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한국과 일본에 핵위협을 가해올 경우 미국은 괌 기지에 배치한 핵폭탄을 한반도로 이동시켜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일은 이 과정에서 핵무기 동원을 놓고 미국과의 협의에 참여하고, 핵무기 이동작전을 돕는 역할을 맡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 발설한 한·미 간 '확장억제' 협의 내용을 토대로 짚어본 대응 방향이다. 북한은 1일 발표한 당 중앙위 전체회의 결정문에서 남한을 '명백한 적'으로 규정하고 '전술핵무기의 다량생산과 핵탄 보유량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선언했다. 북한의 공세적 대남 핵전략과 한·미가 논의하는 초유의 핵 협력이 맞물려 그렇지 않아도 먹구름이 형성된 올해 한반도 안보 기상도에 불확실성을 더한다.
통상 '핵우산'으로 불리는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는 미국이 핵 위협을 받는 집단안보 동맹 또는 양자 동맹을 미국의 핵전력으로 방위하겠다는 약속이다. (미국 공군 독트린 3-72) 지역적으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한국, 일본, 호주 등이 해당한다.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는 지난 3일, 신년 첫 언론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언급한 확장억제 개정 논의가 진행 중임을 확인했다. 이에 따르면 한·미의 확장억제 개정 논의의 분수령은 지난해 11월 14일 프놈펜 한·미 정상회담이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바이든 대통령과 윤 대통령이 캄보디아 회담 뒤 효과적이고 조율된 일련의 시나리오를 계획하라고 지시했다면서 "윤 대통령이 어제 분명하게 언급한 것은 바로 양국 (협상)팀이 들여다보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도 캄보디아 회담을 거론하면서 북한의 핵무기 사용 경우를 포함해 몇 가지 시나리오에 대한 대응 방안을 양국 차관급 협의체인 확장억제전략협의그룹(EDSCG)에서 논의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윤 대통령은 "미국도 상당히 긍정적인 입장"이라고 말했지만, 백악관과 국무부는 이에 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11·14 프놈펜 한·미 정상회담 뒤 "윤 대통령이 보다 강력하고 효과적인 확장억제 체제가 구축될 수 있도록 바이든 대통령이 계속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고 밝혔다. 백악관도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확장억제를 더 강화하기 위한 '추가 조치(additional steps)'를 찾아보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었다. 정상 간 논의는 이 단계에서 끝났고, 이후 양국의 차관급 협의체인 EDSCG가 협의를 이어오고 있다.
미국의 확장억제는 1990년대 초 틀이 잡힌 것이기 때문에 미국 내에서도 현실에 맞게 개선할 필요성이 꾸준하게 제기돼왔다. 무엇보다 북한과 중국의 핵 위협이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확장억제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신뢰가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한·미 프놈펜 정상회담 뒤인 지난해 12월 1일 중앙일보-CSIS 포럼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프놈펜에서 윤 대통령 및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한 약속의 핵심은 "핵 억제력 의사결정을 한국, 일본과 더 협력적으로 하겠다는 점"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민감한 핵무기 문제에 대해 동맹과 더 깊이 협의하고, 동맹의 관련 소프트웨어(프로그램) 및 하드웨어(무기)를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이 논의에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설리번은 이어 "정상 간 레벨에서 EDSCG로 이어지는 집중 협의를 통해 북한의 핵 위협과 갈수록 커지는 중국의 전략적 위협에 모두 대응할 수 있는 미국의 능력을 동맹에 확신시키기 위해 단계를 밟고 있다"고 강조했다. 설리번의 말은 미국이 핵 단추를 누르기 전 한·일과 협의하는 방안과 핵무기 전개 및 그 절차를 검토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미국의 방침은 지난해 10월 27일 발표된 2022년 미국 핵태세보고서(NPR)의 내용과 맥이 통한다.
'2022년 NPR'의 공개본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핵 위협의 주체로 중국과 북한 및 러시아를 지목했다. 보고서는 일본과 한국, 호주를 포함한 동맹과의 협력을 강조하면서 "확장억제 관련 대화를 계속해나갈 것"을 다짐했다. 그러면서 이 지역에 전진 배치된 △전략폭격기와 △이중용도 항공기(DCA) △다른 핵무기의 능력을 검토 과제로 꼽고 있다. 보고서는 유럽에서의 확장억제와 관련해서는 F35A와 B61-12 중력탄을 언급했지만 인·태 지역에선 두루뭉술하게 DCA로만 표기했다. DCA는 핵전쟁과 재래식 전쟁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항공기로, 한국 공군이 보유한 F-35A가 이에 해당한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7월 차세대 전투기(F-X) 2차 사업 대상 기종으로 F-35A 20여 대를 추가 도입키로 결정했다. 전략무기가 아니면서 핵무기를 투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지만, 미국은 현재 동아시아에 핵무기를 배치해놓고 있지 않다. 전역(戰域) 내에 핵무기와 투발수단을 모두 두고 있는 나토와 다른 점이다.
한국과 일본에 핵무기를 배치하는 것은 각각 해당국내에서 강한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커 정치적 부담이 따른다. 특히 '히로시마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일본에서 저항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미국령 괌과 같은 중립적인 지역에 핵무기를 배치하는 방안이 워싱턴의 국방 싱크탱크 '전략·예산 평가센터(CSBA)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CSBA는 2016년 '확장억제 보고서'에서 동아시아 전역 가까이에 핵무기가 배치되지 않으면 유사시 동맹국에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를 주기 어렵다면서 괌 배치를 권고했었다.
미국 조야의 논의를 보면 B-2나 B-52가 괌에서 핵무기를 적재, 한반도 상공에 등장할 때 우리 공군 전투기가 이를 지원하는 스노캣(SNOWCAT) 훈련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중용도 기종이라도 해도 우리 공군 F35A에 핵무기를 적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이 핵무기 최종 통제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브래드 로버츠 전 펜타곤 부차관보에 따르면 현재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는 1991년 조지 H.W. 부시 행정부의 핵무기 철수와 2010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결정에 토대를 두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토마호크 미사일이 수명을 다함에 따라 F-15 및 F-16 전투기로 중력 핵폭탄을 투하하는 체제로 전환했다. 두 가지 모두 북한과 중국의 핵 위협이 달라진 지금의 수요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면서 나토식 핵전력과 재래식전력의 '적절한 혼합(appropriate mix)'을 통해 동맹의 핵전략을 다듬어야 한다고 권고했었다. 설리번이 말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업그레이드는 이를 위한 준비로 해석된다. (2020년 11월 4일 스팀슨센터 기고글 '핵무장을 한 북한과 살기, 악화한 위협 환경에서의 억제력 결정')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에 대한 불안이 한·일에서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북한은 이미 2017년 11월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여기에 중국의 공세적인 국방전략에 따라 핵 위협이 갈수록 커지면서 한국과 일본에선 자체 핵무장론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에 안심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능력을 갖추면서 미국이 유사시 워싱턴이나 뉴욕에 앞서 서울이나 도쿄를 방어할 것이냐는 딜레마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냉전 초기 '미국이 뉴욕에 앞서 파리를 지켜줄 것인가'하는 의문은 프랑스의 자체 핵무장으로 귀결됐다. 미국 조야에서도 확장억제 공약을 개정할 필요가 계속 대두돼온 연유다.
어찌 됐건 신년 벽두부터 국민과 미국 조야를 모두 놀라게 한 윤 대통령의 '미국 핵전력 공동기획·공동연습' 발언이 차관급에서 논의 중인 사안을 미리 공개한 것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미국은 확장억제 전략에 관한 한 극도의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한다. 바이든이 지난 1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기자의 질문에 단호하게 "노(No)"라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한·미 양국의 새로운 확장억제 방안의 윤곽은 올 상반기 제4차 EDSCG 협의에서 드러날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 괌 기지 핵무기 한반도 이동작전 지원할 듯 < 외교안보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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