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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시대 더욱 악화된 미-러 관계, '거대한 체스판'을 누가 흔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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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o's 2021. 5. 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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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발니는 러시아의 진정한 지도자다.’ 지난 28일자 뉴욕타임스 1면에 게재된 기고문 제목이다. 필자는 저명한 러시아 저널리스트로 런던에 체류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하고 있는 올레그 카신(40)이다. 카신은 칼럼에서 “러시아에는 두 명의 지도자가 있다. 한 명은 크렘린궁에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고, 다른 한 명은 감옥에 갇힌 알렉세이 나발니”라고 썼다. 민주주의를 촉구하며 투쟁을 한 여느 야당 정치인들과 달리 나발니는 반부패운동을 벌임으로써 수백명에 불과하던 반푸틴 시위군중을 수천명으로 늘렸다는 상찬도 늘어놓았다. 그런데 나발니는 과연 러시아의 진정한 지도자일까.

서방 언론은 러시아를 중국과 터키, 헝가리 등과 함께 대표적인 ‘권위주의(authoritarian) 국가’로 분류한다. 보통사람들에게 권위주의 국가와 독재국가는 어슷비슷할 것이라는 짐작을 갖게 한다. 실제로 러시아에선 크렘린궁과 대적하는 야당 정치인이나 비판적 언론인들이 정체불명의 괴한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사건들이 있었다. 거물급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 전 제1부총리가 2015년 2월 총격을 받고 피살됐다. 하지만 중국이나 북한과 같이 당과 국가가 하나인 당국가 체제와는 유전자가 다르다. 어쨌든 민간 언론과 야당이 존재하며, 민주적 선거가 치러진다. 집권 뒤에도 유권자의 지지에 연연한다. 중국에는 없는 제도들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거리에 붙은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포스터 앞에서 한 경찰관이 통화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푸틴 정부의 광범위한 부패를 고발해온 나발니(44)는 작년 8월 시베리아 톰스크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오는 기내에서 생화학무기로 사용되는 신경제(노비촉)에 중독돼 목숨이 위태로웠다. 독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퇴원 뒤 지난 1월 귀국을 강행했지만, 2013년 다른 사건의 집행유예 기간 중 보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시 2년의 형을 받고 감금됐다. 러시아 정치가 여전히 흑막에 가려져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나발니는 구금 이후에도 주요 고비마다 자신의 입장을 성명을 통해 밝혀왔다. 그런데 무슨 독재국가에서 감옥에서 원할 때마다 변호사를 통해 성명을 발표할 수 있을까. 정치문화가 불투명하지만 한편으로 공산당 1당 독재국가인 중국과 달리 야당과 야당 정치인의 활동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

나발니는 3월31일부터 해온 단식을 지난 23일 중단했다. 단식을 중단한 이유에 대해 주치의의 권고가 있었고, 자신이 단식에 돌입하며 내놓은 ‘일부 요구’가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고 역시 성명에서 밝혔다. 나발니가 밝히지 않았지만, 단식투쟁 덕에 국내외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다. 러시아는 오는 9월 총선을 앞두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나발니가 사망하게 되면 푸틴 정부가 그 결과에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미국 대통령은 실제로 국내법 ‘글로벌 마그니츠키 법’에 따라 인권탄압 책임자에 대한 비자 발급 중단을 비롯한 인적 제재를 할 수 있다. 러시아 정부의 부패를 고발한 뒤 피살당한 러시아 회계사의 이름을 딴 법이다. 하지만 백악관이 타국 야당 지도자의 단식과 최악의 경우 책임을 묻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미국 외교의 주요 목표 중 하나인 ‘민주주의 진작’과 인권의 보편적인 가치를 위해서일까.

지난 4월 28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푸시카르스키 정원의 한 건물 벽면에 그려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초상화를 한 직원이 페인트로 지우고 있다. 초상화에는 ‘새 시대의 영웅’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발니 벽그림은 이날 이른 아침에 발견됐지만 오전 10시30분쯤 페인트로 덮였다.(왼쪽 사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7일 상트페테르부르크 타브리체스키 궁전에서 연방의회 의원들과 만나고 있다. 타스·EPA연합뉴스

 

나발니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단순히 러시아 국내 정치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푸틴은 지난해 7월 헌법 개정을 통해 이론적으로 최장 2036년까지 집권이 가능해졌다. 미국은 혹시 푸틴 체제를 흔들 호재로 나발니를 보는 것이 아닐까. 러시아 민심은 사뭇 다르니 하는 말이다. 

러시아 민간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의 16일 조사에 따르면, 절반에 가까운 응답자(48%)가 나발니 재판이 공정했다고 평가했다. 불공정했다는 답변은 29%였으며, 23%는 평가를 유보했다. 올 1월 발표된 러시아공공여론조사센터(VTSIOM)의 국가기관 직무수행 조사에서 대통령은 61.6%의 지지(불만 28.8%)를 받았다. 지지율이 44.3%에 그친 러시아 정부(불만 28.4%)보다 높았다. 푸틴은 정치인들 중 66.5%(불신 29.4%)로 가장 높은 신뢰를 받았다. 무엇보다 푸틴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한 헌법 개정 국민투표는 78%의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됐다. 

취임 100일을 넘긴 바이든 행정부는 코로나19 대책과 경제부양 등 국내 정책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미·러 관계는 도널드 트럼프 시대에 비해 후퇴했다. 바이든은 지난 15일 러시아의 지난해 미국 대선 개입 정황이 담긴 정보당국 보고서를 근거로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안을 발표했다. 백악관은 “미국을 해하는 러시아 정부의 행동들에 대해 비용을 물게 하겠다”고 단언했다.

지난 4월21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수감중인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를 지지하는 군중이 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러시아 전역에서 1500여명이 시위와 관련돼 연행됐다. AP연합뉴스

미국이 위협으로 인식하는 양대 전략적 경쟁국가는 중국과 러시아다. 하지만 두 나라가 제기하는 위협의 성격과 강도 및 위협을 대하는 미국의 태세는 확연히 다르다. 중국은 사실상의 글로벌 강대국으로, 러시아는 지역 강대국으로 구분한다. 미국 국가정보국장실(ODNI)이 13일 공개한 연례 위협평가 보고서는 최대 위협으로 중국을 꼽았다. 보고서는 “중국은 경제·군사·기술 분야에서 사실상 (미국과) 동급의 경쟁자(near-peer competitior)이며 국제규범을 바꾸려고 한다”고 적시했다. 미국과 동맹국 간의 관계를 떨어뜨려놓으려는 공세적인 측면도 강조했다. 반면 러시아는 지정학적 위협과 관련해 다분히 수세적이다. 미국이 독립국가연합(CIS) 국가들이 몰려 있는 유라시아에 간섭하는 것을 경계한다. 공세적인 것은 되레 미국이다. 

연례 위협평가 보고서 이틀 뒤에 공개된 미국 정보협의회(NIC)의 ‘글로벌 트렌드 2040’ 보고서 역시 중국과 러시아가 서구의 대안으로 내놓는 모델이 극명하게 갈린다는 점을 강조했다. 보고서는 “중국은 공산당의 권력독점과 사회통제 및 사회주의 시장경제, 특혜 무역 등 현 시스템을 글로벌 차원에서 확대하려고 하는 반면, 러시아는 전통적인 강대국 지위를 확대하고 유라시아를 러시아의 망토 안에 두려는 의도가 강하다”고 구분했다. ODNI의 자문기구인 NIC가 4년마다 발행하는 글로벌 트렌드는 향후 20년의 세계를 내다보는 전략 보고서이다. 두 개의 보고서는 공히 미국과 러시아의 이해가 충돌하는 지역으로 유라시아를 지목하고 있다. 그 핵심에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확대 문제가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월 21일 모스크바의 마네슈 중앙전시장에서 올해 연방의회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크렘린궁 홈페이지

냉전시대 소련으로부터 서유럽을 방어하기 위해 결성한 나토는 당초 12개 회원국을 현재 30개국으로 늘렸다. 러시아는 통독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나토를 확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점을 들어 나토 회원국이 늘어날 때마다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미국은 옛 바르샤바 조약국이나 CIS 국가들을 러시아로부터 떼어내 나토에 가입시키거나, 친러 정권을 친서방 정권으로 돌려놓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많은 경우 민주주의 지원을 명분으로 시작, 이른바 ‘피플 파워’를 거치는 수순이었다. 2003년 조지아의 장미혁명과 2년 뒤 키르기스스탄의 튤립혁명 등 각국의 민주화 시위를 꽃에 비유했지만, 내막은 러시아를 옥죄려는 중앙정보국(CIA)의 공작 혐의가 짙다.

현재 서구와 러시아 사이에 완충국가는 사실상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밖에 없다. 그 와중에 발생한 것이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분리였다. 러시아는 나토의 동진과 유라시아의 친서방화에 무력 사용으로 맞서왔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 입장에서 유라시아는 전략적으로 필수적인 ‘가까운 외국(近外·Near Abroad)’이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최근 10만여명의 육군과 흑해함대를 동원해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17일 벨라루스 민족주의자들을 동원해 ‘색깔혁명’ 시나리오에 따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을 제거하려는 쿠데타 기도를 사전에 적발, 모스크바에서 그 주모자들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탈냉전 뒤 끊임없이 확장을 해왔다. 2017년 몬테네그로가, 2020년엔 북마케도니아가 가입했다. 러시아 서쪽의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 러시아 남쪽의 흑해변 국가 조지아를 가입시키면, 러시아 포위가 사실상 완성된다. 밝은 녹색으로 표시된 국가가 현 가입국이다. 나토 홈페이지

 

미·러 관계가 지금과 같은 추세로 악화일로를 걷는다면 바이든 행정부 앞에 놓인 숱한 지정학적 갈등은 해결이 더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미국 지도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러시아에 대해 모욕적인 공개발언을 하고 있다.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은 위협평가 보고서 공개 뒤 “러시아는 죽어가는 강대국이기 때문에 위험하다. 상처를 입은 채 구석에 몰려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바이든은 3월 ABC방송 인터뷰에서 질문 끝에 한 말이기는 하지만, 푸틴을 “살인자(killer)”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러시아가 과연 미국 안보에 위협이긴 한 건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직후인 2014년 5월 서방의 군사개입 가능성을 배제했다. 러시아는 미국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가할 우려가 없는 ‘지역 강국(regional power)’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적어도 미·러 관계에서는 러시아의 언어가 더 점잖다. 푸틴은 21일 연방의회 국정연설에서 “오늘 연설은 대부분 국내 문제에 할애하고, 안보 문제는 말 그대로 몇 마디만 하겠다”면서 “누구도 (러시아가 그어놓은) 레드라인을 넘을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러시아의 대응은 대칭적일 것이며 신속하고 단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푸틴은 연설 다음 날 우크라이나 접경의 러시아군을 철수시켰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오른쪽)과 데니스 슈미갈 우크라이나 총리가 지난 2월9일 브뤼셀의 나토 본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나토는 이날 우크라이나와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벨로루시와 함께 러시아와 나토권 사이에 있는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나토 홈페이지

올해 미국의 위협평가 보고서가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한껏 강조했지만, 기실 군사적으로 미국과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는 러시아뿐이다. 바이든이 취임 한 달도 안 된 2월 초 러시아와 서둘러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의 5년 연장에 합의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협력이 아쉬운 분야는 뉴스타트 연장뿐이 아니다. 이란과 시리아는 물론 한반도 평화 역시 더 멀어진다.

소련이 미국에 치명적인 위협이던 1970년대, 미국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중국과의 데탕트로 전략적 삼각관계를 완성했다. 뒤늦게 후회하고 있지만, 어쨌든 냉전에서 승리케 한 신의 한 수였다. 중국이 진정 미국에 존재론적 위협이라면, 미국이 모욕하는 대신 껴안아야 할 국가는 정해져 있다. 중국이 실제로 위협을 느낄 국가는 인도, 호주, 일본이 아니다. 푸틴은 중국이 아닌, 미국과의 밀월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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