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격 3주 동안 3257명의 어린이가 숨졌다. 지난해 1년 동안 전세계 분쟁지역에서 사망한 아이들의 숫자를 크게 넘어섰다. 국제 어린이 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이 29일 가자지구 보건부와 이스라엘 당국의 발표를 인용해 밝힌 수치다.
스러지는 아이들
이스라엘의 봉쇄로 전력이 끊긴 가자지구 병원에서 죽어 나간 영아 희생자도 포함됐다. 요르단강 서안에서 33명, 이스라엘에서 29명이 숨졌다. 가자지구에선 전체 희생자 7703명 중 어린이가 40%를 웃돈다. 지역 별로 보면 가자지구가 3195명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파괴된 건물 잔해에 깔려 있어 시신이 확인되지 않은 실종된 어린이 1000여 명은 제외한 수치다.
다친 아이들의 숫자 역시 가자지구가 6360명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요르단강 서안 180명, 이스라엘 74명이다. 가자지구의 다친 아이들의 사망률 또한 전례 없이 높다. 제대로 치료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유엔에 따르면 가자지구 병원의 3분의1 이상이 이스라엘의 ‘완전 봉쇄’ 탓에 전력과 의약품 공급이 끊겨 치료 활동을 중단했다.
유엔 사무총장의 ‘어린이와 무력분쟁 보고서’에 따르면 가자지구 어린이 희생자는 지난해 세계 24개국에서 죽어 나간 아이들의 수(2515명)를 크게 웃돈다. 2020년 22개국에서 2674명이, 2019년엔 4019명의 아이들이 스러졌다. 이스라엘군은 27일 지상군 작전을 확대하고, 28일 이른바 전쟁의 두 번째 단계 진입을 시작한다고 발표, 아이들의 희생이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세이브더칠드런과 국경없는 의사회(MSF), 유니세프를 비롯한 구호단체들이 즉각적인 휴전을 거듭 촉구하는 이유다.
사람은 외부와 단절될 때 공포가 더 커진다. 이스라엘군이 27일 지상군 작전을 시작하면서 가자지구 전체에는 34시간 동안 전화와 인터넷이 끊겼다. MSF는 29일 "통신 단절로 대부분의 현지 직원들과 연결이 단절됐다"면서 "잔해더미에 깔린 사람들과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 및 부상자와 병자 등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MSF는 이날 누리집에 "이스라엘군의 전례 없는 강도로 퍼붓는 공격 탓에 가자 지구가 사실상 지도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가자지구 외과 의사 모하메드 오베이드는 이미 지난주 초 "마취제가 없이 팔, 다리 절단 수술을 하고 있다"고 MSF에 보고했다.
유엔 인도주의조정국(OCHA))은 29일 가자지구 병원의 3분의 1과 기초진료소의 3분의 2가 폐쇄됐다면서 최소 1000명의 신장질환자와 9000명의 암환자, 130명의 인큐베이터 속 신생아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고 전했다. 이날 현재 가자지구 건물 6179채가 파괴됐고, 주거용 건물의 45%인 2만7781채와 교육시설 40% 이상인 221곳이 파손됐다. 식량은 11일 치만 남았고 식료품점은 5일 내로 재고가 동이 난다. 빵 한 개를 배급받기 위해 5~6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수돗물은 분쟁 전의 8%만 공급되고 있다.
가자주민 고사작전
이스라엘이 의도적으로 조성하고 있는 인도적 재앙에 국제사회는 어느 정도의 긴급 구호물품을 전달하고 있을까. 지난 7일 사태 발생 뒤 폐쇄됐던 가자지구와 이집트를 잇는 라파 통로가 재개된 지난 21일 식수와 식량, 의약품 등을 적재한 트럭 20대분이 처음 전달됐고, 다음 날 17대분이 통과했다. 지난 26일 전달된 47대분의 구호물품이 가장 많은 분량이었지만, 이마저 코끼리 비스킷이다.
지난 7일 하마스의 선제공격 전 평일 하루에 건네진 구호물품은 트럭 500대분이었다. 이스라엘군이 수도와 전기, 연료 공급을 차단하는 ‘완전봉쇄’ 이전의 평일 하루분의 분량이다. 이스라엘군의 완전봉쇄와 20여 일 동안 계속된 공습과 27일 시작된 지상공격으로 더 많은 구호물품이 필요해졌지만, 구호물품의 물동량은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OCHA는 트럭 20대분이 하루 필요량의 3%라며, 최소 100대의 통과를 촉구했다. 하루 필요량이 666대 분이지만, 일단 100대분(15%)라도 지원해달라는 호소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무시되고 있다.
라파 통로가 이집트-이스라엘 간에 합의 하에 운영되는 것을 감안하면, 이스라엘 측이 의도적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극한상황에 몰아넣음으로써 하마스 무장세력과 일반 주민을 갈라놓으려는 셈법이다. 가자주민에 대한 집단 처벌인 동시에 지상군 전개를 전후해 이스라엘이 의도적으로 조성하는 인도적 재앙이다. 미국은 이에 두 개의 얼굴을 번갈아 보이고 있다. 겉으로는 가자 주민의 인도적 상황에 우려를 표하면서도, 인도주의 국제법보다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늘 우선시한다.
지난 18일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접근 허용을 촉구한 안보리 의장국 브라질의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이유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미국 대사가 밝힌 이유는 "결의안 초안에 이스라엘의 자위권이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결의안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전쟁에도 규칙이 있다"라면서 인도주의적 접근 허용 및 민간인 보호를 호소한 데 부응한 것이었다. 안보리 논의가 겉돌면서 유엔 총회가 27일 인도주의적 접근을 위한 즉각적인 휴전을 골자로 하는 결의안(요르단안)을 찬성 120표, 반대 14표, 기권 45표로 가결했지만, 아무런 구속력이 없다. 캐나다와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은 하마스의 즉각적인 인질 석방을 포함시킨 수정안을 상정했지만 부결됐다. 한국도 동참했다.
안보리는 30일 ‘인도주의적 전투 중지’를 논의할 예정이지만, 러-중과 미국-유럽의 반목으로 결의안 채택 여부는 불투명하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스라엘의 자위권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구호물품이라는 약을 주는 한편으로 치명적인 '병균'을 대량 주사하는 격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30일 기자회견에서 "휴전 요구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마스에 항복하라는 말"이라면서 되레 "각국은 이스라엘이 벌이는 문명의 적과의 싸움을 지지해달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민간인 희생에 관한 언론의 질문에도 "단 한 명의 민간인도 죽을 필요가 없었다. 하마스가 주민들이 교전 지역을 떠나지 못하게 한 탓"이라고 둘러댔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날 현재 이스라엘 탱크 및 장갑차량이 가자지구 서북쪽과 동북쪽 및 동쪽 등 세 방향에서 진입하는 게 목격됐다.
폭스뉴스의 '생명' 걱정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공격으로 희생된 이스라엘 민간인 1400여 명의 희생만 강조하고, 시시각각 늘어나는 팔레스타인 민간인 희생자를 외면한다. 바로 미국 보수우파의 사고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소셜네트워크에서 유포되는 폭스뉴스의 이스라엘 애완동물 보도가 이를 상징한다. 폭스뉴스 바락 레비 세갈 기자는지난 21일 하마스의 테러로 버려진 강아지의 구출 소식을 전하며 "강아지가 아주 두려워했다"고 전했다. 트레이 잉스트 기자는 지난 14일 정착촌에서 주인이 사망해 버려진 애완동물들에게 돌봄이 필요하다는 현지 보도를 내놓았다.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이스라엘 남부에서는 마을마다 (버려진) 애완동물을 대신 돌봐줄 사람을 찾고 있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이 말을 들은 뉴스 진행자는 "강아지가 전쟁의 증인"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세계언론사에 길이 남을 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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