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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1, 최상의 세월과 최악의 세월이 교차한다

세계 읽기

by gino's 2020. 4. 25.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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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버락 오바마 정권을 창출했지만, 미국 보수의 티파티 운동도 낳았다. 1930년대 대공황도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아돌프 히틀러를 함께 낳았다.” ‘코로나19 이후’를 전망하는 미국 원로 저널리스트 토머스 에드샐(78)의 촌철살인이다.

 

위기(危機)는 쌍둥이를 낳는다. 위험과 기회, 절망과 희망을 따로 떼어내지 않는다. 팬데믹이 가져올 변화는 극과 극을 오간다. 그 중간 어딘가에서 접점을 찾는 게 각국 지도자들의 책무이자 각국 정치의 선택이다. 코로나19의 파급효과를 전망하면서 양극단의 한쪽만 바라보는 건 위험하다. 동시에 바라보면서 현실적인 방안을 내놓는 게 내구성이 있을 것이다.

 

 

오는 5월 만 99세가 되는 레지스탕스 출신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 2019년 1월. 르몽드 홈페이지.

 

100세를 바라보는 프랑스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98)은 “예상 못할 상황을 예상하라”면서 팬데믹 이후에 대한 성급한 전망을 내놓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최악과 최상, 그 두 가지의 혼합을 (모두) 예상해야 하는, 새로운 불확실성 속으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모랭은 이미 2012년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위협은 핵무기가 아니라 강한 전파력을 갖고 있는 바이러스라고 경고했던 빌 게이츠를 시대의 예언자로 꼽으면서 세계가 게이츠의 충고를 외면한 것은 세계화가 야기한 채산성에의 집착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모랭에 따르면 위기에 처한 사회는 두 가지 상충하는 흐름이 겹치는 과정을 거친다. 새로운 위기에 새로운 해법을 찾기 위해 창조적 상상력을 동원하는가 하면, 익숙한 과거로 회귀하려고 애쓰거나 하늘의 구원에 집착한다. 레지스탕스 출신으로 기술과 경제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만도 하지만 그는 관찰자의 시선을 유지했다.

 

국가주권 및 복지국가 복원과 민영화에 맞서는 공공서비스의 보호, 탈세계화(demondialisation), 반신자유주의를 위한 새로운 정치의 필요성 등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일상의 상실이 이웃 간의 연대와 지역 생산 등 창조적 아이디어로 연결되고 있는 한쪽의 흐름을 지적했다. 프랑스에서 마스크 부족사태는 패션기업이나 자동차기업이 마스크를 만드는 대안생산과 지역 생산자들의 규합, 무상 배달, 무료 급식의 연대와 독창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모랭은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불확실성과 비극이 공존하는 곳으로 자유경쟁과 경제성장이 만병통치약이라는 확신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전으로 복귀하려는 사람들이 공공 의료서비스의 태만을 인정하기는커녕 책임을 전가할 희생양을 찾고 있는 현실을 상기시켰다. ‘코로나 이후’를 묻는 질문에 양극단 현상을 모두 제시하며 끝내 물음표(?)로 답을 대신한 까닭이다.

 

지난 3월 영국의 풍자 인형쇼에서 선보인 각국 지도자들의 인형. 가운데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고 맨 오른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로이터 통신이 같은 달 전송한 사진이다. 로이터연합뉴스로이터연합뉴스

 

그의 언어에서 불확실성은 그러나 절망만을 담고 있지 않다. 각자 내부로의 ‘놀라운 모험’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는 “이번 위기는 우리가 생활방식과 진짜로 필요한 것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주고 있다”면서 일단 내부로 시선을 돌릴 것을 권했다. 이상과 현실을 다 인정하고 선택을 하라는 충고인 동시에 개인이건, 사회건 그 선택에 따라 최악과 최선의 접점이 갈린다는 말로 해석된다.

 

에드샐은 지난 1일자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코로나19 위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산을 규정할 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단임 대통령이 될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짚었다. 미국 내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초기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가는 와중에도 그에 대한 신뢰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한 점을 들어 양쪽 가능성을 동등 배치했다. 주인공은 상황이다. 트럼프가 취한 조치나 취하지 않은 조치의 경계를 뛰어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미국 국내정치를 주로 다루는 에드샐이 말한 두 개의 시나리오는 결국 트럼프 있는 미국과 트럼프 없는 미국의 두 가지로 요약된다.

 

지난 21일 도시 봉쇄가 계속되는 영국 런던 피카딜리 써클에서 한 자전거 배달원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피카딜리 써클은 평소 가장 붐비는 거리이지만 저녁이면 인적이 끊긴 사막처럼 변한다.  로이터연합뉴스

 

저명도만큼이나 국내외에서 많이 소비된 전망의 하나는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은 세계질서를 영원히 바꿔놓을 것”이라는 헨리 키신저(96)의 말이다. 현실 정치학자답게 그의 관심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권을 행사해온 ‘국제질서’다. 새로운 위기에 새로운 해법을 찾기보다 익숙한 과거로의 회귀를 촉구하는 목소리로 들린다. 

 

키신저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한 즉각적인 재앙을 피하는 데 훌륭하게 대처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궁극적인 문제는 바이러스 확산세를 거꾸로 돌려놓음으로써 미국민에게 미국이 ‘스스로 통치할 수 있는 나라’라는 신뢰와 확신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평화와 안정을 위한 국제협력의 중요성도 잊지 않았다. 그는 핵무기를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와 전후 유럽을 재건한 마셜플랜에서 교훈을 끌어와 보건의료와 경제 회복, 자유주의 세계질서 회복 등 세 가지 부문에서 글로벌 협력 비전 및 프로그램을 갖춰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통성 있는 균형유지세력으로부터 세계가 뒤로 물러선다면 국내적·국제적 사회계약이 해체될 것이라는 주장에 방점을 놓았다. ‘정통성 있는 균형유지세력’은 물론 미국이다.

 

코로나19 위기가 확산되면서 드러난 사실은 가장 극적인 표현으로 위협을 강조하는 사람들일수록 기실, 기존 질서로의 귀환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소 같으면 관광객들로 붐볐을 체코 프라하의 찰스다리의 지난 4월2일 야경. 가로등만 켜 있는채 유령의 거리를 방불케 한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 중국에 헤게모니를 빼앗길 수도 있는 ‘수에즈 순간’이라고 강조했던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나, 유럽과 미국의 부실한 대처 탓에 서방 브랜드의 ‘아우라’가 퇴색됐다고 한탄한 미국 정치학자 스티븐 월트도 마찬가지다. 월트는 1918~1919년 스페인 독감 이후에서처럼 어떠한 대역병도 강대국 간의 경쟁관계를 끝내거나, 글로벌 협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각국의 민족주의가 강화돼 세계가 덜 개방되고 덜 번영하며 덜 자유롭게 되겠지만, 미국의 패권은 여전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키신저나 캠벨, 월트는 모두 미국 주도 국제질서 속에서 미국의 리더십 복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의 경고와 제언이 먹히려면 올 11월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 ‘트럼프의 미국’이 정확하게 거꾸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취임 직후부터 무슬림 이민자를 배척하고 멕시코와의 장벽을 쌓는 데 열중했던 트럼프는 분노와 증오에 뿌리를 둔 포퓰리스트의 본색을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19의 초기 확산을 막지 못한 중국 책임론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가 하면, 오랜 숙적 이란에 대한 증오도 부추기고 있다. 걸프해역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함정을 “모조리 쏴버리라”는 트럼프 지시로 끝없이 추락하던 국제유가가 반등세로 돌아섰다. 23일 자정(한국시간 24일 오후 1시)부터 60일 동안 미국으로의 이민을 중단시키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미국 경제가 다시 열릴 때 일자리의 맨 앞줄에 실직당한 미국인 실업자가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코로나19 대책에 관한 유권자들의 실망이 확인되면서 핵심 지지층을 다시 끌어모으기 위한, ‘정치적 도발’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 백악관 제임스 브래들리 브리핑룸에서 코로나19 일일 브리핑을 한 직후 브리핑 내용을 전하는 TV방송 내용을 확인하고 있다. 여론의 동향에 이리 민감한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리얼리티쇼 처럼 진행하는 백악관 코로나19 일일 브리핑에서 숱한 실언으로 대중의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 EPA연합뉴스

 

통상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지도자에 대한 지지는 높아진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트럼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주요 국가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트럼프도 초기엔 지지율이 올랐다. 하지만 4월 중순을 전후해 트럼프는 예외임이 입증되고 있다. 대선가도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갤럽 조사에서 지지율은 43%에 그쳤다. 지난 3월 중순에 비해 6%포인트가 추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NBC방송의 19일 조사에선 트럼프의 코로나 대책에 36%만 신뢰를 보였다. 3월 말 ABC방송 조사의 비슷한 질문에 55%가 지지했던 것에 비하면 급전직하다. 키신저가 거듭 강조한 ‘대중의 신뢰’가 희망사항임을 입증하는 자료다. 트럼프는 줄곧 중국의 초기 대응을 비난하고 있지만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 65%가 트럼프의 초기 대응이 너무 늦었다고 답했다.

 

초기 바이러스 방역 실패를 만회라도 하려는 듯 전 세계를 대상으로 펼쳐지고 있는 중국의 ‘마스크 외교’ 역시 기존 질서를 뒤집기엔 턱없이 부족한 것 같다.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 포퓰리즘 권위주의 국가들에서나 환영을 받고 있다.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서방의 외면 속에 제공되는 중국의 지원에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중국의 국제적 리더십을 결정적으로 높이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생전의 마오쩌둥과 헨리 키신저. 가운데는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다.  한국 사회가 키신저를 소비하는 방식은 이상하다. 그는 언제나 미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또 계속 주도해야하는 국제질서의 수호자로서 말하는데 국내에선 이를 가리지 않고 새겨듣는 경향이 있다.  위키페디아

 

서방의 중국 책임론에 되레 바이러스 방역에서 서방 모델은 실패했고, 중국 모델이 성공했다고 맞받아치는 탓에 각국의 ‘중국 거리 두기’ 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21일 발표된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결과 미국인의 대중국 비호감도가 66%에 달해 15년 만에 최악을 기록했다. 퓨리서치센터의 13일 국제비교 여론조사에서 대중국 호감도가 높은 대륙은 아프리카(59%)와 중동(53%), 남미(51%)였다. 아시아에선 베트남(10%), 일본(13%), 인도(26%), 한국(34%) 순으로 호감도가 낮았다.

존스홉킨스대 코로나19센터에 따르면 24일 오전 현재 전 세계에서 271만여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19만800여명이 사망했다. 세계적으로 보면, 증감 곡선은 12일 신규 확진자 9만9100여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약간 내려가는 추세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7만명을 웃돈다. 각국은 기존 방역 대책에 집중하는 한편, 경기부양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단순한 경제 회복을 넘어 실업자와 빈곤층 등의 생활지원 예산이 대폭 포함됐다.

 

미국(24일까지 2조600억달러), 일본(1조달러) 및 유럽 각국은 지난달 중순부터 경쟁적으로 경기부양예산을 내놓고 있다. 중국은 다음 달 양회에서 경기부양책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8년 말 금융위기 당시에는 4조위안(5750억달러)의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 경제 회복에 가장 앞장섰다. 이번엔 고속철과 지하철, 공항 등 사회기간시설 건설에 주로 투입했던 금융위기 때와 달리 인공지능을 비롯한 첨단기술 개발 및 청정에너지 개발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국가채무 부담에 경기부양예산의 규모 역시 지방정부 부채 탓에 경기부양예산의 규모를 축소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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