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외교' 광폭 행보로 새해 여는 기시다 내각 < 외교안보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기시다 후미오 일본 내각이 신년 초부터 광범위한 안보 외교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일 안보 협의를 통해 일본이 동아시아 안보의 '주춧돌'임을 확인하고, 영국과 상호파병 협정을 체결하는 등 글로벌 포석을 놓고 있다. 13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대단원의 매듭을 짓는 수순이다.
기시다 내각의 안보 외교는 달라진 정세를 평가한 국가안보 전략을 먼저 수립하고 미국 및 우방과 조율, 확대하는 순서로 진행되고 있다. 새해 업무보고에서 여전히 한반도에 국한된 시야를 확인케 한 윤석열 정부 외교·안보팀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기시다 총리는 11일 런던에서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상호접근협정(RAA)을 맺었다. RAA는 상호연합훈련(합훈)과 인도적 필요 때 각각 상대방 군대의 펴견 절차를 쉽게 한 것으로 군인에 대한 입국심사 면제와 탄약반입 절차 간소화 등이 포함됐다. 유럽연합(EU) 탈퇴 뒤 영국의 국제적 역할을 강화하려는 '글로벌 브리튼' 전략과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안보 외교의 촉진자 역할을 하려는 일본의 전략이 맞아 떨어진 결과다. 일본은 지난해 호주와도 유사한 협정을 체결했다.
기시다 내각에 이번 주는 'G7 주간'이자 '아메리카 주간'이다. 9~12일 프랑스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영국, 캐나다 정상과 각각 양자 회담을 하고 13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대좌한다. 2021년 10월 취임한 기시다 총리의 첫 방미이다. 미국에도 미·일 외교·국방장관의 2+2 회담(11일, 워싱턴), 인도·태평양 비즈니스 포럼(12일, 도쿄)에 이어 백악관 정상회담이 열리는 이번 주는 '일본주간'이다.
새해 첫 미·일 정상회담이 주목되는 것은 동아시아 안보전략의 방향을 가늠할 중요한 계기이기 때문이다. 미·일 정상이 마지막으로 만난 건 지난해 11월 14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다. 이후 일본 정부의 국가안보전략·국가방위전략·중기방위력정비계획(2023~27) 등 3개 안보문건 승인이 12월 16일 있었다. 미국은 10월 국가안보전략(NSS) 및 국방전략(NDS)을, 12월엔 중국 군사보고서를 각각 발표했다. 양국은 달라진 정세 평가를 담아 공동의 안보전략을 조율한다.
일본의 신국가안보전략은 특히 적국이 미사일로 일본을 공격할 조짐이 감지되면 1차로 통합미사일방어(IAMD) 체계로 요격을 시도하고, 실패하면 '적기지 반격'을 명시해 전수방위의 근간을 바꿨다. 반격할 가상의 적은 중국과 북한, 러시아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양국의 최신 전략을 놓고 실행 방안을 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앞서 양국 외교·국방장관(2+2)은 11일 안보협력회의(SCC)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2015년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에 기초해 작성한 미·일 방위협력지침의 개정도 논의됐다.
미·일은 안보 협의에서 우선 위협에 대한 인식을 일치시켰다. 일본의 국가안보전략은 중국→북한→러시아 순으로 위협을 설정했다. 이는 북한→중국 순으로 위협을 적시했던 2013년 안보전략에서 중심이 중국으로 바뀐 것이다. 북한을 '종전보다 한층 중대하고 긴박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가장 급박한 위협으로 중국을 지목했다. 센카쿠열도 영유권 분쟁과 대만 무력통일 등 현상 변경시도, 해상교통로 안전위협 등 3가지 위협을 인식한 결과다. 중국을 ‘미국의 유일한 경쟁자’이자, '압도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한 NSS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안보전략과 관련해 두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우선 진보·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한국의 국가안보전략엔 '중국'이 없거나 생략돼왔다. 북한을 정조준, 시야가 좁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도 교역과 먼바다의 안전에 초점을 두었을 뿐 중국은 물론, 유라시아 대륙을 포함하지 않고 있다.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중요하다"는 두루뭉술한 언급에 머물렀다.
일본 안보전략이 북한을 최우선 위협으로 간주한 시기(2013~2022)는 미국이 북핵을 '가장 급박한 현안'으로 설정했던 시기와 겹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로부터 가장 급박한 안보 현안으로 북한의 위협을 인수받았다면서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서둘렀었다. 한국은 '중재자' 역할을 맡았었다.
두 번째는 동아시아 안보 협의에서 '한국'의 역할이다. 미·일 정상의 가장 큰 의제는 '동맹의 현대화(국무부)'이다.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의제가 한·미·일 안보협력이다. 한국은 위협 인식의 우선순위가 미·일과 다른데다가 아시아에서 호주와 일본에 밀리는 동맹이라는 이중의 제약을 안고 있다.
호주는 미·영과 핵잠수함 동맹(AUCUS·오커스), 미·영·캐나다·뉴질랜드 등 앵글로 색슨 정보동맹(Five Eyes)을 맺고 있다. 일본이 호주에 이어 영국과 안보협정을 맺은 것은 오커스 참가국들과 협력공간을 넓힌 것이다. 미국 입장에선 위협 인식이 같은데다가 미국을 축으로 하는 아시아전략에 이중, 삼중으로 연결된 일본을 중국을 압박할 제1의 주춧돌로 여기는게 자연스럽다.
역설적으로 북핵이 한·미·일 3국의 최우선 순위가 아닌 한, 한국은 안보 관련 미국의 우선협상 대상국이 되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가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을 안보의 양대 축으로 삼음에 따라 미·일 입장에서 한국과의 협의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부차적인 차원에 머무른다. 컴퓨터 용어로 설명하면 이미 설정된 값, 즉 디폴트다. 미·일 안보협의회의 뒤 발표된 공동성명은 한·미·일 군사협력을 미·일·호주 협력 뒤에 배치했다.
미·일 정상은 또 확장억제(핵우산) 전략 개선방안 논의가 예상되지만 발표를 하더라도 원칙적인 표명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미국과의 차관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가 없다.
기시다 내각의 '안보 외교' 광폭 행보와 달리 지난 11일 윤석열 대통령 주관으로 열린 국방부 및 외교부 업무보고에서는 새로운 안보 위협에 대한 통합적이 비전이 잘 안보인다. 한국형 3축제계, 우주·사이버·전자기 작전수행능력 강화가 골자다. 전술핵이 포함된 대남 '비대칭 확전'을 선언한 북한의 위협을 반영했다고 해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과 발표내용이 대동소이하다. 북한 무인기의 침투와 관련한 책임 인정 및 지휘부 문책도 없이 종래대로 상당한 예산이 투입될 과제들을 나열하는 데 그친 인상이다.
'글로벌 중추 국가'와 '가치 외교'를 전진 배치한 외교부 업무보고에도 안보와 통합된 비전을 찾기 힘들었다. 주목되는 대목은 국방, 외교부 모두 ‘수출 역군’을 자임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방부는 '세계 4대 방산수출국'으로의 도약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선포했고, 외교부는 경제안보·과학기술과 함께 세일즈 외교에 방점을 두었다. 일본을 비롯한 주요국이 목전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장래의 대만 해협 위기로 대표되는 글로벌 안보 환경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것과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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