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북-러 군사협력 위기감 높이면서 대러 외교 왜 손놓고 있나

본문

첩보건, 정보건, 공개되는 순간 가치를 잃는다. 그럼에도 누군가 첩보와 정보를 잇달아 공개한다면 다시 물어야 한다. 왜 공개하는지, 공개해서 누가 이득을 얻는지를 말이다. 이를 위해 정보의 재료와 해석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1일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에서 보고한 데 이어 2일 군 당국이 밝힌 내용을 톺아보는 이유다. 우선 한미일이 한목소리로 경계하고 있는 북·러 국방 협력에 집중해 본다. 마침 2일로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이 지난해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을 건넨다는 정보가 있다"고 밝힌 지 꼬박 1년이 됐다.

미국 행정부가 10월 13일 공개한 이미지. 북한 나진항에서 러시아로 전달된 컨테이너 1000개가 우크라이나 접경의 병기창으로 옮겨지는 경로를 표시했다. 한국 정부는 3주쯤 지나 비슷한 내용을 연일 다시 강조하고 있다. 2023.10.13. AFP 연합뉴스

군·국정원의 잇단 '천기누설'

세계가 무정부 상태로 치달으면서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많아졌다. 북·러 군사협력을 둘러싸고 대한민국이 벌이는 '외교 아닌 외교' 역시 그중 하나다. 우리 당국이 전한 내용은 대략 이렇다.

북한은 지난 8월 초부터 선박과 수송기 편으로 러시아에 10여 차례 포탄 등을 수송한 것으로 파악된다. 나진항에서 러시아 극동 연해주 두나이, 보스토치니 항으로 옮겨진 뒤 열차에 적재돼 우크라이나 접경 티오레츠크 탄약고에 도착했다. 포탄은 약 100만 발이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2달가량 사용할 수 있는 분량이다. 북한은 수요량을 맞추기 위해 군수공장을 전면 가동하고 있고, 주민까지 동원해 탄약상자를 운반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2일 나진항에서 러시아로 건너간 컨테이너 수를 2000개로 추산하고 152㎜ 포탄이라면 100만 발 이상, 122㎜ 방사포탄이라면 20만 발 이상이라고 추정했다. 컨테이너의 부피를 토대로 계산한 거로 보인다. 군 관계자는 "최근에는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지원 정황도 신뢰할 수 있는 '첩보'를 통해 확인했다"고도 전했다. (연합뉴스)

러시아는 반대급부로 우선 북한이 조만간 3차 발사할 군사 정찰위성과 관련한 기술 자문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발사를 앞두고 엔진 발사장치 점검을 비롯해 막바지 점검 작업이 한창이다. 다만 기술과 자금이 여전히 부족하다. 이달 중순쯤 방사포 전문가를 중심으로 구성된 북한 대표단이 러시아를 방문한다는 정보가 있다. 러시아 전투기나 여객기 도입을 위해 비행 위탁교육자도 선발 중이다. 국정원은 △핵잠수함 건조 등 전략기술과 △재래식 무기 현대화 및 △북한 노동자 수용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보고했다.

 

북한의 포탄 제공 문제는 첩보·정보 단계를 넘어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한미일 외교장관은 지난달 26일 공동성명을 통해 북·러 간 무기 거래를 비난했다. 성명은 북한의 포탄 공급은 '기정사실'로, 러시아의 대북 군사기술 제공은 '가능성'으로 각각 거론했다.

 

한미일 외교장관 공동성명은 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민을 상대로 사용할 무기 전달은 일부 완료됐으며, 러시아의 침략전에서 인명 피해를 상당하게 늘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과의 일체의 무기 및 군사기술 거래는 여러 유엔 안보리 제재에 위반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러시아가 북한에 제공할 가능성이 있는 군사기술은 △북한 대량살상무기(WMD)와 관련된 몇 가지 기술 △탄도미사일 △또는 재래식 무기 프로그램을 꼽았다. "이는 한반도는 물론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것인 동시에 북한 WMD에 대한 한미일의 새로운 대응을 필요로 한다"고 역설했다.

북한과 러시아는 즉각 반박했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은 같은 날 담화를 통해 "조로(북러) 관계에 대한 무근거한 비난과 훼손은 곧 유엔 헌장과 공인된 국제법에 대한 부정으로, 침해로 된다"며 일축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이날 "그런(무기 거래) 보도가 많은데 모두 근거가 없는 소문"이라며 부인했다. 그러면서 '증거'를 내놓고 주장할 것을 권고했다.

한미일 공동성명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20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가정을 전제로 경고한 것을 공식 사실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대통령은 연설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지원하는 대가로 WMD 능력 강화에 필요한 정보와 기술을 얻게 된다면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도발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여기까지가 공개된 정보와 주장이다.

 

러시아의 지적대로 백악관이 시작해 1년 동안 반복해 온 북·러 무기(포탄) 거래설은 희한하게 아무런 증거가 없이 반복됐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의 7·27 평양방문과 9·13 러시아 극동 보스토치니 북·러 정상회담을 전후해 정점을 이뤘다. 백악관 주장대로 1년 전부터 북한이 포탄을 제공했고, 최근 100만 발을 건넸다면 그 증거가 있어야 마땅하지만, 여전히 제시되지 않고 있다. 수만, 수십만 발의 포탄이 발사됐는데도 탄피 또는 불발탄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말과 다름없다.

 

북한 포탄은 왜 1년째 발견되지 않나

때마침 우크라이나 정부는 1일 러시아군이 개전 이래 최대 규모로 포격을 퍼부었다고 발표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고르 클리멘코 우크라 내무장관은 이날 소셜 미디어에 "지난 24시간 동안 적군이 10개 지방의 118개 마을에 포격을 가했다. 개전 이후 가장 많은 도시와 마을이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가디언은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독립적으로 확인된 게 아니라는 단서를 덧붙였다. 굳이 단서를 붙인 까닭은 자명하다. 10·7 하마스의 선제공격으로 촉발된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국제사회의 주의가 분산되자, 관심을 끌기 위한 발표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 포탄의 탄피나 불발탄을 찾는 건 솔밭에서 바늘 찾는 것처럼 어려운 게 아니다. 152㎜ 포탄은 지름 15.24㎝, 길이 1.54㎝, 무게 40㎏이다. 더구나 러·우 군이 대치하고 있는 전선은 우크라이나 동·남부를 중심으로 600마일(965㎞)에 걸쳐 있다. 불발탄이나 탄피를 찾기에 어려움이 없는 환경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보 전문가는 "백악관일지라도 전쟁 중의 발표는 사실일 수 있지만, 전략적인 흘리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한미일 외교장관까지 나서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을 보면 무시할 수 없는 주장이다. 북한 포탄이 아직 본격적으로 사용되지 않은 채 탄약창에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첩보와 정보를 정치적으로 활용한 사례는 일부 드러났다. 백악관·국무부·국방부가 일제히 북·러 정상회담 및 양국 간 무기 거래를 경고(9월 5일)한 다음 날 '더러운 폭탄'으로 불리는 에이브럼스 탱크용 열화우라늄탄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한다고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사전 기획된 인상이다. 지난 7월에는 세계 123개국이 금지하는 집속탄이 우크라이나군 전달된 뒤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의 방북과 이를 둘러싼 북·러 무기 거래설이 순차적으로 이어졌다. 각국 여론의 초점을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이동했다. 미국 고위당국자들이 선제적인 정보·첩보 흘리기의 목적을 털어놓은 적도 있다. 북·러 무기 거래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흘림으로써 강력한 사전 경고로 북한의 의도를 좌절시키는 효과를 노렸다는 말이다.

그러나 가정을 전제로 한 정보 흘리기의 단계에서 스모킹 건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단계로 옮겨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상태다. 다만, 증거가 공개될 때까지 계속 유령처럼 떠돌 수밖에 없다.

 

러시아, 첨단군사기술 제공 가능성은 희박

러시아의 반대급부는 포탄 거래에 비해 개연성이 훨씬 낮다. 여전히 가정 또는 추측 단계이다. 특히 국정원 보고 중에서 핵잠수함 건조 등 전략기술 제공은 그야말로 상상의 영역이다. 인류 역사상 핵잠수함 기술이 국가 간 이전된 경우는 1958년 미·영 상호방위협정에 따라 미국이 영국에 제공한 게 유일한 사례다. 호주·영·미(AUCUS)가 2021년 9월 시작한 호주의 핵 잠함 획득 사업은 2030년 구현된다. 미국은 영국과 호주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나토를 포함해, 한국, 일본, 태국, 필리핀, 뉴질랜드 등 어떤 동맹에도 제공한 적이 없다. 러시아가 재래식 포탄을 건네받는 대가로 핵잠수함 기술을 제공할 것이라는 사실은 이를 제기한 국정원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국정원은 "북·러 밀착은 우크라 전쟁이라는 특수한 국제환경 속 연대이기에 안정성 및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 전략핵잠함(SSBN) 켄터키함이 18일 부산 해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2023.7.19. 미해군 연합뉴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1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서울 호텔에서 통일부가 주최한 국제포럼에서 "러시아는 북한의 제3자 이전을 우려해 첨단 군사기술 제공에 소극적일 것"이라면서 '낡은 군사기술의 소규모 이전'을 예상했다. (연합뉴스) 2차대전 때 사용하던 152㎜ 포탄과 핵잠함 기술은 등가성이 성립되지 않는다. 미국이 중국에 대항할 거점을 하나 더 만들기 위해 호주에 핵잠함 기술 이전을 결정했듯이 러시아가 미국에 대항할 군사거점으로 북한을 상정하지 않는 한 가능성이 희박하다. 거대한 전략적 구도 속에서 내려야 하는 결정이 선행돼야 가능한 일이다.

다만, 위성 기술을 포함해 북한의 '주체 과학'이 아직 풀지 못한 난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방법은 많다. 이 경우에도 안보리 결의를 명시적으로 위반하기보다 북한의 질문에 충실히 답을 하거나, 전혀 상관없는 회의 뒤 회의장에 관련 기술이 적힌 자료를 흘리는 '회색(grey) 귀띔'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생각해 볼 대목은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러시아에 직접 물어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괴이한 대러 외교 "실종"

한국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전면 중단하지 않고 있다.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고, 독자 제재를 하고 있지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대통령의 잦은 우크라 지원 발언과 7·15 키이우 방문, 9·20 유엔총회 연설 등으로 관계가 껄끄러워졌을 뿐이다. 반면에 미국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와 간접전을 치르고 있고, 일본은 지난해 12월 국가방위전략에서 러시아를 위협으로 지목했다. 우리에겐 북한 포탄의 러시아 전달보다 러시아 군사기술의 북한 전달이 더 큰 안보의 위협이다. 이 정도로 중차대한 사안이 걸려 있다면, 기회 있을 때마다 러시아를 백안시할 게 아니라 적극적인 대러 외교를 통해 궁금증을 풀어야 마땅하다.

대한민국 외교장관이 이 시점에 러시아와 적대관계인 미국·일본 동료들과 함께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은 아무리 보아도 의아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한·러 관계에 큰 문제는 없다. 북·러 정상회담 내용도 통보받았다"고 전했다. 한미일 외교장관 공동성명, 국정원의 국회보고는 모두 러시아로부터 전해들었다는 9·13 북·러 정상회담 내용이 부족했거나, 믿기 어려웠음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더더욱 대러 외교에 몰두해야 한다. 미국이 제공한 위성사진을 토대로 풍부한 상상력을 발동할 게 아니라 적극적, 공격적인 외교에 나서야 한다. 아무리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에 올인했다고 해도 도저히 이해 못할 직무 유기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인지, 국내 정치적 수요에서 위기를 부추기는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현재로선 알 길이 없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