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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왕조 사회주의 북한과의 통일은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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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부 이후 역대 정부(윤석열 정부는 제외)가 관리해 온 남북관계가 다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말이 나오지만 다 실패한 건 아닙니다. 통일은 멀어졌지만, 국민의 안전을 도모하고 국가 발전의 기본 환경을 조성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봅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시민언론 민들레'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2.21. 김성진기자

김정은의 '두 국가, 두 민족' 발언은 분단 한반도 역사에 획을 그은 사건이었음에도 우리 사회는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65)은 그 이유의 하나로 "우리의 민족공동체통일 방안 자체가 북한의 고려연방제에 비해 통일 지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1980년대 말 이후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은 우리의 민주 공화정과 북의 왕조 사회주의 체제 간의 통일이 어렵다고 봤기 때문에 화해협력-국가연합-통일의 느슨한 3단계 설정을 했다는 해석이다.

<시민언론 민들레>가 전환기 남북관계의 오늘을 진단하고 내일을 탐색하기 위해 강인덕 초대 통일부 장관과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에 이어 세 번째 대화 상대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을 선정했다. 인터뷰는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민들레 사무실에서 있었다.

이 장관은 "민족공동체통일 방안부터 완충적인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충격이 덜했을 것"이라면서 "우리 사회 대부분의 지도자와 지식인은 남북이 두 개 국가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이미 해왔다"고 전했다. 이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한 체제가 남한의 여러 공세에 취약하게 노출돼 있으면서, 대남혁명을 계속하는 게 비현실적이라고 판단, 두 국가론을 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북, 북미 관계가 벽에 부딪힌 건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회담의 실패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이 장관은 "문재인 정부는 북한한테 핵실험, ICBM 시험발사 유예(모라토리엄)와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와 같은 큰 선물을 받았지만, 이를 성취로 연결하지 못했다"면서 "한반도 안보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꿀 기회의 창을 열었지만 어려움이 닥쳤을 때 주체적 상황을 만들어 돌파해 내는 힘이 매우 부족했기에 아쉬움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통일 문제와 남북관계의 먼 미래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기존 관념에 매달리지 말고 장기간 다양한 층위에서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통일을 지향해 온 분들뿐 아니라 구세대와 신세대 간에, 또 보수와 진보 간에 격의 없는 토론을 거쳐 공동체 차원의 새로운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논의가 끝나면 그때 가서 헌법에 반영하면 되지 우리가 당장 북한의 변화에 대응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민주 정부가 들어서면 꽉 막힌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우선 북핵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뒤 남북 간의 적대관계 해소에 주력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핵 위협을 '워싱턴 선언'에 따른 확장억제로 대처하되, 여전히 안보 환경의 위협이 있는 만큼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한다"면서 "북한과 영원히 적대하면서 살 게 아니면 대화를 추구해야 하는데 그러면 보수 언론의 적대적 비판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주 정부는 무엇보다 김정은이 말한 '가장 적대적인 관계'를 해소하고 협력을 통해 서로 이익이 되는 지점을 찾아가겠다고 공표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인터뷰 일문일답

-북한이 작년 말 당중앙위 전체회의 결정과 1월 1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로 '두 국가, 두 민족'론을 내세운 뒤 남북관계의 오랜 기조가 무너졌습니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24년 동안 진행됐던 남북 화해‧협력의 연대기가 끝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니 그동안 우리가 해 온 대북정책이나 남북관계가 다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말이 나옵니다. 하지만 모든 걸 좌절과 실패로 돌릴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동안 대북정책을 하면서 두 가지 목표가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우선 적대 상태의 남북관계를 통일 지향적 관계로 전환하고, 그걸 통해 남북 공동체의 초석을 닦는 게 첫 번째 목표였습니다. 그 점에선 큰 실패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목표는 적대적인 남북관계를 비적대적인 협력관계로 만들어 당대 우리 국민의 안전을 도모하고, 국가발전의 기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점에서는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습니다.

윤석열 정부를 제외하고 노태우 정부 이후 역대 어느 정부도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고 봅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를 따로 떼어 얘기하자면, 경제적으로 많은 성장을 하지 않았습니까. 남북관계나 안보 환경이 좋지 않았으면 그렇게까지 발전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문재인 정부 때 그동안 누적됐던 한류의 힘이 터지면서 세계적인 위상을 갖게 된 것 역시 그 시기 한반도 정세, 특히 남북관계와 안보환경이 안정된 게 한몫을 했습니다.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일련의 길을 닦는 통일정책은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적잖은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무조건 다 실패했다고 보는 건 객관적인 태도가 아닌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남북관계 파탄의 출발점을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로 보고 있습니다. 이후 문재인 정부 2년여, 또 윤석열 정부 2년여가 지났습니다. 문재인 정부 정책부터 짚어 볼까요?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의 안보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의 창을 열었습니다.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못한 일이었죠. 하지만 그걸 성취로 연결하는 역량의 부족 탓에 그 창을 닫는 역할도 함으로써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참모들은 정세의 변화와 시대적 필요성을 민감하게 파악하는 뛰어난 정세판단 능력을 갖추었지만, 어려움이 닥쳤을 때 주체적으로 상황을 만들어 돌파해내는 힘이 매우 부족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조용한 리더십과도 연결됐다고 봅니다. 미국을 상대로 우리 입장을 관철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었던 것 같고요. 결과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북핵 정책에 완전히 종속됨으로써 남북관계에선 성과가 없었던 거죠."

-하노이에서 벽에 부딪힌 북핵 문제 해결 과정부터 짚어 볼 필요가 있겠군요.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떤 정부도 하지 못했던 엄청난 걸 북한으로부터 받아냈습니다. 2018년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모라토리엄(유예)를 받아냈고, 9·19 평양공동선언에선 더 큰 걸 받았습니다. 미국이 6·12 싱가포르 북·미 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북한은 미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인 폐기를 하기로 했었죠.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도 폐기하기로 했습니다. 북한으로부터 엄청난 걸 받았으면 반드시 성공시켜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능력 이상의 임무를 수행하려다가 일을 그르친 셈이죠. 물론 문 대통령은 트럼프를 설득할 수 있다고 자신했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김정은의 전략적 착오일 수도 있습니다.

9.19 때의 북핵폐기 제안을 문 대통령이 아닌, 트럼프에게 줬다면 결과가 달랐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트럼프는 '한반도 문제의 중요한 열쇠'라고 생색을 낼 수 있었을 겁니다. 현실에서 전개된 것처럼 장사꾼인 트럼프가 영변 핵폐기를 내심 김정은이 자신이 아니라 문 대통령에게 준 선물로 간주하면서 그 가치를 '껌값'으로 치부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북‧미 간 '중재자'로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과 역량에 한계가 있었다는 말씀이군요.

"영변 핵시설 폐기가 알려진 뒤 미국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영변은 이미 낡은 시설이다' '북한은 더 중요한 걸 갖고 있다'는 등의 시큰둥한 반응이었죠. 모든 북핵 문제가 영변에서 발생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인 데 해결 기회를 놓친 겁니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중재자에게 물건을 넘겼는데 중재자가 역할을 못한 거죠. 성취도 있었지만, 한계가 명확했던 것 같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깎아내리는 데 진심인 것 같습니다.

"보수의 문재인 정부 비판은 말이 안 됩니다. '북한 눈치를 봤다'거나, '대북 퍼주기를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런 엉터리 주장에는 문재인 정부에 참여했던 분들이 적극적으로 항변, 반박해야 합니다. 퍼주기는커녕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 중에서 북한에 건넨 지원이 가장 적습니다. 유엔 제재 때문에 지원할 수 없었죠. 반면에 문재인 정부는 북에 준 게 없이 모라토리엄과 '영변 핵시설 폐기 용의'처럼 커다란 선물을 일방적으로 얻어냈지요.

'북한의 눈치를 봤다'고요? 문재인 정부가 한 일은 북한한테 얻을 건 얻고, 줄 건 안 주면서 북한이 비난을 퍼부으면 입 딱 닫고 모른척한 겁니다. 실리적으로 엄청난 이익을 봤으면서도, 북한에 퍼주기한 정부가 돼 있는 게 참 아쉽습니다. 오죽하면 김여정이 문재인 대통령을 두고 "평화 보따리를 내밀어 우리의 손을 얽어매어 놓고는 돌아앉아 제가 챙길 것은 다 챙겼다"(1월 2일 담화)고 했겠습니까. 풍자적으로 한 말이었지만. 이제 북핵 문제는 돌이키기 어렵게 됐습니다."

-북한의 남북관계 단절로 6‧15 공동선언 이후 모든 남북관계가 물거품이 된 것 같습니다.

"김정은의 '두 국가론'을 접하고 올 게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직면할 도전이었죠. 북한이 주장해 온 고려민주연방제와 대한민국이 추구해 온 민족공동체통일 방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고려민주연방제는 떨어진 남북이 하나 되는, 구심력을 중요시한 겁니다. 반면에 민족공동체통일 방안은 통일이라는 '원심력 관리'에 방점이 놓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민주 공화국이지만, 북한은 어떻게 보아도 왕조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민주 공화국과 왕조사회주의국이 어떻게 하나의 국가로 통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우리 모두 그걸 직감하면서도 통일을 이야기해 온 게 아닐까요?

그게 쉽지 않다고 해서 민족공동체통일 방안은 화해협력 단계와 남북연합 단계를 둔 겁니다. 각각의 단계에 대해서도 조급하게 시기를 설정하지 않고 유연하게 구체적인 형태도 없고, 3단계 통일조차도 언젠가 남북이 결정하면 통일국가가 된다는 식이었죠. 반면에 고려민주연방제는 상대적으로 빠른 통일국가를 지향했습니다. 해서, 북한의 변화에 우리보다 북한 주민들의 충격이 더 컸을 겁니다. 민족공동체통일 방안은 '두 국가론'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기반, 즉 완충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우리 사회가 왕조 사회주의 국가와 민주 공화국 사이의 큰 간극을 알고 있으면서 굳이 거론하지 않아왔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우리 사회에서 통일운동을 해왔던 어르신들은 통일에 대한 강력한 의제적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왕조 사회주의와 민주 공화정의 차이, 그 극복할 수 없는 차이를 덜 보신 것 같습니다. 왕조 사회주의는 견고합니다. 두 개의 체제를 합치려면 북한이 망하거나 왕조 사회주의가 달라져야 하는데, 쉽게 망할 것 같지 않고 이 체제가 달라지더라도 먼 미래의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어린아이인 김주애가 '존귀하신 자제분'으로 등장해도 북한에선 별 저항이 없습니다.

사실 우리 사회 대부분의 지도자나 지식인은 남북이 두 개의 국가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이미 해왔습니다. 청와대 국가안보회의(NSC) 사무차장 시절, 노무현 대통령은 제가 꽤 통일 지향적이라고 생각하셨는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차장, 이 차장이나 총리(이해찬)는 통일이 목표지만 나는 평화가 목표야'라고요. 노무현 정부가 '통일'이라는 말은 거의 언급하지 않고 '평화번영'을 말하고, 문재인 정부가 통일 대신에 평화를 말한 이유가 그래서입니다. 적지 않은 분들이 민족공동체통일 방안의 2단계, 즉 느슨한 남북연합이 어떻게든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셨겠지만, 김정은은 이번에 두 국가의 연합도 안 된다는 말을 한 겁니다."

-김정은 정권이 '통일, 화해, 동족'을 지우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를 비롯한 대남 기구들도 정리하고 있구요. 남북관계는 우리에게 무엇이었고, 또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정전 71년이 됐습니다. 길게 잡아도 68년이었던 후삼국 시대의 역사를 넘었죠. 아마 후대의 역사가는 정전체제를 '남북국 시대'로 표현할 것 같습니다. 서로 남이 아니고 하나라고 생각했기에 서로 간섭했었습니다. 북한이 대남 혁명전략 부서를 두었던 거는 남북이 '통일로 가는 과정의 특수한 관계'이고, 남한은 언젠가 자신들이 장악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러나 북은 이미 국가 단계에서 혁명 수출 전략을 포기했습니다. 2019년부터는 공식적으로 '우리 국가 제일주의'를 내세웠죠. 남북이 아닌 북한, 즉 개별국가의 완성을 지향하는 조선민주의인민공화국을 만들어 그들끼리 잘사는 체제를 만들어 보자는 말이었습니다.

김정일은 '우리민족끼리'와 '우리 민족 제일주의'를 표방했었습니다. 김정은은 아버지나 할아버지보다 훨씬 현실적입니다. 김정일은 (적화통일을 할) 능력도 없으면서 민족을 강조하는 허장성세를 부렸지만, 김정은은 2021년 1월 당규약에서 '전국적 범위에서 공산혁명을 완수한다'라는 의미를 지닌 대남 적화통일 목표를 삭제했죠. 그때 이미 자신의 체제가 남한의 여러 공세에 취약하게 노출되어 있으면서 대남혁명을 계속한다는 게 비현실적이라는 걸 분명히 한 거죠. 그 연장선상에서 '두 국가론'이 나온 것 같습니다."

-북한이 대남 적화통일을 포기했더라도 대남공작은 중단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 대남공작은 적화혁명을 위한 이데올로기 공작이 아니라 김정은이 규정한 '가장 적대적인 국가' 남한과 무장 대치를 하고 있는 만큼 적을 관찰, 분석하고 심리적 우위에 서려는 작전과 같은 것이겠지요."

-말씀대로 1980년대 말부터 우리 정부의 공식 방침으로 굳어졌던 민족공동체통일 방안 자체가 무색해졌습니다. 이제 시간이 걸리더라도 새로운 통일방안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기존의 관념에 매달리지 말고 장기간 다양한 층위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봅니다. 남북관계는 우리에게 무엇이고, 무엇을 할 것인가. 한반도에서 남북이 가야 할 미래에 대해 구세대와 세로운 세대 간에 그리고 보수와 진보 간에 격의 없는 충분한 토론과 그것을 통한 우리 공동체의 새로운 합의가 필요합니다. 북한에 상당 기간 백두혈통을 내세운 왕조 사회주의가 존재할 것이고, 그 전제하에서 통일 문제를 고민하면서, 어디까지 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의 3단계 통일 방안(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도 새롭게 정리될 수 있고, 긴 세월 뒤에 남북 주민이 변화된 상황에서 통일로 갈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비적대적 우호관계를 갖고 공생, 공동번영하는 걸 우선해야겠죠. 남북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는 급히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통일을 지향해 온 분들뿐 아니라 젊은 세대까지 포함해 어떻게 설정할지 오랜 기간 숙의해야겠죠. 논의가 끝나면 그때 가서 헌법에 반영하면 되지, 우리가 당장 북한의 변화에 대응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햇볕정책이나 평화번영정책을 지지했던 분들은 그동안 보수 정부의 대북정책에 실망하다가도, 민주 정부가 들어서면 좋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졌습니다. 이제, 민주 정부가 들어선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민주정부가 들어선다고 남북관계가 다 잘되는 건 아니겠죠. 그러나 크게 두 가지를 먼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북핵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야 합니다. 또 남북 간의 적대관계 해소에 주력해야죠. 윤석열 정부는 북핵 문제에 대한 정리를 해놓았습니다. 북핵 위협을 '워싱턴 선언'에 따른 확장억제로 막는다는 것이지요. 사실 이전 정부들과 다를 것도 없어요. 그런데 보수 언론을 필두로 한국 언론은 이를 비판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독자 핵무장을 포기했다'는 비판이 잠깐 있었지만, 집요하고, 연속적인 비판은 아니었죠.

확장억제를 하더라도 우리에겐 여전히 안보 환경의 위협이 있기 때문에 대화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대화를 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음 정부는 윤석열 정부의 다음 정부입니다. 앞선 정부가 정리한 확장억제를 놓고 출발해야죠. 다만 확장억제로 북한 핵위헙에 대처해나가면서, 대화국면으로 넘어가야 할 겁니다. 북한과 영원히 적대하면서 살 게 아니라면 대화를 추구해야 하니까요. 그것이 한국의 경제, 안보가 증진, 발전해 가는 순리적인 길이기도 하고요. 그러면 윤석열 정부에선 가만히 있었던 보수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정부비판에 나설겁니다. 적대적인 언론 환경이 녹록지 않을 것이기에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남북 간 적대관계 해소는 어떻게 가져가야 할까요?

"남북관계를 두 국가 관계라고 규정한 김정은의 말은 우리에게 장기적으로 많은 걸 시사하고 있습니다. 많은 어려움을 줄 겁니다. 하지만 당장 우리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가장 적대적인 관계'라는 말입니다. 이 부분을 해소하고,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다시 화해, 협력할 수 있는 관계로 바꿔가는 게 큰 과제입니다. 통일 문제와 남북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는 장기적인 문제가 될 겁니다. 북한은 헌법에도 '가장 적대적인 관계'라는 표현을 넣을 겁니다. 그게 정책적으로 현실화되는 상황을 극복하게 되면,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인도적인 문제는 해결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북한이 대화에 나오지 않으면 방법이 없지 않을까요?

"다음 대선 때 민주 정부의 대북정책을 발표하겠죠. 가장 중요한 건 '가장 적대적인 관계'를 해소하고 협력을 통해 서로 이익이 되는 지점을 찾아가겠다고 공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 통일 문제, 국가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의 공론을 모으고 북한과 장기적으로 협의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김정은이 어떻게 나올지, 과거 북한의 행태를 유추해서 생각하는 게 꼭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 할아버지가 한 걸 다 부인하고 있으니까요. 대남 관계에 대한 생각도 다른 것 같습니다. 김정은은 리더십 자체가 선대와 다릅니다. 그러나 북한도 '가장 적대적인 관계'를 영구적으로 가져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겁니다. 그 문제의 고리는 우리가 풀어야겠죠. 어차피 '가장 적대적'이라는 상대방 규정은 윤석열 정부를 대상으로 내놓은 거니까요."        ☞ 이종석 장관 인터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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