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도널드 트럼프의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가드레일 없는 트럼프'를 상상해 보시라."
카멀라 해리스가 지난 22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한 대선후보 수락 연설의 골자다. 통합의 메시지는 약했고, 분열의 메시지는 강했다. 국내 상황 진단은 반트럼프를 위한, 반트럼프에 의한, 반트럼프의 색조가 선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가 '잊힌 그들'을 배반한 기성제도에 대한 증오를 부채질한다면, 카멀라 해리스는 '가드레일(보호난간) 없는 트럼프'에 대한 공포를 부추겼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이 '증오'와 '공포'의 대결 구도가 될 것을 예고했다. 국내 정책과 대외 정책으로 나누어 연설 내용을 전한다.
"달려라, 카멀라, 달려!"
"19세 때 홀로 인도에서 세계를 건너온 엄마, 샤말라 해리스와 자메이카에서 온 학생 도널드 해리스는 민권운동 모임에서 만나 사랑하고 결혼했다. 나는 민권운동의 이상을 주입받으며 자랐다." 해리스는 이날 저녁 연단에 오른 뒤 꼬박 3분 동안 환호하는 청중을 향해 웃었다. "좋은 저녁이다" "고맙다"는 인사를 각각 10여 차례 반복했다. 남편 더그와 대통령 조 바이든, 러닝메이트 팀 월즈 등 세 명에 감사를 표한 뒤 연설을 시작했다.
부모의 직장(대학, 연구소)가 바뀔 때마다 캘리포니아에서 일리노이로, 다시 위스콘신으로 이사 다녔던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부모의 이혼 뒤 엄마 밑에서 자랐고, 샌프란시스코 이스트 베이의 셋집에서 아름다운 노동자 계층 이웃들과 살았다고 출신 배경을 소개했다.
아버지는 공원에서 웃으면서 말하곤 했다. "달려라, 카멀라, 달려" "두려워하지 마라" "무엇이든 너를 멈추게 하지 마라"고. "집안의 맏딸로 세상이 키 1m 52의 갈색 여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종종 보았지만, 엄마는 한 번도 냉정을 잃지 않았다"면서 "엄마는 부당함에 투정하지 말고, 무언가 행동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었다고 회고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양부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는 걸 알게 되고, 그 친구와 같은 사람을 보호하겠다는 생각을 한 게 검사가 된 이유의 하나였다고 말했다. 평검사 시절 여성과 어린이 보호에 주력했고,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으로는 대형 은행에 맞서 집을 압류당할 위기에 처한 가정에 200억 달러를 지원한 '주택소유자 권리장전'의 통과를 치적으로 내세웠다. 퇴역군인과 학생, 노동자, 노년층을 돕고, 국경의 안전을 위협하는 총기·마약·인신 매매 카르텔과 싸웠음을 강조했다.
'사람(The People)' 대 트럼프
해리스는 검사에서 부통령까지 자기 경력을 통틀어 "사람(The People)이라는 단 하나의 의뢰인만 섬겼다"면서 "정당과 인종, 성별, 할머니의 모국어와 상관없이 모든 미국민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당과 자기 자신보다 국가를 우선하겠다면서 법치와, 자유·공정선거, 평화적 정권교체 등 신성한 미국의 근본 원칙들을 수호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끌되 경청하는 대통령,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며, 상식이 있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도 내놓았다. 통합의 메시지는 여기까지였다.
이번 대선을 '미국의 미래를 위한 싸움'이라고 표현한 해리스는 2021년 1·6 의사당 폭동을 거론하면서 "트럼프는 여러분의 표를 내다 버리려고 했다"고 포문을 열었다. "트럼프는 여러 점에서 진지하지 않은(unserious) 사람"이라면서 "무장한 폭도들을 의사당에 보내놓고 공화당 정치인들까지 폭도를 물려달라고 애걸했지만, 트럼프는 되레 불길에 부채질을 했다"라고 비난했다. "트럼프는 언론인과 정치적 반대 등 누구든 자신이 적으로 보는 사람들을 투옥하겠다는 분명한 의도를 내보였고, 시민들에게 군대를 배치하겠다는 분명한 의도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이기면 '가드레일(보호난간) 없는 트럼프'를 상상해 보라고 권했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의 무한한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겠느냐"고 반문한 뒤 "여러분의 삶을 개선하거나, 국가안보를 강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섬겨온 유일한 고객인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기회 경제'로 중산층 구축
해리스는 자신의 공약을 소개하기 전에 트럼프의 공약에 대한 비난을 먼저 했다. "우리는 돌아가지 않을 것"을 여러 번 다짐하면서 트럼프의 사회보장 및 노령자 건강보험(Medicare) 축소, 공교육을 담당한 교육부와 오바마 케어(지불 가능한 건강보험법)의 폐지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청중의 연호가 이어졌다. 그러면서 자신의 대통령직을 규정하는 것은 '중산층 구축'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에서)기회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라면서 자신이 '기회 경제(Opportunity Economy)'를 만들 것이라고 약속했다.
"트럼프의 부자 감세안은 미국의 국가부채에 5조 달러를 더할 것"이라면서 자신은 1억 명 이상의 국민이 혜택을 볼 '중산층 감세안'을 통과시킬 것이라고 장담했다. 노동자와 소상공업자, 기업가, 미국 기업들을 하나로 묶어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발전시켜, 건강보험·주택·식료품 비용 등 모두의 생활비를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경제 다음으로 강조한 공약은 낙태권의 보호다. 2022년 트럼프가 임명한 대법관들이 연방정부의 낙태권 보호를 판시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것을 지적하면서 트럼프는 되레 "내가 해냈다. 자랑스럽다"라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반낙태조정관' 자리를 신설, 주정부로 하여금 유산과 낙태를 보고토록 할 계획"이라고도 말했다.
이번 선거에는 많은 근본적인 자유의 존속 여부가 걸려 있다면서 △총기 폭력으로부터 안전할 자유 △(동성애를 비롯해) 당당하게 사랑할 자유 △ 맑은 공기와 맑은 식수를 누릴 자유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공해로부터의 자유 △투표할 자유를 꼽았다. 자신이 지난해 바이든과 함께 수십 년 동안 가장 강력한 국경법안을 작성했지만, 이를 선거운동의 위협으로 판단한 트럼프가 공화당 의원들에게 반대를 명령했다고 지적했다.
RCP 평균 해리스가 1.5%P 앞서
한 달 전 바이든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해리스의 상승세가 예사롭지 않다.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가 7월 31일~8월 21일 사이 퓨리서치를 비롯한 14개 여론조사 평균치를 집계한 결과 해리스는 48.4 대 46.9로 트럼프에 비해 1.5%P의 우세를 보였다. 가장 최근의 라스무센 조사(8.15~21)는 3%P 차, 모닝컨설트(8.16~8.18)는 4% 차였다. 그러나 미국 대선의 승부가 갈리는 7개 경합주 최근 여론조사에 대한 RCP의 집계 결과는 47.3 대 47.4로 트럼프가 0.1%P의 위태로운 우위를 보였다. 트럼프는 위스콘신과 미시간에서만 밀렸고, 펜실베이니아, 애리조나, 네바다,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에서 우세했다. 주별 격차는 0.2%P(펜실베이니아)에서 2%P(미시간)였다.
22일 현재 75일 남은 대선의 향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전당대회 컨벤션 효과가 더해지면 해리스 지지율은 더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해리스의 돌풍이 폭풍으로 발전할지, 잦아들지는 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해리스의 반트럼프 연설은 되레 미국이 여전히 트럼프의 주문(呪文)에 걸려 있음을 입증한다. 트럼프는 해리스의 연설 뒤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미국 내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6000만 명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라면서 "해리스는 자신이 말한(약속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년 반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트럼프는 벌써부터 자신이 패배한다면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바이든에서 해리스로 민주당 후보가 바뀌었지만 "이번 대선은 2016, 2020년에 이어 정치적 내전 상태에서 치르는 세 번째 대선(이혜정 중앙대 교수)"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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