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9년. 중국 공산당이 도모하는 ‘두 개의 100년(兩個一百年)’이 완성되는 시점이다. 첫 번째 100년은 이미 지나갔다. 중공당 창당 100주년인 2021년까지 샤오캉(小康,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단계) 사회를 건설했다. 두 번째는 신중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현대 사회주의 국가로의 발전이다. 시진핑 주석(71)의 '중국몽'이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연구원 니컬러스 에버스타트(68)는 그러나 그 시점을 중국이 쇠퇴하는 원년으로 예상했다. 중국몽에 재를 뿌린 격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인구감소에 관한 연구는 많다. 그러나 지정학적 구도의 미래상으로 설명하는 작업은 흔치 않다. 에버스타트는 8일 자 포린어페어스에 '동아시아의 다가오는 인구 붕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인구감소가 초래할 동아시아의 음울한 미래를 입증해 보였다. '인구감소가 세계정치를 어떻게 재설정할 것인가'라는 부제를 달았다. 21세기도 '미국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낙관이 저변에 깔려 있다.
인구가 줄어드는 건 중국뿐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동맹 또는 우방국은 더 극심한 인구감소로 미국에 '전략적 자산'이 아닌, '전략적 부채'가 된다. 미국 내에서는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체제를 유지하는 비용에 대한 불만이 높아질 게 분명하다. 회색빛 전망일지언정 동아시아가 걷고 있는 길이자, 이탈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길이다.
유엔 경제사회국 인구분과의 예측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50년까지 동아시아는 현대사의 가장 극적인 인구 변화를 겪는다. 중국, 일본, 대만 인구는 8%가 준다. 한국은 감소율이 12%다. 반면에 미국 인구는 현 추세대로 간다면 12%가 는다. 에버스타트의 '즐거운 상상'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인구와 인구의 잠재력은 국력의 핵심이다. 일본, 한국, 대만은 국내의 사회, 경제적 도전에 직면해야 한다. 중국은 야망과 능력 사이의 간격을 메울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인구는 운명이 아닐지언정 인구의 힘은 '아시아의 세기'가 결코 오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건조한 글의 행간 곳곳에 '샤덴 프로이데(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심리가 엿보인다.
인류 역사상 어느 나라의 경제발전도 인구증가와 비례하지 않은 경우는 없다. 1950~2020년 동아시아 인구는 7억 명 이하에서 약 17억 명으로 늘었고, 경제발전으로 이어졌다. 실패의 징조는 성공 가도에서 이미 드러났다. 인구유지에 필요한 대체출산율은 가임여성 1명 당 2.1명이다. 일본은 1970년대 그 밑을 처음 기록했고, 한국과 대만은 1980년대, 중국은 1990년대 변곡점이 왔다. 2023년 현재, 동아시아에서 가장 인구적으로 가장 비옥한 나라는 일본이지만, 대체출산율의 -40%에 불과하다. 중국과 대만은 -50%, 한국은 -65%가 예상된다. 부모 세대 100명이 자식 세대에 35명으로 쪼그라든다는 말이다.
출산율 전망은 물론 바뀔 수 있다. 에버스타트는 그러나 대체출산율의 -25% 이하로 떨어진 나라가 현상유지 수준까지 반등한 사례가 없다는 인구통계학적 팩트를 강조했다. 러시아도 2050년까지 인구가 9% 줄어든다는 점을 강조했다. 동아시아 전체 인구의 2%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몽골과 북한을 제외했다. (대만의 2389만 명보다 인구가 많은 2600만 명의 북한은 간과했다) '동아시아'를 중국과 친미블록(한·일·대만) 및 러시아로 단순화했다. 미국은 총인구와 15~64세 집단이 모두 증가하고 있다. 질병률이 높지만, 여전히 신생아 수가 사망자 수보다 많다. 2040년대 중반까지 지속될 추세다. 미국의 출산율 역시 대체출산율보다 낮지만, 동아시아 국가들에 비하면 40%가 높다. 필요하면 이민자들을 받아들여 인구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와 다르기도 하다.
노령화도 문제다. 2050년까지 중국의 70대 이상 노년층은 현재보다 2.5배가 늘어난다. 일본은 70대 이상이 다른 어떤 연령집단보다 많아지고, 대만은 75세 이상이 25세 이하를 앞지른다. 한국은 이번에도 최악이다. 80세 이상이 20세 이하보다 많아진다. 미국도 고령화가 진행되지만 동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80세 이상 슈퍼노년층 인구가 훨씬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인구통계학적 전망이다.
에버스타트는 인구감소가 초래할 새로운 지정학적 역학관계를 짚었다. 아무리 장비와 무기를 첨단화해도 군대는 사람이 움직인다. 그런데 동아시아, 특히 중국의 군 복무 가능 인구는 생산 가능 인구보다 더 극심하게 줄어든다. 에버스타트가 유엔 통계에서 '2050년'을 콕 짚어낸 이유가 뭐겠는가.
군 복무 연령집단은 18~23세. 중공당 창당 100년을 한 해 지난 2050년, 중국의 군 복무 연령집단 인구는 1950년 수준(3000만 명)에 못 미친다. 좋은 교육과 기술력을 갖춘 청년층이 부족해지면 중국의 글로벌 위상을 높이는 게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청년을 경제일꾼에서 제외할 것인지, 경제적 손실을 감내하면서까지 군 복무를 시킬지 고민이 시작될 지점이다. 냉전이 끝난 1990년, 미국에 비해 7배 많았던 중국의 병역자원은 2050년 미국의 2.5배에 그친다.
물론 동아시아 청년인구 감소가 미국에 좋은 것만은 아니다. '미국의 망토' 안에서 지역 안보에 크게 이바지해 온 일본·한국·대만의 청년인구가 중국보다 더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한때 징집 가능 청년인구가 미국의 25%에 달했던 한국은 2050년 미국의 10% 미만으로 줄고, 대만 역시 대미 비중이 1990년 10%에서 5%로 쪼그라든다. 1950년대 후반 기준, 미국과 비슷했던 일본은 미국의 5분의 1로 준다.
3개국이 더 이상 지역 안보 역할을 할 수 없거나, 역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여기서 '동맹의 딜레마'가 생긴다. 인구감소-경제력 쇠퇴 등의 이유로 한·일·대만의 대미 안보 의존도는 더 커지되, 기여도는 줄어든다. 동아시아 안보 질서 유지 비용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질 게 분명하다. 지금도 방위비 분담금이나 역할이 부족하다고 미국이다. 방기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2050년 미국은 중국은 물론, 유럽 주요국에 비해서도 인구 사정이 좋아진다. 경제활동 인구 2.3명이 노인 1명만 부양하면 된다. 에버스타트는 이를 '엄청난 전략적 선물(A Great Strategic Gift)'이라고 환호했다. "인구학적 기울기를 통해 중국과 동아시아에 대한 접근방식을 바꿔야 한다. 우방국들에 대한 접근방식도 마찬가지다. 그리함으로써 미국은 '미국의 인구학적 예외주의'라고 할 만한 이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에버스타트의 제언이자, 미국이 직면할 행복한 고민이다.
지극히 미국 입장에서 쓴 글의 종착점은 바로 분단의 족쇄에 묶인 한반도 거주민의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고민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워싱턴의 네오콘(신보수주의) 매파 중에서도 매파, 대표적 대북 강경론자인 에버스타트가 의도와 달리 우리에게 던진 화두다. 또 한가지. 가만히 있어도 '미국의 세기'가 되는 데 미국은 왜 동아시아에서 군사주의를 갈수록 강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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