시위현상을 한 묶음으로 의미를 부여한 사람은 프랑스의 국제정치학자 베르트랑 바디 교수였다. 그 역시 마술 같은 해법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최근 접한 견해 중 가장 웅숭깊은 분석을 제시했다. 그는 지구촌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지는 현상에 ‘세계화 II막 시대의 개막’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파리 정치대학 명예교수인 그는 지난 8일 르몽드 대담에서 각국의 시위는 각기 다른 배경에서 비롯됐지만, ‘인민의 귀환’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면서 이같이 규정했다. 세계화는 만능열쇠처럼 모든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이 경우엔 너무도 자명하다는 말이다. 바디 교수는 시위의 전염성을 세계화의 3대 징후로 풀었다. 3대 징후의 첫 번째는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외면하고 사는 사람들이 드물 정도로 서로 엮인 사회라는 점에서 ‘포함(inclusion)’을 들었다. 두 번째는 한 나라에서의 집단의사 표출이 다른 나라로 전파돼 영향을 미치는 상호의존성이고, 마지막이 각국 사회를 연결하는 SNS의 유동성이다.

그가 주목한 것은 한 나라의 사회운동과 다른 나라의 사회운동이 역동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글로벌 현상이었다. 국가 간 경쟁 또는 협력만 보이던 국제관계 지평을 각국 사회의 수렴이라는 전혀 새로운 상황으로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 대 사회 관계의 역전이다. 과거에 정치가 강하고 견고했고 사회는 부드럽고 물렀다면, 이제 정치는 갈수록 불확실하고 불안정해지는 반면 사회는 더 강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바디는 미국의 반이란 외교가 아니라, 이라크 민중 시위가 이란의 지역 영향력을 위협하고 있는 현상을 극명한 예로 들었다.

바디는 새로운 사회운동의 씨앗을 2011년 ‘아랍의 봄’에서 찾았다. 유럽인들의 DNA에 각인된 사회주의나 프랑스 대혁명, 자코뱅주의와 동떨어진 가치에서 촉발됐다. 시위는 이데올로기도, 특정 정당이나 특정 지도자도 없이 보통사람들의 작은 전략들과 사회적 행동이 뭉쳐지면서 커졌다. 정치적 질서는 대응하지 못했을뿐더러 시리아에서처럼 극렬한 폭력 속에 스스로를 지키지도 못했다. 그는 지금 바그다드에서 베이루트까지, 홍콩에서 산티아고까지 이어지고 있는 시위들은 아랍의 봄과 특징을 공유한다고 본다. 종래의 고전적인 사회적·경제적 요구들을 부차적인 요소로 밀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 그 자체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국의 기성정치가 문제해결을 못하거나, 프랑스나 칠레에서처럼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로 사태를 봉합하고 있는 현상을 꿰뚫은 통찰이다.

이라크 바그다드 알라시드 거리에서 지난 11월17일 열린 반정부 시위 도중 진압경찰이 발사한 취루가스에 거리가 자욱하다. AP연합뉴스

프랑스와 칠레의 집권당이 모두 중도우파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겉으로 사과하고, 속도를 늦출지언정 신자유주의 개혁을 계속 추진하는 게 중도우파의 공통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어디쯤 위치할까. 뒤늦게 독일의 슈뢰더식 개혁의 걸음마를 떼고 있는 프랑스보다는 완숙한 신자유주의 사회인 칠레에 가까운 것 같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빌미로 뇌수를 장악한 자본의 지배질서가 이미 일상이 됐기 때문이다. 극우 포퓰리즘이 거리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만 프랑스에 가깝다. 분단이 배태한 뒤틀린 증오와 순진한 열정이 뒤섞여 다소 흐릿하지만, 한국 사회는 어쩌면 ‘한 방울의 물’이 떨어지기 직전인지도 모른다. 르몽드가 인용한, 물병을 넘치게 할 ‘한 방울의 물’은 바디 교수의 표현이다. 그 물병의 이름은 경제적·사회적 질병이다. 

 

프랑스 국제정치학자 베르트랑 바디의 근간 <도전받는 헤게모니, 새로운 형태의 국제적 지배> 표지. 바디는 고대 그리스의 델로스동맹부터 아메리칸 헤게모니까지 '메시아적인 동맹'은 없다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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