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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서방-러시아, 이슬람주의자 '대테러 연대'도 끝났다

by gino's 2024. 3. 29.

2001년 9·11 공격 이후 국제사회는 적어도 이슬람주의자들의 극단적인 테러에 대해 적극적으로 연대해 왔다. 정보 공유는 물론 '테러와의 전쟁'에 연합 군사작전도 펼쳤다. 지난 22일 모스크바 외곽 크로커스 콘서트홀 테러에선 이마저도 무너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와 집단 서방의 간극이 벌어지는 가운데 이슬람주의 테러에 대한 연합전선마저 붕괴됐음을 확인케 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 크로커스 연주홀 테러와 관련해 긴급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4.3.25. TASS 연합뉴스

정보교환·연합군사작전은 옛말

러시아는 사건의 배후에 우크라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미국과 프랑스는 이를 우크라 배후설을 단호하게 부인하면서 이슬람국가 호라손 지부(ISKP)의 단독범죄라고 맞서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5일 "우리는 범죄가 극단적인 이슬람주의자들의 손에 의해 자행됐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의 관심은 지시한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다. 잔혹함은 2014년 이후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 신나치 정권이 저질러 온 일련의 시도의 일환일 수 있다"고 말했다. 테러범이 이슬람주의자들이지만, 이들을 조종하고, 은신처를 제공하려던 배후가 우크라라는 말이다.

푸틴이 제기한 의혹은 ISKP가 사건 당일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면서 테러 현장 비디오를 공개한 것과 상반된다. ISKP는 자신들이 텔레그램 매체를 통해 몇 차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힌 바 있다. 푸틴은 그러나 "미국은 우크라의 흔적이 없음을 모두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면서 용의자들이 우크라로 도주하다가 체포된 것을 상기시켰다. 푸틴은 "그들은 왜 우크라로 가려 했을까? 또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누구였나?"라고 자문했다.

푸틴은 23일 대국민 연설에서도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유혈 참극의 배후에 있는 자들이 다른 범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라면서 우크라 배후설을 처음 제기했다. 푸틴은 "용의자들에 대한 초기 조사 결과 우크라 국경 너머에 그들을 맞을 '창문'이 준비돼 있었다"면서 "연방보안국(FSS)과 다른 사법당국이 테러범들에게 교통편과 탈출로, 무기와 탄약을 제공한 공범의 기지를 확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범죄를 실행하고 조직, 조종한 자들을 재판정에 세울 것"이라고 거듭 다짐했다.

러시아 국가 추도일로 선포된 24일 테러가 발생한 모스크바 외곽 크로커스 시청 밖에서 한 시민이 촛불을 놓고 있다. 2024.3.24. TASS 연합뉴스

백악관 "IS, 미 본토 공격은 안할 것"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도 이날 "우크라는 지난 몇 년 동안 유치원과 학교, 병원을 포함한 주거지역 포격과, 운송·에너지 시설을 포함한 중요한 민간 기반 시설에 대한 공격 및 고위 관료와 언론인들에 대한 살해 시도 등을 통해 러시아 시민들에 대한 공격을 해왔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테러 공격에 대한 전적인 책임이 IS에 있다고 밝혔다. 커비 조정관은 22일에 이어 25일 정례 브리핑에서도 주러 미국 대사관이 3월 7일 러시아 체류 미국인들에게 극단주의자들의 공격 가능성을 경고하며 연주회와 쇼핑몰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피할 것을 공개 당부했음을 들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미국이 그동안 IS를 적극적으로 감시해 온 덕분에 러시아에서 가까운 장래에 테러 공격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를 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IS가 미 본토를 공격할 가능성은 보지 못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거들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25일 기자들에게 "우리의 주요 파트너들은 물론 우리가 확보한 정보는 이번 공격을 자행한 주체는 IS"라고 단언하면서 "러시아가 우크라를 비난하는 것은 냉소적이고 생산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다. 사건 직후부터 우크라이나 관련설을 전면 부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은 이날 푸틴을 "병적이고 냉소적인 존재"라면서 "테러의 가장 큰 구멍은 푸틴과 푸틴의 비밀경찰"이라고 되받았다.

23일 레바논의 러시아 대사관 앞에 마련된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공연장 테러 희생자 추모 촛불모임에서 한 여성이 촛불을 정성스레 놓고 있다. 22일 이슬람국가(IS) 소행으로 추정되는 공격으로 139명의 무고한 주민이 희생됐다. 2024.3.23. EPA 연합뉴스

러 수사 결론 내려도, 의혹 계속될 듯

미국과 서방의 주장에 대한 러시아의 반응은 싸늘하다. 자하로바 대변인은 이날 자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 인터뷰에서 백악관을 상대로 "(범인이) IS라는 단정을 바꾸지 않을 것인가?"라고 공개 질의했다. 이어 "미국이 테러그룹의 단독 행동이라는 첩보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IS의 귀신을 만들어 피후견인(우크라)을 가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또 "최근 몇 년 동안 IS가 (미국이나 서방이 아니라) 지정학적으로 미국의 적인 이란과 러시아는 물론 탈레반과 시리아 정부를 상대로 벌어진 것은 이상한 우연"이라고 말했다. 자하로바는 23일 "러시아는 9·11테러 뒤 미국인들의 고통에 가장 먼저 응답한 국가였다"라면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인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을 도왔다고 지적했다.

사건의 진실은 러시아가 확보한 용의자들에 대한 수사로 밝혀지겠지만, 이후에도 진위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 전쟁 이후 가짜뉴스와 정보 왜곡을 수반하는 하이브리드 전쟁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우크라, 미국 등이 상대방에 대해 내놓는 모든 주장과 발표에는 선전선동적 요소가 담겨 있다. 러시아는 어떤 수사 결과에도 IS나 우크라를 상대로 군사적 조치를 취할 것으로 관측된다.

러시아는 11명의 용의자 중 타지키스탄 국적의 라차발리조다와 미르조예프, 파리두니, 파이조프 등 4명을 법정에 세워 일단 두 달간 구금 판결을 내렸다. 튀르키예 정보당국 관계자는 로이터 통신에 이중 파이조프(19)와 파리두니(25)는 지난 2일 튀르키예발 여객기로 러시아에 함께 입국했고 그동안 이발사와 공장 노동자로 각각 일해왔다고 말했다.

26일 현재 이번 테러로 인한 사망자는 139명, 다친 사람은 180여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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