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14년 전 방북 스탠포드대 팀에 영변의 초현대식 우라늄 농축시설을 처음 보여줬을 때만 해도 사진 촬영을 금했었다. 조선중앙통신(중통)은 13일 김정은의 원심분리기 공장 현지지도 소식을 전하면서 사진을 공개했다. 김정은은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왜 지금 공개했을까, 또 그게 어떤 차이를 의미할까?"
사진만으로 보면, 무기급 농축우라늄 소폭 증가 추정
국의 권위 있는 북핵 전문가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와 대북 협상 전문가 로버트 칼린이 지난 18일 자 38노스(North) 게시글에서 던진 질문이다. 두 전문가는 중통이 보도한 사진들을 통해 농축시설의 기술적인 변화를 짚은 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치적 의도에 초점을 두었다.
이들은 일단 사진 속 원심분리기에는 과거에 없던 작은 직경의 파이프가 있는데 이는 고속 회전자(rotor)를 냉각시키는 장치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고속 회전자를 장착했다면 원심분리기가 더 빨리 회전할 수 있지만, 원심분리기 길이가 2010년 11월 자신들이 보았던 것과 큰 차이가 없는 만큼 용량이 늘었어도 소폭 늘었을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원심분리기 회전자의 재질과 원심분리기 설계를 확인하지 못한 만큼 농축 성능의 정확한 파악은 어렵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물론 원심분리기의 성능을 개선하지 않더라도, 농축 시설 자체를 추가 건설하는 방식으로 농축 능력을 확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위치와 개수를 파악하기 어려운 영역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이 방문한 시설이 평양 인근 강선에 있다는 일각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들은 북한의 농축 능력 확대보다 고농축 우라늄(HEU)이 주로 한국과 일본을 겨냥한 전술핵 무기용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적재할 전략 핵무기는 플루토늄과 삼중수소를 기반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현지지도에서 "전술 핵무기를 제작하려면 더 많은 핵물질의 생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그러나 사진 속 농축 시설로 보아 북한은 25% 정도의 핵물질을 추가 생산할 수 있을 뿐 "김정은이 과거 요구했던 것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은 이미 2022년 12월 말 당 중앙위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확대회의 보도문에서 '전술핵의 대량생산'과 '핵탄두 보유량의 대규모 확대'를 결정했었다.
전략 핵무기 증강을 위해서는 영변의 5메가와트 흑연감속로에서 더 많은 플루토늄과 삼중수소를 확보하고, 더 많은 핵실험이 필요하다면서 특히 핵실험은 기술적, 정치적 위험을 수반하는 만큼 북한이 쉽게 단행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두 사람은 작년 11월 김대중도서관 대담에서 북한이 6차 핵실험(2017.9.3) 이후 기술적인 필요가 있음에도 7차 핵실험을 하지 않는 이유로 중국의 강한 반대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했었다. 이들은 북한과 러시아의 새로운 관계가 이 중 한 가지 또는 모든 분야에서 지름길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짚었다.
헤커-칼린은 그러나 새로운 농축 시설이 북한 핵무기가 제기하는 위협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핵물질 추가 확보를 강조하는 분명한 전시효과는 있지만, 북한 핵무기의 정교함이나 다목적성을 향상시켰다는 증거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북한이 6차례 핵실험 중 3차(2013.2.12)와 5차(2017.9.9) 등 단 두 차례만 전술 핵무기 실험을 했기 때문에 추가 핵실험이 없이는 탄도미사일에 적재할 핵탄두의 성능을 충분히 개선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다만 북한의 ICBM은 아직 대기권 재진입 기술의 확보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전술 핵무기용 단거리 탄도미사일의 경우 재진입 기술을 확보했다. 중통이 공개한 사진들은 북한의 핵무기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북한은 과연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함으로써 무엇을 노렸을까? 헤커-칼린은 김정은이 지난 8월 말부터 국방부문, 특히 핵무기에 집중해 온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으로 주민들에게 긴장 고조에 대비하게 하고, 밖으로 미국에 핵능력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려는 이중 목적에서 김정은의 농축 시설 방문이 있었을 거라는 분석이다. 이들은 김정은의 최근 국방부문 행보가 오는 10월 7일 열리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1차 회의를 앞두고 진행됐다고 보았다. 북한이 예고한 대로 회의에서 새로운 국경을 선포한다면 "한반도, 특히 서해상의 긴장을 고조시킬 게 거의 확실하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작년 12월 말 당 중앙위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최고인민회의가 올 1월 헌법에 영토·영해·영공 조항을 신설해 주권 행사 영역을 규정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부정하며 '연평·백령도 북쪽 국경선'을 특정해 언급했다. 이는 북한이 1999년 해상경계선과 2007년 해상경비계선 등 일방적으로 선포한 경계를 말하는 것.
북한은 유엔군 사령관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NLL을, 한미 양국은 해상경계선과 해상경비계선을 서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북한은 작년 11월 남측이 9.19 남북 군사합의의 비행금지구역을 일방적으로 효력 정지한 뒤 육·해·공의 모든 완충구역을 폐지한 상태다. 헤커-칼린은 이와 관련, 김정은이 그동안 전술 핵무기 사용을 포함한 압도적인 공격을 남한의 주요 군사, 민간 인프라에 가할 수 있다고 강조해 왔음을 상기시켰다.
헤커-칼린은 북한이 전략 핵무기용 플루토늄과 삼중수소 생산이 여전히 제한돼 있어서 처음부터 미국 본토를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할 의도나 능력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라늄 농축 시설 공개는 우선 남한을 상대로 또, 일본을 상대로 '지역 억제력'을 확보하기 위해 전술 핵탄두 생산 능력이 향상됐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1950년 한국전쟁에서 할아버지(김일성 주석)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에 따라 유사시 미국의 배제를 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김정은이 '위험한 새 단계'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경고했다. 최근 몇 달 동안 경제 정책에 집중하고 있지만, 주민들에게 잠재적 대결을 계속 준비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남북은 신년벽두부터 서해 포사격으로 한 해를 열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9.19 군사합의를 공식적으로 폐기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5월 일부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방치→북한의 오물풍선 부양→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등의 수순을 밟으면서 군사분계선 일대의 군사적 긴장을 적극적으로 조성하고 있다. 헤커-칼린는 지난 1월에도 "미국과 한국은 김정은이 전쟁을 벌이지 않을 거라고 단정하고 억제력의 최면에 걸려 있다"고 지적했었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최고인민회의 개최를 계기로 서해의 긴장이 핵 위협을 동반하는 전혀 새로운 국면에 돌입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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