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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의 적은 외교관? 호주대사 막장 드라마 각본 누가 썼나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4. 3. 3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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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이종섭 호주대사의 사퇴로 '막장 외교 드라마'가 조기 종영됐다. 수사 외압 의혹의 돌부리를 없애려다 국민적 저항의 더 큰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꼴이다. 지난 4일 대사 임명 이후 한국과 호주 사이에서 25일 동안 방영된 드라마의 종영으로 덮을 일이 아니다. 대외적으론 한·호 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에 남긴 피해를 복구해야 한다. 대내적으론 막장 드라마를 기획한 장본인을 색출해 적절한 책임을 물어야 할 절차가 남았다. 아무리 완벽한 복구를 하더라도 주요 우방국에 입힌 외교적 결례와 이로 인한 상처는 윤석열 정부 임기 너머까지 '흉터'로 남을 수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호주 동포를 포함한 국민이 져야 한다.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이종섭 주호주대사 구속 촉구 긴급 기자회견에서 청년단체 '청년하다' 회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4.3.23. 연합뉴스

한국 외교의 ‘흉터’

이마저 무시한다면 윤석열 정부는 국내의 온갖 난맥에 더해 외교적으로 혼란을 조장하는 정부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다. 대내외 대책은 기실 맞물려 있다. 정부가 '이종섭 카드'를 기획한 이에게 무거운 책임을 물리는 것 자체가 인도·태평양 시대, 주요 우방국에 보일 진정성의 척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외교적 관행에 익숙하지 않은 대통령의 지시로 비롯된 막간 상황극이라고 보기 어렵다. 주연배우(이종섭) 1인을 달랑 내세워 벌인 모노드라마가 아닌 것이다. 시나리오를 쓴 '검은 손'은 사태가 이 지경이 됐음에도 장막 뒤에 몸을 숨기고 있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

처음부터 끝까지 정략적 기획의 연속이었다. 첫 번째 잔꾀가 총선 국면에 물의를 빚자 기획 입국을 시킨 뒤 다시 기획 사퇴를 종용하는 세 번의 기획이 이어졌다. 외교부 안팎에서 호주대사 교체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은 작년 12월쯤이었다. 그러나 호주대사 인사는 공관장 10명이 교체된 같은 달 28일 자 인사는 물론, 11명이 교체된 1월 26일 인사에 포함되지 않았다. 군 출신 대사 2명만 따로 발표한 3월 4일 자 공관장 인사에서야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이름이 나왔다. 12월쯤 첫 아이디어가 나온 이후 3월 초 인사 전까지 약 3달은 아그레망(주재국 동의)을 얻는 데 필요한 기간이었다.

통상적인 관행을 벗어난 발령과 부임 과정을 보면 인사의 긴급성을 짐작게 한다. 이 대사가 지난 10일 황급하게 출국한 점, 채 1주일도 안 된 전·현직 대사의 인수인계 기간 등이 그랬다. 전·현직 대사의 인수인계는 반드시 서울에서 한다. 주재국에서 한다면 '1국 2대사'가 있게 되기 때문이다. 통상 현 대사가 귀국한 뒤 짧아도 1주일에서 열흘 정도 서울에서 대면 인수인계를 한다. 임명 전부터 인수인계했을 리는 만무할 터. 임명일과 출국일을 제외하면 이종섭 전 장관과 김완중 대사가 서울에서 인수인계할 수 있었던 기간은 5일에 불과하다.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이 11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고 손명순 여사 영결식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4.3.11. 연합뉴스

외교부가 이 전 장관에 내린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의 출국금지 조치까지 파악하지 못하고 발령을 한 건 사안의 긴급성을 말해주는 다른 증거다. 초보적인 인사 검증도 생략했다. 이때부터 무리수가 변명을 낳고 어설픈 변명이 다시 무리수를 부르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외교부가 전임 김완중 대사가 작년 말로 정년이 됐기에 인사 수요가 있었던 것처럼 발표한 것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시도였다. 호주를 포함한 13개국 대사는 정년과 무관하게 통상 3년, 짧아도 2년 임기를 보장하는 자리다. 차관보급 대사 자리에 직전 국방장관을 보낸 파격은 되레 작은 문제였다.

침묵하는 조태용-장호진 라인

호주가 주요 방산협력국이기 때문에 국방장관 출신 대사를 보낸다는 설명은 더 말이 안 된다. 방산 수출의 주역은 무기 자체의 경쟁력과 이를 판매하는 업체의 영업력이다. 주재국 대사는 조역일 뿐이다. 여기에 호주가 주요 방산협력국이 된 건 전임 김완중 대사 임기 중이었다. 지난해 대호주 방산 계약액은 12조 원 규모로 대통령이 부산 엑스포 투표 한 달 전 방문을 강행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3배 정도였다. 질적으로도 획기적인 이정표를 세웠다. 김 대사 재임 중 성사된 레드백 장갑차 수출은 독일 라인메탈의 링스(Lynx)와 경쟁에서 선택된 것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주요 회원국 업체가 아닌, 한국 업체가 선진국 무기 시장에서 처음 이룬 쾌거였다. 방위산업이 미래 먹거리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한 건 대통령 본인이다. 질적, 양적으로 성과를 낸 대사의 임기를 보장하기는커녕 경질한 꼴이 됐다.

이후 무리수는 정치권으로 넘어온다. 여기엔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들도 포함된다. 특히 직업 외교관에서 정무직 공무원으로 변신한 전·현직 국가안보실장에게 의혹이 집중된다. 이종섭 대사에 대한 아그레망이 호주 정부에 제출된 지난해 12월은 조태용 현 국정원장이 국가안보실장이던 시기다. 후임 장호진 실장은 지난 14일 SBS 방송 인터뷰에서 "공수처가 조사도 하지 않으면서 출국금지를 길게 연장한 것은 누가 봐도 기본권 침해이고 수사권 남용"이라고 생뚱맞은 인권 타령을 늘어놨다. 검찰·경찰·국세청 등의 수사 편의에 휘둘리는 국민 대다수의 체감지수에서 반발을 사기에 충분한 말로, 또 다른 자충수였다. 동시에 국가안보실이 기획의 중심이었음을 드러낸 꼴이다.

조태용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14일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조 실장은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 참석차 일본 도쿄로 출국했다. 2023.6.14 . 연합뉴스

장 실장은 "이종섭 대사를 임명 철회할 생각이 전혀 없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단언했지만, 자진 사퇴 이후 입을 닫고 있다. '국가 안보'를 챙기라고 봉급을 주는 자리에서 '정권 안보'에 전념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호주대사 인사를 둘러싸고 외교가에서는 "공관장이 임기를 감안해 역점을 두어온 외교 일정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비난이 제기됐었다. 그걸 가장 잘 아는 직업 외교관 출신이 앞장서 외교를 망친 셈이다. 전임 조 원장도 침묵으로 일관하기는 마찬가지다.

호주대사 최소 3개월 공백

익명의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부임 11일 만인 21일 이종섭 대사의 '공무 입국'을 '자진 입국'인 것처럼 여론을 호도한 것도 막장 드라마의 지휘소가 대통령실이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25일 동안 여론의 초점이었던 이 대사가 결국 부담을 느껴 사의를 표하자, 여권은 '한동훈의 건의와 대통령의 결단'이라는 희한한 해석을 내놓았다. 대통령실과 정부·여당이 울력으로 국민의 눈높이와 동떨어져 있음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으로 수사받는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1일 인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2024.3.21 [공동취재] 연합뉴스

희생자는 16만 호주 동포와 국민

어찌 보면 이종섭 대사도 희생자이다. 전직 국방장관이 격이 낮춰져 호주 대사로 임명된 것도 모자라 25일 동안 여론의 몰매를 맞아야 했다. 그러나 멀쩡하게 임무 수행을 하고 있다가 졸지에 귀임한 김완중 전 대사에 비하면 결코 피해가 컸다고 볼 수 없다. 더 큰 희생은 막장 드라마를 지켜봐야 했던 16만 호주 교민과 국민이다.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해 온 호주 정부 역시 유탄을 맞았다. 차기 호주대사는 빨라야 5월에나 부임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통상 2~3개월이면 아그레망이 떨어지지만, 호주 정부가 '무언의 항의'를 하면 더 길어질 수 있다. 일단 주한 호주대사관은 29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의 모든 분야에서 차기 호주대사와 긴밀히 협력하기를 고대한다"라는 정중한 수사를 내놓았다. 윤석열 정부가 작년 말부터 기획해 3월에 25일동안 상연한 막장 드라마의 무대로 삼은 호주는 그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나라였고, 앞으로도 중요한 파트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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