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은 24일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그룹의 '무장 반란'의 여파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일단 러시아 내부 상황인 데다 향후 전개 방향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섣부른 개입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우크라이나 전선에 미칠 영향 역시 불투명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부는 러시아의 혼란을 반겼지만 반란이 하루만에 정리되면서 무색해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러시아의 반란 사태와 관련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통제력 상실이 입증됐다며 서방의 무기 지원을 거듭 촉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이번 사태를 두고 "오늘 세계는 러시아의 보스가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목격했다. 완전한 혼돈이었고 예측 가능성의 완전한 부재였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 만에 그들은 백만 단위의 도시 여러 개를 잃었고 모두에게 러시아 도시를 장악하고 무기고를 탈취하는 게 얼마나 쉬운지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그들에 맞서 단결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백악관은 이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영국, 프랑스, 독일 정상과 긴급통화를 갖고 러시아 상황에 대한 논의를 갖고, 추후 전개를 주시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앞서 미국 국무부는 23일 토니 블링컨 장관이 이날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영국 등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 및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와 통화를 갖고 러시아 상황을 의논했다고 밝혔다.
"적의 적은 같은 편"이라지만, 바그너그룹과 러시아 군수뇌부 간의 '적전 분열' 상황을 보는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입장도 편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수천기의 핵무기를 보유한 러시아의 불안은 자칫 핵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제기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의 목표는 러시아의 힘빼기일 뿐이다. 러시아의 정정불안이 자칫 동유럽 및 독립국가연합(CIS) 지역 국가들의 불안으로 이어져 민족분규의 소용돌이에 빠진다면 미국과 서방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또 바그너그룹은 '미국의 적'이자, '유럽의 적'이기도 하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1월 21일 바그너그룹을 광범위한 잔혹 행위와 인권유린을 하는 '초국가적 범죄기구'로 규정하고, 추가 제재를 부과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바그너그룹은 심각한 범죄 활동으로 초국가적인 위협을 제기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재무부의 추가 제재를 예고했었다.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같은 달 22일 텔레그램 메시지를 통해 커비 조정관을 상대로 "바그너그룹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분명히 밝혀달라"고 공개 질의했었다.
미국은 2017년부터 바그너그룹와의 교역을 중단하는 제재를 부과하고, 지난해 12월에는 무기 금수조치를 취했다. 미국 사법당국은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한 혐의로 프리고진을 정식 기소한 상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시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문제를 조사한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는 2018년 2월 프리고진이 2014년부터 페이스북과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미국 소셜미디어(SNS)에 침입해 미국 사회의 분열을 조장했다고 발표했었다.
바그너그룹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시리아, 리비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수단, 모잠비크, 말리 등에서 활동을 해왔다. 유럽연합(EU)은 2021년 12월 바그너그룹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바그너그룹은 북한과도 무관치 않다. 미국 정보기관은 지난해 11월부터 북한이 바그너그룹에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는 것으로 의심해왔다. 커비 조정관은 1월 20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북한과 러시아를 오가는 열차 사진을 공개하면서 북한 무기를 적재한 것으로 의심되는 러시아 열차 사진을 공개했다. 북한은 보병용 로켓과 미사일을 제공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외무성은 이를 전면 부인했고,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한 러시아 대사도 지난 5월 24일 러시아 국영 리아노보스티 통신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무기를 충분히 갖고 있다"면서 부인했다.
푸틴은 24일 오전 대국민연설을 통해 러시아 대통령과 군통수권자, 러시아 시민의 한 명으로 반란군을 '러시아의 적'으로 규정하고 로스토프나도누 지방의 상황 안정을 위한 결정적인 행동을 지시했다. 프리고진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과도한 야망과 개인적 이해'가 반란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프리고진은 처음부터 '반푸틴'이 아닌, 러시아 군수뇌부를 상대로 항명을 했었다. 바그너그룹이 모스크바로 진군하다가 푸틴 정부와 극적으로 타결, 벨라루스로 향하게된 배경이다.
앞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23일 독일 비스바덴의 미군 유럽사령부에 설치된 우크라이나 안보지원그룹(SAG-U) 회의를 주재했다. 바그너그룹의 반란이 일어나기 직전에 열린 회의에서는 SAG-U와 국제 공여국 조정센터에 참여하는 22개국 대표가 참석했다. 스톨텐베르크 총장은 "참가국들이 제공하는 훈련과 조언이 전장에서 매일매일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가 자국을 방어하는 데 필요할 때까지 도와줄 것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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