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왜 또 화염에 휩싸였을까. 닷새째 프랑스를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시위사태는 사회적 통합이라는 해묵은 도전을 상기시켰다. 법과 질서를 옹호하는 우파와 사회 정의를 주장하는 좌파의 대립으로 보이지만, 현실은 보다 구체적이다. 방리유(도시 외곽)에 정착한 이민자 가정의 사회경제적 차별과 인종 문제가 뒤섞인 치명적인 칵테일이 저변에 흐른다.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 6년 동안 한층 강화된 치안법이 방아쇠를 당겼다.
프랑스 한복판에서 발생한 미국식 사건
지난 27일 알제리계 나엘(17)이 파리 서쪽 외곽 낭테르에서 교통 검문을 피하다가 경찰의 총격에 숨진 뒤 프랑스를 혼란과 공포, 분노로 뒤흔든 사건은 2일 다소 수그러들었다. 나엘의 장례식은 1일 낭테르의 한 모스크에서 가족과 친지만 모인채 비공개로 진행됐지만, 소셜네트워크(SNS)로 사건 정황이 유포되면서 격렬한 반발을 일으켰다. 당일 밤부터 5일 동안 밤마다 파리와 마르세유, 리옹, 그르노블, 니스 등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와 방화, 약탈이 발생했다. 시위대는 상점과 슈퍼마켓, 담뱃가게 등을 약탈하고, 유리창을 깨뜨렸다. 특히 30일 밤에는 자동차 1350대와 건물 234채가 불 타는 등 2560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북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이 많은 마르세유에서는 특히 혼란이 심해 무기고가 탈취당하고,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했다.
2일 프랑스 내무부에 따르면 국립헌병대(GIGN)와 국립 및 지방경찰관 4만 5000여명을 배치해 30일 밤부터 폭력 상황이 진정될 기미를 보였다. 1일 밤 719명이 연행됐고 45명의 경찰관과 헌병이 다쳤다. 30일 밤 1311명이 연행되고, 경찰관과 헌병 79명이 다친 것에 비해 상황이 나아진 것은 맞다. 내무부는 29일 밤부터 GIGN과 경찰, 소방 당국을 총동원해 전국에 배치했다. 프랑스는 헌병이 경찰과 함께 치안 유지 임무를 수행한다.
운전자 사격 허용한 2017년 치안법
이번 사건을 계기로 차량 검문 때 경찰에 운전자 사격을 허용한 2017년 치안법 개정이 새삼 주목을 끌고 있다. 과거 경찰이 정당방위 차원에서 차량을 향한 위협사격만 할 수 있었다. 법 개정은 2015년 파리 연쇄 테러와 2016년 니스 트럭 테러로 우려가 커지면서 여야를 막론하고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됐었다. 그러나 시행 과정에서 경찰이 인종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사살된 13명의 운전자는 대부분 흑인이나 북아프리카(마그레브)계 주민이었다.
방리유라고 불리는 도시 외곽은 이민자 출신 가정이 밀집 거주하는 지역이다. 낭테르는 파리 북부 생드니에 비해 치안이 좋은 방리유이지만, 공동주택이나 기간시설 등이 낙후돼 '2등 국민'들의 거주지역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프랑스 정부는 방리유의 생활 여건 개선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인구수 대비 예산 배정 규모가 방리유는 다른 지역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도시 전문가 장-루이 보를루) 단순히 법령과 방리유의 경제적 조건으로만 접근하면 더 중요한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르몽드는 1일 자 사설에서 "분노와 공포에 답해야 한다"면서 '사회통합'의 문제를 환기했다. '분노'는 거리에 나선 저소득층 청년들의 정서를, '공포'는 치안 불안정을 걱정하는 일반 시민들의 정서를 각각 표현한다. 르몽드는 저소득층 청년들과 경찰의 관계에 오랫동안 형성된 편견과 결함을 주목했다. 청년들이 경찰을 만날 때마다 부정의와 모욕감을 느낀다면, 청년들이 어떻게 공화주의적 평등에 신뢰를 갖겠느냐는 질문이다. 경찰관의 직무 관행을 바꿀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동시에 방리유 노동 계층의 생활 여건 개선 노력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노’와 ‘공포’ 사이, 어정쩡한 프랑스 '중도'
마약 거래를 비롯한 사회 불안 요소가 커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필요한 치안 조치를 취하더라도 경찰에 대한 기본적인 불신이 해소되지 않으면 '낭테르의 비극'이 언제라도 재발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르몽드 사설은 교묘하게 인종주의를 비껴갔다. 미국에서나 일어날 사건이 프랑스에서 일어난 것도 낯설지만, 프랑스 주류언론이 인종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 것도 이례적이다. 이민 반대와 인종주의를 주장하는 극우 정당이 명실공히 제2 정당으로 자리 잡은 변화의 일단을 보여준다. 문제는 결국 정치로 회귀한다.
기회 있을 때마다 '시민적 무례'를 비난하면서 상호존중의 문화를 강조해온 마크롱 대통령의 한마디는 이번에도 상황을 덧들이게 했다. 마크롱은 사건이 발생한 27일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해 분노를 자아냈다. 두 차례 비상 각료회의 뒤에는 "아이들을 집에 두는 건 부모들의 책임"이라면서 "국가가 그들의 부모들의 일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말을 내놓았다.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준엄하게 국민을 꾸짖은 마크롱은 시위가 확산하던 지난 28일 부인과 함께 앨튼 존 고별공연에 참석한 사진이 SNS에 공개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당초 2~4일 독일 국빈 방문을 연기하고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국민적 반발을 야기했던 연금개혁 반대 시위가 지난 4월 고비를 넘긴 뒤 그가 천명한 '100일 계획'의 끝자락에 발생한 이번 사건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불투명하다. 마크롱은 대혁명 기념일인 오는 7월 14일까지 100일 동안 중산층 감세안과 여가학교 대규모 지원 등을 포함한 개혁조치를 이행하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사건 발생 직전엔 마르세유 북쪽 외곽의 저소득층 지역 라부세린느를 찾아 사회적 불평등 개선 및 도시 재건 정책을 발표했다.
마크롱 100일 계획 차질
프랑스 검찰이 나엘을 사살한 경찰관을 의도적 살인 혐의로 구금하고 신속하게 수사에 착수한 조치가 경찰노조의 반발을 사면서 또 다른 논란을 빚고 있다. 지난해 대선에 국민연합(RN) 후보로 나섰던 극우 지도자 마린 르펜은 "공화국 대통령이 사법당국이 할 일을 하도록 허용하지 않는 게 놀라울 뿐이다"라고 말했다. 마크롱의 '전진하는 공화국(LREM)'당이 참여한 중도정당연합인 르네상스의 스테판 세준느 대표도 "개인의 잘못이 매일 공화국에 복무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25만 경찰관과 헌병의 불명예로 이어져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랑스 앵수미즈의 다비드 귀로드 하원의원은 트위터에 "(사태)진정이 아닌, 정의를 촉구한다"면서 방리유 사람들은 비디오(증거)가 없었다면 경찰이 거짓말을 했을 거라는 점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시위와 혼란이 장기화할 지는 아직 미지수다. 최근의 연금개혁 반대 시위와 휘발유 인상이 도화선이 된 2018년 노란조끼 시위는 각각 특정 사안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었다. 사회통합 문제에서 비롯된 이번 시위는 2005년 방리유 소요에 비유된다. 파리 북부 클리시수부아의 이민자 마을에서 경찰의 단속을 피해 도망가던 미성년자 2명이 전압기에 감전돼 사망한 뒤 두달 동안 전국적인 시위와 혼란이 계속된 사건이다. 방리유 소요는 2006년 봄 최소적응수당(CPE) 시위로 다시 불붙었었다. 4만 5000명의 헌병과 경찰을 동원한 것 외에 마크롱 정부가 어떻게 풀어갈 지 주목된다. 마크롱은 일요일인 2일에도 엘리제궁에 관계부처 장관들을 소집해 대책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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