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방첩사령부령(令)은 특이하게 사령부의 목적(제1조)와 설치(제2조) 다음에 '기본원칙'을 명시한다. '직무'는 그다음에나 나온다. 왜 그래야 했을까. 기본원칙은 두 가지다. 우선 "직무를 수행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관련 법령 및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명토 박았다. 뜯어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국민의 군대'라면 당연히 국민 전체를 섬겨야 하건만 그렇지 않아 왔기에 새삼 원칙 제1항으로 기술했을 게다. 제2항에서 해선 안 되는 행위로 규정한 4가지 금기 역시 불법적으로 해왔기에 굳이 적시했을 터.
6일 국방부가 발표한 후반기 장성급 인사 발표에서 단연 주목되는 건 바로 방첩사령관 인사였다. 여인형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장(소장)이 중장 진급과 함께 방첩사령관에 임명됐다. 육사 48기 중 선두 그룹이지만, 군 경력보다 고등학교 학력이 더 주목받는다. 서울 충암고 출신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9년 후배이자, 김용현 대통령 경호처장(육사 38기)의 10년 후배다.
윤석열 정부 들어 군 안팎에서는 두 개의 풍문이 돌았다. 김 처장이 군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것 같다는 소문과 여 소장이 호가호위하는 것 같다는 소문이 그것이다. 두 가지 다 확인 또는 입증할 방법이 딱히 없었다. 소문이 돈다는 사실이 팩트였을 뿐이다. 이번 인사는 두 개의 소문의 결합이자, 팩트로 한 걸음 다가선 증좌이다. 여 중장의 군 이력은 방첩 업무와 별로 상관이 없다. 장교 시절 주특기가 530(작전)이지만, 육본 차원에서 관리해 온 '정책통'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정보 병과나 수사를 경험한 군사경찰 병과가 제격이다.
통수권자 및 경호처장과 눈에 띄는 학연 관계가 있다면 주요 보직 임명을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객관적인 시선·비판·우려를 깡그리 무시해 왔다. 이번 인사에서도 채 상병 사망 당시 해병 1사단장(임성근 소장)이 거뜬하게 별자리를 유지했고, 지난해 북한 무인기의 서울 상공 비행에 부실 대응했던 강호필 육군 제1군단장은 되레 영전했다. 반성도, 책임도 없는 인사였다. 그러나 여인형 장군의 승진·보직 인사는 뚜렷하게 궤를 달리하는 사안이다. 다른 자리가 아닌, 방첩사령관이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 군이건, 방첩 임무는 기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처럼 통합 사령부 체제로 편제된 곳은 냉전 시대 사회주의 국가나, 전체주의 국가 외에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이 방첩활동을 통한 국민 보호라는 본연의 임무보다 '통수권자 수호'를 위해 온갖 불법과 전횡을 저질러 왔다. 민간인 사찰·고문은 물론 쿠데타의 주역으로 권력의 측근에서 권력의 중심으로 이동한 전력도 있다. 국군보안사(1977)-국군기무사(1990)-군사안보지원사(2018)를 거쳐 3년 전부터 다시 이름을 고쳐 써야 했던 연유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방첩사의 섬김을 마땅히 받아야 하는 국민은 불과 몇 년 전에도 목도했다. 대통령 경호처장-방첩사령관(기무사령관)의 잘못된 만남이 통수권자 수호를 위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박근혜 정부 당시 박흥렬 청와대 경호실장(육사 28기)-조현천 기무사령관(육사 38기) 라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조현천의 기무사는 2017년 7월 위수령과 계엄령 선포를 검토하고 서울과 각 광역자치단체에 동원할 사단과 특수전 부대를 문건에 명시했다. 촛불시위로 박근혜 정권이 흔들리던 시절 '통수권자 수호'를 위해 국민의 군대를 동원하려던 사건이자, 친위 쿠데타 기도의 전형이라 의심할 여지가 충분해 보이는 사건이다.
2016년에는 자유총연맹 회장 선거와 관련한 보고서 작성을 지시하고 기무사 요원들을 동원해 박근혜 대통령 지지 집회를 열게 해 군형법상 정치 관여와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의 혐의를 받고 있기도 하다. 2017년 12월 미국으로 떠난 그는 종적을 감췄다가 지난 3월 29일 귀국, 재판을 받고 있다. 증거를 틀어쥐고 5년 3개월 동안 해외 도피했던 그는 여전히 당당하다. 국민은 그 당당함이 두렵다. 법원은 '증거인멸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고 구속 3달 만인 지난 6월 28일 보석 석방을 허용했다.
군통수권자 대통령의 인사권은 고유의 권한이다. 김용현-여인형 라인이 박흥렬-조현천 라인과 같을 수는 없다. 다만 방첩사(←기무사←보안사)의 DNA가 바뀌었다는 증거가 아직 확인되지 않기에 지레 걱정이 앞선다. 걱정의 빌미는 대통령실이 제공했다. 이번에는 경호처장-방첩사령관의 계선구조를 넘어 대통령에까지 연결되는 견고한 삼각구조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에서 고착된 집권 2년 차, 군 인사에서 충암고 출신 방첩사령관의 존재가 유독 크게 보이는 이유다. 한동수 전 대검찰청 감찰부장에 따르면 검찰총장 시절 대통령이 회식 자리에서 "육사에 갔다면 쿠데타를 했을 것"이라고 말해 깜짝 놀랐다고 증언한 바 있다. (지난 10월 30일 '고발사주 사건' 증인 출석 발언)
국군방첩사령부령 제3조(기본원칙) 제2항이 규정한 4가지 금기는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모든 행위 △이 영에서 정하는 직무 범위를 벗어나서 하는 민간인에 대한 정보수집 및 수사, 기관 출입 등의 모든 행위 △군인 등에 대해 직무 수행을 이유로 권한을 오용·남용하는 모든 행위 △이 영에 따른 권한을 부당하게 확대 해석·적용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모든 행위이다. 정확하게 대한민국 방첩사령부가 46년 세월의 대부분 동안 해온 일들이다. '여인형 방첩사' 출범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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