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중추 국가'를 지향하는 동아시아 분단국의 '1호 영업사원'이 다시 해외 영업에 나섰다. 21일부터 중동의 주요 교역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를 상대로 정상외교를 펼친다. 공교롭게 가자지구 안팎에서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는 시기와 겹쳤다.
BIE 투표 11월 28일
특히 오는 11월 28일 파리 국제박람회기구(BIE) 제173차 총회에서 2030 세계박람회(World Expo·엑스포) 주최도시 선정을 앞두고 한·사우디 간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이뤄진 국빈 방문으로 이와 관련한 막후 논의도 관심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2일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야마마 궁전에서 모하메드 빈 살만(MBS) 사우디 왕세자(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3박 4일의 일정에 돌입했다. 이번 방문은 지난해 11월 MBS의 방한에 대한 답방이다. 올해가 한국 건설업체들이 처음 사우디에 진출한 지 50주년이라는 점이 강조됐다. 대통령과 MBS는 이날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미래지향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심화, 발전시키기로 다짐했다. 이어 외교관·관용 여권 사증면제협정을 체결하고 4개의 상호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 MOU는 지난해 서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전략적 파트너 관계 위원회 설립과 수소 오아시스 이니셔티브(구상), 통계 분야 협력 이행 프로그램, 식품·의료제품 분야 협력 등에 관한 것이다.
대통령은 이어진 한-사우디 투자포럼 축사에서 "사우디와 함께 한 역사가 곧 대한민국 산업 발전의 역사"라면서 "한국과 사우디가 손을 잡으면 강력한 시너지(동반상승효과)를 만들 것"이라고 역설했다. 또 사우디가 투자하는 네옴·키디야·홍해 등 메가 프로젝트에서 양국 기업 간 협력을 다짐했다. 네옴시티 건설을 비롯한 메가 프로젝트는 산유국 경제에서 첨단 과학기술과 관광 인프라가 융합된 경제로 변모하려는 사우디 국가 발전 전략 '비전 2030'의 일환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22일 현지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포스트 오일(원유 이후)' 시대 사우디의 산업 발전을 이루기 위한 최적의 파트너가 우리나라"라고 강조하면서 "메가 프로젝트에 우리 기업들이 적극 참여하도록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다"고 전했다.
칼자루 쥔 건 빈 살만
사우디가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홍해 인근에 건설 중인 네옴시티는 5000억 달러(약 677조 원)의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경기도 2배 면적(2만 6500㎢)의 첨단도시로 4~5단계 발주가 진행되고 있다. 폭이 서울~강릉의 직선거리인 170㎞에 달한다.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등 국내 기업들이 공사에 참여하고 있다. 키야르는 리야드 인근에 전남 조성 중인 엔터테인먼트 시티 프로젝트이며, 홍해 프로젝트는 90여 개의 섬과 해변을 휴양 및 레저 지역으로 개발하는 사업이다.
국내 기업들의 네옴시티 건설 참여 확대는 막대한 이권이 걸린 문제로 '1호 사원'이 팔을 걷어붙이고 영업에 나서야 할 사안이다. 동시에 부산과 리야드가 이탈리아 로마와 함께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2030 엑스포가 걸려 있어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네옴시티를 비롯한 사우디의 메가 프로젝트와 리야드 2030 엑스포는 모두 MBS가 국가적 명운을 걸고 추진하는 '비전 2030'의 양대 목표다. 그 성공 여부에 MBS의 정치적 미래도 걸려 있다. 사우디 입장에선 동전의 양면이지만, 우리로선 모두 좇아야 할 '두 마리 토끼'와 같은 사안이다.
부산 엑스포는 문재인 정부가 타당성 검토를 한 뒤 2019년 국가사업으로 확정한 것이다. 6개월 동안 160개국 5000만 명이 부산을 방문, 43조 원의 생산유발효과와 18조 원의 부가가치 유발 효과가 기대된다. 50만 개의 일자리 창출도 걸려 있다. 경쟁국을 어르고 달랠 '칼자루'를 쥔 쪽은 MBS이다. 네옴시티 공사 발주를 미끼로 막후에서 엑스포 포기를 종용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네옴시티·부산엑스포 두마리 토끼 잡기?
지난해 11월 그의 서울 방문을 전후해 "네옴시티 공사 수주를 위해 부산 엑스포를 포기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까닭이다. 실제로 MBS의 지난해 방한 길에 한·사우디 기업은 21조 원(290억 달러)의 투자 MOU를 체결하는 등 돈 보따리를 풀었다. 정부는 이러한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활발한 수주 활동을 벌여왔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부산 엑스포 유치에 윤석열 정부가 실패한다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부산·경남 지역 민심이 돌아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양국 모두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이기 때문인지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공개적으로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22일 언론 질문에 "양 정상이 똑같은 마음을 갖고 있을 것"이라면서 "선의의 경쟁을 하되 결과에 대해 서로 축하하고 이후 준비 과정에 충분히 협력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80여 개 회원국이 비밀투표로 결정하는 BIE 총회 선거에서는 1차 투표에서 3분의 2를 득표한 도시가 나오지 않으면, 1, 2위 도시 간에 결선투표를 벌인다. 투표를 한 달여 남긴 현재, 판세는 우리에게 그다지 상서롭지 못하다. 오일 달러와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는 네옴시티 사업 등을 지렛대로 활용하는 사우디가 우세하다는 평가가 많다.
"서로 개최 성공한 측 도와줄 것"
한국은 1차 투표에서 2위를 한 뒤 2차 투표에서 유럽 국가들의 표를 가져올 복안인 것으로 알려졌다. 리야드를 공개 지지한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이탈리아를, 중동과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은 사우디를 밀고 있다. 부산이 1차 투표에서 로마를 꺾는 것도 분명치 않다. MBS는 윤 대통령이 도착하기 하루 전인 지난 20일 리야드에서 걸프협력회의(GCC)·아세안 정상회의를 갖고 아세안의 지지를 확보했다고 사우디 가제트가 보도했다. 사우디의 메가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들의 참가 및 방위산업 협력 등과 같이 정부가 발표하는 협력 내용과 별개로 양국 정상이 2030 엑스포 유치를 놓고 벌이는 경쟁 구도에서 어떻게 막후 가닥을 잡아나가느냐에 따라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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