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가 11일부터 이틀 동안 리투아니아 수도 빌니우스에서 열린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500일(7월 8일)에 즈음해 열리는 이번 회의의 핵심 의제는 두 개다. 우선 군사적, 정치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돕는 '지원 패키지'를 확정한다. 두 번째는 유럽을 세 부분으로 나눠 군사적 억제력 및 국방력 강화방안을 채택한다. 탈냉전 이후 각국의 국방예산 감소와 전쟁 수행력 쇠퇴로 취약해진 군사동맹을 '전쟁하는 조직'으로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반대해온 헝가리와 튀르키예가 막바지에 동의하면서 이번 회의를 거치면서 회원국은 32개국으로 늘어난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식 방위 협력?
옌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7일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가진 정상회의 사전 기자회견에서 "동맹 정상들은 나토가 단결돼 있으며, 러시아의 침략은 실패할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내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지원 패키지에는 나토와 (군사적) 상호운용성을 담보하기 위한 몇 년간의 지원 프로그램과 우크라이나와의 정치적 관계 격상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정치적 관계 격상은 회의 기간 중 처음 열리는 '나토-우크라이나 협의회'를 말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참석,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계획 및 전쟁 지원 확대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출국 전인 9일 CNN방송 인터뷰에서 말한 대로 "전쟁 중 우크라이나를 가입시킨다면, (나토 조약 5조의 집단방위 공약 탓에) 나토가 곧바로 러시아와 전쟁을 벌여야 해서" 일정 시간 뒤에 검토될 것으로 관측된다.
우크라이나의 취약한 민주주의 기반도 나토 가입에 장애물이다. 바이든은 CNN에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 자격을 갖추는 동안 미국이 이스라엘에 제공하는 방식과 같은 안보협력을 논의해왔다고 소개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다자 틀 안에서 양자간 안전보장을 협상한다는 개념"이라면서 다양한 형태의 군사 및 물자 지원, 정보공유, 사이버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든이 제안한 이스라엘 방식의 안보협력은 나토 조약 4조에도 근거가 있다. 회원국 중 영토주권이나 정치적 독립 또는 안보가 위협에 처했을 때 회원국들이 함께 협의한다는 내용이다. 리처드 하스 외교관계협회(CFR) 회장이 최근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제안한 방식이다.
무기·포탄 확보 위해 방위산업 증진키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전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할 가능성도 높다. 지난 6월 21일 런던에서 열렸던 '우크라이나 재건 회의'에서 각국은 EU 가입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주요 7개국(G7) 국가들을 중심으로 각국 정부와 기업이 지원 약속을 내놓았었다. 나토 정상회의에서 확정될 '지원 패키지'에 관련 내용이 담길지도 관전 포인트다.
나토의 방위력 증강 계획은 탈냉전 이후 최대규모이다. 나토 관내 3개 지역 방어계획을 포함, 억제력 및 국방력 강화를 위한 조치를 결정한다. 우크라이나 지원 무기 및 포탄 부족 사태에서 노출된 무기 생산 능력을 높이는 '방위산업행동계획(DPAP)'도 채택한다.
미국 출신 크리스 캐볼리 나토 최고사령관이 주도한 국방력 강화방안은 유럽과 북미의 나토 관내를 북부·중부·남부로 나눠 수립한 방위계획이 핵심이다. 여기에 우주 및 사이버 작전과 특수부대가 하부 계획으로 추가된다. 이코노미스트 2일 자 보도에 따르면 북부 전구는 대서양과 유럽 극지방을 포함하며, 중부 전구는 발트해 및 중부유럽~알프스 지역의 방위를 맡는다. 남부 전구는 지중해·흑해 지역을 담당하며 러시아 및 테러리즘의 위협으로부터 방어가 목적이다. 회원국에서 차출할 30만 명의 나토군이 담당하며 10만 명은 유사시 10일 이내, 20만 명은 한 달 내 부대 편제를 마친다.
올해 나토 국방예산 8.3% 증가
러시아의 위협을 겨냥한 동부 전구에는 최근 몇 주 동안 병력 동원 훈련이 진행됐다. 이코노미스트의 2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독일, 영국은 자국의 대대 규모 병력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로 이동시켜 여단급으로 재편하는 '변함없는 주피터(Steadfast Jupiter) 훈련'을 벌여왔다.
각국이 국방예산을 국내총생산(GDP) 2% 이상으로 높이는 목표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스톨텐베르그는 이날 발표된 국방예산 예상에 따르면 올해 실질 증가율이 8.3%에 이르며, 이는 9년 연속 증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유럽 회원국들의 국방예산은 전년에 비해 13%가 늘어난 3450억 달러(약 446조 원)였다. 10년 내로 국방예산을 'GDP 2%+'로 늘리자는 2014년 결의를 충족하는 국가는 현재 미국과 영국, 폴란드, 그리스,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 7개국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정도만으로도 2014년 이후 나토 회원국들의 국방예산 증가액은 4500억 달러에 달한다.
독일은 2024년, 프랑스는 2025년에 목표를 달성할 계획이다. 최고 우등생은 러시아와 접경국인 폴란드와 발트 3국이다. 올해 중 폴란드는 4%를, 에스토니아는 3%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은 '2%+'의 목표연도 다음 해인 2025년부터는 ‘2.5%+’를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폴리티코)
'도쿄 연락사무소' 논의는 미룰듯
우리의 관심은 나토와 인도·태평양 지역, 특히 중국과의 관계다. 나토는 지난해 마드리드 정상회의에서 채택한 전략개념(Strategic Concept)에서 중국을 '총체적인 도전'으로 규정하고 인태 국가들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해왔다. 한국을 비롯해 동아시아 국가들이 참가하는 연합훈련에 영국을 비롯한 나토 회원국들의 참가가 잦아진 게 그 방증이다. 그러나 스톨텐베르그가 추진해온 나토의 '도쿄 연락사무소' 신설은 프랑스의 반발에 부딪혀 이번 회의에서는 거론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나토가 북대서양이라는 지리적 범위 너머로 확장한다면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라면서 반대해왔다. 스톨텐베르그는 지난 6월 "(프랑스뿐 아니라) 어느 나라도 찬성하지 않고 있다"면서 도쿄 사무소 설립이 벽에 부딪혔음을 토로했다. 도쿄 사무소는 나토의 역외 파트너인 인태 지역 국가들과의 군사협력을 위한 구상이다. 그러나 "중국의 굴기에 따른 안보적 결과로 주변국들이 위협받고 있다"면서 여지를 남겼다. 그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시아에서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면서 나토와 인태지역의 협력 강화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나토는 지난해 정상회의에 인태 지역에서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태국·필리핀 정상을 초청했지만, 태국과 필리핀은 이번 회의에 초청하지 않았다. 나토는 이번에 참석하는 한·일·호주·뉴질랜드 등 인태(IP) 4개국과 관계를 '국가별 동반관계 협력 프로그램(IPCP)'에서 '국가별 맞춤형 동반관계 계획’ (ITPP)'으로 격상한다. 북한 핵무기가 제기하는 위협에 대해서는 선언적인 언급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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