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통수권자로서 나는 미국이 늘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갖도록 하겠다. 우주와 인공지능의 미래로 우리가 세계를 이끌겠다. 중국이 아닌, 미국이 21세기 경쟁에서 승리하도록. 우리의 글로벌 리더십을 물리기는커녕 강화하겠다. 김정은 같은 폭군과 독재자의 비위를 맞추지 않겠다." (22일,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
해리스 역시 '힘에 의한 평화'를 역설했다. 도널드 트럼프와 일치한 대목이다. 강력한 군사력을 구축하고,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것이며 세계를 이끌겠다고 다짐했다. 대외 정책의 기본 방향을 설명하는 데 수락 연설의 20% 정도를 할애했다. A4용지 7쪽의 연설문 중 1.5쪽 정도를 할애했다. 그나마 조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7.21.) 뒤 처음 공개한 대외정책 구상이었다.
우크라이나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 편에 서서 러시아와 대적할 것을 다짐했고, 가자 전쟁에서는 이스라엘 역성을 들었다. "팔레스타인 주민의 고통을 끝내고, 존엄과 안전, 자유의 권리를 실현할 수 있도록 종전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자위권과 하마스의 인질 석방 문제를 선결한 뒤의 과제로 미뤘다. 대신, 이란의 대이스라엘 보복 공격을 의식한 듯 "이란과 이란이 지원하는 테러리스트들과 상대해 우리 군대와 우리 이익을 지키는 데 필요한 어떤 행동이라도 주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유럽과 중동 외에 다른 지역 전략은 꺼내지 않았다. 인도·태평양은 물론 한반도도 없었다. 그런데 돌연 '김정은'이 튀어나왔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수락 연설에서 거명한 세 명의 외국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해리스가 '김정은'을 거명한 이유가 있다. 일거양득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리스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공격하는 동시에 내 편의 민주주의와 네 편의 독재자를 가르는 '경계'로 활용했다. 독재자들이 트럼프를 응원하는 이유로 "트럼프가 아첨과 호의로 조종하기 쉬운 인물인 데다 자신들의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방점은 "트럼프 스스로 독재자가 되고 싶기 때문"이라는 마지막 문장에 있었다. 이어 바이든의 '피보호자(protegé)'답게 "민주주의와 폭정 사이의 끝없는 싸움 중에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미국이 어디에 속하는지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를 '민주주의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으로 양분했던 바이든 독트린의 변용이었다. 워싱턴 이그재미너의의 칼럼 제목을 빌면 "민주당은 (해리스에) 횃불을 넘겼지만, '낡은 게임(oldies)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지원은 민주당을 분열시키는 이슈다. 19~22일 민주당 전당대회 기간 내내 시카고 시내 곳곳에서 반전, 반이스라엘 시위가 열린 까닭이다. 해리스는 적전 분열을 걱정한 듯 바이든의 노선을 충실히 따르면서 정서적으로만 안타까움을 표했다. 대외 정책 구상에서 냉전시대의 인물인 바이든과 달리 베이비부머 세대인 해리스가 "우주공간과 인공지능, 사이버 공격 등 첨단(high-tech) 위협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 점(포린폴리시)" 정도였다. 상원 정보위 소속으로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과 첨단기술을 활용한 외국세력의 틈입을 다루었고, 부통령으로 국가우주위원회를 관장한 경험이 있다.
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를 본보기로 삼아 사상 첫 흑인 여성·아시아계 대통령을 꿈꾸는 해리스의 이분법적 세계관은 오바마의 메시지와는 사뭇 다른 부분이다. 오바마도 2008년 8월 28일 전당대회 후보 수락 연설에서 "미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의 군사력을 구축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단호하고 직접적인 외교를 통해 이란의 핵무기 획득과 러시아의 침략을 좌절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재자를 대하는 방식도 달랐다. 오바마는 취임사에서 "부패와 사기, 반대 세력을 침묵시키는 방식으로 권력에 집착하는 이들"을 거론하며 "당신들이 주먹을 펴겠다면 우리가 손을 내밀겠다"며 대화 의지를 밝혔었다. 물론 말만 번드레했다.
오바마는 8년 임기 동안 특히 한반도 문제에서 '비전략적 무시'로 일관했다. (본인은 끝까지 '전략적 인내'라고 우겼다) 하지만 민주당이 2024년 정강에서 대북 대화와 비핵화의 장기 목표를 삭제한 것처럼 말과 글에서라도 '외교와 대화'를 강조하는 것과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처럼 외교와 대화가 없는 행동은 '군사주의'에 머물기 때문이다.
해리스가 수락 연설에서 내놓은 외교안보 전략 구상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그러나 해리스 행정부가 취임한다면 약간의 변주가 있겠지만 바이든 정책의 연장일 것이라는 점은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 및 미래의 대만 전쟁 등 3개의 전쟁을 방관 또는 주도해 온 바이든표 이분법적 접근이다. 앤-마리 슬로터 전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의 평가가 흥미롭다. 슬로터는 23일 포린폴리시 대담에서 해리스 연설의 3대 주제를 '힘(무력)'과 공화당 전당대회를 방불케 한 애국주의, 자유(freedom) 찬가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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