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71)이 5선에 성공, 2030년까지 임기를 확보했다. 이를 두고 "푸틴은 독재자"라는 '소신' 또는 주장이 나온다. '30년 장기 독재자'라고 주저 없이 규정한다. 그런데 푸틴은 과연 독재자일까? 독재자라면 어떤 기준에서 그럴까?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건 한국 사회에서 다소 위험하다. 무모할 수도 있다. 언제부터인가 국제 이슈가 윤리의 영역으로 넘어가거나, 진영 간 다툼의 소재가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독재자가 아니라는 말이냐?" "독재를 인정한다는 말이냐?"라는 공격을 받기 십상이다. 저널리스트는 윤리학 교사가 아니다. 미지의 영역이 넓을 땐 일단 판단을 유보하는 게 안전하다. 그리고 자료를 뒤적일 수밖에.
푸틴이 모스크바 정계에서 두각을 드러낸 것은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 의해 총리로 임명된 1999년 8월부터다. 5개월 만인 2000년 3월 대선부터 직업이 대통령이 됐다. 2021년 개헌 국민투표가 통과되면서 3선 금지의 족쇄가 풀렸다. 2012, 2018년 대선에서 연거푸 승리한 뒤 지난 15~17일 대선에서 다시 이겨 2030년까지 집권하게 됐다. 6선에 도전하면 83세가 되는 2036년까지 권좌에 앉아 있을 터. '종신 집권'이니, '21세기 차르'니 하는 비난은 이를 전제로 한다.
서방은 대선 전부터 푸틴의 러시아에서 인권과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지탄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8일 국정연설 앞부분에서 '히틀러-푸틴-트럼프'를 한통속으로 묶어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착한 자신과 극명하게 대비했다. 자신은 프랭클린 루즈벨트-링컨과 함께 묶었다. 바이든의 희망이 담긴 설정이다. 한반도 거주민의 관점에서는 바이든이건, 트럼프이건 미국 국익의 극대화를 도모한다는 점에서 도긴개긴이다. 종종 동맹과 우방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도 붕어빵이다.
선악의 이분법은 미국의 오랜 사고이지만 절대적, 윤리적 기준은 아니다. 정권마다 유동적이다. 늘 '필요'가 '가치'에 우선한다. 조지 부시는 9‧11 테러 뒤 북한,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 국가로 분류했다. 부시 1기 행정부(2001~2005)는 북한을 사갈시 했지만, 2기(2005~2009)는 합의를 시도했다. 트럼프도 북한과 큰 거래를 추구했다. 오바마와 바이든은 12년 동안 북한과 뜨악시 했다. 그 사이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바뀌면서 북한은 핵 무력을 고도화했다.
오바마는 이란과 핵 합의를 이뤘고, 트럼프를 이를 파기했다. 바이든은 트럼프를 비난하면서도 그의 이란 핵합의 파기 결정을 계승했다. 정권 따라 오락가락한다. 한반도 거주민이 미국의 관점에 휘둘리면 함께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다. 아수라장을 만들어 놓고 훌쩍 떠나는 건 미국의 또 다른 특징이다. 2003년 부시가 침공했던 이라크는 여전히 혼돈이다.
한국민 사이에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읽는 현실주의 관점보다 '보고 싶은 세상'을 찾는 이상주의 관점이 많아진 것은 반길 일이다. '세계 시민'의 관점을 갖게 됐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관점이 서방의 시각에 의해 만들어진 거라면 경계할 일이다. 현실도 이상도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남의 관점에서 제3자를 규정 또는 심판하다 보면, 정작 한반도 거주민의 관점이 사라진다. 우리의 전략적 선택을 어렵게 하거나, 오답으로 이어질 위험을 안게 된다.
푸틴의 장기 집권을 가능케 한 동력은 국민적 지지였다.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5번의 대선과 1번의 국민투표 승리가 발판이 됐다. 푸틴은 결선투표를 간 적이 없다. 2000년 대선에서 52.94%를 얻은 뒤 계속 1차 투표에서 끝냈다. 71.31% (2004), 70.28% (2008), 63.60% (2012), 76.69% (2018)였고, 이번 대선에선 87.32%였다. 2021년 개헌 국민투표 찬성율도 78.56%로 꽤 높았다. 죄다 부정선거 덕분이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러시아의 정치 문화는 서방과 다르다. 특히 일부 야당 정치인들의 출마를 제한한 것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2018년 대선에서 투표 거부 운동을 주도한 알렉세이 나발니의 출마를 막았고, 이번 대선에서 연방선거관리위원회(CEC)는 서류상의 문제 를 빌미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난해 온 보리스 나데즈딘과 예카테리나 둔초바의 출마 자격을 박탈했다. 하나 같이 푸틴의 지위를 위협할 수준의 정치인들이 아니었기에 의아스럽기 짝이 없다.
서방 언론이 대표적인 반푸틴 정치인으로 평가한 나발니도 러시아 내 지지는 높지 않았다. 공식 선거 기록은 2013년 모스크바 시장 선거 1차 투표에서 27% 득표율로 탈락한 게 전부다. 2013~2023년 동안 러시아 민간 여론조사기관 레바다 센터 조사에서 나발니 지지율은 5~20%였다. 작년 1월 마지막 조사에선 9%였다. 응답자의 57%는 나발니 재판이 공정했고 그가 처벌받아 마땅하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푸틴의 러시아는 왜 일부 야당 정치인들을 선거에서 잇달아 배제할까. 종종 벌어지는 의문사의 진실은 무엇일까. 뉴욕타임스는 이를 러시아의 독특한 세계관으로 해석한 적이 있다. 작년 8월 6일 자 '푸틴의 영원한 전쟁' 제목의 심층기사에서였다. 표트르 톨스토이 연방하원(두마) 부의장은 타임스 인터뷰에서 "우리의 가치는 다르다. 러시아인들에게 자유와 경제는 국가적 통합과 '러시아 세계(Russkiy mir)'의 수호에 부차적인 요소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푸틴의 통치는 러시아 세계의 복원에 다름 아니다"라며 "러시아 세계는 영속적인 러시아의 문화와 제국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중심으로 구축된 실지회복주의자의 신화"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는 바로 그 '러시아 세계'의 일원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당시 "2024년 대선에서 푸틴은 90% 이상의 득표율로 당선될 것"이라면서 "우리의 대선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고비용 관료주의"라고 말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말한 걸로 해석된다. 푸틴은 지난 17일 모스크바 선거사무소 연설에서 당선 일성으로 "이번 대선이 국가적 통합을 공고히 했다"라면서 "러시아는 (서방의 위협에) 움츠러들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톨스토이의 말대로 '국가적 통합'에 방점을 둔 것이다. 어떠한 설명이건 푸틴의 러시아가 지향하는 목표와 추진방식이 '집단 서방'의 그것과 다름은 분명하다. 더구나 러시아는 전쟁중이다.
'푸틴주의'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소비에트 러시아'는 2000년 1월 11일 "약탈 자본주의의 최고, 최종 단계로 부르주아가 민주적 자유와 인권의 깃발을 배 밖으로 던지는 단계"라고 규정했다. 서방 언론은 소비에트에 대한 향수와 마피아 자본주의의 결합이자 정교회에 대한 헌신으로 해석한다. 유일 초대 강국인 미국의 세계에 대한 러시아 제국주의의 반격도 특성으로 거론된다.
단언컨대 국가 간 정치에 윤리는 없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이는 민간인 학살극은 보편적인 윤리 기준에서 명백히 탈선 사례다. 하지만 국제 이슈는 많은 경우 절대적인 선, 악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진실은 흑, 백 사이의 '회색지대' 어딘가에 있다. '악의 축'에 대한 미국의 행태에서 보듯 '가치'는 필요할 때 들먹이는 것이다. 아니라면 서방이 인권과 민주주의 잣대를 들이대기도 머쓱한 중동의 봉건왕조 국가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는 걸 어떻게 설명하겠나. 러시아의 세계관을 완벽하게 이해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유색인종 혐오, 이슬람 혐오, 여성 혐오로 똘똘 뭉친 트럼프가 재선될 가능성이 높은 미국 대선을 평가하지 않고 현실로 받아들이듯, 러시아의 선택 또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푸틴이 독재자인가? 서방 관점에선 그렇고, 러시아 관점에선 그렇지 않다. 최소한 수감된 야당 정치인에 변호사 접견을 허용하고, 틈틈이 소셜 미디어로 성명을 발표하는 걸 허용한다. 서방 언론과의 회견을 마다하지 않는다. 독재의 회색지대다.
현실로 돌아와 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달리 한반도에 매우 중요한 나라다. 기회이자 위협이다. 주변국 중 거의 유일하게 한반도 평화가 자국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보는 나라다. 미국, 중국, 일본이 사실상 분단 유지에 만족하는 것과 다르다. 그런 러시아가 한국과의 관계 발전을 계속 희망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제재 탓에 잠정적인 제한이 있을 뿐이다. 지난해 본격화된 북러 군사협력은 새로운 위협이다. 해서 러시아는 우리가 위협을 줄이고, 기회를 늘려야 할 상대이지, 남의 잣대로 평가하고 외면해도 될 상대가 아니다. 미국이 그어놓은 선(線)을 벗어나는 건 무모하지만, 그 선이 불변의 가치인 양 안주하는 건 더 곤란하다.
글을 쓰면서 "어떻게 독재자 푸틴을 옹호하나" "푸틴을 신뢰하나"라는 등의 힐난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바이든도 한때 이러한 힐난에 시달린 적이 있다. 푸틴을 평가하려 들지 않을 때 이야기다. 2021년 6월 16일 제네바에서 푸틴과의 정상회담 뒤 단독 기자회견 자리에서다. 당시에도 미러간 나발니와 인권 문제가 있었다. 우크라이나 문제와 미중 갈등, 러중 밀착도 현안이었다. 각국 언론의 예상과 달리 회담 분위기는 훈훈했고, 바이든은 흡족해했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기자들이 위의 질문을 퍼붓자, 바이든은 몇 차례 답을 하다가 질문이 계속되자 결국 역정을 냈다. 마지막 질문을 한 기자에겐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면 당신은 직업을 잘못 택했다"는 극언까지 했다. 그리고 내놓은 장광설에 현실정치의 통찰이 담겨 있다.
"푸틴의 행동이 변할 거라고 믿느냐고? 그를 신뢰하느냐고? 상대방의 관심(self-interest)이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 역으로 묻자. 러시아와 수천 마일 국경을 맞댄 중국이 세계 최강의 경제와 군사력을 추구한다. 러시아 경제는 (서방 제재와 유가 하락 탓에) 매우 어렵다. 당신이 푸틴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푸틴과 나는 서로를 알 뿐이다. 굳이 누군가를 신뢰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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