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는 26일 다시 일상이 돌아왔다. '무장 반란'을 일으켰던 용병 기업 바그너그룹과 이름이 같은 '바그너' 상표의 산딸기가 온라인 쇼핑몰에 다시 등장했다. 굴착기로 파헤쳐졌던 모스크바 남쪽 도로가 다시 포장되고 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이날 오전 9시를 기해 모스크바 일원에 내렸던 대테러 조치를 철회했다." 르몽드와 블룸버그 통신을 비롯한 외신이 전한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풍경이다. FSB는 24일 바그너그룹이 모스크바로 진격하자 대테러 조치를 공표했었다.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그룹 대표의 '무장 반란'이 러시아 정부와의 극적 타협으로 하루 만에 진정된 뒤 겉으로는 평온한 모습이다. 하지만 사건의 파장과 향후 러시아 안팎에 미칠 여파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프리고진은 25일 바그너그룹 무장병력이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 시내를 떠난 뒤 일체의 공개 발언을 내놓지 않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공개 석상에 모습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외면적인 평온과 달리 용병부대의 '모스크바 진군'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일어난 만큼 러시아 지도부 내에서 모종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국방부는 26일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 우크라이나에 파병된 러시아 군부대를 방문하는 영상과 사진을 공개했지만, 시간과 장소가 특정되지 않았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국방부는 24일에 이어 25일에도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의 상황 보고서를 내놓았다. 최신 보고서는 우크라이나군이 도네츠크주 크라스니 리만과 도네츠크주 남부, 자포리자 방면 등에서 공세를 취했지만 모두 격퇴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군은 프리고진의 무장 반란 중에도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포격 및 미사일 공격을 계속했다.
바그너그룹이 어떠한 저항도 받지 않고 로스토프나도누의 지역 군사령부를 접수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이 지지를 보낸 것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시리아 내전은 물론 우크라이나 바흐무트를 지켜낸 영웅의 이미지가 남아 있음을 말해준다. 동시에 국방부의 관료주의에 대한 국민적 반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바그너그룹은 총병력이 5만 명에 달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는 2만 5000여 명이 참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말 바그너 부대가 철수하고 정규군에 물려주기 전까지 바흐무트 전투에서 9개월 동안 우크라이나군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Z 애국자'로 불린 배경이다.
프리고진은 그러나 격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국방부와 잦은 갈등을 빚었다. 지역 언론 인터뷰와 자체 제작 동영상을 소셜네트워크(SNS)에 유포해 국방부와 군 수뇌부를 집중 성토했다.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지명, 바흐무트 방어에 필요한 탄약을 적시에 공급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특히 거병 직전인 지난 23일에는 "쇼이구 장관이 우크라이나 전선에 있는 바그너부대의 후방을 로켓으로 공격할 것을 명령했다"라면서 "쇼이구를 징벌할 테니 러시아군은 저항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바그너 용병들의 진군은 "군사 쿠데타가 아닌, 정의의 행진이다"라고도 주장했다.
프리고진과 러시아 정부의 극적인 타협으로 유혈사태를 막은 것은 그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충성을 거두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또 누구보다 SNS에 밝은 그가 진군 상황을 시시각각 공개하면서 무장 반란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희박함을 발견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23일 텔레그램 동영상에서 "국방부가 러시아 사회와 대통령을 기만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친 침공'을 하게 했다"고 주장, 푸틴이 강조해온 침공의 명분을 전면 부정했다. 간접적으로 푸틴의 권위에 도전한 것이다. 푸틴은 2000년 집권 이후 국내외 어디에 있건 배반자에 대해 용서한 적이 없다. 푸틴이 결국 프리고진과 쇼이구를 모두 단죄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러시아 정보기관이 반란 조짐을 사전에 감지했음에도 푸틴 정부가 즉시 대처하지 않은 점도 의문으로 남는다. 미국 정보당국은 푸틴이 최소한 하루 전에 프리고진의 행동을 보고받은 것으로 파악한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전했다. 미국 정보기관은 이달 중순부터 바그너그룹이 군 수뇌부에 저항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파악했으며, 이후 백악관과 의회를 상대로 잇달아 브리핑을 해왔다고 포스트는 전했다. 이달 중순부터 바그너그룹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면, 이는 프리고진이 지난 14일 국방부와 계약을 거부한 것과 관련이 있을 개연성이 있다. 니콜라이 판코프 국방부 차관은 지난 10일 모든 민병대를 상대로 이달 말까지 계약을 체결하라고 통지했었다.
프리고진의 반란 과정에서 1대의 항공기와 6대의 헬기가 바그너 용병들에 의해 격추돼 타고 있던 13~20명의 정규 군인이 사망한 것으로 러시아 군사 블로거들은 파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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