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8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한·일 관계를 사실상의 '준 군사동맹' 관계로 규정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 "미국은 정상회의에서 일본과 한국이 공격을 받는 경우 서로 간의 협의를 의무화할 것을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일 간 유사시 안보 협의 의무화를 공동성명에 담는다면 국제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약은 아니지만, 미국 입회하에 '정치적 선언'을 하는 것으로 양국 정권교체 뒤에도 연속성을 갖게 된다. 미국이 이를 추진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의 대일 유화조치로 한·일 관계가 급진전한 계기에 양자 안보 협력으로 영속화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패트릭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관련 질의를 받고 "말할 게 더 많이 있지만, 정상회의를 준비하는 백악관보다 앞서 나가지 않겠다"라며 보도 내용을 실상 시인했다. 라이더 대변인은 "우리는 이 지역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인 일본과 한국 간의 의사소통을 촉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다"면서 "더 많은 내용이 남아 있다"고 말해 한·일 간 유사시 안보 협의 의무화 외에도 새로운 내용이 논의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우리 정부 관계자도 2일 "아직 정상회의 공동성명 협의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부정확할 수 있다"라면서도 FT의 보도 내용을 부인하지 않았다.
미국은 한·미·일 정상회의 장소를 미국 대통령 주말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로 정하면서 삼자 관계의 역사적인 전환이 될 것을 예고해왔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달 28일 정상회의 개최를 알리는 성명에서 3개국 정상들이 "삼자 관계의 새로운 장(章)을 축하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캘리포니아 로스가토스 대선 모금행사 연설에서 "2차 대전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 일본이 한국과 화해하고 있다"라면서 한·일 관계 개선을 대표적인 외교 치적의 하나로 내세운 바 있다.
한·미·일 정상은 지난해 11월 13일 북한 미사일 경보정보 실시간 공유를 골자로 한 '프놈펜 성명'을 발표했지만, 당시엔 '전례 없는 수준의 3국 공조'에 그쳤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한·일이 조약상의 군사동맹이 아니더라도, 영속적인 안보 협력 파트너로 묶음으로써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을 순조롭게 전개하려는 의도이다. 조약과 공동성명(코뮈니케)은 법적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공동성명에 안보 협의를 '의무(duty)'로 규정하는 것은 문제 소지가 다분하다. 공동성명 자체가 법적 구속력이 있는 외교문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기에 재차 확인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공동성명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선언에 그치기 때문에 양국 정상이나 정부 간 공동문서에서 매번 확인해야 한다. 미·중 관계에서 상하이 코뮈니케를 비롯한 수교 당시 문건들을 계속 확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과 일본의 정권교체 뒤 이를 확인하지 않는다면, 그 순간 소멸된다. 그러나 한국 및 일본과 특수관계인 미국 대통령과 함께 발표한 선언이기에 정권교체 뒤에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한·일 간 군사동맹은 법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다. 일본은 특히 헌법상 '전수방위' 원칙과 미·일 안보 조약에 따라 미국을 제외한 국가와 집단 군사동맹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이 영국·호주·필리핀 등과 상호 파병군 지원 협력을 상호접근협정(RAA)으로 두루뭉술하게 규정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 헌법도 안보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제60조)을 국회에 주고 있다. 여소야대 국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백악관 성명이 확인하듯 한·미, 미·일 동맹의 기존 체계를 유지한 채 한·일 간 군사협력을 공동선언 형식으로 규정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국가 간 공동성명이나 합의는 조약이 아니더라도 기구화 방식으로 제도화할 수 있다. 캠프 데이비드 회의 뒤 한·일 국방·외교장관이 참여하는 '2+2'회의의 정례화 방식으로 구현될 가능성이 높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는 이 밖에도 삼국 정상 간 핫라인 설치를 포함해 삼국 연합군사훈련, 사이버 안보, 미사일 방어 및 경제 안보와 관련한 협력 조치들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FT) 확장억제 관련 합의도 예상된다. 윤 대통령은 '워싱턴선언'에 따른 한·미 핵협의그룹(NCG)에 일본의 참여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지난 5월 한·일 정상회담 뒤 "핵 억제력에 대한 협의와 2+2를 포함한 한·미·일 확대 억제 협의체 등 여러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 4월 26일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은 한·미·일 안보 협력의 강화 방안으로 △북한 미사일 경보정보 실시간 공유의 진전 △대잠수함전, 해상 미사일방어훈련의 정례화 △해양차단훈련 및 대해적훈련 재개 △재난대응, 인도적 지원 관련한 추가훈련 검토 등 한·미·일 안보협력의 강화 방안을 담았다. 크리스토퍼 존스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FT에 "일본과 서울이 안보적으로 서로 엮여 있음을 확인하는 공동성명은 역사적"이라면서 (한·미·일)의 미래의 지도자가 번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과 일본은 유사시 미군 증원군의 출발 기지가 될 일본 내 7개 유엔사 후방 기지를 통해 이미 안보적으로 엮여 있다. 한·일 안보 협의가 어떤 형식으로든 문건화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악화된 동아시아 안보 환경에 또 하나의 불안 요소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으로선 인도·태평양의 억제력 강화 효과가 있겠지만, 중국과 러시아에는 안보 위협 요소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독일 마셜 펀드의 중국 전문가 보니 글레이저는 FT에 "바이든 행정부가 구축하고 있는 모든 형태의 (안보) 연합체 중에서 미·일·한의 축(axis)은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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