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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초 남은 '둠스데이' 앞당기나, 고삐 풀린 미중러 핵전력 강화 경쟁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4. 5. 10.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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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 불과 발등의 불이 동시에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의 핵전력 경쟁이 '고개'를 들고 있다면, 아시아에선 실제 상황에 근접하고 있다. 북반구 동쪽과 서쪽이 미국·러시아·중국이 벌이는 핵무기 강대국 정치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유럽에서 러시아가 핵태세를 강화한다면, 아시아에선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중거리핵전력을 높이면서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미·중·러 모두 '내로남불'을 외치며, 물러설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 군 장병들이 지난 2월 2일 군사훈련 도중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이동식 발사대에 적재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가 배포한 사진이다. 2024.2.2. AP 연합뉴스

유럽 핵태세 강화하는 러시아

러시아 국방부는 6일 텔레그램 성명을 통해 남부군관구의 해·공군이 비전략 핵무기(전술핵) 연습 준비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전투 임무 수행을 위해 비전략 핵무기의 대응력을 강화하기 위한 훈련이라면서 군통수권자(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명령에 따른 준비라고 덧붙였다. 성명은 연습 시기와 장소는 특정하지 않았다. 남부군관구 작전 지역에 크림·도네츠크·헤르손·루한스크·세바스토폴·자포리자 등 우크라 점령지역을 포함하고 있어, 유사시 우크라 전쟁에 전술핵무기를 투사하는 연습이 진행될 것으로 관측된다. 성명은 "연습이 서방 관리들이 러시아에 제기한 위협적 성명들에 대한 응답"이라고 밝혀 군사적 목적에서만 비롯된 게 아님을 분명히 했다.

성명이 언급한 서방국은 프랑스와 영국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주 우크라 파병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되풀이 강조했고, 3일 키이우를 방문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교장관은 영국이 제공한 무기로 러시아 내부를 공격해도 좋다고 말했다. 무기 수출 또는 제공국은 무기의 '최종 사용국(end-user)'을 명시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차원에서 우크라 전쟁이 나토와 러시아 간 전쟁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설정한 금지선(red-line)의 하나가 무기의 최종 사용국을 우크라로 한정한 것이었다. 캐머런 장관의 말은 노골적인 적대 선언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9일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미국의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SSBN) 켄터키함(SSBN-737)에 승선했다. 2023.7.19 [대통령실 홈페이지]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29일 언론 인터뷰에서 유럽 공동방위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미사일 방어와 장거리 미사일, 핵무기가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 파문을 일으켰다. 핵보유국은 핵무기 사용 원칙을 담은 독트린을 공표한다. 프랑스의 핵독트린은 "프랑스의 필수 이익이 위협받을 때"를 핵무기 사용 시기로 규정하고 있다. 마크롱은 '필수 이익'에 유럽을 포함함으로써 핵우산(확장억제력)을 제공하겠다는 말을 한 것이다. 유럽이 공동 위협의 원천으로 지목하는 나라는 러시아이다. 러시아 외교부는 이날 영국 및 프랑스 대사를 초치해 이러한 발언에 항의했다.

목표는 '미국 수준'의 핵태세?

러시아는 우크라 전쟁 이후 꾸준히 핵태세를 강화해 왔다. 전황이 불리하거나 미국과 나토가 우크라에 새로운 무기를 제공할 때마다 조치를 취했다. 푸틴 대통령이 처음 언급한 것은 2022년 12월 초이다. 미국이 핵무기 선제타격 개념을 독트린에 포함하고 있는 것을 언급하며, 러시아 역시 미국 수준으로 독트린을 수정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핵실험 가능성도 제기했다. 미국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2023년 2월에는 벨라루스에 전술핵 배치를 선언하고 미·러 신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2)에 따른 미국 측의 러시아 핵사찰을 중단시켰다. '핵 과학자들의 불리틴'에 따르면 미국은 벨기에·이탈리아·독일·네덜란드·튀르키예 등 5개 나토 회원국에 각각 20개의 전술핵무기를 배치하고 이중용도 전투기(DCA)를 동원해 사용 연습을 해왔다. 푸틴이 '미국 수준'을 강조한 이유다.

북한은 지난 18∼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주애'와 함께 참관한 가운데 전술핵운용부대들의 '핵반격 가상 종합전술훈련'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2023. 3. 20. 연합뉴스

러시아 남부군관구가 전술핵무기 연습을 한다면 벨라루스군도 참가할 게 분명하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인민회의에서 "러시아가 국내에 수십 개의 최신 핵무기를 배치해 놓고 있다"고 공개한 바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3월에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야르스(Yars) 사용이 포함된 군사훈련을 했다.

미국은 러시아를 맹비난하고 있다. 패트릭 라이더 국방부 대변인은 6일 "우리가 보아 온 러시아의 무책임한 말의 전형"이라면서 "현 안보 상황을 보면 전적으로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정확히 미국이 지난 수십년 간 유럽에서 해 온 일이다. 미국과 나토는 지난 4월부터 라트비아를 비롯한 러시아 접경지역에서 러시아를 가상 적국으로 삼아 '냉전 이후 최대 규모의 연합연습'(Steadfast Defender 2024)을 하고 있기도 하다. 핵태세가 대폭 강화된 곳은 유럽만이 아니다.

아시아 핵태세 강화하는 미·중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미국이 중거리핵전력(INF)을 본격적으로 배치하면서 핵태세가 강화되고 있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러 INF 협정을 파기하고,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이를 계승해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핵탄두를 적재할 수 있는 중거리 미사일은 사거리 500~5500㎞이다. 찰스 플린 미 태평양 육군 사령관은 작년 11월 하이팩스 안보 포럼에서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토마호크, 하이마스(HIMAS), SM-6 미사일 등을 괌에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 미사일을 발사할 타이푼(Typoon) 시스템도 포함된다.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병사가 20일 산둥성 칭타오에 기항한 유도미사일구축함 구이양 호 앞에서 중국 국기를 나눠주고 있다. 인민해방군 해군 창설일을 맞아 대중에 구축함을 공개한 날이다. 2024.4.20. AP 연합뉴스

올해 들어서는 일본과 필리핀에도 중거리 미사일을 확대 배치하고 있다.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겨냥한 조치다. 미국은 4·10 미·일 정상회담에서 사상 처음으로 400기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판매하기로 했다. 미군 당국은 지난 4월 11일 필리핀 루손섬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했다고 확인했다. 미국이 아시아에 중거리 미사일을 비치한 것은 냉전 이후 사상 처음이다. 한반도도 핵태세 강화 흐름의 중심에 있다. 지난해 4·26 한·미 '워싱턴 선언' 이후 미 전략핵잠함(SSBN)이 사상 처음으로 한반도에 기항했다. 

러시아는 아시아에서도 '미국 수준'의 핵태세 강화를 다짐하고 있다. 그리고리 마시코프 러시아 외교부 비확산·수출통제 특사는 6일 리아노보스티 통신 인터뷰에서 "미국은 올해 말까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중·단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려는 계획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라면서 "미국이 중·단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면, 러시아도 중거리 미사일 배치 유예를 해제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러시아는 미국의 파기 이후에도 INF 협정에 따라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유예해 왔다.

트럼프의 INF 협정 파기 및 바이든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는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에 따라 미사일을 집중 개발, 배치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대응이다. 중국은 미·러와 달리 INF 협정에 제한받지 않고 미사일을 개발해 왔고, 이는 미국이 협정을 파기한 이유이기도 하다. 미해군 항모를 겨냥하는 대함 탄도미사일 DF(東風)-21D와 지대지 미사일 DF-26 등을 배치했다. DF-26은 괌 기지를 사정권에 두고 있어 '괌 킬러'로 불린다.

'핵 과학자들의 불리틴'이 지난 1월 23일 발표한 2024년 현재 둠스데이 시계. 자정까지 불과 90초를 남겨 두고 있다. 인류가 마주할 핵재앙에 가장 근접한 시간이다. 2024.123.  '핵 과학자들의 불리틴' 누리집 캡처

중국 외교부는 이에 대해 "미국이 중국의 문 앞에 미사일을 전진 배치하는 것은 일방적으로 군사적 이점을 추구하는 것"이라면서 강한 반대와 '중대한 우려'를 표했다. 미·중·러가 각각 상대국을 비난하면서 핵전력 강화에 몰두하는 것이다. 여기에 프랑스와 영국이 불쏘시개를 제공하고 있다. "러시아와 서방이 '지구 최후의 날(Doomsday) 시계'를 일치시키고 있다." 리아노보스티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나르마니아가 7일 게재한 칼럼 제목이 다가온다. 미국 '핵 과학자들의 불리틴'이 매년 발표하는 '둠스데이 시계'는 지난 1월 현재 자정(종말)까지 불과 90초를 남겨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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