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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압록강 물이 그립다면... 유난히 전쟁-전투 기리는 윤석열정부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3. 11. 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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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6사단. 1948년 6월 14일에 창설된 육군 보병사단이다. 한국전쟁이 벌어지자, 그전까지 "개성에서 점심 먹고, 평양에서 저녁을 먹겠다"며 거들먹거렸던 군 지휘부(채병덕 육군참모총장)와 함께 국군이 궤멸당했지만 6사단은 예외였다. 대통령 이승만부터 일선 사단장까지 저마다 제 살겠다고 도망을 다니던 전쟁 초기, 6사단은 춘천 소양강(제7연대)과 홍천 말고개(제2연대) 일대에서 6일 동안 방어전을 펼쳐 인민군의 진출을 막았다. 유일하게 군대다운 군대 구실을 한, 국군의 귀감이다.

김화종 육군 6사단장이 31일 경기 포천의 사령부에서 압록강 진격 73주년 기념행사 중 '압록강 물'이라고 적힌 수통을 들어보이고 있다. 2023.10.31. 연합뉴스

당시 인민군은 개성 방면 돌파 군과 춘천~홍천 축선 돌파 군이 서울에서 합류할 예정이었지만, 6사단의 고군분투로 계획이 틀어졌다. 그 결과 국군은 한강 이남에 방어선을 구축할 시간을 벌었다. 다른 모든 사단이 사실상 궤멸, 해체된 뒤 재구성됐지만, 6사단은 창군 당시의 편제를 유지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평가한 한국전쟁 초기 6사단의 눈부신 활약상이다.

6사단 제7연대 제1대대는 인천상륙작전 뒤 북진한 국군과 유엔군 중에서 가장 먼저 압록강에 도달한 부대이기도 했다. 1950년 10월 26일 평북 초산에서 인민군 제8사단의 연대급 병력을 격파했다. 감격한 병사들은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아 대통령 이승만에게 전했다. 개전 넉 달 동안 한반도 남단 부산까지 도망 다닌 대통령에게 건넨 위로라기보다 부모 형제 자식을 잃고, 주린 배를 움켜쥐며 낯선 피란지를 헤맸던 국민에게 바친 위로였기를 바란다.

생뚱맞게 한국 전쟁사의 한 단락을 소개하는 까닭은 최근 들어 유독 전쟁을 되돌아보는 행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지난 31일 경기 포천의 6사단 사령부에서 '압록강 진격' 73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6사단 보도자료에 따르면 호국 영령에 대한 묵념과 헌화 및 분향에 이어 압록강 물 헌수 재연식이 열렸다. 전쟁 당시 군장을 갖춘 초산 진격대대 장병이 연막을 뚫고 사주경계를 하며 수통을 사단장에게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수통에는 '압록강 水'라고 적혀 있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사단장은 수통을 번쩍 들며 "압록강 물을 다시 마시자!"라고 말했고, 참석자들은 "마시자, 마시자, 마시자!"를 외쳤다고 한다.

6사단은 그동안에도 매년 사단 역사에서 중요한 이날을 기념해 왔다. 하지만 작년부터 전쟁의 기억을 되살리는 행사가 잦았기에 '시대 흐름'인가 하는 의아심마저 고개를 든다.

 

한반도 거주민은 통상 5년 또는 10년 단위로 꺾어진 해(정주년)에 기념행사를 크게 치른다. 전쟁과 관련, 올해 정주년에 해당하는 날은 7·27 정전기념일 70주년이었다. 정주년도 아닌 올해 전쟁 기념행사가 유독 많아진 것은 대통령실이 '솔선'해 왔기 때문이다. 7·27 부산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열렸던 유엔군 참전의 날·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그럴만한 명분이 있는 행사였다. 건군 75주년을 맞은 국군의 날도 정주년 기념행사(9월 26일)였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 전승 기념식(9월 15일)과 장진호 전투 기념식(10월 2일) 등 정주년도 아닌, 개별 작전·전투 기념식에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었다.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는 유독 전쟁 관련 행사에 진심이다.  군 복무를 하지 않은 대통령답지 않게 호전적인 구호를 자주 외쳐 남과 북이 국제법적으로 전쟁 중임을 굳이 일깨운다. 미군과 유엔군의 존재를 부각하는 것도 특징이다. 국군의 날 시가행진에는 주한미군 300여 명이 의장대가 아닌, 전투부대원으로 처음 참가했다.

올해 정전기념일은 한국과 미국에서 극명하게 다른 장면을 노출했다. 미국은 2009년부터 3만 6000여 명의 미군 전몰자를 추념하는 ‘한국전쟁 참전군인의 정전협정의 날’을 기념일로 정하고 백악관을 비롯한 모든 연방정부 건물에 조기를 게양한다. 온종일 추념하는 날이다. 300만 명이 산화한 대한민국에선 대통령이 짧게 묵념하고 곧바로 자갈치 시장으로 달려가 활짝 웃으며 수조 속의 장어를 손으로 잡는 장면을 연출했다.

윤석열 대통령(가운데)이 건군 75주년 국군의날 시가행진이 열린 2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장병들에게 양손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2023.9.26. 연합뉴스

매년 치러온 6사단의 '압록강 진격' 기념행사가 올해 유독 언론의 관심을 받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2018년 남북 9·19 군사합의서의 효력 정지 또는 폐기를 추진하는 것도 불안감을 조성한다. 대화와 협상으로 평화를 정착시키기는커녕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자세다. 그러나 온갖 전쟁·전투 기념식에 참석, 요란한 말을 늘어놓는 것은 되레 사회 안정을 깨뜨린다. 틈만 나면 전쟁 분위기를 풍기며 언제, 어떻게 ‘글로벌 중추국가’를 만들겠다는 건지 궁금하다.

국군 6사단의 의미 깊은 행사를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그렇지 않아도 곤두박질치는 경제와 불안한 국제정세로 고단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국민을 놀라게 하는 일이 많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힘'을 강조하면서 저변이 확대되는 움직임이다. 6사단의 '압록강 진격' 기념행사에는 이북5도청 평북 지사 및 참전용사, 보훈단체 회원 등 100여 명에 더해 영국군 병사들도 참석했다. 최근 육군 과학화전투훈련단(KCTC)에서 연합훈련을 한 병사들이다. 보훈처에서 승격한 국가보훈부가 중심이 되어 각종 전쟁 행사를 키우고 있는 것 같다.

국군 1사단이 10월 13일 경북 칠곡 다부리에서 연 '다부동 전투 전승 73주기 기념행사'에는 참전용사와 상이용사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제2작전사령부와 경북 칠곡군이 주최한 지난 10월 15일 '낙동강 지구 전투 전승 행사'에도 많은 관람객이 몰렸다. 지난해 10월 18일 강원도 철원 백마고지 전적비 앞에서 9사단이 연 '전승 70주년 추모제'는 그나마 호국 영령의 넋을 추모하고 산화한 전사자들의 명복을 비는 행사로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에서 장어를 직접 손으로 잡아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2023.07.27. 연합뉴스

대통령이 3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강조했듯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무력 충돌 탓에 뒤숭숭한 국제정세다. 국민은 일상적으로 전장의 참상에 노출돼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국가 방어를 책임지는 대통령과 군은 국민에게 안정감을 주어야 한다. 본인들이 노심초사할지언정 국민이 마음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하게 돕는 게 봉급 받는 이유다. 가장 고귀한 총은 사람을 향해 발사된 적이 없는 총이다. 마찬가지로 군복이 보이지 않을수록 국민은 더 평안하다.

한반도 남측 거주민들은 한국전쟁에서 목도했다. 당장이라도 북진 통일을 할듯이 떠벌였다가 정작 전쟁이 나자 누구보다 먼저 도망갔던 대통령을. 무능하고, 못난 군 수뇌부의 진면목도 보았다. 국방은 요란한 말과 현란한 행사로 하는 게 아니다. 물 위의 오리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물밑에서는 끊임없이 대비하되, 겉으로는 태연한 게 국방의 본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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