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정상은 18일 미국 매릴랜드주의 대통령 주말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첫 단독 3자 정상회의에서 장소의 역사성을 한껏 강조했다. 한반도 거주민의 관점에서 생뚱맞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의미 부여였다. 장소와 날짜가 주는 역사성이 먼저 다가온다.
'허명'에 기댄 장소효과 노림수
먼저 별장 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정상회의를 마친 뒤 "역사적인 장소에서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었다"라면서 한미일 관계의 새로운 시대를 선언했다. 이어 대통령으로서 캠프 데이비드에서 주최한 첫 정상회의였음을 강조하면서 "다음 시대의 협력을 시작하기에 더 적합한 장소를 생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곳은 새로운 시작과 새로운 가능성의 힘을 오랫동안 상징해온 장소"라고 정의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는 이제 3국이 자유, 인권, 법치의 공동가치를 바탕으로 규범 기반의 국제질서를 증진하고 역내 안보와 번영을 위해 중심적 역할을 수행할 것을 천명한 역사적 장소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바이든의 말을 받아 "이곳 캠프 데이비드에서는 수많은 역사적 회담이 열렸다. 이번 회의로 그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발행하게 된 것은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회담의 역사적 의미가 되려면 '숙성기간'이 필요하다. 회담 결과가 그날로부터 얼마나 지속성 있게 구현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1953년 별장으로 개조된 뒤 캠프 데이비드가 종종 세계의 관심을 끈 회담의 장소였던 것은 맞다. 1978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와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을 초청해 '중동평화합의'를 끌어낸 장소로 명성을 얻었다. 중동의 두 지도자가 12일 동안 통나무집에서 기거하며 우의를 다진 끝에 도출한 결실이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도 2000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간에 13박 14일에 걸친 회담을 열었다. 하지만 아무런 합의도 끌어내지 못했다. 중동 평화는 여전히 머나먼 길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극우 유대주의는 역사를 퇴행시키고 있다. 명성이 허명이 된 지 오래다.
MB의 씁쓸한 기억
한국민에게 캠프 데이비드는 별로 의미 있는 역사적 장소가 아니다. 기껏해야 이명박 대통령(MB)의 '해프닝'과 그 이후 닥쳐온 역풍을 연상시키는 곳이다. 2008년 4월 18일 한국 대통령으로 처음 캠프 데이비드에 초대받은 이명박 대통령은 유난히 감격했는지 골프 카트 운전을 자청했다. 22만 평의 너른 영내를 이동하는 데 종종 골프 카트가 활용됐지만, 손님이 운전을 자청한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었다. 그날은 카트 운전대를 잡고 해맑게 웃었던 MB에게 같은 날 타결된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 탓에 임기 중 최악의 위기가 배태된 날이었다.
5월 초부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가 요원의 불길처럼 퍼졌다. MB는 결국 5월 22일 대국민 사과 담화문을 발표하고 30개월 소의 수입 금지를 자율규제 방식으로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상회담은 사후적으로 실패했다. 부시는 같은 해 7월 서울 또는 제주를 방문 정상회담을 잇기로 했지만 무산됐다. 워싱턴 포스트가 가십란에 MB는 '부시의 푸들'로 불렸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이어 '애완견(lap dog) 도전자'였지만, 무산됐다고 풍자한 게 그즈음이었다. 다행히 이번에 3국 정상은 노타이 정장 차림이었고, 골프 카트는 등장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는 MB 정부와 연속성이 있다. 당시 MB를 수행해 캠프 데이비드 한·미 정상회담에 참석했던 보좌진의 상당수가 윤 대통령을 보좌했다. '외교안보 실세'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제1차장과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 등이다. 공교롭게 이날 국회 청문회를 받았던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도 MB 시절 언론장악을 기획했던 장본인이다. 자연스레 골프 카트 운전대를 잡았던 'MB의 웃음'을 연상시킨다.
핵 오염수 방류·강제동원 양보 뒤 성사된 회의
캠프 데이비드를 방문한 MB와 윤석열 대통령의 더 중요한 공통점은 국민적 분노를 자아내는 통 큰 양보를 상대국에 건넨 뒤 회담에 임했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국민 상당수가 걱정하는 후쿠시마 핵 오염수 해양 방류를 용인해왔다.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도 무시했다. 'MB의 쇠고기'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오염수 괴담'이라 매도하는 것 역시 비슷하다. 윤 대통령은 정상회의 공동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일본, 한국을 포함해 국제사회의 책임 있고 투명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핵 오염수 방류와 무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보고서에 무한 신뢰를 표하면서 일본 정부의 해양 방류를 묵인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정상회의 사흘 전 광복절 경축사는 국민의 분노 게이지를 한층 높였다.
일본이 한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짓밟은, 한 맺힌 세월로부터 해방된 날이건만, 일본을 "자유·인권·법치라는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함께 연대할 국가"라고 추켜세웠다. 수많은 독립운동의 선조들의 피가 엉긴 자취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현실정치에서 한·일 협력이 필요하다면 양국 모두 비슷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기시다는 그들에게 패전일인 이날을 맞아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했다. 기시다 내각의 각료는 버젓이 귀신들 앞에 직접 참배했다.
이번 한미일 정상회의가 역사적인 기억을 남긴 것은 맞다. 그러나 공동성명을 비롯한 3개의 공식 문건 때문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국민적 자존심과 분노를 무시한 채 미국과 일본의 국익을 위해 성심을 다한 장소로 기억될 것이다.
절체절명의 순간
더욱 끔찍한 것은 정상회의 날짜였다. 하필 1976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북한의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났던 날이기 때문이다. 기시다 총리는 몰라도 한국과 미국 대통령은 이날을 기억해야 했다.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3자 군사협력 강화를 주요 목적으로 한 회의였다면 더더욱 그렇다. 북한군 병사들이 도끼와 몽둥이로 미류나무 가지를 자르던 미군 장교 2명을 참혹하게 살해하고 나머지 9명을 다치게 했다. 더 심대한 위기를 야기한 날이기도 하다. 사흘 뒤 한반도가 전쟁 직전의 상황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주한미군과 국군은 '데프콘 3호'를 발령하고 모든 준비를 마친 뒤 문제의 미류나무를 절단하는 '폴 버니언 작전'을 벌였다. 전군이 출동 준비를 갖춘 상태에서 바다에는 항공모함 미드웨이 호가 대기하고, 하늘에는 핵무기를 적재할 수 있는 B-52 폭격기가 비행하는 가운데 치러진 작전이었다. 북한군이 조금이라도 무력 대응을 했다면, 한반도가 다시 전화에 휩쓸릴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다행히 북한군이 침묵하고, 김일성 주석이 사과문을 전달함으로써 가까스로 일단락된 사건이다.
각국 정상의 일정상 8·18 택일이 불가피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적어도 8·18 도끼만행사건의 피해자를 추념하고, 한반도에서 언제라도 우발적인 계기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교훈을 되씹어보는 짧은 시간은 가졌어야 했다. "한미일 협력의 새 장을 열었다"는 말에 매몰된 정상회의 일자와 장소의 몰역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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