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와 개최 일정이 비슷했다. 태풍 탓에 차질을 빚은 것도 같다. 1971년 8월 2일부터 10일까지 일본 아사기리(朝霧) 고원에서 열렸던 13회 세계 잼버리 대회 이야기다.
세계 연맹, 성공한 대회로 평가
개최 당일엔 날씨가 청명했지만, 대회 사흘째인 4일 태풍 올리브가 일본 열도를 강타했다. 그러나 비슷한 것은 여기까지였다. 후지산이 바라보이는 고원지대의 풀밭에 야영장이 있었기에 폭염 피해도, 위생상의 문제도 없었다. 의료시설은 주일 미군이 제공했다. 태풍이 상륙하고도 모두가 피난처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87개국 대회 참가자 2만 3758명 중 미국 대표단을 비롯한 1만 6000명이 48시간 동안 야영장을 떠나 대피시설에 머물러야 했다. 물에 잠긴 저지대에 텐트를 쳤던 대원들만 대피소로 갔다. 나머지 대원들은 대회장을 떠나지 않았다. 일본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69명이 사망했지만, 야영장에서 보고된 사고는 없었다.
스카우트운동 세계본부(WOSM)는 "도중에 태풍이 발생한 대회로 기억되지만, 일본 스카우트 연맹의 탁월한 비상계획과 임시 숙소에서 잊을 수 없는 환대를 베풀었다"고 기록했다. "후지산을 배경으로 한 동양적 풍경을 배경으로 실시된 많은 영내 활동이 다채로웠다"고도 적었다. 어디에도 '실패'는 없었다.
새만금 잼버리 대회는 어떻게 기억될까. 아마드 알엔다위 WOSM 사무총장은 성명에서 "(대회전) 때아닌 호우와 전례 없는 폭염, 이제는 태풍. 100년이 넘는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역사에서 이처럼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한 건 처음"이라고 언급했다. 알엔다위 총장은 주최 측의 입장을 고려해 외교적인 표현에 그쳤지만, 각국 언론은 연일 매서운 비판을 쏟아냈다. 급기야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도 소환됐다.
"한국정부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이 문제"
가디언은 9일 '최악의 악몽, 한국이 끔찍한 스카우트 잼버리를 숙고하고 있다'는 기사에서 한국은 최근 몇 년 동안 몇 개의 안전 참사가 있었다면서 304여 명이 사망한 2014년 세월호 참사와 159명이 숨진 지난해 이태원 참사를 거론했다. 서강대 전상진 교수의 말을 인용해 두 번의 참사와 새만금 잼버리의 공통점을 찾기 어렵지만, 재난 관리를 책임지는 한국 정부의 조직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여전히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의 느낌과 이미지가 다른 고려 사항보다 우선시되는 전통적인 태도가 존재한다면서 여전히 상명하복의 위계에 따라 운영되는 경우가 많고, 이견을 표현하면 저항에 부딪힌다고 말했다.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의 판단과 명령, 또는 성향에 따라 시스템이 무시되고 훼손될 수 있는 게 이러한 시스템의 현실인 것 같다"는 진단이다. 그는 "규정이 중요한 조직에서는 시스템이 탄탄해 구성원들의 전문성이 강조되지만, 반대로 규정이 무시되는 조직은 시스템이 약하고, 구성원들의 충성이 존중받는다"고 짚었다. 새만금 잼버리의 파행을 초반부터 소개해온 가디언의 라파엘 라시드 기자가 문제의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나온 분석이다.
대표적 실패 사례가 된 새만금
라시드는 "일단 먼지가 가라앉고, 젊은이들이 집에 돌아가면 한국은 이번 실패를 초래한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문제를 진정으로 조사하거나, 아니면 정치적 내분에 굴복하거나,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라는 관측으로 끝을 맺었다. 새만금 잼버리를 다룬 외신 보도 중에서 한국 사회에 대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기사였다.
BBC 방송은 "사후 부검(autopsy)이 이미 시작됐다"면서 대회전부터 문제점이 제기됐지만 개선되지 않은 이유를 추적했다. 그러면서 "한국 당국은 코로나19 대유행 뒤 첫 번째 세계 잼버리가 투자와 관광객의 달러를 가져올 것을 기대했지만, 그 대신 한국 언론으로부터 '국가적 망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꼬집었다. 새만금 산업단지의 경제적 효과에 급급했던 한국 사회에 던진 통렬한 진단이 아닐 수 없다. '선배 스카우트 대원'이자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은 지난 2일 개영식에 참석하기 전 '새만금 이차전지 투자협약식'에 먼저 들러 "새만금의 무한한 잠재력을 확인했다"고 말한 바 있다.
새만금 잼버리는 벌써 세계 스카우트 역사에서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매트 하이드 영국 스카우트 연맹 대표는 "(조직위는) 개선을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라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실패의) 교훈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영국의 한 부모는 로이터 통신에 "대회를 조직한 사람들은 이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현미경 아래 놓여야 한다"고 말했다. 2027년 차기 잼버리 대회 개최국 폴란드에 "한국의 실패에서 배우라"는 충고도 나온다.
국가는 실패해도, 국민은 실패하지 않았다
국가는 철저히 실패했지만, 국민은 그렇지 않았다. 15세 딸을 대원으로 보낸 한 학부모는 "대회는 재난의 연속이었지만, 딸아이는 이제 '정말 안전한' 대형 호텔로 숙소를 옮겨 돌봄을 받고 있다"면서 한국인들이 베푼 친절을 소개했다. 그는 로이터 통신에 상점에선 스카우트 대원들에게 할인을 해주었고, 호텔 빵집에서는 큰 케이크를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딸아이는 한국인들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친절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모르는 한국인이 다가와 '미안하다'고 말했다"는 참가 대원들의 전언도 있었다.
새만금 잼버리는 두 번의 올림픽과 한 번의 월드컵을 치러내면서 고양됐던 국가 이미지와 국민적 자존심을 한순간에 날려 버렸다. 불행히도 라시드가 내다본 두 개의 시나리오 중 우리는 이미 정쟁을 선택한 게 분명해 보인다. 벌써부터 책임을 전 정권과 전라북도에 돌리는 작태가 행해지고 있다. 오죽하면 한 인터넷 사이트에 "태풍이 몰려온다. 전 정권은 대비하라"는 풍자가 나오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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